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1월19일(금)맑음
아침 3시에 기상. 예경 드리다. 4시에 택시 타고 코치Kochi 공항에 가다. 검색security check 통과하고 델리 행 비행기 타다. 델리에서 다시 방콕 행 비행기로 환승transfer하다. 방콕 수완나부미Suvarnabhumi 공항에 착륙하니 7:30pm, 공항 1층 밖으로 나와 택시 불러주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면 택시가 온다. 키티Kitti라는 택시기사는 팝송을 틀고 따라 부르면서 신나게 운전한다. 40분가량 달려 숙소에 도착하다. 로비 프론트에서 2박 숙박비를 지불하고 투숙하다.
하루 만에 天竺천축에서 날아 金地國금지국, Suvarnabhumi수와르나부미로 오다니 義淨의정스님이나 法賢법현스님이나 慧超혜초스님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을 해낸 것이다. 태국인들은 자기나라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황금의 땅이라는 자부심에서 공항의 이름을 수완나부미Suvannabhumi(태국인 들은 ‘수완나폼’이라 발음한다)라고 붙였다. 스리랑카 역사서인 마하왕사Mahavamsa에서는 목갈리풋타 티사Moggaliputa Tissa 장로가 주관한 제3차 결집을 후원했던 아쇼카 대왕이 결집이 끝난 후 소나Sona와 웃따라Uttara장로를 수와르나부미Suvarnabhumi로 파견했다고 한다. 그때의 스와르나부미는 어떤 나라이며 어디였을까? 오늘날 미얀마인 버마불교 왕국(즉 베익타노Beikthano의 퓨Pyu왕국이나 타톤Thaton에 있던 몬Mon족 왕국)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7세기 경의 다르마빨라Dharmapala護法와 11세기의 아티샤Atisha(982~1054)존자가 스완나부미로 구법여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의 수완나부미는 말레이 반도나 수마트라를 말한다. Suvarna수와르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빛나는, 황금의’라는 뜻이며, bhumi부미 ‘토양, 영역, 나라, 땅’을 의미한다. 그래서 황금의 반도, 황금의 섬, 황금의 대지를 지칭한다. 예로부터 그리스 역사서나 아라비아 지리서에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를 황금의 땅으로 여겨졌다. 어쨌든 태국인들은 불교를 국교로 여기며 국왕을 거의 부처님처럼 모신다. 공항에서 오는 길에 ‘Buddha is not a decoration. Show respect to Buddha. Stop Disrespect Buddha.’라는 눈에 띄는 광고판을 보았다. 붓다는 장식품이 아니다. 붓다께 존경을 표하라. 붓다께 불경하지 말라는 말이다. 최근 월터 디즈니Walt Disney 영화사에 나온 영화에 붓다독Buddha Dog 개 부처가 등장했는데, 이것이 인기 있는 캐릭터로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 못한 태국인 불자그룹 Knowing Buddha Organization부처님을 아는 모임에서 ‘붓다 독Buddha dog’이 나오는 디즈니 영화에 대하여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전 세계 여행자가 모이는 카오산 로드Khao san Road에서 디즈니 영화사의 ‘붓다 독’뿐만 아니라 불상의 상업적 매매를 막자는 가두행진을 했다. 그 그룹은 태국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는 붓다의 상업화, 즉 불상과 벽에 거는 부처그림을 매매하는 것, 붓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섹스토이, 가구, 타투, 그 밖의 붓다를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행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과연 태국 불자다운 행동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깨어있는 불자가 있을까?
샤워하고 몸을 눕힌다. 불교닷컴을 보니 보드가야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서림스님의 소식이 올라와 있다. 깨달음이 찬란하게 폭발해야할 성지에서 폭탄 테러라니 5탁 악세의 징조이다. 수와나부미를 꿈꾸고 싶다.
