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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ea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김동석
동아시아의 연고주의와 세계화
1. 머리말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현상은 국가/비국가, 공식/비공식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거미줄처럼 구축된 연결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연고로 얽혀진 사회적 관계는 개인에게 행위의 자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상승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부단히 이 연결망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회적 투자에 열중하고 있다. 사회적 상승에 보다 유리한 연결망의 회원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치열한 학벌 경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엄청난 교육열 그리고 천문학적인 교육비의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각종 연고를 매개로 한 친목모임과 경조사를 챙기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자발적인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이익단체의 활성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창들에게 10만원의 술을 살 사람은 많아도, 시민단체에 5만의 회비를 낼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이 혈연, 지연, 학연을 매개로 한 연결망은 중심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가 혹은 한국 사회의 각 지역 사회가 일종의 ‘좁은 사회’로 되는 것은 각종 인맥의 자원을 통해 사람들이 중앙으로의 진출을 꾀하는 중심지향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임현진, 1999). 한국 사람들은 흔히 한 다리 또는 두 다리 걸치면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얘기하는 이유도 중심지향적 사회에서 중심이 갖는 중요성과 유력한 인맥 및 사회집단들이 중앙으로 모이는 성향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 총학생회장은 정치지망생이고, 대부분의 시민운동가도 정치지망생이며, 지역활동가와 지역봉사자 그리고 재야운동가도 결국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정당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는 것이 한국의 정치문화이다 (김성국, 1999). 교수도, 언론인도, 법조인도, 의사도, 연예인도, 재벌도 모두가 중앙의 정치권력에 접근하기를 지향한다. 국가권력 외부의 진정한 시민세력이란 한국 사회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반국가주의를 상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조혜인, ????). 한국인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정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한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대상자 가운데 26%가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정치개혁을 들고 있고, IMF사태에 대한 책임에 관해서도 많은 국민들은 ‘정치가가 정치를 잘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도 정치권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한 귀결이다. 시장에서 필요한 구조조정이나 기업의 노사갈등도 국가가 정치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이 때 정치는 특정한 정권과 제도로서의 정부 및 국가와 개념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동일체로 간주된다 (유기체적 국가주의).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제도적 개선보다는 사람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인사가 만사). 특히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은 개인의 능력과 인격이 부족하여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뭔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지도자)이 정치를 하면 어떻게든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정책이나 정견보다는 사람 중심의 이합집산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정치’와 ‘국가’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선거 때면 어김없이 지역의 대표가 당선되고, 3김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맥과 지역분할 구도는 한국 정치현실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정권이 바뀌면 특정 지역의 인맥들로 정ㆍ관계가 물갈이 되고, 모든 집단의 핵심적 인적구성에 변화가 초래된다. 이른바 지역과 학교를 매개로 한 연결망(PK, TK, MK, K1, K2 등)이 중앙의 핵심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새 정권이 인사를 단행할 때마다 그리고 정치개혁을 입에 올릴 때마다 구호는 한결같이 ‘지역주의 청산’이었지만 결과는 전혀 현실로 반영되지 않아 왔다. 시민단체들도 ‘시민사회를 분할하는 특수주의적 연고집단의 존재’를 시민사회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로 누누히 거론하면서도, 정착 내부는 재야운동 단체의 인맥이나 지역인맥을 중심으로 단체의 역량을 키워나갔고 결국에는 지역주의적 분할의 색채마저 보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유력인사들이 각종 공식 그리고 비공식모임 (명문고 동창회)을 통해 스스로의 영향력을 보전하고 또 이해관계를 실현하고 있다. 이 모임들의 매개로 중요한 것은 단연 학연이다. 특히 명문고 출신 고위직 인사들은 동창회내 ‘이너서클’을 만들고 지역유력자 및 지역기관장들과 연합모임을 갖는다. 지역 유지들의 모임 (진주-팔각회, 군산-미군비행장골프클럽 등등)과 라이온스 클럽, 청년회의소, 로터리클럽 등 널리 알려진 사회단체들도 대부분 지연, 학연, 혼맥으로 얽혀진 지배 엘리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모두 비공식적인 모임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과 결속을 도모한다. 한 언론사가 전국의 40여개 시민사회 단체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단 한 곳도 예외없이 ‘자신들의 지역에 토호가 존재한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지방언론을 장악하고 관과의 유착하에 (건설업 등) 특혜를 통해 성장이 쉬운 부문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지역의 기관장을 자신의 하인처럼 부리며 지역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인맥으로 연결되어 강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관변 및 경제 단체, 언론사, 교육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중앙권력이 지역에 이전한 권한이 지역민에게 넘어오기 전에 지방토호들이 가로챘다”며 지역 기득권세력에 대한 개혁을 주장한다. 이렇게 ‘토호’라 불리는 지역 기득권 세력들이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식도 연결망 구축을 통한 비공식적 결속과 관과의 유착이다. 한편 중앙의 정ㆍ관ㆍ재계 또한 학연, 지연, 혼맥 등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정경유착과 특혜 그리고 비리의 온상이 되어 왔다. 