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의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유명한 삼국지에도 영웅 탄생과 소멸이 숱하게 일어났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간 영웅호걸들이 있었다.
나는 요즘 안중근 의사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에도 인사동 갔다가 광화문까지 이내 걸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갔다.
요즘 이곳에서는 안중근 서예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날이 두 번째 방문이다.
작금의 시국 탓일까. 안중근 선생 글씨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의 나라 사랑이 온전히 전해진다. 어쩌면 그 글씨를 만나기 위해 또 갈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두 사람이 쓴 안중근 이야기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 이문열/ 알에이치코리아/ 2022
지난 여름 무렵이었던가? 헌책방에 갔다가 이 책을 만났다. 어? 이문열이 이런 책도 썼던가.
먼저 이 생각이 들었다가 안중근 평전이라는 소제목에 끌려 망설이지 않고 모셔 왔다.
그래 놓고도 바로 읽지는 못했다. 늘 한 박자씩 늦으면서 또한 미루기를 잘 하는 나다.
이 책을 한쪽에 두고 틈틈히 들춰 보기는 했으나 최근에 집중해서 완독을 했다. 소설이라 했지만 두 권으로 된 안중근 선생 평전이다.
이 책은 안중근 선생 조부 때부터 아버지와 숙부 등, 가족사가 세세하게 나오면서 그가 어떻게 목숨을 건 대사를 치르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안의사 고향인 황해도 일대의 풍경뿐 아니라 안선생이 시대에 따라 서울 생활과 중국 등의 행적 또한 이문열 특유의 문장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2010년에 <불멸>이란 제목으로 나온 것을 최근 다시 제목을 바꿔 발행한 개정판이다.
나는 오래전에 나왔다는 불멸도 몰랐고 <죽어 천년을 살리라>로 바뀐 제목도 헌책방에서야 만났으니 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문열이 제목을 죽어 천년을 살리라로 바꾼 사연은 소설 후기에 나온다.
안중근 의사가 중국 땅인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한 후에 중국 정치가인 손문과 원세개가 안의사의 영전에 바친 칠언절구가 있다.
중국 근대사의 중요한 기점인 신해혁명을 주도한 손문이 하얼빈 의거를 듣고 안의사를 예송한 시 한 편이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살아서는 백년을 못 채워도 죽어 천년을 살리라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되
처지를 바꾸어 놓고 보면 이등박문 역시 죄인이리
중국 근대사의 핵심 인물이자 구한말 우리나라 정치와도 관련이 깊은 원세개의 시는 이렇다.
平生營事只今畢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死地圖生非丈夫
(죽을 땅에서 살려하면 장부가 아니리)
身在三韓名萬國
(몸은 한국에 있어도 이름은 만국에 떨쳤소)
生無百歲死千秋
(살아서는 백년을 못 채워도 죽어 천년을 살리라)
공교롭게도 중국 청나라 말기의 두 거물 정치인은 안중근을 추모한 시에서 같은 문장을 구사했다.
<살아서는 백년을 못 채워도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구절인데 이문열은 이 문장에 꽂혀 개정판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하얼빈/ 김훈 소설/ 문학동네/ 2022
이 소설은 작년에 읽었다. 며칠 전 이문열 책을 읽고 나서 비교 차원에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김훈의 문장력은 대단하다.
이문열이 산문적이라면 김훈은 시적이라고 할까.
책 분량으로는 이문열이 3배 이상 길지만 김훈 소설 또한 안중근 생애의 핵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조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탄탄한 가문, 그리고 안중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어머니와 천주교가 그의 사상 핵심 바탕이다.
소설 첫장에 안중근과 이등박문의 이동 경로를 표기한 지도가 있는데 두 사람은 하얼빈에서 만나 안의사의 결심은 성공을 한다.
안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서른한 살에 죽었다.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 아내와 자식 셋을 남겼고 두 동생이 면회를 왔다.
지금까지 안중근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 불의를 참지 않고 목숨 걸고 나선 의인의 흔적이 없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문열의 책 제목처럼 안중근의 삶은 죽어 천년을 살리라가 맞다. 그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천년이 아니라 만년을 살 것이다.