히말라야 너머에서 비쳐오는 진리의 등불을 멀리서나마 희미하게 바라보던 구도자들은 독수리처럼 날아 빛의 근원을 찾아갔다. 그들은 求法僧구법승이다. 그들이 택한 경로는 해로와 육로 두 가지인데 육로의 경우 티베트 미얀마를 거쳐 인도로 들어가는 법과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가는 법이 있다. 구법승들은 주로 실크로드를 택했다.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파미르 고원을 넘고 지금의 파키스탄을 경유하여 인도로 들어갔다. 구법승들의 구법여행은 목숨을 걸고, 일생을 바치는 헌신의 고행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갈구하여 구도행을 했는가? 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붓다의 원음이 그리워서, 참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길을 나섰던 것이다. 내 한 몸 던져서 경전의 한 글자, 한 문장이라도 구해올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가다가 쓰러져 해골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 당신은 진리를 위해 아낌없이 한 생을 바쳐보았느냐? 구법승의 해골에는 경전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경전은 모두 구법승과 역경사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것이다. 그래서 경전의 한 자 한 자가 모두 法身법신이라는 말도 있다. 경전을 어찌 경만히 대할 것인가? 義淨의정(635~713)스님의 구법여행기인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 이름이 올라있는 구법승은 57명인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스님들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동국대 사학과 교수 김상현의 글을 참조로 하여 구법승을 생각한다.
실크로드는 비단결처럼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더구나 동쪽 끝 신라에서 출발하여 천축으로 가는 길은 서쪽 하늘 끝이라 아득하기만 했으리라. 신라 구법승들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너무나 간략하여 그들의 여정은 물론, 그들의 고난과 환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신라 승려들이 동행했던 당나라 구법승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이들의 애환을 엿볼 수는 있다.
현조玄照스님은 두 차례나 천축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던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의 대표적인 구법승 중의 한 분이다. 636년경으로부터 664년경까지의 1차 구법에는 신라의 현각玄恪스님과 동행했고, 665년에 출발했던 2차 여행에는 신라의 혜륜慧輪(반야발마般若跋摩 Prajna-varna)스님이 수행했다. 636년경에 난주蘭州를 떠난 현조 스님과 현각 스님은 천산북로天山北路를 택하여 서역으로 향하였다. 그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파미르 고원을 넘었다. 서북인도의 산악지대에 있던 쥬룬다국으로 향해가던 멀고도 험한 길에서 도적에게 잡혔다가 간신히 도망치기도 했다. 649년경에 현각스님 일행은 보드가야의 마하보리사에 도착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성스러운 마하보디 대탑 순례의 소원을 이루고는 병에 걸려 입적했다. 고작 불혹을 넘긴 아까운 나이로 돌아가셨다니 애석하다. 27세 무렵에 중국의 난주를 떠난 후 머나먼 천축의 하늘 아래 떠돌며 수행하기 13년의 운수행, 마침내 그는 순례의 길에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신라의 구법승 慧輪혜륜스님은 뱃길로 당나라의 복건福建성에 상륙했고, 걸어서 장안長安에 도착한 뒤에는 현조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665년 현조는 고종황제의 명에 의해 다시 인도로 가게 되었을 때 혜륜스님은 시자侍者가 되어 수행하게 된다. 그들은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카쉬미르로 넘어가는 카라코름 산맥에 있는 적석령磧石嶺을 넘어갔다.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산길에서는 기어서 올라갔고 깊은 계곡에 이르면 노끈으로 걸어놓은 흔들다리 위를 온 몸을 노끈에 매달려 건너갔다. 티베트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목숨을 내놓았으나 살아남은 일도 있었고 야만족의 강도들과 마주쳐 겨우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현조스님 일행이 당나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네팔로 통하는 길은 티베트가 가로막고 있어서 지나갈 수가 없었고, 카이버 고개로 가는 길은 이슬람 사람들이 침입하여 통과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에 현조스님은 중부 인도의 암마라발국菴摩羅跋國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일찍이 이 나라 국왕 잠푸의 공양을 받고 신자사信者寺에 3년이나 머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현조스님은 여기에서 병을 얻어 60여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상원上元년간(674~675)의 일이었다. 혜륜스님은 인도의 불교유적을 두루 참배하고 스승 현조대사가 입적한 신자사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한다. 당나라의 구법승 의정義淨대사는 685년경에 건타라산다사建陀羅山茶寺에 살고 있던 혜륜스님을 만났는데, 40을 바라보던 나이의 혜륜스님은 범어를 잘 했고, 또한 구사론俱舍論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고 한다. 스승 현조대사를 모시고 인도로 갔던 당시 혜륜스님은 스무 살도 안 된 청년이었던 것이다.
