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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4월 10일 주님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얕은 꾀로 살 수 없는 세상
내가 어릴 때 잘못을 저질러 놓고 혼자서 고민할 때가 생각납니다. 야단을 맞거나 종아리를 맞을 때 어떻게 변명을 해야 혼이 조금 나거나 모면할 수 있을까 계책을 세웁니다.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리고, 그 사건을 나름대로 잘 모면하려고 별의별 계획을 다 세웁니다. 그리고 갖가지 묘안을 짜내기도 하는데 정말 근사한 변명거리나 꾀가 생각나서 혼자서 쾌재를 부르고 거짓말을 슬쩍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면 어른들은 어쩜 그리 잘도 아시는지 기가 막힙니다. 그리고 그런 얕은꾀를 부렸다고 오히려 더 야단을 맞고 더 걱정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잘못한 것을 시인하고 고집을 피우지 않고 잘못한 것을 먼저 고백하고 자백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살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얄팍한 잔머리를 많이 굴리고, 그런 속에서 오늘도 살았고, 또 내일도 살 것 같아서 많이 두렵기도 합니다.
'양자'(陽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언패속 우호패칙 고식패덕 군자근어언 신어호 극어시’
謣言敗俗 謣好敗則 姑息敗德 君子謹於言 愼於好 亟於時
<망령된 행동은 풍속을 해치고 망령된 즐김은 원칙을 해치며, 눈앞에 이익밖에 모르는 계책은 덕을 해친다. 따라서 군자는 언동을 삼가고 즐김을 조심하며, 때가 오면 서둘러야 한다.>
억지소리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고 내가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로 그 난국을 모면하려고 하는 것은 진리를 해치는 것이며, 하느님을 농간하는 것이고 욕보이는 것이어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이 말에서 '고식지계'(姑息之計)란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부녀자나 어린 아이가 꾸미는 계책은 잠시 모면하는 일시적인 계책이라는 뜻으로,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이나 당장에 편안한 것을 취하는 꾀와 방법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녀자들의 생각이 모자란다든지 또한 잘못된 판단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자매님들의 오해가 없기를..) 부녀자들이나 아이들은 단순하고 경험이 적어서 사리판단을 잘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살기 때문에 그런 면에 있어서 단편적이라는 그 당시의 얘기입니다. 또한 ‘낡은 인습이나 지금까지 해 오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인순고식’(因循姑息)이란 말과 같이 쓰이는 말입니다. 속담에 '언 발에 오줌 누기,' '눈 가리고 아웅 하기'와 뜻이 비슷한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이 경비병들을 매수하는 것을 보면서 당장 눈앞에서 모든 것을 모면하려고 하는 그들의 얄팍한 심성을 봅니다. 정말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다면 그 즉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면서 목숨을 애걸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돈으로 매수하려고 하였던 것은 결국 그 당시에도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였고, 그렇게 하여서 통했던 당시의 사회나 똑 같은 길을 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되어서 무척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멀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맹인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니 악마가 그들을 덮고 있어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진리에 완전히 어두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나무랄 수 없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의 처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의 처지입니다. 황금만능주의의 사상에 젖어서 가정의 화목도 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내가 편하고, 내가 잘 대접받는 쪽으로 기울어져 그 쪽만 보이는 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언제나 그렇게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 신앙을 가진 다음에는 회개와 자신을 성찰함에 조금도 사정을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변명할 수도 없고,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우습게보고 주님을 속이려 드는 수석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행태를 배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당신께서 제자들과 같이 사셨던 곳에서 진리를 증언하시며, 숨어서 불안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시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아주 편하게 그들의 생활근거지에서 다시 시작하시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 고식지계가 아닌 원대한 계획으로 세상을 복음화 할 구체적인 하느님 계획을 수립하시고 실천하시기 위해서 처음으로 그 시발점을 찾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주님의 자녀가 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다시 눈을 뜨고, 다시 결심을 새롭게 하며, 세상을 위해서 주님의 원대한 계획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성모님과 같이 오로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활을 맞이하는 지금 아픔을 모두 접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언제나 우울할 수는 없습니다.
갈릴래아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미리 여인들을 보내신 주님! 저희는 당신의 부활을 의심 없이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아직도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 고식지계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마음을 다하여 당신의 원대한 구원계획에 헌신하며 세상의 복음화에 적극적으로 투신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저희에게 주님의 부활하심을 선포하는 데 언 발에 오줌 누듯이 미온적이며 임시방편적으로 살지 않도록 주님,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어 저희가 명오(明悟)열리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4.22-33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축일4월 10일 성 에제키엘 (Ezekiel)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순교자
활동 연도 : +6세기BC
구약성서 대예언서에 속하는 에제키엘서의 저자인 성 에제키엘(Ezechiel)은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사건을 전후로 20여 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였다. 에제키엘서는 총 4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에제키엘 자신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에제키엘은 ‘부지’라는 사제의 아들이었다(1,3). 그래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 사실 ‘사제’가 에제키엘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는 혼인도 하고, 자기 집에 원로들을 모아 놓고 말을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8,1; 20,1).
그런데 에제키엘서를 보면 그가 매우 독특한 예언자임을 알 수 있다. 구약성서의 가장 신비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그는, 환시들을 보고 때로는 며칠씩 황홀경에 빠진다(1,1. 4-28; 3,10-15; 37,1-10 등). 많은 상징적인 행동을 하고, 이따금 농아나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또 집에 앉아 있으면서 환시 속에 예루살렘을 돌아다니기도 한다(8장).
에제키엘은 하느님과 동족에 대하여 열정을 지닌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동시에 냉철하고 심사숙고하고 자기의 생각을 엄격한 논리에 따라 전개시키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신학자였다.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인 성전과 그 의식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40장 이하), 민족의 역사와 전통도 자기의 독창적 역사관을 내세울 정도로 깊이 알고 있었다(16장, 20장, 23장 참조). 그는 또 널리 퍼져 있던 신화나 동화 같은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 자기의 가르침에 적용시키는 개방된 신학자였다. 그리고 세계정세(25-32장)는 물론,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티로의 교역 내용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27,12-25). 또한 조선 기술도 거침없이 서술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의 소유자였다(27,3-11).
이러한 박식함은 예언자의 사명 수행에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는 유다인들은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국제적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스라엘은 ‘반항의 집안’이라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듯, 에제키엘의 청중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들이었다(2,3). 그래서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예언자는 자기의 지식을 총동원하였을 뿐더러,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하느님 백성 전체와 그 구성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효과적으로 선포하려는 노력이었다.
사실 에제키엘은 사목자였다. 그는 ‘파수꾼’으로 세워졌다(3,16-21; 33,1-9). 파수꾼은 성안에 있는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주변을 살피고, 작은 위험이라도 닥쳐오면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 준비를 갖추고 재난을 막거나 피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예언자 파수꾼’은 외부의 위험만 알리지 않는다. 각자에게 해당되는 경고를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악인에게는 악을 버리고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의인에게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이 파수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이들의 삶과 죽음에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하는 사목자인 것이다.
이 점이 에제키엘을 그 이전의 예언자들과 구분 짓게 하는 큰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공동체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를 부르짖으며 또 구원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의 시대는 기존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때였다.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종교, 정치,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민족 전체가 불행에 빠지면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18장). 그래서 예언자는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각 구성원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예언자상도 바뀐 것이다. 에제키엘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달라진 예언직에 과감히 투신하였다. 어떤 면에서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는 주저 없이 말씀의 선포에 모든 것을 바쳤다. 교회에서는 에제키엘을 예언자이자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에제키엘 (Ezekiel)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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