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맏이의 인생좌우명
언젠가 맏이와 카카오톡 대화를 좀 하려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카카오톡 창에 내걸어 놓은 좌우명 때문이었다.
곧 이랬다.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아비인 나로서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놀랐다.
그 얼마나 크게 후회할 일이 있어서 그랬나 싶었기 때문이었고, 또 무슨 일로 울어야 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전화를 해봐야 했다.
내 그 걱정스러워하는 사연을 들은 맏이가, 귀청 떨어질 정도로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한참을 웃고 난 뒤에 하는 말이 이랬다
“그거요, 노래예요. 노래. 전인권이가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요, 그 노래가 좋아서, 가사 한 대목을 적은 거예요.”
설명을 듣고 이해는 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으로는, 맏이가 그 즈음에 뭔가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넘겨짚고 있었다.
역시 그랬다.
이 눈치 저 눈치 눈칫밥 먹으며 살아온 일흔 나이의 내 인생이다.
게다가 상대의 속셈을 헤아려낸 후에 ‘그렇지요?’라면서 다그쳐드는 검찰수사관 생활을 30년 이상이나 했다.
그런 내 직감을, 맏이도 피해나가지 못했다.
맏이가 최근에 새로 바꿔서 내 건 카카오톡 창 좌우명 때문이었다.
바꾼 좌우명, 곧 이랬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성경 구약 욥기 23장 10절 구절이다.
8년 전으로 거슬러 2009년 7월에,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법무사사무소를 개업하는 나를 위해, 내가 다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우리 서울시민교회에서, 앞으로 내게 닥쳐오는 그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나가라는 뜻에서 선물해준 액자에 새겨진 성경 구절도, 곧 그 구절이었다.
그동안 오랜 부동산 불경기로 침체된 법무사 업계에서 힘들게 버텨오면서, 내 그 구절로 위안을 받고는 했었다.
그런 내 경험에 비추어, 그동안 맏이가 뭔가 힘든 일이 있었다는 것과, 그 힘든 일을 이제는 잘 극복해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내 처신을 달리 했다.
그냥 뒀다.
전처럼 맏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여부를 확인해보지 않았다.
맏이가 그 인생에 있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또 하나의 좌우명이 있음을 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좌우명, 곧 이랬다.
‘요령과 정도’
그 좌우명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언젠가 맏이가 내게 이렇게 털어놨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시기를 할아버지에게 은수저 한 벌 외에는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손자인 제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인생사에 대한 좌우명입니다. 어느 해 설날의 일이었습니다. 문경 점촌 흥덕 주공아파트로 명절을 쇠러가서 세배를 드리는데, 그날따라 할아버지께서 저와 동생에게 세뱃돈을 두둑이 주시면서 좀 다가앉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오늘은 너희에게 인생사 덕담 한 마디 해야겠다.’라고 말씀하시고는, 할아버지께서 젊어서부터 그동안 겪어 오신 이런저런 세상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말씀 끝에 ‘내 오로지 이 좌우명으로 살았다.’라고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들려주신 덕담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령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살아 가난하게 되긴 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의 그 덕담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 이후로 ‘요령과 정도’는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저희에게 해주신 금과옥조 같은 덕담까지 받으신 겁니다. 그것은 금전적으로는 도무지 계산을 할 수 없는, 할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저희 손주들에게 주신 너무나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그때, 맏이가 털어놓는 그 말을 찍소리도 못하고 다 들어야 했다.
그 끝에, 내 이렇게 한 마디 밖에 못했다.
“그래 맞다. 맞다.”
그 좌우명으로, 그 어떤 부딪침도 맏이가 잘 감당해가리라 내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