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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05 - 천국과 지옥 사이
S#1 대학 도서관 앞 (낮)
축 입학. 1997년도 신입생을 환영합니다. 현수막이 걸려있고,
활기차고 경쾌하게 오가는 학생들.
자막. 2년 후. 1997년 2월.
발랄한 학생들 따라가면, 한쪽에 을씨년스럽게 서서 담배를 뻑뻑
피우는 경수.
후 배 (도서관으로 들어가다) 경수형! 대학원 가더니 공부 열
심히 하시네요?
경 수 어? 나 대학원 안 갔어. 내가 무슨 대학원이냐...
후 배 그래요? 전, 도서관에 맨날 나오시길래... 죄송해요.
경 수 아냐, 괜찮아. (뻥치는) 사실 몇 군데 오라는 회산 있는
데, 조건이 마땅치가 않아서... 난 대기업 체질이잖냐.
후 배 네에... 그럼 또 뵈요... (인사하고 돌아서면)
경 수 (착잡하게 담배 뻑뻑 피우는) 하 자식, 인사성은 밝아
가지고. 이제 도서관도 못 나오겠네.
후 배 (가다가 돌아서며) 참, 그럼 형두 대신그룹에 원서 한
번 내보지 그러세요?
경 수 대신? 거긴 올해 신입사원 안 뽑는대.
후 배 아니에요, 형. 뒤늦게 채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신문에
났든데요?
경 수 그래?
후 배 예, 지금 대신에서 나와서 취업설명회 한다고 다들 대
강당에 갔는데?
경 수 (더 놀라며) 그래? 왜 나만 모르고 있었지...?
갑자기 서둘러 담배 끄더니 가는 경수. (화이트 아웃)
경 수 (N) 봄이 오는 캠퍼스는 신입생들에게는 낙원이지만,
졸업을 하고도 아직 취직을 못한 백수에게는 지옥과 같다. 한마디
로 불안 그 자체의 시간이었다.
S#2 소제목
대강당 유리문에 붙어있는 포스터. 그 밑에 떠오르는 소제목.
5. 천국과 지옥사이.
S#3 대강당 건물 로비 (낮)
문을 밀고 들어서는 경수.
제법 학생들로 붐비는 로비. '대신그룹 취업설명회'라는 공고가 붙
어있고,
한쪽에 비치된 팜플렛과 원서를 받아서 강당으로 들어가는 학생
들.
경수 그쪽으로 비집고 가서 원서와 팜플렛을 챙기는데,
현 아 (원서를 나눠주다 보고) 경수야...! 서경수 맞지?
경 수 (반갑지만 좀 당황) 어? 현아누나...!
현 아 (역시 반갑지만 좀 서먹한) 오랜만이다...!
경 수 (뒷사람들 피해서 현아 옆으로 가며) 누나... 이 회사
에 있어?
현 아 응, 인력관리팀에. 언제 제대했어? 이번에 복학했니?
경 수 복학한지는 좀 됐구, 이번에 졸업했지... (어색한) 내
가 군대에서 편지 많이 보냈는데...
현 아 (쑥스럽게) 어... 나 곧 결혼해. 그때 그 남자하고... 기
억 나니?
경 수 아니요. 잘 생각 안나... (기분 이상하다.)
현 아 (화제 바꾸며) 너 우리회사 들어올려구?
경 수 (당황해서 머뭇거리는) 어...?
현 아 우리회사 괜찮아. 우리학교 출신들 성실하고 팀웍도
좋다고 선호하는 편이거든.
경 수 (얼른 뻥치는) 아니, 취직은 다른 데 됐구... 그냥 한번
와봤어요. 친구 원서 좀 갖다줄라구... (피하고 싶은) 그럼 다음에
뵈요...
현 아 경수야! 차나 한잔 하고 가지...
건물 밖을 향해 돌아서는 경수. 괴로운 표정이 된다.
S#4 경수집 마당 (낮)
낡은 양복차림의 경수부, 헌 구두를 슥슥 닦아서 신고있다.
할아버지가 옷 차려입고 마당으로 나온다.
조 부 그래도 정년 퇴임식인데 이게 왠일이냐...
경수부 됐어요, 아버지. 그냥 집에 계세요.
조 부 무슨 소리야? 나래두 가야지.
이때 대문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경수.
경 수 죄송해요. 아직 안 늦었지요?
조 부 왜 이제 와?
경 수 (원서와 가방 내려놓고 마루로 올라서는) 금방 옷 갈아
입고 나올게요.
경수부 됐다. 그냥 가자.
경 수 (둘러보며) 엄마는 요?
조 부 오늘 파출부 나간 집에 불이 났단다. 소방차가 오고 난
리가 난 모양이여.
경 수 (놀라며) 예? 엄마가 불냈대요?
조 부 아니. 잠깐 2층 청소하러 올라간 사이에 그 집 애들이
낸 모양인데, 어른들도 없고, 그냥 올 수가 없다고 전화 왔더라.
경 수 (나가며) 네... 경선이는 요? 퇴근해서 그쪽으로 바로
올래나?
조 부 월말정산이라 오늘 늦게 끝난다더라.
경 수 네... (하면서 아버지를 보는데)
말없이 앞서 나가는 경수부.
S#5 회사 강당 (낮)
남성 중창단이 퇴임 축하송을 부르고 있다. 마이웨이 정도. 엄숙하
고 숙연하다.
'축, 동아석탄회사 1997년도 정년퇴임식'이라는 현수막이 보이고,
단상 위에 부부동반으로 앉아있는 퇴임자들 속에
유독 혼자 앉아있는 경수부가 초라해 보인다. 낡은 양복에 쓸쓸한
표정.
퇴임자들 목에는 메달이 걸려있고, 손에는 감사패와 표창장, 꽃다
발이 들려있다.
객석에 앉아있는 경수와 조부. 경수도 왠지 숙연하다.
S#6 버스 안 (밤)
라디오에서 마이웨이 음악이 계속 이어지고, 사람들로 조금 붐비
는 버스 안.
경수와 경수부가 나란히 서있다. 할아버지는 앉아서 졸고있고,
경수는 꽃다발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있다. 경수부 말없이 창 밖
을 보고 있다.
경 수 이런 날은 택시를 타는 건데, 잘못했어요.
경수부 괜찮다.
경 수 ... (잠시 후) 가시다 술 한잔 하실래요?
경수부 아니다, 됐다.
경 수 ....
경수부 너, 취직이 잘 안 된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선 안 된다.
경 수 (쳐다보면) ....
경수부 (창 밖을 보며) 처음 광부로 시작해서, 어쨌거나 사무
실 책상에 앉아 이렇게 정년까지 회사의 녹을 받아먹었으니, 난
참 운이 좋았다. 너도 대학교육까지 시키고... 이젠 정말 할 일 다
한 거 같구나.
이때 근처에 자리가 나자.
경 수 앉으세요.
경수부 앉고, 경수의 쇼핑백을 무릎에 놓는다.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경수부.
그 쓸쓸한 표정 위로 쇼핑백 밖으로 빼죽이 나온 꽃잎들이 흔들린
다.
경수, 초라하게 앉아있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S#7 거리 (낮)
앰프에서 노동가가 울리는 거리.
철망이 쳐진 전경버스들이 죽 늘어서 있다.
버스 뒤켠, 경수가 전경복장의 영진과 종이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경 수 (종이컵에 담뱃재 털며, 착잡한) 지금 우리 집에서 희
망은 나 하나다.
영 진 근데 왜 이러구 있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원서라
두 내봐야지? 거기 현아선배 있다고 아예 원서두 안 낼 참이야?
경 수 쪽팔려서 그러지... 아예 안 만났으면 몰라두... 곧 결
혼까지 한다는데, 괴롭다.
영 진 이제 와서 왜 그래? 멀쩡하게 잘 살다? 당장 가서 원
서 내구, 아예 그 선배두 불러내서 도와달라구 부탁두 해. 인력관
리팀에 있으면 올해 출제경향, 면접성향 같은 거는 대충 알 걸?
경 수 (갈등, 그러나 이내) 에이, 안돼.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 여잔데,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하냐, 남자가? 안 그래
도 취직이라도 해있을 때 만났으면 좋았을 걸, 속이 쓰린 판에...
영 진 하, 정말 답답하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이때 지나가던 전경 중대장이 영진을 보고 소리친다.
중대장 야, 이영진! 뭐해 임마! 빨리 출동 준비해!
