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이야기/靑石 전성훈
첫째 날(12/29), 32층 호텔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한다. 맑은 하늘에는 한가로이 구름이 흘러간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앞이 탁 터진 옥상에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주위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식사한다는 게 정말로 꿈만 같다. 내 삶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애초 오늘은 산호섬에 가려고 했는데 해상 상태가 좋지 않아서 페리호가 뜨지 않는다고 한다. 달리 대안이 없어 호텔 수영장 장의자에 수건을 깔고서 햇볕을 쬐고 지나가는 바람을 즐기다가 낮잠을 잔다.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루해지면 숙소에서 하는 일 없이 말 그대로 그냥 빈둥거리며 푹 쉰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그 자체이다. 마냥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은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이라 가능하다. 그렇게 한낮을 보내고 저녁에 베란다에서 바다로 지는 석양 모습을 찍어서 형제 모임 카톡방에 올리니 멋있다고 한마디씩 한다.
둘째 날(12/30), 열대 식물원과 동물 모형을 전시하며 코끼리 쇼를 하는 눙눅빌리지를 찾아간다. 호텔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어린이들에게 환영받는 장소이다. 각종 동물 모형 동산을 간이차량을 타고 구경하고 20여 마리 코끼리가 하는 쇼를 보면서 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성으로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바나나를 주면 날름 코로 받아서 입에 넣고 지폐를 주면 주인에게 전달하고, 고맙다고 소리를 내면서 재롱 피우는 코끼리의 동작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코끼리 모습을 보면서 저토록 자연스럽게 동작하도록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았을까 생각하니 인간의 행위에 머릿속이 무거워진다. 숙소로 돌아와 해변에서 벌이지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니 멋지다. 호텔 32층 옥상에 올라가 파타야 밤 경치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다.
마지막 날(12/31), 올해 마지막 날이자, 내가 태어난 날이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쌀국수를 먹었더니 오늘은 그 맛이 별로이다. 며칠 맛있게 잘 먹었는데 참으로 사람의 입맛이 짧고 간사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 쉬다가 짐을 정리하여 호텔 로비에 맡기고 외출한다. 근처 마사지숍에서 마지막 발 마사지를 받고, 햇볕이 따갑게 쏟아지는 길을 걸어서 해변으로 간다. 이탈리안 식당에서 이름 모르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해변 파라솔에 앉아서 모래 놀이를 하고 파도에 발을 담그는 손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택시를 타고 방콕공항으로 향한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공항에 도착하여, 한 시간 가까이 여행사 창구가 열리기를 기다린다. 출국 절차를 마친 후, 공항 라운지에서 음식을 먹으며 쉰다. 비행기는 새해 첫날이 시작되고 조금 지나 출발하는 야간비행이다. 공항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하려면 약간 번거로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국 한 달 전까지 신용카드 대신에 체크카드로 한 달 동안 30만 원 이상 사용해야 한다. 은행 계좌에서 신용카드보다 최소한 한 달 먼저 현금이 빠져나간다.
따사로운 나라를 찾아서 연말에 떠난 7박 9일간의 여행, 긴 여정도 아니고 짧지도 않은 알맞은 여행이다. 목적지까지의 비행시간도 적당하고 게다가 자유여행이라서 빡빡한 일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육신이 피곤하다. 아무래도 세월 따라 흘러 가버린 청춘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여행은 어디를 가든지 하루라도 젊은 날에 하는 게 모범 답안인 것 같다. 집을 떠나면 음식과 잠자리, 잠자는 시간과 분위기가 변해 나이가 들수록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조만간 육신이 더 쇠약해지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날이 찾아오겠지. 고되고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때 또다시 길을 떠나 나그네가 되고 싶다. 함께한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2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