시간이 흐릅니다.
제가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많은 순간이 스쳐 지나 갑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함께 있어 주는 거라고 하지요?
제 산보를 동행해주는 가족은
언제나 제가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삶의 에너지원입니다.
위로받고, 격려 받고, 하소연을 하게하는....
저는 밤산보를 다닙니다.
특별히 그 시간이어야 한다기보다
어쩌다 보면 낮시간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기쁨은 그 산보의 동반자가 언제나 남편이거나 아이들이라는 겁니다.
산보하는 동안 그들과 나눈 대화는
제가 집안에서 해야할 일을 알게 하고 계획하게 합니다.
요즘은 방학을 맞은 큰애가 동행을 합니다.
낮에 진료로 바쁜 남편에게 휴식을 배려한 일이죠.
게다가 그제밤엔 식탁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으니 그걸 마무리도 해야하니까....
아침에 제대회 참석을 위해 서두르느라 설겆이를 다 못했습니다.
그러다 사람을 만나고 일을 보느라
남편보다 더늦게 집에 들어온 게 화근입니다.
서둘러 저녁준비를 해서 손님과 함께 감사기도를 봉헌하고 식사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아들에게
"넌 음식을 먹었으면 치워놓아야지.."
하고 한마디...
"제가 먹은 게 아닌데요? 식탁에 있는 거 제가 안그랬어요."
다소 불손한 억양..
그러다 각자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제가 곁에서
"아빠께 버릇없이 구는 건 용서 안돼. 무엇보다 엄마 잘못이 시작이다. "
제가 우선 잘못을 인정했지만 남편은 삐짐. 아들도 말문을 닫음, 손님은 좀.....
전 그 수난의 시간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여보, 당신 마음 다쳤어요?"
"그래, 난 이럴때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생각이 들어. "
"가브리엘, 너 아빠께 용서를 빌어라. "
"죄송해요. "
"아빠가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언성을 높히는 건 잘못이야.
엄마가 동생이 네게 대들때
네가 잘못을 했더라도 동생을 나무라는 건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거든.
비록 지금이 유교적인 가치인 장유유서가 무너진 세대라고 하더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게 우리 집안의 가풍이었음 좋겠다. "
남편은 조금 위로 받았고 아들은 입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좀 억울하겠죠?
어제는 먼저 자식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큰애와 함께 걸었습니다.
"엄마가 이 행복한 시간을 갖을 날이 줄어 들고 있구나.
방학이 끝나가니 그땐 누구랑 걷게 될까..그땐 산보 시간을 앞당겨야겠구나 싶다.
방학 동안 네가 있어 참 행복했다, 고마워.
근데 가브리엘, 너 어제 있었던 일로 마음 상했니?"
"아니에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
"엄마가 노파심이었나 봐.
아빠는 대체로 마음이 참 여린 분이야. 먼저 배려해 드려야 해.
상처가 있어도 가슴에 품어 병을 만드시는 스타일이거든.
친구를 만날 시간도 넉넉치 않고 위로 받을 대상도 별로 없어.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서 언제나 자신의 모든 걸 주시는 분이잖아.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아빠를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할 거 같아."
우리는 씩씩하게 그리고 기분좋게 걸었습니다.
달맞이꽃도 가을빛을 받아 누렇게 밑둥부터 전잎이 되고 있고
백공작이 여기저기 피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움을 논하기도 전에 벌써 지고 있는 달맞이 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백공작이 참 반가웠습니다.
아들에게 그 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브리엘, 저게 백공작이야. 엄마가 꽃을 몰랐을 땐 안개꽃을 좋아 했었어.
그 용도가 대충 비슷하거든.
근데 공작초를 알기 시작한 후론 안개보다 백공작이 참 좋더라.
생명력도 강하고 꽃 사이에 꽂으면 깔끔한 마무리가 되더라구.
안개꽃도 좋고 공작도 좋지만 그 기품이 서로 다른 것 같아.
그런 예로 나리꽃도 좋고 백합도 좋은데 꽃이 주는 기품이 다르게 여겨지거든. .
꽃 한 송이도 주님 창조하지 않은 게 없어 어느 것도 함부로 논하고 싶지 않지만
시베리아나 카사블랑카 르네브같은 나리종류는 헤벌어지게 피고 향기도 강해.
근데 비슷한 꽃이지만 백합은 수줍게 피고 ,향도 은은한데
꽃을 꽂아놓고 나면 훨씬 우아하고 아름다움이 더 오래 지속되거든.
난 사람도 그렇다고 본다.
어느 한 사람 하느님께서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사람마다 풍기는 기품은 다 다르다고 본다.
헤벌어지고 흐드러진 사람보다는 다소 자신의 자아정체성은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약간은 내 모습을, 오직 내모습으로 간직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구나.
세상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게 고집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은 스스로에겐 존재의 의미거든. "
밤산보는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살았다는 것, 엄마라는 이유로
나이든 친구가 되는 은총을 누리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자식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근데 아들도 그 산보를 좋아할지는 모르겠군요.
아직은 혹여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 와서도 기꺼이 동행을 해주긴 하지만....
언제나 조심스레, 사랑도 절제하며 해야겠다고 다짐도 해 봅니다.
첫댓글 딸과 길을 갈때면 식물에 관심이 많은 딸이 늘 여러 종류의 풀꽃에 대하여, 나무에 대하여,전설이나 꽃말 ,특징등을 재미있게 들려주곤합니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자연꽃이야기는 아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것같군요.
헤벌어지고 흐드러진 사람보다는 다소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서..... 내모습을 간직하는 사람이 되는것....... 어린딸들에게 해주었던 말인데 ..... 같은 생각을 접하니 매우 정겹습니다.
참나리님! 누구신지.... 요즘 나름대로 열심히 제 신앙을 쓰는 제게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 가을 음악회에서 만나요.^^
아드님과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지네요... 행복이 이곳에 까지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