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셋째주 연중 제20주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안에 머무른다. (요한 6.51-58)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이재근 신부. 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 차장
처음으로 해외 성지순례 가는 하루 전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여벌 옷은 몇 벌을 가져가야 하고 바람막이를 꼭 챙겨야 하며....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어린애냐며 알아서 다 하니까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떠나게 된 성지순례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추위에 몸을 떨어야 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옷이 모자라 구입을 해야 했다.
만약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의미론과 화용론...이라는 말이 있다.
의미론은 누군가가 `물`이라고 외치면 `물은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의 말을 파악하는 것이다.
반면 화용론은 물이라는 단어 자체보다 그 말을 왜 했을지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다.
지금 목이 마른 거구나...파악한 후 물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예수님 말씀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기를 바라셨다.
그 말씀은 우리가 당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를 바라셨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물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바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그분의 모든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받아먹고 마시라는 말씀은
당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시려는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결국 그분의 뜻에 따라 나도 살아가겠다는 결심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많은 순간 그분의 뜻보다 내 뜻대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모습에 죄책감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님도 다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합리화를 한다.
나는 아들을 위해 해주신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잔소리를 듣고 피하려 한다.
어쩌면 우리도 예수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살아가려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진 않을까?
그분 뜻대로 하지 않아 시련을 겪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가려 하는 건 아닐까?
우리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려는 그분을
마치 어머니의 잔소리마냥 피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