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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서문*
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역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내가 여러분에게 이 책을 보여드리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고, 또 여러분이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알게 되면 이 책을 보호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런 바람에서 나는 이 책이 의도한 바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신과 영혼에 관한 문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을 통해 논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 신은 현존한다는 것을 우리 신자들은 신앙에 의해 충분히 믿을 수 있지만, 비신자들은 이 두 가지 것이 먼저 자연적 근거에 의해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종교나 도덕상의 덕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덕행보다 악행이 대접받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내세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것보다는 당장 이득이 되는 것을 대부분 선택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성서가 신의 현존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신이 현존한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가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므로 성서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신앙은 신의 선물이므로, 다른 것을 믿도록 은총을 내리는 신은 자신의 현존을 믿게 해주는 은총 또한 우리에게 내려 줄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렇지만 비신자들은 이를 순환 논증이라 하면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러분이나 다른 신학자들도 신의 현존은 자연적 근거에 의해 증명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 또 신은 피조물보다 훨씬 더 쉽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이처럼 쉽게 인식되는 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함이 성서에서 추론된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바도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혜서] 제13장에 나와 있는 말씀으로 보아 분명합니다. 즉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들이 세상의 것을 찬미할 만큼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만든 주를 어찌 찾지 못하겠는가?” 그리고 [로마서] 제1장에는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같은 곳에 있는 “신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도, 신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정신에 나타나 있는 근거만으로도 밝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이 어떻게 해서 이러하며, 또 어떤 길에 의해 신은 피조물보다 더 쉽고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영혼에 관해서는, 그 본성을 탐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적인 근거에서는 영혼은 신체와 동시에 소멸되며, 신앙에서만 단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레오 10세가 주재한 제8차 라테란 공의회는 이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또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에게 이런 사람의 주장을 논파하고, 전력을 다해 진리를 증명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도 이 작업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이 현존한다는 것, 인간 영혼이 신체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이유로 이 두 가지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비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물론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수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 두 문제와 연관해서 제시한 근거들 대부분도 제대로 이해되기만 하면 증명력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이와 관련해서 제시될 수 있는 근거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두 제시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번은 이 근거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면밀히 찾아내어 정확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논증임을 모든 사람이 앞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철학에 있어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내가 학적인 난제를 풀 수 있는 어떤 방법을 계발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진리보다 더 오래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므로 이 방법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 방법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서는, 이 일도 한 번 해보라고 간청하길래 나름대로 해보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내가 해낸 것은 모두 이 논고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논증하는데 요구되는 다양한 근거들을 모두 모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아주 확실한 근거가 전혀 없을 경우에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단지 제일의, 주요 근거들만은 따라갔으며, 이제 이것들을 가장 확실하고 명증적인 논증이라고 주장하려 합니다. 부가해서 말한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인간 정신에게 열려 있지 않을 정도로 이것들은 훌륭한 것입니다. 평소 내 습관보다 더 진솔하게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일이 중요하고, 또 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신의 영광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근거들을 확실하고 명증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다 애해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정은 기하학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기하학에 있어서 아르키메데스, 아폴로니우스, 파포스 및 다른 많은 사람들은 많은 논증을 남겨 놓았으며, 또 심지어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명증적이고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논증 자체에는 쉽게 인식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또 귀결이 전제와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논증도 기하학적 논증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확실하고 명증적인 것이지만, 이것을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우선, 이 논증 역시 다소 길고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무엇보다도 그것은 선입견에서 벗어난 정신을, 감각의 속박을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정신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는 형이상학적 연구에 적합한 사람이 기하학적 연구에 적합한 사람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기하학에서는 확실하게 증명될 수 없는 것은 결코 기술되지 않는 법이라고 누구나 믿고 있으므로, 기하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참된 논증을 거부하는 과오보다는 알고 있는 척하기 위해 거짓된 논증을 받아들이는 과오를 더 자주 범합니다. 그러나 철학에 있어서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어떤 문제든 두 편으로 갈라져 논쟁될 수 있다고 누구나 믿고 있으므로, 극소수의 사람만이 진리를 추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가장 훌륭한 것을 공격함으로써 뛰어난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제시하는 근거들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그것은 철학에 속하는 것이며, 그래서 여러분이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모든 사람은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학부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고, 또 소르본이라는 이름은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성한 공의회를 제외하고는 신앙 문제에 있어 여러분의 학부만큼 신뢰를 받고 있는 단체는 없으며, 나아가 세속적인 철학에 있어서도 여러분의 학부 이상으로 예리하고 견고하게 또 공평무사하고 지혜롭게 판단을 내리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선 이 책의 잘못된 점을 고쳐 주시고----나 스스로도 내 자신이 어리석고 무지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는 장담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빠진 것이 있으면 첨가해 주시고, 불완전한 것은 완전하게 해주시며, 설명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작업은 여러분이 직접 해도 되고, 아니면 알려 주면 내가 직접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에서 제시된 근거들은 아주 엄밀한 논증으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될 수 있 다고 나는 확신하며, 이렇게 된 다음에는 여러분이 이것을 세상에 선언하고 증언해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로써 신과 영혼에 관한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오류는 조만간에 사람들의 머리에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마지 않습니다. 진리 자체가 재능 있고 박식한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판단에 쉽게 동의하도록 할 것이며, 또 여러분이 갖고 있는 권위는 학식과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거만하기가 일쑤인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이에 반대할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나아가 아마 이 책에 있는 근거들이 모든 사람에게 논증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보고서는 자신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스스로가 그것을 변호하려고까지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결국 이런 많은 증거들을 쉽게 믿게 될 것이며, 신의 현존에 대해 또 인간 영혼과 신체의 실재적 상이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는 말할 수 없는 지혜를 지닌 여러분 스스로가 가장 잘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가톨릭 교회의 강한 버팀돌이었던 여러분에게 신과 종교에 대해 더 말한다는 것은 나에게 걸맞지 않는 짓입니다.
