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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늘재~밤티재~문장대~속리산 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 삼거리)(260405. 일)(낙동산악회 20기 - 20구간)
□ 때 : 2026. 09 06(일)
□ 곳 : 늘재~밤티재~문장대~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 삼거리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8명(회장 제외)
□ 날씨 : 흐린 뒤 새벽~아침 사이 비 내림. 낮에는 햇볕
□ 길 : 돌길+바윗길, 푸석돌 길, 널빤지 계단 길, 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6. 09. 06(일) 01:48~13:42(11시간 54분, 쉰 시간 포함)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2026. 9. 6(일) 01:48 늘재(380m-‘푯말’) 나섬.
○ 02:48 692.2m, 작은 봉우리
○ 03:12 밤재[밤티재]
○ 04:00~04:12 머묾, 과일
○ ??~?? 바위 구간
※ 05:40쯤부터 비 내리기 시작.
○ 06:12 헬기장
○ 06:14~06:17 문장대 발치, 문장대 바로 아래, 문장대 푯돌 있는 곳. 머묾.
○ 06:20~06:23 문장대(1028m-‘김형수’, 1054m-‘푯말’), 머묾.
○ 07:03~07:35 신선대(1026m-‘푯돌’), 아침밥
○ 07:35 「법주사 · 경업대」 갈림길
○ 07:55 「킹콩바위」(?)
○ 08:06 「천왕석문」
○ 08:31 「장각동」 갈림길,
○ 08:43~08:56 천왕봉(1058m-‘푯돌’), 머묾.
○ 09:11 「도화리 · 형제봉 갈림길」, 「도화리 안부」,
○ 10:00~10:13 작은 봉우리, 머묾. 과일
○ 12:17 피앗재(614m), 「만수리 갈림길」
○ 12:34~12:43 형제봉(832m-‘푯돌’), 머묾.
○ 13:00~13:06 갈령 삼거리,
○ 13:40 헬기장.
○ 13:42 갈령(葛嶺)(445m-‘푯돌’), 산행 끝.
늘재
오길 잘 했군....
문장대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문장대
신선대
신선대 매점
신선대
이른바 '킹콩바위'
아픔을 딛고 삶을 이어가는 나무
천왕봉
도화리 갈림길
참취
사진이 흐릿하다
피앗재로 가면서 뒤돌아본 속리산
피앗재
피앗재는 만수리 갈림길이기도 하다
당삽주
흔히 '창출' 이라고 한다
꽃이 핀 단풍취
당삽주
산앵두
산앵두나무라고도 한다
우산나물
꽃이 핀 우산나물
며느리밥풀
형제봉에서 뒤돌아본 속리산
갈령
갈령
옛날에 칡넝쿨이 많았던 고개였던가?
□ 줄거리(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6. 9. 6(일) 01:35쯤 버스가 늘재(380m-‘푯말’)에 닿았다.
늘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을 연결하는 32번, 49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고, ‘길게 늘어진 고개’”를 뜻한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깜빡 잠이 들었다가 기사 님이 차 안에 불을 켜는 바람에 잠이 깨, 허겁지겁 길 나설 채비를 했다.
04:48쯤 늘재를 나서 1시간쯤 뒤 692.2m 봉우리로 짐작되는 곳에 닿았고(02:48), 여기서 가파른 내리막을 24분쯤 걸어 밤재[밤티재]에 닿았다.(03:12)
밤재에서 문장대까지 구간은 출입이 금지된 ‘금단의 땅’이다.
무슨 큰 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살금살금 철조망 아래를 지났다.
내 나라에 들어서서는 안 되고, 걸어서도 안 되는 ‘금단의 땅’이 있고, 우리는 법이나 규정을 어긴 꼴이 되어 도둑고양이처럼 ‘금지된 땅’을 밟고 걸어야 했다.
이럴 때는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그냥 「밤재」라고 하면 간단할 것을 「밤티재」라는 글자 한 자가 더 들어간 이름도 갖고 있다.
실은 그것도 한자를 숭상하는 풍토에서 나온 이름이 아닌가 싶다.
치(峙)는 ‘우뚝 솟을 치’로 높게 솟은 언덕 따위를 일컫는다. ‘치’(峙)가 ‘티’로 변하고, 그래서 ‘밤치’에 고개를 뜻하는 ‘재’를 붙여 「밤티재」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든 「밤재」는 옛날에 밤나무가 많아, 밤이 흔했던 고개가 아니었나 짐작한다.
