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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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2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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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역(失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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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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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보명보살회(普明菩薩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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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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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도 만 6천 명이 있었으니, 그들 모두는 불퇴전[阿惟越致]보살로서 모든 불국토에서 모여왔으며 모두가 다 한 생이 지나면 최상의 바르고 참된 큰 도[無上正眞大道]를 이룰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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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대가섭(大迦葉)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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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에게는 지혜에서 물러나거나 잃게 되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사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받은 깊은 법을 숨기면서 다 말하지 않고, 법을 좋아하는 이에게 훼방을 부리는 것이며 모든 인연을 설명하면서 그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요, 교만하여 자기만 높은 체하고 다른 사람은 낮춰보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지혜에서 물러나거나 잃게 되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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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 큰 지혜를 얻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언제나 법을 존중하고 법사를 공경하는 것이요, 들었던 법 그대로를 깨끗한 마음으로 널리 사람들에게 연설하면서 온갖 이름이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며 많이 듣는 것으로부터 지혜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부지런히 구하면서 게으르지 않음이 마치 머리를 태우는 불을 끄듯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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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요 경을 들으면 외우고 지니면서 말씀대로 행하기를 좋아하며 말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큰 지혜를 얻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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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보리심을 잃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스승과 어른을 속인 뒤에 경법(經法)을 받으면서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의심하거나 뉘우침이 없을 곳인데도 다른 이로 하여금 의심하고 뉘우치게 하는 것이며, 대승(大乘)을 구하는 이를 욕하고 비방하면서 그의 이름을 나쁘게 퍼뜨리는 것이요, 아첨과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보리의 마음을 앓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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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태어날 때마다 보리심을 잃지 않고 나아가 도량(道場)이 저절로 앞에 나타나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목숨을 잃게 될 인연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거늘 하물며 실없이 웃는 것이겠느냐. 항상 정직한 마음으로 남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모든 아첨이나 바르지 못한 마음을 여의는 것이요, 모든 보살들에게 세존이라는 생각을 내면서 사방에 그의 이름을 칭송하는 것이며, 스스로 모든 소승의 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교화할 중생을 모두 다 최상의 보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태어날 때마다 보리심을 잃지 않고 나아가 도량이 저절로 앞에 나타나게 되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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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생긴 착한 법이 없어져 더욱 자라지 않게 되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교만한 마음으로 순세파 외도[路伽耶:順世外道]의 경을 읽고 외우고 닦아 배우는 것이요, 이익을 탐내는 마음으로 모든 보시하는 이[檀越]에게 나아가는 것이며 보살을 미워하고 헐뜯는 것이요 아직 듣지 못했던 경은 거역하면서 믿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생긴 착한 법이 사라져 더욱 자라지 않게 되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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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생긴 착한 법이 더욱 자라면서 없어지지 않게 되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삿된 법을 버리고 바른 경전과 6바라밀과 보살의 법장(法藏)을 구하며 마음에 교만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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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들에게 겸손하면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요, 법대로 보시를 얻으면서 분량을 알고 만족할 줄 알며, 모든 삿된 생활을 여의면서 성인의 성품[聖鐘]에 편히 머무르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죄과를 들추어내지 않고 거짓이거나 진실이거나 간에 남의 단점을 구하지 않는 것이요, 만일 모든 법을 마음에서 통달하지 못했으면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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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법은 한량없으므로 대중이 원하는 대로 베풀어 할 것이요 오직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요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부처님을 증명으로 삼아 거역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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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생긴 착한 법이 더욱 자라면서 없어지지 않게 되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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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바르지 못한 마음이 있나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바르지 못한 마음이라 하는가 하면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마음에 의혹과 뉘우침을 내는 것이요, 모든 중생에게 교만하면서 성을 내는 것이며, 다른 이의 이익에 질투하는 것이요, 보살을 꾸짖고 욕하면서 그 이름을 나쁘게 퍼뜨리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바르지 못한 마음이니, 멀리 여의어야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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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정직한 마음의 모양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정직한 마음의 모양이라 하는가 하면 범한 여러 가지 죄는 끝내 감추어 두지 않고 다른 이 앞에서 들추어내며 마음에 번뇌가 없는 것이요, 설령 나라와 생명과 재물의 이익을 잃게 되는 이러한 급한 일이라 하여도 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 밖의 온갖 나쁜 일도 말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고 꾸짖고 욕하고 헐뜯고 때리고 속박하는 갖가지 상해로 고통을 받을 때에는 다만 스스로의 허물임을 책망할 뿐이요, 자신의 업보에 의한 것이므로 남에게 성을 내거나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믿음으로 편히 머무르는 것이요, 만일 매우 깊고 믿기 어려운 부처님의 법을 듣게 되면 스스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서 모두 받아 지니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지닐 네 가지 정직한 마음의 모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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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잘못된 모양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잘못된 모양이라 하는가 하면 경전을 읽고 외우면서 쓸모 없는 이론을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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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요, 스승과 어른에게 순종하지도 않고 공경하지도 않는 것이며,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남의 공양을 잃게 하고 스스로 본래의 서원을 어기면서 믿음 있는 보시[信施]를 받는 것이요, 착한 보살을 보고는 업신여기면서 공경하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있는 네 가지 잘못된 모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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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잘 따르는 모양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잘 따르는 모양이라 하는가 하면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경을 들으면 곧 믿고 받아 말씀한 대로 수행하고 법(法)에 의지하면서 언설(言說)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그 뜻을 잘 알고 쉽게 말해주며 하는 일이 모두 착한 것이며 스승의 뜻을 잃지 않고 계율과 선정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마음을 잘 다스려 공양을 받는 것이요 착한 보살을 보면 공경하고 좋아하며 착한 사람을 따라서 그 덕행(德行)을 본받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있는 네 가지 잘 따르는 모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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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착오(錯誤)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착오라 하는가 하면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 그와 뜻을 같이 하니 그것이 바로 보살의 착오요, 받아들일 수 없는 중생에게 매우 깊은 법을 말하니 그것이 바로 보살의 착오며, 대승을 좋아하는 이에게 소승을 찬탄하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착오요, 보시를 행할 때에 다만 계율을 지닌 이에게 베풀고 착한 이만 공양할 뿐 나쁜 사람에게는 베풀지 않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착오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착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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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바른 길[正道]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바른 길이라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들에게 그 마음이 평등한 것이요, 널리 중생을 교화하기를 평등하게 부처님의 지혜로써 하는 것이며, 모든 중생들에게 평등하게 설법하는 것이요,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똑같이 바른 행[正行]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지닐 네 가지 바른 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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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선지식(善知識)이 아닌 사람과 네 가지 착한 벗이 아닌 사람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성문(聲聞)을 구하면서 다만 자기 이익만을 바라는 사람이요, 연각(緣覺)을 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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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일만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람이며, 외도의 경전 로가야비(路伽耶毘)를 읽으면서 화려한 말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요, 다만 세간의 이익만을 더하고 법의 이익을 늘리지 않는 사람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있는 네 가지 선지식이 아니며 착한 벗도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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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의 선지식이면서 네 가지의 착한 벗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와서 구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선지식이니 부처님 도(道)의 인연(因緣)이기 때문이요, 설법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식이니 지혜를 생기게 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을 출가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식이니 착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세존이 바로 선지식이나, 모든 불법을 더욱 자라게 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선지식이면서 네 가지 착한 벗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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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보살이 아니면서도 보살인 체하는 네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이익을 탐내고 구하면서 법은 구하지 않는 것이요, 명예를 탐내고 구하면서 복덕은 구하지 않는 이며, 자신의 쾌락만을 탐내고 구하면서 중생을 구하지 않는 이요, 괴로움을 없애는 법으로써 무리들을 모으기만 하고 멀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아니면서도 보살인 체하는 네 가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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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종류의 진실한 보살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종류라 하는가 하면 공을 믿고 이해하면서 역시 업보를 믿는 이요, 모든 법에 나가 없음을 알고 중생들에 대해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이며, 깊이 열반을 알고 중생들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이며, 깊이 열반을 좋아하면서 나고 죽음을 함께 하는 이요 짓고 행하는 보시는 모두 중생을 위할 뿐 그 과보를 구하지 않는 이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네 가지 진실한 보살의 복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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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큰 광[藏]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큰 광이라 하는가. 