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요일 오후 2시. 군청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후보자 설명회에 갔더니, 나와 또 다른 무소속만 후보만 참석하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민주당, 자민련 등은 모두 사무종사자 대리인들이 왔더군요. 역시 재산도 없이 살아온 놈은 알아 볼 수 있죠. 처음 듣는 설명회는 생소했지만 정신차려 들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상대 후보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선관위 직원들도 나 같은 놈이 출마한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예비후보자 신청을 알아보기 위해 오늘 오후 3시에 개인적으로 가서 문의하여 자세하게 들어봤습니다. 기탁금이 1천5백 만원이라는 데, 내 통장에 단돈 몇 만원도 없는 놈이 후보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나는 누구인가? 누굴 위해서 출마는 한단 말인가?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이미 지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어떻게 하면 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했습니다. 총선거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워보았습니다. 특히 우리 지역에서 개혁적인 후보자가 나왔으면 좋으련만, 누구도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습니다. 보은, 옥천, 영동 세 곳이 한 선거구인데 옥천에선 열린우리당 경선후보가 2명(이용희72)와 김서용(41)이 나왔고, 민주, 자민련 후보도 모두 옥천 사람인데, 영동은 한나라당 심규철 현 의원이 단독으로 결정되어 영동 유권자들의 표가 분산되지 않아 유력한 입장입니다.
심규철 의원이 초선 당선될 당시에도 '영동표' 때문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이라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어느 후보가 경선으로 결정되더라도 본선에서 과연 영동의 심의원을 이길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또 옥천의 민주, 자민련, 무소속 난립으로 표가 분산되면 영동의 심후보는 '땅 짚고 헤험치기'식으로 당선되며는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래서 나는 지난해부터 곰곰히 고민하게 되었고, 어느 누구도 영동의 새로운 후보가 나타나지 않아서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여 한나라당과 싸워 보려고 다짐을 했습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80년대 농사 짓고 '농민운동'의 씨를 뿌리며, 농민운동만이 '농민의 살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축산정책'의 실패로 빚을 지고, 결국 농촌에서 밀려나와 읍내에서 '한겨레신문' 창간과 더불어 지금까지 15년 동안 신문배달만 해 오면서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문배달 이야기'를 글로 써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모한 생활글 부문에 "민주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라는 작품으로 장려상도 받은바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선거 기간엔 '노사모' 활동도 했고, 충북 작가회의 회원으로서 사회 활동도 해왔습니다.
이제 현시점에서 내가 할 일이 계속 '신문배달 인생'으로만 남을 것인가? 길바닥의 지렁이처럼 천대받고 살아 갈 것인가? 아니면 '개혁의 바람'을 타고 변화를 시도하는 도전자로 일어나서 힘차게 달려 가야할 것인가? 생의 기로에서 실천하며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력이 중졸이고, 돈도 없고 내세울 명예도 없는 놈에게 과연 유권자들이 표를 던져줄 것인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 후보는 서울대학을 나왔고 변호사도 했고, 현역 한나라당 의원이지 않은가? 감히 내가 나서서 대적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한나라당 심의원이 언론사 세무조사 때, <한겨레>를 비방하기를 "김대중 정부의 애첩이다"라고 매도하였을 적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투쟁의 결과물인 참 언론을 '애첩'이라 비방하는 의원의 인격이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창간 당시 온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민족 언론'의 자랑스러운 명예이거늘, 어찌 똥칠하듯 모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론지'를 배달한다는 자부심으로 십 수년을 첫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해온 나의 자존심과 양심에 '비정한 칼날'을 드려대는 것 같아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선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지막지한 더러운 권력의 입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런 자들은 내가 싸워서라도 낙선시켜 보겠다는 굳은 결심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선 나는 국회의원이란 바른 양심가로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인격자 이어야한고 봅니다. 정치란 그러한 바탕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흔히들 '정치는 예술'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러나 올바른 생각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정치를 하기는커녕 힘으로 잡아먹으려는 행위가 바로 오늘의 물리적인 '탄핵정국'을 초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국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을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민주당이 발의하고 다수 한나라당의 무식한 쪽수의 힘으로 '국민들 67%가 탄핵안 반대'하는 대도 불구하고 수적 우세의 무기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역사를 뒤엎은 두 당의 만행을 엄중히 심판하고자 외쳐볼까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후보등록을 눈앞에 두고 기탁금 1천5백 만원이 없어 절망적입니다. 