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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2;12-17. 지어야 할 매듭과 풀어야 할 매듭. 송년주일. 2023. 12. 31.
오늘은 2023년의 마지막 주일과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어떠한 다짐과 결단을 해야 새로운 2024년을 맞이하고 그리고 새롭게 주어진 삶의 지경에서 아름다운 열매들을 만들어 갈 수가 있는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왜 이 시간에 다짐과 결산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지나온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아름다운 매듭을 위하여 결산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다시 열리는 2024년을 위해서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결산하고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사람들도 지나온 세월을 뒤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서 결산을 하고, 그리고 그 결산 때문에 다시 여미는 매듭을 짓고, 어떤 부분에서는 후회도 하지만 다시는 이런 아픔과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매듭을 풀되, 주님 앞에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이 바로 이 송년 주일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2023년의 결산과 함께 새로운 다짐의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과 함께 소망을 위하여 지나온 2023년의 지나온 과정을 어떤 자세와 어떤 태도로 살아 왔는가? 매듭을 짓고 새로운 기회를 위하여 매듭을 풀어야 하는 사항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이 시간을 기준하여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은 매듭을 짓자는 말씀입니다. 왜요? 계22;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누구인가에게 주실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2023년의 결산은 너무나도 힘든 한해이었습니다. 2023년 시작과 함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한 것을 예상은 했지만 그 사항들이 생각을 뛰어 넘는 상황이 도래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결론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견디었습니다. 손에 잡힌 것과 손으로 쥔 것이 없어도, 소출과 소산의 열매가 이 시간까지 시원치 않아도, 눈물과 한숨을 쉬면서 여기까지 왔어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 앞에 비전교회와 여러분과 저의 신앙고백은 마라나타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 이 마라나타의 신앙 안에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매듭을 짓게 하시고, 주님이 오셔서 결산을 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쉬움이 떠나고 후회가 사라지고 새로운 2024년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결과가 없어도 다시 일어나고 다시 소망으로 시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라나타의 신앙과 주님 안에서 또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여러분, 풀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관계와 생각과 다짐을 했던 것들이 그렇습니다. 닫힌 마음과 관계를 풀어야 합니다. 풀지 못하고 이 마음과 생각으로 2024년을 맞이하면 새로움과 기대와 기다림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매듭을 풀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2023년을 우연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관계로 살았고 삶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우리는 예비하심과 작정과 섭리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것을 무엇이라 합니까?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연의 한자에서 緣이라는 글이 바로 묶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매듭은 그 묶음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입니다. 하지만 예비하심과 작정과 섭리라는 표현 안에 있는 인연과 매듭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눈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항상 수고의 열매와 결실이 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있었고 그래서 낙심하며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고 연민하며, 언제나 반갑고 그립기만 할 줄 알았던 사람이 언제 부터인가 미워지고, 두려움과 증오가 되어버리는 관계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 내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떠나버리고 차가움이 들어 선 것 때문에 더 아프고 더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들어앉은 차가움은 다시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에게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 지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것은 언제나 아쉽고 서럽고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또 다시 생각하면 인생에서 그렇게나마 매듭을 정리할 고비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은혜입니다. 언제까지 안고 가야할지 두려움과 언제까지 목 놓아 기다리며 가슴 태워야 할지 모르는 그 매듭을 저무는 해를 기회삼아 풀고 지을 수가 있으니 이 것이 또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 것이라는 주님의 축복이 더욱 다가옵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와 관계되어진 어떤 분에게 내 실수와 잘못으로 가슴에 상처를 주고 받은 일은 없는지? 해가 저물기 전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그 가슴에 엉켜있는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아직 말을 꺼내지 못했어도 턱밑까지 차올라 숨을 죽여야만 하는 그 무엇은 없는지? 이 것 또한 풀어야 합니다. 이 2023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십자가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로 풀어야 합니다. 가슴 설레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또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가슴에 쌓인 두려움과 미움과 분노와 증오는 없는가? 그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매듭은 짓고 푸는 것은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데 자꾸만 끊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고, 때로는 아니 될 때도 있지만 이 것 또한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로 시작하는 2024년에 한(恨)을 이어가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설렘으로 가슴이 뛰는 주님의 사랑이 마음과 심령에 가득하기를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맺힌 것이 있습니까? 마음에 맺힌 것은 새로운 시작에서 발목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끊어 자유롭게 풀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내 문제가 되면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용서와 화해로 풀어야 하는데 끊어내겠다는 이 마음들을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2023년을 이 모양과 저 모습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모양과 저 모습 속에서도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2023년 한 해를 어떻게 보냈다고 고백을 할까요? 먼저는 2023년의 삶의 결과입니다.
