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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왈덴스인들을 탄생시킨 종교 암흑시대
현대 왈덴스인들을 찾습니다!
왈덴스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왈덴스인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세기에 가해졌던 그 무서운 종교 핍박, 성서가 가르치는 바른 진리가 이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질 정도로 혹독하게 가해졌던 종교 핍박을 꿋꿋이 견딘 왈덴스인들! 인간이 만든 유전을 강요하고 성서에 배치되는 복음과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의 세력에 생명을 바쳐 가면서까지 굳세게 항거하여, 결국에 그 위대한 종교개혁 운동의 씨를 뿌리고 발아시킨,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후대까지 보존시킨 왈덴스인들!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밝은 성경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왈덴스인들의 신앙 때문에 탄생하게 된 위대한 종교개혁, 진리를 회복시키는 종교개혁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종교개혁 운동은 성경의 순수한 진리 그대로 믿고 사는 현대의 왈덴스인들에 의하여 세상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신앙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현대의 왈덴스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지금 찾고 계십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왈덴스인들의 신앙의 역사를 고찰해 보기로 합니다. 부득이하게 역사를 다루다 보면 특정 종교의 과오를 들춰내거나 비난한다는 인상을 주기가 쉽지만, 성경의 바른 가르침과 진리를 조명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고 특정 종교를 비난할 목적이 아닌 것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이 왈덴스인들의 신앙에 대한 기사들이 독자들의 신앙의 불길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고, 또 여러분들을 현대 왈덴스인들로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현대의 개신교인들은 성경과 진리가 어떤 희생과 눈물겨운 투쟁을 통하여 지금까지 보존되고 전달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별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성경의 진리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특권에 대하여도 별로 감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역사에 대하여 연구하고나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를 읽고 나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그 위대한 종교개혁의 불꽃이 점화되었고, 그 결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풍성한 진리의 홍수 속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왈덴스인들이 출현될 수 밖에 없었던 종교적 배경, 곧 이 지구에 존재했던 종교 암흑 시대에 대하여 연구해 보자.
1). 초기 그리스도교와 로마 제국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대 상황
예수님의 부활 후 온전히 회개하고 다시 거듭난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큰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내었다.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리스도교의 큰 성장이 뒤따르게 되었다. 사도시대 이래 처음 몇 세기 동안에는 그리스도교계에 현 시대 같은 여러 교파가 없었다. 1세기에는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들이 이러한 교회들을 다스렸고, 그 후에는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도 교부들이 일어나서 진리를 지켰다. 그런데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제국의 황제에 대한 예배가 강요되었고, 또 그리스도교가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다신교와 이교의 사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의 끔찍한 핍박은 2백 년 이상이나 계속되었지만 교회는 그래도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며 순교자들의 피를 씨앗으로 하여 로마제국 전역으로 세차게 번져 나갔다.
2.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통합
순교자의 피가 흘려진 곳마다 새로운 신자들이 생겨나고 가혹한 핍박하에서도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크게 증가되자, 정치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로마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껴안음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로마 황제는 정책을 바꾸어 종교 자유를 허락하는 관용 정책을 통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종교 자유를 허락하는 밀란의 칙령을 내렸으며, 자신도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 박사의 증언은 4세기 그리스도교의 진상에 대한 적절한 요약이다.
4세기 초, 서방을 다스리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고...324년,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결과로 신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특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밀려 들어왔다. 화려한 이교 의식에 익숙한 이교도들에게 단순한 그리스도교 예배는 만족을 주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교적인 신조와 종교 행사들을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점점 성경의 진리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고, 진리에 대한 신자들의 무지로 인하여 교회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교회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교의 교회라고 불러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교의 행습을 본받아 교회 안에는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제사를 드리는 사제와 화려한 의식, 돌과 나무로 새긴 각종 성상들, 성수, 분향, 수사들과 수녀들, 연옥의 교리, 구원은 은혜보다는 행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이교적 신앙이 일반 신자들과 성직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갔다. (Liraine Boettne, Roman Catholicism, 11. The Prebyterian and Refomed pub-Iishing Co. 1979)
3. 불법의 비밀이 들어오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Constantine) 황제의 이름뿐인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을 불러일으켰으나, 사실 이것은 세상이 의(義)의 형식의 가면을 쓰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교도인들과 그리스도교들의 통합을 통해 로마 국가의 번영과 통일을 꾀하려는 황제의 정책의 일환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교와 그리스도교회 사이의 타협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더 높이리라고 예언된 불법의 비밀 의 발전을 초래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로마 교황권의 확립을 초래할 큰 배도를 예언하였다. 그는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 (살후 2:3, 4)리라고 말하였다.
2). 종교 암흑시대의 도래
1. 교황권의 확립
6세기에 교황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이교는 그 세력과 지위를 교황에게 넘겨 주었고, 로마교회가 온 제국과 세계의 권세를 잡게 되었다.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1260년간의 종교 암흑시대와 교황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단 7:25; 계 13:5-7 참조). 로마교의 권세가 더해 갈 적마다 영적인 암흑은 더욱 짙어졌다. 믿음과 진리는 진정한 기초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로마 교황에게로 옮겨 갔다. 사람들은 죄의 사유와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뢰하는 대신에 교황과 교황에게서 권세를 받은 신부나 주교에게 구하게 되었다. 교황은 세상에 있는 그들의 중보자이며,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또 교황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으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배웠다.