어떤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요, 6바라밀과 그 이치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며, 장애 없는 마음으로 설법하는 이를 보는 것이요, 집착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게으름이 없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있는 네 가지 큰 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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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악마의 일[魔事]을 뛰어넘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가 법이라 하는가 하면 항상 보리의 마음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 것이요, 모든 중생들에게 성을 내거나 방해함이 없는 것이며, 모든 지견(知見)을 깨닫는 것이요, 마음에 온갖 중생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악마의 일을 뛰어넘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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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모든 선근을 포섭하는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바르지 못한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아첨과 바르지 못한 마음을 여의는 것이요 모든 중생 가운데서 4섭법(攝法)을 행하면서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법을 구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요 모든 선근을 닦으면서 마음으로 싫증내거나 만족함이 없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모든 선근을 거두는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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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에게는 네 가지 한량없는 복덕의 장엄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깨끗한 마음으로 법 보시[法施]를 행하는 것이요,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모든 중생들 가운데서 보리심을 전파하고 찬탄하는 것이요, 모든 낮고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서 인욕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에게 있는 네 가지 한량없는 복덕의 장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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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이라 함은 다만 이름만으로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니요 착한 법을 능히 행하고 평등한 마음을 행하여야 보살이라 하는 것이니라. 간략하게 말하면 서른두 가지 법을 성취해야 보살이라 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서른 두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항상 중생을 위하여 깊이 안락함을 구하는 것이요, 모두를 일체지(一切智)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지혜를 증오하지 않는 것이요, 교만을 깨뜨리고 부처님의 도를 깊이 좋아하는 것이며,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거짓이 없고 끝까지 서로가 친하여 사이가 두터운 것이요, 원수나 착한 이에게 그 마음이 동등해 열반까지에 이르는 것이며, 말할 때는 항상 웃음을 머금고 먼저 문안하며 인사하는 것이요, 하던 일은 끝내 그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 것이며, 널리 중생을 위하여 평등하게 대비(大悲)를 행하는 것이며, 마음이 고달파 함이 없으면서 많이 듣고 싫증냄이 없는 것이니라. 자기 자신의 허물을 구하면서 다른 이의 단점을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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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것이요, 보리심으로 모든 위의(威儀)를 행하는 것이며, 행한 보시에서 그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요, 태어난 곳에 의거하지 않고서 계율을 행하는 것이며 모든 중생 가운데서 걸림 없는 인욕을 행하는 것이요 모든 선근을 닦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것이며 생멸을 여의고 색욕이 없으면서[離生無色] 선정을 일으키는 것이요 방편의 지혜를 행하는 것이며 4섭법(攝法)에 따르는 것이요 착하거나 나쁜 중생 모두에게 마음이 인자하면서 두려워함이 없는 것이니라. 일심으로 법을 들으면서 마음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마음이 세간의 많은 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소승을 탐내지 않는 것이요, 대승 가운데서 항상 큰 이익을 보는 것이며 나쁜 벗을 여의는 것이요, 착한 벗을 가까이 하는 것이며, 네 가지 청정한 행[梵行]을 성취하는 것이요, 다섯 가지 신통에 유희하는 것이며 항상 진실한 지혜에 의지하는 것이요, 모든 중생들의 삿된 행이거나 바른 행이거나 간에 다 같이 버리지 않는 것이며, 말은 항상 분명하여 진실한 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요, 모든 일에서는 보리를 으뜸으로 삼는 것이니라. 이와 같아서, 가섭아, 만일 사람에게 이 서른 두 가지 법이 있으면 보살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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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보살의 복덕은 한량없고 그지없나니, 비유의 인연으로써 알아야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모든 대지(大地)를 대중들이 이용하지만 분별하는 마음도 없고 그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처음 발심 중생들이 모두 이익을 받고 있는데도 마음이 분별함도 없고 그 과보를 구하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물은 모든 곡식과 약나무를 더욱 자라게 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자기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자비로 모든 중생을 덮어주면서 모든 착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불은 모든 곡식과 과실을 성숙시키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착한 법을 성숙시키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온갖 바람은 모든 세계를 성립시키는 것처럼, 보살의 방편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 법을 성립시키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달이 처음 생겨날 때에 광명과 형색이 날마다 차츰차츰 자라는 것처럼 보살의 청정한 마음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온갖 착한 법이 날마다 차츰차츰 자라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해가 처음 떠오르면 일시에 광명을 놓으면서 두루 온갖 중생을 밝게 비추는 것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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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지혜의 광명을 놓으면서 일시에 온갖 중생을 두루 비추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사자는 짐승의 왕이어서 가는 데마다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고 지혜가 진실한지라 머무르는 데마다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잘 길들인 코끼리는 큰 일을 능히 해내면서도 몸이 고달프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마음이 잘 조복되었기 때문에 중생들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으면서도 마음에 고달픔이 없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모든 연꽃은 물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세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간 법에 물들지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나무를 베었다 하더라도 뿌리가 있으면 도로 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방편의 힘 때문에 비록 번뇌[結使]를 끊었다 하더라도 선근의 사랑이 있는지라 삼계에 도로 태어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모든 지방에서 흐르는 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면 모두가 한 맛이 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갖가지 문으로 모든 선근을 쌓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므로 모두가 한 맛이 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수미산왕은 도리천(忉利天)의 모든 하늘과 사천왕(四天王)이 모두 의지하여 머무는 것처럼, 보살의 보리심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일체지[薩婆若]가 의지하여 머무르는 곳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큰 나라의 왕이 신하의 힘 때문에 나라의 일을 잘 이룩하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도 역시 그러하여 방편의 힘 때문에 모든 불사(佛事)를 이룩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하늘이 청명할 때 깨끗하여 구름이 없으므로 비가 올 조짐은 없는 것처럼, 견문이 적은 보살에게 법 비를 내릴 조짐이 없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하늘에 구름이 끼었을 때에는 반드시 비가 내려서 중생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대비(大悲)의 구름으로부터 큰 법의 비를 일으켜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전륜왕(轉輪王)이 출현하는 곳마다 7보(寶)가 있는 것처럼 가섭아, 그와 같아서 보살이 나올 때에는 서른 일곱 가지 품(品)이 세간에 나오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니주(摩尼珠)가 있는 곳마다 한량없는 금·은 등의 값진 보배가 있게 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출현 할 때마다 한량없는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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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성문과 벽지불의 보배가 있게 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은 똑같은 동산에 들어가서 쓰는 물건도 모두가 똑같은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 때문에 중생들 가운데서 평등하게 교화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주술(呪術)과 약의 힘이 지닌 독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번뇌[結]의 독도 역시 그와 같아서 지혜의 힘 때문에 나쁜 길[惡道]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모든 큰 성(城) 안에 버려져 있는 더러운 분뇨를 사탕수수 밭이나 포도 밭 안에 넣어 주면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살의 번뇌[結使]도 역시 그와 같아서 남아있는 번뇌는 모두가 이익이 되나니, 일체지[薩婆若]의 인연이 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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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보살로서 이 『보적경(寶積經)』을 배우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모든 법을 바르게 관[正觀]하기를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르게 관한다 하는가 하면 이른바 진실하게 모든 법을 사유(思惟)하는 것이니라. 진실하고 바르게 관한다 함은 나와 사람과 중생과 수명을 관찰하지 않나니, 이것을 중도(中道)의 진실하고 바른 관[眞實正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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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진실한 관[眞實觀]이라 함은 물질[色]은 항상 있는 것[常]도 아니고 덧없는 것[無常]도 아니라고 관찰하며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도 역시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덧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나니, 이것을 중도의 진실하고 바른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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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진실한 관이라 함은 땅은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덧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며 물·불·바람도 역시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덧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나니, 이것을 중도의 진실하고 바른 관이라 하느니라. 그 까닭은 항상 있다[常]는 것도 이는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이요 덧없다[無常]는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이기 때문이니라. 항상 있고 덧없는 것 가운데는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밝음[明]도 없고 앎[知]도 없나니, 이것을 중도로서의 모든 법의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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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我] 이것도 한쪽의 치우친 소견이요, 나 없음[無我]의 이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이어서, 나와 나 없음의 이 가운데에는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밝음도 없고 알음도 없는 것이니, 이것을 중도로서의 모든 법의 진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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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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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마음이 진실이라는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이요, 마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이어서, 만일 심식(心識)이 없으면 역시 심수(心數)의 법도 없는 것이니, 이것을 중도로서의 모든 법의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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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 세간의 법과 출세간법[出世法], 죄가 있는 법과 죄가 없는 법, 번뇌[漏] 있는 법과 번뇌가 없는 법, 함[爲]이 있는 법과 함이 없는 법, 나아가 때[垢]가 있는 법과 때가 없는 법도 역시 그와 같아서 두 쪽의 치우친 소견을 여의면서 받을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나니, 이것을 중도로서의 모든 법의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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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있다는 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이어서 있고 없고 하는 중간에는 빛깔도 없고 알음도 없나니, 이것을 중도로서의 모든 법의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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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내가 말한 12인연(因緣)에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에 반연하고, 지어감은 의식[識]에 반연하며, 의식은 정신과 물질[名色]에 반연하고, 정신과 물질은 여섯 감관[六入]에 반연하며, 여섯 감관은 접촉[觸]에 반연하고, 접촉은 느낌[受]에 반연하며, 느낌은 욕망[愛]에 반연하고, 욕망은 취함[取]에 반연하며, 취함은 존재[有]에 반연하고, 존재는 태어남[生]에 반연하며, 태어남은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老死憂悲苦惱]에 반연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인연은 다만 큰 고통의 더미[大苦聚]만을 쌓고 이루게 되느니라. 