1. 세상은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는 일을 무엇으로 나타냅니까? 올해의 한자, 올해의 사자성어, 올해의 인물로 표현을 합니다. 여러분, 한해를 정리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언론과 여러 기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그 해의 가장 상징적인 단어와 인물을 말씀합니다. 사건을 이야기하고 즐거움의 내용을 말하고 아픔의 고통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올해도 세계 각 매체와 기관에서 저마다 2023년을 기억할 단 하나의 인물, 단 하나의 단어, 단 하나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1-1. 일본이 보는 세상입니다. 일본의 올해의 한자는 무엇입니까?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올해 1년을 대표하는 한자에 대한 의견을 공모한 결과 올해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한자로, 2023년 한 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싸울 전(戰)이 선정됐다고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가 12일 발표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세(稅)가 올해의 한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배경과 이유는 增稅와 減稅등, 세금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었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일본 정부는 돈으로 그 백성들의 어려움에 함께 했었습니다. 그런데 인보이스가 도입이 되고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던 경영자와 백성들에게 정부가 무상으로 주었던 현금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40퍼센트의 세금 때문에 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일본도 인보이스를 도입했기 때문에 그 어떤 틈이 없어지고 모든 백성들은 이제부터 세금으로 인한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 것이 일본의 2023년의 한자입니다.
1-2. 그러면 한국은 어떻습니까?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見利忘義가 선정했습니다. 설문조사한 결과 見利忘義가 올해의 사자성어이었습니다. 그 뜻은 利로움을 보니까? 義로움을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더 나은 것은 나중이고 지금의 이익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자기와 함께하는 편의 사람들의 利益을 더 생각하고 자기와 함께하는 편에 利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立案하고 施行을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利益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한국사회를 비판했습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나의 이익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되어 진 각양각색의 결과에 대하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그 무엇이 되지 않습니다.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은 비관적인 내용입니다. 이 사회가 빛을 잃고 모두 심각한 위기에 놓인 사회를 걱정하는 시선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자성어나 한자와 인물이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다가오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이제는 지나갑니다. 보라 새 것이 된 2024년이 옵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버리고 돌아오는 것이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평가들이 나올까요? 어두워지는 세상 가운데, 교회와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 그러나 최근 교회와 성도가 빛과 소금대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일들이 일어 난 증거입니다. 여러분, 비전교회는 어떻습니까? 무엇으로 대표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으로 올 2023년 한해를 평가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소망과 비전을 다짐하며 매듭을 지으시고 매듭을 푸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우리 비전교회는 어떻습니까? 23년 신년 예배에서 서원했던 소망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6가지의 결단과 믿음의 말씀입니다. 무엇이었습니까?
1) 민14: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나의 삶으로 맹세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의 삶을 두고 우리에게 맹세까지 하셨던 내용인데, 내, 자신이 말하고 말한 내용을 들으신 대로 이루어 주시는 약속이었습니다.
2) 욥22: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 질 것이요. 너의 길에 빛이 비치리라. 내가 결정을 하면 결정을 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3) 시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내가 하나님을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사랑하면 건지시고 이름을 알면 높이신다는 내용입니다.