상층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 호프집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사회의 밑바닥까지 부정부패는 이미 ‘총체적’으로 침투해 있어 그야말로 ‘부패공화국’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으로부터 청소원에 이르기까지 일상화되어 있는 부패가 한국의 현실이다. 부패의 먹이사슬은 얽히고 설켜 주고 받는 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며 (김용학, 신문칼럼) 모두가 이면계약의 공범이다. 계약내용이나 소득을 곧이곧대로 신고하는 사람은 바보이고, 우리 모두는 ‘탈세’를 ‘절세’로 인식하는 ‘상식’을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연고주의와 이것을 통한 비공식적 거래관계는 전근대적인 관행으로 사회 일부에 잔존하고 있는 과도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연고주의는 한국사회에 매우 뿌리깊이 구조화된 특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몇 십 년간 입이 닳도록 서구 선진사회를 모델로 ‘지역주의 청산’ ‘폐쇄적 연고주의 청산’ ‘부정부패의 청산’ ‘시민적 책임의식, 준법, 자발성’을 외쳐 왔고 누구나 규범적으로는 이것을 수용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아 왔고 일종의 ‘공범의식’ 속에서 기존의 관행들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왔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연결망적인 사회구조와 비공식적인 거래가 지속되도록 하는 강력한 사회구조적 요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꾸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무엇이 한국의 이런 현실을 강제하고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도록 하고 있는가? 이런 ‘병폐’ ‘과도기적 폐해’로 인식되는 사회관행 속에서도 지난 몇 십 년 동안 엄청난 경제적 성장과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러면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많은 국가들이 발전국가의 전략을 구사하였지만 동아시아의 소수 국가만이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그리고 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급속한 경제성장과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오히려 더욱 다양화된 양상으로 전개되고 또한 강화되고 있는 연결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밝히고 우리의 삶을 설명하는 사회과학적 토대를 마련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초를 열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학계는 이런 문제를 정치적 이슈와 연결시키는 저널리즘적인 담론으로 다루거나, 급속한 성장과정이 낳은 과도기적 ‘부작용’나 일시적인 ‘병폐’, 그리고 전근대적 공동체주의가 왜곡 및 변형된 ‘전근대적 잔재’ 쯤으로 생각하여 본격적인 학문의 영역에서 다루지 않아 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몇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연결망 구조에 관한 연구나 신제도주의적 조직이론들은 유용한 문제설정과 분석의 도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그 연결망의 도구성이나 사회적 효과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 온 연고주의가 근대로 접어들면서 경제(자본주의) 혹은 국가(민주주의)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아가서 그러한 결합이 근대화과정에서 어떻게 기능적으로 역할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개념을 발달시켜 온 한계 (예를 들면 ‘국가와 시민사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개인과 집단’ ‘전근대와 근대’ 등의 이분법)로 인해 이러한 접근은 한국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간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고집단이라는 사회관계의 특수성을 재조명하고 나아가서 연고집단을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연고주의에 대한 기존 연구 1) ‘지역주의’ 담론으로 접근하기 지역주의나 지역감정으로 접근하는 연구들의 기본 전제는 지연을 앞세우는 지역주의란 ‘보편성을 외면한 일종의 분파적 사고’ 혹은 일종의 ‘패거리 주의’로서 낙후된 정치현실이 만들어낸 정권유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김문조, 김성국, 손호철 등). 그 재생산의 메카니즘은 1960년대 이래 줄곧 군부정권이 지녀 왔던 정당성의 위기 극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원했던 정치적 전략으로 이해된다. 특히 영호남 대결구도에 주목하면서는 지역의식이 불균등 발전전략의 지역격차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든가 (영남지역의 특권에 대한 호남의 피해의식), 계급적 지배라는 현실을 은폐하고 호남의 민주화 운동이 갖는 체제 도전의 위협을 지역주의로 왜곡시키는 이데올로기 (최장집, 1991, 정근식, 1991)라는 해석을 한다.1) 그러나 이러한 분석들은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특징짓는 지역분할 구도나 지역적 선거양상을 모두 정치적으로 교묘히 계산된 인위적인 전략으로 파악할 뿐 이러한 정치적 전략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제도적, 구조적 조건과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구조적 조건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무관심은 말 할 것도 없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친족관계나 출신지 등의 연고를 중시하며 본관의식이나 동향의식이 특히 강하다 (홍승직, 1969)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의식을 강화시키는 다양한 의례와 상징들이 발달해 왔다 (족보, 종가, 종친회, 향우회 등등). 이러한 사회적 배경 없이 영호남 대립구도라든가 지역의식을 통한 정권의 창출 전략은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연고를 이용하는 것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이 존재하므로 정치적 지역주의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영호남의 대립구도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다른 형상의 지역 연결망 대립 구도는 상존하여 왔기 때문이다.2) 그리고,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 보면 ‘지역’이라는 매개로 뭉쳐진 연결망들이 중앙의 권력과 자원분배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구조적 조건하에서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각 연결망 속에 포함된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신의 연결망이 보다 많은 몫의 자원을 차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을 뿐이다. 