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篇 第5篇 德充符 第2章 절름발이 신도가와 당대의 집정관 정자산의 이야기이다. 비록 신체적 부자유를 안고 살아가는 신도가지만, 그것을 전혀 구애됨이 없이 살고있는데, 동문 수학하는 집정관 정자산이 그의 외형적 모습으로 판단하여 우월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아서 마치 운명처럼 그것을 편안히 여기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꾸짓는 이야기 이다.
莊子5-5 申徒嘉 兀者也 而與鄭子産 同師於伯昏無人 子産謂申徒嘉曰 我先出則子止 子先出則我止 其明日 又與合堂同席而坐 子産謂申徒嘉曰 我先出則子止 子先出則我止 今我將出 子可以止乎 其未邪 且子見執政 而不違 子齊執政乎
申徒嘉는 절름발이인데 정나라 子産과 함께 伯昏無人을 스승으로 모셨다. 〈병신과 나란히 걷는 것이 싫어서〉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가 남아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아 있겠네.”
그 다음날에 또 같은 집에 모여 자리를 함께하고 앉아 있었는데,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어제〉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가 남아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아 있겠다고 말했는데, 지금 내가 나가려 하니, 자네가 남아 있어 주겠는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겠는가? 또 자네는 執政者를 보고도 피하지 않으니, 자네가 집정자와 같은 신분인가?”
莊子5-6 申徒嘉曰 先生之門 固有執政焉 如此哉 子而悅子之執政 而後人者也 聞之曰 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今子之所取大者 先生也 而猶出言若是 不亦過乎
子産曰 子旣若是矣 猶與堯爭善 計子之德 不足以自反邪
신도가가 말했다.
“선생님의 문하에서도 참으로 이와 같이 집정자니 뭐니 하는 구분이 있는가? 자네는 바로 자신의 권력을 믿고 남을 함부로 업신여기는 사람이다. 내가 듣건대, ‘거울이 깨끗하면 티끌이나 때가 붙지 않는다. 티끌이나 때가 붙으면 그 거울은 밝게 비추지지 못한다.’라고 하니 오랫동안 현인과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 지금 자네가 큰 道를 배우겠다고 모시는 사람은 바로 선생님인데, 아직도 이와 같이 말을 하니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자산이 말했다.
“자네가 이미 이와 같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堯임금과 더불어 善을 다투려 드니, 자네의 德을 헤아려 본다면 〈그런 말을 해서 좋은지 나쁜지를 충분히〉 스스로 반성할 수 있지 않은가.”
莊子5-7 申徒嘉曰 自狀其過 以不當亡者衆 不狀其過 以不當存者寡 知不可奈何 而安之若命 唯有德者能之 遊於羿之鷇中 中央者中地也 然而不中者命也 人以其全足 笑吾不全足者衆矣 我怫然而怒 而適先生之所 則廢然而反 不知先生 之洗我以善邪 吾與夫子遊十九年矣 而未嘗知吾兀者也 今子與我遊於形骸之內 而子索我於形骸之外 不亦過乎
子産 蹴然改容更貌曰 子無乃稱
신도가가 말했다.
“〈자기의 잘못으로 발 잘리는 형벌에 처해지고서도〉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의 말을 꾸며 대어 발이 잘려 없어지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고, 〈잘못을 인정하여〉 자신의 잘못을 꾸며대지 않고서 발이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적다.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아서 마치 운명처럼 그것을 편안히 여기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羿가 활쏘는 射程圈 안에서 놀면, 그 과녁의 한가운데는 화살이 적중하는 자리이다. 그런데도 화살에 맞지 않는 것은 운명이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온전한 발을 가지고 온전치 못한 내 발을 비웃는 자들이 많다. 그때 나는 발끈하고 성을 내다가도 선생님이 계신 곳에만 가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본래의 평정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니, 선생님께서 훌륭한 道로 나를 인도해주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깨우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선생님과 노닌 지 19년이 되었는데, 한번도 내가 절름발이임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나와 육체의 내면에서 交遊하고 있는데도, 그대는 나를 육체의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찾고 있으니, 또한 잘못이 아닌가?”
자산이 깜짝 놀라면서 얼굴색을 바꾸고 태도를 고치고서 말했다.
“자네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