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궁도는 명리보다 오래된 학술에서 나온 것입니다.
宋대에 와서 구궁도를 베낀 게 소강절의 낙서입니다. 하도 역시 낙서를 약간 응용한 그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土를 중앙에 넣었다는 건 큰 실수였습니다.
천간이든 지지이든 土가 들어갈 자리는 사이(間)이지, 중앙(中央)이 아닙니다.
천간 하늘에 중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戊己토가 있을 자리는 중앙이 아닙니다. 丁과 庚 사이가 土의 정확한 위치입니다.
(금화교역도 사기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왜 사기인지 게재하겠습니다.)
그런데 낙서 그림에
10이 왜 없을까요?
베낀 거니까 없습니다. Made in China에게 기대할 걸 기대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낙서인지 뭔지, 저 그림이 거북이 등딱지에 그려졌다고요?
본 넘 있습니까?
첫댓글
구궁도는 마방진입니다.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合하면 15가 나오죠.
마방진은
이집트와 인도에서도 수천 년 전에 존재했습니다.
마방진을 낙서가 베끼려 했으면
제대로 베꼈어야 합니다.
점 10개 그려 넣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낙서는 그림이고, 구궁도는 숫자 이지요?
숫자가 나중에 발명되었음이 자연스러우니 낙서가 먼저라고 보는게 자연스럽습니다
ㅎ
더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용마도란 무슨 특별한 의미는 없지요
단 왕권의 우상화, 또는 신격화 하려는 상징적 유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즉 백마를 왕의 권위의식으로 십장생 중 거북은 수명을 상징했 듯
시쳇말로 통치적 상징이 강한 아랫사람들의 불필요한 충성심도 들었지요
전쟁의 신이라 일컫는 누루아치도
거북등에 구궁도를 새겨 전쟁에 활용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사전에 점을 쳤다는 반증이지요
하도와 낙서의 개념과 응용에까지 공리의 설명은
대장정과도 같은 논문 수준입니다
대략 이해정도 수준에까지 간략하면
위 구궁도는 하도(하늘:시간)를 기반한 낙서(땅:공간)를 바탕한 도형으로
낙서(땅)란 공간에서 하도(하늘)이란 시간의 교집합으로 공시간을 표상합니다
그래서 四正方은 天道(하도)의 공시간 개념입니다
그 이전 포지션이 없었던 자연수도 四隅方에도 적용하게 됐는데요
그런 개념에서 위 구궁도에 집합수가 형성돼게 됐지요
뒤로 이어봅니다
총체적 陰陽이란 주역에서는 효사로 점을 친 갈래요
명리로서는 그 陰陽을 오행양음으로 규정을 하지요
그 의미에서 金火교역은 음둔의 공간으로
水木교역은 양둔의 공간으로 이뤄지며 시간이란 지속성을 갖게 됩니다
이는 곧 천도의 시간과 땅이라는 공간에 의미입니다
흔히 낙서에 바탕힌 위 구궁도는
기본적으로 중궁을 5로 표시 했지만 人宮으로서 개념은
天人地중 즉 3天數와 2地數를 더한 五土를 일컫는데요
물론 10土가 발생함으로 인해 마방진 좌우상하로 15數는 土의 중심이자
戊己土란 선후천 개념이지요
그래서 15x4=60이란
六十甲子를 포진시길 수 있게됐던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공풍수도 객관적으로 가능했던 거고요
여담입니다만
엣고인들 뿐 아니라 우주공학적 입장에서
하늘을 팔괘로 상징 했듯
땅을 구궁으로 상징 했듯
두병소지란 방법으로 치환법의 일환이고요
그런 교집합으로 공시간이란 공리를 궁구한 도구지요
역학에 문외한 네오나르도다빈치도
그걸 연상해 원안에 사각형을 집어놓고 맨 중앙에 십자가를 대동한 인간을 그려넣기도 했지요
오늘날 사방곡곡 성당밖이나 성당안에 십자가에 메인 人은
곧 천인지 삼재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메여 죽였다고요?
만인중생을 위해?
