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은 우리 대신대 교수로 계신 오민수 목사님께서 창조주의 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해 주시겠습니다. 우리 목사님 큰 박수로 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시고 복되신 하나님 아버지 마이이 주를 노래하고 찬양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의 구복과 정성을 주께서 받아주시고 우리의 노래가 우리의 선포가 되고 예언이 되고 우리의 아킬이 될 수 있도록 노래 가운데 주의 은혜에 임재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함께하시고 우리 모두가 주의 성호를 노래하며 주로 통하여서 자유함을 얻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역시 기도 목회를 하시는 저희 존경하는 남일출 목사님 교회 오니까 제 목소리가 기도의 영성을 받아서인지 약간 허스키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영성의 영향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교회란 참 아름답고 선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저 여러분 처음 봤죠 익히 보신 분도 계십니다. 여기 보면은 저희 최영근 강도사님도 계시고 유예성 전도사님도 계시고 김주희 반주자님도 계시고 저 늘 학교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었는데 여러분도 저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서 여러 번 뵀는데 저도 천국 가면 서로 아는 척하고 그때 여기 구미 목장교에서 함께 예배드린 것을 추억하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런 시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한국 생활이 11년째입니다. 한국 생활이 11년째이고 독일에서 14년 정도 살았습니다. 14년 동안 살다 보니까 신대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유학 가다 보니까 거기에서 주일 학교부터 시작해서 2세 그다음에 거기서 이제 교육 목사, 담임 목사까지 다 하고 이제 있다 보니까 교민 사회를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위까지 다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사역할 때는 제가 주일 학교 사역을 할 때였습니다. 언제나 주일 학교 유치부 그리고 유년부 아이들이 늘 저를 지켜보고 있는데 예배드리고 예배드리고 함께 천진한 모습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고 애정을 줬는데 늘 한국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만 한국에 갔다 오면 아이들이 전도사님 이 이름을 잊어버립니다. 얼굴도 잊어버립니다. 한 유치부 정도 되면 한 달 정도 얼굴 안 보인다. 애들이 나타나면 무서워합니다.
때로는 제가 무섭지 않은 얼굴인데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은 어떡하 이게 실망하면 어떡하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사실 대단히 감사했어요. 왜 감사했냐 하면 땅에서 받을 것이 없는 거로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남일출 목사님 개인적으로 선배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 때는 지금은 큰 선교단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재단 법인으로 거듭났습니다. 한국 밀알 선교단이라고 함께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선배님이었고, 언제나 언제나 미련의 정신이 내가 먼저 썩고 녹아져서 많은 사람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지 라는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이름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리 밀알의 정신이었는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 늘 섬기시는 그런 목사님의 모습을 저는 귀국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이제 듣게 되고 보게 되고 신문으로 보게 됐어요.
오늘날 신문에 보니까 16년 동안 새벽 기도하시고 청소를 하셨던 공원 청소를 하셨다는 기록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 아십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빗자루를 들고 쓸지만 지구의 한 부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한 부분을 쓸고 있다는 아름다운 마음 그리고 누군가 보지 못하고 가장 지저분한 곳 내가 먼저 그들을 위해서 쾌적함을 제공해 주고 그리고 어떻게 깨끗해야 많은 사람이 마음도 단정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먼저 하셨다고 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 몸에도 인체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잖아요. 질병이 많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 저도 이제 죄송합니다. 50이 넘었습니다. 50이 넘어서 이제 노안도 찾아오고 이리저리 허리도 아프고 지엽병상 아프고 그래서 운동을 움직여야 돼요.
그런데 내가 허리 아프다고 그래서 허리 움직이면 허리 낫나요?
그렇지 않아요. 사실 병이 깊어가면 모든 병은 신체 말달에 벌써 풀어나가는 거예요. 가장 먼 곳에서부터 몸을 풀어가야 몸이 제대로 풀려져요. 하나님의 해법이 그러한데 저희 선배 목사님께서 그러한 해법을 10년 동안 해오셨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놀랍고 놀랍고 담임 목사님 저 해야 될 일이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한 곳을 본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일편 단심으로 섬기시는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네 독일은 잠깐 이야기했습니다. 독일은 이제 기독교 국가입니다. 헌법의 몇 조에 보면은 모든 기독교 개신교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준하여 생활해야 된다는 이러한 법 조항이 딱 들어가 있습니다. 원래 주일날 되면 버스도 잘 안 다닙니다. 3시간에 1시간 다니던가 주일 오전에 되면 1시간 한 잔 다리고 오후 되면 3시간에 한 대 다니고 왜 주일은 모두가 쉬어야 되니까 그렇게 다녀요.
