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너무 심해 1년간 손톱을 깎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전신마취를 한 뒤에야 손톱을 깎을 수 있었다.
애인과 첫 키스를 하려다 입이 닿는 순간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이 왔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키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일이지만 모두가 사실이다. 전자는 손 부위에 외상을 입은 후 교감신경의 문제로 나타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다. 뒤 사례는 얼굴에만 나타나는 ‘삼차신경통’이다.
‘통증(痛症)’은 신체에 이상이 생겼을 때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보다. 골절이나 피부가 찢기는 상처를 입거나 신경·근육·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통증을 느낀다. 암이 있을 때도 나타난다. 통증은 신체의 방어수단으로 치유 과정 중 나타나는 반응으로 원인과 발생 부위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하지만 상처 부위가 다 나았는데도 불구하고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통증을 방치하면 ‘만성통증’으로 발전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만성통증은 우울증, 집중력과 기억력 감소, 수면장애, 만성피로까지 동반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전남대 의대 류머티스내과 이신석 교수는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약 10%인 250만 명 이상이 평생 계속되는 만성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고령 인구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의술이 발달하며 베일에 싸여 있던 통증의 원인이 점차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장막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그 때문에 통증은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디스크 수술 후 통증은 치료과정서 발생 통증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급성통증은 외상에 의한 것으로 상처가 치유되면 사라진다.
만성통증은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외상이 완치됐는데도 통증이 지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경이 손상돼 뇌가 계속 통증이 있는 것처럼 지각하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찬(대한통증연구학회장) 교수는 “만성통증은 신경계 손상과 근육·혈액순환·정신적 문제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만성통증의 종류는 발생 원인과 부위에 따라 섬유근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근막통증증후군, 대상포진 후 신경통, 삼차신경통, 요통, 통풍 등이 있다. 만성통증은 신체부위별로 허리·어깨·머리 등 특정 신체 부위에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국소통증과 온몸이 아픈 전신통증이 있다.
중추신경계에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섬유근통증후군’은 전신이 아프고 극심한 피로를 동반한다. 이신석 교수는 “여성의 비율이 90%로 많은 것이 특징으로, 출산 후 많이 관찰된다”며 “스트레스, 통증을 조절하는 화학물질의 분비가 적은 것이 원인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담이 들었다’고 하는 ‘근막통증증후군’은 가장 흔한 만성통증이다. 잘못된 자세로 근육들이 긴장하거나 손상을 받으면 발생한다.
자살까지 생각하게 하는 통증도 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손이나 발 등 외상을 입은 특정 부위에 발생한다.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외상이 다 나아갈 때쯤 통증이 시작된다. 옷깃이나 종이만 닿아도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고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얼굴에만 통증이 나타나는 삼차신경통도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윤경봉 교수는 “얼굴의 감각을 담당하는 삼차신경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며 “식사를 하거나 양치질, 세수를 할 때 치아, 이마, 뺨, 턱 등에 벼락이 치는 듯한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음식을 먹지 못해 체중이 30kg 정도 줄기도 한다.
노년층이나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고통도 크다. 신체의 오른쪽 또는 왼쪽 중 한쪽에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찾아온다.
바람만 스쳐도 통증을 느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통풍(gout)은 기름진 음식 섭취 후 혈액 내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관절 주위 조직에 쌓여 발생한다. 주로 남성에게서 나타나며 다리와 발가락 등 관절이 심하게 붓는다.
허리디스크 등 척추수술 후에도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신경병성통증이다. 김찬 교수는 “수술한 부위가 회복하며 딱딱하게 굳는데,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고 신경을 조여 통증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환자들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만성 합병증의 하나인 당뇨병성 신경병증도 만성통증이다. 당뇨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발 절단의 원인의 50~75%가 여기에 해당한다.
증상 따라 약물, 수술 등 치료법 달라져 만성통증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조기에 치료를 받아 만성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김찬 교수는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이 오면 척수를 통해 뇌에 전달된다”며 “수개월 이상 지속하면 통증이 지나가는 경로가 딱딱하게 변해 만성화된다. 물방울이 바위를 패게 만들 듯 복구가 안 된다”고 경고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조기에 치료하지 못해 50년간 고통받는 환자도 있다.
아직까지 원인이 불명확한 것이 많은 만성통증은 약물·수술·생활요법 등으로 개선한다. 통증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진통제, 항우울제, 항경련제, 스테로이드 등이 사용된다.
수술을 통해 교감신경, 뇌신경 등 신경이 지나가는 경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에 알코올을 주입하거나 혈관을 확장시키는 근육을 이완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런 치료법이 효과가 없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등 극심한 만성통증에는 척수신경자극기를 삽입한다. 주사기로 척추뼈 안쪽으로 지나가는 척수를 감싸고 있는 막에 폭 2㎜, 길이 20㎝ 정도의 척수신경자극기를 삽입한 후 하루 수차례 전기자극을 줘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다. 신경이 지나가는 척수강 안쪽에 마약성 진통제 성분이 계속 방출되도록 하는 척수강내 약물주입술도 있다.
통증이 있다고 활동량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윤경봉 교수는 “운동과 스트레칭을 통해 통증을 유발하는 주변 근육을 강화하고 영양섭취를 골고루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