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생활]
혼인 무효 소송 관련한 교황청 교회법 개정 세미나
“법적 잣대보다 가정의 어려움 돕는 것이 중요”
교황 교서에 따라 소송 절차 간소화, 한 차례 판결로 혼인 무효 소송 완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번 자의교서 「온유한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
을 발표, 혼인 무효 선언 소송의 교회법적 절차 개정 방향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관해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 가정 대학’은 세계 각국 교회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지난번에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에서 이 자의교서 상세
내용을 주제로 한 교육 세미나를 마련했다. 한국교회에서는 주교회의 교회법
위원회 총무 이정주 신부와 위원 김길민 신부가 각각 세미나에 참가했다.
교회법위 총무 이정주 신부의 인터뷰를 통해, 세미나에서 다룬 혼인 관련
교회법의 주요 변경 사항과 혼인 장애(조당) 해소를 위한 사목적 배려에 관한
조언을 들어본다.
“혼인 무효 법정은 혼인생활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이혼 후
재혼으로 인한 조당 때문에 성사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는
곳이지 단죄하는 곳이 아닙니다. 주변에 혼인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정주 신부는 우선 “혼인 장애를 풀고자 하는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길 원하는
이들”이라면서 “교회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강조했다.
혼인은 불가해소적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단일하고,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이 혼인으로 결합할 수 있으며,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새로운 혼인
유대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교회에서 혼인하는 모든 이가
이러한 가르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또 그들의 합의가 교회 가르침을
올바로 따른 것인지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 교회에서는 혼인 무효 문제를 해결하고
신자들의 양심을 평화롭게 해줄 수 있는 ‘빠르고’ ‘믿을 만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교황은 이에 따라 자의교서를 발표했고,
이후 가정에 관한 시노드 권고인 「사랑의 기쁨」등을 통해 어떤 가정이든 적극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신부는 “혼인한 이들의 인식이나 합의가 올바르지 않다면, 그들의 혼인은
무효, 즉 그 혼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교황 교서 발표로 인해 교회법이 수정되면서 “사실상 같은 절차가 반복되는
어려움과 교회 법원 관계자들이 지고 있던 어려움이 상당히 해소됐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기존엔 혼인 무효를 선언하기 위해선 1심과 2심 두 번에 걸쳐 무효
라는 합치된 판결이 필요했다. 물론 혼인의 유대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였지만,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드는 과정이었다. 개정 이후엔 한 차례 무효
판결로 완료한다. 혼인 무효소송을 청구하는 법원도 한정적이고 청구 절차도
복잡했지만, 이젠 사실상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어떤 법원에서든 처리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특히 이 신부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혼인 무효가 가능한지 그 여부만 판결하는
것은 사목적으로 매우 협소한 부분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혼인 무효 소송을 다룰 때는 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교회적인
측면을 적극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혼인 무효 판결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혼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오류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목적 노력을 펼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신부는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심리적, 정신적 결핍이나 결함 등으로 인해
혼인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이 갈수록 늘어감에 따라, 단순히 법적
지원보다 영성심리, 상담심리 등과 연계한 사목적 배려와 삶의 전반을 동반하는
교회의 노력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신부는 “혼인 법정에서 일하다 보면 실제 각 가정에서는 사목자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심각한 어려움들을 겪고 산다는 것을 체감한다”면서
“교회가 이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사목적 지원도 펼쳐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법적 잣대만 들이대지 말고
각 부부와 가정 등에 적극 다가가 그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듣고 각 사목
분야에서 통합적으로 대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