영 진 예. 금방 가요. (경수의 컵에 종이컵 끼워 놓으며) 안되
겠다, 가봐야지. (헬멧 쓰며) 하, 자식들, 하필 왜 일요일날 데모들
은 해가지구... 말년에 이게 뭐야...?
경 수 자취방 보일러 기름 빼다가 화염병 만들던 놈이 무
슨...?
영 진 (주위를 경계하며) 그런 얘긴 여기서 왜 해? 하여튼 가
서 빨리 원서 내구, 그 여자 만나서 도와달라 그래. 알았지?
영진 달려가고 나면, 더 괴로운 표정이 되는 경수.
S#8 대신빌딩 로비 휴게실 (낮)
현아와 경수가 마주앉아있고,
한쪽의 커다란 TV에선 자사제품 광고들이 사내방송으로 흘러나온
다.
현 아 그런데 내가 뭘 도와주지...? 지금 오라는 데두 괜찮다
며?
경 수 (당황) 어... 그 회사두 괜찮긴 한데... 아무래두 향후
비젼은 여기가 더 나을 거 같애서... 근데 아까 원서 낼 때 보니까,
다들 명문대 인기학과에다 박사학위소지자가 수두룩하고, 난 뭐
들이댈만한 게 없더라구... 누나가 좀 도와줘야지, 누가 도와주겠
어? 안 그래, 누나?
현 아 (난감한) 내가 뭐 도와줄 만한 게 있을까...?
경 수 누나가 해줄 게 왜 없어? 부정한 방법을 쓰자는 건 아
니고... 누난 내부에 있으니까 올해 시험경향 같은 거는 좀 잘 알
거 아니야.
현 아 (할 수 없다는 듯) 그래... 그럼 일단 최근 몇 년간 출제
됐던 문제나 좍 뽑아다줄게.
경 수 바로 그거야, 누나! 고마워...
경수 약간 미소 짓고는 할말이 끊긴다. 어색하다.
이때 누군가 경수 뒷자리에 와서 앉는 여자의 뒷모습이 실루엣으
로 보이고...
경 수 저기, 뭐라고 불러야 되나...? 남편... 될 사람은 뭐해?
현 아 (표정 안좋은) 지금 일본에서 공부해. 나도 결혼하면
곧 따라갈 생각이야.
경 수 (의미 없이 끄덕이며) 그래...
분위기 어색해지자, 문득 TV로 시선이 향하는 경수.
프린터, 복사기, 팩스가 한 대에 합쳐진 복합사무기 광고가 흐른
다.
경 수 (분위기 슬쩍 바꾸려고) 저게 이번에 출시된 신제품이
지?
현 아 (TV를 보며) 응. 올해 우리 회사에서 미는 신상품이
야. 저거 하나로 프린터, 복사기, 팩스까지 한꺼번에 쓸 수 있거
든.
경 수 저거 제품 아이디어는 좋은데, 광고가 영 아니다.
현 아 그래?
경 수 너무 올~드 하잖아. 광고가 저러면, 제품이 팔리겠
어?
이때 경수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
여 자 (보던 신문만 신경질적으로 내리며, E) 뭐라구요? 광
고가 어쨌다구요?
경 수 (놀라서 얼떨결에 돌아보는데)
여 자 (기분 나쁘다는 듯 고개 획 돌아보며) 댁이 뭘 안다구
그래요?
이때 경수와 눈이 마주치는 여자, 은영이다.
경수와는 등을 맞대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있었던
것.
순간 두 사람 서로를 보고 놀라는데,
현 아 어머, 최은영씨 거기 있었어? 미안해. 내 후밴데, 얘가
잘 모르고 그런 거야. 이해해.
경 수 너 이 회사 다니니...?
은 영 (갑자기 괘씸해서) 그래! 저 광고 내가 만들었다! 넌 여
기 어쩐 일이니?
경 수 어? 나...?
은 영 (따지듯) 혹시 우리회사 다니는 건 아니겠지?
경 수 앞으로 다닐라구 그러는데...?
현 아 어머, 둘이 아는 사이야?
은 영 전 잘 몰라요. (외면하고는 발딱 일어나 그대로 가버린
다.)
경수 얼떨떨해서 은영을 돌아보다가,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온
다.
S#9 동 빌딩 홍보실 (낮)
들어온 은영이 열 받아 자리에 앉으며 전화부터 건다.
은 영 기가 막혀서. 진짜 재수가 없을래니까... (기다리며) 으
유, 빨리 좀 받지. (통화 연결되자) 여보세요? 인경이니?
S#10 패션쇼 무대 뒤, 홍보실 (낮)
패션쇼를 준비중인 무대 뒤 현장. 중간 스텝정도인 인경.
옷을 한아름 들고 낑낑 매며 오면서 전화통화를 하는 인경.
초창기의 까맣고, 거의 무기 수준인 커다란 핸드폰이다.
인 경 어, 나야. 무슨 일인데? (사이) 뭐? 누구? (사이) 아니,
그 자식을 또 만났단 말이야? (은영, 와이프 인)
은 영 그래. 인사과에 배대리라는 언니하고 같이 있더라구.
내가 보는 순간 아주 기겁을 했다니까?
인 경 그래...? (갑자기 생각난) 야, 그럼 성민씨 연락처나 물
어보지 그랬어?
은 영 성민씨...?
인 경 그래. 경수 걘 알 거 아니야? 둘이 친구라며?
은 영 (갑자기 멍해지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인 경 으이구, 이 바보야. 너 길에서라도 우연이 마주쳐서 성
민씨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며?
은 영 응...
인 경 (옷은 내려놓고, 땀이 나는지 닦으며) 이건 어쩌면 성
민씨를 다시 만나라는 신의 계시야.
은 영 ...근데 경수가 아직도 성민씨랑 친구로 지내는지 어떤
지 모르잖아. 나랑 정미처럼 소식이 끊겼는지도 모르구...
인경 바쁘다. 다른 스텝에게 옷 가져왔다는 손짓하면서,
인 경 그래두, 물어는 봤어야지. 일단 그 배대리라는 언니한
테 가서 경수 연락처나 알아놔.
은 영 ...몰라. 있다가 집에서 얘기하자. 나 회의 들어가야
돼. (인경, 와이프 아웃)
수화기 내려놓으며 잠시 시무룩해지는 은영. 잠시 생각하다 일어
나 나간다.
S#11 대신빌딩 로비 휴게실 (낮)
경수와 현아가 인사하고 헤어지는 분위기. 은영, 살짝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모르는 척 경수앞을 지나간다.
경 수 어, 은영아
은 영 (돌아보고) 아직 안갔니?
경 수 너, 예뻐졌다. 커리어 우먼 분위기도 확 나고.
은 영 (마치 관심없다는 듯) 넌 예전이랑 똑 같다.
경 수 (웃고)
은 영 (마치 관심없다는 듯) 너 요즘도 성민씨 만나니?
경 수 어? 성민이...?
은 영 친구니까 만날 거 아냐... 성민씨 잘 지내니?
경 수 글쎄... 지난번에 잠깐 만났는데... (은영 눈치보며)걔
가 어디 병원에 있다 그랬더라? 잘 모르겠는데...?
은 영 그래...그럼 잘 가라.
은영, 괜히 물어봤다 싶다. 못마땅하다는 듯 획 돌아서는 은영.
S#12 종합병원 건물 밖 (같은 날. 낮)
건물 안에서 나오는 성민, 두리번거리며 찾으면,
자판기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수가 손을 들어 보인다.
성 민 (예전처럼 허물없이 반가운 건 아니고) 웬일이냐?
경 수 어, 지나가다 생각나서 잠깐 얼굴이나 볼까하구...
성 민 (자판기로 돌아서며 커피 뽑으려고 동전 꺼내며) 취직
준빈 잘 되고?
경 수 뭐, 그렇지 뭐... 넌 멋있다? 병원도 좋고?
성 민 (자판기에 동전 넣으며) 좋긴 뭘... 생각보다 적응이
잘 안돼. 아무래두 난 종합병원은 아닌 거 같다.
이때 다른 의사들과 지나가던 수빈.
수 빈 (성민을 보고) 오빠! 여깄었네? (그러다 경수보고) 어
머, 안녕하세요?
경 수 (얼굴 몇 번 본 적 있는, 아직은 친하지는 않은) 안녕하
세요...
수 빈 (성민에게 계속) 오늘 내과 회식 있대. 알지?
성 민 알아.
수 빈 올 거지?
성 민 가야지...
