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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92
나는 다른 이유로 이 전쟁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우리의 한강토 를 말할 때 일부의 사람들은 정말 형편 없는 곳이라고, 국민성까지 흠집을 내고 경멸하기를 서슴치 않습니다. 언젠가 지방의 모모한 인물이 내 앞에서 엽전들이란 표현을 했다가 그 입을 엽전처럼 벌리게 만들었습니다. 공부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그저 다른 나라만 좋다고 하는 사람들,그런 나라들이 어떻 게 정치를 했는지,농노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에게,멀쩡한 원주민들을 잡아다 가 노예로 만들어 무슨 짓을 했는지 바른 세계사를 일독해 보기를 권합니다.
사설이 길어 졌습니다. 코비드도 너무 길게 이어져서 우짜면 좋겠습니까?
전쟁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전쟁을 끝내고 결산을 해 보니 남는 것 도 없이 국력의 손실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국토의 3/2가 산악 지역인데, 그 중 노른자라고 할수있는 슐렌지엔을 프로이센에게 완 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영국은 재정의 고갈로 인해 식민지인 아메리카의 정착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가 봉기가 일어 났습니다.
가장 승산이 있다고 본 러시아는 표토르 3세가 프리드리히 2세와 협상을 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으며, 결국 여황제 예카테리나에 의해 폐위 된 뒤 살해당하 고 말았습니다. 프로이센은 멸망 직전 까지 갔으나 프리드리히 2세가, 어리석 은 표토르 황제와 협상을 하는 바람에 기사회생 되었지요. 그러나 오스트리 아에게 빼앗은 슐렌지엔을 지키느라 주변에서 완전히 고립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가지고 있던 식민지를 다 빼앗 기고 영국에 보복할려고 북미 대륙을 지원했는데, 그만 재정이 거덜 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흔히 왕비의 사치 향락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을 하는데, 물론 일조는 했겠지만 그 가여 운 왕비의 탓만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되고 보니 각 나라마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양상이 되어 버렸네요.
원래 전쟁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많은 것을 얻은 나라를 굳이 말하 자면 영국이 되겠습니다.
대식민제국, 해가 지지않은 대영제국의 기초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일조한 나라가 바로 무굴 제국 입니다. 위대한 파드 샤 악바르 대제의 나라가, 330년 만에 멸망한 계기가 7년 전쟁에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그 전부터 무굴제국의 영광은 벌써 사라지고 아와드와 마라타 의 보호국으로 전락했으나,그래도 무굴 의 영광의 빛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 다. 원래 무굴 제국은 칭기즈칸의 5대 후손인 바부르가 세운 나라입니다.
무굴이란 이름도 몽골의 인도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몽골의 후예인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 했고,특히 테무진 칭기즈칸의 직계인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도와 전혀 관계가 없던 그가, 바로 인도에 이슬람 왕조를 세울 수 있는 계 기가 된 것은 1526년 4월, 봄의 파니파 트 벌판의 전투였습니다. 바부르의 군 대보다 10배가 더 많은 군력이 있었건 만 분열된 델리 술탄 왕조는 단 3시간 만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초원을 벗어나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북부를 차지하게 된 바부르는 단숨에 패권을 거머지게 됩니다.
차 한잔이 드디어 무굴제국까지 입성하 고 말았습니다. 무굴 제국을 처음 알았 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좀 놀랐지만 타지마할을 말하니 금방 이해를 하더군 요. 그래서 좀 상세하게 쓰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황제가 둘이나 있는 나라 이니 말입니다. 파드 샤 악바르가 그 첫 번 째 황제이고,타지마할을 지은 황 제 샤 자한이 두 번 째입니다. 바부르는 1526년, 드디어 북인도의 델 리와 아그라를 점령하고 황제임을 선포 했습니다. 바부르가 무굴 제국을 만들 었다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사 람은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대제입니다.
아버지 후마윤이 일찍 죽고 할아버지의 다함 없는 사랑속에서 자란 악바르는 너무나 위험한 나이,불과 13세에 황위에 등극합니다. 조선은 그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을 무참한 죽음으로 내 몰았지만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종이 폐위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유는 열 가지도 넘습니다. 그런데 같은 나이에 어린 황제가 된 악바르는 너무나 훌륭하게 제국의 힘을 길러,이윽고 누구 도 넘볼 수 없는 이슬람 왕국을 만들었 습니다. 목숨을 걸고 황제를 보호하는 할아버지대의 충신들과 함께, 악바르는 즉위 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었지요. 1573년에 수공업이 뛰어나게 발달한 구자라트의 중심지인 수라트 항구를 차 지함으로 탄탄한 왕조의 기틀을 세웠습 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악바르대제 는 동쪽으로 진격, 벵골을 점령하고 남 쪽의 데칸 고원을 넘어 인도 전역을 통 일하고자 했습니다. 인도의 서북부 지 역을 점령하고 1569년,파테푸르시크리 를 수도로 삼아 남인도로 나아가서 인도 양의 무역 판로를 휘어 잡았습니다. 악바르대제의 위대함은 정복왕이어만 이 아닙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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