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두분은 모두 태종 이방원의 손에의해 50대 중후반에 처형된다 5살 위인 정몽주는 영천 임고면 출신 영일정씨이고 정도전은 봉화출신으로 부친 정운경이 과거에 합격 나라의 녹을 먹는다. 두분은 모두 과거시험에 합격한 수재들이다.특히 정몽주는 장원급제를 세번이나 합격하였다니 수재중의 수재다. 몽주의 모친은 영천이씨로 명문가 집안으로 아들 훈육에 본보기가 됨 두분의 특징은 포은 정몽주는 고려의 나라를 고수하고 삼봉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에 앞장서는 개혁파다. 고려말 공민왕은 기득권을 가진 신진사대부을 몰아내고 승려 신돈에게 개혁을 추진하다가 모두 살해되고 이인임이14년간 권력을 잡는다. 이 당시 포은은 언양 삼봉은 나주로 유배간다. 유배에서 풀려난 삼봉을 포은이 이성계에게 소개한다. 이것이 조선개국을 돕는 결정적 계기 가 된다. 고려를 유지하고자 하는 포은을 설득하고자 이방원이 하여가의 詩를 보냈으나 단심가를 하답하자 처형된다. 삼봉 역시 왕은 군림만하고 재상이 정치하는 민본주의 정책 주장과 후처 자식 방석에게 세자 책봉하자 처형 당한다. 포은은 고려시대 장례 문화가 10일이면 종료되는데 부친은18세때 모친은 26세때 별세하여 각각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고 한다. 조선 성리학의 창시자답게 처신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위해 이색이 東方理學之祖라고 비석을 세워 칭송하였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지식을 아끼고 고향을 그리워해 유배중 특히 친구 자식 고향에 대한 글이 많다고 한다. 또한 포은의 업적은 학문이 충출하고 기품이 수려하여 명나라 사신으로 가 밀린조공등 문제를 원만히 해결 하고 돌아오는중 태풍을 맞아 39명 인명이 죽는등 아수라장에 의연히 대처하는 포은을 보자 명나라 왕은 존경의 마음을 가졌다 한다. 일본의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아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에 가서 더이상 노략질 없도록 해결했으며 볼모로 끌려간 조선인 수백명을 돝아오게 했다하니 그의 외교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다. 비록 시대는 많이 흘렸지만 포은에게 흔들리지않는 절개와 외교술에 머리가 숙여지며 조선의 설계자 삼봉에게는 변화를 꿈꾸며 비젼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