수빈은 경수에게 미소짓고는 일행에게 달려가고,
경 수 (수빈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성민에게) 연애는 잘 되
구?
성 민 그럭저럭. 잠복기는 지났구, 곧 병원에 공개할까해. 따
로 데이트 할 시간도 없고, 일할 때도 그게 더 편할 거 같애서...
경 수 잘됐다. 그럼 의사부부네? 나중에 같이 개업해도 되고
괜찮겠다!
성 민 너무 앞서가지 마라.
경 수 그런가...?
히죽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
S#13 은영 자취집 거실 (밤)
은영 커피를 타고있고, 김치통을 열어보는 인경.
인 경 어머, 잘 익었네. 맛있겠다. 잘 먹을게요. 어머니.
은영모 우리 아줌마 솜씬데, 어디 니네 엄마만 하겠니?
인 경 그래두요... (신나서 뚜껑 덮어 냉장고에 넣고...)
은 영 (차를 내오며) 기숙사 들어가는데 무슨 부모가 따라
가? 어린애도 아니고. (은호에게) 넌 챙피하지도 않니?
은 호 짐이 많아서 그러지. 그러니까 나두 차 한 대 뽑아줘.
애들은 다 차 있단 말이야.
은영모 평균 C학점 이상 맞으면 사줄게.
은 영 잘 한다. (은영부에게) 드세요.
은영부 (왠지 은영 눈치 살피며) 전화 좀 자주 하고 그러지. 회
사 일이 바쁘니?
은 영 죄송해요.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부모 표정 보고) 왜
요?
은영모 저기, 은영아. 다름이 아니라... 너 사귀는 사람은 있
니?
은 영 (어리둥절) 아니.
은영모 (잘됐다 싶은) 그럼 선 한번 안 볼래?
은 영 내가 지금 몇 살인데, 벌써 선을 봐?
은영모 놓치기 아까운 자리니까 그렇지. 청주지검에 있는 검
사라는데...
은 영 됐어. 제발 그만해.
은영모 언제까지 성민이 생각만 하고 있을 거야?
은 영 (되려 성질) 내가 언제 성민씨 생각을 했다고 그래?...
인 경 (슬쩍 와서 앉으며) 저기.... 제가 대신 보면 안되요?
저두 애인 없는데...
은영모 (꺼리는 표정) 니가...?
은 호 (인경에게 지긋이) 누나... 누나가 왜 애인이 없어? (다
른 사람들 눈치도 보고)
인 경 (은호 외면하며 차 마시고)
은 영 (두 사람 힐끗 보고는, 은영모에게) 아무튼 그런 소리
할려거든 오지마. 내 짝은 내가 고를 거야!
은영부 (은영모에게) 그 봐. 내가 뭐랬어...
은영모 아휴, 기집애. 하여튼 고집은... 아까워 죽겠네...
괴로운 은영의 표정.
S#14 경수집 동네 어귀 (밤)
경수 마을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이때 고급 승용차가 와서 멎더니, 내리는 경선. 운전석엔 박두팔
이 보인다.
경수 의아해서 유심히 보면, 차는 떠나고, 경선과 눈이 마주친다.
경 수 (차를 보며) 누구니?
경 선 어... 우리 사장님...
경 수 이 시각에 왜 그 사람 차를 타고 다녀?
경 선 그냥 집이 같은 방향이라 태워주신 거야.
경 수 그래도 다음부터 버스 타고 다녀! 그런 거 타버릇 하
면 못써, 기집애가!
경 선 알았어...
하지만 경선, 뭔가 걱정이 되는 어둡고 무거운 표정. 심상치 않
다.
두 사람 집으로 향하는데, 이때 경수의 삐삐가 울리면 꺼내보는 경
수.
경 수 어? 생각보다 빨리 왔네? (경선에게) 저기, 나 약속 생
길 것같으니까 먼저 들어가라.
경 선 알았어... (가고)
경수 전화부스를 찾아 급히 달려간다.
S#15 술집 (밤)
현아를 발견하고 기분 좋게 오는 경수. 현아는 몹시 취해있다.
경 수 누나!
현 아 (술 취한) 어... 어서 와. 같이 마시자. (술 준다.)
경 수 (정보만 받아 가려했던 것) 저기... 그래, 조금만 마시
지 뭐. 일단 시험문제 좀 줘봐. 보게.
현 아 야, 넌 나보다 시험문제가 더 중요하니? (잔 내밀며 건
배 청하는)
경 수 어? 아니... (건배하며 술 마시는데)
현 아 (느닷없이) 나쁜 눔.
경 수 (놀라서 보면)
현 아 비겁자!, 마마보이!, 이기주의자! 남자들은 다 그러냐?
다 자기밖에 몰라.
경 수 (조심스레) 누나, 왜 그래...?
현 아 속상해. 나 결혼 안 할까봐, 경수야.
경 수 그 사람이 누나 속 썩여?
현 아 으이, 씨... (술 마신다.)
경 수 누나 조금만 마셔...
현 아 (느닷없이 일어나며) 우리 어디 가서 춤이나 추자.
경 수 춤?
S#16 나이트 (밤)
부르스를 추는 경수와 현아.
현 아 경수야, 나 결혼하지 말까...?
경 수 (황당한) 갑자기 왜 그래...?
현 아 이 인간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 난 호적까
지 파면서 자기한테 시집 가는데 자긴 양보하는 게 하나도 없어.
경 수 나 솔직히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사람 맘에 안들었어.
누나한테 너무 함부로 하더라.
현 아 그랬니? 내가 미쳤지... (경수 품에 얼굴을 묻고 운
다.)
경 수 (여자의 눈물에 약한) ...누나 울지마. 나라면 누나 같
은 여자 힘들게 하지 않을 텐데...
현 아 맞아... 그 남잔 아닌 거 같지...?
경 수 누나가 불행해지면 내 마음이 아플 거야. 그러니까 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하지 마.
현 아 그래... 고맙다. 역시 너 밖에 없어.
경수, 현아의 얼굴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러다 경수의 이마에 키스를 하는 현아. 그때,
갑자기 울리는 현아의 핸드폰 벨소리.
현아, 얼른 핸드폰부터 찾아서 전화를 받는다. 경수 어색한데,
현 아 여보세요? 어머, 자기야? 어? 지금 공항이라구? (비틀
거리며 테이블로 가면서) 어머, 왜 전화도 안하구 갑자기 왔어?
어, 그래, 알았어.
경수도 현아를 부축하며 테이블로 따라가고...
전화를 끊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기는 현아. 경수는 안중에도 없
다.
현 아 어떡하지? 저기, 그 사람 지금 서울 왔대. 가봐야겠다.
(걸어나가고)
경 수 (어리둥절, 따라 나가며) 누나, 지금 취했어! 저기, 나
시험문제 주고 가야지?
현 아 그거, 다음에 줄께. 나 먼저 간다!
경 수 나중에 언제...? 누나! 같이 가!
웨이터 저, 손님! 계산을 하셔야죠.
경 수 네...? 누나! 아이, 씨... 돈두 없는데...?
S#17 홍보실 (낮)
다이어리에 끼워져 있는 사진을 보고있는 은영. 절에서 찍은 성민
과의 사진이다.
(4부에서 절에서 셋이 찍은 사진 중 경수 부분을 오려낸 것이다.)
이때 갑자기 은영에게 슥 몸 숙이며 들어오는 부장.
부 장 최은영씨 지금 바뻐?
은 영 (깜짝 놀라 다이어리 덮으며) 아, 예, 소비자 구매욕구
에 대한 설문문항 정리하고 있어요.
부 장 (은영의 어깨에 팔 얹으며 얼굴까지 들이대는) 그럼 부
탁 하나만 하자.
은 영 (싫은 기색) 뭔데요...?
부 장 (어깨 만지작거리며) 곧 우리 어머님 칠순인데, 초대
장 문구 좀 근사하게 하나 뽑아보지?
은 영 (어깨 빼면서 일어나려 애쓰는) 어머, 그걸 왜 제가 써
요? 부장님이 직접 쓰셔야죠.
부 장 (아예 양손으로 어깨 집고 어루만지며) 내가 쓸려니까
통 떠오르지가 않아서 그래... 카핀 은영씨가 잘 쓰잖아.
은 영 (안되겠는지 둘러보다, 커터칼 집어 천천히 칼날 밀어
올리며) 그래두 사적인 건데, 저한테 그러시면 안되죠. 부장님두
잘 쓰시잖아요. (하면서 연필 깍는 척하며 부장 손등에 칼날 가까
이 가져가면)
부 장 (얼른 놀라 손 슥 빼고 몸 일으킨다.)