현태玄太스님은 영휘永徽년간(650~656)에 티베트를 경유하는 길을 잡아 네팔을 거쳐 중부 인도에 이르렀다. 보드가야의 보리수를 참배하고 불교의 경론을 상세히 살펴본 후 걸음을 동쪽으로 돌렸다. 중국의 청해성靑海省 지역인 토욕혼土峪渾에 이르러 인도로 가는 도희道希스님을 만났다. 현태스님은 도희스님과 함께 다시 발길을 인도로 돌렸다. 아마도 현태스님은 도희스님의 인도행에 가이드로 나선 것 같다. 도희스님은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고 카라코름산맥의 금잠岑嶔을 넘어 티베트에 이르렀고, 니파라도泥波羅道를 경유하여 부처님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라Kusinagara에 도착했다. 부처님의 열반지에 세워진 절인 수파반나輸婆伴那에 머물며 불교의 계율에 관한 전적을 연구했다. 그리고 보드가야의 마하보리사에 이르러서는 보리수와 금강좌 등에 예배하고 몇 년을 이 절에서 지냈다. 신자사에서 50여 세로 병을 얻어 입적했다. 현태스님은 두 차례에 걸친 구법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당나라로 돌아왔다. 이 무렵 두 번이나 인도로 갔던 구법승으로는 신라의 현태스님을 비롯하여 현조스님과 승가발마承伽跋摩와 의정義淨 대사뿐이었다.
혜업慧業스님은 정관貞觀년간(627~649)에 서역으로 가서 불교 유적을 두루 순례하고, 날란다 사에서 오래 동안 강의를 듣고 경전을 읽었다. 그는 날란다 사에 소장되어 있는 범어로 된 경론과 한역 경론을 필사하기도 했는데, 그가 필사한 <양론梁論>이 날란다 사에 보관되어 있어서, 훗날 이 절에 왔던 당나라의 의정스님이 이를 보았는데 “불치목佛齒木 나무 아래에서 신라 승 혜업이 필사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혜업스님은 범본梵本 경론도 필사했다. 자신의 공부에 참고하려 했겠지만 훗날 귀국하여 신라에 전해주려 했을 것이다. 그가 이 절에서 60에 가까운 나이로 입적함으로서 그 꿈은 좌절되고, 그가 필사했던 경론만 이 절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Arya-varman)스님은 정관 년 간(627~649)에 장안을 떠나 인도로 가서 경전을 배우고 성지를 순례하였다. 날란다 사에 머물면서 율律과 논論을 익히고, 여러 가지 불경을 초사抄寫했다. 돌아갈 마음이 많았으나 70여 세로 이 절에서 입적했다.