캄캄한 밤에, 그것도 살금살금 빨리 지나가야 했으므로 그곳 일대에 밤나무가 많은지 확인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밤티재」에서 48분쯤 걷다가 사람이 앉을 만한 터를 잡고 잠깐 쉬면서 과일을 먹었다.
12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섰다.
기록하지 않아 시간을 알 수 없지만 04:40쯤부터 크고 작은 바위가 나타났고, 바위에는 가느다란 밧줄이 걸려 있어, 위태로워 보였지만 오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마 1시간 반쯤 바위 지대를 오르고 내렸을 것이다.
05:40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등 가방에 얇고 가벼운 비옷이 있었으나 바위 지대에 쓸려 비옷에 구멍이 날까 봐 입지 않았다.
제법 비싼 비옷이라 아끼는 마음에서 그랬다.
비가 내리니 바위 지대는 미끄러웠다.
앞선 순이, 승승장구, 쏘롱라, 유도사 님이 등 가방과 지팡이를 받아 주고, 발 디딜 곳을 알려주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내리막 ‘개구멍’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짐작했는데, 마지막으로 내리막 개구멍을 지나고 06:12쯤 헬기장에 닿았다.
헬기장에서 2분쯤 뒤 문장대 푯돌이 서 있는 문장대 발치에 닿았다.(06:14)
3분쯤 머물다 문장대로 올랐다.
비에 젖고 바람이 세게 부는 쇠계단을 3분쯤 올라 문장대에 닿았다.(06:20)
추위에 떨고 있는 유도사 님과 사진을 찍고 문장대를 되돌아 내려섰다.(06:23)
문장대(1054m-‘푯말’)는 “속리산을 대표하는 자연 경관 중 하나로 산 정상에 바위로 석대를 쌓아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봉우리(1054m)로, 본래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불리었으나,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신하들과 강론을 하고 시를 읊었다고 하여 문장대(文藏臺)라고 바뀌었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문장대 높이를 1028m라고 기록한 책도 있다.《김형수, 「한국 400산행기 등산길 안내」, 깊은솔》
문장대를 내려서 비옷을 꺼내 입었다.
문장대에서 40분쯤 뒤 신선대(1026m-‘푯돌’)에 닿았다.(07:03)
정확하게는 신선대 아래 매점에 닿았다.
순애 님이 컵라면을 시켜 따뜻하게 아침을 먹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신선대는 문장대에서 1.1km, 천왕봉까지는 2.3km 거리다.
따뜻한 컵라면을 먹고 신선대를 나서(07:32) 3분쯤 뒤 「법주사·경업대」 갈림길에 닿았다.(07:35)
이 갈림길에서 20분쯤 뒤 ‘킹콩’ 형상을 한 바위에 닿았다.(07:55)
이른바 ‘킹콩바위’에서 11분쯤 뒤 「천왕석문」에 닿았다.(08:06)
「천왕석문」에서 25분쯤 뒤 「장각동」 갈림길에 닿았다.(08:31)
이 갈림길 바로 왼쪽에 작은 헬기장이 있다.
이 갈림길에서 12분쯤 뒤 천왕봉(1058m-‘푯돌’)에 닿았다.(08:43)
천왕봉에서 형제봉까지는 7.1km 거리다.
13분쯤 머문 뒤 천왕봉을 나서(08:56) 15분쯤 뒤 「도화리·형제봉」 갈림길에 닿았다.(09:11)
이 갈림길은 천왕봉에서 0.6km, 형제봉까지는 6.5km 거리다.
이 갈림길에서 49분쯤 뒤 작은 봉우리에 닿아(10:00), 과일을 먹으면서 쉬었다.
13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서(10:13) 1시간 13분쯤 뒤 ‘속리 16-09’라는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았다.(11:26)
이곳에 세워둔 길 푯말이 땅에 떨어졌는데, ‘↑형제봉 2.0km, ↑피앗재 0.5km’ 인 것을 누군가 ‘↓피앗재 0.5km’ 날개를 천왕봉 쪽으로 돌려놓아 헷갈리게 한다.
내가 바로 돌려놓을 것을 그냥 지나쳤다.