만일 무명이 사라지면 지어감도 사라지고, 지어감이 사라지면 의식도 사라지며, 의식이 사라지면 사람과 물질도 사라지고,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면 여섯 감관도 사라지며, 여섯 괌관이 사라지면 접촉도 사라지고, 접촉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지며, 느낌이 사라지면 욕망도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지면 취함도 사라지며, 취함이 사라지면 존재도 사라지고, 존재가 사라지면 태어남도 사라지며, 태어남이 사라지면 이와 같은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큰 고통이 모두 사라지느니라. 명(明)과 무명(無明)은 둘이 아니고 구별도 없나니,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을 중도로서의 모든 법의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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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아서, 지어감과 지어감이 아닌 것과, 의식과 의식되는 대상[所識]과, 정신과 물질로서 볼 수 있는 것과, 모든 여섯 감관과 여섯 가지 신통과 접촉과 접촉하는 대상[所解]과, 느낌과 느낌의 사라짐과, 욕망과 욕망의 사라짐과, 취함과 취함의 사라짐과, 존재와 존재의 사라짐과, 태어남과 태어나지 않음과, 늙어 죽음과 늙고 죽음의 사라짐 등의 이 모두는 둘이 아니고 구별도 없나니,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을 중도로서 모든 법의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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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진실한 관이라 함은 공하기 때문에 모든 법으로 하여금 공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법의 성품이 저절로 공할 뿐이며, 모양이 없기 때문에 법으로 하여금 모양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법이 저절로 모양이 없을 뿐이며, 바람[願]이 없기 때문에 법으로 하여금 바람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법이 저절로 바람이 없을 뿐이며, 일어남이 없고 생김이 없고 나가 없고 취함이 없고 성품이 없기 때문에 법으로 하여금 일어남이 없고 취함이 없고 성품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법이 저절로 일어남도 없고 취함도 없고 성품도 없을 뿐이니,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진실한 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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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하다 하는 것이 아니요 다만 공이 저절로 공할 뿐이니라. 과거도 공하고 미래도 공하며 현재도 공하나니, 마땅히 공에 의지해야 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 것이니라. 만일 공을 얻게 되어 곧 공에 의지한다면 이것은 부처님 법에서 물러나고 떨어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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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차라리 나라는 소견[我見]을 일으켜서 수미산만큼 쌓을지언정 공하다는 소견[空見]으로써 뛰어난 체[增上慢]하지 말지니라. 그 까닭은 모든 소견은 공으로써 해탈하게 되는데 만일 공하다는 소견을 일으키면 없앨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의사가 약을 주어서 병을 움직이게 할 때에 이 약이 속에 있으면서 나오지 않으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병든 사람이 과연 나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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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약이 나오지 않으면 그 병은 더욱 더할 것이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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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온갖 모든 견해는 오직 공으로만 없앨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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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데 만일 공하다는 소견을 일으킨다면 제거될 수가 없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을 두려워하여 슬피 부르짖고 가슴을 치면서 '나는 허공을 버리겠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허공이란 버리거나 여읠 수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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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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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공한 법을 두려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쳐 날뛰면서 정신을 잃은 이'라고 말할 것이니라. 그 까닭은 항상 허공 가운데 있으면서도 허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그림 그리는 사람이 제 손으로 야차귀(夜叉鬼)의 형상을 그려놓고 그것을 본 뒤에 두려워 기절을 하면서 땅으로 넘어지는 것과 같나니, 온갖 범부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자기 자신이 빛깔·소리·냄새·맛·접촉을 지었기 때문에 나고 죽음에 오가면서 모든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깨닫지 못하느니라. 마치 요술쟁이가 요술로 사람을 만들어 놓고서 도리어 자신이 잔인하게 없애는 것처럼, 도를 수행하는 비구도 역시 그와 같아서 어떤 관(觀)한 법이 모두 공하고 모두 고요하여 견고함이 없기 때문에 이 관도 역시 공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두 개의 나무를 서로 비벼대면 곧 불이 일어나 도리어 그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가섭아, 그와 같아서 진실한 관 때문에 성스런 지혜가 생기고 성스런 지혜가 생긴 뒤에는 도리어 그 진실한 관을 태우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등불을 켜면 온갖 어두움이 모두 저절로 없어져서 그 어두움은 어디서 온 데도 없고 가도 가는 데가 없어서 동쪽에서 온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역시 남쪽·서쪽·북쪽과 네 사이 방향과 위와 아래에 가 닿지도 않으며 저것으로부터 오지 않았고 간다 하여도 역시 가 닿지도 않은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이 등불은 '나는 어두움을 없애버렸다'라고 하는 생각도 없으며 다만 등불로 인하여 법에 저절로 어두움이 없어졌을 뿐이니, 밝음과 어두움은 다 같이 공하여서 짓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느니라. 그와 같아서 가섭아, 진실한 지혜가 생기면 무지(無智)는 이내 사라지는 것이니, 지혜와 무지의 이 두 가지 모양은 다 같이 공이어서 짓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방이 아직 광명을 본 일이 없었는데, 만일 등불을 밝히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어두움은 '나는 오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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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여기에 있었으므로 떠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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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등불을 켜게 되면 이 어두움은 세력이 없어져서 떠나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없어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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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백천만 겁 동안 오래도록 익힌 번뇌[結]와 업(業)도 하나의 진실한 관[實觀]으로써 이내 모두 소멸되는 것이니라. 그 등불이란 바로 성스런 지혜이며 그 어두움이란 바로 모든 번뇌와 업인 것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종자가 허공에서 나서 자라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처럼, 보살이 증득함을 취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부처님 법을 더욱 자라게 하는 데에 그런 경우는 끝내 없었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종자가 좋은 밭에 있으면 잘 나서 자라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모든 번뇌가 있어도 세간의 법을 여의어 부처님 법을 기르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고원 지대나 육지에서는 연꽃이 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함이 없는[無爲] 가운데서는 부처님 법은 생기지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낮고 축축한 진창 속에서 비로소 연꽃이 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나고 죽은 진창과 지옥에 떨어질[邪定聚] 중생들이 있는 데서 비로소 부처님 법이 생기게 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사방의 큰 바다에 생소(生蘇)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살의 유위(有爲)의 선근이 매우 많아서 한량없는 것이 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하나의 털을 백 개로 쪼갠 뒤에 그 쪼갠 한 개의 털로 바닷물을 한 방울 적신 것과 같아서 온갖 성문(聲聞)의 유위의 선근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작은 겨자씨의 구멍에 나 있는 허공과 같아서 모든 성문의 유위의 지혜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시방의 허공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것처럼 보살의 유위의 지혜가 매우 많고 그 힘이 한량없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찰리 대왕(刹利大王)의 대부인(大夫人)이 가난하고 천한 이가 통(通)하여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았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왕자라고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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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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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나의 성문 대중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같이 증득하여 법 성품으로써 났다 하더라도 여래의 진실한 불자(佛子)라 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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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찰리 대왕과 심부름하는 이와 통하여 아이를 밴 뒤에 아들을 낳았다면 비록 하천한 성씨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왕자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처음 발심한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아직 복덕과 지혜를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나고 죽음에 오가면서 그의 힘에 따라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므로 이것은 여래의 진실한 불자라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전륜성왕에게 천 명의 아들이 있지만 아직 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이가 한 사람도 없다면 성왕은 그들에게 아들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처럼, 여래도 역시 그러하여 비록 백천만억의 성문 권속들이 둘러싸고 있다손 치더라도 보살이 없으면 여래는 그들에게 제자라는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전륜성왕의 대부인이 아이를 밴 지 7일이 되어 이 아들이 전륜왕의 모습을 갖추게 되면 모든 하늘들이 존중하게 되고 그 밖의 모든 아들들이 갖춘 몸과 힘보다 뛰어나게 되나니, 그 까닭은 이 태 안의 왕자는 반드시 높은 자리를 이어받고 성왕의 종성을 잇게 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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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처음 발심한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아직 모든 보살의 근본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마치 태 안의 왕자를 모든 하늘 신과 왕들이 깊은 마음으로 존중하듯이 8해탈(解脫)을 얻은 큰 아라한들보다 뛰어나느니라. 그 까닭은 이러한 보살은 높은 자리를 이어받고 부처님의 성품을 끊지 않는 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한 유리주(琉璃珠)는 수정(水精)보다 수미산만큼 더 뛰어난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처음 발심할 때에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 모두가 예배하고 공경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달이 처음 생길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하고 공겸함이 둥근 달보다도 더한 것처럼, 가섭아, 나의 말을 믿는 사람은 보살을 사랑하고 공경함이 여래보다 더할 것이니라. 그 까닭은 모든 보살로 인하여 여래가 나오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달을 버리고서 별을 섬기고 예배하니 지혜 있는 이는 그렇지 않아서 끝내 보살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거늘 수행하는 이로서 성문을 예배하고 공경하겠느냐. 가섭아, 비유하면 모든 천상이나 인간의 세간에서는 거짓 구슬[僞珠]을 잘 다듬더라도 유리(琉璃)의 보배구슬이 되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성문을 구하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계율을 지녀 선정을 성취하더라도 끝내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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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앉아 위없는 도는 이룰 수 없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유리주를 다듬어 백천의 한량없는 성문과 벽지불의 보배를 나오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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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 다시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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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언제나 중생들의 이익을 구해야 하고 또 온갖 복덕과 선근을 바르게 닦아 익히면서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주며, 얻게 된 지혜 약[智藥]으로 시방에 두루 이르러 중생을 치료하여 모두 완전히 낫게 하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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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완전히 낫게 하는 지혜 약이라 하는가. 부정관(不淨觀)으로 탐욕과 음행을 다스리고 자심관(慈心觀)으로 성냄을 다스리며 인연관(因緣觀)으로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행공관(行空觀)으로 모든 허망한 소견을 다스리며 무상관(無相觀)으로 모든 기억과 분별과 반연하는 생각을 다스리고 무원관(無願觀)으로 온갖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소원을 다스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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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뒤바뀜이 아닌 것으로 온갖 뒤바뀜[顚倒]을 다스리는 것이니, 모든 유위(有爲)는 모두 다 덧없다는 것으로, 덧없는 가운데 있으면서 항상하다고 헤아리는 뒤바뀜을 다스리고, 유위의 고통으로, 모든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즐겁다고 헤아리는 뒤바뀜을 다스리며, 나[我]가 없는 법으로, 나 없는 가운데 있으면서 나라고 헤아리는 뒤바뀜을 다스리고, 열반의 고요함으로, 청정하지 않은 것 가운데 있으면서 청정하다고 헤아리는 뒤바뀜을 다스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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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념처(念處)로써 모든 의지하고 기대는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을 다스리는 것이니라. 