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號(호)는 나옹(懶翁)인데, 본 이름은 元慧(원혜)였다고 하며, 그의 아버지는 膳官令(선관령 : 궁중의 음식을 관리하는 직책)을 지냈다고 합니다. 출생하였고, 나이 스무 살 때 (1340년) 친구의 죽음을 보고 생에 의문을 가져서 功德山 (공덕산) 了然(요연) 스님께 出家(출가)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檜巖寺(회암사)로 가서 (1344년) 밤낮으로 수도하던 중 크게 깨치고 1348년 중국으로 가서 大都(대도) 法源寺(법원사) 에서 指空和尙(지공화상)을 親見(친견)하고 한 해를 머물렀다고 합니다. 碑石(비석)이 현존하고 있는데, 비석은 조선왕조 유학사상의 支柱(지주)였던 목은 이색이 撰(찬)하여 지금도 비문이 남아있다고 하며, 출생지 부근 경북 영덕군 창수면 雲捿山(운서산 해발520m)기슭 莊陸寺(장륙사)에는 고려 공민왕 때 건물과 건물 내벽에 그의 肖像畵(초상화)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비문이 남아 있으며, 그의 가송집과 비문을 한글로 해석한 서적으로 나옹록이 있고 연구서도 있다고 합니다.
寂(적)은 涅槃(열반)의 옮긴 말.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것만을 가리킴. 불교에서 주검을 화장한 뼈를 이르는 말. 한국불교로 昇華(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朝鮮太祖(조선태조)의 王師(왕사)였던 無學大師(무학대사)의 스승 이었다고 합니다.
靑山見我無語居 -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청 산 견 아 무 어 거
蒼空視吾無埃生 -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창 공 시 오 무 애 생
貪慾離脫怒抛棄 -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탐 욕 이 탈 노 포 기 水如風居歸天命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수 여 풍 거 귀 천 명
나옹선사 (1262-1342) ;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1339년 이웃 친구의 죽음에 무상을 느껴 출가한 후 중국 원(元)나라에서 지공화상(指空和尙)을 만나 2년간 수도(修道) 조선조 왕사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그의 제자 32명 중 한사람 1연 靑山兮要 我以 無語 (청산혜요 아이 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 要我以 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 而無憎兮 (료무애 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 如風 而終我 (여수 여풍 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2연 靑山兮要 我以 無語 (청산혜요 아이 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 我以 無垢 (창공혜요 아이 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 而無 惜兮 (료무노 이무 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 如風 而終我 (여수 여풍 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이 시의 작자에 대해서는 중국 당나라의 寒山스님이라는 설과 작자 未詳이라는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습니다. 孤舟(고주) 외로운 배 / 懶翁慧勤(나옹 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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