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One
day Peter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time of
00 prayer--at three in the afternoon.
2 0Now
a man crippled from birth was being carried to the temple gate
00 called Beautiful, where he was
put every day to beg from those going
00 into the temple courts.
3 0When
he saw Peter and John about to enter, he asked them for money.
4 0Peter
looked straig-ht at him, as did John. Then Peter said, "Look
at us!"
5 0So
the man gave them his attention, expecting to get something from
them.
6 0Then
Peter said,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00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7 0Taking
him by the right hand, he helped him up, and instantly the man's
00 feet and ankles became strong.
8 0He
jumped to his feet and began to walk. Then he went with them into
00 the temple courts, walking and
jumping, and praising God.
9 0When
all the people saw him walking and praising God,
10 they recognized him as the same man who used to sit begging at
the
00 temple gate called Beautiful,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00 amazement at what had happened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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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 (3:1-6)
베드로와 요한은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앉은뱅이에게 엉뚱한
선언을 합니다. “(네가 기대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말씀에 의지하여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선 앉은뱅이는 곧 치유함을 받아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동전 몇 닢을 기대했던 앉은뱅이는 인생 자체가
회복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의 인생을 근본부터 변화시켜 놓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의 담대한 선언은 우리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베드로와는 반대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능력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은과 금을 네게 주겠노라”고 말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까?
그들에게 진정으로
0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변화임을 깨닫습니까
걷고 뛰는 앉은뱅이 (3:7-10)
누가는 앉은뱅이가 “뛰어 서서 걸으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는 말을
반복함으로 그의 치유를 확실히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앉은뱅이인 그 사람 개인의 문제만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앉은뱅이가 걷고 뛴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는
강력한 증거의 하나였습니다(사 35:6, 눅 7:22).
당시에는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사건을 상세히 기록함으로 앉은뱅이를 고치신 바로 그분이 진정한
메시아이심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앉은뱅이에게 어떤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은혜를 입었을 뿐이고,
그 은혜를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도 온전히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 내
삶을 통해 값없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드러냅니까?
0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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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얼마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공급하셨는가에 대해 간증하는 일이 흔했다. 어느 학생이 전기요금을 내기
위해 139달러 12센트가 필요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데 그가 요금을 내야 할 시간에 꼭 맞는 액수의 돈이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경제적인 상황에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척추를 곧게 하실 수 있다거나 누군가의 몸을 화학적으로
조절하셔서 그들의 당뇨병을 떠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당신의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굽은 척추를
펴는 것이 하나님께 더 어려운 일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에
따라 우리의 경제적 필요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는 신체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믿음에 따라 기도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믿음에
따라 치유를 행하셨다면, 왜 오늘날에는 믿음에 따라 치료하시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날 치유의 역사가 부족한 곳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기꺼워하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대한
교회의 믿음에 있다고 믿는다.
-「놀라운 성령의 능력」/ 잭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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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멘
나의왕님 ..상큼메론님..축복 가득한 하루 되세요....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