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도선사 참배 철야기도…청담 스님에게 ‘대덕화’ 법명 받아♣
<2002-02-15(도선사 혜성 주지 스님의 증언)>
육 여사의 모친이 도선사와 인연이 있었다.
여사가 절에 오실 때면 미리 청와대서 연락이 왔다.
육 여사는 동생인 육예수씨 집에서 일반 차량으로 갈아탄 후
북한산 도선사 입구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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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육예수와 함께 산길을 올랐는데, 그때마다 내가 안내를 했다.
우이동에서 절까지 산길을 꼬박 40분 동안 걸어야 했다.
자연이 너무 아름답고 좋다며 소녀처럼 미소 지었던
육 여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053A4655677CCC2A)
도선사에 도착하면 청담스님과 잠시 차담(茶談)을 나누고
저녁공양을 마친 후 석불 전에서 동생과 함께 철야기도를 올리고
다음날 새벽 청와대로 돌아갔다.
박 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시절 청담스님은
‘그동안 큰 덕을 지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덕을 많이 베풀라’는 뜻에서
대덕화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수계 첩도 전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F754255677CD703)
도선사 길이 지금처럼 된 것도 육 여사의 뜻이었다.
1968년 육 여사는 청담스님에게 “대통령을 모시고
태국을 가보니 절까지 차가 들어가더라.
도선사도 길을 닦았으면 부처님도 친견하고
큰스님도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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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이동에서 도선사까지 길을 놓게 되었다.
육 여사는 한국불교에 대한 바램을 이야기했다.
“한국불교가 태국불교와 한가지로 온 국민이 다
기도하고 기여할 수 있는 민족종교인데,
산중불교가 되어 폐쇄적인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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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인 육영수 여사에게 ‘대덕화’
법명을 지어준 청담 스님. ⓒ 도선사 홈피.
기독교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등 서민 곁으로 많이 파고드는 데
불교는 부족하다. 스님들도 현대학문을 배워야 한다.”
청담스님은 육 여사에게 “산 보살행을 하라.
(영부인이라는 자리가) 복을 많이 지을 수 있는 곳이니,
많이 베풀어라. 전생에 많이 닦아서 그런 자리에 올랐으니,
다음 생을 위해서 보다 잘 닦으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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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한국여인상과 어머니상을 그대로 간직했던
육 여사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음 을
토로하기도 했다.
영부인이니까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경제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생각대로 못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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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펌. 編: 동해바다)
첫댓글 소소한것도 살피고 배려한 육여사님~~
다니기 힘든길을 불자들을 위해서 포장을 해주신 육여사님~~
불심이 가득 하셨던 국모님 이셨지요!
소박한 한국여인상과 어머니상을 그대로 간직했던
육 여사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음 을
토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