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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lana
1950년 6월25일 소련에서 공산당을 배운 김일성이
소련과 중공군을 등에업고 한반도를 공산화 하려던
동족 상잔의 비극" 6.25사변
자유수호 연합군의 도움으로 공산 침몰을 막았고
휴전으로 3.8선이 그어지며 남과북
분단의 비극이 만들어지며 숫한 생명이 희생되였다
6.25 피로 한반도 자유를 지키며 희생된 외국병사와 현충원 애국순혈
어느 이름모를 산곡에 죽어간 희생자 영정에 올립니다 .
강원 화천군 평화의 댐 비목공원에 세워져 있는 비목.
비무장지대 안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이다.
선인들은 누구를 위하여 피와 생명으로 나라를 지킨 것인가?
어제 그들에 희생이 없는" 오늘이 있단 말인가 ?
국가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길 바라기 전에
너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
무엇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가곡비목
광주 산곡을 헤메다가 문득 죽어넘어진 국군을본다
國軍(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國軍(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소위(少尉)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 痛哭)하며
나는 듣노라!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大韓)의 혼(魂 )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나폴레온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크바 크레믈린탑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小女)도 있었노라.
내 청춘(靑春)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慰安)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 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同胞)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祖國)을 위해 울어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少女)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祖國)을 위해
울어달라 일러다오.
조국(祖國)이여! 동포(同胞)여! 내 사랑하는 소녀(小女)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祖國)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채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運命)을 파괴(破壞)하라 내 친구(親舊)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檀君)의 피와 혼(魂 )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祖國)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祖國)을 위해선 이 몸 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祖國)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國軍)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國軍)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소위(少尉)의 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 痛哭)하며
나는 듣노라!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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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 가장 처음 접한 詩다
새마을 운동으로 진흙길이 포장되고 호롱불이 전기불로 바뀌던시절
새마을회관이 세워지고 거기 파란 조그만 종합시집 한권 과 박정희 그의 인생을 쓴 책한권
10살 나에 영혼을 사로잡아 버린 그 날을 잊지 못 한다
시골 교사 ......나는 큰뜻을 품고 떠난다 ..
그 큰뜻을 기어코 이뤄낸 작은거인을 사랑한다
그리고 .....
모윤숙님에 먹물로 품어 불러온 그 고귀한 영혼들의 외침을 듣는다
동족의 가슴에 총 칼을 꽂은 비극의 역사앞에 그 젊은 영혼들이 생명으로 지킨 것이 무엇인가 ?
자유 -우리가 누리며 살아온 이 자유속에 저들에 고귀한 죽음이 있었다
전 한국인은 자손 대대로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 이다
공산당 사회주의는 개인의 기본 인권마져 보장되지않고
자유로운 능력 발휘가 가능하지 않고 인류에 적합한 체계가 결코" 아니다
아직도 그 악에 사상을 추종하는 북한 공당 숭배 친북자들은
인육 먹고 굶어죽고
자유를 찿다가 북괴에 총 맞아죽은 무수한 북의 동포들과 탈북자의 피눈물--
수십년 한맺힌 이산가족 멍든가슴 ...
.대치하는 속에 희생되는 민간이 과 국군장병과 조국을 생명으로 지킨 선인들에게 죄인 이다
공산 북한은 언론 -인권 -자유 -어느것하나 보장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38선넘어에 기본 인권마저 유린당하고 사는 숫한 동포들에게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함께 누릴날을 기원해본다-
잊어선 안되며 다시 있어서는 안될 비극 6.25 ....
공산당 밑에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피흘려 자유와 태극기를 지킨 그 영령앞에 묵념하며
6.25--------님들에 무덤위에 하얀 국화 한송이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lana
10년간 금지되었던 6.25노래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6.25 기념식에 불렀던 6.25노래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6.25 노래 대신 김정일을 자극하지 않는
새로운 6.25노래로 대체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음원 판매회사에 옛 6.25노래 음원도 일체 못 팔게 조치하였습니다.
두 개의 좌파정권 10년 간 부르지 못하게 했던 6.25노래
1.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 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지난 10년 동안 김정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새 6.25노래
도대체 무엇을 자극했다는 것인가
서울을 불바다 만든다고 궐기까지 평양에서 해대던 김정일인데
한국정부는 노래 가사도 바꾸는 이런 정권이 있엇다
아래 새 노래 가사는 . 6.25진상을 비키는 부분과
글 야음도 순조롭지 못한 내용이다 .
新 6.25 노래 (심재방 지음)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의 산하가 두 동강나던 날을
동포의 가슴에다 총칼을 들이대어 핏물 강이 되고 주검 산이 된 날을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동포 형제를 원수로 만든 그들을
겨레의 이름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 선열의 흘린 피 헛되지 않게 시리
==> 동포의 가슴이라 하여 남과 북 서로 서로 싸운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후렴 : 이제야 이루리 그 날의 숙원을 동포의 힘 모아 하나의 나라로
통
일을 반대하는 반민족주의자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 아래는 설레임51 님 블로그 자료=
6.25 한국전쟁 사진 자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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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38도선 이남과 이북으로 갈라 한쪽은 김일성이 하나님자리에 올랐고,
다른 한쪽, 곧 우리가 살고 있는 남쪽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나라가 된 것은,.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아무 죄없이 북쪽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굶기를 밥먹듯 하고 인간을 하나님처럼 모셔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지구에서도 흔치 않은 야만정치의 포로들이 되고 말았다.
