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말에 종교개혁기념일을 기해 "한국교회신보"에 기고한 소고입니다.
형편상 각주는 생략되었음을 양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루터의 종교개혁일은 1517년 10월 31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요 교단들은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M. 루터
- 루터의 음악관과 그의 음악적 공헌 -
Ⅰ. 연구의 동기와 목적
대개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루터에 대해서 종교개혁자로만 들었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음악, 특히 교회음악을 전공한 사람들과 목회자들은 루터가 종교개혁자임과 함께 훌륭한 음악가이었음을 기억하고 그의 음악관과 찬송관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음악적으로 많은 훌륭한 공헌을 했고 개신교 찬송에 결정적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Luther음악을 발전시킨 음악가가 100년 뒤에 난 Heinrich Schutz였고, 또 Luther음악을 완성시킨 음악가가 Luther보다 200여년 후에 태어난 J. S. Bach임을 안다면 루터가 음악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다시말하면 Luther없이 Heinrich Schutz를 생각할 수 없고, Luther없이 J. S. Bach를 생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음악적 기초를 이룩한 이가 바로 Luther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루터를 단순히 종교개혁자로만 알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적 안목과 업적을 기억하고 현재 우리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루터의 음악관과 그의 음악적 공헌
Martin Luther는 1483년 11월 10일에 독일 Eisleben에서 태어나서 1546년 2월 18일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그의 생을 마친 종교개혁가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신학자, 철학자, 독문학자 등으로 일컫고 있으나, 교회음악가, 교회음악 교육자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Luther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교회음악가이고, 교회음악 교육가였다.
루터는 예배가 구속받은 무리인 회중(교회) 전체가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카톨릭 교회에서 사용해오던 라틴어를 안쓰고 모든 예배 순서를 독일어로 진행하였으며, 코랄을 새로이 만들어 예배시간에 회중찬송으로 다함께 부르도록 하였다.(루터의 독일코랄은 그 곡조형식이 독일민요 형식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좋은 전통은 그대로 계승하기로 하며 또 좋은 음악이 예배에 사용될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라고 루터는 믿고 있었다. 또 성가대가 예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관임을 강조, 회중찬송과 모든 예전을 인도하며 예배를 풍요롭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음악을 사랑하여, 류우트(lute)와 플룻(flute) 같은 악기들을 다룰 줄 알았을 뿐 아니라, 플랜더스 및 독일 출신 작곡가들의 노래 및 가끔 자기가 작곡한 노래들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또 대중예배의 회중찬양을 위하여 찬송가들을 작사하기도 하였으니,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종교개혁을 위한 행진곡이라 불리웠던 "내 주는 강한 성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이다.
루터는 로마교회의 것 가운데서 고칠 것은 고치고 괜찮은 것은 놔둔다는 입장이었다. 찬송도 로마교회 라틴찬송을 일부 인정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창작찬송의 도입을 통하여 예배가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니게 되었다.
1. 루터의 음악관(찬송관)
(1) 음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Die Musik ist das beste Geschenk Gottes).
평소에 루터는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며 나로 하여금 설교를 즐거움으로 하게 하였으며 더 잘 깨우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음악은 마귀를 물리치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며, 분노의 물결과 거만 등을 물리쳐 준다. 나는 신학 다음으로 음악을 손꼽으며 최고의 존경을 돌린다. 비록 내가 가진 음악의 상식이 보잘 것 없이 적은 것이기는 하나 나는 세상의 무엇하고도 바꾸지 않으려 한다."라고 하였다. 루터는 들려지는 방식으로써 음악은 말씀과 닮았다고 하였으며, 믿음도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롬10:27) 하나님 말씀과 같이 음악도 귀히 여겼다.
(2) 음악으로 단지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찬송치 말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신구약 모두 합해서 약 400회나 나오는 "찬송"이라는 단어가 전부 그 전후에 "하나님을", "하나님께", "여호와를", "여호와께" 등의 말이 꼭 붙어있다. 이것은 찬송의 대상이 하나님 밖에는 없고, 또 찬송을 들으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심을 강조하는 말씀들이다.
(3) 음표가 가사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든다.
곡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창조된 좋은 선물의 하나로써 음악은 힘을 가진다. 복음의 진보적 역할 뿐 아니라, 사탄의 악의 설계를 실패케 한다. 선을 위한 음악의 힘과 악을 대적하는 음악의 힘, 그리고 선을 장려하고 악을 대적하는 성령의 힘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4) 모든 성도들은 모국어(Muttersprache)로 찬송을 불러야 한다.
루터는 "가사와 음표, 악센트, 부르는 방식 등이 모국어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흉내내는 원숭이와 같다"고 했다.