이처럼 혜업스님과 아리야발마 스님은 7세기 중엽 날란다 사에 유학한 신라의 구법승이다. 바로 그 시기에 당나라의 현장玄奘(602~664, 인도에서는 목샤데바(Mokṣa-deva)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법사도 몇 년 동안 이 날란다 사에서 공부했다. 이 무렵 날란다 사는 1만 명의 승려가 기거했고, 매일 100여 곳에서 강좌講座가 열리던 세계 최고의 대학이었다. 현장스님은 당시의 날란다 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날란다 사에는 주객을 합쳐 승려 수가 항상 1만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대승과 소승 18부部를 겸하여 배우고 있다. 그리고 속전俗典이나 베다 등의 책과 인명因明,성명聲明,의방醫方,술수術數에 이르기까지 갖추어 연구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경론 20부를 해득하는 자가 무려 1천 명이나 되고, 30부를 해득하는 자가 戒賢계현Silabhadra(529~645)법사를 포함해서 10명이나 되었다. 오직 계현 법사만은 모든 경전에 통달했고 덕이 높고 나이가 많아 대중들의 종장宗匠이었다. 절 안에서의 강좌는 매일 100여 곳에서 열렸고, 학승들은 촌음을 아껴서 배우고 있었다. 이처럼 덕을 갖춘 대중들이 사는 곳이기에 사람들의 기풍은 자연히 엄숙했고, 건립 이래 7백여 년이나 되었으나 한 사람의 범죄자도 나온 일이 없었다.”
이처럼 날라다 사는 불교학의 중심에 있었기에 각 국의 학승들이 모여들었고, 당나라의 현장․의정․도림․도생 스님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던 것이다. 멀고 먼 동쪽 나라 신라에서 온 두 젊은 구도자, 혜업스님과 아리야발마 스님은 꿈에도 고향이 그리웠겠지만 이곳 날란다 사에서 보낸 나날은 행복했으리라.
나는 구법승들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을 유람하러 다니는가? 나는 그들의 내쉬던 숨을 마시고 싶다. 그들처럼 구도의 길에서 쓰러져 죽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구법하러 갈 곳이 어디 있는가? 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법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려는가? 법이란 무엇인가?
2018년1월20일(토)맑음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보니 4시. 예경 올리고 명상하다. 아침 먹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굽이치며 흐르는 차오프라야Chaopraya강을 본다. 탁류이지만 방콕 시민의 젖줄이 되고 있다. 차오프라야는 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로 및 운하처럼 여겨진다.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출퇴근하는 연락선이 운행되기에 강은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된다. 여기에 비해 서울의 한강은 광활하고 거대한 강으로 풍수에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강은 강폭이 넓어서 강을 건네주는 배가 없다. 점심은 국수를 먹고 손가락 바나나 한 줄을 구해서 들어와 쉰다. 카오산 로드가 가까워서 인지 한국여행자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 여행자의 태반은 젊은 여성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유명 여행블로그에 올려 진 그곳임을 확인하고, 인증 샷을 찍는 것이다. 내일은 지금 숙소에서 체크아웃 해야 하니 이틀을 지낼 다른 숙소를 물색한다. 오후에 카오산 로드를 걸어서 가다. 거리에는 잡화 노점상, 식당, 주점, 환전소, 마사지 숍이 예전과 같이 늘어서 있고 거리에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들끓는다. 특히 중국여행자와 라트비아나 동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이 눈에 띈다. 한화 20만원을 태국 바트baht로 바꾸니 5,520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 돈 36.23원이 태국의 1바트이다.
2018년1월21일(일)맑음
아침 예경하고 명상하다. 어젯밤 사두었던 바나나와 망고를 아침으로 먹다. 숙소를 예약해서 옮겨야 한다.