수행하는 이가 몸을 관찰해서 몸의 모습을 따라[順身相觀]하여 나라는 소견[我見]에 떨어지지 않고 느낌의 모습을 따라[順受相觀]하여 나라는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며 마음의 모습을 따라 관[順心相觀]하여 나라는 소견으로 나라는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법의 모습을 따라[順法相觀]하여 나라는 소견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 4념처로써 온갖 몸·느낌·마음·법을 싫어하면서 열반의 문을 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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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근(正勤)으로 이미 생긴 착하지 않는 법은 잘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하지 않은 법은 일어나지 않게 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모두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더욱더 자라게 하는 것이니, 요약하면 온갖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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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착하지 않은 법은 끊어 없애면서 온갖 모든 착한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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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의족(如意足)으로 몸과 마음의 번뇌[麤重]를 다스리면서 몸의 온갖 것을 무너뜨리고 뜻대로 되는 자재한 신통을 얻게 하는 것이요, 5근(根)으로써는 믿음이 없고 게으르고 기억을 잃고 마음이 어지럽고 지혜가 없는 중생을 다스리는 것이며, 5력(力)으로 모든 번뇌의 힘을 막는 것이요, 7각분(覺分)으로 모든 법 안의 의심하고 뉘우치고 잘못되는 것을 다스리는 것이며 8정도(正道)로써는 삿된 도[邪道]에 떨어진 모든 중생들을 다스리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이 보살이 병을 고치게 하는 지혜 약인 것이니, 보살은 항상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서 행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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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염부제(閻浮提) 안의 모든 의사 가운데서는 기역(耆域)의왕이 맨 첫째가는데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가 기역과 같다 하여도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 속에 있는 번뇌와 삿된 소견과 의심하고 뉘우치는 병에 쓰는 약을 묻는다면 오히려 대답할 수조차 없거늘 하물며 다스릴 수 있겠느냐. 보살은 그 가운데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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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내 세간의 약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마땅히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의 약을 구하고 익혀야 하며 또한 온갖 선근과 복덕을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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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보살이라야 지혜 약을 얻은 뒤에 시방에 두루 이르러서 마침내 온갖 중생을 치료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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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이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 약이라 하는가 하면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줄 알고, 모든 법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음을 믿으며 또한 중생과 수명이 없다는 지견(知見)으로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으며 나와 내 것이 없다고 믿고 이해하여 통달하면서 공하여 얻을 바 없는 데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부지런히 더욱 정진하면서 마음의 모양을 구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마음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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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마음인가, 탐내는 것인가, 성을 내는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았거나 지금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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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마음이 지나갔다면 곧 그것은 다하여 없어졌고 만일 마음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아직 생기지도 않았고 아직 이르지도 않았으며 만일 마음이 지금 있는 것이라면 머무르는 것이 없나니, 이 마음은 안도 아니요 바깥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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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요 또한 중간도 아니며 이 마음은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대상도 없고 인식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처소도 없느니라. 이러한 마음은 시방 3세의 온갖 모든 부처님도 이미 보지 못하였고 지금도 보지 못하며 장차도 보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모든 부처님께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있다 할 수 있겠느냐. 다만 뒤바뀐 생각 때문에 마음으로 모든 법의 갖가지 차별을 내는 것이니, 이 마음은 마치 요술과 같아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까닭에 갖가지 업(業)을 일으키고 갖가지 몸을 받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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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마음이 가는 것은 마치 바람과 같나니 잡을 수 없기 때문이요, 마음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나니 나고 없어지면서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등불의 불꽃과 같나니 뭇 인연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요, 이 마음은 마치 번개와 같나니 생각생각마다 소멸하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나니 번뇌[客塵]로 더럽혀지기 때문이요, 마음은 마치 원숭이와 같나니 여섯 가지 욕망[六欲]을 탐내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그림 그리는 이와 같나니 갖가지 업의 인연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 마음은 일정하지 않나니 갖가지 모든 번뇌를 따르기 때문이요, 마음은 마치 대왕(大王)과 같나니 온갖 법에서 뛰어난 주인이기 때문이며, 마음은 항상 혼자 가면서 둘이 없고 짝도 없나니 두 마음이 한때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요, 마음은 마치 원수와 같나니 모든 고뇌와 함께 하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미친 코끼리가 모든 흙으로 만든 집을 밟는 것과 같나니 모든 선근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니라. 마음은 마치 낚시를 무는 것과 같나니 괴로움 가운데서 즐겁다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요, 이 마음은 마치 꿈과 같나니 나 없는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쉬파리와 같나니 깨끗하지 못한 것 가운데서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요, 마음은 마치 나쁜 도둑과 같나니 갖가지로 몸에 고통을 주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나쁜 귀신과 같나니 사람의 틈[便]을 엿보기 때문이요, 마음은 항상 높고 낮고 하나니 탐욕과 성냄에 무너지기 때문이며, 마음은 마치 도적과 같나니 온갖 선근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니라. 마음은 항상 빛깔[色]을 탐내나니 마치 불나방이 불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고, 마음은 항상 소리[聲]를 탐내나니 마치 군사들이 오랫동안 행군(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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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하면서 좋은 북소리를 즐기는 것과 같으며, 마음은 항상 내음[香]을 탐내나니 마치 돼지가 깨끗하지 못한 곳에 누워 있으면서 좋아하는 것과 같고, 마음은 항상 맛[味]을 탐내나니 마치 어린 여인이 맛있는 음식에 집착한 것과 같으며, 마음은 항상 접촉[觸]을 탐내나니 마치 파리가 기름에 달라붙은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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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이 마음의 모양을 구한다 하여도 얻을 수 없느니라. 만일 얻을 수 없다면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아니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아니라면 곧 3세를 벗어난 것이며, 벗어난 것이라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면 곧 그것은 일어나지도 않으며, 만일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라면 곧 그것은 성품이 없느니라. 만일 성품이 없다면 곧 그것은 생김이 없고, 생김이 없다면 곧 그것은 소멸함도 없으며, 소멸함이 없다면 곧 여읠 것도 없고, 여읠 것도 없다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물러나는 것도 없고 나는 것도 없으며, 만일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물러나는 것도 없고 나는 것도 없다면, 행하는 업이 없을 것이요, 행하는 업이 없다면 곧 그것은 함이 없는[無爲] 것이니라. 만일 함이 없다면 바로 온갖 모든 성스런 근본이니, 이 안에서는 계율을 지닐 것도 없고 계율을 깨뜨릴 것도 없으며, 만일 계율을 지닐 것도 없고 계율을 깨뜨릴 것도 없다면 이것은 곧 행(行)도 없고 행이 아닌 것도 없으며, 만일 행도 없고 행이 아닌 것도 없으면 그것은 곧 마음도 없고 심수의 법[心數法]도 없느니라. 만일 마음과 심수의 법이 없다면 곧 업도 없고 업보(業報)도 없으며, 업도 없고 업보도 없다면 괴로움과 즐거움도 없으며, 괴로움과 즐거움도 없다면 곧 그것은 성스런 성품[聖性]이니, 이 가운데서는 업도 없고 업을 일으키는 이도 없으며, 몸의 업[身業]도 없고 입의 업[口業]도 없고 뜻의 업[意業]도 없으며, 이 가운데는 상·중·하의 차별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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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런 성품은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이요, 이 성품은 차별이 없고 온갖 법이 평등하여 한 맛[一味]이기 때문이며, 이 성품은 멀리 여의어서 몸과 마음의 모양을 떠났기 때문이요, 이 성품은 온갖 법을 여의어서 열반을 따르기 때문이며, 이 성품은 깨끗하여 온갖 번뇌의 때[垢]를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요, 이 성품은 나가 없어서 나와 내 것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이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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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높낮이가 없어서 평등으로부터 생겼기 때문이니라. 이 성품은 진실한 이치[眞諦]며 제일 가는 이치[第一義諦]이기 때문이요, 이 성품은 다함이 없나니 마침내 생기지 않기 때문이며, 이 성품은 항상 머무르나니 모든 법이 항상 있으면서 여(如)하기 때문이요, 이 성품은 편안하고 즐겁나니 열반을 첫째로 삼기 때문이며, 이 성품은 깨끗하나니 온갖 모양을 여의었기 때문이요, 이 성품은 나가 없나니 나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이 성품은 진실하고 깨끗하나니 본래부터 마지막까지 깨끗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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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너희들은 스스로 안[內]을 관찰하여서 밖으로 내닫지 말 것이니라. 그러하느니라. 대가섭아, 장차 오는 세상의 비구들은 마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듯 할 것이니라. 어떻게 비구들이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듯 한다고 하느냐 하면,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흙덩이를 개에게 던지면 개는 곧 그 사람은 버리고서 흙덩이만 쫓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니라. 그와 같아서 가섭아,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좋은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접촉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에서 벗이 없이 혼자 있고 대중이 시끄러운 곳도 여의고 몸으로 5욕(欲)을 여의면서도 마음은 버리지 못하고 있나니, 이 사람은 때때로 혹 좋은 빛깔·소리·냄새·맛·접촉을 생각하기도 하여 마음으로 탐착하고 좋아하면서 안[內]을 관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왜 빛깔·소리·냄새·맛·접촉을 여의어야 함을 알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에 때로 성이나 읍이나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데로 오게 되면 도로 좋은 빛깔·소리·냄새·맛·접촉 때문에 5욕(欲)의 속박을 당하며,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세속의 계율[俗戒]을 지녔기 때문에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났으나 또 천상에서도 5욕에 얽매이기 때문에 천상에서 죽으면 역시 네 가지 악한 세계인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되나니, 이것을 비구가 마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듯 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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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어떻게 하면 비구가 마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지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남에게 욕설을 들으면서도 욕설로 답하지 않으며 때리고 해치고 성을 내고 헐뜯어도 역시 그에게 갚지 않으면서 다만 스스로 안에서 관찰하여 그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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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을 퍼붓는 이는 누구고 받는 이는 누구이며 때리고 해치고 헐뜯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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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는 이는 또한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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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비구가 마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듯 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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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잘 길들일 줄 아는 마부는 말이 사나운데도 잘 다스리는 것처럼 수행하는 이도 역시 그러하여 마음이 외부로 향하더라도 곧 거두어서 방일하지 않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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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마치 목이 막히면 곧 죽게 되는 것처럼, 그러하느니라. 