4) 엡3:20.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구하고 생각한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주시는 하나님!!! 내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생각한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5) 창28:15.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니라. 나에게 약속하시고 주시기로 허락한 모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이런 5가지의 역사가 나의 삶에 실제로 적용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복이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6) 마13:16.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되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말하고 결정하며 행하신대로 이루어진 기적과 경이로움과 축복의 모든 것을 올해에 보셨습니까? 들으셨습니까요? 아직 입니까? 아니면 허탈하십니까? 열매가 없고 셜실이 없고 소출이 없습니까? 그래서 삶과 인생이 후회스럽습니까?
여러분, 청춘이 무엇입니까? 청춘은 인생의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장미 빛 뺨과 붉은 입술과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다짐한 강인한 의지와 풍부한 상상력과 불타는 열정이 청춘입니다. 청춘은 믿음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오는 신선함이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와 안일함을 뿌리치는 도전과 모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칠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은 아니라, 이상과 소망을 잃어버리면 늙는 것입니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할 수는 있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고후4;16절은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합니다. 고뇌나 낙심과 실망이 마음 또한 시들게 합니다. 여러분, 칠십이나 열여섯 살이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이 있고,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과 기쁨과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은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눈 속에 파묻히고, 얼음에 갇히게 되면, 비록 스무 살이라 할지라도 이미 노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세월의 흐름 속에, 지금 마지막 송년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그래도 소망의 물결을 붙잡고 주님이 나와 함께 있는 한 여든 살이라도 늘 푸른 청춘이 됩니다. 수14;10-12.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옵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세월의 흐름, 45년 이전이나 45년이 지난 지금 85세에도 갈렙은 소망의 물결을 붙잡고 하나님의 동행을 의지하고 늘 푸른 청춘으로 헤브론 산지를 획득했던 85세의 청춘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무엇으로 2023년을 정리해야 할까요? 마라나타의 삶으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계22:13절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결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처음과 나중, 2023년 년 초와 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고 신앙하는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며 인생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 냈는가? 먹고 사는 문제와 건강의 문제와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까지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살아 왔는가? 일부분은 맡기고 나머지는 스스로 주장하지 않았는가? 여러분,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삶이 변하고, 정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 수가 있고 그리고 다시 시작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이고, 광명한 새벽 별인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2023년을 여전히 어둠 속에 살지는 않았습니까?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나요? 그럼에도 우리의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여러분,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정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으로 매듭을 짓고 믿음으로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2023년을 마감하고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시는 그래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대하시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1. 그러면 무엇을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지어야 하는가요? 결과입니다. 열매와 소출에 대한 결과입니다. 지나온 삶이고 지나온 생각과 지나온 관계의 결과입니다. 계22:14-15절에서 그,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다 성 밖에 있으니라. 결산을 하면서 복이 있는 사람과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하게 빠는 사람입니다. 두루마기는 겉옷입니다. 자기 겉옷을 깨끗하게 빤다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는 의미와 신앙인으로서 거룩하고 선한 일이 있다는 확신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이미 목욕을 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거룩하게 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정리를 하고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2023년을 마라나타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두루마기를 빨아서 깨끗한 행실이라는 옷을 준비하여 입는 사람인데 지금 정리를 하고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2024년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15절에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있어야 하는 여섯 종류의 사람을 언급합니다. 먼저는 개입니다. 개는 종교적인 위선입니다. 종교적 위선이란 신앙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탐욕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 오셨던 초림의 예수님과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이 개에 대하여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위선입니다. 다음으로 점술가들은 점을 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왜 점을 치는가?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며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점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고, 싫어하시는 부분입니다. 인간의 결정은 하나님이 주신 신앙과 이성으로 판단을 하며, 무엇인가 물을 일이 있으면 주님께 묻고, 주님 앞에 내어 놓고 기도하면 됩니다. 다음은 살인인데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어진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일종의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움이 무서운 것은 미움은 언제든지 살인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거나,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중심에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종류의 우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우상은 마음속의 우상입니다. 