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강좌- 청와대/ 경무대 시절의 청와대 지역
2023.10.13.(금) 13:00 서울역사편찬원에서 하반기 서울역사강좌 5강, ‘경무대 시절의 청와대 지역’(강사: 류상진/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 강의를 들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으로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았지만 그 기쁨은 짧았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한반도는 분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군정 하에서 경무대는 주한미군정 사령관인 존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이후 1948년 정부 수립되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게 되었다. 경무대에 얽힌 역사의 시간 거슬러 올라가 당시 상황 돌아보며 그 의미와 교훈 새겨보는 기회를 누렸다. 매우 감사^^
경무대(景武臺)
2022년 5월 9일까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청와대의 옛 명칭
출처 : 다음백과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있다. 속칭 '효자동 1번지' 또는 청기와 지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푸른 기와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연무장·과거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집은 그동안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그때마다 명칭도 바뀌었다. 원래 이 집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던 1937년 5월 7일 '조선총독관저'로 건축되었다. 일제는 조선민족의 혼이 담겨져 있는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운 다음, 경복궁 뒤에 총독관저를 지었던 것이다.
이 집의 최초 주인은 일제의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였다. 그후 일제의 8, 9대 총독이 이 집에 머물렀는데 8·15해방과 더불어 그 주인도 바뀌었다. 1945년 9월 8일 남한 주둔군 사령관으로 서울에 도착한 J.R. 하지 중장이 이 집에 들어와 1948년 8월 24일 3년여 동안 이 집에서 거주했다. 이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대통령으로 피선된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후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8일 이 집을 떠날 때까지 12년 동안 '경무대'라 불렸으며,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조선총독부에서 중앙청으로 그리고 철거되기까지ㅣ경무대와 청와대ㅣ광화문 수난과 복원
https://youtu.be/DoTO8b9Fr68?si=9EhO2rKXjyuZ_1Qa
‘권력의 상징 공간’ 청와대 영욕의 74년 / KBS 2022.03.27.
https://youtu.be/jJreuted_7M?si=71uSjyrqCXRVWDVv
대한뉴스 제 210호-경무대 개방
https://youtu.be/py9R0lYDmXM?si=bi9SB1ZZ-GQmUEb7
10.6.(금) 식민지기 경무대 총독관저 이야기(전영욱/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2023 서울학 공동 심포지엄
(광복 후 수도 서울의 정체성, 그리고 미래)
2023.10.26.(목) 10:30~18:00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