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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감사(感謝)”라는 한자어의 “사(謝)”는 “사례할 사(謝)”입니다. “사례할 사(謝)”는 “말씀 언(言)” 변에 “쏠 사(射)”인데, 말과 관련됩니다. “감사”는 입술의 표현이며 입술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give thanks) 고백하였습니다.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일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니 이는 그는 좋으심이니(he is good),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 지속되기 때문입니다(대상 16:34, 대하 7:3).
시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이 기도의 기반은 하나님의 올바름입니다. 그는 그의 올바름이 아닌 하나님의 올바름에 근거하여 감사합니다.1)
1.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7편 17절에 “내가 야훼께 그의 올바르심에 따라서 감사할 것이고 가장 높으신 야훼의 이름에 연주할(sing praise)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아뢰기 전에 찬미와 고백과 감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주기도문과 같습니다.
오스왈드 체임버스(Oswald Chambers, 1874~1917)라는 사람의 저서 『주님은 나의 최고봉』(My Utmost for His Highest)을 직역하여 보면 “그의 가장 높은 자를 위하여 나의 최고”라고도 번역이 가능한 제목인데 가장 높은 분께 나의 최대한도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높은”이라는 단어(엘욘)는 하나님을 수식하기에 적합하며, 최고로 높으신 신(神)께서는 송축되시기에 합당하십니다(창 14:18-20).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악인을 멸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때에, 올바른 자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에 찬송할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과 함께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최고의 것으로 나를 구원하신 최고의 하나님께 드립시다! 최고의 하나님께서는 나의 최대한도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시편 9편 1절에 “모든 나의 마음 안에 감사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모든 마음으로(with)” 곧 “전심으로” 감사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나뉘어 일부분은 여기에 일부분은 저기에 있기 쉽습니다. 시인은 그의 마음의 조각이 아닌 모든 마음으로 감사하겠다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다윗처럼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들 드려야 할 것입니다.
시편 30편 4-5절에 “야훼께 연주하고, 그의 성별의 기억에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의 노염에 순간이며 그의 호의 안에 생명임이라 그 저녁에 울음이 머무르고 그 아침에 울리는 외침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0편은 죽음의 위험에서부터 건져 주심을 찬양한 내용입니다.2) 시편 30편은 슬픔이 가고 아침이 온다는 내용입니다. 시인이 찬양한 것은 위기에서 구원받은 일에 감사하는 반응입니다.3) 시인은 병과 시련 가운데 기도하여 응답됨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4)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위기들을 돌아보기 위해 이 시를 사용합니다.5)
시편 30편 4-7절은 하나님의 은총과 분노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6) 시편 30편 4-5절은 공동체를 향하여 감사를 권면하는 내용입니다.7)
30편에 “감사하다”(야다)가 핵심 단어로 쓰였습니다(시 30:4). “감사하다”가 반복되어서 이 시의 주제가 감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8)
시인은 공동체를 향하여 함께 감사를 드리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간증으로 청중들도 시인의 감사 찬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9)
시인의 구원은 개인적인 구원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산입니다.10) 한 사람의 구원은 교회 공동체가 감사드리는 이유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인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을 청합니다(시 30:4).11)
이유는 하나님의 노염에 순간이며 그의 호의 안에 생명이기 때문이며, 저녁에는 울음이 머무르고 아침에는 외침이 있기 때문입니다(시 30:5).
하나님의 노염은 죄악을 고백시키고 회개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호의와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저녁은 하나님의 노염을 상징하고 아침은 그의 구원을 상징한 것인데, 하나님의 노염에 대하여 사람이 반응하는 울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12)
하나님의 노염은 순간이지만, 하나님의 호의는 영원히 지속됩니다.13) 시인은 울음을 저녁에 잠시 머무르는 손님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일출로 인한 외침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14)
새벽빛이 저녁의 어둠을 깨뜨리듯이 기쁨이 슬픔을 깨뜨릴 것입니다. 동트는 새벽에 어둠이 사라지듯이 기쁨이 오면 슬픔이 사라질 것입니다. 슬픔은 잠깐에 불과하며 기쁨의 외침을 외칠 아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30편 8-10절에 “당신께 내가 불렀고 내가 탄원하나니. 구덩이에 나의 내려가는 때에 나의 피에 어떤 이익이 있을 것입니까 진토가 당신께 감사하며 그것이 당신의 진리를 알릴 것입니까? 야훼여 들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be merciful), 야훼여 나에게 돕는 자가 되어 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0편 8-10절은 ‘시인이 죽음의 위기에서 펼쳤던 논증’입니다.15)
시인은 자신의 힘으로 안 됨을 깨닫고 하나님께 탄원합니다(시 30:8). 시인은 야훼(LORD)께 불렀고 주(Lord)께 탄원하였습니다.