또한 지역주의는 정계, 재계, 학계, 관계, 법조계, 종교계 할 것 없이 모든 사회분야에 걸쳐 있는 연결망간의 대립구조(편짜기)와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연결망에의 사회적 투자 (줄서기, 연결망 만들기, 각종 비공식 모임의 발달과 그 결속을 다지기 위한 각종 의례의 발달, 경조사, 동창회 등)와 유기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그 실상과 본질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단순히 정권유지라는 정치적 전략의 차원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지역주의’를 정치적 비판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일종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현상을 특수한 형태로 드러내게 하는 하나의 계기에 불과한 것을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치환시키는 것은 분석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역주의는 정권유지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김대중에 대한 호남인의 지나치게 높은 지지는 말 할 것도 없고, ‘영남 패권주의’를 비판의 타겟으로 삼은 또 다른 지역주의가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정권의 교체가 정치발전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면, 오히려 지역주의는 정치발전을 가져온 장본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진보의 이름이든 민주화의 이름이든 지역 대표성을 버리면서 지지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고는 어떤 정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말해지는 호남 지역인의 진보적 의식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진보성이라기보다는 현실정치나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갑윤, 1998; 유석춘ㆍ심재범, ????). 2)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연결망: 산업화 과정에서의 효율적인 도구로 접근하기 신제도주의의 합리적 선택이론 등을 한국사회의 연결망 분석에 도입한 연구들에 따르면 (김용학, 김선업),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국가의 법적, 제도적 신뢰 대신에 사적인 연결망에 대한 신뢰가 사회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였다고 본다. 행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 이 입장은 연고적인 행위를 일종의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한다. 환경의 불확정성에 직면하여 불확정성을 줄이고 거래비용을 감소시키려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서 연고나 연줄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서로 신용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불확정성을 줄이는 신뢰를 제공하고 각종 정치, 경제적 자원의 동원과 교환에 이용됨으로써 급격한 산업화에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신뢰를 형성하는 데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는 사회적 격동기에는 공식적 계약에 의한 신뢰구축 비용이 개인적 신뢰를 바탕으로 신뢰구축 비용보다 높으므로 사람들은 비용이 적은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인적 연결망을 통해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입장들도 지역주의, 학벌주의, 인척주의 등을 전근대적인 ‘無理주의’ (合理가 아닌)로 낙인하고 근대의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제도적 준칙들과 배치되기 때문에 이것들의 운용을 통해 얻어지는 높은 도구성을 시급히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간주한다는 데에서 앞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 연고주의의 산업사회적 발현은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과도기적이고 전근대적인 현상이며, 이것이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규범적인 차원에서 혹은 사회전체의 효율 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지양되어야 할 전통의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본다. (현존하는 연줄망의 특수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속성을 보편주의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김용학). 결국,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제도의 미비와 신뢰 및 자원의 동원수단 부족이라는 공백을 과도기적으로 메워 준 것이 연고주의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한국사회가 전자본주의 시기에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용가능한 또 다른 형태의 조직적, 제도적 자원과 논리를 발달시켜 왔다는 설명도 된다. 특히 한국이 짧은 시간에 자본주의의 성장과 근대화에 놀랄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연고주의의 제도적 특성과 그것의 효과 및 기능과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들도 현실에서의 ‘기능적 대체물’로서 재생산되어 왔던 연고주의의 도구적 효율성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뿐, 그 역사적 기원이나 형성과정 그리고 산업사회에의 적용이 그토록 용이할 수 있었던 구조적 조건 등에 대해서는 분석하고 있지 않다. 특히 정보사회로의 진입에 따라 거미줄과 같은 모습을 한 이른바 사이버공동체 WorldWideWeb 의 등장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연결망과 앞으로 어떻게 결합할지를 생각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사회환경의 변화에 연고집단이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예측해 보는 작업은 분명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연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사회적인 접근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3) 공동체적 가족주의의 산업사회적 변형(왜곡)으로 접근하기 정권의 정당성 부재를 경제발전이라는 경제적 방법으로 메우려 했던 한국의 발전주의 국가는 경제적 성과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했고, 그 결과 개인들 사이의 관계 유형이 왜곡되었다는 분석이다. 노동력을 집약시켜야 했던 농경방식이 낳은 과거의 가족주의는 정의적이고 공동체적이었는데, 이것이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정당한 규칙(rules of the game)으로 대치되지 못하고 대신 무자비한 경쟁에서 승리하게 위한 수단적이고 배타적인 가족이기주의로 변형되었다는 분석이다. 발전주의 국가의 경제 개입방식은 사회적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개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분배의 수혜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개인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자의적 선택의 방식이 성립되면서 이러한 왜곡을 낳았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혜택을 받기 위한 중심으로의 상향이동이 시도되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정당한 규칙이 없는 게임 상황에서 고등교육을 통한 사회적 지위의 확보와 기댈 수 있는 피붙이를 이용하는 방법이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김동노).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급속한 산업화가 전통적인 공동체적 연대의 기반을 해체시켰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적 통합원리는 등장하지 못하여 ‘무법의 정글’만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개인들은 일차적이고, 귀족주의적이고, 내집단적인 연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김선업).