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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4
새해의 다짐, 그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한 고심일 것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곳이 이 세상이고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창조의 첫 3일 동안 만드신 공간(하늘. 바다, 땅) 에 천체와 각종 생명체로 채우십니다. 존재감으로 힘든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야했습니다. 존재 안에 하나님이 없을 때, 우리는 공허와 허무, 무의미로 소모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답은 나와 있습니다.
New Year's resolutions, it will be a struggle of how to fill the time that has been given to me. Genesis says that the world and life are the places that cannot be filled unless it is God. You fill the space you created during the first three days of creation with celestial bodies and various living things. We had to spend a long time with our existence. When there is no God in existence, we seem to be at war with emptiness, futility, and meaninglessness. The answer is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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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충만한 존재로 살아갈 때만 인간은 존재의 목적과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고 공허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기원보다는 창조의 ‘의의와 목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배웠는데 동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첫 사흘 동안 혼돈을 몰아내고 생명의 공간을 만드신 후, 이제 나머지 사흘 동안은 그 공간 안에 생명체를 두심으로 공허를 채우셨습니다. 처음 사흘 동안은 본질이나 공간을 만드신 후 나머지 사흘 동안은 그 본질에 나온 것들이나 공간을 주관할 주체들을 만든 것입니다.
Only when living as a full being in a relationship with God can humans be given the purpose, meaning, and value of existence and overcome the void. I learned that Genesis 1 records the "will and purpose" of creation rather than the origin of creation, but I don't know if you agree. After driving out chaos and creating a space for life for the first three days, the remaining three days filled the void with life in that space. For the first three days, you created the essence or space, and then for the other three days, you created the essence and the things that came out of it or the subjects who will be in charge of the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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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질서 없는 혼돈을 극복하고 후반부는 내용 없는 공허를 채우시는 방식입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형식을,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 형식에 걸 맞는 내용을 창조하신 것은 1:2의 혼돈과 공허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빛이 광명 체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빛을 내는 광명 체 보다 먼저 빛을 창조하십니다. 빛의 기원은 광명체가 아니라 하나님이고, 해달별 역시 피조물에 불과하며, 질서를 따라 역할 하는 것뿐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The first half is a way of overcoming disorderly chaos and the second half is to fill the void without content. The first to third days, and the fourth to sixth days,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 1:2 chaos and emptiness is seen as creating content appropriate to that form. Light comes from the light body, but it creates light before the light body that emits light. Make it clear that the origin of light is not the light body, but God, and that the sea otter star is only a creation and plays a role in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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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다의 큰 물고기도 하나님 주관 아래 있고, 하늘의 여러 새가 제각기 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고 솜씨랍니다. 주의할 것은, 창조사역이 24시간의 하루로 계산한 6일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에서 천체는 신으로 숭배되었는데 해, 달, 별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선언은 세상의 근원을 뒤엎는 사건입니다. 넷째 날에 모든 피조물들의 존속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천체들이, 다섯째 날에, 물속에 사는 생물체와 하늘을 나는 조류가 창조 되었습니다.
As we know, large fish in the sea are under God's control, and it is also God's power and skill that many birds in the sky fly separately. Note that the creation service took place over a long period of time, not six days, which was calculated as a day of 24 hours. In the ancient Near East, celestial bodies were worshipped as gods, and the declaration that the sun, moon, and stars were God's creations is an event that overturned the source of the world. On the fourth day, celestial bodies that would have an important influence on the continuation of all creatures, and on the fifth day, aquatic creatures and flying birds were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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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날에 만들어진 창조물들이 3일 동안의 창조물들과 서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창조 질서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둘째 날 창조된 하늘의 궁창은 넷째 날 창조된 해와 달과 별들의 자리가 되고, 천체들은 모든 피조물에게 시간과 세월의 흐름을 알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존속하고 번성하는 시기를, 사람에게는 살아 가게 하는 의미와 기억하게 할 절기들의 때를 알게 해줄 것입니다.
The creations created on these two days interact with the creations of the three days in harmony. The Gungchang in the sky created on the second day becomes the place of the sun, moon, and stars created on the fourth day, and the celestial bodies will let all creatures know the passage of time and time. Thus, it will let people know the meaning of living and the time of seasons to remember, when all living things, including people, survive and th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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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지속되고, 그 교차를 알려주던 첫날 창조된 빛의 기능을 이제 천체들이 하게 됩니다. 또한 이 천체들은 다섯째 날 창조된 물속의 생명체들과 조류의 번성과 존속을 위하여 부여된 기능을 다할 테지요. 성경은 아무것도 스스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존재하게 하실 수 있고 그 존재에 생명력을 부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을 넘어서 온 피조물에게까지 미칩니다.