당시의 찬송에는 라틴어로 가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육의 정도가 열악한 평민들은 라틴어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루터는 많은 라틴어 노래들을 독일어로 번역했으며, 독일어로 된 찬송과 노래들을 지었다.
(5) 찬송은 믿음의 표상이다.
루터에 있어서 크리스챤의 찬송의 결여는 곧 믿음의 결여를 나타낸다. 복음을 순수하게 믿는 자는 그것에 대해 침묵할 수 없으며, 기쁘고 즐겁게 노래하고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6) 음악은 성령의 도구이다.
음악은 깊은 인간 내면에 있는 것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능력으로 인해 음악은 인간이 말씀의 부름에 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하여 음악은 신앙을 불러일으킨다. 성령은 이 고귀한 예술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와 같은 루터의 음악관과 교회음악관을 평하여 미국의 음악학자 U. Leupold는 "루터의 찬송가의 목적은 종교적인 기분을 위한 것이 아니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며, 단순히 인간의 감정 표현이 아닌 신앙고백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2. 루터의 음악적 공헌
(1) 개신교 찬송가의 창시자이다.
"以信稱義"와 "萬人祭司長論"을 주장하여 로마 카톨릭의 교리적 전통을 파괴한 루터는 교회음악에서도 역시 교황의 권세로부터 벗어나 성도들 개개인이 하나님과 직접 영교하면서 자유롭게 찬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회중찬송으로, 개신교의 기초가 되고 있고 일반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통제와 규제를 벗어난 자발적이며 민주적인 기반이 된 것이다.
(2) 자국어 찬송을 확립했다.
루터는 라틴어를 학문적으로 중요시하고 예배에서 역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지만, 성도들을 위해서는 자국어의 사용을 염원했다. 그는 라틴어 찬송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어 찬송과 노래를 만들어 이를 사제들의 손에서 일반 성도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3) 학교의 음악교과 과정에 최초로 "찬송"을 넣었다.
루터는 학교의 음악교과 과정에 최초로 "찬송"을 넣은 교회음악 교육자이다. 왜냐하면 주일예배 시 드리는 찬송을 연습키 위해서였다. 당시 교회와 학교는 불가분리의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것이 독일의 실정이었다. 매 금요일 오후에는 주일날 불려질 찬송가를 학교에서 배우고 연습해야만 한다.
(4) 코랄의 기초를 확립했다.
루터가 교회음악에 공헌한 바는 무엇보다도 Chorale이라 할 수 있다. Chorale의 재료는 주로 다음 4가지 근원에서 비롯되었는데 첫째가 공인된 라틴어 찬송가, 라틴 Sequence에서 나온 곡과 가사 그리고 plain song이고 둘째가 종교개혁 이전의 대중적 찬송가, 민요, 셋째가 세속적 노래의 멜로디, 넷째가 예배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멜로디 등이다.
루터의 Choral은 기존 선율을 모방할 뿐 아니라 뛰어난 통찰력과 기교성으로 이들 선율을 바꾸어 만들어서 새로운 목적에 부합시키려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Choral을 일반 신도들에게 불리우게 하려는데 뜻이 있었으므로, 가능한 한 단순하고 쉽사리 친근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보잘 것 없거나 값싼 통속적인 취미나, 무미건조한 공허성을 없애고, 당당한 종교적 성격을 칭찬할 만하게 유지시킨 것이었다.
(5) 독창적 이오니아 선법을 사용했다.
그는 당시의 Meistersinger의 음악적 전통을 채택하고 확대하여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혁신가였다.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진보적인 음악 이론에까지 손을 대어, 중세의 8개의 교회선법을 12개로 확대하는 것을 통해 오늘날의 장조와 단조의 조성(Tonality)을 낳게 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루터는 그의 가장 독창적인 찬송에 Ionia선법과 Hypoionia선법을 사용하였다.
루터는 옛날 선율들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들을 철저히 변형시켜 의도하는 이상에 적합하도록 재조화 시켰다.
(6) 시편창을 시편가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루터는 John Huss의 영향을 받아 시편창을 시편가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Ⅲ.다른 개혁가들의 예배와 음악에 대한 주장과 견해
1. 쯔빙글리(Ulrich Zwingli:1484-1531)
쯔빙글리는 예배의 개혁에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성경 연구 방법은 보다 합리적이었고, 예배에서는 한층 더 단순성과 윤리적 실제성을 추구하였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물질을 통해 지나치게 인간의 감각에 호소하는 것을 열등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재현이나 성상의 사용을 반대하여, 루터 계열의 예배의 형태와 내용과는 완전히 달리하였다. 쯔빙글리의 미사의 개조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루터와는 달리 그는 미사를 예배의 규범으로 간주하지 아니하였다.
