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시즌 제 8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본격적으로 1군무대에 가세하면서 그만큼 신인 선수들도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89,90시즌에 이어 91 시즌에도 국가대표 출신 대형신인들이 대거 입단하면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명에 가까웠던 고졸 신인들이 예기치 못했던 활약을 하며 팬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1.돌격대 선봉 3인방 - 김기태,조규제,김원형
91시즌에 처음으로 1군무대에 선을 보인 쌍방울 레이더스는 최하위권이란 예상을 뒤엎고 종합 성적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나름대로 선전한다. 돌격대 군단의 투,타의 핵심에는 다름아닌 신인 3인방 김기태,조규제,김원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광주일고-인하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맹활약했던 김기태는 입단 첫 해 홈런 2위(26개), 타점 2위(92점)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당당히 돌격대 타선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 한다.
사실 김기태는 해태에서 연고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인 1차 지명에서 해태가 투수인 오희주(한양대 졸)를 지명하는 바람에 쌍방울이 김기태를 낚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평소 대형 좌타자를 선호해온 김응룡 감독은 구단이 오희주를 지명하는 바람에 김기태를 놓친 것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김응룡 감독은 삼성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고 공교롭게도 김기태도 같은 유니폼을 입고 김응룡 감독 밑에서 뛰게 되었다. 10년 가까이 지속되오던 김기태에 대한 김응룡 감독의 짝사랑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로 명성을 높였던 조규제는 선발 마운드가 빈약한 쌍방울의 든든한 뒷문지기로 활약하며 16경기 연속 구원 성공을 기록하는 등 구원왕에 등극하며 신인왕을 거머쥐게 된다.
국가대표 투,타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이들의 활약은 어느정도 점쳐진 것이었지만 '어린왕자' 김원형의 활약은 마치 '흙속의 진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입단할 당시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는 최연소 완투승,완봉승등의 기록을 세우며 7승 11패의 성적을 올리는데 당시 쌍방울의 투,타의 전력을 비추어 볼때 7승이란 성적은 10승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2.부산 야구열기에 불을 지핀 신인 3총사
롯데의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은 '야구의 메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응원 열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84년 우승이후 롯데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성적도 하위권을 맴돌면서 자연히 사직구장의 야구열기도 식어지게 된다.
그러나 91 시즌을 앞두고 강병철 감독을 다시 영입하며 분위기를 쇄신한 롯데는 7년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며 홈구장 관중동원도 사상 처음으로 100만을 돌파하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내게 된다. 롯데의 부활은 과감한 세대교체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세대교체의 주역은 신인 3총사 - 전준호,박정태,김태형이었다.
롯데 타선의 부동의 톱타자로 정착한 전준호는 빠른 발을 이용한 폭넓은 외야수비, 정교한 타격, 재치있는 주루플레이로 롯데 타선의 선봉장으로 제몫을 다해낸다.
전준호와 입단동기인 박정태는 작지만 당당한 체구로 근성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탱크','악바리'등의 애칭을 얻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공,수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 그는 골든글러브에서 당시 2루수 부문 터줏대감 이었던 강기웅(삼성)을 제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부산 공고를 졸업한 고졸 신인 김태형은 11승 7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롯데 마운드의 좌완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친다.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그 이후론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게 된다.
3. '연습생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 김상진
당시 빙그레의 장종훈,한용덕은 고졸 연습생으로 프로 데뷔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나는 노력끝에 타격과 투수부문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연습생 신화'를 창조하며 많은 2군 선수들의 귀감이 됨과 동시에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91 시즌에도 또다른 '연습생 신화'를 창조한 신인이 있었는데 마산의 청강고를 졸업하고 OB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우완투수 김상진이었다.
90시즌에 이어 91시즌에도 최하위를 맴도는 부진을 거듭하던 OB의 마운드는 붕괴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OB 마운드에 김상진의 존재는 한줄기의 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연습생으로 입단한 91시즌부터 곧바로 1군 무대에 뛰어든 그는 10승 7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당당히 OB마운드의 에이스로 자리잡게 된다.
OB-삼성을 거치면서 꾸준히(96년을 제외) 좋은 성적을 기록해온 그는 올해 FA 시장에서 삼성구단과 3년 계약을 맺으며 8억 5천만원의 거금을 챙기며 다시 한번 그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10년전 계약금도 한푼 챙기지 못한채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당당히 억대 연봉선수로 등극하게 된다.
4.결 산
91시즌은 국가대표 출신의 대형 신인들이 대부분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면서 팀내에 주축으로 자리잡게 된다. 반면에 송구홍(LG),오희주(해태),전일수(태평양)등과 같은 선수들은 입단 당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해 팬들과 구단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김원형,김태형,김상진과 같은 무명의 고졸 신인들이 예기치 못한 활약을 펼치며 프로야구판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것이 91시즌의 또다른 특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