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비요(秘窯)
강남주 지음|소설로 읽는 역사 4|153×214×17 mm|296쪽
16,800원|ISBN 979-11-308-1831-3 03810 | 2021.11.5
■ 도서 소개
비밀의 가마, 비요에 갇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 사기장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강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비요(秘窯)』가 푸른사상에서 <소설로 읽는 역사 4>로 출간되었다. 정유재란 직후, 일본의 깊은 산속으로 납치되어 도자기를 굽는 비밀의 가마, 비요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채 명품 도자기만 굽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조선 사기장들의 발자취를 이 소설에서 찾아낸다.
■ 작가 소개
강남주
경남 하동 출생. 부산수산대학교와 부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 부경대학교 교수, 총장을 지냈다.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동북아문화학회장,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일공동등재 한국측 학술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반응의 시론』 등 20여 권이 있다. 근정훈장 청조장, 부산시 문화상, 봉생문화상, 한일문화교류 기금상 등을 받았다.
■ 목차
작가의 말
1. 초저녁에 일어난 일
2. 퇴로를 틔워주다
3. 포로가 된 사기장들
4. 어디로 끌려가는가?
5. 피로 물든 사천벌
6. 최후의 일전
7. 낯선 땅은 북새통
8. 또 다른 배를 타고
9. 아름다운 항구, 지옥의 입구
10. 다시 한 묶음으로 옮기다
11. 흙과 불의 극적인 만남
12. 신기의 눈과 손
13. 순왜들이 사는 길
14. 악운과 행운 사이
15. 흙 속과 바람 속을 돌다
16.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17. 오름가마
18. 바위가 태토로
19. 산속에 들어선 가마단지
20. 닫힌 산속에서
21. 정교하게, 더욱 정교하게
22. 달항아리를 만들다
23. 비밀이 외출하다
24. 비요의 명품들, 수출선을 타다
25. 바람으로 된 비석
■ 출판사 리뷰
바야흐로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 정복의 야욕과 함께 조선을 침입하여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임진왜란을 둘러싼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협상이 결렬된 후, 1597년 정유재란이 터지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납치되고 만다. 특히 조선 도공들을 납치하여 일본의 토기보다 훨씬 질 좋은 조선의 도공 기술을 약탈하고자 했다. 강남주 작가는 도자기를 굽는 비밀의 가마, 비요(秘窯)에 갇혀 평생 세상과 단절된 채 명품 도자기만 굽다가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린 조선 사기장들의 비극적인 서사를 이 소설집에 소환한다.
정유재란 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급사하면서 퇴각선에 오른 왜군과 그들에게 부역한 순왜(順倭)는 조선 사기장들을 끌고 가는 데 정신없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삼룡 역시 백련리 사기골에서 납치되어 다른 사기장들과 함께 일본의 깊은 산속으로 끌려간다. 돌고 돌아 아리타, 이마리 등지에 도착한 조선의 사기장들은 도자기를 만들 흙조차 없는 이곳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명품 도자기를 빚으라고 강요당한다. 불모지와도 같던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를 찾고 가마를 만들어 고급 도자기를 빚는 데까지, 혼신을 다한 조선의 사기장들의 생애는 어떠했을까.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오로지 도자기를 빚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그들의 발자취를 이 소설집에서 찾아낸다.
작가는 쓰시마를 포함한 일본 각 지역을 150번 넘게 방문했을 정도로 한일문화교류의 속살을 탐구하는 일에 평생을 보냈다. 조선통신사 사행선 선장으로 발탁된 동래의 무명화가 변박의 257일간의 파란만장했던 항해와 그때 그린 그림의 행방을 추적한 장편소설 『유마도』에 이어, 4년에 걸친 치열한 현장 취재를 거쳐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이 바로 『비요』이다. 이 소설은 정유재란 때 피랍된 조선 사기장의 삶을 탐구함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쟁의 의미를 묻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과거는 절대 과거가 아니다. 해석된 과거다. 그런 기록 속에 미시적인 참된 가치는 매몰되어버리기도 한다. 현재의 역사는 그런 것들을 다시 조명한다. 그리고 해석의 연역적 방법을 발굴하기도 한다. 구름 속의 흐릿한 빛을 통해 읽었던 과거의 역사는 현재와 대화하면서 다시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미래에 편입된다. (중략)
한일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 일본의 깊은 산속에서 평생 도자기만 빚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그때의 사기장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들은 오늘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던 그들의 생애를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그들을 다시 소환한 이유다.
■ 작품 속으로
사기골이나 그 주변 가마터 몇 곳에서는 분청사기, 상감백자, 철화백자 같은 고급품 도자기도 구웠다. 그래서 이 일대는 일본까지도 소문이 났었다. 희한하게도 왜병들은 값싼 막사발에 특히 사족을 못 썼다. 그런 것은 백련리 가마를 비롯해서 이 근처 아무 데서나 언제든지 쉽게 구워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평소에는 잘 굽지도 않는 것들이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터진 정유년 난리에서는 지난번 임진란 때보다 왜병들이 별나게 가마터를 더 샅샅이 들쑤시고 다녔다. 정보에 밝은 순왜들을 앞세워 숨어 있는 사기장들까지도 찾아내 모조리 잡아갔다. 지난번 임진란이 덮친 뒤 얼마쯤 지나고 나서야 이곳은 겨우 조용해졌었다. 전쟁이 멎었다는 소식에 피해 있던 사기장들도 가족을 찾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용했던 것도 잠시, 이번에 또다시 난리가 터졌다. 그런 판에다 순왜들이 더 설쳐댄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끔찍한 소문이 나돌자 사기장들의 그림자는 이번에도 또 가마 주변에서 사라져버렸다. 진제포도 고깃배 몇 척만이 겨우 들락거릴 뿐 다시 조용한 갯가로 변하고 말았다.
(19~20쪽)
순왜는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온 일행을 창고 뒤 빈터로 끌고 갔다. 거기서 차례대로 묶여 있는 밧줄을 모두 풀어주었다. 상상도 못 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뜻밖의 일은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 상황이었다. 삼룡이는 비로소 지금까지와는 다른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너희들은 포로가 아니고 사기장이다. 나베시마 영주님의 특별 지시로 포로에서 풀려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영주님의 영지로 갈 것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잘 해야만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릴 것이다. 알겠지.”
순왜는 뜻밖의 말을 지껄였다. 모두들 그 말을 듣고도 입을 다물고 서 있을 뿐이었다. 느닷없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신기한 사건이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영주님의 영지에 가면 너희들은 모두 조선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하게 될 것이다.”
(96쪽)
가마 짓기가 끝나도 흙이 없어 사기장들의 마음이 뒤숭숭했던 바로 그 무렵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상병이 드디어 백자토를 찾아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다. 그것도 아리타의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 하나가 통째로 백자토가 엉겨 붙은 뭉치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가. 시험 작업에서 성공까지 거뒀다고 했다. 아리타의 큰 바위 하나라면 그것은 작은 산 하나에 버금가는 크기다. 이 믿기 어려운 소식에 오카와치야마는 들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