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가장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삼시세끼>와 <오늘 뭐 먹지?>다. <삼시세끼>에서는 레드카펫에나 있을 법한 톱스타들이 정선 산골짜기에서 수수를 베고, 장작불에 밥을 하고, 장을 보고, 염소 우리를 친다. <오늘 뭐 먹지?>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MC와 발라드 가수가 초보 새색시나 할 법한 고민을 방송 내내 반복한다.
40대 이상이면 기억하시리라. 흑백TV 시절의 요리프로그램을…. 요리의 생명인 컬러가 블랙 앤 화이트로밖에 표현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여성 대부분이 전업주부였던 시절이라 요리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그러던 중 등장한 컬러 TV는 충격 그 자체였다. 화가 나면 몸집이 커지면서 옷이 다 터져버리고 마는 ‘헐크’가 초록색이었을 줄이야! MBC 무용단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나팔바지가 빨간색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쇼오락프로그램이 이 정도니 요리프로그램은 어떻겠는가! 초록색 호박을 잘라 노란 달걀물을 입혀 프라이팬에 지지면 너도나도 탄성을 질렀다. 주황색 귤껍질을 곱게 채 썰어 하얀 설기 위에 올리기만 해도 예술작품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전국을 돌며 별미들을 소개하는 미식탐방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 때마침 부동산 개발과 마이카 붐이 일며 TV에서 본 별미들을 직접 찾아나서는 1세대 미식가들이 등장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안정적인 인기를 끌어오던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은 아이템 고갈로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97년 IMF사태는 그나마 버티던 녀석들마저 궁지로 몰아넣었다. 온 국민이 다 죽게 생긴 마당에 요리프로그램이라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5~6년을 감히 요리프로그램의 암흑기라 부르고 싶다. 이 심각한 침체기에 종지부를 찍은 게 MBC <찾아라! 맛있는 TV>와 SBS <결정! 맛대맛>이다. 주말 가족 외식과 직장 회식을 책임지던 두 프로그램을 통해 수 많은 외식업 스타가 탄생했다. 국민소득이 오르며 여행과 미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고 수준도 높아졌다. 채널이 늘어나면서 공중파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프로그램들도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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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TV 한식대첩2 스틸컷
<슈퍼스타K>로 톡톡히 재미를 본 tvN의 계열사 올리브TV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등 대결 위주의 서바이벌프로그램을 주로 선보였다. 경쟁은 방송을 이끌어가는 최고의 무기다. 승자의 쾌감을 간접경험 하고, 패자의 실수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리는 음악과 다르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 숙련된 기술, 심사위원 파악 등 구비해야 할 조건들이 많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경우 사전홍보나 마케팅 노력에 비해 많은 출전자가 몰리지 않았고, 주목도도 그만큼 떨어진 게 사실이다. 게다가 고압적인 자세의 몇몇 심사위원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다가 후속 시즌에서는 퇴진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경합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도전자들이다. 욕을 하고 앞치마를 빼앗는 심사위원이 주인공일 수는 없다. 긴장해서 떨고 있는 초보 요리사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서 실력보다 더 큰 내공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는 이런 온기가 없다.
반면 <한식대첩>은 얄미울 정도로 잔재미를 만들어낸다. 엉성해 보이던 구성이 회를 거듭하며 재미요소가 짙어지는 걸 보니 인간다움이 통한다는 걸 드디어 알아차린 모양이다. 충청도 팀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아이디어를 짜내고 식재료를 구해오면 전라도 팀이 농을 친다. “아따~ 그까이 거 가지고 오는 디 시간 겁나게 잡아묵네.” 수십 년간 무대에 오른 전문배우가 아니다. 그런데도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솔직하기 때문이다. 이들 도전자는 혼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심사위원 앞에서 떨기는 해도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 같지는 않다.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상을 받으면 아주 좋겠지만 아니어도 그만이지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대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시청자도 편하다.직접 맛볼 수는 없지만 대대로 내려온다는 가문의 비법도 엿볼 수 있고, 신랑한테도 알려주기 아깝다는 부엌의 비책도 배울 수 있으니 이만한 재미가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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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시세끼 스틸컷
요사이 가장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삼시세끼>와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이하 <오늘 뭐 먹지?>)다. 나영석 PD의 후속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시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고편을 보자 불안했다. 아무리 특A급 스타 이서진과 옥택연이라 하더라도 자급자족 프로그램의 진행이 가능할까? 기우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나PD는 공식을 알고 있다. 첫째는 상황의 희극성이다. 레드카펫에나 있을 법한 톱스타들이 정선 산골짜기에서 수수를 베고, 장작불에 밥을 하고, 장을 보고, 염소 우리를 친다.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인물과 상황 배치가 첫 번째 재미를 준다. 두 번째는 캐릭터다. 이미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서 합을 맞춘 이 콤비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희극콤비다. 톰과 제리처럼 아웅다웅, 애걸복걸, 복수혈전, 심기일전, 삼시세끼를 붙어 지낸다. 한 명은 지시하고 한 명은 욕을 하며 화내지만 둘의 관계를 보고 욕하는 시청자는 없다. 오히려 다음번에는 누가 먼저 헤게모니를 잡을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마지막은 반복! 반복이 없으면 희극은 없다. 개그맨들이 죽어라 유행어를 만들고 틈만 나면 꺼내놓으려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서진이나 옥택연이 유행어를 만들려고 애를 쓰진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불평이나 언어 습관을 시기적절하게 반복 배치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나PD가 있다. 결국 시청자들은 의도된 반복에 노출되면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초특급 게스트들에게 공감하고 자연스레 동화된다. 과연 이런 재미를 만들 수 있는 자가 누가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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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뭐먹지 스틸컷
딱 한 팀 더 있다. <오늘 뭐 먹지?>의 프로듀서와 작가가 그들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능글능글한 두 남자를 요리하게 만든 프로그램 <오늘 뭐 먹지?>는 왁자지껄하거나 소란스럽지 않다. 전문가의 요리를 진지하게 따라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재미있다. 채를 너무 두껍게 썰지 않았나? 육수가 너무 많지 않은가? 새우를 먼저 넣어야 하나? 밀가루 대신 전분을 넣었나? 적당히 넣으라는 소리가 적합하게 넣으라는 소리야, 당차게 넣으라는 소리야? 대한민국 최고의 MC와 발라드 가수가 초보 새색시나 할 법한 고민을 방송 내내 반복한다. 조금만 칭찬을 받아도 까르르대다가 상대보다 맛이 좀 떨어지면 바로 반색하고, 달인에게 면박을 당하면 눈 깜빡할 사이 새초롬해진다. 그러면서 배운다. 초반에는 확실히 성시경이 앞섰다. 먹어본 경험도 많고 만들어본 이력도 있어서인지 늘 신동엽을 앞서갔지만, 요즘은 왕초보처럼 보였던 신동엽이 좀 더 정확하게 배우는 것 같다. 수십 년간 일가를 이루며쌓아온 장인들의 요리 노하우를 엿볼 수 있어서 좋고, 신동엽과 성시경의 다정다감한 경쟁을 볼 수 있어서 좋고, 무엇보다 시끄럽지 않아서 좋은 프로그램이 <오늘 뭐 먹지?>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보지?’
정말 무엇을 봐야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