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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도 늙어도 노래방
이화진
7인의 동기생 모임이 있다. 연장자순 나이를 보면 예순여섯, 예순셋, 쉰아홉, 쉰일곱, 쉰셋, 마흔여덟, 마흔여섯 등이다. 직업은 현직 공무원이 둘, 버스기사, 주부, 회사원, 백수가 둘이다. 백수 둘 중 한사람은 쉰 아홉의 전직 은행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순셋의 나다.
B대학 신입생이었던 4월 어느 날, 출석수업에서 만나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였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열댓 명 가량이 스터디에 참여 했지만 다 떨어져 나가고 일곱 명이 졸업시험 직전까지 남게 되어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일곱 동기생들은 스터디가 끝나면 가끔 노래방에 가 노래를 부르며 힐링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음치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었던 나를 제외하고 모두 노래방에 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낮에 직장 일로 지쳐 있는데다 저녁엔 피곤한 몸으로 학점을 따기 위한 시험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였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간으로 공부에 신경을 쓰다보면 낮에 직장에서 일 처리 능력이 떨어졌다. 일도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찾은 곳이 노래방이었다. 당시 B대학에 적을 둔 학생들은 20대에서 70대에 이르기 까지 나이대가 다양했으며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 스터디 멤버들은 나이, 직업, 신분 등을 의식하지 않고 어울려 노래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노래방에서 노래로 세대 간 소통을 했으며 ‘주경야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정을 다졌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공부와 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듯 했다. 사십 대 이상의 동기들은 흘러간 옛 노래를 즐겨 불렀으며 젊은 이삼 십 대의 동기들은 70 80노래를 즐겨 불렀다. 그러다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비목’, ‘아침이슬’, ‘언덕에 올라’, ‘허공’, ‘친구여’(조용필) 등의 노래였다.
특별히 노래방을 가야했던 날이 있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다. 시험을 다 치루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술을 좀 마셨다. 시험을 잘 치루면 기분 좋아 마셨고 못 치루면 기분 나빠 마셨다. 몇 시간 동안 시험을 비롯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보니 취할 적도 있었다. 술을 깨우기 위해서 찾아 간 곳 역시 노래방이었다. 수명의 동기생들이 저마다 신청곡을 노래방기기에 입력 차례를 기다렸다. 앞 사람이 부르는 곡을 부르고 싶은 이는 따라 함께 불렀다. 한번 불렀던 곡이 나오면 취소하고 다른 곡을 시작했다. 신청곡에 맞춰 저마다 몸을 흔들어 춤을 추거나 둘이서 다정히 마주보며 허리를 껴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어깨에 팔을 얹어 껴안은 채 빙빙 돌면서 합창을 하기도 했다. 두어 시간 가까이 불러도 못다 부른 노래들이 많아 시간을 반시간에서 한 시간가량 연장 할 적도 있었다. 점수가 100점이 나오면 흥이 나 만 원 한 장을 노래방 기기 화면에다 붙이곤 했다. 술을 깨우러 노래방엘 갔는데 술이 채 깨기도 전에 기본량의 맥주와 안주를 시켜오기도 했다. 흥에 취하다보면 기본량외의 술과 안주를 더 시켰다. 노래방에서 3차술을 마시는 셈이었다. 어떤 날 밤엔 두어 시간 가량 노래 부르며 놀다보면 시내버스 막차를 놓쳐 택시를 타고 갈 적도 있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동기생은 대리 운전을 부르거나 차를 두고 가기도 했다.