「도화리·형제봉」 갈림길에서 3시간 6분쯤 뒤 「피앗재」(614m)에 닿았다.(12:17)
천왕봉에서 피앗재에 이르는 길은 처음에는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고, 도화리 갈림길에서 피앗재에 이르기까지는 올망졸망한 봉우리에 올랐다 내려서기를 네댓 번 반복하는 지루하고, 나그네를 지치게 하는, 이렇다 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길이다.
피앗재는 「만수리」 갈림길로 천왕봉에서 5.6km, 만수리까지 1.0km, 형제봉까지 1.5km 거리다.
12년 전 충북 알프스 구간을 걸을 때 구병산~신선대~형제봉~피앗재를 거쳐 만수리로 내려간 적이 있다.
「피앗재」에서 17분쯤 뒤 「형제봉」(832m-‘푯돌’)에 닿았다.(12:34)
피앗재에서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고, 마지막에는 밧줄이 걸린 곳이 두어 곳 있다.
형제봉은 대간 길에서 여러 번 올랐던 봉우리다.
큰재나 화령 쪽에서 갈령 삼거리로, 또는 늘재나 밤재에서 갈령 삼거리로 걸을 때 꼭 들렀던 곳이다.
같이 걷는 사람이 없어 푯돌만 찍고 가려 했는데, 다행히 승승장구 님이 있어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9분쯤 머문 뒤 형제봉을 나서(12:43)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선 뒤 짧은 오르막 뒤 갈령 삼거리에 닿았다.(13:00)
형제봉에서 17분쯤 걸렸다.
삼거리에는 버섯을 따는 나그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리한 도구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멧돼지도 잡겠습니다.”하고 농담했다.
승승장구 님이 버섯 따위를 주제로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했다.
갈령 삼거리에서 갈령까지는 1.3km 거리다.
6분쯤 머문 뒤 갈령 삼거리를 나서(13:06) 34분쯤 뒤 작은 헬기장에 닿았고(13:40), 작은 헬기장에서 2분쯤 뒤 갈령에 닿아(13:42) 산행을 마쳤다.
갈령 삼거리에서 갈령까지 1.3km 거리를 걷는 데 36분쯤 걸렸다.
밤재에서 문장대 사이 구간에는 까다로운 바위 구간이 제법 있다.
10년도 더 지난 옛날에는 바위 구간에 Y자 형태로 생긴 나무에 가지 몇 개가 날개를 친 나무를 세워 놓아 오르기가 수월했다.
2024년에 걸을 때 보았더니 그 나무가 없어졌다. 바위 오르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나무는 삭아 누군가 치웠을 것이다.
그 나무가 없어져 불편했고, 아쉬웠고, 그 나무 생각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밧줄이 하나같이 가늘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손아귀에 묵직하게 잡히는, 굵고 튼튼한 밧줄이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
바위 구간에, 비까지 내려 미끄러웠다.
정강이와 팔꿈치가 바위에 쓸려 상처가 났다.
갈령 버스에서 ‘후시딘’과 반창고를 내어주고 주선한 서연 님과 또 다른 님, 무쏘꿈 님,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준 나무그늘, 왕서방 님 등 여러분께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김정호 회장 님, 기사 님, 권재구 · 네오 · 심민철 대장 님, 청보리 총무 님과 대원들 수고 많았다.
점심 밥값과 술값을 계산한 무쏘꿈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맛있는 과일을 나눠준 순애 님, 과일과 꿀맛 같은, 얼린 젤리를 나눠준 승승장구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가래나뭇과 갈래: 가래나무, 굴피나무[구종나무]
○ 녹나뭇과 갈래 :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마편초과 갈래 : 누리장나무
○ 목련과 갈래 : 함박꽃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잣나무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 운향과 갈래 : 초피나무[제피나무]]
○ 인동과 갈래 : 병꽃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서어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마가목[남등(南藤), 석남등, 정공등], 산딸기나무[산딸기], 산벚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산앵두나무, 꽹나무, 당채, 산이스랏나무, 이스랏나무, 천금동], 진달래나무,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신갈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노간주나무
○ 층층나뭇과 갈래 : 층층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노박덩굴,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식물
○ 볏과 갈래 : 대[대나무], 신우대[시누대], 조릿대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구절초, 단풍취, 당삽주[용원삽주, 참삽주, 창출], 서덜취(?), 우산나물, 참취
○ 꿀풀과 갈래 : 오리방풀(?)
