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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기초학력은 우리 아이들이 자유 시민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 성취도 전수 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 일제고사 부활 논란이 일었다. 기초학력을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늘의 교육》 74호 특집은 이런 기초학력 논의를 이해하고 학교 현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톺아보고자 한다. 정용주의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는 학력 담론과 개념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학력 담론이 학생 주도 교육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해하는 현상을 지적하고, 학생의 인권 보장을 위한다는 기초학력 보장 정책이 반인권적 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배희철의 〈‘기초학력’ 제도화에 대한 단상〉은 「기초학력 보장법」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긍정적 의미와 한계를 개괄한다. 이어지는 정은균과 최은경의 글은 중등과 초등 현장에서 기초학력의 이름을 단 정책과 사업 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학교가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책임져야 한다’라는 명제는 일견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 개념과 방식을 하나하나 뜯어 보면 그리 당연한 이야기는 아니다. 기초학력의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학생들마다 처해 있는 상황도, 발달의 과정과 속도도, 잠재력이나 재능도 모두 다른 상황에서 ‘각 학년마다의 기초학력’만은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기초학력의 기준에 맞지 않는 학생의 존재는 교육의 문제점이나 실패인가? 어떤 학생이 기초학력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교육의 부족인가, 가정 환경이나 사회의 문제인가? 이런 질문들은 기초학력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낳고 논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기초학력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은 결국 변형된 학력 담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암시하듯, 보수 진영에서는 ‘진보 정책 때문에 학생들을 공부시키지 않아서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라며 학력 문제를 공격의 소재로 삼아 왔다. 한편 진보 진영에서는 학력 개념을 다원화하자고 제안하거나 대안적 개념을 내놓는 등의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일각에선 기초학력 보장, 학력 강화 등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기초학력과 학력 담론이 우리 교육이 벗어나기 어려운 핵심적 문제임을 실감케 한다.
‘학교가 기초학력을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은 어쩌면 ‘학교는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곳이다’라는 고정 관념의 변형은 아닐까? 기초학력을 둘러싼 논의는 결국 학력이란 무엇인지, 학교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토론거리를 함축하고 있다. 앞으로도 기초학력과 학력에 관한 이야기와 논의가 더 다양하게, 더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할 이유이다.
- 편집부
▶ 《오늘의 교육》 74호는 특집에서 기초학력과 학력의 개념과 담론, 관련 제도 등을 살펴본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기초학력 관련 정책 및 사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함을 제안하기도 한다.
기획 지면에서는 ‘교육 복지 사각지대’라는 제목 아래, 한국의 교육 복지 개념과 제도가 가진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다양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좌담으로 어려운 조건에 놓인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훑어보았다. 또 다른 기획에선 어린이날의 유래가 된 소년운동 및 방정환 등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제기한다. 그 밖에 세월호 참사 9주기 관련 실천 활동, 공립형 대안학교 단재고 개교를 둘러싼 상황,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활동 등의 다양한 실천과 현안들을 담았다.
차례
10 이윤엽의 오늘 | 이윤엽
11 읽은 이야기 | 정이어린, 안영빈
특집 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22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 정용주
37 ‘기초학력’ 제도화에 대한 단상 | 배희철
44 기초학력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 정은균
58 기초학력 지원한다면서 더 혼란스러워진 학교 | 최은경
- 보여 주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교육공동체 되살리기로
기획│교육 복지 사각지대
65 아동 시기 삶의 안정성은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 진냥(희진)
75 좌담 : 교실 속 보이지 않는 불평등 | 남우현, 신선웅, 박복희, 조기현
- 교육 복지 정책 현황과 사각지대 발생 원인
기획│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
100 어린이날 운동의 재평가 혹은 재발명 | 공현
-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의 상찬을 넘어 운동적 관점으로
111 방정환에서 벗어나, 다시 어린이 해방 | 지연
118 새로운 시대엔 어린이에게 평등을 | 진냥(희진)
- 어린이 해방에 영감을 주는 ‘대인주의’와 ‘유독성 교육’ 개념
연속 기획│변방에서 온 편지
129 ‘탈지방’ 부추기는 학교와 사회 | 김홍규
연재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144 오늘의 전국 총학생회 연대의 강점과 쟁점 | 강석남
-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김서원 의장
에세이
167 세월호 9주기, 학생들과 함께 | 강유진
179 4.16 9주기, 기억을 위한 수업 | 맹수용
기고
191 장애인 교원 노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동행하다 | 편도환
-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창립 4주년을 맞아
203 단재고의 정상 개교를 희망한다 | 이선희
- 공립형 대안학교에 입시 교육을 덧칠하는 충북교육청
수업
212 윤동주 동시·동요를 만나다 | 정미숙
리뷰
223 장애학의 시좌에서 본 특수교육 | 김도현
-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236 “전사들의 노래”, 민주주의의 노래 | 최태현
- 《전사들의 노래》
247 조직된 시간, 조직되지 않은 시간 | 남선미
- 《일할 자격》
254 오늘 읽기 | 공현
256 세 줄 세 책
258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 책 | 조현민
260 내가 밀고 있는 단체 투명가방끈 | 김수현
책 속에서
학력과 행복은 큰 관계가 없다. 상식적으로 학력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인권의 보장에 차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민주 공화국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학력과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가 기초학력 보장과 학력 신장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만이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 기초학력이 보장되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 황폐해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사고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말이다.