가섭아, 온갖 견해 가운데서 오직 나라는 견해[我見]가 있기만 하면 즉시 지혜의 목숨이 끊어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속박 당할 때마다 벗어나려 하는 것처럼, 가섭아, 그와 같이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마땅히 벗어나려 하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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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출가(出家)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깨끗하지 않은 마음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로가야(路伽耶) 등 외도의 경서(經書)를 읽거나 외우는 것이요, 둘째는 좋은 옷과 발우 등을 많이 저축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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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견고한 속박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견해의 속박[見縛]이요, 둘째는 이익의 속박[利養縛]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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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장애 되는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속인을 가까이 하고 사귀는 것이요, 둘째는 착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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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는 두 가지 때[垢]가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때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번뇌를 참고 받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보시하는 이[檀越]를 탐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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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서리와 우박이 있어서 모든 착한 뿌리를 무너뜨리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바른 법을 부수고 거역하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을 깨뜨리고서 남의 믿음 있는 보시[信施]를 받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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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게 두 가지 종기가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다른 이의 허물을 엿보는 것이요, 둘째는 스스로 그의 죄를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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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2 / 3476] 쪽 |
어두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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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불에 타는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때[垢]있는 마음으로 법의(法衣)를 받아 입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을 지니는 착한 사람의 공양을 받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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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가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증상만(增上慢)을 품으면서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이 대승의 마음을 내는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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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사문(沙門)에는 네 부류의 사문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부류의 사문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형상과 의복만의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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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의로 속이는 사문이라 하는가 하면 어느 한 사문이 몸의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네 가지의 위의가 있고 한 마음으로 조용하면서 의젓하여 모든 맛있는 음식을 끊고 네 가지 성스런 성품[四聖種]을 닦으며 대중의 모임을 멀리 여의고 집이나 시끄러운 데를 떠나 있으며 말이 부드러운 등의 이러한 법을 행하기는 하나 모두가 그것은 거짓이며 착하고 깨끗하지 않으면서 공한 법에서 얻는 것이 있고, 얻을 것이 없는 법에서 두려운 마음을 내는 것이 마치 깊은 데에 임한다는 생각과도 같으며, 공을 말하는 비구에게는 원수라는 생각을 내는 사람이니, 이것을 위의로 속이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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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명성을 구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어느 한 사문이 나타나는 인연으로 계율을 지니면서 자기의 힘으로 읽고 외운다 함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견문이 많다 함을 알게 하려 하며 자기의 힘으로 혼자 한적한 데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아련야(阿練若)에 있음을 알게 하려 한다. 욕심이 적어서 만족할 줄 알고 멀리 여의는 행[遠離行]을 행하나 다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여 싫증내어 여의는 것도 아니며 고요함을 위해서도 아니고 도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 사문이나 바라문의 과위[果]를 위해서도 아니고 열반을 위해서도 아니다. 이것을 이름하기를 구하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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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섭아, 어떤 이를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하면 어느 한 사문은 몸과 목숨도 탐내지 않는데 하물며 이익이겠느냐. 모든 공하고 모양이 없고 구함이 없음을 듣고 마음으로 통달하여, 들은 대로 따라서 수행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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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열반을 위하여 청정한 행[梵行]을 수행하지도 않거든 하물며 삼계(三界)이겠느냐. 오히려 공하고 나 없다는 견해조차도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거늘 하물며 나라는 견해와 중생이며 사람이라는 견해이겠느냐. 의지하는 법[依止法]을 여의면서 온갖 번뇌에서 해탈하기를 구하고 온갖 모든 법은 본래 때[垢]가 없어서 마지막까지 깨끗하다고 보면서 스스로를 의지하고 또한 남을 의지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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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법[法身]으로 오히려 부처님을 보지 않거늘 하물며 형색이겠느냐. 공하고 멀리 여읨으로 오히려 교법을 보지 않거늘 하물며 음성과 언설을 탐착하겠느냐. 함이 없는 법으로써도 오히려 승가(僧伽)를 보지 않거늘 하물며 화합한 대중이 있다고 보겠느냐. 그러면서 모든 법에 대하여 끊어 없애는 것도 없고 수행하는 것도 없으며 생사에 머무르지도 않고 열반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온갖 법은 본래부터 번뇌가 사라져 고요함[寂滅]을 알아서 속박이 있다고도 보지 않고 해탈하기를 구하지도 않는 이이니, 이것을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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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너희들은 마땅히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의 법을 익혀야 하며 이름만을 간직한 사문이 되지 말지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비유하며 귀한 이의 이름을 빌린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런 이름으로 부릴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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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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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으니라. 가섭아, 이름만의 사문과 바라문에게는 사문과 바라문으로서의 진실한 공덕과 행이 없나니, 역시 가난한 사람에게 부자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면서도 목이 말라죽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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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가섭아, 모든 사문들이 경전을 많이 독송하면서도 탐냄·성냄·어리석음의 목마름을 그치게 하지 못하고 법의 바다에 떠내려가면서도 번뇌에 목이 말라죽은 뒤에는 모든 악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약사(藥師)가 약 주머니를 가지고 가면서도 자기 몸의 병을 고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이들은 사람에게 있는 번뇌의 병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견문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번뇌를 그치지 못하면 스스로 이익이 있을 수 없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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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4 / 3476] 쪽 |
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의 귀한 약을 먹었으면서도 몸에 알맞지 못하면 해를 당하는 것처럼 이들은 사람에게 있는 번뇌의 병도 역시 그와 같아서 좋은 법 약을 얻고서도 선(善)을 닦지 못하여 스스로 지혜의 뿌리를 해치느니라. 가섭아, 마치 마니보주(摩尼寶珠)를 깨끗하지 못한 곳에 떨어뜨리면 다시는 쓰게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이들은 이도 이익에 탐착하면 다시는 하늘과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할 수 없느니라. 마치 죽은 사람이 금과 영락을 차고 있는 것처럼, 들은 것은 많으나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법의를 입고 다른 이의 공양을 받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마치 장자의 아들이 손톱과 발톱을 잘 깎고 깨끗이 목욕한 뒤에 붉은 전단(旃壇)을 바르고 새옷을 입고 머리에 꽃다발을 쓰면 안팎이 모두 알맞는 것처럼, 가섭아, 들은 것이 많으면서 계율을 지닌 이가 법의를 입고 다른 이의 공양을 받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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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네 부류의 비구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부류의 비구라 하는가 하면 어느 한 비구가 구족하게 계율을 지니면서 크고 작은 모든 죄에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며, 듣게 된 계율의 법은 모두 잘 이행하면서 몸의 업이 깨끗하고 입의 업도 깨끗하고 뜻의 업도 깨끗하며, 바르고 깨끗한 생활[正命]을 하지만 이 비구는 나가 있다는 이론을 세우나니, 이것이 첫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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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어느 한 비구는 계율을 외우고 지니면서 행하지만 몸에 대한 소견[身見]이 없어지지 않았나니, 이것이 두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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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어느 한 비구가 구족하게 계율을 지니면서도 중생의 모양을 취하면서 인자한 마음을 행하고 온갖 법이 본래 생김이 없다 함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놀라면서 두려워하나니, 이것이 세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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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어느 한 비구가 구족하게 수행하면서 열두 가지 두타(頭陀)로 얻을 것이 있다고 보나니, 이것이 네 번째로 계율을 잘 지닌 것 같으면서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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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5 / 3476] 쪽 |
또 가섭아, 계율을 잘 지닌다 함은 나가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짓지 않음도 없으며 지을 대상도 없고 짓는 사람도 없으며 행(行)도 없고 행이 아닌 것도 없으며 빛깔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모양도 없고 모양이 아닌 것도 없으며 사라짐도 없고 사라짐이 아닌 것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취할 만한 것도 없고 버릴 만한 것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마음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세간도 없고 세간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의지도 없고 의지가 아닌 것도 없으며 계율로써 스스로 높은 체하지도 않고 다른 이의 계율을 깎아 내리지도 않으며 또한 이 계율을 기억하거나 생각하여 분별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모든 성인으로서의 지닐 계행이라 하여 무루(無漏)에도 매이지 않고 삼계(三界)를 받지도 않으며, 모든 의지하는 법을 멀리 여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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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분명히 알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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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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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垢]도 없고 또한 아무 것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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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니면 교만함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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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의지하는 바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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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니면 어리석음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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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속박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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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니면 더러움[塵汚]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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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기거나 잃는 일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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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니면 부드럽고 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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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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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것에 대하여 기억하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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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을 멀리 여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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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요하는 생각에서 벗어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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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6 / 3476] 쪽 |