쯔빙글리의 최대 목표는 성경적 신앙과 생활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의 구체적인 보장 없는 일체의 관습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성가대의 찬양, 시편을 제외한 회중들의 찬송, 오르간 음악, 기타 성경에 의해 명시되지 않은 모든 예배 수단을 제거했다. 쯔빙글리는 이와 같은 우상들과 오르간들의 제거야말로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사물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승리라는 매우 청교도적 관념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쯔빙글리가 음악을 혐오했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그는 예술을 매우 즐겼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작사와 작곡도 하였다.
쯔빙글리의 음악적 재능에 관한 배경을 보자면 먼저 그의 교육받은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가 열살 때에 바젤(Basel)의 성 데오도르(St. Theodore) 학교의 그레고르 뵌즐리에게서 3년간 라틴어, 변증법 등과 함께 음악도 공부하였고, 열 세살 되던 해 베른(Bern)으로 전학하여, 2년간(1496-1498) 공부하였는데, 이곳에서 르네상스 식의 인문주의적 교육 이상을 전적으로 추종하던 인물인 하인리히 뵐프린에게서 고전에 대한 사랑과 음악의 즐거움을 배웠다. 그 후 비엔나에서 2년간(1500-1502) 머무는 동안 더욱 깊이 고전에 관한 지식을 쌓았으며, 음악에도 조예를 깊이 하여 류트(lute), 하아프, 비올(viol), 리드 파이프(reed pipe), 코르넷(cornet) 등의 악기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후에 스위스의 음악 분야에서 지도적 인문주의자의 위치를 차지한 하인리히 글라레아누스(Heinlich Glareanus)와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쯔빙글리는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 가장 음악적인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 예배에서의 음악 사용을 가장 반대한 사람이기도 하였다.그 당시의 카톨릭 교회에서 행해지던 음악은 참된 경배의 정신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거의 성가대만의 점유물이었다. 그리하여 쯔빙글리는 그러한 음악이 평신도 예배 사상에 위반되는 것으로 판단 내렸던 것이다.
2. 칼빈
칼빈은 예배의 중심을 설교와 성례전에 두었고, 예배를 훈련된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찬송과 순종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연합된 행위라고 생각했다.
음악에 대하여는 로마교회의 음악을 철저히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고, 모든 면에서 로마교회의 것을 버렸다. 따라서 칼빈에게는 새로운 찬송이 필요했다. 새로운 찬송의 전형을 초대교회에서 찾던 칼빈은 "인간의 창작찬송은 완전할 수는 없다. 완전한 찬송을 부르려면 성경을 노래해야 하고 그 중에 제일은 시편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서에 기초한 민요풍의 단순한 시편가를 예배에서 무반주로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기악음악과 창작찬송 그리고 다성음악은 철저히 배격하였다. 그러나 그의 본뜻은 음악이 남용되는 것을 제지했을 뿐이지 오르간을 부순 것처럼 음악 자체를 제거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칼빈의 "하나님 주권사상"을 뚜렷이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그의 신학에 의해 생겨난 장로교가 가장 민주적인 교회조직을 갖추었고, 제네바에 있는 칼빈교회에 현재, 훌륭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고, 칼빈의 개혁신학을 신봉하는 많은 교회들이 오늘날 교회음악의 진가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Ⅳ. 결론 및 제언
M. 루터는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음악으로 하나님만을 찬송해야 하고, 음표가 가사에 생명력을 더하며, 모든 성도들은 모국어로 찬송해야 하고, 찬송은 믿음의 표상이며, 음악은 성령의 도구라는 음악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루터의 음악적 공헌으로는 개신교 찬송의 창시자라는 것과 자국어 찬송의 확립, 학교에서의 찬송교육, 코랄의 기초 확립, 독창적 이오니아 선법의 사용, 시편창을 시편가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것 등이 있다.
어제 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고, 방만한 오늘로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단순한 말이지만, 그 시대를 반영하는 음악과 또 이 음악의 발전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음악이 뿌리가 되어 현재의 음악적 기틀이 되었고, 현재의 음악이 모토가 되어 미래의 음악이 재창조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 시대의 음악가들 모두가 발전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루터와 같이 음악의 목적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개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소유하여야 하겠다.
* 위의 글에 나타난 음악가 "Heinrich Schutz"의 철자 "u" 위에 독일어에 나타나는 움라우트가 있습니다.
첫댓글 실장님! '제일성도교회'입니다.
죄송합니다...좋은글 함께 할 수 있도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