○ 닭의장풀과 갈래 : 닭의장풀[달기씨깨비, 계거초, 계장초, 번루(蘩蔞)]
○ 두릅나뭇과 갈래 : 땅두릅[독활}(?)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비비추, 원추리
○ 봉선화과 갈래 : 물봉선화
○ 산형과 갈래 : 기름나물(?),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앵초과 갈래 : 까치수염
○ 장미과 갈래 : 산오이풀, 짚신나물
○ 제비꽃과 갈래 : 알록제비꽃
○ 질경잇과 갈래 : 질경이
○ 천남성과 갈래 : 천남성
○ 현삼과 갈래 : 며느리밥풀,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단속 구간 유감
백두대간 길 몇 곳이 ‘출입 금지’ 구간이다.
산림청에서 대간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예약제‘로 인원을 한정하거나 아예 입장료를 받고 대간 길을 마음 편하게 걷게 하는 시책을 펼쳤으면 좋겠다.
백두대간 등산로만 개방하고, 그 밖에는 철저히 출입을 막되, 내·외국인에게도 개방하되 입장료는 받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소개하면 안 될까?
그리하여 대간 길 걷는 사람들이 ’범법자‘ 취급을 안 받고 우리 땅을 편하게 걸을 수는 없는 것인가?
늘 아쉽고 불편한 마음을 억누른다.
2. 속세를 떠나...
속리산은 ”속세로부터 떠나 온 산”을 뜻한다고 한다.
속리산은 ’법주사‘란 크고 유명한 절을 품고 있다.
꼭 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름에서도 경건함과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속리산에 들면 세상 온갖 번뇌와 번다함, 사랑과 미움, 지지고 볶는 아귀다툼, 온갖 욕심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신선한 공기를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다.
3. 비 올 확률 10%
토요일. 뒷산에 잠깐 올랐다가, 낮에 모임에 가서 횟집에서 몸보신하고, 찻집에 들러 한 시간쯤 흰소리 · 헛소리 지껄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저것 챙기다가 산림청 ’산악 기상정보 시스템‘에 들어가 속리산 날씨를 보았다.
’9/6(일) 12:00~15:00까지 비 올 확률 10%‘ 라고 했다.
확률 10%라니 비는 거의 오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새벽부터 18:00까지 기온이 15~19℃쯤 되었다.
바람이 불면 조금 서늘하겠다 싶어 여름 셔츠 아래 등산용 러닝셔츠까지 입었다.
늘 하던 대로 등 가방에 비싼(?) 비옷을 챙겨 넣었다.
갖고 가긴 했으되 여차하면 버스에 두고 갈 생각이었다.
졸다가 버스가 늘재에 닿고 나서야 눈을 뜨고 나서 허겁지겁 준비하다가 비옷을 꺼내지 않고 길을 나섰다.
밤재를 지나 어느 곳에서 과일 먹으면서 옆 사람에게 ’실수로 비옷을 넣고 왔다...“고 이야기 했는데, 바위 지대에서 비를 만났다.
순애 님이 ”갖고 온 비옷 입어라...“고 했다.
문장대 아래에서 비옷을 꺼내 입었는데, 사진기도 보호하고, 쌀쌀한 날씨에 비옷 덕을 톡특히 보았다.
비록 확률 10%라고 해도 산에 들 때는 언제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함을 다시 느꼈다.
4. 벌초
작은조카가 ”9/5(토)~9/6(일) 선산에 벌초“한다고 전화가 왔다.
조카에게는 미안했으나 백두대간 길을 걸어야 하므로 참가하지 못한다고 했다.
벌초는 조상 무덤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가친척들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안부를 묻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백두대간, 정맥, 기맥, 지맥, 일반 산을 열심히(?) 다니다 보면 관혼상제로 참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경조사는 아내를 대신 보낸 일이 많았다.
이태 전까지 같이 산을 다녔던 벗이 어느 날 내게 경조사에 빠지는 일이 잦았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같이 산을 다녀보니 그제야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두 아들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벌초에 참석하지 못하고, 나마저 빠지게 되었으니 조카들과 큰집 손자에게 미안했다.