은 영 (칼날 집어넣으며, 미소 띤 채) 저두 지금 머릿속이 복
잡하거든요. (작성한 서류 들고 일어나 빠져나간다.)
그런 은영을 놀란 표정으로 노려보는 부장.
이때 바쁘게 들어서는 현아, 은영과 마주친다.
현 아 최은영씨, 잠깐 나좀 봐.
S#18 홍보실 밖 복도 (낮)
은 영 왜요? 배대리님?
현 아 저기 경수하고 옛날에 친했다며?
은 영 걔가 그래요? 친했다고?
현 아 응. 잘 안다 그러던데?
은 영 (못 마땅한) 그냥 좀 알아요. 근데 왜요? (옆 사무실로
들어가는 현아를 따라가는)
S#19 인사과 사무실 (낮)
현아, 정신없는 듯 급히 은영을 데리고 들어온다.
현 아 (저저분한 책상 뒤적여 찾으며) 마침 잘 됐다. 내가 결
혼준비다 뭐다 해서 바빠서... 찾았다!...경수 만나서 이것좀 전해
줄 수 있어?
은 영 (봉투 받아들게 되고) 예?
현 아 (서랍 뒤적이며 청첩장 찾는, 자기 생각 뿐) 가만 있어
봐, 시험이 언제지? 그거 빨리 전해줘야겠다.
은 영 저기, 경수하고는 어떻게 아세요? 혹시 경수가 군대가
기 전에 좋아했다던 그 과선배 아니세요?
현 아 (괜히 기분 좋아) 어? 어떻게 알았어? 걔가 날 좀 많이
사모했지. (청첩장 주며) 경수 만나면, 이것도 좀 전해줄래? 청첩
장인데 아무래두 직접 주긴 뭐해서...
은 영 (봉투 보며) 근데 이게 뭔데요?
S#20 카페 (낮)
은영이 경수에게 봉투를 내밀며,
은 영 너 이렇게 한다고 될 것 같니? 우리 회사 들어오기 힘
들어. 너 토익점수는 얼마나 돼?
경 수 (자료 꺼내 보며) 토익...?
은 영 너 해외어학연수는 갔다왔어?
경 수 아니. 그러는 넌? 갔다왔냐?
은 영 그럼. 졸업하고 바로 갔다왔지.
경 수 니네 집 형편에 무슨 해외연수냐? 아버지가 똥 푸신다
며?
은 영 아무튼. (청첩장 꺼내주며) 자, 이건 배현아 선배 청첩
장.
경 수 (받아서 말없이 열어보다 그냥 놓는)
은 영 가슴 좀 쓰리겠다?
경 수 (씁쓸한 기분 감추며) 내가 가슴 쓰린 게 그렇게 좋으
냐?
은 영 아니, 뭐...
경 수 (마치 여자 보내고 나면 허탈한 기분도 섞여) 근데 현
아누나 일본 가면 난 어떡하냐...? 면접시험 정보도 얻어야 되는
데...
은 영 (무시하며) 그건 일단 1차나 붙고 나서 얘기해!
경 수 (씁쓸하게 일어서며) 어쨌든 고맙다. 공부하러 가야 되
니까, 찻값은 내가 낼게.
은 영 (갑자기 다급하게) 저기, 경수야...!
경 수 왜?
은 영 너 성민씨 연락처 알지?
경 수 성민이...? (대뜸 성질) 넌 어떻게 나만 만나면 성민이
얘기만 묻냐?
은 영 알잖아. 좀 가르쳐 줘...
경 수 (다소 비아냥) 너 아직도 성민이 못 잊었냐?
은 영 (역시 경수의 태도에 화가 난)그건 니가 상관할 바 아
니구...
경 수 (노트 찢어 연락처 써주며) 알았어. 가르쳐는 주는
데... 성민이 만나지 않는게 좋을 텐데...
은 영 그건 무슨 뜻이야?
경 수 아니야...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받아서 보는 은영.
S#21 대형병원 앞 (밤)
망설이는 은영. 이윽고 결심했는지, 병원으로 향한다.
S#22 내과 병동 복도 (밤)
여기 저기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유심히 보며 기웃거리는 은
영.
성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망설이다, 간호데스크를 향해 가는 은영.
은 영 저, 여기 내과병동에 정성민 선생님이라고 계신가요?
간호사 (차트보며) 정성민 선생님이요, 잠시만요...
이때 간호사 뒷편에서 무심결에 돌아보는 수빈.
수 빈 (가까운 사이므로 당당하고 친절하게) 정성민 선생님
은 왜요?
이때 수빈과 은영,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본다.
당황하는 은영.
S#23 병원 뜰 (밤)
수빈과 은영이 마주 서있다.
수 빈 저기, 이런 말씀 드리는 거 이상할지 모르지만, 성민오
빠 겨우 마음 잡았어요. 다시 만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은 영 (기분도 나쁘고 의아한) 네....?
수 빈 그리고 우리... 곧 결혼할지도 몰라요.
충격을 받는 은영.
수 빈 괜히 은영씨가 찾아오고 그러시면...
은영 허둥지둥 그대로 수빈을 남겨두고 멍하니 돌아선다. 낭패감
마저 드는 것.
은영을 보다가 돌아서는 수빈도 마음이 좋지 않다.
은영, 멍하니 걸어나오는데,
이때 멀리 지나가던 성민이 수빈을 부른다.
성 민 수빈아! 거기서 뭐해?
수 빈 어, 오빠...! (은영을 힐끔 보며 성민에게로 달려가는)
은영이 그제야 돌아보면,
이미 은영을 못 보고 성민은 수빈과 함께 병원으로 향한다.
성민의 팔장을 끼고 즐겁게 가는 수빈.
성민의 얼굴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은영.
S#24 포장마차 (밤)
인경이 포장을 젖히고 들어와 보면, 청승맞게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는 은영.
카세트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속상한 듯 보면서 은영 옆에 와서 앉는 인경.
인 경 언제부터 마셨어?
은 영 (삶의 의욕을 잃은) 아저씨, 잔 하나만 더 주세요.
아저씨 잔을 내놓으면, 소주를 따라주는 은영.
은 영 가지 말 걸 그랬나봐... 막상 두 눈으로 보고 오니까 점
점 더 괴롭다.
인 경 (화가 나서) 아저씨. 그 음악 좀 꺼주세요.
은 영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허탈하게) 그 사람 의사가운
이 참 잘 어울리더라.
인 경 (한심하다는 듯 소주 마신다.)
은 영 솔직히 말하면... (비참한) 의사가운 입고 둘이 팔장 끼
고 가는데, 진짜 잘 어울리더라...
인 경 이런 음악이나 듣고 있으니까 그렇지! 가서 말도 못 붙
이고 온 주제에 괴롭긴 뭐가 괴롭냐?
은 영 (되려 성질) 내가 괴로운 게 뭔 줄 알어? 그 사람은 나
없이도 잘살더라. 나 없이도 행복한가봐. 곧 결혼할지도 모른대...
(운다.)
인 경 그럼 너랑 헤어지고 다른 사람 안 만날 줄 알았냐?
은 영 그래두, 설마 했는데... 하필이면 그 후배년이냐? 나두
이러는 내가 싫어... (운다.)
인 경 (일어나며) 일어나. 궁상떨지 말고. 너두 다른 남자 만
나면 되잖아!
S#25 락카페 (밤)
인경은 분위기 띄우려고 신나게 춤을 추고, 은영은 영 춤출 기분
이 아니다.
인경 자꾸 테이블에 앉으려는 은영을 잡고 춤을 춘다.
인 경 세상에 남자가 그 놈뿐이냐? 봐봐. 아무나 골라. 내가
찍어올게.
은 영 이런 데서 무슨 남자야? 괜찮은 놈은 이런 데 안 와. 도
서관에서 공부하지.
인 경 괜찮은 놈은 공부하다 춤도 안 춘다든? 빨리 골라!
그 와중에도 은영 남자들을 빼꼼히 둘러본다.
(시간경과)
미국 유학생풍의 남자1,2와 합석해서 둘을 마시고 있는 인경과 은
영.
인경과 남자들 음악에 맞춰 어깨 들썩이며 분위기 띄운다.
인 경 여기 자주 오세요?
남 자2 가끔이요.
인 경 전 친구가 오늘 우울하다 그래서요.