부처님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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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목숨을 아끼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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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有]의 생명도 이용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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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행을 닦아 익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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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도(道) 안에 편안히 머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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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부처님의 법에서 진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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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게 계율을 지닌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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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니면 세간에 물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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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간의 법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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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광명을 얻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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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도 없고 있을 만한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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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없고 그[彼]라는 생각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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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모양을 알고 또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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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부처님의 법에서 진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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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게 계율을 지닌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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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덕도 없고 저 언덕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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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중간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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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저것이 없는 가운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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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집착할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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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임도 없고 또한 모든 번뇌[漏]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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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속임수도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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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부처님의 법에서 진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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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게 계율을 지닌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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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름[名]과 물질[色]에 집착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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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것[我所]이라 하지도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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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진실하고 청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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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닌 데에 머무른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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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모든 계율을 잘 지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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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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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으뜸가는 계율을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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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런 도[聖道]를 구한다고 여기지도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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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진실하고 청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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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지니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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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이 최고라고 여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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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三昧)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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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일을 초월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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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닦고 익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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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하고 고요하여 아무 것도 없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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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현(聖賢)의 성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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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청정하게 계율을 지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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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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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몸에 대한 소견[身見]에서 벗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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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것을 없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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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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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하고 고요한 법을 믿고 이해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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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성스런 계율을 지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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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견줄 데 없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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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에 의지하여 삼매를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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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로 지혜를 닦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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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은 지혜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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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지혜를 얻기에 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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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청정한 지혜를 얻은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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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계율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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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하실 때에 5백 명의 비구는 모든 법을 받지 않고도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3만 2천 명은 티끌을 멀리 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거니와 5백의 비구들은 이 깊은 법을 듣고도 마음에 믿고 이해하지 못하고 통달할 수 없는지라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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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대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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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5백의 비구는 모두가 선정은 얻었사오나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할 수 없어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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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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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 모든 비구는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으로 이 청정하고 번뇌가 없는 계율의 모양을 듣고서도 믿고 이해하지 못하여 통달할 수 없었다. 부처가 말하는 이 게송의 이치는 매우 깊으니라. 그 까닭은 모든 부처님의 보리는 지극히 깊기 때문이니, 만일 두터이 선근을 심지 못하고 악한 벗이 지켜주는 사람이면 믿고 이해하는 힘이 적을 뿐더러 믿어 받아들이기도 어렵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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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가섭아, 이 5백의 비구는 과거의 가섭 부처님[迦葉佛] 때에 외도(外道)의 제자가 되어 가섭 부처님께로 가서 장단점[長短]을 구하려 하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조그마한 믿는 마음[信心]을 내면서 생각하기를 '이 부처님은 희유하구나. 미묘한 말씀을 잘도 말씀하시니'라고 하였으므로 이 착한 마음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고 도리천에서 죽은 뒤에는 염부제에 와 나서 불법에 출가하게 되었으나 이 모든 비구들은 모든 견해에 깊이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법을 듣고서도 믿고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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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못하고 따르면서 통달할 수도 없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비구들은 비록 통달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깊은 법을 들은 인연의 힘 때문에 큰 이익을 얻어서 나쁜 길에는 나지 않고 장차 현재의 몸으로 열반에 들게 될 것이니라.”
