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시 답사에서는 용담산성 외에 용담산성 남쪽 평지에 위치한 남성자유적과 동단산성, 그리고 길림시박물관에 갑니다. 남성자 마을에는 고구려 이전에 세워진 남성자토성이 있는데, 원형에 가까워 부여의 원책(圓冊) 또는 왕도(궁성지)로 봅니다. 남성자토성은 송화강에 접한 동단산(해발 252m, 평지에서 60m 차이)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곳을 방문하면 거의 사라진 토성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그저 밭과 잡초가 우거진 황무지에 왔다는 느낌만을 갖고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는 ‘모아산묘지 동단산평지성지’ 표지석이 있는데, 모아산은 남성자 유적 동쪽에 있습니다.
모아산 일대에는 약 7~8천기 이상의 무덤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분적 발굴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도 일부만 공개되어 있습니다. 현재까지 토갱목곽묘(土坑木槨墓) 2백 여기 정도가 정리되었는데 다수의 유물들이 출토된 바 있습니다. 기록에 등장하는 유곽무관(有槨無棺)이란 부여의 무덤과 일치합니다. 무덤의 중심연대도 B.C 1~AD 3~4C 경으로 부여의 왕족 혹은 귀족들의 무덤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칠기, 칠렴합(漆奩盒), 이배(耳杯) 등의 칠기와 직조품, 동복, 칼, 창 등의 철제 생산도구와 등자, 안장을 비롯한 차마구, 귀걸이, 패식 등 금은제 장식구와 마노 구슬류와 각종 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부여 뿐 아니라 발해의 무덤군도 발견된 바 있습니다.
동단산에는 산릉선 경사면에 세겹으로 쌓은 타원형 산성이 있습니다. 외성 크기는 동서 230m, 남북 115m, 중성은 동서 170m, 남북 62m, 내성은 동서 60m, 남북 15m입니다. 성벽간의 간격이 넓은 동남 방향에서 내성과 중성의 거리는 53.5m이고, 중성과 외성의 거리는 35.2m 정도이니 규모로 볼 때 송화강 방어를 위한 보루에 해당되지만, 남성자토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축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단산성에서는 고구려시기에 사용된 붉은색 노끈무늬기와, 금동장식품 등이 출토된 바 있습니다. 동단성 외성 동북모서리에는 저수기가 1개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남성자토성은 주변의 용담산성과 동단산성, 그리고 모아산 묘지로 볼 때 초기 부여의 왕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충분히 유물발굴 결과가 소개되어 있지 않고 유적도 파괴된 것이 많아 그 실체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부여 역사를 떠올리다가 괜스레 슬퍼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부여사가 언젠가는 제대로 밝혀지기를 기대하며 작은 흔적을 찾아 길림시에 가보려고 합니다.
사진의 대부분은 2006년에 찍은 것이라서, 현재는 많이 변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