처음에 한국 사람이 가면 굉장히 불편합니다. 쇼핑을 해도 금요일 5시 끝 토요일 2시까지 쇼핑을 하고 그리고 토요일 2시 이후로부터는 차가 안 다녀요. 제가 교회 가는데 교회 갈 때 차 타고 2시간 갑니다. 더 빨리 가는 방법은 자전거 타고 가는 방법이에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삽니다. 너무나 너무나 불편하지만 그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면 아 내가 멈출 일이 있고 계획할 일이 있구나는 걸 스스로 깨닫게 돼요.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는데 주말에 대부분 사람은 주말에 쇼핑을 봐서 일주일 치를 다 사놓습니다. 냉장에 넣어놓고 그다음에 일주일 동안 요리하고 또 주말에 또 사요. 그래서 모든 것이 이렇게 생활 리듬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까 굉장히 편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따분하고 누가 나를 찾는 사람이 없고 너무나 너무나 지루했어요. 한가함에 지나서 따분하고 뭔가 프로그램이 있어서 누가 나를 즐겁게 해주고 누가 나를 만나줘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뭔가 채워놓는 게 있어야 되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밖에 없습니다. 쉼이라는 게 주어졌어요. 토요일하고 휴일 쉼이라는 게 주어졌는데 내 힘을 내 마음대로 내가 관리하지 못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쉬었던 모든 힘들인 것은 누군가가 꾸며진 틀 안에서 모조적인 쉼을 해온 것입니다.
한국의 유치원의 실태에 대해서 이제 약간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습니다. 교육 하시던 어떤 분이 서구에 있는 이제 서양에 있는 유치원 아이들하고 한국에 있는 유치원 아이들하고 이렇게 비교를 합니다. 서구에 유치원 가면 우리나라 유치원 가면 아이들 태어나면 대구 같은 경우 인구가 좀 적더라도 1년 전부터 좋은 유치원 이렇게 물색해 봐야 돼요. 어린이집도 물색해 보고 등수 걸어놓고 그다음에 입학을 해야 됩니다. 좋은 유치원 자연 활동도 있고 미술도 있고 음악도 있고 여러 가지 레크레이션도 있고 정말 프로그램 좋아요. 서예도 있고 이래요. 정말 좋은데
서양의 유치원 가면요. 홍합니다. 별로 도구가 없어요. 그래서 한국의 유치원 아이들하고 서양의 유치원 아이들하고 똑같은 환경에 한국의 아이들이 있는데 유치원이라 그러고 아무런 교구나 도구를 넣어주지 않았어요.
시간이 10분 20분 30분 지났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이들이 공항에 빠져요. 마치 저처럼 공황에 빠져서 울고 있어요. 그리고 짜증 내고 있어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반면 서양의 애들은 유치원 자체가 훤합니다. 뇌출혈이라는 도구밖에 없어요. 놔두면 아이들이 가만히 있다가 서로 모여서 무슨 게임할까 스스로 정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룰을 정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합니다. 자발적으로 모여서 협력하고 합의하고 아이들이 놀이한다. 노는 거 그냥 노는 거 아닙니다. 창의성 있어야 되고요. 노는 것도 질서가 갖춰져야 재미가 있어요. 내 마음대로 노면 지루해서 못해요. 질서를 배우고 자유를 배우고, 합의를 배우고 창의를 배워요.
너무나 차이 난다는 겁니다. 저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마찬가지로 반성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놀이기구가 있던 환경에서 없던 환경에 처하니까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던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잘 들어보십시오. 부지런한 것은 생산적이고 좋은 것이고, 쉬는 것은 비생산적이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네 맞습니다. 대부분 사람들 사람들이 부지런한 것은 생산적이고 좋은 것이고, 쉬는 것은 비생산적이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생각인데, 이 생각의 전제를 가만히 보면 여기에서 여러분이 듣기 좋은 소리일 수도 있고 나쁜 소리도 있습니다.