재벌들에게는 껌 값에 지나지 않고, '차떼기'로 돈을 주고받아 가는 의원들에게는 나 같은 처지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저 '개미새끼'처럼 보일 것이 뻔합니다. 나의 뜻을 받아들여준 아내는 눈앞이 캄캄한 듯합니다. 나는 80년대 한우입식 축산을 하다가,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전경환이 외국소 수입하여 이익을 챙겨 먹고 그 여파로 망한 농민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혀 후보자 통장을 직접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회계책임자'로 하여 통장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만, 그 누가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보내 줄 것인가 답답할 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고들 하였지만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뿐입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변화의 바람 한번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좌절한다면, 어찌 삶의 의욕을 가질 수 있을까. 우선 잠시 글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 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에 '노사모'활동하면서 <15만원 후원금 낸 사연>으로 검찰조사도 받았지만, 다행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까 아무 탈없이 지난 것이지, 만약 이회창 대통령이 되었다면 나는 '괴심죄'로 마음고생을 하였을 것입니다. 돼지저금통에도 5만원을 청주거리유세 때 드린바 있습니다. 이렇게 전국 각처에서 후원금이 답지한 '선거혁명'이었습니다. 누가 노무현 대통령이 될 줄이야. 서울의 택시운전기사 10명에게 물어봐도 6~7명은 이회창 대통령 된다고들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영동에서도 내가 무사히 후보등록을 마치고 공식선거운동 기간(4월2~ 14일)을 거처 투표함 뚜껑을 열고 개표를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지, 그 이전에는 한국에서 제일 가는 점쟁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전국 어디에서도 '신문배달'하는 사람이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곳은 없습니다. 나는 전국의 신문배달하는 사람들과 농민 노동자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번에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나의 소망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신문을 많이 읽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창조적인 문화강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대안을 갖고 출발합니다.
또한 나의 뿌리는 농민이기에, 농민의 자녀들이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신문배달을 하고자 할 때는 '근로장학금과 봉사 점수'를 주는 제도를 마련하여 '진학'에도 반영해 주도록 할까 합니다. 역시 도시의 노동자 자녀들도 오늘의 '주경야독'하는 심정으로 신문배달을 할수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자 합니다. 사회발전의 간접자본을 투자하듯이 '교육세' 일부를 미래의 2세 교육 밑거름으로 투자, 일하며 배우는 학생사회의 기풍을 얼마든지 만들어 줄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 방면에 눈을 돌리지 않고, 연구하지 않아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에 뛰어다니면 체력관리 건강에도 좋고, 땀흘린 노력의 대가를 맛보게 하는 생활을 몸소 체험함으로서 성장하는 학생들의 교육효과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에 고등하교 다니는 여학생 자매가 신문배달을 하고 싶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즈음 뜻밖에도 '여자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부모가 하지 말라고 거만 두었습니다. 일을 모르고 자라는 학생사회의 학내폭력 같은 것의 원인도 학생들의 심성이 황폐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문제학생들만 나무랄 것이 아니라 교육제도가 창의적으로 해결방안을 근본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위주의 교육만으로는 발전이 없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신문의 속보성은 그 위력이 대단하고, 이러한 언론의 신속한 정보가 성장기 학생교육에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신문을 읽는 학생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신문이란 오늘의 살아있는 역사이거늘, 이 신문을 학생이 스스로 배달하고, 접하게 하여 읽는 계기가 되고, '근로봉사'한 대가로 수입도 얻는다면 그야말로 '1석3조'가 아니겠는가? (계속)
첫댓글 희머리소년님! 힘 내세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읍니다. 있다고 해서 갈수 있는 것이 아니고 찾아서 가야 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는다면 그 길이 훤히 열려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흰머리소년님 만세 ! 화이팅 !
감사합니다.현명한 장님처럼 열심히 헛구덩이에 빠지지 말고 가자고 다짐하고 찾아가고 있습니다.
형님의 앞날에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