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혈기 왕성하던 시절, 내 손에는 늘 커다란 돋보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돋보기로 세상의 모순을 확대하고 타인의 허물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정의를 외쳤습니다. 마치 세상이 잘못된 것은 모두 남의 탓인 양, 나는 언제나 심판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은 거대한 고장 난 시계였고, 나는 그것을 고칠 유일한 엔지니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가장 엄격하고 지혜로운 스승이었습니다. 강물은 바위를 향해 고함을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쉼 없이 흘러 마침내 바위의 모서리를 둥글게 길들일 뿐입니다. 사람도, 사회도 그랬습니다. 호통과 비난보다 조용한 시간과 묵묵한 실천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면 나라를, 나라가 어렵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라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배는 갑판 위에서 한 사람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방향을 틀지 않습니다. 배를 돌리는 것은 굵은 목소리가 아니라, 수면 아래서 묵묵히 움직이는 작은 방향타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내 말을 들으면 틀림없다."
"내 경험이 맞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려 들었고,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공감이 아니라 침묵이었고, 이해가 아니라 서운함이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망치로 두드린다고 열리는 문이 아니라, 안에서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야 열리는 문이라는 사실을.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글귀가 떠오릅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에 한계가 없던 시절,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황혼의 나이에 이르러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려 했으나, 그들 또한 달라지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만일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그 모습을 보고 가족이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나라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렸을 것이며, 어쩌면 세상까지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글귀를 접한 순간, 마치 오래된 거울에 쌓인 먼지가 한꺼번에 닦여나가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왜 남을 바꾸는 일에는 그토록 진심이면서, 정작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인색할까요? 변화는 오랫동안 입어 몸에 익은 낡은 옷을 벗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해지고 보풀이 일어나도 익숙한 옷이 편한 법입니다. 자기합리화라는 낡은 옷은 불편한 진실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우리는 저마다 마음의 색안경을 쓰고 살아갑니다. 붉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며 세상이 붉다고 주장하고, 파란 안경을 쓰고는 타인에게 왜 파랗게 보이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정작 벗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안경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쉽게 전염되지 않지만, 삶은 전염됩니다. 향수를 뿌린 사람은 자신보다 먼저 주변에 향기를 전하고, 숯을 만진 손은 남을 더럽히기 전에 자신의 손부터 검게 물들입니다. 미움도 사랑도, 불평도 감사도 언제나 내 안에 먼저 머무른 뒤 타인에게 옮겨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말이 아닌 '삶'에서 시작됩니다.
타인을 향해 들고 있던 돋보기를 내려놓고 나를 비추는 거울을 들어 올리는 순간, 진정한 성찰이 시작됩니다. 거울은 남의 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애써 외면하던 욕심과 교만, 편견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거울 앞에 서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허물도 품어줄 수 있습니다.
세상은 메아리와 같습니다. 내가 외친 만큼만 돌아옵니다. 거울 앞에서 찡그리면서 거울 속 상대가 웃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아득히 먼 곳까지 동심원을 그리듯이, 한 사람의 따뜻한 인사와 진심 어린 사과 하나가 가족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작은 물결이 됩니다. 작은 촛불 하나가 밤 전체를 밝히지는 못해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어둠만큼은 확실히 몰아내듯이.
이제 젊은 날 손에서 놓지 못했던 돋보기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먼저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호수를 한 번에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던지는 작은 선의의 돌멩이 하나는 분명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남을 향했던 돋보기를 거두고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들어 올리는 것, 그 조용한 성찰이야말로 세상이라는 큰 호수에 가장 오래 남을 위대한 혁명입니다.
첫댓글 좋은글 고맙게 감상했습니다. 느끼는 바가 많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