이 생각은 기본적으로 너무나 정상적인 생각이지만 너무나 좌파적인 생각입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유물론적인 생각이에요. 사람과 인생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기준을 합니다. 노동으로 기준을 합니다. 그래서 노동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중요한 사람이고 노동 생산성이 없거나 떨어지는 사람은 무가치한 존재예요.
그래서 유물론에서 가장 많이 하대당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일반적이지 않은 환경 가운데 생활하고 태어난 사람들 그렇습니다. 비생산적인 인간은 존엄함이 없다라는 겁니다. 그렇기 역시 쉼이라는 것도 비생산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또한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쉬어 하는 밤 시간은 아주 가장 비생산적인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하였고, 밤을 낮처럼 밝히는 일을 지금까지 해 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7일에 쉬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유물론적 사고가 밑바탕인 우리가 증명됐죠. 저와 여러분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신앙인이지만 6일 동안은 밖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밑바탕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생각합니다.
유물론이 밑바탕이 생각해서 하면은 하나님이 6일 동안 부지런히 일하셨으니까 일곱째 날을 쉬는 것이 아닌가 다일 다 마치고 쉬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뜻하는 평범한 해설이고 이야기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라. 1장 31절 그리고 이어지는 그다음 주 구절이 2장 1절 말씀인데, 천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천지 만물이 다 이루어진 시점이 여섯째 날입니까? 일곱째 날입니까?
네 여섯째 날 소리 없이 대답하는 소리도 저는 다 듣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노예 자금, 신음 소리도 응답하시고 분명 여섯째 날 모두가 동의하셨습니다. 2장 1절을 보면 천지 만물이 다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하시는 일을 아직 완성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창조의 주체였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했던 일을 완성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에 이를 때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함으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하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6일 동안은 그 입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7일은 아무 말씀 없었습니다. 목소리도 어떻고 활동도 없었습니다. 천지만물에 일어난 그 어떤 현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7일이 되어서야 하나님이 하신 일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지 만물이 모두 구성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천지의 천지를 창조하신 그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시는 이 한 날 때문에 비로소 6일의 창조의 작업이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를 종기와 위엄으로 옷을 입히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리한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만물을 다스리라.
우리는 너무나 많이 읽어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요.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에요. 하나님이 인간은 반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은 유한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 모든 거 다스리라. 유한한 인간이 이 엄청나고 막대하고 장엄하신 분의 명령을 실행하려면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바빠야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모든 일에 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싱 트라이어넷 에러 시행착오도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또 배우는 것도 필요하고 연구도 필요하고 능력도 개발해야 됩니다.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에너지가 잘 방전돼요. 방전되면 충전도 해야 되고요. 심지어 밥 먹고 난 다음에 소화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좀 쉬어줘야 됩니다.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미리미리 좀 준비를 해놔야 마음에 안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처럼 무소부재하지도 않습니다.
무소부재하다는 것은 제가 여기에 설교함과 동시에 문 밖에도 존재하는 겁니다. 어느 곳에나 다 계신다는 거예요. 동일한 현상이 이 무소부재의 현상이 옛날에는 참 신비한 현상이었는데 요즘에는 양자라는 것이 나오면서 양자 역학이라 나오면서 이게 한 존재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집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지금 컴퓨터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는 무서워 보쇄하지 않아요. 영으로 존재하신 하나님은 모든 곳에 모든 시공간에 어떤 연대를 딱 맞추면 그 연대를 갈 수 있어요. 과거의 연대로 맞추면 과거 연대로 갈 수도 있어요.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였어요. 사람에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한 번 일이 없어지면 뒤돌리기가 굉장히 뒤로 가기가 쉽지 않고 뒤돌려가서도 내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사람 편을 생각해 보면 이 엄청난 분의 영광이 얼마나 중처리하고 그때 같이 죄가 없었어요.
얼마나 까다롭고 무거웠겠습니까?