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산업화과정의 높은 지역간 이동은 일시적이고 익명적인 관계 속으로 사람들을 내몰았고, 이로부터 소외를 경험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사회화의 매개물 즉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심으로 집단에대한 귀속성을 찾게 되었다는 분석이 제시되기도 했다 (송복). 이들 입장들은 특정한 사회구조적 상황(급격한 산업화 및 도시화)에서 나타난 사회적 관계가 전근대적이고 왜곡된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앞의 시각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그것이 개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규칙’의 부재에서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통합원리’의 결여에서 비롯된 과도기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게임의 규칙을 정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국가 개입의 방식이 개인들의 사회적 관계를 심하게 왜곡시켜 놓았으며, 연고주의의 계속적 발현은 급속한 산업화과정이 낳은 부장용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모두 ‘전근대 = 농업사회 = 정의적이고 공동체적인 사회관계’ ‘근대 = 산업사회 = 합리적 규칙에 기반을 둔 경쟁’ 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보면 농경사회에서의 공동체적 관계도 인간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달시켜 왔던 다양한 조직화의 한 방식이었고 개인은 항상 자신의 이해를 최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 및 갈등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역사에서는 집권화된 중앙이 분배하는 자원을 자신의 지역으로 보다 많이 끌어오기 위해, 호족간, 사족간, 문벌간의 치열한 경쟁이 있어 왔으며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의 분배 몫을 최대화하기 위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한편 (향안 입적을 둘러싼 족간 갈등, 향전 등),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족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의례들을 발달시켜 왔던 것이다 (김태은, 1999 석사논문). 결국 인간은 역사적으로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왔고, 그것이 성공적이었을 때 경쟁에서 승리하여 그러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 단 한 순간도 예외적이지 않았던 이러한 측면, 즉 인간관계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경쟁하면서 목표를 추구해 간다는 점에서 전근대와 근대의 역사를 연속적으로 파악한다면 인간관계를 맺어 가는 다양한 방식들과 제도적 자원들을 과도기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닌 특정한 하나의 유형으로서 설정해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3. 연고주의에 대한 대안적 접근
앞서도 살펴보았다시피 연고주의의 강력한 존재는 산업화과정이 진전됨에 따라서 계층간 사회이동율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서 전통적인 공동체는 약화될 것이라는 근대화이론의 기본적인 가정을 뒤엎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특성을 해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연고집단의 특성을 어떻게 파악해야 되며, 앞으로의 사회발전에 있어서 이러한 연고집단이 담당하는 역할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수용해야 할 것인지 혹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수용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사회가 발전되어감에 따라서 연고주의의 영향력은 쇠퇴해갈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잔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화되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 연고집단은 1차집단으로 구성된 전근대적인 공동체인가 대부분의 연구에서 연고집단을 기본적으로 1차집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이재열, ????). 그러나 통상적으로 인식되어오던 것과는 달리 연고집단은 전근대사회에 유래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1차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업내부에 존재하는 연결망, 정치엘리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학연의 연결망은 근대화된 공식 조직내에서도 전통적인 연고집단이 어떤 식으로 변용되어서 잔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근대적인 관료조직과 경쟁의 원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시장 속으로 연고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침투해 가는가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시장과 같은 경제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국가의 관료제 속에 그리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결사체 속에서도 전통적인 연고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석춘ㆍ장미혜, 1998). 그런 점에서 국가와 시장, 혹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서구적인 기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사회의 시장관계에서 비경제적 요소 특히 가족주의와 같은 인간 관계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자라온 개인주의 문화가 경제적 교환을 매개하는 자유시장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유교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혈연․지연․학연과 같은 인간 관계의 연결망이 경제적 교환을 매개하는 시장의 기능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다 (유석춘, 1997).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국가가 시장과 반드시 분리되어 대립하는 관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다양한 시장, 즉 개별적인 상품시장은 물론 자본시장이나 노동시장 등과의 관계 속에서 입체적이고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3)
2) 연고집단의 존재가 사회전체의 수준에서 효율성을 저해하는가 연고집단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기존의 연구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어온 사실은 연고집단의 존재가 연고집단의 외부에 있는 행위자들이 자원에 대해 공정하게 경쟁하고 접근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한 편의 행위자들이 배타적 파당을 형성하면 … 기존의 연줄망 구성이 갖는 효과를 강화하게 됨으로써 …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았을 때, 모두에게 불리한 즉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는다. … 집단 내적 호혜와 집단의 범주를 넘어서서는 사회적으로 비효율적 자원배분과 제도적 불신을 초래한다’ (이재혁, 1999: 236). ‘파당적 연줄망이 갖는 집단내적 호혜와 사적 신뢰가 배타적으로 축적됨에 따라 집단의 범주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타자‘에의 신뢰, 혹은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게임의 룰‘에 대한 공적 신뢰를 훼손함으로써 경쟁의 공정성을 해치고 생산적인 거래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재열, 199?: 49).