|
그때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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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서 이 비구들을 데리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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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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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조차도 오히려 믿지 못하거늘 하물며 제 말이겠습니까?”
|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변화로 두 사람의 비구를 만들어서 그 5백의 비구들이 가고 있는 길 중간을 따라가게 하셨으므로 그 모든 비구들은 그들을 보고는 변화한 비구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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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어디를 가십니까?”
|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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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혼자 가 있으면서 선정의 즐거움을 닦고자 합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믿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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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
“장로여, 우리들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역시 믿고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혼자 가 있으면서 선정의 행을 닦으려 합니다.”
|
이 때에 그 변화로 된 비구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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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마땅히 스스로 뽐내거나 거역하거나 다투려는 마음을 버려야 하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믿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뽐냄도 없고 다툼도 없는 것이 사문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열반을 사라짐[滅]이라 하는데 무엇이 사라진다는 것입니까? 이 몸 안에 나가 있어서 사라진다는 것입니까, 사람이 있고 짓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고 목숨이 있어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
비구들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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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 안에는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으며 목숨이 있어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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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라지기 때문에 열반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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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비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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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바로 일정한 모양이어서 사라져 다할 수 있는 것입니까?”
|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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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그 중간에도 있지 않나니, 모든 기억과 생각을 여의면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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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비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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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당신들은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들이 법을 기억하거나 생각하거나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모든 법에서 물들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게 됩니다. 물들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면 이것을 고요히 사라진다[寂滅]고 합니다. 온갖 계율[戒品]도 역시 왕래하지도 않고 사라져 다하지도 않으며 선정[定品]·지혜[慧品]·해탈[解脫品] 및 해탈지견[解脫知見品]도 역시 왕래하지도 않고 사라져 다하지도 않나니, 이런 법 때문에 열반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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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모두가 공하여 멀리 여읜지라 역시 취할 수도 없나니, 당신들은 이 열반이란 생각을 버리고 여의면서 생각을 따르지도 말고 생각이 아닌 것도 따르지 말며 생각으로써 생각을 버리지도 말고 생각으로써 생각을 관찰하지도 마십시오. 만일 생각으로써 생각을 버린다면 곧 생각에 속박되는 것이니, 당신들은 온갖 느낌[受]과 생각[想]의 사라지는 선정[滅定]을 분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법에는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비구가 모든 느낌과 생각을 없애고 멸정(滅定)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만족한 것이요, 그 외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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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비구가 이런 말을 할 때에 5백의 비구는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므로 부처님께로 돌아와서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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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수보리가 그 비구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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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어디까지 갔다가 지금 어디로부터 오십니까?”
|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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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1 / 3476] 쪽 |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어디서 오는 것도 없고 가도 닿는 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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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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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들의 스승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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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
“우리의 스승은 전부터 생겨나지도 않았고 또한 없어지지도 않았습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무엇으로부터 법을 들었습니까?”
|
대답하였다.
|
“5음(陰)과 12입(入)과 18계(界)가 있지 않으니, 이로부터 법을 들었습니다.”
|
또 물었다.
|
“어떻게 법을 들었습니까?”
|
대답하였다.
|
“속박되기 위해서도 아니요, 해탈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어떤 법을 익히고 행하였습니까?”
|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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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기 위해서가 아니요 끊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
또 물었다.
|
“누가 당신들을 조복하였습니까?”
|
대답하였다.
|
“몸에는 일정한 모양이 없고 마음에는 행할 것이 없으니, 이것이 우리를 조복하였습니다.”
|
또 물었다.
|
“무슨 행으로 마음에 해탈을 얻었습니까?”
|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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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을 끊지도 않았으며 명(明)이 생기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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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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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2 / 3476] 쪽 |
“당신들에게는 누가 제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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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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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면 바로 그가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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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
“당신들은 얼마나 얻었기에 장차 열반에 드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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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
“마치 여래의 교화를 받아 열반에 든 이들과 같이 우리들도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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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었다.
|
“당신들은 이미 자기의 이익을 얻었습니까?”
|
대답하였다.
|
“자기의 이익은 얻을 수 없습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할 일을 다 마쳤습니까?”
|
대답하였다.
|
“할 일은 얻을 수 없습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깨끗한 행[梵行]을 닦았습니까?”
|
대답하였다.
|
“삼계(三界)에서는 행하지도 않고 또한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것이 우리들의 깨끗한 행입니다.”
|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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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번뇌가 다하였습니까?”
|
대답하였다.
|
“모든 법은 마침내 다하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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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악마를 무너뜨렸습니까?”
|
대답하였다.
|
“5음(陰)의 마[陰魔]는 얻을 수 없습니다.”
|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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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3 / 3476] 쪽 |
“당신들은 여래를 받드십니까?”
|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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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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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복 밭[福田]에 머무십니까?”
|
대답하였다.
|
“머무름이 없습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생사(生死)의 반복을 끊었습니까?”
|
대답하였다.
|
“항상 있는 것[常]도 없고 아주 없어지는 것[斷]도 없습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법을 따라서 행[隨法行]하십니까?”
|
대답하였다.
|
“걸림이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
또 물었다.
|
“당신들은 마지막에 어디에 태어날 것입니까?”
|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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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서 교화한 사람이 이르는 데를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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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여러 비구들에게 물을 때에 5백의 비구는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3만 2천 명은 티끌을 멀리 하고 때를 여의어 법안이 깨끗하게 되었다.
