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4일 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오늘도 참으로 복된 화요일 아카시아 꽃향기 진동하는 좋은 아침입니다.
- 때로는 나에게 위기가 오고 많이 힘들 때에 누군가 날 위해기도 해 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감사합시다.
- 그리고 매 순간 순간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점에서 늘 감사함으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선한 일에 힘써 보시길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무엘상 31장 1-6절 }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 제 목 ◑◑◑◑
◗◗ 길보아 싸움에서 패한 사울이 자결함
◑◑◑본문 이해와 요약 ◑◑◑
◗ 3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왕을 세운 후에 그들의 기쁨 보다는 많은 근심과 매우 슬프고 뼈아픈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최초의 왕인 사울왕의 스스로 자결 소식과 사울 가문의 몰락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패국이 짙어지다가 길보아 산에서 진멸되었고, 사울의 아들들인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도 함께 전사되었습니다.
- 그리고 중상을 입은 사울은 자결했으니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음은 사무엘의 예언(28:19)을 성취가 되었으니, 사울의 일가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 블레셋 인들에게 수치를 당한 사울의 시체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 의해 장사되었습니다.
-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동편의 성읍으로서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 중 하나였고,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장사한 이유는 예전에 사울이 왕위에 오르자 처음으로 출전하여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치러 올라온 것을 사울이 물리쳐 준 적이 있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사울의 시체를 찾아와서 장례식을 치루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던 것입니다.
- 이 사실은 후에 다윗은 사울을 장사 지내 준 길르앗 사람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크게 치하했던 것입니다.
- 이렇게 주어진 정권을 함부로 망령되이 처신하며 하나님 앞에 불순종과 불경죄를 범했던 사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모두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 그리고 예언 된 바대로 차기 왕권은 다윗에게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나, 나라와 민족의 경계와 국경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섭리와 뜻에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신정정치를 버리고 세상나라를 본받아 그토록 강한나라로 원했던 왕이였지만 많은 시련과 고통과 아픔으로 끝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 하였고, 주어진 왕국의 권력에 집착하였으며, 믿음 없는 삶을 살았음을 고발하고 결국 그의 스스로 자결하였은즉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 블레셋 전쟁에서 활을 맞아 중상을 입어 고통 중에라도 살려는 마음과 회개할 기회를 주었건만 돌이킬 마음이 없으니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래서 사울왕의 자신의 잘 못을 끝까지 회개가 없이 스스로 자결함으로 본서는 끝이 나게 되고 이후에 다윗이 왕위에 즉위하는 것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지게 됩니다.
- 그의 시체를 장례 절차를 매장이 아닌 화장으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을 장사한 후 일주일을 금식하며 슬퍼하였습니다.
- 이들은 그저 사울을 장사지낸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울의 죽음을 애도 하였습니다.
-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통하여 이웃의 슬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알고 함께 슬퍼하며 애통할 줄 아는 신실한 신앙인의 도리를 배우게 됩니다.
- 동시에 인류의 모든 역사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와 경륜 가운데 이루어짐을 분명히 밝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삼상31장 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자살은 그리스도인에게 용납될 수 없는 죽음이요, 큰죄입니다.
- 4절을 살펴보면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사울은 끝내 자결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는데 자살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 그의 일생 가운데 여러 차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례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 본문의 자살 사건은 이 모든 비극적인 사건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마무리 짓는 최후의 비극적 사건이요, 최후의 불순종의 큰 죄가 되고 다만 구원받고 못 받음의 문제는 아닙니다.
-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극도의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 우선 왜 회개하고 하나님께 끝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가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리고 아울러 사울이 택한바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법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성경은 스스로 자결을 결코 합당한 죽음의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크나큰 죄로 봅니다.
- 성경은 자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자살 그 자체가 범죄 행위임을 못 박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자살이 왜 범죄 행위이며, 어떤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먼저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 특히 사람의 생명일 경우에 이 같은 인식은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
- 이러한 인식은 물론 태초부터 있어 온 것이나 노아 홍수 직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이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창세기9장 5,6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는데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이렇게 여호와께서 하나님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시며, 또한 생명을 죽이는 자에 대한 심판자가 되심을 천명하셨습니다.
-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흘리는 행위가 대단히 무겁게 처벌됩니다.
- 출애굽기21장32절에서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아 맞아 죽을지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례위기24장 17-20절에서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 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라고 하였습니다.
- 이 두 구절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 첫째는 사람의 생명을 해한 자는 그가 사람이든지, 혹은 짐승일지라도 살려 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둘째는 사람의 생명과 관련해서는 성경이 대단히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굳이 짐승이 사람을 죽이는 사례를 기록해 둔다든지, 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경우에 대해서까지도 지나칠 만큼 세밀한 규정을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귀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기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동일한 죄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살이란 그 대상이 타인에서 자신으로 바뀌었다는 점만 다를 뿐 살인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 그래서 본문에서 사울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를 한 것입니다.
- 아무리 범죄 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래서 출애굽기20장 13절에서 “ 살인하지 말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 사울은 바로 이러한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자신을 스스로 죽여 버린 죄를 범한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어려움과 절대적 위기 앞에서 혹시 너무나 괴롭고 힘든 일을 당하여 자살의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있었는지? 이를 때 과연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 살인과 자결은 하나님 앞에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마귀사탄에게 절대로 속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한 번 쯤 자살 충동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사탄에게 속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 누구에게나 그런 충동은 때때로 찾아옵니다만,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에게조차 자살에의 충동은 찾아와서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 죽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죽기만 하면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다고 우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사단마귀에게 속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바대로 자살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해 버리는 극악한 죄악이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참 사랑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행위입니다.
- 예수님의 고귀한 피로 값 주고 산 바 되어 하나님의 소유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잠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이러한 죄악과 불신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6장 19,20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처하여 그 고통을 이기기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반드시 기억하고 영광의 하나님께 강력하게 구원을 요청 합시다.
- 시편42편5절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 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나의 든든한 보호자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께 내가 가진 고통의 무거운 짐을 맡겨드립시다.
- 그래서 하나님의 뜻으로 먼저 택함 받음에 감사드리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고난과 고통은 맥을 추지 못할 것이며,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한 자에게 자살을 속삭이는 악한 사단의 유혹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는 자녀에게는 내 앞에 있는 태산 같은 문제 앞에서도 울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일어섬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 혹시 나의 주변에 삶에 눌려있고 고개 숙인 자들이 있다면, 오늘은 사랑과 관심으로 돌봐주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