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49재(四十九齋)는 불교의례로써 고인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원하는
천도재의 일종이다. 예전에는 불교 가정(사찰)에서만 지냈으나 근래에는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지내기도 합니다.
(49재는 유교 상례에서는 꼭 필요한 제사는 아님)
현대에는 喪禮절차가 간략하고 삼우탈상(三虞脫喪)이나 장일(발인일) 당일 탈상이
매우 앞당겨져 예전에 비해 喪期(사망~탈상,옛날에는 3년 즉 만 2년 이상 이었는데
지금은 三虞祭 때 脫喪한다 해도 5일 뿐임)가 매우 짧기 때문에 고인을 추모함에
미진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일반 가정에서도 49齋를 지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脫喪齋로써 49제(여기에서는 祭祀를 뜻함)를 지내기도 합니다.
(49제를 탈상제로 하려면 엄밀히 말하면 그때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상식을 올려야함)
비신자 가정에서 49齋(막재)를 집에서 지내신다면 낮이나 저녁 관게없이 최대한 많은
자손이 모일 수 있는 시간에 기제사 지내는 방식으로 지내시면 됩니다.
제사음식을 다 갖추어 지내도 좋지만 여의치 못하면 간단히 성묘음식 정도면 되겠음
(술, 과일, 포)를 준비하셔서 산소나 납골당에 가서 지내도 됩니다.
본래의 49齋는 사망일부터 쳐서 단위로 7회를 지내는 것이며, 현대에 일반가정에서
말하는 '49齋'는 본래의 49齋의 마지막 齋(7회째 齋)인 '막재(7재)'를 말합니다.
49齋란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일곱번에 걸쳐 명부시왕들의 심판을 받는데 마지막
49일째에 염라대왕에게 최종심판을 받아야 지옥에 갈지 극락에 갈지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부터 쳐서 7일마다 한 번씩 齋를 올리는데 그것을 일곱번에
걸쳐 올립니다. 그 일곱번째 齋를 '막재' 또는 49齋라고 합니다. 보통의 7일마다 올리는
齋는 간소하게 하고 마지막 49일이 되는 일곱번째 올리는 齋는 크게 합니다. 이렇게
7일만에 한 번씩 올리는 것은 몸을 벗어버린 영가가 49일 동안 중음신(中陰神)으로
떠도는데 몸을 가지고 있을때 지은 業에 따라 매 7일째마다 심판을 받게 되며 이때마다
불공을 드려 망자를 대신해 善根功德을 지어주며 그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원래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에 따르면 개인의 생전의 행위 자체에 대한 業報는
그 사람 개인에 한정되며, 어떤 방법으로도 자녀 또는 그 후손 누구에게도 전가될 수
없으며 전가사킬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교사상은 49일 동안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하여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齋를 올리며 죽은 부모나 조상이 후예들의 공덕에
힘입어 보다 좋은 곳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 조상의 혼령이 후손에게 복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49齋(막재)를 중요시 여기는 까닭은 명부시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염라대왕이
49일째 되는 날에 심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49齋는 법화경사상과 지장경. 아미타경,
약사여래경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봉행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49齋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49齋의 근거는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시되, 장자여 내가 지금 미래 현재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간략히 이 일을 설하리라.
장자여 미래 현재 모든 중생들이 명을 마칠때 다달아서 한 부처님 이름이거나, 한 보살의
이름을 얻어 듣게 되면 죄가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다 해탈을 얻으리라
...중략...
죽어서 모든 이가 7.7 49일 안에 業報를 받지 않았다가 49일이 지나면 비로소 業에
따라 과보를 받나니, 만일 죄인이 이 과보를 받으면 천백세중에 헤어날 길이 없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49齋를 베풀어 공양하되 이같이 하면 목숨을 마친이나
살아있는 권속들도 함께 이익을 얻으리라. 라는 구절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49齋의 유래는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사상이 절충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齋를 올려 죽은 이가 그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祭禮의식이다.