이문열과 김훈의 책을 비교했다지만 우열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구사 문장만 다를 뿐 안의사 생애를 잘 묘사한 읽을 만한 책이다.
두 사람이 안중근 책을 쓴데다 공교롭게도 둘 다 1948년에 출생한 동갑이다.
거기다 두 사람은 본명 아닌 예명을 쓰고 있다.
이문열 본명은 이열(李烈)로 외자였으나 등단하면서 필명으로 문(文)자를 넣어 문열이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천상 글쟁이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소설가 김훈의 본명은 김용태, 두 자를 외자로 줄여 김훈이 되었다. 이런 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책에다도 인연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내 생각이다.
지금 다시 며칠 전에 역사박물관에서 봤던 안중근 의사 유묵이 떠오른다.
國家安危 勞心焦思 (국가안위 노심초사)
시국이 이런 책을 더 진지하게 읽게 만들고 새삼 안중근 선생의 나라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오늘이다.
첫댓글 뭐라고 댓글를 달아야 하나
고민하다 갑니다 사랑 하는 아우야 ㅡㅡ
아하~ 마야 선배님 그냥 가셔도 되는데,,
오프에 나가면 자주 듣는 얘기가 제 글을 읽고 댓글 달기가 너무 막막하다는 말이랍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ㅎ
아무나 쓸 수 없는 '영웅' 이지요.
아무나 그 영웅의 삶을 흉내 낼 수도 없을 테고.
이 시대 영웅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우리를 이끌어 줄
'인물'이 없음에
안타까울 뿐 입니다.
현덕님의 책사랑은 대단 하십니다.
두 작가의 스토리까지
잘 읽었습니다.
커쇼님 생각이 저와 비슷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영웅이든 의인이든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데요.
가문 내력도 있을 테고 주변 영향과 무엇보다 애국을 위한 본인의 확고한 신념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거를 성공하게 만들었지 싶습니다.
저는 책 읽을 때가 행복하고 나를 잊기에도 좋고 때론 찾을 때도 있으니 그저 습관적인 일상입니다.
평화로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
살아서는 백년을 못 채워도
죽어 천년을 살리라
가슴 아푼 구절입니다
난세의 영웅 안중근의사 !
꾸띠님 댓글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당시 동병상련 처지에 있던 혼란기의 중국 정치인들도 안의사님을 추모하는 문장이 나왔을 겁니다.
난세의 영웅이란 말이 한 사람이 목숨을 바친 결과여서 더욱 처연하게 들리지요. 건강하세요.
현덕님의 글은 사이버카페에 머물기는 아깝고 격이놓은 글이예요
ㅎ 호반청솔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읽는 사람이 웃어요.
제가 평소 가벼운 사람이라서 글이라도 조금 진지하게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모쪼록 건강한 겨울 나시기 바랍니다.
숙연한 마음이 되어..
우현덕님의 글에
머물다갑니다
가뜩이나 시국이 어수선한데 제 글까지 너무 무겁지 않았나 싶네요.
반면 이런 때일수록 안중근 선생 같은 분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쪽빛하늘님, 평온한 밤 되세요.
거장이 쓴
안중근이야기 두편을
이렇게 잘 다듬어 매끈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삶방 송년특집글 굿입니다
인지장애로 힘든 엄니
이미자노래 섬마을선생님 노래를
얼마나 또렷이 부르시든지
갑자기 현덕님 누나 생각이 났답니다
아하~ 정아님이 늦은 밤에 다녀 가셨네요.
책이든 뭐든 돌아서면 잊어 먹는 편이라서 기록 차원에서라도 속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 놓게 되었답니다.
정아님께서 뭐든 좋게 읽어 주시니 이런 댓글도 주셨겠지요. 섬마을 선생님을 부르시는 어머님과 제 누이의 애창곡이 같아서 동질감이 생깁니다.
눈이 올듯 말듯 잔뜩 흐린 날이네요.
저도 오전 열심히 일을 했으니 점심 먹으러 갑니다. 정아님도 좋은 날 되셨으면 합니다.ㅎ
고교때 ..
방학이 돌아오면,,특히 여름에는 세숫대야에
물받고 어름 넣어서 발을 시원하게 한뒤~~
교양서적과 단편소설을 스윽슥~~~
한달내내 읽어 내려 갔었는데..