은 영 (인경을 쿡 찌르고)
남 자1 이 집 음악 좋죠?
인 경 예. (은영에게) 이 집 음악 좋지?
은 영 어... (빨리 가고 싶다.)
남 자1 (은영에게) 이 음악 싫으세요?
은 영 아뇨... 혹시 김광석 좋아하세요?
남 자1 김광석이요? (남2에게)김광석이 누구냐?
은 영 (무색해서 술 마시는데)
남 자2 가수야. 근데 김광석 죽었잖아. 작년에.
은 영 (발끈해서) 누가 그런 소릴 해요? 김광석은 죽지 않았
어요. 노래가 살아있잖아요!
남 자1 김광석 좋아하세요?
은 영 네...?
남 자1 그럼 나두 앞으로 김광석 좋아해야겠네? (은영에게 몸
을 밀착한다.)
싫은 기색의 은영, 나가버린다.
인 경 야, 은영아!
S#26 거리 (밤)
혼자 걷는 은영. 착잡하다.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흐
르고
S#27 도서관 (밤)
열심히 공부하는 경수.
여학생 (뒤에서 나타나) 여기 제 자린데요...
경 수 아, 예...
바로 옆자리로 책상을 옮겨 다시 공부하는 경수.
S#28 은영자취집 (밤)
와인을 혼자마시는 은영
성민,경수와 찍었던 사진 들여다 보고.
인경, 욕실에서 나오며 혀를 차고.
S#29 버스 안 (밤)
서서 영어책 들여다보는 경수
S#30 시험장 (낮)
1차 시험을 보는 경수. OMR 카드에 답을 표기하고 있다.
노래 끝난다.
S#31 경수집 마루 (밤)
가방을 매고 마루로 올라서는 경수.
경 수 엄마, 저 왔어요.
자기 방으로 향하려던 경수, 이상하게도 조용한 분위기에 안방으
로 간다.
경 수 (안방문 열며) 엄마!
S#32 경수집 안방 (밤)
문을 연 경수가 무심코 들어서려 하면,
경선이 무릎을 꿇고 울고있고, 경수부와 경수모가 심각하게 앉아
있다.
경수부 (경수에게) 넌 좀 나가있거라.
경수 심상치 않은 분위기 감지하고 어리둥절 문 닫고 나간다.
경수부 (경선을 다그치는) 그놈이 누구냐? 누구야? 이름을 대
봐!
경 선 (훌쩍거리기만 할 뿐) ....
경수모 얼른 바른 대로 말못하니?
경수부 그게 언제부터냐? 언제부터 그랬어?!
S#33 경수집 마루 (밤)
방 밖에서 듣고있는 경수.
경수모 (E) 여보 좀 살살 해요. 이웃집 다 듣겠네.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이냐... 진작에 회사에서 야근한다 그럴 때부터 알아봤어
야 됐는데...
경수부 (E) 그놈은 알고 있냐? 그놈 지금 어딨냐?
이때 경수방에서 할아버지가 나온다.
경 수 (소곤소곤) 무슨 일이에요?
경수부 (소곤소곤) 글쎄 경선이가... 얘를 가져다는구나.
경 수 (놀라며) 예?
이때 갑자기 방안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경 선 (E)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안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온다.
경수부 (뭘 찾는지 둘러보며, 경수에게) 너 나하고 어디 좀 가
자.
경 수 네? 저 내일 취직 시험 보는 날인데요...?
눈에 띄는 야구방망이부터 집어드는 경수부.
경 수 (놀라며) 그건 뭐하시려구요?
경수모 (말리며) 여보 그건 놓구가요. 이 밤중에 그놈을 만나
서 뭘 어쩌시려구요? (경수부 뿌리치고 나가자) 경수야, 너 얼른
따라가 봐라. 저러다 큰일날라...
경수도 어리둥절 후다닥 달려나간다.
S#34 경선 사무실 (밤)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경수부와 경수. 경수부는 야구방망이
를 들고 있다.
경수도 경계태세 갖추며, 뒷춤의 빨래 방망이를 치켜든다.
경수부 박두팔이 나와라! 박두팔이 누구냐!
중국 음식 그릇 한쪽에 쌓여있고, 짜장면 먹거나,
화투장을 돌리던 조폭들이 일제히 돌아보더니, 어이가 없는지 하
나 둘 일어선다.
인상 험악하고, 거구의 깍두기 체형들이다.
갑자기 분위기 살벌해지자, 경수와 경수부 약간 주춤하는데...
부 하1 니들은 또 뭐야? 완전히 겁대가리 상실했구만...?
경수부 (다소 위축되며) 박두팔이 누구냐...? 니가 박두팔이
냐?
부 하1 (친절한 투로 비웃음) 아닌데요, 아저씨.
부하들 낄낄대며 웃는데,
경 수 (나직이) 아버지... 그냥 가요...
이때 안쪽 사무실 문이 발칵 열리며, 중간책이 나온다.
부 하2 누가 형님 이름 함부로 부르냐?
얼굴에 흉터로 보아, 더욱 겁에 질리는 경수와 경수부.
경 수 아버지...
경수부 (물러설 순 없다.) 박두팔이 썩 못 나오냐?
이때 안 사무실에서 나오는 박두팔. 인상 더 더럽고 30대 중반의
거구다.
박두팔 뭐야? 왜들 소란스러워?
경수부 니가 박두팔이냐...?
박두팔 그런데...? (하면서 쳐다보면)
경수부 나 경선이 애비되는 사람이다.
박두팔 예? (순간 깎듯이 절하며) 죄송합니다, 아버님. 니들
은 나가 있어!
부하직원들 감 잡고 일제히 나가는데,
경수부 아버님? 이놈이 어디서... (부르르 떤다.)
박두팔 (잽싸게 무릎 꿇고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졌
습니다.
경수부 우리 경선일 그 지경을 만들어놓고 어쩔 셈어여? 어!
박두팔 염려 마십시오. 경선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경수부 (내리치려 달려들며) 뭐? 이런 괘씸한 놈! 처자식이 있
는 놈이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거여?
경 수 (순간 경수부를 틀어잡으며) 아버지!
경수부 (계속) 무슨 수로 책임을 져? 내 이놈을...
이때 들이닥치는 경선. 슬리퍼에 맨발, 정신없는 차림새다.
경 선 아버지, 아버지. 그러지마. 나 이 사람 사랑해... 아버
지...
경선은 울고, 순간 그런 경선을 노려보며 뺨을 후려치는 경수부.
이때 경수부 숨이 컥 막히는 듯 가슴을 붙잡고 쓰러진다.
축 쳐지는 아버지를 붙잡는 경수.
경 수 아버지...?
경 선 (놀라며) 아버지!
두팔, 경수부를 척 업고 나간다.
S#35 시험장 (아침)
논술시험지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들.
지각을 한 경수가 헐레벌떡 앞문으로 들어온다.
수험표를 내밀고는 감독관에게 시험지를 받아 서둘러 들어가 앉
는 경수.
괴로운 표정으로 시험지를 펼쳐든다.
S#36 병실 (낮)
경수부의 마비되어 굳어진 한쪽 팔을 주무르는 경수.
경수부 말을 하는데, 말이 힘들고 입이 틀어진다.
경수부 시험은... 잘... 봤니?
경 수 예... 걱정 마세요. 이번엔 꼭 될 거예요.
이때 의사가운을 입은 성민이 들어오자, 경수 일어난다.
성 민 (경수부에게) 좀 어떠세요?
경수부 괜찮...아...
경 수 (성민에게) 고맙다. 여러 가지로 애써줘서.
S#37 병실 복도 (낮)
가까이 서서 성민에게 설명 듣는 경수.
성 민 퇴원해서 당분간 통원치료를 받으시는 게 나을 거 같
다. 어차피 지금은 집이나 여기나 똑같으니까...
경 수 그래...
성 민 시간을 요하는 병이라, 경과를 봐가면서, 꾸준히 치료
해야 될 거야. 일주일에 두 번 물리치료 받고, 약 타가고.
경 수 그래, 고맙다.
성 민 (미소 짓고는 가려는데)
경 수 참, 은영씬 만났니?
성 민 은영이...?
경 수 어, 최근에 우연히 만났는데, 니 연락처를 물어보길
래...
성 민 (문득 생각에 잠기며) 그래... (잠시 후) 잘 지내지?
경 수 어... 그때 내가 괜히 니네들 사이에 끼어 들어서... 미
안하다.
