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서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적 있는가?
만약
밤은 깊어지고
짐승의 울음소리는 들리고
깊은 숲속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인생에는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을 도(道)라고 한다.
사람이 걷는 길을
인도(人道)
차가 가는 길을
차도(車道)
심지어 하늘이 넓고 넓어도
비행기가 가야하는 길이 따로 있다.
바다가 넓고 넓어도
배가 가야하는 길을 항로(航路)라고 한다.
도(道)를 찾아서
도(道)를 깨닫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구도자(求道者)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누구나 구도자(求道者)이다.
생명의 길,
행복의 길,
건강의 길,
기쁨의 길을 찾아나선 구도자(求道者)들이다.
어느 분의 “스님! 도를 통하셨나요?”라는
재미있는 글이 있어 소개해 본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재빨리 앉을 자리를 찾았다. 휙 둘러보는데 중간쯤에 비어 있는 자리가 보였다. 그 옆자리에는 젊은 스님이 앉아 있었다. 스님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때 예수님의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전도해야지?" 나는 흠칫 놀라면서 '네? 스님에게요?' 하고 되물었다. 스님에게 하나님을 전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자신 없어 하는 내게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해 준 것 있잖아? 그것을 말하면 돼' 내가 곁 눈으로 스님을 훑어보았다.
잘 생긴 미남자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어쩌다가 스님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어 스님! 도를 깨우치셨어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가 약간 놀라면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직 못 깨우쳤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를 불교신자라고 느꼈는지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내가 다시 “그럼 도를 깨우친, 도통하신 분은 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글쎄요. 아직 못 본 것 같은데요...”
"무아 무념의 상태가 되는 것을 도통한다고 하지요? 자기가 없어지는, 즉 이기심 탐욕이 없어지고 잡념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는 것을 도통했다고도 하고 해탈이라고도 하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는, 즉 자력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종교가 불교이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그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였다.
나는 그에게 "저는 도통했어요." 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순간 그가 놀래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기독교의 원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타력에 의한 구원! 사람을 창조한 창조주를 향하여 도움을 청하면 실제적으로 능력이 하늘로부터 온다. 그 힘에 의해서 마음이 다스려지고 잡념을 없앨 수 있다. 이기심, 식욕, 정욕 등 신의 능력을 받으면 이길 수 있다.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자신이 받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하늘의 신! 이 세상과 천지를 창조한 신만이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고, 죄로부터 구원받는, 즉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 내가 그 힘으로 마음을 다스려 보았고 현재도 그것이 되고 있으니 도통한 게 아니냐 하고 질문을 하였다.
그는 진지하게 내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아 무념의 상태, 비워진 마음에 하늘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하늘의 빛은 사랑과 평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에 인간의 고행으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사람의 내면에는 참사랑이 없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하늘을 향하여 달라고 해야 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 이 책을 읽어 보라고 하면서 가방에서 <말씀향기>이라고 하는 소책자를 꺼내 주었다.
그가 고맙다고 절하며 책을 받았다. 책을 받아 들고 그가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돌아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소책자를 펴서 읽고 있었다. 차가 코너를 돌아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나의 영혼에 행하신 그 일을 내가 최선을 다해서 전하였으니 주님께서 그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유리창에 기대어 쉬었다.
열자의 설부편 다기망양(多岐亡羊) 이라는 길에 대한 사자성어의 고사(古事)가 있다. 춘추 전국 시대 어느 마을에 양자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덕망이 높아 많은 제자들이 그를 추종했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이웃동네에 양한 마리를 잃어 버렸는데 동네 50명 이상이나 되는 장정이 양한 마리를 잡아 오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양은 잡았더냐?”
“잡지 못 했습니다”
“어찌 그렇게 정정한 장정들이 양한 마리를 잡지 못한 다더냐?”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동내에서 나가는 길이 하나라서 한 길로 나갔는데 가다보니 길이 나누어져서 25명씩, 그 다음에 길이 또 나누어져 12명, 그 다음엔 6명,3,2,1..길이 사람 수보다 더 많아 양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후 양자선생님이 식음을 전패하고 고민해 하셨습니다.
“아니 그깟 양한 마리로 그리 고심하십니까?”
“잘 들어 보아라. 이것은 양 한마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 참 진리를 가졌었는데 그 생명, 진리를 잃어버린 길은 한 길 아니겠니,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은 한 길이라는 뜻이다. 제각기 자기가 길이라고 길만 내면 나중에 참 생명을 찾아갈 사람들이 어떻게 길을 찾겠느냐, 참 생명의 길은 하나 뿐 인데 그 생명의 길을 내가 모르니 어찌 너희들을 가르치겠느냐? 하산하라”
참 생명의 길은 하나뿐입니다. 양이 간 길도 하나 뿐 이듯이 말입니다.
어디가 생명의 길인가?
누가 잃었던 생명을 우리에게 찾아주라.
생명의 길
부활의 길
기쁨의 길
소망의 길
무덤을 깨트리고 부활하여
온 세상을 향하여
참된 길 됨을 외치신 이가 있다.
그가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https://youtu.be/QEQV3m5zRyI
https://youtu.be/4o4xevH1RMk
https://youtu.be/kZJ11XNWz-o
https://youtu.be/S72IdZ3nCDU?list=PLkDm9k3-yeTi-xeBCXYT06aO3gAu9gAd9
https://youtu.be/qE3trBssDEo
https://youtu.be/ol4IImuQzSo
https://youtu.be/xGO2EdmVPic
https://youtu.be/l2TaAtBo3SY
https://youtu.be/ewR-kAPOO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