독자를 위한 서언
신과 인간 정신에 관한 문제는 이미 1637년에 프랑스어로 출판된 {이성을 올바로 지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물론 거기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고, 단지 문제성을 지적하여 이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들어보고, 나중에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지를 알고자 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이 문제는 한 번만이 아니라 재차 논의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문제를 논하면서 따랐던 길은 거의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길이었고, 또 일상적인 관습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으므로 이 문제를 프랑스어로 쓰여져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책에서 자세히 논한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둔한 사람들도 내가 따랐던 길을 똑같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기에 말이다.
앞에 언급한 책에서 내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한 바 있지만, 주목할 만한 반론은 두 가지 정도였다. 그래서 위의 문제를 자세히 논하기에 앞서, 우선 이 두 반론에 대해 짧게 대답해 보겠다.
첫째 반론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는 인간 정신은 자신이 사유하는 것이라는 사실 이외에 어떤 것도 지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 그 본성 혹은 본질이 오직 사유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오직이라는 말이 영혼의 본성에 속할 수 있는 다른 나머지 것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반론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 역시도 사물의 진리 순서에 따라----물론 이때 나는 이 질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으며----다른 나머지 것을 배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지각의 순서에 따라 그렇게 한 것 뿐이었다. 이는 내가 내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나는 사유하는 것, 즉 사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 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다른 어떤 것도 내 본질에 속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다른 어떤 것이 실제로 내 본질에 속하지 않음이 어떻게 귀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여줄 것이다.
두 번째 반론은,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의 관념을 내가 갖고 있다는 것에서 이 관념이 나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 더구나 이 관념에 의해 표현된 것이 현존한다는 것은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이때 관념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관념을 질료적으로, 즉 ‘지성의 작용으로’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관념이 나보다 더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념을 표상적으로, 즉 ‘지성의작용에 의해 표현된 것으로’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표현된 것이 비록 내 외부에 현존한다고는 가정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그 본질로 인해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완전한 사물의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서 이 사물이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이외에 나는 두 편의 아주 긴 비판문을 읽어 보았는데, 이것은 위의 문제와 연관된 내 근거들보다는 내 결론들을, 그것도 무신론자의 상투적인 논증을 빌려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증은 내 근거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의 판단력은 약하고 비뚤어져 있어 처음에 들었던 것이 아무리 잘못되고 비이성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먼저 들었던 견해로 판단이 기울어지지, 나중에 들은 반박이 아무리 참되고 견고한 것일지라도 판단을 내릴 때에 나중의 것은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저 논증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서는 그 비판문에 대해 답하지 않겠다. 나는 다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 두겠다. 신의 현존을 논박하기 위해 무신론자들이 통상 제시하는 모든 근거는 신에게도 인간의 정념이 있다고 날조하거나, 아니면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우리 정신에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우리 정신은 유한한 반면 신은 파악될 수 없고 무한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의 반론은 그리 고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견해를 알게 된 지금, 나는 다시 여기서 신과 인간 정신에 관해 자세히 고찰해 보고, 동시에 제일철학 전체의 토대를 다루어 볼 참이다. 이 일을 함에 있어 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을, 또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진심으로 나와 더불어 성찰하며, 자신의 정신을 감각으로부터,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고 또 떼어 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근거들의 순서와 연관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흔히 그렇듯이 개개의 어구에 매달려 흠잡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별로 소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어쩌면 여러 대목에서 트집잡을 기회를 노리겠지만, 나를 결코 궁지로 몰 수 없을 것이고, 대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어떤 반론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과는 다른 류의 사람에게 모든 점에서 그들을 만족시켜주겠노라고 약속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곤란을 야기하는 것을 모두 내가 예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에 대해 과신하지 않고 있다. 나는 우선 확실하고 명증적인 진리 인식에 도달했다고 나를 설득시킨 사유과정을 이 성찰에서 개진하고, 나를 설득시킨 근거들이 다른 사람들도 설득시킬 수 있는지를 살펴 보겠다. 그런 다음 이 책이 인쇄되기 전에 내가 검토를 의뢰했던 몇몇 사람이 제기한 반론들에 대해 답해 보겠다. 그런데 이들이 제기한 반론은 그 수도 많고 종류도 각양각색이어서 의미 있는 모든 반박은 아마 이미 이 반론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의 반론과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을 모두 읽기 전에는 이 책에 대해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기를 독자들에게 간청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