마음속에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자기 자신이나 다른 무엇이 주인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을 지금 정리를 하고,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천국에 갈 수 없는 무리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거짓말을 살인이나 우상 숭배와 같이 취급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짓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행동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요8;44에서 사탄을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듣지 않은 것이나 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마치 사실인 양 말을 옮기는 것도 똑같은 거짓말입니다. 거짓을 옮기면 본인이 거짓을 지어낸 사람이 아니어도 거짓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하며 결코 거짓말을 가볍게 생각하면 아니 됩니다. 여러분,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누가 2023년을 여는 사람이 되는가? 누가 마라나타의 신앙인이 될 수가 있는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루마기를 빨아 깨끗한 옷과 예수님의 보혈과 거룩한 선한 행실로써 자신을 깨끗하게 매듭을 짓고 정리한 그래서 대강절 끝 날에 모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으로 인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함을 받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2;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누구인가에게 주실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짓고 풀어야 나에게 주실 상이 있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계22:18-19절 내가 이 책,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중요한 두 동사는 더하고 빼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을 가감하면 아니 됩니다. 성경 말씀이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덧붙여도 안 되고, 무엇인가 빼도 아니 됩니다. 성경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따라 믿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는 성경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23년에 시작과 함께 주셨던 축약된 소망의 말씀 6가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왜 이단이 발생할까요? 바로 이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맘대로 가감하기 때문입니다. 이단과 사이비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더 보태거나 뺍니다. 유대교는 신약을 빼고, 이슬람교는 코란을 더했습니다. 통일교는 원리강론을 더하고 몰몬교는 몰몬 경을 보탰습니다. 여러분, 성경 66권은 유일한 말씀, canon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이후에 다른 성경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찬양 받으시고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러분, 요한 계시록의 전체 주제가 무엇입니까?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을 대비한다고 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식량이나 식수를 비축해 두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환난 중에 천국의 소망을 갖고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영향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인내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악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와 열매와 소출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없는 것 때문에 실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이와 같은 것들의 모든 것을 잘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시는 그래서 잘 정리를 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그러면 이 땅에 오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오늘 본문은 요한 계시록의 결론 부분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계 22장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말씀은 내가 속히 오겠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도 내가 속히 오리니, 20절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날은 도둑같이 옵니다. 아무도 예기치 않은 시간에 다시 오십니다. 살 전 4;16, 주님은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시고, 바로 그 때에 죽은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있는 성도는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주님의 날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단어의 아람어가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언제든지 오시옵소서, 언제든지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럴 용기가 있습니까? 2023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도 그렇습니까? 2023년 말, 주님은 어떤 다짐이 있기를 원하실까요? 주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푯대를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20절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언제 오시든지 환영할 수 있습니까? 아직 입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서 주님의 재림을 맞는 것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문제는 나중으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오늘 더 늦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입고 갈 옷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서먹하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의로는 안 되지만 회개와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과의 관계가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첫 절과 마지막 절을 기억하시나요?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어떠한 상황과 끝에서도 이 두 구절을 꼭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와 은혜입니다. 나의 삶의 처음은 언제나 창조이고 나중은 언제나 은혜이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믿고 순종하며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놓치지 않고 꼭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설 수 없고, 은혜가 아니면 주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나무를 보십시오. 대나무가 약해보여도, 대나무가 부러질 것같이 보여도 마디마다 매듭을 잘 만들었기에 폭풍한설에도, 비바람이 쳐도, 견고하고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2023년의 매듭을 잘 만들어야 2024년이 소망이 됩니다. 2023의 우리들에게 올해의 사자성어는 마라나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역사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 올 수 있었던 것은 도우시고 이끄신 주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내 자신과 교회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고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 수 있는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대망의 2024년을 향하여 힘차게 뛰어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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