북한주민의 오늘 날 불행이 북한주민의 잘못이 아니듯,
대한민국 국민의 풍요와 자유가 남한주민의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반공과 북한인권에 대하여 맹렬할 이유가 충분하다.
조국과 민족앞에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라면 다시는 이러한 6.25사변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공의식을 새롭게 고취하여
후손에게 살기좋은 미래를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하리라.
1947년 5월 1일 노동절날 죄익단체들의 행사모습.
당시엔 행사가 좌우익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작금의 좌파성향의 단체와 개인들이 배부른 이 나라에 살면서,
백성들을 굶어죽이는 김정일을 찬양하고 위원장이라 깍듯이 부르면서도
자기나라 대통령은 쥐박이라고 하면서 서슴없이 욕설을 하는 현상이
마치 해방 후 전쟁전의 양상과 너무도 흡사하여
역사의식을 가진 識者들을 근심하게 하고 있다.
주적개념조차 없는 무지한 반골 좌파들이 정권을 공격하고 국론을 흔들어대면 결국,
험한 국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공법을 재정비 강화하여
나라의 사상과 기강을 바로 잡고
다시는 제 2의 6.25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기의식을 새롭게 하여
국민과 정부는 역사와 후손앞에 헌신되어야 한다.
1951년 7월 3일. 중공군과 합류한 공산군과 치열한 전투에서
부상한 샘 아얄라 상병이 후송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는 카튜사한국병사.
전쟁은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파괴하여 피폐한 삶을 남겨둔다.
다시는 이러한 민족적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애국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어설픈 감상적 민족주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이다.
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도 없다. 북한동포를 위해서라도
반공은 우리 풍족한 대한민국 국민의 사명이며 몫이다.
1951년 1월 25일 수원시 화성에 소재한 장안문은 공산군의 포격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1950년 9월초, 대구 학도의용군 병사들이 보급품을 받으면서
전장에 투입되기 직전 최소한의 교육을 받고 있다.
20세를 전후한 대한의 아들들...귀한 가문의 금지옥엽같은 아들들...
이들의 애국적 헌신으로 대한민국은 지켜졌다.
1950년 8월 중순 경남 창녕군 영산지역전투에서
참패한 북한군이 물러나면서 밤이면 나타나 양민을 괴롭혔다.
낮에는 조용하다가 밤만되면 나타나 무법천지가 되어
공포에 떨던 주민들이 북한공산군을 피해 피난을 가다가 발각되어 학살 당한 모습.
1951.10.1. 서울수복 후에 발견된 전쟁고아들..
전쟁의 폐허더미를 헤매다가 유엔 복지담당관에 의해 시립보육원으로 보내기 전..
북한군포로 신상명세를 타자기로 작성하는 중,
누가 이 청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내 몰았는가?
구덩이에 버려진 시체들..우리들의 정겨운 가족들이
어느 날 공산군의 남침으로 참혹한 피해자들이 되었다.
다리 밑에 응달에 몸을 피해 잠시 쉬고 있는 피난민 가족들.
포격에 가족을 잃고 피난 길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누군가 밥한술을 놓고 간 뒤에 홀로 울고 있다.
나뒹구는 시체들. 6.25사변으로 행불처리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한반도 곳곳에서 죽고 썩어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소년들의 시신들.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전쟁은 전쟁을 두려워 하며 피하려는 백성에게 찾아오고
기꺼이 惡과 싸워 생명을 바치겠다는 백성에게는 덤벼들지 못한다.
공산주의 앞에 깨어있지 않고 반미친북하는
어리석은 편향적 민족주의 환상은 제 2의 6.25를 부를 수 있다.
공산군은 후퇴를 하면서 경찰가족, 공무원가족, 신앙인 등을
무차별 학살한 뒤 식수원도 끊을 겸 우물에 던졌다.
완전 폐허가 된 마을 - 1951. 4. 서울근교
공산군에게 학살 당한 시체 가운데 남편을 찾고 있는 부인. 뒷줄엔 처리반원들이 악취로 인하여 코를 막고 있다.
시체가운데 가족을 찾는 생존가족들의 표정이 담담하다.
북한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부의 말씀)
이 노래를 자녀들에게 가르칩시다.
다시는 후손들이 6.25사변의 비극을 당하지 않도록, . .
-write by solleim-
첫댓글 저도 14후퇴 당시 한달도 못된 갓난아기였습니다 그래서 겨울피란에 울 ~ 엄마가 고생스러워 길거리에 버리고 가려고 했다합니다 우리가족은 대구 칠성동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고합니다 ~ 누구에 잘못인가 ? 원수의 북괴들은 이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