시인이 구덩이에 내려가는 때에 그의 피에 어떤 이익이 있겠으며 진토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알릴 수 없습니다(시 30:9).
9절의 시제는 ‘과거’를 가리키며 과거에 시인이 탄원한 내용입니다.16) 9절은 시인이 전에 구덩이 속에서 드린 기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응답하셔야 하는지 그 이유가 제시됩니다.17)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의 진리를 알리려고 사는 것입니다.18) 시인은 죽어서 티끌이 되기 전에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의 구원을 감사하며 그의 진리를 알릴 것이라고 서원합니다.
시편 30편 11-12절에 “당신이 나의 애도를 나에게 춤으로 돌리셨으며 당신이 나의 거친 삼베를 벗기셨고 기쁨으로 나의 허리를 졸라매셨으니. 나의 영광이 당신께 연주하겠고 그것이 침묵을 지키지 않기 위한 것이며 영원히 내가 당신께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그 애도가 춤으로 돌려진 응답을 간증합니다(시 30:11). 하나님께서 슬플 때에 입는 삼베옷을 벗기셨고 기쁨의 허리띠를 졸라매어 주셨습니다.
시인의 영광이 야훼께 연주하고 침묵을 지키지 아니하기 위한 것이며, 시인은 그의 하나님 야훼께 영원히 감사하겠다고 약속합니다(시 30:12).
야훼께 연주하고 그의 성별의 기념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시 30:4). 시인은 티끌이 된 후에 야훼께 감사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시 30:9). 그러나 시인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기에 야훼께 감사합니다(시 30:12).
2. 시인은 조만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나의 영혼아 어찌하여 너는 낙담하느냐 너는 나에 대해(within) 중얼거리느냐(disturb), 하나님께 기다려라 이는 내가 조만간(yet) 그의 얼굴의 구원들에 그에게 감사하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42편은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내용입니다.19) 시편 42편 5절은 이 시의 ‘후렴’입니다.20)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곧 그의 자비를 기다리는 자들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있습니다(시 33:18).
시인은 그 영혼에게 “하나님을 기다리라”(hope)고 명령하는데 이유는 그가 조만간 하나님의 얼굴의 구원에 감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절의 “그의 얼굴”은 11절처럼 “나의 얼굴”이라고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는 조만간(yet) 우리의 앞의 구원들로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낙담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시 42:5).
시편 42편 11절에 “나의 영혼아 어찌하여 너는 낙담하느냐 너는 나에 대해(within) 중얼거리느냐(disturb), 하나님께 기다려라 이는 내가 조만간(yet) 나의 얼굴의 구원들에 그에게 감사하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43편 5절에 “나의 영혼아 어찌하여 너는 낙담하느냐 너는 나에 대해(within) 중얼거리느냐(disturb), 하나님께 기다려라 이는 내가 조만간(yet) 나의 얼굴의 구원들에 그에게 감사하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에 대해 우리의 안쪽에 중얼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안쪽에 중얼거리는 것은 영혼의 동요를 뜻합니다.
크리스토퍼 러브(Christopher Love, 1618~1651)는 청교도였습니다. 그는 시편 42편 11절로 『낙망하는 내 영혼의 회복』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이 구절에서 낙망(despair)과 동요(disquiet)를 끄집어내었습니다.
“동요”(disquiet)는 “고요함”(quiet)이나 “평안”에 반대되는 뜻입니다. 마음속에서 고요함이 사라져 버리고 생각들이 계속적으로 중얼거리는데 마음이 요동치고 평안하지 못한 불평과 불안의 상태입니다.
