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고 이경운 군의 추모 2주기를 맞아 유학생(이경운) 정의,인권 2차 시위가 트라팔가 광장과 다우닝 10번지 수상관저 앞에서 있었습니다.
재영 유학생 이경운군을 위한 1차 시위와 2차 시위 모두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나 습니다.
하지만 이번 2차 시위를 지켜보면서는 전 울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심한 한국 영사의 행태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경운군 홈페이지에서 발췌)
시위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영 대사관에 가서 주영대사관의 입장을 들어보겠다고하여 다시 대오정리하여 수상관저앞에서 대사관으로 출발하였으며 또다시 사물놀이팀의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이번에는 인도를 통해 대형 현수막과 이경운 초상화를 앞세우고 행진을 하였으며 또한 많은 행인및 차량 운전자들의 힘찬 박수를 받기도했습니다.
오후 3시경, 주영 대사관에 도착하여 대오정리하고 주영대사관의 영사가 나와 해명을 하기를 기대하는 동안 사물놀이팀의 가락은 더욱고조되었으며 백 파이프도 가세하여 더욱 흥겨운 앙상블의 조화를보여주어 찬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영국 경찰과 인권단체및 많은 뜻이 있는분들의 적극적인 권유에도불구하고 "시위 군중앞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다는 변명"
하에 주영 대사관 영사는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말았습니다.
주영 대사관의 공식적인 입장을 청취하려는 많은 유학생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측에서는 이를 묵과하고 무시함으로 인하여 결국 한마디도 듣지 못한 우리는 여전히 울려퍼지던 사물놀이 및 백 파이프의 기세 있는 연주를 들으며 그저 탄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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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사관에 도착했을 때 대사관은 모든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하물며 죄를 지은 자국민 보호에도 앞장을 서는 다른 나라의 대사관과 달리 자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국민을 대사관에서 출입을 금지시켰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흡사 평화적 시위대를 폭도의 무리 쯤으로 보는 전 근대적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 경찰에 대사관의 경계를 요구한 것은 명백하게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국민을 버리는 대사관이야 말로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영사의 해명을 듣길 원하는 자국민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전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안전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시위대는 아주 질서 정연했으며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로 수준 높은 시위문화를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도 또한 안전치 못하다는 이유를 들고 나오기를 거부한 대사를 위해 시위대와의 직접 접촉 없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영사가 영국 경찰들의 호위 속에서 해명을 해달라는 요구에도 여전히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사가 요구한 이경운군 아버지와의 개인 면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공개적인 석상에서 공식적인 발표 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 대사를 보면서 그 사람이 자신의 입신과 안녕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에 이경운 군의 아버지께서는 공개적인 석상이 아닌 영사와의 개인적인 면답은 절대로 없을 것이란 말씀에 시위대는 다시 한번 우리의 대사관이 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테에 대해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경운군의 사건은 단순히 한 가족의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이번 시위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국민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한국 정부, 그리고 자신의 입신과 안녕만을 위해 노력하는 고위 당국자들을 보면서 전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국민들 앞을 골프가방을 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대사관 직원을 보면서 전 제 자신이 대한 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진정 후회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