- 본문 28-29쪽, 정용주, 〈인권은 학력 너머에 있다〉
이론적 측면에서 현재의 기초학력 제도화에 부족한 것을 이야기하겠다. 대한민국은 21세기 초부터 국책 과제로 ‘학력’을 연구했고, 이후 2015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는 ‘역량’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초학력 보장법」에서는 ‘기초학력’을 성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제도와 실천에 이론적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불미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 교육계의 학력 연구가 파탄에 이르렀음을 고백한 것이다.
- 본문 43쪽, 배희철, 〈‘기초학력’ 제도화에 대한 단상〉
한편에서 교육계의 보수주의자들이 진보 교육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해서 전반적으로 학력 하향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목소리를 높이면, 반대편에서 교육의 진보주의자들이 우리가 관심을 갖는 학력은 당신들이 말하는 단순한 문제 풀이 능력과 질적으로 다르므로 학력 저하는 정치적 마타도어에 불과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곧이어 학력 이슈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다른 모든 교육 이슈를 집어삼키는 힘을 갖는다.
- 본문 55-56쪽, 정은균, 〈기초학력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기초학력을 갖추면 그 다음엔 그 학년에 맞는 학력을 갖추어야 한다. 기초학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초학력 논의가 학력 논의로 넘어가거나, 그 두 말이 같은 말인 이유다. 기초학력을 갖추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도 계속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이는 교육과정의 문제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정해 두고 모든 학생이 천편일률적으로 그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받고 정해진 성취 수준에 도달해야만 ‘정상적인 학력’을 성취했다고 하는 너무나 폭력적인 상황에서 많은 학생이 부진아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본문 60쪽, 최은경, 〈기초학력 지원한다면서 더 혼란스러워진 학교〉
앞서 교복우 사업이 교육 복지 정책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핵심이라기보다는 전부에 가깝다. 교복우 사업에 지정되지 않은 학교는 복지 사업과 예산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무상 교육, 무상 급식, 교육 급여 등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복지와 연동되지 않는 독립적인 교육 복지 사업은 교복우를 제외하면 학교 현장에서 찾아보기 극히 힘들다. 산발적인 공모 사업이 지정될 뿐이다. 그래서 어느 한 해는 ‘다문화 학생’이 방과 후 학교 무료 수강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가 다음 해에는 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전체 학교의 복지 제도적 성격을 가지고 있던 누리교실과 두드림학교 정책도 올해 들어 모두 부진 학생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제도로 강화되었다.
본문 71쪽, 진냥(희진), 〈아동 시기 삶의 안정성은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구로중학교에 있을 때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갑자기 사라졌다. 교육 수급자가 40명에서 39명으로 줄어 교육복지우선 거점학교에서 탈락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나 보니 학교에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 학생 비율이 늘어났는데 이 학생들은 교육 복지 지원 대상이 아닌 한편, 전체 학생 대비 지원 대상 비율을 산정할 때는 외국 학생도 전체 학생 수에 포함되어 비율로도, 수치로도 기준에 미달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지원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수치상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탈락되었다.
- 본문 80-81쪽, 남우현 외, 〈좌담 : 교실 속 보이지 않는 불평등〉
어린이의 권리 운동은 가부장제 운동을 타파하는 것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권리 운동 또한 그렇다. 가부장제에서 여성과 어린이는 똑같이 억압당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방정환이 그린 신가정에서는 가부장제하에서 일상처럼 존재하는 차별과 폭력의 맥락은 사라진 채, 근대화된 신여성으로서의 어머니와 마치 신처럼 절대적인 순수성을 가진 어린이만이 존재한다.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와 직업을 가질 자유를 사회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어린이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신장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삭제되어 있다. 여성 개인의 모성과 희생에 의존한 신가정은 기존의 가부장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 본문 116쪽, 지연, 〈방정환에서 벗어나, 다시 어린이 해방〉
그 시기를 함께했던 유가족 어머니께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셨고, 고등학교 교사가 된 지금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작년에 도서부 학생들에게 “세월호 관련 행사를 해 보면 어떨까?” 제안했으나 대답은 “시험 기간이라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학생회가 아닌 도서부에서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첫해에는 열정에 비해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학생들의 협조를 얻어 내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서툴고 어려웠고, 라포 형성도 충분히 되지 않았기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한 해였다. 2년 차에 접어든 올해에는 큐레이션 봉사자들에게 “4월의 주제를 세월호 참사로 하면 어떨까”라고 물었고, 대답은 “좋을 것 같아요!”였다.
- 본문 171-172쪽, 강유진, 〈세월호 9주기, 학생들과 함께〉
행사 장소의 선정에서도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이 모두가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소의 위치, 경로, 출입구, 동선, 화장실 등을 모두 점검하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단체명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에 명시된 창립 정신, ‘함께하는’이라는 말이 허울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온전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 더욱더 가까워야 한다. 우리는 서로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인식 개선 교육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이 아닌 실제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식 개선이며, 인식 개선이라고 명명할 필요도 없는 함께하는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 본문 198-199쪽, 편도환, 〈장애인 교원 노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동행하다〉
저자가 많은 곳에서 ‘특수학교(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또 책의 여러 곳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의 장애인 교육에서 특수학급은 기계적인 물리적 통합을 이루는 수준에서 진전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있다. 실질적 통합이 아닌 사실상 ‘포함적 배제(inclusive exclusion)’를 제도화하는 기제에 머물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이 특수학교에 대한 장애인 부모들의 현실적 수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특수학교가 필요하다는 장애인 부모들의 호소에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즉 경쟁과 수월성이 우선시되는 입시 교육 중심의 한국 교육 제도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특수학급을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의 실패를 증언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보다 많은 주의가 기울여져야 하는 것이다.
- 본문 229-230쪽, 김도현, 〈장애학의 시좌에서 본 특수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