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2 - 위정(爲政) - ② |
1 |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경> 3백편의 내용을 한마디로 개괄하여 말한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고 하셨다.
詩三百十一篇, 言三百者, 擧大數也. 시 삼백 십일편을 삼백이라고 말한 것은 대수(大數)를 든 것이다.
○ 星湖先生曰: “詩, 三百十一篇. 其六, 笙詩也; 其五, 「商頌」也. 笙詩本亡, 「商頌」, 前代之詩, 故不在數. 詩, 惟三百篇也.” 『論語古今註』 성호선생이 말했다. “시경은 311편이다. 그중 6편은 생(笙)시다. 그중 5편은 상송이다. 생시는 본래부터 없었고, 상송은 전대의 시라서 세지 않았다. 시는 오직 300편인 것이다.” |
2 | ○ 蔽, 猶蓋也. ‘思無邪’, 魯頌「駉」篇之辭. 凡詩之言, 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 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 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 蔽란 蓋(덮다)와 같다. 思無邪는 노송 경 편의 말이다. 무릇 시의 말 중에 좋은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능히 감동시켜 피워낼 수 있고, 악한 것은 사람의 나태(방탕)한 뜻을 징계할 수 있으며, 그 효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성정의 올바름을 얻게 하는 것으로 돌아갈 따름이다.
朱子曰 蓋如以一物蓋盡衆物 주자가 말하길, “蓋는 사물 하나로 여러 사물을 전부 다 덮는다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此詩本美魯僖公牧馬之盛 由其心思之正 如美衛文公秉心塞淵而騋牝三千之意也 作詩者未嘗以此論詩之旨 夫子讀詩至此而有合於心焉 是以取之 蓋斷章摘句云耳 신안예씨가 말하길, “이 시는 본래 노희공의 말 목축이 성대한 것이 바로 그 심사의 올바름으로 인한 것이라고 찬미한 것으로서, 마치 위문공의 마음가짐이 성실하고 심원하여 큰 암말 3천 마리가 있다고 찬미한 뜻과 같은 것이다. 시를 지은 사람은 일찍이 이로써 시의 뜻을 논하지는 않았지만, 공자께서는 시를 읽다가 여기에 이르자, 마음에 부합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를 취한 것이니, 대개 문장을 끊고 구절을 잘라내어 말한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情性是貼思 正是貼無邪 주자가 말하길, “情性은 思에 붙이는(대응하는) 것이고, 正은 無邪에 붙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思無邪莫是作詩者發於情性之正否 曰 若關雎鹿鳴文王大明等詩 固是情性之正 若桑中溱洧等詩 謂之情性之正 可乎 只是要讀詩者思無邪耳 누군가 묻기를, “思無邪는 혹시 시를 지은 사람이 情性의 올바름에서 발현시킨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길, “만약 關雎나 鹿鳴, 文王大明 등의 시의 경우라면, 본래 情性의 올바름이나, 만약 桑中이나 溱洧 등의 시는 이를 일컬어 情性의 올바름이라 말한다면 그게 되겠는가? 그저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思無邪하게 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太史公說 古詩三千篇 孔子刪定爲三百 看來只是采得許多詩 夫子不曾刪去 只是刊定而已 聖人刊定 好底詩 便要人吟詠興發其善心 不好底 便要人起羞惡之心 皆要人思無邪 태사공(사마천)이 말하길, 옛 시는 3천 편이었는데, 공자가 줄여서 3백 편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 그저 많은 시를 채집하고서, 공자께서 일찍이 산삭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정하여 발간하였을 것이다. 성인께서 정하여 발간한 것 중에서, 좋은 시는 곧 사람들이 읊어서 그 선한 마음을 흥기하고 발현하게 한 것이고, 좋지 않은 시는 곧 사람들이 羞惡之心(不善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한 것이니, 모두가 다 사람들로 하여금 思無邪하게 하려는 것이다.