그런데 유한한 인간이 창조주께서 만드신 이 지구라는 생태 교실 속에서 만든 배운 첫 번째 수업은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지으시고 사명을 위탁하시고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게 처음 쉬는 법, 안식하는 법을 가르치셨다는 겁니다. 정말 창의적이죠. 기발하신 분이세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걸 다스리라고 일거리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먹을 것도 다 만들어 주셨어요. 이게 뱉는 모든 것들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일거리도 맡겨주시고 월급도 다 정하셨어요. 그런데 쉬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번에 AP 봤는데 잭슨 황하고 이재용하고 현대그룹 모 회장님 모여서 같이 치욕을 한 것이 그렇게 화제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NVIDIA에서 잭스 왕이 저를 초대했어요. 천 몇만 분의 1로 저를 선택해서 정규 직원으로 채고했는데 연봉도 다 계약됐어요. 그리고 일하러 가려고 그러는데 딱 하더니 당신 집에서 쉬세요. 한 달간 쉬세요. 쉴 줄 모르는 사람은 NVIDIA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이거하고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일거리 산적하게 널려 있습니다. 일은 시키지 않고 하나님이 쉬라고 합니다. 어떻게 쉬는 거죠?
수입의 모델이 없어요.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나님밖에 없었어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쉰다고 합니다. 레저 즐긴다고 합니다. 램핑 갑니다. 나이 들어 보시면 쉬는 것도 비용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고 갔다 오면 쉰 것보다 아픈 게 더 많아요. 잘못 씌어서 그런 것 같아요. 취의 모델이 하나님이에요.
어떻게 쉬어야 돼요?
그러니까는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처럼 쉬어야 된다는 걸 맨 처음 창조한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7일 안식 함께 먼저 보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하던 이 공동의 안식 일곱째 날은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실 때 세 번이라는 숫자가 두 번 반복됩니다. 세 번의 나눔이 있습니다.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나눠주셨어요.
그리고 둘째 날에 궁창이 있어서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셨어요. 그리고 윗물을 하늘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넷째 날인데 하늘의 광명을 나누시고 주야로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3이죠 또 3이 있습니다. 7일 창조 중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표현이 딱 세 번 나옵니다.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들을 만드신 후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섯째 날 사랑과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후에도 축복하셨습니다. 축복의 내용은 역시 마찬가지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날 세 번째 축복이 있습니다. 이 날을 축복하시고 심지어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에 창세기 2장 1절에서 4절인데요. 굉장히 놀랍습니다. 2장 1절에서 4절인데, 1절에서 4절, 3절까지 일곱째 날이 몇 번 반복되냐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릴게요.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나를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습니다.
몇 번 들어갑니까?
세 번 들어갑니다. 2절 하번 절에 두 번, 상반절에 한 번, 정확히 세 번 들어갑니다. 이 세 번의 반복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천지 창조의 모든 작업을 문학적인 기법으로 시간의 순서에 따르면 이렇지만 문학적인 기법으로 이 한 날 속에 다 집어넣은 것입니다. 하루 속에 3 3, 6일이 모두 들어갈 수 있도록 또 한 번의 3을 반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한 달의 비중이 나머지 여섯 날의 무게와 동일하다는 겁니다. 아니 이 희 한 날의 무게가 여섯 날의 무게보다 더 무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식은 창조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순서대로 이기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완성하신 후에 이 한 나를 구별하신 것이지만, 본문의 심층적인 내용으로는 천지 창조의 만물의 완성은 이 안식하는 날 한 날이 없으면 미완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만 그럴까요?
내 인생도 미완성품입니다. 피조 세계에 이 한 날이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고, 이 한날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만물과 다른 인간에게 맨 처음 쉬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세 번씩이나 일곱째 날을 반복하듯이 창조주 하나님이 쉬신 7일째는 하나님이 좋았더라는 그런 웅장한 소리가 세 번이나 반복되어 울리는 날입니다. 창조주 곁에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처럼 말없이 고요히 쉬는 이 날을 하나님께서는 거룩하다 거룩한 성자를 붙으시고 그 날을 복 주는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육과 번성과 충만함,
이 모든 생명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됩니까?
인간의 일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 쉼에서부터 창조주의 심에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기술과 창의력과 과학과 학문이 창조주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하나님을 알든 하나님을 모르든 창조주와 공유하는 이 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겁니다. 무에서 유를 불러 나오는 이 놀라운 기적이 그 신기한 능력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겁니다.
에카르트 톨레라는 작가가 있는데 쉼의 시간, 고요의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창조력은 자신이 알던 모르던 무심의 장소로부터 고유한 내면에서부터 나옵니다. 위대한 가작자들도 생각이 멈춘 순간 고요한 상태에서 돌파구가 열렸다고 말해왔습니다.
