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草衣禪師)
커피 문화와 차 문화는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해왔다. 혹자는 양자의 비교 우위를 논하기도 하지만 다 실없는 이야기다. 둘 다 나름의 멋이 있다. 바바리 코트 걸치고 낙엽 휘날리는 고궁 거닐다가 마시는 한 잔 커피도 멋이요, 누마루에서 거문고 안고 달빛 감상하다가 마시는 한 잔 차도 멋이다.
차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3국에서 불교의 선(禪)과 함께 정신적 멋을 응축한 독특한 세계다. 초의선사(草衣禪師)는 '한국의 차경(茶經)'으로 칭송되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남겨 차의 뜻을 정리했으니 차를 논 할 때 초의선사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는 1975년 최범술(崔凡述) 스님이 보련각에서 간행한 <한국의 다도>에 수록된 글을 발췌 소개한다.
〈다신전 茶神傳〉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엮은 <다신전(茶神傳)> 내용은 중국의 <만보전서(萬寶全書)>에서 뽑아 온 것이다.
1. 차 따기(採茶)
차 따는 시기는 그 때에 맞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온전치 못하고, 늦으면 신묘함(神)이 흩어진다. 곡우 전 5일이 으뜸이고, 그 뒤 5일이 다음이며, 다시 5일 뒤가 또한 그 다음이다.
차의 싹이 자주 빛깔인 것이 으뜸이고, 차의 표면이 주름진 것이 그 다음이며, 잎이 둥글게 말린 것이 그 다음이고(찻잎이 둥글게 말린 것은 단엽(團葉)이라해서 대체로 찻잎말이 나방의 애벌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조릿대 잎 같이 광택 나는 것이 가장 하품이다(*차나무는 새로 난 가지(新枝)에 8~12잎이 나는데, 마지막 꼭지 잎이 펴지면 그 전까지 펴진 잎은 조릿대 잎처럼 광택이 난다. 이때 차 움에 아미노산, 특히 ‘다신(茶神)’으로 불리는 ‘데아닌’의 함량이 급격히 감소하며, 햇빛이 강하고 온도가 높으면 쓰고 떫은 맛이 나는 ‘카테친’ 함량이 증가하므로 감칠맛이 떨어진다),
밤새 구름이 없고 이슬에 젖었을 때 딴 것이 으뜸이고, 해가 비칠 때 딴 것이 그 다음이니, 흐리고 비 올 때는 따지 말아야 한다. 산골에서 나는 것이 으뜸이고, 대나무 밑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며, 자갈밭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며, 누런 모래흙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다.
2. 차 만들기(造茶)
차를 새로 딸 때는 늙은 잎과 줄거리, 부스러기들을 골라 버리고, 두자 네 치[72cm정도] 넓이의 노구솥에, 차 한 근 반(750g정도)을 덖는다. 솥이 잘 달궈지기를 살펴, 비로소 차를 넣고 급히 볶는데, 불을 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익기를 기다려 비로소 불을 물리고, 체 안에 펼쳐 담아 가볍게 굴려가며 수차례 펼쳐둔다. 다시 가마솥 안에 넣어 점차 불을 줄여가며 알맞게 말린다. 이러한 과정에 현미(玄微)함이 있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불기운이 고루 들면, 빛깔과 향기가 온전하고 아름다우니, 현미함을 궁구하지 못하면, 신묘한 맛이 모두 시들해진다.
3. 차의 식별(辨茶)
차의 오묘함은 처음 만들 때의 정미함과 저장할 때의 적법함과 우려낼 때의 마땅함(宜)에 달려있다.
우열은 처음 가마솥에서 정해지고, 청탁은 끝 불과 관계가 있다. 불이 뜨거우면 향이 맑고, 솥이 차면 신묘함이 떨어진다. 불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설익은 채로 타버리고, 땔감이 적으면 푸른 빛(翠)을 잃는다. 오래 지연되면 너무 익어버리고, 너무 일찍 꺼내면 도리어 설익는다. 너무 익으면 누렇게 되고, 설익으면 검게 착색된다. 순서에 맞게 하면 달고, 거스르면 떫어진다. 흰 점을 띤 것은 무방하며, 타지 않은 것이 가장 좋다.
