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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 홀로 서기 꿈꾸는 ‘호남의 섬’ |
“끝없는 추락과 소외의 설움이...” |
“1960년대 도민 인구가 267만명이었는데 지금은 178만명이에요. 3분의 1이 줄어든 거죠. 먹고 살 게 없으니까 떠난 겁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도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왔는데 지금은 이곳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경상도로 떠나요. 인심도 많이 각박해졌어요.” 한영주 원장은 “전북이 발전되지 않은 게 농촌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정권의 지역차별 탓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치상으로 봐도 전북의 퇴락은 심각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북은 국토 면적의 8.1%를 차지한다. 인구비중은 1960년대에 8.8%로 국토면적비율보다 높았는데 지금은 3.8%다. 지역총생산성은 3.1%, 수출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전주 인구 또한 2000년 이후 62만명 선에서 성장이 멈췄다. 연 주민소득도 떨어져 울산이 3만달러를 넘는 데 비해 전북은 3분의 1 수준인 1만1000달러다. 일자리를 찾아 젊은 인구가 떠나다 보니 출생률이 떨어지고 노령화가 가속화하는 건 필연적인 현상이다. 재정자립도도 갈수록 낮아져 전주의 경우 1998년 73.8%이던 것이 지난해는 43%, 올해는 37%대로 떨어졌다. 전북은 더 심각해 22%대로 16개 시·도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전주 토박이인 김병수(38)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관장은 이런 전북민의 심리를 ‘지역 이기주의’로 폄훼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전국이 모두 불황이라고 하지만, 체감이 달라요. 개발독재 때는 물론이고 1980년대 3저(低) 호황 때도 여기만 소외됐어요. 농촌은 오히려 더욱 붕괴됐어요.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더 나빠졌고요. 경상도는 과거 경기가 좋았다가 나빠진 것이라면 전북은 단 한 번의 상승 없이 줄곧 하락한 셈이어서 지금 피로감이 극도에 달해 있어요. 경상도가 분노라면 여기는 절망이죠.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블로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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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순과 반골 정서가 공존
전주는 노령산맥 지류인 기린봉, 고덕산, 모악산, 완산칠봉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형 도시다. 게다가 만경강 지류인 전주천, 삼천, 아중천이 흘러 마한시대부터 큰 고을을 형성했다. 또한 조선왕조 전주이씨의 본향이자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도읍지였다.
전주의 옛 이름은 완산인데 ‘완(完)’과 ‘전(全)’은 모두 ‘온전하고 흠이 없다’ ‘뚜렷하고 갖추어져 있다’ ‘순수하고 티가 없다’ ‘모든 것을 어우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온순하고 평온한 곳이란 뜻이다.
전주는 다른 도시보다 살인, 성폭행 같은 강력범죄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만큼 사람들이 온순하고 유한 편이다. 이런 기질 때문인지 고건, 황인성, 진의종, 김상협 등 전북에선 유난히 2인자인 국무총리를 많이 배출했다.
전주 출신의 뉴스앵커가 많다는 점도 돋보인다. 김광오 기자에 따르면 정동영, 신경민, 김종진, 길종섭 등 지난 20년 동안 각 방송사 뉴스 메인 앵커의 절반 이상이 전주 출신이라고 한다.
“서울 사람은 깍쟁이 말투라 친근감이 적어요. 다른 지방 출신은 사투리를 고치기 힘들고요. (방송사에서) 전주 말씨를 선호하는 것은 서울 말씨로 쉽게 고칠 수 있으면서도 말투에 특유의 정감이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전주는 반골 기질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장명수 전 총장은 전주에 ‘온순’과 ‘반골’이라는 상충되는 이미지가 양립하는 것은 역사적 지리적 특징 때문이라고 했다.
“왕건이 두어 번 죽을 위기를 넘겼을 정도로 후백제가 강했어요. 그래서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이곳 사람들이 모반하지 않을까 두려워해 ‘훈요10조’를 만든 것으로 보여요. 전주가 조선의 본향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이성계와 전주는 별 연고가 없어요. 1000년 동안 전주는 억압당하고 소외당해왔어요.”
곡창지대인 전북은 권력의 수탈이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춘향전’은 이곳이 얼마나 수탈을 많이 당한 땅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여립의 난, 동학혁명 등 민중봉기의 온상지인 반골의 땅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오랜 수탈과 억압, 정치적 소외로 ‘우린 안 된다’고 하는 부정적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타 지역 사람들보다 자신감도 약한 편이고요.”
김병수 관장은 전주인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변화에 늦어요. 주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없고요. 서로 눈치 보는 거죠. 하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아요. 이심전심 합의가 이뤄졌다는 확신이 설 때야 움직이는데, 한번 일어서면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요. 동학혁명이 대표적이죠.”
오랜 수탈과 핍박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생겨서일까, 전주 사람들은 속내를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부산 사람들이 공공연히 “이번엔 한나라당”이라고 말하는 데 비해 전주 사람들은 웬만해선 정치 이야기를 아낀다.
민심을 들어보려고 택시기사에게 “요즘 선거 이야기 많이 하죠?” 물으면 십중팔구 “다들 먹고 살기 힘드니까 웬만해선 정치 이야기 안 해요” 하고는 입을 꾹 다문다. “요즘 경기가 어때요?” 하고 화제를 바꿔야 “언제 좋았던 적이 있간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지지했지만 혜택이 없어요” 하고 입을 연다. “그럼 전북 발전 위해 전북 정권을 만들어야겠네요” 하고 맞장구를 치면 그제야 “고건이 연합을 한다고 하는데 어쩔랑가 모르겠어요”라며 속내를 슬쩍 내비친다.
“한미FTA 체결되면 전북 경제 붕괴”
도심을 지나다 보면 5층 이상의 건물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번화가라 하는 팔달로, 전북대 앞, 객사길, 서신동, 중화산동에서조차 10층 넘는 건물을 보기 힘들었다. 전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22층짜리인 전북은행 본점이라고 한다.
남부시장을 둘러봤다. 옷가게 주인에게 “장사가 잘되냐”고 묻자 “말해 무엇하냐”며 한숨을 지었다. 요즘은 하루 매상액을 정리하는 것조차 싫다고 한다. 이번엔 시청 근처에 있는 대형 할인마트 까르푸에 들렀다. 일요일인데도 주차요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실내 또한 쇼핑객이 드문드문 눈에 띌 뿐 북적거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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