The night and day will continue, and the celestial bodies will now function as the light created on the first day of the intersection. These celestial bodies will also serve the functions that were created on the fifth day for the prosperity and survival of the underwater creatures and algae. According to the Bible, nothing can grow, thrive, and fill the earth on its own. Only God can make it exist, and he can give life to it. God's interest extends beyond humans to cr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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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생명들이 본연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며 서로를 위해 존재 할 때, 그 생명이 온전히 발휘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내가 거울을 보며 흡족해 할 때처럼 창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은 기뻐하셨는데 왜, 둘 째 날에는 기뻐하였더라가 빠졌을까? 하나님이 나를 두신 자리에서 보기 좋은 창조를 이뤄내고 있는가? 나는 허락된 날을 낭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하고 있는가?
When all those lives are present for each other, fulfilling their roles in their proper places, they have created them to be fully exercised. God, who rejoices in creation, as he did when I was satisfied with looking in the mirror, was happy on the third and sixth days, but why, on the second day, was he happy and out? Am I making a good creation in the place where God has placed me? Am I using the day allowed wisely without wast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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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천체(14-19)
a.천체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실현:14-15
b.실현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구체적 설명:16-19
다섯째 날; 물과 공중의 피조물(20-23)
a.물속에 사는 생물과 조류:20
b.바다의 큰 생물체;21
c.하나님의 축복:22-23
여섯째 날: 땅의 짐승들(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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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14a)
하늘의 궁창에(14b)
광명이 있어(14c)
주야를 나뉘게 하라(14d)
또 그 광명으로 하여(14e)
징조와 사시와(14f)
일자와(14g)
연한이 이루라(1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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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광명이(15a)
하늘의 궁창에 있어(15b)
땅에 비취라 하시고(15c)
(그대로 되니라)(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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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16a)
두 큰 광명을 만드사(16b)
큰 광명으로(16c)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16d)
작은 광명으로(16e)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16f)
또 별들을 만드시고(1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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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것들을(17a)
하늘의 궁창에 두어(17b)
땅에 비취게 하시며(1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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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18a)
빛과 어두움을(18b)
나뉘게 하시니라(18c)
하나님의 보시기에(18d)
좋았더라(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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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19a)
아침이 되니(19b)
이는 넷째 날이니라(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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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20a)
물들은(20b)
생물로 번성케 하라(20c)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20d)
새가 날아라하시고(2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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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21a)
큰 물고기와(21b)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21c)
모든 생물을(21d)
그 종류대로(21e)
날개 있는 모든 새를 (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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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류대로(21g)
창조하시니(21h)
하나님의 보시기에(21i)
좋았더라(2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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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22a)
그들에게 복을 주어(22b)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22c)
여러 바다 물에 충만 하라(22d)
새들도(22e)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2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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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23a)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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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24a)
땅은 생물을(24b)
그 종류대로 내되(24c)
육축과 기는 것과(24d)
땅의 짐승을(24e)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24f)
(그대로 되니라)(2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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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땅의 짐승을(25a)
그 종류대로(25b)
육축을 그 종류대로(25c)
땅에 기는 모든 것을(25d)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25e)
하나님의 보시기에(25f)
좋았더라(2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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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를 채운 하나님의 손길 the hollow of God's with Empty
비신화화 하는 하나님의 창조 the creation of a mythical God
생명력을 부여하신 창조 Creation, which has been endowed with vi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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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의 하나님, 해와 달과 별의 자리를 주시고 각 생물에게도 걸맞은 자리를 주었으며 우리에게도 필요한 모든 삶의 여건을 준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빈자리를 채우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가게 하시고 목적대로 창조하신 것들에 대해 더욱 가치를 느끼며 살게 하옵소서.
God of Fulfillment, giving the sun, moon and stars a place for each living thing. He gave us a seat, prepared us all the necessary living conditions. Thank you for that. Realize that only God can fill the void in life, so that he may seek God's
intentions and live with more value for the things he created for his purpose.
2026.1.2.fri.Clay
신학 비평//
공허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결핍인가, 아니면 의미가 들어올 수 있는 틈인가?