신격화로 인한 통치적 목적인 수단의 도구일 뿐
좀더 명확해 보자면
一陽과 - -陰의 교집합은 十자로 상징하 듯
그 안에 人도 존재하게 됐던 것을
이상야릇한 설법으로 와전시켰던 게지요
고고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여음후 하후조묘(汝陰侯 夏侯竈墓, 기원전 165년 사망)에서
출토가 된 하도낙서문양이 확실한 증거유물이고
이것은 송대에 만들어진 진희/소강절/주자의 하도낙서보다도 더 오래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낙랑시대 하도 문양이 세겨진 돌반석이 출토되어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랍니다
의심스러으면 직접 국립박물관을 찾아가서 이게 하도 표기가 맞는가 물어보시는 게 좋을 듯하네요
이미 상나라 주나라 또 한나라 이전부터 하도낙서의 소장품들이 유행했으리라 짐작하는데
[그 증거 유물이 상나라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하도낙서 문양 유물이 존재함]
당시에는 유학이 발전하지 못하다 보니까
이론적으로 발전하지를 못했던 것 같은데
이 후 송나라 이후부터는 주자와 진희, 소강절 등의 유학자들이 대두 되면서
주역이 전성기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하도낙서가 이론적으로 재조명 받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 송나라 시대 이후부터
하도낙서의 문양을 복구하여 만들어 연구들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이전에는 각종 응용품들로 풍수지리 나침반용등에 특허품처럼 사용해오던 것을
송대부터 학문적으로 논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 하도의 圖,
낙서의 書.
둘 합쳐 도서의 어원
낙서에는 한자로 간단한 글이 덧붙여 쓰여있는데...
2. 역은 환단고기의 우리 선조들의 작품.
용마와 신구는 당연 허구.
주나라 주역 이전에 연산역, 귀장역이 있었다 함.
은나라는 은허 유적이 있으나,
그전 상나라부터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역사적인 의구심이 유발하나,
어찌 인간의 역사가 없으랴?
환단고기의 설명 참조...
(환단고기 위조론은 잘 생각해보면 기존 역사학자들의 트집과 모함)
3. 구궁은 오직 기문둔갑.
구성학과 현공풍수는 구궁의 형태만을 단순 이용한 것.
전혀 기문과 관련 없고...
기문풍수학은 따로 존재함.
4. 구궁도의 중궁은 북극성(太一)을 의미. 간혹 太乙과 혼동. 이는 太極(陰陽)의 개념. 인간 길흉을 좌우한다는 개념도 포함.
다만 북극성의 세차운동으로 위치 변경되어 실제 보다는 관념적인 존재로...
또한 북두칠성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한다는 믿음으로 칠성사상을 반영.
구궁이란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이 공전하는 형태.
5. 공자는 주역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
(주역점의 적중률 의미)
상나라와 은나라는 똑같은 나라입니다.
나라는 하나인데, 명칭이 두 개입니다.
하나라 - 상(은)나라 - 주나라
이런 순서입니다. 夏나라는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추가) 하도, 낙서는 made in korea.
상(은)은 같은 나라이지만 정권이 바뀝니다.
구별을 할 수도 있네요.
망한 상나라 사람이 장사를 해서 商人이라는 어원이 탄생.
중앙에 5, (10)의 배치는 하등 이상할 것 없습니다.
그외 소강절의 상수학에 대한 비판으로는 실학자 정약용, 또 일군의 중국 철학자들의 견해들이 있습니다.(생략)
지금의 작위적 도형인 하도 낙서는
역을 뜻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역을 뜻하는 건 음양이며, 음양에 관한 것만 표시되어야 그게 진정한
하도 낙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위된 그림은
음양 그림이 아닙니다.
오행 그림입니다.
오행의 상생 상극을 표시한 그림이
어떻게 역의 기원이 되겠습니까?
명리에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사기라는 게 다 드러나 보입니다.
하도, 낙서는 오행의 상생, 상극을 직접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행의 단순 분류는 이미 공자이전 고대부터 존재하였고,
오행의 본격적인 생극제화는 공자이후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음양가들에 의해서라 합니다.
소강절은 주역의 사상과 팔괘 사이에 오행을 집어 넣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소강절은 기존 상수학 이론을 획기적으로 새롭게 전개시킨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그의 이론이 옳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1. 황제내경을 보면 구궁팔풍 개념이 등장하는데, 어떤 해의 구궁명반에서 어떤 바람(즉 그해에 유행하는 병)을 예측하는 것.
2. 기문은 원래 병법(예; 팔진법)으로 강태공, 장자방, 제갈공명, 이정, 야율초재 등의 책사들이 구사했다 전해지고, 손자병법에서는 태을수, 기문 포함.
국가에서는 圖書관(하圖, 낙書 보관하는 곳)에, 일반에는 엄격 공개 금지.
3. 송 휘종때 하도, 낙서를 일반에 공개
4. 기문은 당말, 북송의 진희이, 북송의 소강절과 관련 없슴.
5. 삼국사기 김유신조에 그의 고손 김암이 당나라에 유학, 육진법인 둔갑입성법을 수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