우리는 홀로 서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지하며 의존하고 싶어 한다. 의존성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중심인물이 생겨나서 그에게 권위와 명예를 부여한다. 중심인물은 추종자들에게 지도자, 스승, 영웅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대중과 지도자 사이에 심리적인 거래가 생겨난다. 대중과 지도자가 자신의 숨겨진 의도와 욕망과 분노를 알아차리고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중독된다. 정치조직이나 종교조직도 마찬가지고, 작은 공부모임에도 마찬가지다. 지도자, 스승, 영웅이 추종자들에게 행사하는 힘은 누가 부여하며, 어디에서 나오는가? 추종자들의 욕망과 불안과 분노와 무지에서 나온다. 추종자들은 그들 내면에 깃든 욕망과 불안과 무지를 지도자에게 투사하여 그들을 대리하여 욕망과 분노를 행사해주기를 원한다. 그러면 그런 모임이나 조직은 무지의 힘에 휘둘려 타락한다. 그대의 욕망과 시기와 질투가 투사된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기를. 자기가 만들어낸 환영에 의해 고통당하지 않기를. 대중이 추종하는 지도자와 스승과 영웅은 대중이 만들어낸 환영이다.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자신을 살린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한다. 지금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살아갈 분명한 이유가 있기는 한가? ‘나-없음’을 깨달아 ‘나-아님과 나-아님도 아님’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인가? ‘나-열림’으로 홀로 서라. 카프카Kafka의 <城성 Das Schlos>에 나오는 주인공 K는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城성은 욕계, 자본주의체제이다. 성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성 밖에서 홀로 살 것인가? 싯다르타는 성을 나가고자했다. 성안에서 성 밖을 보고, 성 밖에서 성안을 볼 줄 아는 자야말로 성안에도 얽매이지 않고 성 밖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逾城出家유성출가 했다가 福音복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 고타마 붓다와 같은 분은 진제와 세제에서 출입자재하다.
백조 여인숙으로 옮기다.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 여기는 값이 싼 숙소로 가운데 풀장이 있는데 서양 사람들이 발가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모두 비계 덩어리 수북한 짐승 같이 보인다.
2018년1월22일(월)흐림
새벽꿈에 명고스님을 뵈다. 왼쪽 뒤편에 정자가 있는 풍광이 수려한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명고스님은 살이 붙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내가 묻기를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나요?’ 답하길 ‘내가 짐짓 그런 모습을 보여 잠시 은둔했을 뿐 사실은 죽은 게 아니지. 이렇게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가?’라며 유쾌하게 답하신다. 그리고 ‘정자를 배경으로 한 이 모임에 운자韻字를 달아 한시를 지어야할 걸세.’ 이런 꿈이었다. 깨어보니 생생했던 그 모습은 간데없고 허접한 게스트하우스 침대 위를 뒹굴고 있다. 예경 올리고 명상하다. 미수가루와 누룽지 불린 것을 아침으로 먹다.
다음 숙소로 이동할 준비를 해놓고 기다린다. 여행자는 기다림의 명수이어야 한다. 기다림, 그것은 바쁨의 틈새에 낀 여유이며, 여행의 고소한 맛이다. 삶이란 바쁨과 여유로 만들어진 샌드위치이다. 여유 있을 때는 사마타samatha를, 바쁠 때는 위빠사나vipassana를 닦는다는 말은 여유 있을 때 고요와 평화를 누리고 바쁠 때는 민활한 알아차림을 쓴다는 말이겠다. 물방울이 파도를 타고 바다를 떠다닌다.
농광영저인弄光影底人: 빛과 그림자를 희롱하는 주체적 자아
승경저인乘境底人: 경계를 타고 다니는 주체적 자아
착의저인著衣底人: 옷을 입고 있는 주체적 자아
모두 임제록에 나오는 용어인데, 알아두면 재미있다. 임제선사가 말한 주체적 자아란 業自性正見업자성정견kammasakata-sammaditthi와 통한다. ‘자신에 귀의하고, 자신을 섬으로 삼는다.’라 할 때의 그 ‘자신’을 말한다. 한마디로 정념정지를 견지하여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꼴을 말한다.
오후에 숙소를 차오프라야 강을 조망할 수 있는 숙소로 옮기다. 밀린 빨래하다. 보설스님께 답신이 오다. 포항 보경사 선원에서 동안거 결제중이시다.