성 민 (말 막으며) 됐다. 옛날 얘긴 하지 말자.
경 수 그래... 너두 수빈씨하고 잘 되야지...
돌아서는 성민. 경수를 남겨두고 걸어온다. 착잡한 기분이다.
S#38 결혼식장 (낮)
현아가 신부입장을 하고, 그 뒤로 경수가 보인다.
현아, 신랑의 손을 잡고 단상에 서면,
씁쓸하게 돌아서는 경수. 사람들을 뚫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서있
던 은영과 마주친다.
S#39 결혼식장 뷔페식당 (낮)
은영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으면,
접시를 든 경수가 와서 은영 옆에 끼여든다.
경 수 기껏 연락처 가르쳐줬더니, 왜 성민인 안 만났냐?
은 영 뭐, 옛날 애인 다시 만나서 뭐하겠니? 바보나 하는 짓
이지.
경 수 그래 만나지 마라. 나 같이 옛날 애인 결혼식장까지 오
는 놈두 없을 거다.
은 영 (문득 궁금한) 기분이 어떤데?
경 수 드럽지, 뭐...(쓸쓸히 웃는)
은 영 (자기 심정 빗대어) 맞아. 나 말구 다른 사람 만나는
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을 거 같애.
경 수 사실 연애하다 헤어지면 우연이라도 부딪치길 바라는
데, 그것도 상황 좋을 때 얘기지, 잘못 만나면 아주 비참하다.
은 영 그래... 난 옛날에 그 감정 그대룬데, 그 사람은 그 감
정이 아닐 때 진짜 비참할 거 같애...
경 수 아냐, 난 지금은 현아누나 안 좋아해. 뭐, 다른 남자한
테 간다니까, 기분이 좋진 않지만... 잘 살길 바래.
은 영 진짜 잘 살길 바래?
경 수 그럼. 너두 성민이 그만 잊어라. 내가 합격만 하면 니
네 회사 들어가서, 성민이 생각 싹 잊게 해줄게!
은 영 (!!! 뜨아한. 갑자기 내가 얘하고 왜 얘길 하고있나 싶
은) ...
경 수 (계속) 가만 있어봐,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
디 다른 데 가서 밥 먹을래?
은 영 (문득 현실감이 들며) 됐어. 내가 너랑 같이 밥 먹고싶
을 거 같니?
은영 접시 들고 가버리면, 경수 떨떠름하게 본다.
S#40 빌딩 인서트 (낮)
S#41 홍보실 (낮)
부장과 은영은 먼저 커터칼날 사건으로 약간 껄끄러운 기분인데,
은 영 (미소 지으면서도 뚱한 기분) 우수 브랜드 선정기념 광
고시안인데요...
부 장 5단 통으로 들어갈 건가?
은 영 예.
부 장 (슥 보고 주며) 광고 나가는 날 앞뒤로 기사도 내보낼
수 있게, 보도자료두 좀 갖다주지?
은 영 네, 팩스로 보낼게요. (돌아서려는데)
부 장 (괜히 큰소리) 사람이 직접 가야지, 팩스로 보내면 그
게 신문에 나나?
은 영 ....
부 장 (엉덩이 슥 더듬으며) 김과장한테 얘기해놓을 테니까,
봉투라도 하나씩 넣어가지고 가.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그러면서
주란 말이야. (엉덩이 툭 친다.)
은 영 (기가 막혀 울그락 불그락) ....
부 장 왜 대답이 없어?
은 영 알았어요!
은영, 자리로 와 기분 나쁘게 시안 내려놓고는 씩씩거리다,
안되겠는지, 전화번호부 책 꺼내 죽죽 넘기더니, 전화를 건다.
은 영 거기 변호사 사무실이죠? 직장내 성희롱 전문 변호사
두 있나요?
이때 남자직원1이 은영을 책상을 톡톡 치며,
남직원1 은영씨 누가 찾아왔는데?
은영 수화기 든 채 보면, 멀리 사무실 입구에서 경수가 손을 들어
보인다.
S#42 홍보실 밖 복도 (낮)
은 영 (기분도 좋지 않은 상태) 무슨 일이니? 여기까지?
경 수 (아버지도 쓰러진 상태고, 멋쩍기도 하고) 나 오늘 시
험 합격했거든.
은 영 (관심 없고) 그래? 제법이네? 우리 회사 합격하기 어려
운데, 공부는 좀 했나보다?
경 수 내가 기본 실력은 좀 있잖냐. 우리아버지 생각해서 공
분 열심히 했다.
은 영 아무튼 축하해. 근데 왜?
경 수 현아누나도 일본 가고 없고, 니가 면접경향 좀 알아봐
줘야지.
은 영 (톡 쏘며) 그게 무슨 소리니? 떨어지더래두 정정당당
하게 해!
경 수 은영아, 나 이번에 꼭 취직해야 돼. 아버지도 퇴직하시
고...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자,
은 영 너 왜 이래? 챙피하게? (등을 보이며 돌아서자)
경 수 (은영 앞으로 다가들며) 나도 너한테 이러고 싶진 않은
데... 지금 내 사정이 절박해서 그래.
은 영 너만 절박하니? 다른 사람들도 다 취직해야 되고 절박
해. 그냥 니 실력으루 면접 봐. 너 말 잘하잖아? (다른 쪽으로 등
돌리고 돌아서는데)
경 수 (뒤통수에 대고) 우리 아버지 쓰러지셨어. 내가 생계
를 책임져야 돼.
은 영 (문득 연민을 느끼지만, 사람들도 많고 곤란한) ....
경 수 이번에 취직 못하면, 나 희망이 없다. 은영아,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나 이번 기회 놓치면 정
말 안돼.
사람들 힐끔힐끔 쳐다보자 더욱 곤란해지는 은영.
은 영 (돌아보지 않고) 알았어. 알아는 볼게. 좀 조용히 해.
경 수 정말이지? 언제 전화 할 거야?
은 영 내일 전화해 줄게.
경 수 진짜지?
은 영 그래, 진짜야. 제발 좀 조용히 해라. (주위 사람들의 시선
이 괴로운 표정.)
S#43 경수집 안방 (낮. 몽타주)
경수모가 밥상을 들고 나가고,
약을 먹는 아버지에게 물그릇을 주면서도, 경제신문을 보는 경수.
입으로는 빅딜,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하이테크 관련주, 등 경제
용어를 외운다.
은 영 (E) 경제상식 같은 거 물어보니까, 경제신문은 꼼꼼하
게 봐놓구...
S#44 병원 복도 (낮. 몽타주)
경수 아버지를 모시고 물리치료실로 가면, 간호사가 아버지를 데
리고 들어간다.
은 영 (E) 우리 땐 영어 프리젠테이션 면접두 봤거든.
경수 복도 의자에 앉아, 영어문장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며 연습
한다.
은 영 (E) 그리구 남자두 면접 앞두고 피부관리 같은 거 받으
면 좋아.
경 수 (E) 양복두 없는데, 무슨 피부관리냐?
S#45 백화점 (낮. 몽타주)
몸이 불편한 경수부가 양복을 골라든다.
경수부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 거다.
경 수 됐어요, 아버지. 너무 비싸요.
경수부 괜찮아. 나중에 취직하면 입고 다닐텐데, 애비가 돼서
제대로 된 양복 한 벌 못 사주겠냐... (뿌듯한 듯 보며) 얼마나 좋으
니. 나는 회사 다닐 때 잠바만 입고 다녀서 그런지, 양복 입은 사람
들 보면 부러웠다. (씁쓸한 웃음.)
물끄러미 아버지를 보는 경수.
S#46 경수방 (아침. 몽타주)
양복을 입고 거울을 보는 경수. 천자문 책 보고있다.
경수모가 뒤에서 어깨를 털어준다. 합격할 걸로 믿는 분위기다.
은 영 (E) 특히 최이사님은 한자 좋아하신다. 한문 공부 많
이 해가. 잘 안 쓰는 이상한 어려운 한자 있지?
S#47 면접장 (낮. 몽타주)
면접관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최이사가 어려운 한자를 들이댄다.
최이사 자네, 이 글자 아나?
나란히 앉은 응시생들. 첫 번째 남자, 모르겠는데요...?
두 번째 여자 당황해서 고개를 젓고, 그 옆으로 가면 경수다.
경 수 (기다렸다는 듯이) 괵( )잡니다. 괵! 머리 벨 괵이요.
은 영 (E) 쓸 수 있으면 더 좋아.
