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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3:7~10 회개의 합당한 열매의 사람
(마 3:7-10)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이 시간에는 앞 글에 이어서 회개한 사람의 삶에 맺는 열매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것이 열매로 맺어지는지에 그 열매로 사는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바리새인 서기관 등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이 왔는데, 이때 요한은 그들에게 이 말씀을 했다는 것은 저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역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긴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며,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정체성 즉,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부터 먼저 분명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지금 우리는 누구입니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교인이며, 기독교 종교 집단에 소속한 자라면 기독교 종교를 가진 종교인이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직을 가진 사람은 기독교와 관련 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구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이 집단에 소속 된 자로 조상 때부터 믿어온 집안에서 태어나 유대인들처럼 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이런 우리 모두는 바리새인들이 아브라함의 육신의 혈통을 물려받은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자신이 유대인이든, 기독교 교인이든,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본문에서 세례요한이 말하는 대상이 우리들인 것이 확실하다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우리라면, 현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본문에 유대인들처럼 그 열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누구든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저들이 선민이 아닌 것처럼, 교인 된 것이 곧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가? 말씀에 근거한 삶을 사는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왜 이토록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원문직역)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1절에서부터 보면 이는 저들의 하나님의 백성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으나 실제적인 저들의 삶(언행심사)을 볼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재철 목사님 설교 유투브에서 보니 기독교 방송에서 설교를 들어보니 왜 그리도 이단이 많은지’라는 말을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형 교회의 목사라고 하는 자가 복음이라고 설교를 하는데 내용이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시대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교회가 텅텅 비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형교회 목사들의 하는 행태(삶에 맺은 열매)를 살펴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원로 목사제도를 만들어서 죽을 때까지 돈을 받아 살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도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 아닌 마치 회사처럼 기업처럼 여기는 교회로 만들어 놓고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회사도 아닌데, 교회가 무슨 기업을 만들어서 돈을 벌어 기도원이니 수양관이니 교회 교인들의 무덤까지... 이런 저런 사업체 만들어 놓듯이 해 놓고 광고까지 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냐? 라며 손가락질 하는 것이 당연 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눈에 비춰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삶 역시 하나님의 원하심의 모습과 너무 달랐으며, 백성들에게서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의 눈에 회개의 대상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닐뿐더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시 아브라함의 자손의 사람으로 바꿔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례(전에 가진 신앙은 죽어야 함)를 빋아야 하고, 그 세례받음에 합당한 회개함의 내용인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말씀 안에 잠기는 세례를 받아 거듭난 자로의 새 삶에 열매를 맺어 가지고 있어야 함을 강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인정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바른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례를 받은 후 그 세례 받음에 따른 삶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녀 됨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의 자녀란 그의 부모에게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열매가 포도인 것처럼, 말씀의 열매 역시 말씀이요, 말씀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말씀이신 하나님에게서 말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낳으셨고, 세상 사는 동안 그 말씀으로 사셨으며, 말씀으로 구원케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말씀으로 배웠고, 그 말씀화 된 사람으로 바꿔져서 말씀이 말하는 바 그대로 가르쳤으며, 그 가르침의 목적이 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여 말씀으로 사는 사람 되게 하는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근거한 바뀐 삶을 보고 주님의 제자요,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란 자칭 속으로만“나는 유대 혈통을 가졌으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을 마음 안에 영접해서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와 교회를 다니며, 목사 집사 평신도가 되었으니 그리고 목사의 일, 선교사 일을 하니, 이런 나가 하나님의 자녀라”스스로 생각하는, 아니 굳게 믿고 있는 그 믿음까지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을 믿는 그 순종의 믿음을 똑같이 가지고 살 때 그 가진 믿음의 삶이 아브라함의 자녀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나 유대 종교를 가졌다고 자동으로 자녀 됨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알아서 자신이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교회 다니는 자가 된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로 주님은 요 8:39~40“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에게“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거늘 지금 ~ 진리를 말한 ~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자기 집단(유대교)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인 예수그리스도를 살인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러한 것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거나, 오늘날 교회를 다닌 것으로,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가 된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천주교인이다. 장로 교인이다, 혹은 장로다 집사다. 