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뿌려진 것을 빼앗긴다.’ 하느님의 말씀이 뿌리내리 못하면 ‘곧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 것으로 덮여 버리면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을 관통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과 계획, 은총과 축복, 그리고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새기며 사는 사람은, 곧 하느님의 그 모든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서 성사의 은총을 꽃 피우시고, 신심을 북돋우시며, 사랑과 생명에 가득 찬 생활을 이루어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하기 보다는 그저 ‘자기 열심, 자기 의지’로만 신앙생활을 엮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 중심의 신앙이 아닌 자기중심의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과 의지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병고에 시달리거나 유혹에 맞닥트릴 때, 세상일이나 근심이 밀어닥칠 때,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갈등을 빚을 때, 재물과 삶의 향락과 유흥에 기대게 될 때 그 열심과 의지는 약해질 뿐만 아니라, 그 방향마저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하느님에 관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인간적인 친교나 만족을 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세례성사를 받고 나서 1년이 된 사람이나 20년이 된 사람들도 똑같이 하는 넋두리가 있습니다. ‘기도가 잘 안되요. 믿음이 잘 안 생겨요. 믿음이 약해요.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고 부담스러워요. 성당을 다녀도 마음의 평화와 위로가 없어요. 공동체가 활성화가 되지 않아요. 왜 신앙생활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하느님이 계신지 모르겠어요.’ 이 모두가 세례성사 이후로, 하느님의 말씀이 세례성사 이전의 생활이나 생각들로 줄곧 빼앗기고, 뿌리내리지 못하고, 숨이 막혀 열매 맺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정녕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농부이신 하느님께 우리 삶을 맡겨드리는 시간과 생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TV 보던 시간에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읽고, 세상일을 즐기던 시간에 성경을 공부하거나 미사를 참례하고, 수다를 떨며 지내던 모임에 영성 특강을 듣고, 세상 일로 분주한 시간을 쪼개어 성체 앞에 머물러 성경을 읽어 보며, 세상일로 근심에 젖어 있을 때 병자들을 돌보고 형제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독서로 들은 말씀은 십계명에 관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 말씀의 요약이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결합된 이스라엘의 핵심적인 신앙규범입니다. 이 계명을 지킴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 선택된 거룩한 민족, 하느님을 모시는 사제의 겨레라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유일한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지혜로 여기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땅-성숙한 신앙’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나 시간이 지나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음으로써(마태 8,15)”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장차 이루어질 희망을 확신하면서 자신의 지성과 감성으로 하느님 말씀을 매순간 받아들여 그 말씀을 끝까지 지킬 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