최이사 (기대에 차서) 그럼 한번 써보겠나?
경 수 예, 그러죠.
흡족한 듯이 경수를 바라보는 최이사의 표정.
<<뮤지컬 에피소드-5>>
잔인한 세상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나?
지금은 일단 붙고 싶겠지
하지만 입사시험 합격한다고
좋아하긴 아직 이르다네
이제부터 시작이라네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났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해
긴장들 하라구
조금만 한 눈 팔아도 큰일 난다구.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부모님도 선생님도
이제는 혼자서 모두 감당 해야해
긴장들 하라구
조금만 한 눈 팔아도 실업자 된다구
잔인한 세상
이제부터야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월급이 나오진 않아.
잔인한 세상
이제부터야
더럽고 치사한 일들도 꾹꾹 참아야 해
(간주/대사)
Chorus; 잔인한 세상 잔인한 세상 잔인한 세상
나도 처음엔 합격통지서 받고 좋아했지
이 땅의 경제 발전에 숨은 일꾼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회사에 1년 2년 10년 다니다 보니
눈치보랴 아부하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잔인한 세상(정말 잔인해)
이제부터야 (이제 시작이야)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월급이 나오진 않아.
잔인한 세상
이제부터야
더럽고 치사한 일들도 꾹꾹 참아야 해
더럽고 치사한 일들도 꾹꾹 참아야 해
더럽고 치사한 일들도 꾹꾹 참아야 해
S#48 호프집 (밤. 몽타주 끝나면서)
경수에게 술을 받는 은영.
은 영 (귀찮은데 나온 것) 됐다니까. 무슨 술을 산다고 그
래...?
경 수 니가 가르쳐준 게 도움이 많이 됐어. 다 니 덕분이
다.
은 영 내가 뭘... 니가 공불 했으니까 잘 본거지.
경 수 아무튼 고맙다, 합격하면 두배, 아니 열배로 갚아줄게.
은 영 너 합격하면 내가 선배니까 꼭 최선배님이라고 불러
야 된다?
경 수 네, 최선배님.
은 영 (피식 웃고 마는데)
경 수 아, 나도 빨리 취직해서 나같이 똘똘한 후배 맞아봤으
면... 부럽다, 야.
은 영 (웃음) 부럽니? 내가 회사에서 뭐 하는 줄 알어? 기자
들한테 줄려구 돈봉투나 만들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줄까 헤
헤거리면서 연습까지 해.
경 수 그런 것도 다 회사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할 수 있니?
누군가는 해야지...
은 영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러고도 기사 제대로 안 실리면
다 내 탓이고, 할 짓이 못돼. 게다가 부장이란 놈은...
경 수 최은영! 배부른 소리하지마. 월급 받고 직장 생활하는
게 어디 쉬울 줄 알았어?
은 영 넌 참 속도 편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 수 그래, 난 취직만 되면, 그런 거 저런 거 안 가리고 다
할 거야. 내가 맨날 실실거리니까 난 뭐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같
지? 내 속도 지금 시커멓다. 집안문제도 복잡하구.
은 영 (찔끔하며) 아버지 쓰러지셨다며, 좀 어떠시니?
경 수 조금씩 나아지시는 거는 같애. (그러나 무거운 표정으
로 술 마신다.)
은 영 다행이다...
경 수 (술잔 놓으며, 분위기 바꾸는) 뭐해? 안 마셔? 나 오늘
돈 많아. 2차도 내가 쏠게.
싱겁게 웃으며 술을 마시는 은영.
S#49 노래방 (밤)
신나는 노래를 하고 있는 은영. 음치에 박자치다.
경 수 (배를 잡고 낄낄대는) 맞아, 너 옛날에두 음치였지?
와! 노래를 못해도 어쩜 이렇게 못하냐?
은영 신경질이 나서 반주 스톱시키고, 버튼을 눌러 다른 노래로 바
꾼다.
경 수 그렇다고 또 삐지냐? 노래만 바꾼다고 그 실력이 어디
가?
김광석 노래가 연주되기 시작되자,
경수 문득 감 잡고 얌전해지며, 책 끌어당겨 자기 노래를 찾는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은영.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한 소절이 흐른다.
그러나 곧 눈물이 고이고, 몇 소절 못 불러 얼굴을 가리고 울고 만
다.
경 수 (당황해서 다가가 앉으며) 왜 그래...?
은 영 (이내 눈물 닦으며) 아니야, 괜찮아.
경 수 너... 성민이 만나고 싶으면, 언제 나하고 같이 자연스
럽게 한번 찾아가볼래?
은 영 아냐, 만나서 뭘 하겠니. 마음만 아프지. (휴지 뽑아 닦
는다.)
경 수 그래... 걔 만나지 마라.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애...
은 영 만날 생각두 없었어. (훌쩍거리며 진정하다가, 갑자기
울컥 다시 울며) 넌 알고 있었지?
경 수 엉? 뭘...?
은 영 성민씨한테 다른 여자 생겼다는 거... 넌 알았지? (엉
엉 운다.)
경 수 너 성민이 만났냐...?
은 영 너 진짜 나쁜 놈이야. 그럼 나한테 말을 해줬어야
지...!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 줄 알기나 해...?
경 수 (어깨 다독이며) 그래, 미안하다. 진심이야. 나만 아니
었으면 지금쯤 너희들 잘 만나고 있을 텐데...
은 영 (문득 멈추며 본다.)
경 수 (계속) 그때 내가 괜한 짓을 해서... 군 생활이 외로워
서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던 것 같애. 정말 죽을죄를 졌다.
은 영 (잠시 후 진정하며) 아니야. 꼭 너 때문에 그렇게 된
건... 내가 거짓말만 안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니 탓은 아니야.
경 수 (쳐다보고, 잠시 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나 너무
미워하지 마라. 용서해줄 거지?
은영, 경수를 보고 겸연쩍은 듯 시선 돌리고,
그러다 두 사람 멋쩍게 각자 미소 짓는다.
S#50 버스 (밤)
늦은 밤인 듯 한산한 버스.
맨 뒷좌석에 경수와 은영이 말없이 나란히 앉아있다.
은 영 나 내릴게.
경 수 다음이야?
은 영 응.
경 수 늦었는데, 바래다줄까?
은 영 아냐, 내리면 금방이야.
은영 자리에서 내려서는데, 다리를 꼬며 비켜주는 경수의 바짓단
을 보게 된다.
양복단이 올라가며 내복이 보인다.
은 영 (피식 웃는) 너 내복 입니?
경 수 (얼른 다리 내리며) 어? 어... 보였냐? 군대 갔다오니
까 내복이 참 좋다. 애인보다 더 필요해.
은 영 (웃는다.)
경 수 (챙피한) 왜에...?
은 영 아니야... 면접발표가 언제라구?
경 수 일주일 후에.
은 영 (쓸쓸한 듯이) 너... 우리회사 같이 다니면 참 좋겠
다...
경 수 조금만 기다려. 내가 들어가서 직장생활 즐겁게 해줄
게.
은 영 (웃고는) 갈게.
경 수 잘 가.
S#51 버스 정류장 (밤)
버스에서 내린 은영이 경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면,
출발하는 버스 안의 경수도 손을 흔들어 보인다.
돌아서는 은영. 한숨을 쉬면서도 홀가분한 기분이 된다. (F.O)
S#52 경수집 마당 (낮)
할아버지가 쓰레기봉투를 꽉꽉 눌러 묶고 있다.
경수, 수도 동파를 막기 위해 묶어둔 헝겊을 떼고있다.
조 부 내 평생을 살아봤지만, 물도 사먹는 세상이 됐고, 쓰레
기도 돈을 주고 버려야 된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경수모 (일 나가는 준비하며)환경 땜에 그런다잖아요.
조 부 애비 약값도 만만치 않을텐데, 니가 고생이 많구나. 경
수가 취직돼서 나가거들랑 너두 좀 쉬어라. (경선, 마루에서 밥상
을 들고 나온다)
경수모 예. 그나저나 경선이 쟤 땜에 큰 걱정이네요. 배는 곧
불러올 텐데, 어쩔려구 저러구 막무가낸지... (밖으로 나간다.)
조 부 (한숨 쉬며 쓰레기 봉투 들고 나간다)
경 수 (문득 손길 멈추며 부엌에서 나오는 경선에게 다가가)
경선아, 얘기 좀 하자.
경 선 (피하고 싶은) 오빠랑 할 얘기 없어.
