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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창 산약초 원문보기 글쓴이: 시장
草根木皮… 우리 민족의 배고픔 해결 |
역사속의 약용식물 - 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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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포
칡의 줄기에서 뽑아 낸 섬유로 질 좋은 옷감을 짤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시원한 여름 옷감을 짜고 있지만 옛날에는 겨울에도 칡베옷(葛布衣)을 입었다.
고려말 이 땅에 목화가 들어오기 전에는 삼의 껍질로 짠 삼베와 갈포가 있었지만 삼은 외래 도입식물이다.
순수 자생종인 갈포만이 수천 년 동안 우리 겨레의 옷이 되었다.
칡에서 섬유를 얻는 과정은 복잡하다.
먼저 8월경 칡 줄기가 단단해 지면 거두어들인다.
그 해에 자란 초록색 줄기를 낫으로 베어 오는데 잎을 따내고 가지런하게 묶어 다발을 만든다.
이 때 잎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축 사료로 하거나 녹즙 원료로 한다.
줄기는 큰 가마솥에 넣고 찐 뒤, 찬물에 담그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
이 껍질을 물에 담가 발효시키면 겉껍질이 없어지고 하얀 섬유질만 남는다.
이것을 다시 머리카락처럼 잘게 찢어 실을 만든 것이 갈사(葛絲)이다.
그대로 옷감을 짜면 노르스름한 천연색 갈포가 되지만 잿물에 담가 표백시킨 것이
바로 흰색 갈포이다.
칡에서 뽑아 낸 섬유는 갈포 외에도 노끈, 밧줄, 종이(葛布紙) 등을 만든다.
옛 고승들은 갈포를 입고 혹한기의 동안거를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았다.
방한복이래야 한지로 지은 내복을 부드럽게 구겨서 속에 껴입었을 정도였다.
갈포의 이용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오른다.
오(吳), 월(越) 두 나라가 서로 경쟁관계에 있을 때였다. 어느 여름 연회에 참석한 월왕이 좋은 갈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것을 본 오왕은 모든 백성을 산으로 보내 칡을 베어 좋은 갈옷을 짜 바치도록 했다.(使國中男女入山 采葛作黃絲之布 獻之)
자미(子美) 두보(杜甫)의 시에도 “고운 갈포옷 속으로 바람이 지난다(細葛含風軟)”고 했으니 갈포옷이 시원하긴 한가 보다.
시경에도 가난한 삶을 서늘한 갈피 신발을 신고(규규葛구), 허기를 참기 위해 칡뿌리를 캐러(彼采葛兮) 간다고 했다.
또 옛날에는 갈포 수건을 목욕 타월로 썼다.
칡 속껍질로 짠 베는 물에 젖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기 때문에 여름철 옷감으로 좋았다.
섬유가 귀했던 그 옛날 칡은 사람들의 옷감을 짜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원이었다.
칡덩굴 그 차체만으로 굵은 실타래 대신 쓸 수 있다.
줄기를 나무 망치로 두들기면 물기는 다 빠져나가고 섬유질만 남는데
물에 담가서 두들기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굵은 실타래처럼 된다.
이것으로 삿갓을 엮으면 가볍고도 질겨 수십 년을 쓸 수 있었다.
옛 스님들은 갈포로 지은 승복을 입고 갈립(葛笠)을 쓴 채 고행의 길을 떠났다.
옛 시인묵객들은 갈옷 차림으로 부들 방석에 앉아 지내는 것을 청빈한 삶의 표본이라 했다.
“벼슬을 버리고 야인(野人) 차림에 갈건(葛巾)을 쓰고 다녔다. 술자리를 만나면 갈건을 벗어 던지고 마음껏 마셨다.
술에서 깨어나면 다시 갈건을 찾아 쓰고 일어났다.”
지금은 방법을 잊어버렸지만 옛날에는 칡만 가지고도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칡 줄기를 베어 말리면 갖가지 생활 용구의 재료가 된다.
가는 줄기를 골라 광주리, 바구니를 짜고, 굵은 것을 따로 골라 병아리 둥지, 닭장을 엮는다.
크게 얽으면 곡식을 저장하는 간이 창고가 되기도 했다.
또 울타리를 엮으면 건축자재요,
통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면 힘들이지 않고 목재를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산 속의 두메 사람들은 겨울이면 사냥을 했다.
함경도의 멧돼지 함정에는 반드시 칡덩굴을 위장재로 썼다.
멧돼지가 다니는 길목에 함정을 파고 그 위에 칡 줄기를 덮으면 멧돼지가 칡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가 빠진다.
갯벌에서는 굵은 통나무를 박고 칡덩굴을 걷어다 나무와 나무를 엮는다.
밀물 때 물이 들어왔다가 썰물이 빠지고 나면 칡 줄기 안에 물고기가 갇혀 나가지 못한다.
칡 줄기로 만든 갈필(葛筆) 또한 재현해 봄직하다.
대나무 뿌리로 죽필(竹筆)을 만들 듯 칡 줄기를 나무 망치로 계속 두드리면 물기가 빠져나간다.
이것을 물에 풀면 고운 섬유질만 남는데 먹을 묻혀 글씨를 쓸 수 있다.
죽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속이 꽉 찬 대나무 뿌리를 구해야 하는데 그런 대나무는 쉽게 구할 수 없다.
갈필은 나무에 글씨를 쓰는 목수들이나 돌에 금을 긋는 석수들이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정교하게 묶은 갈필은 모필보다 힘이 있어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사냥꾼이나 심마니처럼 산에서 지내는 날이 많은 사람들은 칡덩굴로 움막집을 짓는다.
그 움막을 갈호(葛戶)라 했다.
갈근은 춘궁기를 이겨내는 구황식이었다.
칡의 뿌리를 캐 잘 말려서 절구에 찧는다.
채로 치면 고운 가루를 얻을 수 있다.
좀 더 고운 갈분을 얻으려면 칡뿌리를 절구에 찧어 즙을 짜 가라앉히면 앙금이 생긴다.
처음에는 갈색이지만 물을 자주 갈아주면 흰색이 된다. 바로 갈분이다.
이 갈분으로 떡, 수제비, 전, 국수를 해 먹는다.
잎은 잎대로 말려 갈아서 분말로 만들어 두고 요리의 첨가제로 쓴다.
밀가루 반죽에 칡잎 분말을 섞으면 파르스름한 색이 곱다.
봄철 부드러운 잎을 몇 장씩 묶어 된장에 밖아 두면 훌륭한 장아찌가 된다.
어린 싹은 데쳐서 껍질을 벗기고 나물로 무쳐 먹어도 좋다.
개발하기에 따라 수십 가지의 요리를 거뜬히 해 낼 수 있다.
칡즙이 숙취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도 칡에 관한 요리책(The Book of Cick)이 나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뿌리뿐만이 아니라 꽃도 약, 차로 할 수 있다.
특히 꽃을 말려 더운물에 우려낸 칡꽃차(葛花茶)는 선가에서 즐겨 마셨던 선차(禪茶)였다.
칡꽃에서 얻는 꿀은 향기가 짙고 색이 조청처럼 짙어 노인들의 보양제로 높이 친다.
칡은 뿌리, 줄기, 잎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자원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