반면에 연고주의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연고로 얽힌 인간관계는 개인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한다고 본다. 또한 제도적인 수준에서는 신뢰가 감시비용을 낮추어 경제적 효율을 제공하여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데 있어서 아는 사람의 추천이나 연고에 의해 채용한 경우 추천해 준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서 그리고 연고로 얽힌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입지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당사자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유석춘, 문화일보, 1999. 3. 30). ‘현실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혈연, 학연, 지연의 연결망은 분명히 거래비용을 낮추는 기제이다. 수평적 연결망, 수직적 연결망 모두 기존의 연고주의와 중첩되면, 강한 신뢰를 낳게 된다’ (김용학, 1996: 111). 그러나 연고집단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사회전체의 수준에서 총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고집단의 순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계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행위 규칙에 대한 익숙한 숙지를 통해 집단내부의 결속과 효율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이다. 또한 연고집단의 역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집단내부의 신뢰가 확대되어 보편적인 신뢰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측면은 모두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즉 연고집단 집단내부에서는 상호호혜와 신뢰의 원리가 작용하는 반면, 연고집단 외부에 대해서는 배제와 불신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연고집단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검토해야 할 한가지 중요한 대목을 놓칠 수는 없다. 즉 연고집단의 집단 내적 신뢰와 사회의 보편적인 신뢰를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혹은 ‘개인과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양자를 서로 대립시키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기반을 둔 분석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연고집단은 배타적으로 외집단과 내집단으로 나뉘어질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경계가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연고집단간의 경쟁은 반드시 부정적이고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결사체와 이익집단의 갈등과 대립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이란 주장도 따져보면 대단한 설득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최근의 의약분쟁이나 노사갈등의 경험에서 보듯이 서구적 이익집단 혹은 결사체의 갈등이 반드시 부드러운 타협으로 귀결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적 결사체의 거래비용이 반드시 전통적 연고집단의 거래비용보다 효율적일 것이라는 보장도 우리는 선험적으로 가정할 수 없다. 흔히 연고집단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폐쇄적 내집단‘ (이재열, 199?: 47)이라는 특징을 지적하여 왔다. 그러나 한 개인은 동시에 특정학교의 동창회와 특정지역의 향우회와 같은 여러 개의 연고집단에 소속될 수 있다. 또한 지역을 기준으로 향우회가 존재할 때 한 개인은 面단위의 향우회에 소속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보다 확대된 郡이나 道단위의 향우회에 소속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나가면 바로 한민족 공동체다. 그리고 가족이란 개념 역시 부모와 자식으로만 구성된 서구적인 핵가족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시에 8촌을 포함하는 친척까지 확대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특정한 性을 공유하며 동일한 조상을 가진 사람은 모두 ‘우리집안 사람’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또한 親家, 外家, 妻家를 모두 합친 가족 개념도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연고집단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는 폐쇄적으로 닫혀 있는 것이라기보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연하게 확대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구의 집단 개념은 그야말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예를 들어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계급의 구성원이면 그 사람은 절대 동시에 다른 계급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또한 특정한 이념을 가진 정당에 개인이 가입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이념을 가진 정당에는 얼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게’ 정당을 옮긴다. 그리고 그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정치를 하며 창당한 정당이 두 자리 숫자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우리 정치문화의 현실이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다. 서구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대개는 평생토록 그 조직에 헌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체 저 단체를 기웃거리고 동시에 여러 단체의 활동에 간여한다. 나아가서 명망가일수록 많은 단체에 복수로 멤버쉽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곳 하나 헌신하는 곳이 없는 기현상을 연출하고 있다. 연고집단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여러 집단에 소속되어 활동하여도 전혀 갈등하지 않는 문화를 배경으로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연고집단은 서로 배타적인 성원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나아가서 외부의 성원과 내부의 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 또한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하는 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3) 연고집단과 시민사회는 서로 대립적인 영역인가
연고집단과 시민사회의 대척적 관계를 파악하는 입장에서는 ‘연줄사회적 균형은 시민사회의 왜소화를 초래할 것이며, 반대로 연줄사회적 균형의 붕괴는 시민사회의 강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이재혁). 이처럼 시민사회와 연고집단 사이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에서는 (이재열, 1999)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의 영역은 공적인 영역인데 반해 연고집단의 영역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화된 집단들만으로 시민사회가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협의의 시민사회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된 시민단체 내지는 시민적 결사체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정치적인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자질은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가’라고 되물어본다면, 우리는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길러줄 수 있는 가족의 사회화과정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Cohen & Arato (1989)는 시민사회의 영역 속에 ① 생활형태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제공하는 가족, 비공식집단, 자발적 결사체, ② 문화와 의사소통의 제도, ③ 사적 자아발전과 도덕적 선택의 영역, ④ 사생활과 공공성을 경계 지우는데 필요한 일반적인 법률과 기본권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영역을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서로 대립되는 상반된 영역으로 인식하지 않아 온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동양에서는 가정 내에서의 행위규범과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통치규범이 