問集註以爲 凡言善者足以感發人之善心 言惡者足以懲創人之逸志而諸家乃專主作詩者而言 何也 曰 詩有善有惡 頭面最多而惟思無邪一句 足以該之 上至於聖人 下至於淫奔之事 聖人皆存之者 所以欲使讀者知所懲勸 누군가 묻기를, “집주는 무릇 善을 말한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감동시켜 발현하기에 족하고, 惡을 말한 것은 사람의 나태한 뜻을 징계하고 혼내기에 족하다고 여기지만, 여러 선생님들은 도리어 오로지 시를 지은 사람에 주안점을 두고서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시에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다. 頭面(얼굴, 용모)이 제일 많지만, 오직 思無邪 한 구절만이 이를 다 갖추기에 족한 것이다. 위로는 성인에 이르고, 아래로는 음탕하게 私奔(눈이 맞아 함께 도망침)하는 일에 이르지만, 성인께서 모두 이를 보존하신 것은 독자가 징계하고 권면할 바를 알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諸家皆謂作詩者如此 獨集註以爲詩之功用能使學者如此 夫子恐人但知詩之有邪正而不知詩之用 皆欲使人歸之於正 故於其中揭此一句以示人 學者知此 則有以識讀詩之意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여러 선생들은 모두 시를 지은 사람이 이와 같다고 말하였지만, 유독 집주만이 시의 공효와 작용이 능히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와 같이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공자께서는 사람들이 그저 시에 간사하거나 올바른 것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시의 효용을 알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이는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곳으로 돌아가도록 바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이 한 구절을 게재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배우는 자가 이를 안다면, 시를 읽는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然其言微婉, 且或各因一事而發, 求其直指全體, 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 故夫子言詩三百篇, 而惟此一言足以盡蓋其義, 其示人之意亦深切矣. 그러나 그 말이 은미하고 완곡하고, 혹은 각자 하나의 일을 따라 발언한 것이어서, 전체를 곧바로 가리킨 것을 구한다면(찾는다면), 이처럼 분명하고도 지극한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공자님께서 시 300편이지만, 오직 이 한 마디 말이 족히 그 뜻을 다 덮을(망라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공자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준 그 뜻이 역시 깊고도 간절한 것이다.
延平李氏曰 詩人興刺 雖亦曲折達心之精微 然必止乎禮義 夫子刪而取之者 以此爾 若不止於禮義 卽邪也 故三百篇 一言足以蔽之 只是思無邪而已 所以能興起感動人之善心 蓋以此也 연평이씨가 말하길, “시인이 발흥하여 풍자함에 있어, 비록 또한 우여곡절이 마음의 정미함에 이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禮義에서 그쳐야 한다. 공자께서 시를 산삭하고 취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일 따름이다. 만약 예의에서 그치지 않는다면, 곧 간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 삼백 편은 한 마디 말로서 족히 덮을 수 있으니, 그저 思無邪일 따름이다. 시가 능히 사람의 선한 마음을 흥기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直指全體 朱子曰 詩三百篇 皆要人無邪思 然但逐事無邪 惟此一言擧全體言之 누군가 전체를 곧장 가리킨다는 것에 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시 삼백 편은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간사한 생각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일을 쫓아서 간사함이 없도록 하는 것일 뿐이지만, 오직 이 한마디 말은 전체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思無邪 只是要正人心 約而言之 三百篇 只是一箇思無邪 析而言之 則一篇中 自有一箇思無邪 思無邪는 그저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할 뿐이다. 요약하며 말하자면, 시 삼백 편이 그저 하나의 思無邪이고, 분석하여 말하자면, 곧 시 한편 중에 저절로 하나의 思無邪가 있는 것이다.
思無邪一句 便當得三百篇之義了 三百篇之義 大槪只要使人思無邪 若只就事上無邪 未見得實如何 惟是思無邪 方得思在人最深 思主心上 思無邪라는 한 구절은 곧 삼백 편의 의미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삼백 편의 뜻은 대개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思無邪하도록 하는 것일 따름이다. 만약 그저 일 위로 나아가 간사함이 없도록 한다면, 실제로는 어떠한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직 思無邪이어야만, 바야흐로 생각이 사람에게 제일 깊게 있을 수 있고, 생각이 마음 위에 주안점을 둘 수 있는 것이다.
聖人言詩之敎 只要得人思無邪 其他篇篇是這意思 惟是此一句 包說得盡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시의 가르침은 그저 사람이 思無邪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기타 나머지도 편마다 모두 이러한 뜻이나, 오직 이 한 구절만이 전부를 포괄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다.
思在言與行之先 思無邪 則所言所行 皆無邪矣 생각함은 말하고 행하기 전에 있어야 한다.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다면, 말한 바와 행한 바에 모두 간사함이 없을 것이다.