2. 교회에 들어 온 오류와 미신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진리와 믿음을 버리고 로마교의 의식과 예배를 받아들이든지, 지하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대와 화형(火刑)과 참형 집행자의 칼에 생명을 빼앗기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박해는 전에 없이 한층 더 격렬하게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임하였으므로 세상은 하나의 큰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수백 년간 그리스도교회는 인가가 없는 궁벽한 곳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선지자는 이 일에 대하여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 12:6)고 예언하고 있다. 복음은 잊혀졌고, 종교의 형식은 증가되었으며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혹한 요구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그들은 교황을 그들의 중보자로 우러러보고,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그분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먼 길의 순례 여행, 고행, 유물 예배(遺物禮拜), 교회당과 제단과 수도원의 건립, 많은 돈의 헌납, 그 밖에 그와 유사한 일들을 행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3. 교황 무류설(無謬設)
종교 역사를 보면 8세기에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으로 확립되었는데, 그에 더 나아가 11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ous f)는 로마교회가 완전하다고 선포하였다. 그의 주장 중의 하나는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한 번도 그릇된 일을 한 일이 없고, 또 장래에도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성경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는 교회와 교황은 틀릴 수 없으며, 또한 황제들을 폐위시킬 권세가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자기가 선포한 선고는 아무도 폐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교황은 전세계의 독재 군주가 되었다. 왕들과 황제들은 로마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수백 년 동안 로마교의 교리들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절대적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그 의식들은 엄숙히 거행되고, 그 축제일들은 널리 준수되었다. 승려들도 존경을 받고, 풍족하게 살게 되었다. 아마 이때처럼 로마교가 위엄과 세력을 편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영적으로 세상의 한밤중이었다.
4. 이교의 교리가 스며들어 옴
세기가 지나갈수록 그릇된 교리가 로마로부터 끊임없이 나왔다. 개종했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이교적 철학설을 주장하며 스스로 그것을 계속 연구할 뿐만 아니라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리하여 심각한 오류가 그리스도교 신앙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본래 불사불멸(不死不滅)의 본성을 가졌으므로 죽은 후에도 의식(意識)이 있다는 설은 그와 같은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로마교회가 확립한 성도의 중보, 동정녀 마리아 숭배 같은 것이 다 이러한 교리를 기초로 생겼다. 또한 영원히 불타는 지옥, 연옥 등의 교리도 생기게 되었다. 지옥과 연옥의 교리는 미신적인 많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또 면죄부라는 것을 만들어, 무슨 죄를 짓을 했던지 돈으로 로마교회가 만든 이 면죄부를 사면 용서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법왕군(法王軍)에 속하여 그 영토를 넓히고, 교회의 적(敵)을 징벌하고, 교황의 영적 최상권을 부인하는 자들을 박멸하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사유를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과 형벌에서 면죄된다고 약속되었다.
3). 왈덴스인들의 탄생
참된 성경의 기초 위에서 신앙을 고수하고 진리의 성벽을 쌓던 소수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리가 자기들의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혼란과 어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진리의 성벽을 건축하는 공사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자행되는 박해, 기만, 불법, 그 밖에 사단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장애물과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피곤하여져서 낙담해 버렸다. 그런 사람들은 마침내 생명의 안전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참된 진리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원수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외치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신실한 사람들, 온갖 미신과 오류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진리를 전수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왈덴스인들이었다.
제일 앞장 서서 로마교회 교황권의 침입을 저항한 사람들 중에는 왈덴스(Waldenses)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리를 보존하는 사람들 중 최선봉에 섰던 사람들이다. 왈덴스인들은 교황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바로 그 나라에 살면서도 그 오류와 허위와 부패를 꿋꿋이 저항하였다. 수세기 동안에 피에몽(Piedmonte; 이태리의 북서부 지방, 알프스 산 부근)의 교회들은 독립을 유지해 왔으나 마침내 로마가 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게 되었다. 로마의 압제에 대하여 무력한 저항을 해본 후에 마침내 그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 온 세계가 존중하는 교황의 최상권을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교황과 주교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들의 믿음의 순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결심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두 갈래로 서로 갈라졌다. 여전히 과거의 믿음을 굳게 지키는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이제 고향인 알프스를 뒤에 두고 외국으로 가서 진리의 깃발을 꽂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깊은 산골짜기나 험준한 산 속으로 피해 가서 거기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이렇게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산골짜기나 험한 산으로 들어가 교황권에 저항한 믿음의 선조들을 역사는 왈덴스인 들, 또는 왈덴스 교도 들이라고 부른다.
왈덴스 교도들이 몇 세기 동안 가르쳐 온 신앙은 교황권으로부터 나온 오류로 꾸며진 교리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인의 참 제도에 기초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새롭게 받은 믿음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고, 그것은 사도 교회의 신앙인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유 3)였다. 세계의 도시에 거창하게 자리잡고 있는 교권 교회가 아닌 이 광야 교회 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나누어 주라고 당신의 백성에게 맡기신 진리의 보화를 잘 간수하고 있던 그리스도의 참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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