경 수 (경선 붙잡아 앉히고) 너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
야? 왜 이러고 있어?
경 선 ...그 사람 이혼수속 중이야.
경 수 그게 널 꼬실려고 한 소리지, 진짜 이혼을 하겠냐?
경 선 아니야, 진짜야.
경 수 어쨌든 그 놈이 이혼 하더래두 너 그런 놈한테는 시집
못 보내니까 그렇게 알아. 직업도 변변치 못하고, 믿을만한 정상적
인 사람이 아니잖아. 내일 엄마하고 병원에 가서 애부터 지워라.
경 선 싫어.
경 수 그럼 어떡하겠다는 거야?
경 선 낳을 거야.
경 수 뭐?
경 선 이 세상에서 날 이해해준 사람은 그 사람 뿐이야. 우
리 집에서 날 어디 사람 취급이나 했어? 내가 해달라는 거 다 해주
고, 힘들 때 내 맘 다 헤아려준 사람이야.
경 수 너 아버지 저렇게 쓰러지셨는데 아직도 고집 부릴래?
경 선 (아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지만) 후회를 하더래
두 내가 해. 오빤 상관하지마.
경 수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야, 너 정말...
경수부 (어느 틈에 마루에 나와 앉은) 경수야.
경 수 어, 아버지...
경수부 (시선 외면한 채) 물 한그릇 떠다우.
경 수 ...(부엌으로)
경 선 (경수부와 시선 마주치는)
S#53 백화점 (낮)
넥타이를 골라 점원에게 내미는 은영.
은 영 이 걸루 주세요.
S#54 은영 자취집 (밤)
'취직을 축하해. 앞으로 좋은 직장동료가 되길 바라며... 은영.'
이라는 글자를 카드에 써넣는 은영.
넥타이 사이에 카드를 넣고 포장을 하는데,
이때 씻은 인경이 욕실에서 나온다.
인 경 아까부터 뭐해? 그게 뭐야?
은 영 엉? 아무 것도 아니야...
인 경 니네 아빠 생신은 아니고, 누구 꺼야?
은 영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포장된 넥타이 핸드백 속에
넣는다.)
이때 초인종이 울리면,
인 경 (현관으로 나가며) 누구 오기로 했니?
은 영 아니.
현관의 인경 문구멍으로 밖을 보고는 문 열면,
은 호 (커다란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들어서며) 누나!
인 경 (은영쪽 눈치보며) 너 왜 왔어? 그건 뭐야?
은 호 (신 벗고 들어서며) 나 기숙사 나왔어.
인 경 (따라 들어오며 은호에게) 뭐? 왜...?
은 영 아니, 기숙살 왜 나와?
은 호 (가방 놓고 거실로) 묻지 마.
은 영 무슨 일이야? 멀쩡하게 기숙사비 다 내고, 왜 나와? 그
리구 일루 다 싸들고 오면 어떡해?
은 호 몰라. 엄마가 당분간 여기 있으랬어.
은 영 뭐? 엄마가? 무슨 소릴 하고 있어? 안돼! 나 너 못 데리
고 있어. (전화부터 거는) 내가 니 빨래를 어떻게 해주니? 방도 하
나밖에 없는데, 불편해서 인경이랑 같이 어떻게 지내? 엄만 왜 전
활 안 받아...?
인 경 (은영에게) 저기, 난 괜찮아. 그냥 여기 있으라 그래.
은영 어리둥절해서 돌아보면,
은 호 (인경에게 은밀한 느낌) 역시 누나 밖에 없다...!
스르르 수화기 내려놓는 은영. 고개 갸웃.
S#55 홍보실 (낮)
출근을 하는 은영이 들어선다.
은 영 안녕하세요.
남 자1 (지나가며) 좋은 아침.
은 영 참, 오늘이 신입사원 발표날이죠?
부 장 근데 은영씨가 왜 좋아해?
은 영 제 밑으로도 후배 들어오면 좋잖아요.
은영 핸드백을 놓고 자리에 앉는데,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은 영 여보세요?
경 수 (E) 은영이니? 나 지금 회사 앞이야. 발표 보러 가는
중인데 좀 떨린다.
은 영 그래? 내가 알아봐 줄까?
경 수 (E)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가서 직접 봐야지...
은 영 그래, 그럼. 나도 금방 내려갈게.
전화를 끊고, 핸드백에서 넥타이를 꺼내들고 일어서는 은영.
S#56 빌딩 로비 (낮)
로비 한쪽에 직원들이 신입사원 합격자 명단을 붙이고 있다.
발표를 보러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그 속에 경수가 있다.
명단을 다 붙인 직원들 물러서면,
경수, 설레는 기분으로 사람들을 뚫고 들어가 자기 이름과 수험번
호를 찾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은영.
사람들 속에 경수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은 영 어떻게 됐니? 붙었지?
은영을 돌아보는 경수. 떨어진 것이 분명한 낙담한 표정이다.
경 수 (허탈하게) 내 이름이 없네...? 자식들, 프린트를 잘못
했나? 어떻게 내 이름이 빠졌지?
은 영 아이, 왜 그래...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웃으며 명단을
보는데)
경 수 (허둥대며) 갈게. 그 동안 고마웠다.
은 영 (어리둥절) 정말 안됐니...?
이미 돌아선 경수.
은 영 경수야...!
허둥지둥 황급히 멀어져 가는 경수의 뒷모습.
은영 손에 들린 넥타이를 바라본다.
S#57 빌딩 앞 (아침)
'신입사원 합격자 발표'이라는 안내문이 보이고,
도망이라도 하듯 급히 빠져 나오는 경수. 막상 나왔지만 어디로 가
야할지 막막한데,
합격했는지,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때 달려나오는 은영.
은 영 (당황해서) 경수야...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
야...
경 수 (제정신이 아닌) 그래, 그렇겠지...
은 영 넌 최선을 다했잖아... 그리고... 우리 회사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 않아. 내가 말했지?
경 수 (얼른, 피하고 싶은) 그래... 나중에 연락할게. (그대
로 가는데)
은 영 (안타깝게) 경수야...! (뒤통수에 대고) 연락 꼭 해...!
경수 돌아보지도 못하는 채로 허둥지둥 사라진다.
S#58 경수집 마당 (밤)
할아버지가 대문을 열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경수.
조 부 (짐작은 하면서도, 걱정스레) 어떻게 됐니? 왜 이제 들
어와?
경수 말없이 시선 피하고 들어가려다 보면,
마루 위에서는 경수모와 경선이 보고있고...
화단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가 돌아본다.
경 수 (다가가, 취해서 흔들흔들) 죄송해요, 아버지.
경수부 (말없이 다시 화단을 향하고) ....
경 수 죄송해요...
경수부 (쳐다보지 않고, 내심 속상하지만) 어디 너 들어갈 회
사 하나 없겠니? 들어가 쉬어라.
경 수 예...
하지만 그대로 서서 아버지를 쳐다보는 경수.
착잡하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경수부의 웅크린 뒷모습.
경 수 (N) 그후 나는 몇 번의 시험에 더 떨어졌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저 자리에 앉아서 똑같이 담배를 피우셨다.
S#59_1 병원 복도 (밤)
입원복차림의 경수부, 병실문앞에서 경수모와 경수등을 배웅하고
있다.
경 수 (N) 나 때문에 담배를 많이 피우셔서인지 아버지는 병
원 출입이 잦아지셨다.
S#59 거리, 삐삐 가판대 (낮, 몽타주)
경수가 행인을 붙잡고 삐삐를 권하면, 핸드폰을 보여주는 행인.
행인을 놓아주고 초라한 가판에 진열된 삐삐를 씁쓸하게 바라보
는 경수.
그 옆엔 핸드폰 3년 의무가입, 가격 인하를 홍보하는 도우미들이
보인다.
경 수 (N) 얼마 후 취직을 해서 모두 기뻐했지만, 다니던 삐
삐회사는 핸드폰에 밀려서 곧 문을 닫고 말았다.
S#60_1 편의점 안
컵라면을 먹으며 즉석복권을 긁는 경수. 꽝이다.
S#60 경수방 (낮. 몽타주)
경 수 (N. 계속) 도무지 되는 일이 없었다.
양복을 양복커버에 집어넣고 자크를 채우는 경수의 손.
커버에 쌓인 양복을 벽에 거는 경수. 경수 힘없이 화면 밖으로 빠
져나가면,
누렇게 빛 바랜 벽지 위에 양복만 덩그러니 남는다. (화이트 아웃.)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