서로 동일한 윤리에 의해서 지배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4) 민주적인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키우는 곳이 1차적인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가정이라고 할 때, 가정 내에서도 公人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고 스스로에 대한 기율을 강조하던 유교의 전통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인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 원리와 상치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이고 고립된 개인의 정치참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을 공유하는 타자지향적인 시민의 정치참여가 중요하다는 사실 (Wolfe, 1986)을 감안하여 본다면, 개인보다는 집단을 먼저 고려하는 연고집단의 고유한 특성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잠재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교에서 강조하는 타인에 대한 관용과 배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 경청할 수 있는 자세야말로 민주적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다. 4) 연고집단은 근대화과정 속에서 소멸해 갈 전통적인 잔재에 불과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연고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연고집단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한편에서는 한국사회에서도 ‘‘구조적 투명성과 경쟁의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기존의 연줄사회적 균형에 대해 서서히 변화의 압력을 점증시키게 됨에 따라서 … 사회-정치 영역에 있어서도 시장 경쟁적 원리가 기존의 연줄망 원리를 대체해 갈 것이라고 본다 (이재열, 49).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공동체주의적인 유산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민본주의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고유한 아시아적 가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승환, 1999; 함재봉, ????). 이러한 대립은 문화적 상대주의와 문화적 보편주의를 둘러싼 사회과학적 인식의 틀이 우리사회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 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의 시점에서 전개할 수 있는 주장의 수준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즉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연고주의의 영향력은 법률적이거나 제도적인 개혁으로 쉽사리 제거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연고주의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쉽게 사라질 일시적인 현상으로 절대 과소평가 할 수 없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과제는 왜 현실적으로 연고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 가는 일이다. 효율성과 합리성의 관점에서 연고주의의 존재를 설명하는 입장에서는 ‘체계의 불확실성이 높을 때, 연결망 결사체는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 구성원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연결망을 불확실성을 줄이는 기제로 사용한다’고 본다 (김용학, 1996: 106). 그러나 연고집단 내부의 사람들에게 거래비용을 감소시켜주거나 신뢰를 제공해주거나 거래의 불확실성을 감소시켜주는 것과 같은 경제적인 효용성이 연고주의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이해득실을 따지는 행위자의 합리적 판단만이 연고주의를 존속시키는 유일한 기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연고주의가 작동되고 있는 영역은 경제적 합리성과 이윤의 논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시장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제3의 영역이다 (유석춘․장미혜, 1998).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연고주의가 지속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효용성 때문이 아니라, 서구와는 상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제도적 장치(에를 들면 가족제도)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생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개인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는 자본주의적인 발전이 진전되거나 시장의 메카니즘이 확대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보다 근본적인 문화적 지향이다. 4. 동아시아 연고주의의 문화적 배경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 속에서도 연고주의가 온존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제도화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는 개인으로 하여금 행위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규범과 표준 그리고 기준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동양과 서양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적인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회제도의 조직원리와 개인들의 행위형태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다음에서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분리’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연고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는 동아시아 고유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연고주의에서의 개인과 사회 개인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근대이후에 서구에서 개인은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선택의 주체,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서도 누구로부터도 혹은 어떠한 외적인 압력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서구처럼 외적인 영역과 혹은 타인과 구분되는 명백한 주체로서의 개인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남 사이의 경계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경계도 불분명한 것으로 존재한다. 타인과 구분되는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라는 자유만을 극대화시켜온 서구에서 개인과 사회의 대립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들 사이의 이해의 대립을 어떻게 규제하고 사회적인 통합을 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즉 질서의 문제는 서구의 사회사상에서 늘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되어 왔다. 서구 문화는 개인과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제를 설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사회화’(Parsons) 혹은 ‘규범적인 통합’(Durkheim) 혹은 ‘국가에 의한 행정적이고 법률적인 제재’(홉스), 개인의 주관적인 이해와 사적인 욕구를 추구하려는 ‘이기심(self-interest)’은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로 간주한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개인 바깥에서 개인에게 도덕적인 규제력을 행사하는 존재로서의 사회 그리고 이에 대해 수동적인 반응을 보이는 개인이라는 대립구도가 지배하여 왔다 (Schwartz, 1996: 75). 그러나 개인과 타인 혹은 개인과 사회 사이의 구분이 불명확하고 서로 융합된 형태로 남아 있는 동양인들에게 있어서 사회는 개인에게 외재하면서 개인에게 도덕적인 규제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동양에서는 사회에 의해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강제 (moral constraint)는 외적인 제재나 강제적인 의무의 부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기초하여 보다 확실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유교에서는 개인을 인식할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규범과 그로부터 비롯되어 그 사람에게 부과되는 역할을 중시한다. 