아~~
벌써 그 시절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젠 책만 보면 두어장 넘기기 힘들오요,, ㅡ,.ㅡ
눈도 아프고 졸립기도 하고 ㅎㅎ
그래서 인지 책은 나에게 있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어라,, ㅋㅋㅋㅋㅋㅋ
즐거운 금요일 소확행 하는 하루 되셨나요???
저는 내일 20년 가까이 된 지인분들과
총9명이서 관악산 송년산행 선상파티 하러 갑니당,,
즐거운 주말 보내셔욤~~~^^*
참 댓글내용에 기록차원 이라는 말씀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합니다..
칼라풀님의 쾌활하면서 솔직한 댓글에 졸립던 사람도 번쩍 눈이 떠지겠습니다.
제가 돌연변이라서 그런지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누우면 바로 잠이 들고 졸립다가도 책을 보면 잠이 싹 달아나지요.ㅎ
여름이면 가끔 인왕산에 올라가 책을 읽다 내려오기도,,
칼라풀님이 활동적인 분이라 겨울산의 매력을 아시나 봅니다. 진정한 산꾼 맞네요.
내일 눈이 온다던데 모쪼록 안전산행 하시고 멋진 송년산행 파티 되시길 바래요. 건강과 행운을 보냅니다.
화이팅!! ㅎ
소설가는 귀신이라 칭하고 싶소 살아 움직이는 건 뭐든 잡아 글 속에 쑤셔넣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게 독자들의 혼을 빼게 하질않나 더 하여 먼 먼 옛날 죽어 백골이 된 혼까지 끌고 와 천년을 살게 한다 하니 진정 이 땅의 글쟁이들 정신과 붓끝을 누가 말리겠나요 이문열 좋아서 방황한 적도 그 다음으로 김훈에 빠져서 인텨뷰 장소마다 갔던 열정도 이젠 식은 죽보다 못한 이 한 줌 열정 내려다 보며 허탈해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현덕님
운선님이 유독 사모하는 두 소설가가 이문열과 김훈임을 알고 있었더랬지요.
제가 나름 김훈 책은 빠짐없이 읽는 편임에도 언젠가부터 이문열 책을 등한시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책도 헌책방 나들이에서야 겨우 만났으니까요.
그래도 만날 인연이어선지 돋보기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제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이 두 글쟁이를 제가 감히 흉내 낼 생각보다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 영광이라서 저는 그들의 어떤 책을 썼는지를 찾아 내는 귀신이 될 생각입니다.
더 촘촘하게 그물망을 치고 대비하렵니다. 책 읽기에 좋은 긴 겨울밤입니다.ㅎ
군불 넣으면서.
한 번만 넣으면 내가 춥고
두 번 넣으면 장판이 타니 어이할까.
귀향 두 해 남짓, 도짓소 몰던 천둥지기를 밭 만들며
‘파괴인가 개혁인가?’/성공이면 개혁이오. 실패면 파괴니라.
서당 골에 어둠이 내려 뻐근한 삭신 끌고 와 군불 넣고
새로 놓은 컴퓨터 테스트 중 유황숙님 글에 흠뻑 빠져봅니다.
월출산 넘어오는 매서운 북풍 핑계로 군불 두 번 넣을까.
하테스가 떠느니 장판이 타는게..하하 / 무거운 저녁
막걸리 잔에서 답을 찾죠. 건강하세요.
헉~ 하테스님, 어디 갔다 이제 오셨나요.
이 댓글 발견하고는 행여 재작년에 쓴 글에 달린 댓글이 아닌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눈을 씻고 봐도 분명 오늘 달린 댓글이네요.ㅎ
여전히 톡톡 튀는 글발이 살아 있어서 건재함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가을꽃 보내고 나서 아랫목에서 익어 가는 술단지에서 풍기는 향내 같기도 합니다.
그동안 삶방에 점점 옅어가는 글향이 아쉬웠는데 이제 하테스 성이 오셨으니 제가 외롭지 않겠습니다.
부디 이제는 멀리 가지 마소서. 무지 반가운 하테스님, 모쪼록 건강하시길 빕니다. 님을 위해 저도 이따금 군불을 때도록 하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