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능선 산행기
새해 첫날에 이어 3일 만에 다시 북한산을 찾아 나섰다. 작년에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분주히 지내느라 매주 다니던 북한산을 잘 찾지 못했다.그 아쉬움이 남아 오늘 산행을 더 의식하게 된 것 같다. 주말 날씨가 매우 맑았다. 오늘처럼 쾌청한 날씨에 또렷이 다가오는 산세의 기운은 특별하다.
한 겨울에는 먹물이 얼어 어렵지만 스케치 할 도구를 챙겼다. 수묵 도구와 함께 여의치 않을 경우를 생각해 연필로 그릴 종이도 챙겼다. 산행에 나설 때마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시간을 빼앗긴다. 그림도구에다 오래 머무를 동안 먹을 식량 그리고 옷가지 등 챙길 것이 많다. 특히 겨울철에는 신경 쓸 것이 더 많아진다.
오후 12시 40분 불광역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구기동 입구에 내려 앞을 보니 비봉이 정면에 바라보였다. 오늘은 맑은 날씨에 북한산 산세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관봉에 올라 그림을 그리고 비봉을 들러 사모바위 근처에서 하산할 계획을 세웠다.
금선사 입구 구기동 탐방 안내소를 지나 산길에 접어들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쳐갔다. 맑고 파란 하늘처럼 공기도 상큼했다. 나는 이십여년전부터 꾸준히 산을 다니고 있다. 그럴 때마다 그림도 그려왔다. 북한산과 서울 산세를 주제 삼아 그려온지도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오르는 동안 보이는 길가의 바위와 개울 등이 지나는 위치를 가늠케 했다. 이 길도 오래 다니다 보니 목표지점까지 지나가는 길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위쪽 집터가 있던 곳 축대를 지나 급경사 암릉을 지나면 비봉 능선을 지나는 안부가 위치하고 거기서 좌측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관봉이다. 배낭에든 것이 많은 편인데도 걸음은 가볍게 느껴졌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성 싶었다. 체력을 기르고 맑은 공기와 자연 정서를 느낄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 그 사이 점차 나이가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잘 다니는 편이다. 걸음도 빠른 편이고 정상까지 쉬지 않고 올라간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더 생각하게 된다. 친구나 선배들을 만나 예기 하다보면 모두 건강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대화거리가 되었다. 나도 나이가 늘어가면서 점차 신경을 쓰는 편이다. 오래 살고 싶은 욕망보다 노년에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운 시기가 될 때의 염려가 도사리기 때문이다. 늘 일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상태로 있을 때를 생각하다 보면 건강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1시 59분 관봉에 도착했다. 날씨가 추워서 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마치 고향 산천을 찾은 것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주말마다 산에 올라 그림을 그리다보니 나를 알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여기 저기 장소를 옮겨 다니는데 어느 장소를 특별히 좋아해서 자주 찾는 사람은 왜 그동안 자주 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가 있다. 내가 자주 오르지 못한 사이 궁금해 한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머물러 있자니 금세 추위가 밀려왔다. 그림 그릴 준비를 하면서 올라올 때 벗어둔 옷과 배낭에 넣어둔 여벌옷을 꺼내 껴 있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자면 점차 추위가 심하게 느껴진다.
작은 화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드문드문 등산객들이 올라왔다. 앉았던 곳에 나무 그늘이 생겨서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조금 자리를 옮겨 그리기 시작했다. 수묵은 물과 먹물이 얼어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종이에 연필로 비봉 주변 풍경을 그렸다. 비봉의 비석은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이 영토를 북쪽으로 크게 확장하면서 순수비로 세운 것인데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중이고 지금 것은 복제품이다.
그림에 집중하다 보니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그 옆에 많은 일행이 보였다. 그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비봉 쪽으로 출발했다. 다시 뒤를 이어 올라온 다른 일행이 멈춰 앉아 앞에 펼쳐 보이는 풍광에 감탄하며 예기를 나눴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산의 전모를 화면에 담기 위해 목차를 정해 놓고 많은 그림을 그려왔다. 그중 여기서 보이는 풍경이 북한산의 기세가 가장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서 보이는 풍광을 여러 차례 그렸다. 그런데 오늘따라 앞에 보이는 풍광이 매우 빼어나보여서 그동안 그린 그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산세가 더 또렷이 보였다. 나뭇잎이 진 겨울철이라 지형의 골격이 제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그처럼 산의 기세를 포착하기는 좋은데 추위를 감당해야 한다. 수묵으로 많이 그리다 보니 무엇보다 물이 어는 게 문제이다.
그림을 다 그린 후 화구를 챙기고 이동했다. 잠시 후 비봉 앞에 도착해 조심스레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암릉 입구 쪽에 추락주위 표지판이 눈에 띠었다. 늦은 오후 시간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비봉은 봉우리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비석이 세워진 꼭대기 부근까지 오르는 길이 매우 험한 편이다. 날선 급경사 바위를 지나야 하고 막바지에는 좁은 벼랑 틈에서 바위를 올라야 한다.
조심스레 비봉 꼭대기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서울 시내가 훤히 바라보이고 문수봉, 보현봉도 좀 더 가까이 보였다. 오후 되어 구름이 많아지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지니 더 추위가 느껴졌다. 사진을 찍고 비봉을 내려와 사모바위로 가서 삼천사 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정상 쪽으로 펼쳐 보이는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 보는 풍광도 매우 빼어나서 여기서도 그림을 많이 그렸다. 눈이 소복이 덮인 때 바위에 앉아 그림을 그린적도 있었다.
그동안 북한산의 이곳저곳을 찾아 그림을 그려온 추억이 쌓여왔다. 각각의 장소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거기서 만나 예기를 나눴던 사람들이나 그때그때 있었던 그날의 일들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주변 풍광을 돌아보다 하산을 시작했다. 승가사 입구로 내려선 후 구기동 건덕빌라 쪽으로 내려가는 포장길을 걸었다. 이 길도 오래 다닌 터라 날머리까지 코스가 훤히 그려졌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앞쪽에 건너보이는 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잠시 후 구기동 입구로 나와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먹으며 몸을 녹였다. 서울에 살아오면서 가까이 위치한 북한산에 올라 빼어난 자연 풍광에 취할 수 있는 것이 늘 감사히 여겨진다.
2025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