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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야기 887년 최치원 [지리산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문(智異山雙磎寺 眞鑑禪師 大空塔碑文)]
칠성 추천 0 조회 110 22.08.24 15:49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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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8.26 21:42

    첫댓글 당해동고진감선사비

  • 작성자 23.06.21 22:14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047

  • 작성자 23.06.22 09:00

    금당 이야기는 비문에 없다
    불사리 이야기도~

  • 작성자 23.08.25 21:28

    1917년, 숭양산인, <지리산록(智異山錄)>
    절 동쪽은 비전(碑殿)으로 고운이 짓고 글씨까지 쓴 진감의 비가 있으니 당(唐) 희종 광계3년(887)이다.비 앞에는 팔영루가 있고 관포 어득강(1470-1550)의 팔영루 시가 현판에 걸려 있고


    비를 모셔둔 비전이 있었다고함

  • 작성자 23.08.26 05:07

    1616년, <성여신>방장산선유일기
    비전(碑殿) 문 밖에는 돌로 된 비석이 있었는데, 곧 최고운이 짓고 쓴 것이다. 진감선사를 위하여 지은 것인데, 문장이 절묘하지만 간간이 난해한 곳이 있었다. 줄줄이 이어진 빼어난 글씨는 글자 글자마다 정신이 깃들여 있고 기력이 있어서 어루만지며 아낄 만하였다.

  • 작성자 23.09.01 12:21

    비전(碑殿) 문 밖에는 돌로 된 비석이 있었는데, 곧 최고운이 짓고 쓴 것이다.{碑殿門外 有石碑 乃崔孤雲所撰所書者也] 원문 그대로 국역되었네요.

  • 작성자 23.09.15 09:00

    "세워진지 천년 이상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비석과 지붕돌의 일부가 깨지고 손상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현대까지 거의 온전하게 전해졌으며 비석에 적힌 비문도 역시 잘 남아있는 편이다"

    "현재 남아있는 비문에는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비석의 좌측 부분이 훼손되어 있는데다가 여기에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적혀 있었어서 현재로썬 직접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1725년(조선 영조 1년)에 만든 목판에 비문의 내용을 옮겨 적어놨는데, 여기에 비문이 훼손 되기 전의 내용이 남아 있어 진감선사탑비의 건립연대를 알 수 있었다'
    https://naver.me/IDouahPt


  • 작성자 24.05.12 04:24

    https://naver.me/FXKTLAjn

    또한 혜소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사회의 여러 계급에까지 널리 보급하고 조직화한 승려이기도 하다.

    이후 이 범패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선사들이 많이 사용하였으며, 신라 말기 선종禪宗이 염불사상을 수용한 것도 범패와 큰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평소 진종사상眞宗思想을 사모하였던 범패를 수행의 방편으로 이용한 것이었으나, 후세인들이 오히려 선보다는 범패 쪽으로 힘을 기울여 속화俗化된 일면도 없지 않다.



    그는 또 중국으로부터 차나무를 들여와 지리산 일대에 재배하였으며, 의술에도 깊혜소의 법을 이어받은 도헌道憲은 문경에 봉암사鳳巖寺를 창건하고 희양산파曦陽山派를 개창하였다.

  • 작성자 24.05.12 05:26

    최치원(857~?) 868년 당나라 유학 길에 올라 885년에 귀국을 한다.
    진감선사가 입적하고 36년 뒤인 887년에 진감선사대공탑비의 비문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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