5. 환갑 잔치 떡
내가 떡을 조금 가져갔더니 다들 사유를 물었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내 뒤에 앉은 무쏘꿈 님이 ”환갑잔치 떡...“이라고 했다.
무쏘꿈 님 덕분에 많이 젊어졌다.
약소해서 미안했다.
※ 다른 사진과 글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첫댓글 한길,행님.!
기상과 동시에 알림은? 행님의 러브레터였어요. 댓글과 단톡방 사진, 산행기까지- 무쏘꿈님처럼 잠을 헷갈려 하는 소년이 되었나요? 행님의 산행기에서 정말 정확하고 소중한 갖가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대야산 구간을 일찌감치 신청해놓으셨네요. 초반일지라도 함께 가보입시다.
느림보라 산행기와 모든 것이 한발 느려 새벽에 일어나 한꺼번에 몰아쳤습니다.
뭐 자질구레하고 알맹이도 없는 것들을 잔뜩 늘어놓기만 해서 다른 이들에게 혼란과 눈을 아프게 할까 봐 걱정하기도 합니다.
별 도움은 안될지라도 구간마다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생각으로 끼적거립니다.
바위 구간에서 남을 배려하는 유도사 님 모습.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새벽 두시부터 12시간 동안 걸었으니 거리는 둘째치고 힘들었답니다.
그 와중에 비까지 맞았으니...
그래도 재미있었답니다.
이 길을,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분들은 알지 못하는 산길. 암릉길.
이번 구간에서도 하나
배웠지요. 창출(삽주)
다음에 보면 알아 볼랑가
모르겠습니다.
장거리 산행 수고하셨습니다.
환갑떡(?) 아주 배불렀답니다.
이제 어쪄죠?
유도사님의 동생이
되어 버렸는데.
수고많으셨고
대야산 구간 좀 더
재미있게 걸어 보입시더.
길고 험한 구간을 성큼성큼 잘 걸었던 승승장구 님을 보면서 축하해 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대원을 위해 무겁게 젤리와 과일을 짊어지고 기꺼이 내놓는 배려에 찬사를 보냅니다.
전에 사과를 통째로 나눠주었고, 여러 번 얼린 젤리는 꿀맛이었습니다.
형제봉에서 푯돌만 찍고 내려설까 했으나 다행히(?) 승승장구 님이 기다리고 있어 무척 고마웠습니다.
형제봉 바위에 앉아 먼산을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긴 모습에 '도사'를 연상했습니다.
식물 이름.
어렵기도 하지만 조금씩 익혀가면 눈이 열릴 것입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
오랫동안 한 줄 한 줄 깊게 숨을 죽여가며 읽고, 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맹이 없고 쭉정이투성이 뿐인 잡다한 것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 산만하고 혼란을 줄까 봐 미안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 누군가 작은 발걸음이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쓸모없는 일은 아닐 거라는, 주제넘고 오지랖 넓은 생각을 합니다.
허점 많고, 성긴 구성일지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훤칠한 키에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어디 한 구석 지친 기색이 없어 보기 좋습니다.
내 발걸음이 느려 멋진 분과 같이 걷지는 못해도 왕서방 님 모습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습니다.
신선대 매점에서 대원들을 위해 비옷까지 사 주었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손뼉 칩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속리산에 들면 세상 온갖 번뇌와 번다함, 사랑과 미움, 지지고 볶는 아귀다툼, 온갖 욕심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수첩에 메모하고 읽고 싶은 문장입니다
속리에서는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꺼지지 않은 잔불처럼 남아 살짝 기름을 붓거나 혹은 마른 나무를 올리면 금방 되살아나는 세간의 일이니까요
함께 산행하는 시간만큼 형님의 낯빛만으로도 안부를 여쭙는 공간으로 바뀌니까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철학자 님이 내 평범한 말을 높이 평가하니 갑자기 어깨가 우쭐거리지만, 가당찮은 칭찬입니다.
같이 걸으면서 심오한 철학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요즘 무쏘꿈 님 걸음이 빨라 뒷모습 보기도 어렵습니다.
신선대 매점에서 비옷을 갈아입고 떠나는 모습만 살짝 봤습니다.
수고했고, 고압습니다.
산으로 발걸음하며 늘 혼자 생각했답니다.