동요는 불신앙입니다. 영혼이 속에서 중얼거리지 아니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믿음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그의 영혼에게 “너는 어찌 자신을 낙담시키느냐?”고 물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보고서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때에 조만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를 좁은 곳에 가두고 속박하고 고통을 안겨 준다면 하나님께 우리의 영역을 넓게 하실 것을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립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넓게 만드시겠고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프로 그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시 43:4). 그는 조만간에 그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시 43:5). 그는 조만간에 자신의 앞의 구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시편 107편 1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라 이는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는데, 그가 좋으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으신 분이시며, 이것이 우리가 감사하여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므로 우리는 감사하여야만 합니다(시 107:1).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좋은 것을 고난의 포장지에 싸서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심에도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아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고난의 포장지를 뜯고 나면 그 속에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 고난의 포장을 보고 그것을 팽개쳐 버리는 자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선물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감사로 함께 받을 때 좋은 것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심에도 포장지만 보고서 팽개쳐 버리지 맙시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좋으신 것을 주시므로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합시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40년을 황야 가운데에 헤매었습니다(시 107:4). 또 그들은 길의 황무지 가운데에 거주의 성읍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야훼께 그의 자비와 기이한 일들에 감사하였습니다(시 107:8). 그의 “자비”가 그가 행하신 “기이한 일들”로 그들 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행하신 기이한 일들은 그들을 그들의 곤란들에서 구해 내신 일과 거주의 성읍에 가게 바른 길 안에 나아가게 하신 일입니다(시 107:6-7).
그들은 폭풍이 일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고, 그들은 바다 안에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합니다(시 107:31). 그들은 백성의 집회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합니다(시 107:32).
시편 111편 1절에 “내가 감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1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시편 111편부터, 독자는 같은 서론과 후렴의 시들을 만나게 됩니다.21)
1절의 “내가 감사할 것이라”가 히브리어 알파벳의 알파에 해당됩니다. 알파벳 시작처럼 모든 일을 “내가 감사할 것이라”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첫째 알파가 되어야 합니다(시 111:1).
시인은 하나님께 모든 마음으로(with) 감사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전심으로”는 하나님 경외에 사용됩니다(시 86:11).
시인이 감사할 장소는 똑바른 자들의 회의와 회중 안에서며, “안에”(in)라는 뜻의 히브리어 알파벳 둘째 문자 “Bet”(b)로 시작됩니다. 한국어 어순은 동사가 뒤에 번역돼 “회중 안에”, “감사하다” 순서입니다.
시인은 예배 회중들 가운데에서 야훼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똑바른 자들은 온전함을 추구하는 예배 공동체 구성원을 말합니다.22)
예배는 개인 예배도 중요하나 이와 같이 공동체 예배가 필수적입니다. 공동체 예배에서 함께 예배하는 회중 안에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3. 시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시편 118편 1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라 이는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06편 1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라 이는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07편 1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라 이는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8편은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으며(시편 118:6), 그러므로 시인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23)
찬송하는 개인의 감사 찬송이 공동체의 예배에 정착되어 있습니다.24)
시편 118편 1-4절은 ‘예배로 부름’입니다.25) 1절의 말은 성경에 예배로 부를 때에 사용됩니다(시 106:1. 107:1). 예배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좋으심과 자비 때문에 감사합니다.26)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맛본 자는 그 자비하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18편 19-20절에 “너희는 나에게 올바름의 성문들을 열라 내가 그것들 안에 들어갈 것이며 내가 야훼께 감사할 것이라. 이것은 야훼께 성문이라, 올바른 자들이 그것 안에 들어갈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문들”은 2개의 부분으로 만든 이중문일 수 있습니다(시 118:19).27)
시인은 올바름의 성문들 안에(through) 들어갈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그 성문을 통하여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올바른 자들의 천막 안에 외침과 구원의 소리가 있습니다(시 118:15). 그들은 올바름의 성문인 야훼께 성문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시 118:20). 시인은 올바른 자이기에 올바름의 성문인 야훼께 성문 안에 들어갑니다.
“올바름의 성문들”은 올바른 자들에게만이 들어가기가 허용됩니다.28)
시편 118편 21절에 “당신께 감사할 것이니 이는 당신이 나에게 대답하셨고 나에게 구원에 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대답하셨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에 되셨기에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기도합니다(시 118:21).
시편 118편 27-29절에 “야훼께서는 신(God)이시고 그가 비추시노라, 너희는 축제의 희생(sacrifice)을 가지로 제단 뿔들까지 묶어라. 당신은 나의 신(神)이시고 내가 당신께 감사할 것이며,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내가 당신을 높일(exalt) 것입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9편 7절에 “내가 마음의 똑바름 안에서 당신께 감사할 것이니 내가 당신의 올바름의 정의들을 배우는 때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그의 마음의 똑바름 안에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정직 안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여야 합니다.