하나님은 세상을 “꽉 채우는 분”인가, 아니면 “여백을 남기시는 분”인가?
인간의 공허는 죄의 결과인가, 아니면 존재의 구조인가?
1. 공허는 결핍이 아니라 조건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는 전통적으로 극복의 대상으로 읽혀왔습니다. 질서 없는 혼돈, 내용 없는 공허. 하나님은 질서를 세우고, 생명을 채우심으로 이 상태를 제거하십니다. 그러나 이 공허를 단순히 없어져야 할 결함으로만 읽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가득 찬 세계’를 만들지 않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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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는 실패가 아니라 창조가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일 수 있어요. 무언가가 말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말해지지 않은 침묵의 자리가 필요하듯이 이때 공허는 죄 이전의 상태이며, 악 이전의 상태이고, 의미 이전의 상태입니다.
2. 공백은 제거되지 않은 여지
넷째 날, 해·달·별이 배치되며 시간과 계절, 리듬이 주어집니다. 이는 “공허의 채움”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빛은 이미 첫째 날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천체는 빛의 기원이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이는 중요한 신학적 전복입니다. 빛 → 하나님에게서 옴/해·달·별 → 역할을 맡음. 하나님은 세상을 완결된 자동 시스템으로 만들지 않고, 대신, 공백을 남기고 그 공백을 역할로 채우십니다. 그러니 공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밤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어둠은 관리될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공백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위임의 자리입니다.
3. 무는 부정이 아닌 열림
“무에서 창조”라는 표현은 종종 철학적으로 오해됩니다. 무를 완전한 부정, 절대적 없음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존철학과 현대 신학에서의 ‘무’는 다르게 읽힙니다.(무 = 가능성이 아직 특정되지 않은 상태 무 =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자리) 이 무는 공포의 심연이 아니라 새로움이 들어올 수 있는 틈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규정해 버리셨다면, 자유도, 역사도, 책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는 하나님이 떠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다리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4. 틈은 하나님이 일부러 남겨두신 자리
창조의 후반부를 보라. 모든 생명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되었지만, 그 생명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완전히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생육하고 번성하라 → 명령 그러나 그 방식 → 열려 있음) 이 열린 부분, 이 결정되지 않은 영역이 바로 틈입니다. 틈이 없다면, 인간은 순응 기계가 되고 역사는 반복이 되며 윤리는 불필요해질 것입니다. 둘째 날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날, 아직 열려 있는 구조의 날) 하나님은 그 틈을 남긴 채 다음 날로 넘어가셨습니다.
5. 인간의 공허는 실패가 아니라 신호
하나님 없는 존재는 공허와 허무로 소모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면 공허는 반드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만 생길까? 아니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구조적 상태는 아닐까? 배고픔이 음식의 부재이면서 동시에 음식의 가능성인 것처럼, 공허는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설계되었다는 증거일 수 있지 않을까?
6. 채움의 하나님인가, 틈의 하나님인가?
전통 신앙은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빈자리를 채우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채워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채워질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에 자리를 주셨고, 생물에게 역할을 주셨고 인간에게는 응답할 틈을 주셨습니다. 존재는 꽉 찬 상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열린 상태로 맡겨졌습니다. "공허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공백은 실패가 아니다. 무는 공포가 아니다. 틈은 실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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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모두 의미가 들어오기 위한 자리입니다. 새해의 다짐이 “시간을 채우는 것”이라면, 어쩌면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내 삶의 틈을 무엇으로, 누구에게 열어 두고 있는가? 하이데거에게 공백(Lichtung)은 존재가 드러날 수 있도록 비워진 자리입니다. 공백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가 말을 걸 수 있는 현재의 열림입니다. 그리고 몰트만에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현재를 열어 젖히는 약속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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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현재의 연장이 아니라 현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희망의 침입입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하이데거의 공백은 존재가 나타날 수 있는 자리이고, 몰트만의 미래는 그 자리를 향해 다가오는 약속일 수 있습니다. 공백은 정지된 여백이 아니라, 미래가 들어오기 위해 남겨진 틈입니다. 그래서 창조는 완결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일부러 미완으로 열린 사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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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에게서 하나님은 과거의 원인이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공허는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구조같아 보입니다. 공백은 존재가 열리는 자리이고, 미래는 그 자리를 향해 오는 하나님입니다. 공허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실 수 있도록 남겨진 자리입니다. 이때 신앙은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기다림을 견디는 희망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