2018년1월23일(화)맑음
새벽에 일찍 눈이 떠져 예경 올리고 명상하다. 별로 할 일이 없다. 새로운 곳에 처음 오면 눈과 귀가 번쩍 떠진다. 새로운 6境경을 만난 6根근이 들뜨기에 근과 경이 딱 딱 마주칠 때(觸)마다 好惡平等호오평등, 快不快無關心쾌불쾌무관심(苦樂捨)의 3受가 생생하게 생겨난다. 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애착과 혐오가 일어난다. 다시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탐진치는 증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보고 안 들으면서 방안에 처박힐 수는 없다. 넓고 큰 세상을 두루 둘러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지를 관찰해보면 자신의 약점과 장점이 다 드러난다. 견뎌야할 것을 견뎌야 하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야하며, 배울 것은 배워야 하고, 닦아야 할 것은 닦아야하고, 길러야 할 것은 길러야 한다. 산 속이나 방안에 틀어박혀 安心自足안심자족하면 무심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이때는 周遊天下주유천하, 隨緣放曠수연방광하면서 眞俗二諦진속이제에 자재한지 스스로 시험해봐야 한다. 안과 밖에서, 들어오나 나가나, 정념정지가 여여한가, 보리심이 확연한가? 환경이 좀 바뀌었다고 달라지고 흔들리는 수행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반성해본다.
2018년1월24일(수)맑음
그날이 그날인 하루가 흘러갔다. 무슨 기특함이 있으리오. 나날이 좋은 날,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이란 말이 유행한다. 말쟁이 말이다. 나날이 생멸할 뿐인데, 무슨 好日호일과 不好日불호일이 있겠는가? 사람들의 삶이 하도 괴롭고 무료하다하니까 달래주려고 禪師선사가 ‘날마다 좋은 날 아니겠느냐’ 며 달래준 것이다. 그대 아침에 일어나 아직 숨 쉴 수 있다면 좋은 날을 맞은 것이 고맙게 여기며 살아가라. 다시는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없는 때가 언젠가는 꼭 오고야 마느니.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2018년1월25일(목)맑음
귀국하다. 춥다. 서울에 하루 쉬다.
수행이 잘 됐다고 느껴질 때 다른 사람들의 허물이나 단점이 전보다 분명하게 눈에 띄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하려 하지 않거나, 흠을 잡아서 흉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수행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수행을 잘 하면 더 자비스러워지고, 남의 허물에 더 너그러워져서, 그 사람의 허물까지도 포용할 수 있게 되려고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 티베트 스승은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신다.
“This reminds me of how I used to behave. What I used to be, I am seeing in the other person now.
내가 흉보는 바로 저 사람이 ‘나도 한 때는 저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저 사람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흠을 잡고 흉을 보는 바로 그 사람이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닌가? 그대여,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굽혀서 자신에게로 향하여라.
2018년1월26일(금)맑음
진주로 돌아오다. 집 떠난 지 거의 한 달만이다. 더운 나라에 있다가 오니 추워서 벌벌 떨린다. 춥다 해도 crispy cold이기에 공기에 빠삭빠삭한 청량함이 깃든 추위이다. 회장님과 저녁 공양하고 돌아와 쉬다.
첫댓글 주인으로 산다는 것 주체적 자아로 산다는 것 자신에 귀의하고 자신을 섬으로 삼는다는 것 나-열림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연습하여 성장하는 한해를 발원해봅니다 스님의 말씀으로 지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나그네 길에서의 깊고 깊은 사유에 가슴이 아립니다
오늘 저희앞의 경전이 그 옛날 구법승과 역경사 님들의 목숨을 건 헌신 고행의 결과물임을 가슴에 새겨 경전의 한구절 한구절 법신으로 여기어 소중히 받으리라 ㅡ다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저희앞에 돌아와 주심에 부처님 정법의 가르침에
엎드려 절하옵니다
스승님~ 무사히 수행을 다녀오심에 감사드립니다. 인도 남부와 태국을 거쳐오는 길이 많이 힘드셨을텐데 잘 다녀오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스님의 온기가 따뜻합니다. _((()))_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