그리고 같은 역할이라고 해도 역할의 내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그것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5)라는 공자의 말은 자기 완성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만 특정한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인 자기규제와 보다 나은 자아의 완성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고 한 동양의 역할에 대한 개념 (Schwartz,1996: 76)은 제재가 두려워 그리고 강제에 의해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서구적인 역할의 관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Mead의 주관적인 자아(I)와 객관적인 자아(me)나 Freud의 ego 와 superego 사이의 구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서구에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태도와 사회전체의 규범은 분리 및 대립된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 양자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전체의 규범을 위반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인 제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외부에서 강제로 부과되는 사회적인 통제보다는 자발적으로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시키는 수양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6) 개인의 동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내면화된 사회적 규범 그리고 독립적인 주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이 근대화과정 속에서도 연고주의를 소멸시키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단서가 된다.7) 단선론적인 근대화이론의 가정과는 달리 세계의 다른 어느 곳 보다 교육수준이 높은 유교문화권의 사람들의 자아정체성이 미숙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앞서서 항상 가족과 집단의 의견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가 발전해서 1인당 국민소득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교육수준이 향상되고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타나는 가치관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유교적인 문화와 질서의 영향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8) 개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동양과 서양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동양인들은 자신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외적인 존재로서 가족이나 사회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친척관계도 나를 중심으로 끝없이 퍼져 나가는 연결망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관계로 생각한다. 이처럼 개인과 가족, 사회와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한 집안‘ 사람의 범위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개인과 집단사이의 경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개인의 성공을 그 가족의 혹은 그 지역의 혹은 그 집단의 성공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석춘․김태은, 1999: 10). 2) 연고주의와 공․사 영역 한 개인과 다른 개인, 개인과 가족, 그리고 개인과 사회 사이의 경계가 불명확한 것처럼 동양에서는 서구와 같이 분명하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 서구의 정치이론에서는 개인적인 정체성의 근원인 동시에 개인의 권력이 도출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사적인 영역은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규칙과 절차에 의해서 지배되는 국가의 영역 혹은 거래당사자들 사이의 공정한 계약관계에 의존하는 시장의 영역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Hahm, 1996: 5). 반면에 동양에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가족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상이한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왔다. 잘 알려져 있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대립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사적인 영역인 가족내에서의 윤리가 공적인 영역인 국가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을 연쇄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유교문화권의 지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서구인들에게 가정은 공적영역의 비인격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영역인 동시에 사적으로 친밀한 사람들간에 감정적인 유대와 결속을 제공해 주는 감성의 영역이다 (Duncan, 1998: 13). 반면에 동양인들에게 가정은 공인으로서의 자질을 획득할 수 있는 수양과 훈련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점에서 동양인들에게 가족이나 친족의 유대관계 나아가서 연고집단 내부의 결속관계는 사적인 성격이기 보다는 오히려 공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다 (Duncan, 1998: 19). 이처럼 유교에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대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융합된 것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에 서구인들이 가족을 감정이나 정서의 문제를 해소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것과는 달리 동양의 가족은 공적인 영역과 동일하게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와 권한의 한계를 익히는 엄격한 도덕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유석춘․김태은: 1999). 君師父一體란 말은 공적인 영역에서 임금과 신하 사이의 관계 혹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덕목과 사적인 영역에서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서 요구되는 덕목이 동일함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서구에서의 public과 private의 구분과 동양에서의 公과 私의 구분은 엄밀히 말해서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렇게 대립적이지 않은 公과 私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왜 동아시아에서 연고집단내의 친분관계가 정부의 관료조직이나 기업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5. 동아시아 연고주의의 제도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연고주의의 존재는 서구와는 상이한 개인 및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와 공과 사의 영역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적인 가치관으로 동아시아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연고주의가 제도화되어 나타나는 구체적인 존재형태는 무엇인가? 연고주의에 기반한 조직의 형태와 제도적 장치는 다양한 영역에 넓게 퍼져 있다. 가족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에서의 동창회, 정치에서의 파벌, 경제영역에서의 재벌조직이나 하청관계, 사회적 영역에서 아직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계 및 각종 향우회나 화수회 등과 같은 전통적 친목모임이 예가 된다. 이 글에서는 가장 근대적인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기업부분에 존재하는 동아시아 연고주의의 제도화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동아시아의 경제적 발전을 연구한 많은 경제사회학적 연구가 모두 주목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동아시아에 연고주의에 기반한 기업조직이 존재하고 있고 나아가서 그러한 기업조직의 형태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재벌(財閥), 일본의 게이레츠(系列, Keiretsu), 대만의 콴시(關係)를 중심으로한 家族企業(jiazuguye),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등장한 향진기업(鄕鎭企業),9) 나아가서 해외 화인기업의 네트워크 등이 구체적인 예가 된다.