입학 후 스터디와 노래방의 추억을 공유한지가 올해로 꼭 만 이십 년이 되었다. 졸업 후에도 일곱 명은 매분기마다 모임을 가져왔다. 길흉사에도 꼭꼭 찾아가 축하와 위로를 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일종의 친목계 형태로 운영되는 모임인 셈이다. 금년 1월 모임 시 입학 이십 주년 기념으로 4월 중순경에 부산으로 1박 2일의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
드디어 기다렸던 날이 찾아 왔다. 열흘 전쯤이었다. 일곱 명 중 전직 은행원이었던 동기는 멀리 출타 중이었고 다른 동기 한사람은 산불발생 대기조로 참석이 곤란하다고 했다. 다섯 명의 동기생들은 동대구역에서 KTX로 부산 역에 도착, 지하철을 이용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갈치를 비롯한 생선구이를 파는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 이르니 생선구이에 군침이 돌았다. 생선 구이로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네 명은 호텔 측에서 추천해준 식당에서 곰장어 구이를 먹자고 했다. 추천해준 식당에 가니 손님들이 꽉 차 다른 식당을 찾았다.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음식 솜씨가 없어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끼리 좀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학창 시절 시험이야기와 노래방 갔던 이야기를 하면서 곰장어 구이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소주는 남자들의 차지였다. 식당아줌마는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모두들 나이가 다르게 보여 학교 동기생들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애인이나 친구사이도 아닌 것 같아 대체 어떤 모임일까 궁금해 했다. 졸업한 학교가 무슨 학교라는 이야기를 않았기에 알리가 없었다. 종잡을 수 없는 모임이라기에 스무고개를 낼테니 맞춰보라고 했지만 머리를 흔들었다.
소주를 몇 병 비우고 나니 보건소에 근무하는 L여사가 부산 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S여사가 데리러 지하철 출구로 갔다. 이십 여분 뒤에 S여사가 L여사를 데리고 왔다. 산불 비상대기조로 늦게 집으로 퇴근, 올까를 망설였으나 K여사와 S여사가 와야 된다며 연속적으로 전화를 퍼 부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남은 곰장어 구이로 밥을 비벼 먹다 반찬이 부실하여 갈치와 가자미를 섞은 생선구이 한 접시를 근처 식당에서 사왔다. 생선구이가 많이 남아 셋이서 두 병의 소주를 더 마셨다. 모두 다섯 병의 소주를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시청에 근무하는 막내 S가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며 놀자고 했다. 식당 가까운 곳에 있는 노래방으로 가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노래를 불렀다. 늦게 온 L여사가 ‘목로주점’, ‘우정’(이숙) 등의 노래를 부르니 꼭 학창시절로 돌아 간 기분이었다. K여사는 ‘꿈을 먹는 젊은이’, ‘모란 동백’ 등을 불러 지난 시절의 낭만을 되살렸다. 나는 두곡을 부르기가 버거웠다. 여섯 사람이 40여곡 넘는 노래를 불렀지만 부르고 싶은 노래들은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져 숙소로 돌아왔다. 이튼 날 해운대 백사장을 거닐다 조선비치 호텔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7월의 만남은 김광석 거리에서 가지기로 했다. 그때 모임을 마치면 부산 자갈치 노래방에서 못다 부른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나이가 들면 노래방 가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다. 여태까지 한 번도 자발적으로 가길 원했던 노래방은 아니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권유에 못 이겨 따라간 노래방이었다. 음치를 겨우 벗어난 노래 실력 때문이었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음악 감상은 즐겁다. 음악을 감상하는 즐거움이라도 가지지 못했더라면 내 삶은 참으로 삭막했을 것이다. 먹고 사느라 지쳐있는 젊은이들에 비해 신나는 일이 더 많은 지금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 젊은 동기생들이 있다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날을 위해 지금까지 잘 감상하곤 했던 노래 중에서 몇 곡 찾아 미리 연습해 둬야겠다.
2015. 4. 23
첫댓글 좋은 모임이네요. 노래 부르는 시간만큼은 행복한 시간이겠지요. 잘읽었습니다.
노래방 문화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예! 단장님! 무엇보다도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부르기에 남의 이야기(험담이나 욕 등)를 할 수 없어서 좋습니다.
시대에 공감이 가는 노래방 문화에 대한 추억이 담긴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7인의 학우 동기생과 노래방에 얽힌 사연,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동기생의 모임이 아름답게 비칩니다.
좋은 노래 한번 뵈올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