問聖人六經皆可爲戒 何獨詩也 曰 固是如此 然詩因情而起 則有思欲其思出於正 故獨指思無邪以示敎焉 누군가 묻기를, “성인의 6경 모두 경계로 삼을만한 것인데, 어찌하여 유독 시경만 그렇다고 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진실로 네 말과 같다. 그러나 시는 감정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즉, 생각함이 있다면, 그 생각이 올바른 곳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독 思無邪를 지정하여 가르침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直指則非微婉 全體則非一事 直指故明 全體故盡 此一言所以辭約而義該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곧장 가리키니 은미하거나 완곡하지 않고, 전체이니 한 개의 일이 아니며, 곧장 가리키기 때문에 밝고, 전체이기 때문에 다 포함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마디 말에 말은 요약되었으면서 뜻이 전부 다 갖추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微謂隱微 婉謂委曲 詩人主於諷詠規諫 其言不直 截說破 常有隱微委曲之意 경원보씨가 말하길, “微는 은미한 것을 말하고, 婉은 완곡한 것을 말한다. 시인은 規諫(법도에 맞게 고치라고 간언함)을 풍자하여 읊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법이니, 그 말은 직설적으로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은미하고 완곡한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 程子曰: “‘思無邪’者, 誠也.” 정자가 말하길, “思無邪란 것은 정성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行無邪 未是誠 思無邪乃可謂誠 是表裏皆無邪 徹底無毫髮之不正 世人有修飾於外而其中未必能正 惟至於思無邪乃可謂誠 주자가 말하길, “행함에 간사함이 없더라도 아직은 誠이 아니다.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어야만, 마침내 誠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이는 表裏가 전부 간사함이 없어서 철저히 터럭만큼의 不正도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 중에는 겉으로 (바른 것처럼) 분식하였지만, 그 속은 반드시 바를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오직 思無邪에 이르러야만 마침내 誠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程子曰 思無邪者 誠也 又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此是聖人事 夫子言 詩之用不應遽以聖人望人 集註所以引此者 蓋謂所思自然無邪 誠也 聖人事也 讀詩而可使之思無邪 誠之也 學者事也 集註引程子之言 卽繼之以學者必務知要 益可見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정자는 思無邪라는 것이 誠이라고 말하였고, 또 말하길, 哲人은 기미를 알아서, 생각함에 있어 정성스럽게 하니, 이것은 성인의 일이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하길, 시의 효용에 있어서 갑자기 성인을 기준으로 일반 사람에게 바라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집주에서 이것을 인용한 것은, 아마도 생각한 바에 자연히 간사함이 없으면, 바로 정성스러운 것(誠)이니, 이는 성인의 일이고, 시를 읽어서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도록 할 수 있다면, 정성스럽게 하는 것(誠之)이니, 이는 바로 배우는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였기(謂) 때문일 것이다. 집주는 정자의 말을 인용하여,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요체를 아는 것에 힘써야 한다는 것으로써 계승하였음을 더욱더 잘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程子此說是論誠非論詩 신안진씨가 말하길, “정자의 이 설은 誠을 논한 것이지 詩를 논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東陽許氏曰 誠是實理 在人則爲實心而君子不可不盡者也 程子指出此誠字以明思無邪之實 學者必使心之所思一於無邪 方能全乎人心之實理也 동양허씨가 말하길, “誠은 실제적 이치이니, 사람에게 있어서는 실제적 마음이 되지만, 군자에게 있어서는 이를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자는 이 誠이란 글자를 지적해냄으로써 思無邪의 실질을 밝혔으니, 배우는 자는 반드시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가 간사함이 없는 곳에 시종일관 있게 해야만, 바야흐로 人心의 실제적 이치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5 | 范氏曰: “學者必務知要, 知要則能守約, 守約則足以盡博矣. 經禮三百, 曲禮三千, 亦可以一言以蔽之, 曰 ‘毋不敬’.” 범씨가 말하길,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요체 알기에 힘써야 하는데, 요체를 알면 지킴이 능히 요약될 수 있고, 지킴이 요약되면 족히 다 넓힐 수 있는(끝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경례가 3백이고, 곡례가 3천인데, 또한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禮器篇云 禮有大有小有顯有微 大者不可損 小者不可益 顯者不可掩 微者不可大也 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 註經禮儀禮也 如士冠禮諸侯冠禮之類 此是大節 有三百條 曲禮禮記也 如冠禮始加再加三加坐如尸之類 此是小目 有三千餘條 예기 禮器편에 이르길, 예에는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으며, 드러난 것이 있고 은미한 것도 있으니, 큰 것은 덜어내서는 안 되고, 작은 것은 더해서는 안 되며, 드러난 것은 가려서는 안 되고, 은미한 것은 키워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經禮는 3백 개이고, 曲禮는 3천 개이나, 그 이치는 하나인 것이다. 주석에서 經禮는 儀禮로서, 예컨대 선비의 관례나 제후의 관례와 같은 종류이니, 이는 大節이고, 3百條가 있다. 曲禮는 禮記로서, 예컨대 冠禮는 처음 더하고 재차 더하고 세 번 더하는데 마치 시동처럼 한다는 부류이니, 이는 작은 항목이고, 3千餘條가 있다.
曲禮篇 首云 毋不敬 곡례편의 처음에 이르길, ‘毋不敬(공경하지 아니함이 없다)’이라 하였다.
雲峯胡氏曰 執中二字是書五十八篇之要 時之一字是易三百八十四爻之要 亦不可不知 운봉호씨가 말하길, “執中이란 두 글자는 서경 58편의 요체이고, 時라는 한 글자는 주역 384효의 요체이니, 역시 알지 못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