4, 차의 보관(藏茶)
차를 만들어 말릴 때는 먼저 오래 쓰던 합 그릇에 담아, 바깥은 종이로 입을 봉하고 삼일 지나 차의 성질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다시 약한 불로 덖어 바짝 말리고, 식기를 기다려 병에다 저장한다.
가볍게 쌓아 채워서 대껍질로 속을 봉한다. 꽃, 죽순 껍질 및 종이로 몇 겹으로 병 입구를 감아 봉한다. 위에는 불로 구운 벽돌을 식혀 눌러둔다. 다육기(茶育器) 속에 두되, 절대 바람에 닿거나 불을 가까이 해선 안 된다. 바람에 닿으면 냉해지기 쉽고, 불을 가까이 하면 먼저 누렇게 변한다.
5, 불의 세기(火候)
차를 달이는 요령은 불의 세기 조절이 우선이다. 화로 불이 붉게(紅) 퍼지면 다관(茶罐)을 비로소 올리고, 부채질을 가볍고 빠르게 하다가 끓는 소리를 기다려 점점 세게 빨리 부치니, 이것이 문무(文武)의 살핌이다.
문(文)이 지나치면 물의 성질이 유약해지니, 유약해지면 물이 차 기운을 가라앉히고, 무(武)가 지나치면 불의 성질이 거세지니, 거세지면 차가 물을 제압한다. 이들은 모두 중화(中和)에 부족하니, 다인(茶人)의 요지(要旨)가 아니다.
* 문무지후(文武之候): 불이 뭉근하게 또는 강하게 타면서 강유(强柔,文武)의 조화를 이루는지 살핀다는 뜻. 너무 빨리 끓으면 물에 녹아 있는 유기 오염물이 분해되지 않고, 너무 오래 끓이면 노수(老水)가 된다.
6. 끓는 물 분별법(湯辨)
끓는 물은 3가지 큰 분별법과 15가지 작은 분별법이 있다.
첫째를 형태 분별법이고, 둘째를 소리 분별법이며, 셋째를 김(氣) 분별법이다. 형태는 속(內)을 분별하기 위함이고, 소리는 겉(外)을 분별하기 위함이며, 김은 빠름(捷)을 분별하기 위함이다.
새우 눈(蝦眼), 게 눈(蟹眼), 물고기 눈(魚眼), 연이은 구슬(連珠) 같은 것은 모두 맹탕(萌湯)이다. 곧바로 솟구쳐 끓어올라 파도가 넘실대고 물결이 치는 것과 같아서 물 기운(水氣)이 완전히 사라져야 비로소 이것이 순숙(純熟)이다.
처음 소리(初聲), 구르는 소리(轉聲), 떨리는 소리(振聲), 달리는 소리(驟聲) 모두 맹탕이다. 곧바로 소리가 없어져야(無聲) 이것이 바로 순숙이다. 기운이 한 가닥(一縷) 두 가닥(二縷) 세 네 가닥( 三四縷)이 떠올라, 어지러히 분간 못함에 이르러 어지럽게 얽히는 것은 모두 맹탕이다. 곧바로 기운이 곧게 가운데로 꿰뚫고 나와야 비로소 이것이 순숙이다.
7. 끓는 물 사용법(湯用老嫩)
*노눈(老嫩): 너무 오래 끓인 물을 ‘노수(老水)’라 하고, 차 우리기에 알맞도록 부드럽게 끓인 물을 ‘눈수(嫩水)’라 한다.
송(宋)나라 사람으로 <다록(茶錄)>을 남긴 채군모는 탕은 부드러운 물 눈수(嫩水)를 쓰고 오래 끓인 물 노수(老水)는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개 옛사람들 차 제조법은, 차를 만들면 반드시 맷돌질하고, 맷돌질하면 반드시 갈고, 갈면 반드시 체질 하였으니, 곧 차는 티끌처럼 나부끼는 가루가 되었다. 재료들을 섞어서 용봉단(용과 봉황의 무늬를 앞뒤로 찍어 둥글게 만든 떡차)을 찍어 만들어, 탕을 만나면 차의 신묘함이 바로 떠올랐으니, 이것이 눈수를 쓰고 노수를 쓰지 않은 까닭이다.