먼저 쉬어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고요함 중에 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할 수 있고 번성할 수 있고 땅에 충만할 수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불러 나오는 그 능력이 하나님이 쉼으로부터 허락해 주셨어요.
여러분 기도합니다. 내 기도하는 이 시간 그때가 가장 귀하다. 내 마음을 쏟아놓고 아버지가 이어 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쉼을 누립니까?
우리 영혼의 쉼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쉼을 모르고 달리기만 합니다. 열심히 산다고 다 되었던가요?
그렇다고 세상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쉼 모르고 달리기만 합니다. 창조의 이야기가 기록될 당시에도 고대 근동의 그 어떤 막대한 나라들도 7일 만에 한 번에 안식하는 나라가 단 한 나라도 없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쉼없는 나라를 보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 그 주변 환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조차도 더 후대에는 이 안식하는 날을 지키지 못해서 원래는 하나님이 쉬면 복 준다라고 했는데 쉴 줄 몰라요.
그래서 출애굽 후에는 어떻게 하죠?
영령으로 바뀝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출애굽기 좀 더 타면 34장 정도 되면 더 심각하게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약간 몸에 액체가 나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더 심각한 게 나와요. 일하면 죽는다 이렇게 나와요. 얼마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명령해야 지킬 수 있는 그런 수준이 됐다는 겁니다.
그만큼 지성적인 존재가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지정 하나님이 사람이 하나님과 공유해야 하는 그 고요함에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전 인류에게 하나님처럼 안직할 것을 미리 가르쳤습니다. 창조주의 모든 축복과 능력의 비밀이 그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는 이 여섯째 날의 모든 일이 완성되었지만 덧붙여 일곱째 날을 기록하면서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를 마치시는 날은 바로 말없이 안식했던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홀로 한적한 곳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 담임 목사님은 그래도 청빙 되시면 사역의 마감까지 가 있잖아요. 예수님은 사역 마감이 3년입니다. 인류를 만드신 후에 우주를 만드신 이래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그 3년 만에 완성을 해야 된다. 하나도 오차가 없이 실패함이 없이 유혹해내야 된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막대하고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참 인간이세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세요. 인간적인 예수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3년밖에 시간이 없는데 이런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이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축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처럼 쉬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 예배 모범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일상적인 생업이나 상거래 일, 세속적인 쾌락이나 세상의 염려나 속된 말을 삼가하고, 예배와 전도, 성경 연구, 기도, 환자 위문 등 생명을 살리는 일과 신앙 서적 읽기, 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 세례 받을 때 다 이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현대 사회가 너무 바뀌기 때문에 주일 성수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졌어요.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우리가 주일 선수 다 했다고 스스로 위로받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일 지키는 거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주일이 거룩한 날이다. 성스러운 날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어떤 날이죠?
하나님을 위해서 비워드리는 날이에요.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나를 비우는 날입니다. 주일날은 거룩한 하루이기 때문에 이날은 내가 하던 일상의 패턴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속된 생각을 하거나 말이나 행실이 있으면 아예 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제 함부르크에서 쳐보시면 함부르크 열린문교회 쳐보시면 옛날에 오민수 목사 이렇게 나옵니다. 있었지만 일 주일 예배 마치면 늘 회의를 하더라고요. 저는 참 이게 못마땅했어요. 원래 주일 회의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고 회의하는데 원래는 이 회의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우리의 계획과 플랜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우리가 기도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 회의하자고 만들어 놓은 순서가 그거예요. 하나님 말씀 아래 하나님의 기도 아래 축복 아래 회의하는 거예요.
그런데 매일 주일 후에 회의를 하니까 시간이 굉장히 그리고 한인 교회들은 대부분 오전에 독일 교회를 빌려 쓰고 오후에 씁니다. 굉장히 타이트하게 돌아갑니다. 돌아가니까 사람들이 마음이 급해요. 급하다 보면 사람이 자기 말할 걸 빨리 말하고 사람을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늘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만 이해 못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주일날 말을 하다가 말이 제대로 안 통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고요. 주일날은 내 날이 아니라 내 업무 처리하는 날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러한 날입니다. 그 속된 생활이나 속된 마음이 있더라도 그날은 다 치워놓어야 되고, 혹시 부부 간에 사소한 언쟁이 있으면 부인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오 거룩한 주일입니다. 내일 이야기하죠.
놀랍습니다. 그렇게 핫이슈인데 내일 가면 다른 이슈가 됩니다.