그래서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부르며, 이 49일간을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
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生)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래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에 따르면 개인의 생전의 행위 자체에 대한 업보(業報)는
그 사람 개인에 한정되며. 어떤 방법으로도 자녀 또는 그 후손 누구에게도 전가될 수가
없으며 전가시킬 수 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교사상은 이 49일 동안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하여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齋를 올리면, 죽은 부모나 조상이 후예들의
공덕에 힘입어 보다 좋은 곳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또 그 조상의 혼령이
후손들에게 복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무아설(無我說)' 과는 다른 육도(六道)의 사상적 해석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육도(六道), 즉 천상(天上), 인간(人間),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아귀(餓鬼),
지옥도(地獄道) 등 여섯 세계를 윤회하고 있음으로 죽은 가족이 이 중 이른바
삼악도(三惡道→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비는 기도행위가 49齋라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설명하면 49齋에 대한 대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7일씩 49일이 될때까지 어떤 신들의 심판을 받는다는군요.
마지막 49일에 염라대왕에게 최종심판을 받아야 지옥에 갈지 극락에 갈지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가(靈駕)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7일마다 한 번씩 祭를 올리게
되는데 그것을 일곱번에 걸쳐 올립니다. 그 일곱번째 祭를 막제 또는 사십구제라고
합니다. 보통 7일마다 올리는 祭는 간소하게 하고 마지막 49일이 되는 일곱번째 올리는
제는 영가가 정성으로 차린 재물을 흠향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장만합니다.
이렇게 칠일만에 한 번씩 올리는 것은 몸을 벗어버린 영가가 49일 동안 중음신(中陰神)
으로 떠도는데 몸을 가지고 있을때 지은 業에 따라 매 7일째마다 심판을 받게 되며
이때마다 불공을 드려 망자를 대신해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지어주며 그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49재(四十九齋)를 중요시 여기는 까닭은 명부시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염라대왕이
49일째 되는 날 심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49재(四十九齋)는 법화경(法華經) 사상과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봉행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49재(四十九齋)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의식으로 자리잡아 생명존중과 조상공경의 의식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49재(四十九齋)의 근거는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시되, 장자여 내가 지금 미래 현재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간략히 이 일을 설하리라. 장자여 미래 현재
모든 중생들이 명을 마칠때 다달아서 한 부처님 이름이거나 한 보살의 이름을 얻어 듣게
되면 죄가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다 해탈을 얻으리라.
---중략---
죽어서 모든 이가 77 49일 안에는 업보(業報)를 받지 않았다가 49일이 지나면 비로소
업(業)에 따라 과보를 받나니, 만일 죄인이 이 과보를 받으면 천백세중에 헤어날 길이
없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49재(四十九齋)를 공양하되 이같이 하면 목숨을
마친이나 살아 있는 권속들도 함께 이익을 얻으리라.
불교에서는 사람(중생)이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을 1기로 구분하고
1기를 넷으로 나눠 보는데 이를 4유라고 합니다. 이 4유는 생유, 본유, 사유, 중유를
가리킵니다. 이중 중유(中有 혹은 中陰이라 함)가 사람이 죽은 후 49일 동안을 일컫는데
다시 말해 죽은뒤에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기간을 일컫는 말입니다.
불교의 내세관에 의하면 살아 생전에 지극한 선업을 지었거나 지극한 악업을 지은
사람은 죽은 후에 곧 다음 생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업과 악업의 중간에 해당하는
業을 지은 보통의 인간들은 이 중음(中陰)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음 생의 인과응보
(因果應報)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이 기간동안 다음 생을 받을 연이 정해짐으로
죽은 사람이 좋은 생을 받기 바라는 뜻에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49일 동안 기원을
해주게 됩니다. 이제는 7일마다 불경을 읽으며부처에게 예배하면 다시 좋은 곳에 태어
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 운경 일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