백만장자들의 성공요인 30가지 가운데에 1순위가 정직이라고 합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돈을 버는 데도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올바름의 정의”는 “올바른 판결”(just ruling)을 뜻할 수 있습니다.29) “올바름의 정의”는 “판결의 정의”를 뜻할 수 있습니다.30)
“정의(justice)”(미쉬파트)는 영어 단어 “justice”에 해당합니다. “심판”, “판단”, “재판”(judgment), “정의”, “공정”(justice)을 뜻합니다. “판단하다”, “재판하다”(샤파트)로부터 나왔습니다(창 18:19, 16:5).
시편 119편 62절에 “밤의 중앙에 내가 일어나리니 당신의 올바름의 정의들에 감사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파라오는 “밤의 중앙에” 일어나 그 장자의 죽음 때문에 울었습니다. 반면에 시인은 “밤의 중앙에” 일어나 주의 정의 때문에 감사합니다.31)
시인은 지금까지 어려운 시련 중에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입니다. 시인은 깨끗한 양심으로써 살아온 인생이 복임을 알고서 감사합니다.32)
시편 138편 1-3절에 “전심으로 감사하며 신(god)들의 앞에 연주하며. 내가 당신의 성별의 신전에 예배하고 당신의 자비와 진리에 감사하리니, 당신이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발언을 모두 위에 성장하게 만드셨음이며. 당신이 대답하셨으며 나를 대담하게 만드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야훼의 성전에 예배하고 그의 자비에 감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야훼께서 그의 발언을 성장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시 138:2). 그가 자신의 발언(word)을 성장시키신(magnify) 것이 그의 자비입니다.
야훼께서 성소의 높음으로부터 내다보시고 바라보십니다(시 102:19). 우리는 하나님의 성별된 신전의 좋은 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시 65:4). 시인은 하나님의 성별의 신전에 예배하겠다고 말합니다(시 5:7, 138:2).
가난한 자가 부른 때에 야훼께서 들으셨고 구원하셨습니다(시 34:6). 시인이 부른 때에 야훼께서 시인에게 대답하셨습니다(시 120:1, 138:3).
시편 145편 10절에 “야훼여 당신의 제작품들이 당신께 감사할 것이고, 당신의 자비의 자들이 당신께 송축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히브리어로 “하시드”인데 “헤세드”(자비)의 대상입니다. 야훼의 손의 작품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시 138:8, 145:9-10). 야훼께서는 그의 손의 작품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시 138:8). 야훼의 모든 작품들이 그의 자비의 좋으심으로 그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야훼의 자비로운 자들이 야훼께 송축할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에 “감사를 하나님께 제물로써 바치고 너의 서약들을 가장 높은 자께 이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감사를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하여야 하는 제물은 “감사”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없이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만큼 희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겠지’라는 생각은 잘못이며, 자신의 요구에 응답을 받으려고 희생하는 것은 올바른 희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감사를 제물을 제사하기를 원하시며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참된 제사입니다.
본문에 “이행하다”(샬람)는 “지불하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이스라엘은 그의 서약들을 지불하고 이행하여야(fulfill) 합니다. 믿는 자가 그의 서약들을 지불할 대상은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서약”은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때에 어떻게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을 때에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서약과 감사가 연결되는 이유는 서약은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이기에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았으면 마땅히 감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희생하는 희생 제물입니다. 하나님께 서약한 자는 감사의 제물로 그의 서약들을 이행하여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를 제물로 바치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겠고, 내가 그에게 하나님의 구조 안에 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높여 중하게 대하는 방법이 감사를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감사를 제물로 바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조를 보이십니다.
1) Nancy L. deClaissé-Walford, Rolf A. Jacobson and Beth LaNeel Tanner,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강대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55.
2)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336.
3)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356.
4)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46.
5)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356.
6)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시편Ⅰ』, 443.
7)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47.
8)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48-649.
9)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52-653.
10)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53.
11)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361.
12)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342.
13)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54.
14)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362.
15)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56.
16)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56.
17) Jacobson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364.
18)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시편Ⅰ』, 447.
19)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486.
20) 김정우, 『시편 주석 Ⅱ』, 25.
21)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1013.
22) 김정우, 『시편 주석 Ⅲ』, 364-365.
23)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1044.
24)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1044-1045.
25)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1045.
26) deClaissé-Walford 외 2명,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1047.
27) Allen, 『시편 101-150』, WBC 성경주석, 215.
28) Allen, 『시편 101-150』, WBC 성경주석, 215.
29) Allen, 『시편 101-150』, WBC 성경주석, 223.
30) Allen, 『시편 101-150』, WBC 성경주석, 226.
31) 김정우, 『시편 주석 Ⅲ』, 479-480.
32) 김정우, 『시편 주석 Ⅲ』, 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