요새 차 만드는 법은 체 치거나 갈지 않고 본래의 잎 모양을 갖추고 있으니, 탕이 모름지기 순숙이라야 본래의 차의 신묘함이 비로소 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탕은 모름지기 다섯 단계(*五沸)로 끓여야 차의 세 가지 기이함(*三奇)이 갖춰진다.'고 하였다.
*오비(五沸): 형태․소리․ 기운, 각각의 다섯 가지 끓는 단계.
* 삼기(三奇): 세 가지 기이함, 진향(眞香), 진미(眞味), 진색(眞色)을 뜻한다.
8. 차 우리는 법(泡法)
탕이 순숙이 되었음을 살폈으면 곧바로 들어올려서 찻주전자에 조금 따라 냉기를 제거하고, 그 물을 기울여 따라낸 뒤에 차를 넣는다.
차의 양을 알맞게 가늠하여 중(中)을 지나치거나 정(正)을 잃어선 안 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이 가라앉으며, 물이 많으면 색이 묽고 기운이 약해진다.
찻주전자를 두 번 쓴 뒤에는 다시 냉수로 씻어서 찻주전자를 서늘하고 깨끗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차의 향기가 감소한다. 다관(茶罐)이 뜨거우면 차의 신묘함이 온전하지 못하고, 찻주전자가 깨끗하면 물의 성질이 항상 신령스럽다.
차와 물이 잘 어우러지기를 조금 기다린 후에 베(釃)에 걸러서 나누어 마신다. 이때 거르는 것은 빨라선 안 되고, 마시는 것은 지체해선 안 된다. 빠르면 차의 신묘함이 채 피어나지 못하고, 지체하면 오묘한 향기가 먼저 사라진다.
9. 차 넣는 법(投茶)
차를 넣는 데는 차례가 있으니, 그 적절함을 잃어선 안 된다. 차를 먼저 넣고 끓인 물을 나중에 붓는 것을 하투(下投)라 하고, 끓인 물을 반 붓고 차를 넣고 다시 끓인 물로 채우는 것을 중투(中投)라 하며, 끓인 물을 먼저 붓고 차를 뒤에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 한다. 봄가을에는 중투(中投), 여름에는 상투(上投), 겨울에는 하투(下投)로 한다.
10. 차 마시는 법(飮茶)
차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손님이 많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우아한 정취가 줄어든다. 홀로 마시는 것을 ‘신(神,신령스럽다)’이라 하고, 손님이 둘인 것을 ‘승(勝,뛰어나다)’이라 하며, 세넷인 것을 ‘취(趣,멋스럽다)’라 하고,대여섯인 것을 ‘범(泛, 떴다)’이라 하며, 일곱 여덟인 것을 ‘시(施,베푼다)’라 한다.
11. 차의 향기(香)
차에는 진향(眞香), 난향(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이 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은 것을 ‘순향’이라 하고, 설익거나 너무 익지 않은 것을 ‘청향’이라 하며, 불기(火候)가 고루 배어 있는 것을 ‘난향’이라 하고, 곡우 전의 신묘함이 갖춰진 것을 ‘진향’이라 한다. 다시 함향(含香), 누향(漏香), 부향(浮香), 간향(間香)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바르지 못한 향기이다.
12. 차의 색(色)
차는 푸른 비취 빛(靑翠)을 으뜸으로 여기고, 찻물은 남백색(藍白)을 아름답게 여긴다. 노랑, 검정, 빨강, 어두운 색은 모두 차의 품격에 들지 못한다.
눈 빛(雪濤) 찻물이 최상이고, 비취 빛(翠濤) 찻물이 중간이며, 누른 빛 찻물이 최하이다.
신선한 샘물과 활활 타는 불은 차 끓이는 오묘한 기교(玄工)이며, 옥 같은 차와 얼음 같은 찻물은 찻잔에 담긴 절묘한 기술(絶技)이다.
13. 차의 맛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甘潤)을 최상으로 여기고, 쓰고 떫은 것을 최하로 여긴다.