나서길 참 잘했다고.
때로는 눈앞의 풍광보다 식욕이 앞서고
때로는 내려놓고 왔다는 욕심보다 더 무거운 욕심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목적지는 같지만 살아온 길이 모두 다른,
함께 걷는 분들과의 교류도 좋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도
결국 걷는 것과 같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한걸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른 것을.
걷고, 멈추고, 뒤돌아보고, 다시 걷는 것이라는 걸.
산을 걷는 일은
나 자신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길님, 매사에 귀감이십니다.
산을 대하는 귀한 마음에서부터
일상의 루틴까지.
그래서 제가 참 복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좋은 분과 오랫동안 같이 걸었고
또 이리 편안하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서.
환갑 축하드리며(^^)
다음에 따뜻한 정종이라도 대접하겠습니다.
또 그 많은 형님, 누님들 속에 저도 포함되니
당연히 인사받을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ㅋㅋㅋ
걷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고, 두뇌 활성화-실은 퇴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합니다.
의학적인 관점을 떠나서도 걷기, 그 가운데 산을 걸을 때는 한갓진 곳이거나, 까다로운 곳이라도 한갓지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 있어 좋습니다.
거기에 경치 구경, 나무와 풀, 들꽃을 날것 그대로 볼 수 있음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자 보람입니다.
전에는 줄곧 내달리만 했던 발걸음 속도를 낮추니 같이 걷는 사람이 보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다른 이를 이해하고 간접 경험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중한 분들을 많이 만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란선 님은 군계일학, 낭중지추입니다.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란선 님과 같이 걸으면서 내세울 것 없는 내 지난날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아도 귀담아듣던 것을 고맙게 여기고, 또한 부끄럽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앎과 인격이 턱없이 모자라니 허튼소리를 늘어놓게 되었지요.
늘 젊은 마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이번에 무쏘꿈 님이 내 육체적인 나이까지 젊게 만들어 주어 힘이 납니다.
덕분에 형, 누님들이 많이 생겨 내가 실수하는 일이 있더라도 양해할 사람들이 많이 생겨 좋습니다.
정맥 길 즐겁고 건강하게 걸으시고, 언제 돌로미테, 키르키스스탄 트레킹 이야기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디세이」 영화를 같이 보고 격조 높은 영화평을 듣고 싶었으나 바쁜 분이라, 다른 사람과 봤습니다.
몇 번 더 봐도 좋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바뻐다는 핑겨로, 감사의 댓글을 이제야 몇자 올리게 됩니다.
생신 축하드리며, 쉽지않은 큰형님의 회춘, 우리 낙동대원들이 모두 감축드리니, 큰 경사인듯 합니다.
암능길 중에서도 참으로 난감했던 여러코스를 무거운 카메라들고, 큰베낭을 지고서, 가파르고, 좁은 통로를 안전하게 오르심에 ,큰형님만의 비범한 노하우 있지 않으신가 생각하면서도, 늘 감동이고, 귀감이 됩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필수 코스였던 법주사는 속리산과 함께 특별한 인연이 있어, 그후 두번정도 법주사와 문장대를 오른듯 합니다.
큰 형님의 산행기를 읽어면서, 세세하고, 풍부한 여러 정보를 통해 배우면서, 대간산행의 또 다른 재미가 솔솔 합니다.
늘 감사드리며, 다음 대간 산행에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현대인은 늘 바쁘게 살아갑니다.
숨 가쁘게 달려가다가 뒤돌아보면 가치 있는 일도 있고, 별 가치 없는 일에도 시간과 정열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위 길, 끙끙대며 오르내리면서 팔다리가 바위에 맞닿아 아픔이 오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재미가 있습니다.
튼튼한 밧줄이 있으면 좋고, 가느다랗고 바위에 닳은 밧줄이 있으면 아쉽기도 합니다.
요즘은 간단한 것을 좋아하는 시대라 글이나 극도 짧은 것을 찾고 너저분하게 길면 외면 받는 시대라 자질구레한 것을 늘어놓기가 민망한 때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것을 칭찬하니 부끄러운 한편으로 힘이 돋습니다.
산사랑제이 님이 워낙 빠르게 걸어 함께하지 못해 재미있는 이야기 듣지 못해 아쉽습니다.
환절기 건강 잘 돌보기 바랍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