인간이 그렇다니까요 혹시 인터넷 상거래 할 일이 있습니까?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쉬어야 돼요. 웬만하면 그때는 쿠팡 아저씨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게 제 마음입니다. 저가 쉴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면 그 사람도 쉬어야 돼요. 제가 독일 가서 하나 배운 게 있는데 토요일날 버스가 오전에 1시간 아니면 1시간 반에 하도 오고 오후에 3시간 만에 그 이외는 안 옵니다.
그런데 그 어떤 독일 국민도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 없어요. 내가 주말에 쉬어야 되는데 저 사람도 쉬는 권리가 있어야 된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에 모닝 깨어서 TV 먼저 들고 메시지 모았나 보는 게 시간 그런 시간이 아니라 먼저 눈을 감고 하나님 바라보고 모닝 글로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 날이 이 24시간이 성스러운 날이고 이 날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계시고 내 곁에 계시고 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위해서 비워놓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 돼 갑니다. 목사님 20분 그렸는데 제가 감동이 있는데 20분이 자꾸 넘어가려고 그러는데 우리는 질문해 볼 수가 있어요.
주일 지키는 것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무슨 인과관계에 있습니까?
무슨 합리적인 연관성이 있으면 말해주세요라고 질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저희 집에 첫 아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이라고 하준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얘가 3살 때 일입니다. 3살 때 일인데 이 녀석이 한 날은 굉장히 충동적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잘못했는데 웬만하면 어머니 아버지 잘못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훈련이 되어 있거든요. 웬만하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잘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충동적이고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엄마 아빠한테 와서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소리를 칩니다.
장난감 가지고 놀다 오면 그렇게 좋아하는 장난감도 가지고 놀다가 여기저기 쿵쿵 박고 뭐가 잘 안 되는지 부수고 난리가 아닙니다. 엄마 아빠 따라다니면서 계속 징징거리고 기어오르고 달라고 조르고 그러더니 좀 더 가더니 피부가 거칠거칠해지고 뭔가 이상한 것들이 막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남들이 보면 얘 갑자기 ADHD다 난동 피우고 야단 태고 상담 가서 청소년 상담받아봐야 되지 않는가 성격이 거칠고 난폭했다고 갑자기 변했다는데 얘 무슨 변화가 있는가?
부모 상담해 봐야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애가 피부가 이상하니까 아토피 좀 진단해 봐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모든 사람들이 사실적인 증거를 토대로 연관성을 찾을 겁니다.
그런데 이 하준이라는 이제 제 아이를 낳아보고 길러본 엄마 아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얘가 며칠 동안 저녁 늦게 잤어요. 그리고 보통 오후에 그럴 때는 낮잠을 자야 하는데 낮잠을 자지 않고 계속 오랜 시간 보냈습니다. 잠이 너무너무 부족하니까 아이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이 만드신 임 안식하는 날이 없으면 이런 심리적이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이상 증후군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곁에 하나님처럼 안식하는 그것이 백병의 명처방입니다. 7일 중에 안식하는 날은 하나님께서 좋았더라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던 날입니다. 축복하셨던 날입니다. 사람은 이 연주를 감상해야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모든 스케줄을 이 거룩한 한 날 주일 중심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 꽂아야 나머지 잔투가 꽂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겁니다.
우리 일주일의 첫 단추를 잘 꽂으시기 바랍니다. 주일이 단지 한 날이 아니라 성스러운 날이고 거룩한 날이고 주님께 속한 날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요. 하나님이 만드신 순리대로 모든 이치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6일과 구별되는 이 하루였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 고요함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 여러분 간직하시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마음과 정성 다해 주 바라나이다.
온 마음 다해 함께하겠습니다. 온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온 힘 다해 온 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만 나의 아멘
이 안식 지킴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의 신비를 경험하는 그분의 선하심을 맞보어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 한 날 저희를 귀의케 하시고 들을 마음 주시고 깨달음 들을 귀 주시고 깨닫는 마음 허락해 주셔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비밀한 세계 신비의 역사 가운데 설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질주하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안식을 목표로 살아가는데 이 거룩한 안식을 지킴으로 통해서 한 주간이 복되고 내 한 달이 복되고 1년이 복되고 내 인생이 축복하리 날마다 저일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도 이 안식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 곁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처럼 쉴 수 있는 우리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