14. 차의 오염(點染失眞)
차는 자연스런 참된 향기, 참된 빛깔이 있으며, 참된 맛이 있는데, 한 번 오염이 되면, 곧 그 참됨을 잃는다.
만약 물에 소금기가 있거나, 차에 불순물이 섞였거나, 찻잔에 과즙이 묻어 있으면, 모두 차의 참됨을 잃어버린다.
15. 차의 변질(茶變不可用)
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푸른색이다. 거두어 저장할 때 법도에 맞지 않으면, 처음에는 녹색으로 변하고, 두 번째는 누런색으로 변하며, 세 번째는 검은색으로 변하고, 네 번째는 흰색으로 변한다.
그러한 것을 마시면, 위장을 차게 하는데, 심하면 수척한 기운이 쌓이게 된다.
16. 물의 등급(品泉)
차는 물의 신묘함이고, 물은 차의 몸이다. 좋은 물(眞水)이 아니면, 그 신묘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정결한 차가 아니면, 어떻게 그 몸을 엿보겠는가.
산 위의 샘물(山頂泉)은 맑으면서 가볍고, 산 아래 샘물은 맑으면서 무거우며, 돌 사이 샘물(石中泉)은 맑으면서 달고, 모래 속 샘물은 맑으면서 차가우며, 흙 속 샘물은 싱거우면서 깨끗하다.
누런 돌(黃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좋지만, 푸른 돌(靑石)에서 새어나오는 물은 쓸모가 없다.
흐르는 물이 고인 물보다 낫고, 음지에서 나는 물이 양지의 물보다 낫다.
참된 근원의 물은 맛이 없고, 참된 물은 냄새가 없다.
17, 우물 물은 차에 부적합 하다(井水不宜茶)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산의 물이 최상이고, 강물이 다음이며, 우물 물이 최하.'라 하였다.
강이 가깝지 않거나, 산에 샘물이 없을 때 제일의 방안은 오직 장마 비를 많이 저장해 두는 것이 마땅하다.
그 맛이 달고 조화로워, 만물을 잘 길러주는 물이다. 눈 녹은 물은 비록 맑기는 하나, 성질이 무겁고 음습하여, 사람의 비위를 차게 하므로, 저장해 두기에는 마땅치 않다.
18. 물의 저장(貯水)
물을 저장하는 항아리는 그늘진 뜰 안에 두고서 비단으로 덮어두어 별과 이슬의 기운을 받도록 하여야,물의 빼어난 영험함이 흩어지지 않고, 신묘한 기운이 항상 보존된다.
가령 나무나 돌로 누르고 종이나 죽순껍질로 봉하여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면, 밖으로는 그 신묘함이 소모되고, 안으로는 그 기운이 막혀서, 물의 신묘함이 사라지게 된다.
차를 마실 때에는 오직 차의 신선함과 물의 신령함을 귀하게 여기니, 차가 그 신선함을 잃고 물이 그 신령함을 잃는다면, 도랑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9. 차의 도구(茶具)
상저옹(桑苧翁)은 ‘차를 달이는데 은그릇을 쓰다가 너무 사치스럽다고 하기에 나중에는 도자기를 썼는데,
또한 오래 쓸 수가 없어 마침내 은그릇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 은그릇이라는 것은 부유한 집에서 장만해두는 것이 마땅하니, 산속 오두막이나 초가집의 경우는,
주석그릇을 쓰더라도 향기, 빛깔, 맛에 손색이 없다. 다만 구리그릇과 쇠그릇은 피해야 한다.
20. 찻잔(茶盞)
잔은 눈처럼 흰색을 최상으로 여기고, 남백(藍白) 색은 차의 빛깔을 해치지 않으니, 그 다음이다.
21. 행주(拭盞布)
차를 마시기 전후에는 모두 가는 마포(麻布)로 잔을 닦는다. 그 밖의 것들은 더러워지기 쉬우므로,
쓰기에 마땅치 않다.
22. 차에 대한 도리(茶衛)
차를 만들 때는 정성스럽게 하고, 차를 저장할 때는 건조하게 하며, 차를 우릴 때는 청결하게 한다. 정성과 건조와 청결함이면, 차 마시는 도리는 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