하며 그런 소속이나 직분을 가지고 자녀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자신의 평소 삶이 종교생활을 하고 산 사람이었는지 또는 제자들처럼 말씀에 의한 삶을 따라 살았는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교회의 목사가 자신의 오랜 목회경력을 자랑하면서도, 현재의 자신의 삶이 성경의 말씀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본문의 유대인들처럼 살고 있다면, 그는 아직 본문의 바리새인들처럼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열매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자칭 자녀이므로, 그런 자랑거리가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지도록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요한은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당시 종교 지도자급)을 향해 이 독설을 퍼부었다는 것은, 지금 말씀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다면, 곧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네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말할지라도 곧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것이며 구원에 합당치 못한 자임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주님 당시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득실거리며 위세를 부리던 유대교가 타락과 부패로 치닫던 이유는 저들이 진정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라 독사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 기독교인이 득실거리는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을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해가고 있다면 이는 우리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들이기 때문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말씀 안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듣고 믿고 마음 안에 그 분을 영접해서 모시고 거듭나 다시 다른 사람으로 낳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의 말씀처럼 회개의 과정(물세례=말씀에 잠기는 것)을 거처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으로 바꿔져야(거듭남이라고 함)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의 사람이란 바로 말씀에 잠기는 세례를 받은 후 거듭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으로 다시낳음을 입은 후 그 분의 하신 말씀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실 회개의 합당한 열매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듣고 깨달음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자신 속에 새 사람으로의 바꿀 [의지]가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바리새인들 스스로 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에 독사의 자식으로 불려진 것처럼, 기독교인이라는 긍지와 소속과 신분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종교인으로 계속 살려고 한다면 똑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요한의 입을 통해 그런 쓴 소리를 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길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긍지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역시 기독교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으면서 전혀 회개의 합당한 열매(세상의 것들을 목적하여 그것을 교회라는 곳을 통하여 추구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통해 맺게 된 열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자신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부터 다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하는 종교인 의식부터 머리에서 가슴에서 쓸어내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돌아섬)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돌아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교회에 등록해서 교인 된 것을 회개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또 목사 등 제직을 맡아서 자기 종교적인 열심에 빠져 사는 (바울 이전의 사울 때처럼)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7:22~23에서 말씀하신 대로“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며 .... 주의 이름을 여전히 부르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지금 저들이 이 말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당시에도 선지자 노릇하는 것과, 귀신 쫓아내는 것과, 많은 권능 행하며(큰 예배당 짖고 사람을 많이 모으며) 살았았다는 것이며, 그러면서 그 일들은 주의 이름으로 했으며, 자기 힘으로해놓고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거짓말 을 말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것에 대하여입니다.
자기 삶에 종교 열심으로 많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하나님의 일로 착각해선 안 됩니다.
성경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영혼을 구원함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들처럼 유대인들처럼 건물 교회를 짓고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에 온 힘을 다 하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에게는 진정한 내적인 영적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 변화는 먼저 말씀에 잠기는 과정, 깨달음의 과정, 성장하는 과정, 빠꿔지는 거듭남의 과정을 통한 그 이후의 삶에 따라 맺은 열매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말씀으로 우리를 만나러 와 주신 예수님을 성경을 통하여 먼저 만나는 만남이 있어야 하며, 그 예수의 하신 말씀을 듣고(목사 설교를 말함이 아닌), 아브라함이 믿은 믿음을 가지고 그 들은 말씀에 근거한 순종의 삶을 살면서, 그 삶의 열매인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의 삶이 삶에 열매로 맺을 때 진정한 회개를 한 삭개오 같은 사람처럼, 바울 같은 사람처럼 우리도 회개의 합당한 열매의 사람이(자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11:33~12:2,절의 말씀에서 수많은 돌아온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광야에서)은 힘들게 살았으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구원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에는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여기는 사람과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여기면서도 바꿔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그동안에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그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지금 나는 기독교 종교를 하나 더 가지고 세상을 좀 더 잘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뒤돌아 자신을 볼 때 그런 사람이라 여겨 진다면,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아브라함이 가지고 순종의 믿음으로 살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어 사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주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