위의 표에 정리된 동아시아 국가의 기업조직의 형태들은 모두 ‘독립적인 기업들이 연고주의적 조직의 방식에 따라 일정하게 연결된 네트웍을 형성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Hamilton, Zeil & Kim, ????). 물론 국가마다 조금씩 서로 다른 편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만기업이 가족중심의 중소기업 위주로 조직되었다면, 일본의 기업은 수평적 및 수직적 관계를 동시에 가진 게이레츠(系列)와 하청관계로 조직되어 있고, 한국은 위계적인 가부장적 방식을 따라 기업이 조직되어 있다 (유석춘, 1997b).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서 출현하고 있는 향진기업은 지역연고에 기반을 둔 기업조직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유석춘ㆍ김태은, 1999). 그러나 모두 유교적인 연고집단의 연결을 매개로 한 기업조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의 조직과 제도가 이 지역의 경제에 세계 최고의 역동성을 제공해 온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6. 맺는말: 연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 자본주의는 우리가 흔히 형식 민주주의와 실질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이라고 말하는 정치적인 평등과 경제적인 불평등 사이의 불일치를 안고 있다. 시장의 자율적인 메카니즘에만 의존해서는 부의 불평등 문제가 해소될 수 없으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 그리고 노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최소한의 안전망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한 이후 서구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여 왔다. 새로운 대안은 기본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일자리를, 일하지 않으려 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일할 수 없는 자에게는 식량을’ (기든스, 1997: 153) 이라는 구호처럼 사람들의 노동의욕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동시에 일하는 사람의 동기를 유발해야 하는 매우 복합적인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출발하였다. 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서유럽에서 발달한 복지국가의 개념은 과중한 조세부담과 국가의 예산적자 및 노동의욕의 감퇴라는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었다. 급기야 1980년대 이후에는 복지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줄이면서 시장의 기능을 복원시키고자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급격한 회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금의 감면, 국가의 규제완화, 복지지출의 삭감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창의력을 신장시키고 경제의 생산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 시장의 긍정적인 기능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서 빈부격차의 심화나 실업율의 급증과 같은 부작용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은 소위 말하는 경쟁력을 가진 기득권 집단의 물질적인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적 노선이 초래한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서구에서는 다시 이러한 부작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과 같은 복지정책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제 3의 길’이라고 불리는 신중도노선 또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구호를 포기하지 않은 사회민주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추구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기본적으로 계급간의 갈등 및 그로부터 도출되는 계급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계급정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사회민주주의적인 노선은 경제적인 영역에서 노동조합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좌익 정당이 결성되어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을 대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는 소수의 국가에서만 가능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신자유주의적 노선과 대결하여 성공적일 수 있다는 보장도 현재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초래하는 노동과 저축 그리고 투자 의욕의 감퇴와 이에 대응하는 기업의 고용감축은 사회민주주의의 악순환이 손쉽게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동아시아의 유교적 질서를 배경으로 한 개입주의 국가의 경제적 성공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이 가능함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은 무자비한 경쟁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세금을 통한 국가 차원의 복지보다는 연고집단을 통한 간접적인 복지의 제공은 국가의 부담을 무제한으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유교적 가치의 진수가 스며있는 연고집단의 장점을 활용해서 국가와 시장의 불편한 대립관계를 해소할 수 있다면 이는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독특한 기업조직의 형태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기업제도 뿐만 아니라 정치제도, 교육제도, 복지제도 등 현대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응용이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혹은 사회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에서 발전한 이데올로기의 결함을 메꾸어 줄만한 많은 잠재력이 우리의 유교 전통 속에 풍부하게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원자화된 개인들의 출현이 이들을 다시 결속시켜 줄 수 있는 대안으로서 연고주의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서도 살펴보았다시피 연고주의 속에는 집단내의 성원에 대한 공동체적인 책임감, 개인의 이기주의에 대한 도덕적 제어장치와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조율하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다.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전되는 추세 속에서 인류가 추구해야할 진보의 방향은 더욱 인간적인 사회, 더욱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계의 건설이라고 할 때, 우리에게는 빈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안전을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확립, 새로운 경제질서의 수립, 적극적인 생태계의 보호와 같이 해결해야할 다양한 문제들이 남아있다. 바람직한 세계화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유교적인 전통이 우리에게 주는 몇가지 시사점에 대해서 짚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앞서도 지적했다시피,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결코 유교적 전통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전근대사회에서 배태된 사상으로서 유교가 지닌 시대적인 한계점이 분명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만, 단지 지나간 시대의 윤리로서 혹은 서구적인 잣대에 비추어서 유교의 가치를 폄하하지 말고 우리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재인식하자는 것이다. 역사적인 맥락에 비추어서 상대화되지 않는 고정불변의 전통, 도전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동시에 서구의 경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특권화 시키거나 서구적인 가치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문화적 보편주의의 함정에 스스로를 가두고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유교적 가치에 대한 재인식은 기본적으로 서구의 합리성에서 상정하는 자신의 이익추구를 극대화하는 고립된 인간에 대한 인식을 회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또한 제한된 자원을 두고 다른 사람과 배타적으로 경쟁하는 존재만은 아니며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스스로의 욕구와 쾌락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런 존재만은 아니며, 절제와 양보의 미덕의 가치를 알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한국사회의 모습은 소득분배가 보다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사회,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 사회성원들간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사회, 상호간의 신뢰와 서로의 다양한 의견에 대한 관용할 수 있는 사회, 대립과 갈등보다는 타협과 화합이 우선시되는 사회라고 한다면, 이러한 앞으로의 사회에 대한 비젼을 가꾸어 나가는데 있어서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엄청나게 많다.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와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 그리고 그로부터 나타난 연고집단의 기능은 서로 양립불가능하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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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세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