|
그 때의 모임 가운데에 보명(普明) 보살이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보살이 이 『보적경(寶積經)』을 배우고자 하면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배워야 하나이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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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이 경에서 말한 모두가 일정한 모양이 없어서 취할 수도 없고 또한 집착할 수도 없다 함을 배우면서 이를 따라 행하면 크게 이익이 있으리라. 보명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날기와로 만든 배를 타고 항하(恒河)를 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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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4 / 3476] 쪽 |
려 하면 어떤 정진(精進)을 써야 이 배를 타고 건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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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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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큰 정진의 힘을 써야 건널 수 있으리이다. 왜냐 하면 중간에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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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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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도 역시 그러하여 불법을 닦고자 하면 부지런히 정진하기를 이보다 갑절 더하여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몸은 덧없어서 결정됨이 없고 부서져 파괴되는 모양이며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끝내 닳아 없어지게 되며 아직 법의 이익을 얻기도 전에 중도에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나는 넓게 흐르는 물에 있으면서 중생을 건네 주어 네 줄기 흐름을 끊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법 배[法船]를 익히어 이 법 배를 타고 생사 사이를 오가면서 중생을 건네 주고 벗어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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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살은 법 배를 익히는가 하면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배의 인연(因緣)으로 삼고, 한량없는 복을 익힘으로써 굳고 두껍고 청정한 계율의 널빤지[板]로 삼으며, 보시를 행하고 과위(果位)에 이르름으로써 장엄(莊嚴)을 삼고, 청정한 마음의 부처님 도로써 모든 재목(材木)을 삼으며, 온갖 복덕으로써 구족(具足)함을 삼고, 견고한 속박과 인욕과 부드러운 생각으로써 못[釘]을 삼으며, 깨달음에 이르는 온갖 방법[菩提分]으로 굳세게 정진하면서 가장 으뜸가고 묘하고 착한 법 숲[法林] 안에서 나와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선정과 복덕이 이루어져서 고요히 잘 조복된 마음으로써 스승[師匠]을 삼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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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까지 파괴되지 않는 대비(大悲)로 포섭할 바 4섭법(攝法)으로써 널리 건너서 멀리 이르게 하고 지혜의 힘으로써 모든 원수를 막으며 좋은 방편의 힘을 갖가지로 쌓고 모은다. 네 가지 큰 깨끗한 행[梵行]으로써 단정하고 엄숙한 것을 삼으며 바른 4념처(念處)로 금으로 지은 망루(望樓)를 삼고 4정근(正勤)의 행과 4여의족(如意足)으로써 빠르게 부는 바람을 삼아 5근(根)으로 모든 굽고 악한 일을 잘 살펴 여의고 5력(力)으로 강하게 띄워 7각(覺)으로 깨달아 악마를 깨뜨리며 여덟 가지 진실하고 바른 도[眞正道]에 들어가 뜻대로 언덕에 이르면서 외도의 구제를 여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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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止)로써는 다루기[調御]를 삼고 관(觀)으로써는 이익을 삼아 두 치우침[二邊]에 집착하지 않고 인연 있는 법으로써 안온(安穩)함을 삼으며 대승의 넓고 넓은 그지없는 변재(辯才)로써 널리 이름[名聞]을 퍼뜨려 시방의 온갖 중생을 잘 제도하면서 스스로 부르짖기를 '법 배로 올라오라. 안온한 길을 좇아 열반에 이르면 몸에 대한 견해의 언덕[身見岸]을 건너 부처님 도의 언덕[佛道岸]에 이르러 온갖 소견을 여의게 되느니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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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아서 보명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러한 법 배를 닦아 익히어 이 법 배로써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 겁 동안 생사(生死) 안에 있으면서 긴 흐름에 떠내려가고 빠져 죽는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시켜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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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어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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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법과 행이 있어서 보살로 하여금 빨리 성불하게 하느니라. 이를테면 모든 행한 것이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으며 착한 법을 두터이 익히고 깊은 마음으로 청정하며 정진을 버리지 않고 즐거이 명(明)에 가까이 하려는 것이니, 온갖 모든 선근을 닦아 익히기 때문이요, 항상 바르게 기억하면서 착한 법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많이 들어도 싫증냄이 없으면서 지혜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요, 교만을 깨뜨리고 지혜를 더욱 늘리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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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이론을 없애면서 복덕을 갖추기 때문이요, 혼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의 여읨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시끄러운 곳에 있지 않으면서 나쁜 사람들을 여의기 때문이요, 깊이 법을 구하면서 제일가는 이치[第一義]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지혜를 구하면서 참 모습[實相]을 통달하기 때문이요, 참된 이치[眞諦]를 구하면서 무너지지 않는 법을 얻기 때문이며, 공한 법을 구하면서 하는 것이 바르기 때문이요, 멀리 여읨[遠離]을 구하면서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얻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아서 보명아, 이것이 보살이 빠르게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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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 보명 보살과 대가섭 등이며 모든 하늘과 아수라와 그리고 세간의 사람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정수리에 이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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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3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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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량(北梁) 사문 석도공(釋道龔)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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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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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보량취회(寶梁聚會)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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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문품(沙門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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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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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도 만 6천 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일생보처(一生補處)였으며 모두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로부터 와서 모인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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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 가섭(摩揀迦葉)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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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사문(沙門)이라 함은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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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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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문이란 번뇌가 고요히 사라졌기 때문이요 다스렸기 때문이며 교법을 받기 때문이요, 계율의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선정에 들기 때문이요, 지혜를 얻기 때문이며 사실대로 이치를 알아 해탈을 얻기 때문이요, 삼해탈문(三解脫門)에 의심함이 없기 때문이며, 성인이 행한 법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4념처(念處)를 잘 닦기 때문이며, 온갖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4정근(正勤)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4여의족(如意足)을 잘 닦기 때문이며, 믿음의 뿌리[信根]를 성취하기 때문이요, 불·법·승을 믿기 때문이며, 불·법·승에 대한 굳은 믿음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그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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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부지런히 행하면서 온갖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며, 7보리분(菩提分)을 잘 닦으면서 온갖 착하지 않은 일을 여의고, 온갖 착한 법을 진실하게 닦기 때문이니라.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지혜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오로지 모든 착한 법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선정과 지혜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다섯 가지 힘[五力]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온갖 번뇌의 어지러움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요, 7보리분법을 잘 닦기 때문이며, 온갖 법 안의 인연과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거룩한 도[聖道]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니라.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선정[正定]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네 가지 변재의 힘을 얻고서 외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이치[義]에 의지하면서 말[語]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智]에 의지하면서 의식[識]에 의지하지 않으며, 분명한 이치의 경전[了義經]에 의지하면서 분명하지 않은 이치의 경전[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고, 법(法)에 의지하면서 사람[人]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네 종류 악마를 여의기 때문이요, 5음(陰)을 잘 알기 때문이며, 온갖 번뇌를 끊기 때문이요, 최후의 몸을 얻기 때문이며, 나고 죽음의 길을 여의기 때문이요, 온갖 애욕을 여의기 때문이며, 부지런히 행하면서 괴로움[苦]을 알고 쌓임[集]을 끊으며 사라짐[滅]을 증득하고 도(道)를 닦기 때문이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잘 보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다른 도(道)를 믿지 않기 때문이니라. 할 일을 다 마쳤기 때문이요, 온갖 번뇌[漏]을 끊었기 때문이며 여덟 가지 떠나버림[八背捨]을 닦기 때문이며, 제석(帝釋)과 대범(大梵)천왕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요, 본래부터 오로지 도를 수행하는 데에만 마음을 쓰기 때문이며, 아란야(阿蘭若)의 처소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거룩한 법 안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며, 부처님 법의 의식(儀式)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마음이 기울어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출가한 대중이나 집에 있는 대중을 친하게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마음에 혼자 다니기를 좋아함은 마치 무소의 뿔과 같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많이 괴롭히고 어지럽게 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혼자 머물러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혼자 머물러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항상 삼계(三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진실한 사문의 과위[沙門果]를 얻기 때문이요, 온갖 희망을 여의기 때문이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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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익과 손해와 뒤에서의 비방과 칭찬과 앞에서의 찬양과 훼방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굳은 마음으로 동요하지 않음이 마치 땅과 같기 때문이요, 그와 나의 뜻을 보호하면서 범한 것이 없기 때문이며, 혼탁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르게 행하기 때문이며, 마음을 쓰고 성취함이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이요, 모든 형상에 대하여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음이 마치 허공 안에서 손을 움직여도 걸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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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이와 같이 행하는 법을 성취하게 되면 이것을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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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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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전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여래께서는 사문의 덕행(德行)을 잘 말씀하여 주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미래 세상에 어떤 여러 사문 가운데서 진실하지 못한 사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梵行]을 행하지 않은 사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곧 벌써 여래의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쌓고 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침범하고 훼손한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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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래의 보리를 침범하고 훼손하는 죄는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느니라. 가섭아, 내가 멸도(滅道)한 뒤에는 너나 그 밖의 큰 제자들도 역시 다 멸도할 것이요, 또 이 세계의 모든 큰 보살들도 모두가 다른 지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게 될 터인데, 그때 나의 법 안의 어떤 비구들은 모든 행하는 일에 아첨과 굽은 마음이 많이 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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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이제 사문이 짓는 때[垢]와 사문으로서의 허물들을 말하겠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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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마지막 말법(末法) 동안의 어떤 비구들은 몸을 닦지도 않고 계율을 닦지도 않으며 마음을 닦지도 않고 지혜를 닦지도 않아서 어리석음이 마치 어린 아이가 어두운 데를 향하면서도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요 마음이 조복되지 않았으므로 사문의 때[沙門垢]를 이룰 것이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사문의 때라 하는가. 가섭아, 사문의 때에는 서른 두 가지가 있나니, 출가한 사람은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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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하면 탐내는 거친 생각[欲覺], 성내는 거친 생각[瞋覺], 남을 해치려는 거친 생각[惱覺],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 다른 이를 헐뜯는 것, 삿되게 이익을 구하는 것, 이익으로 인하여 이익을 구하는 것, 남이 보시하는 복을 훼손하는 것, 죄과를 감추고 숨기는 것, 집에 있는 사람[在家人]을 가까이 하는 것, 출가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대중의 시끄러운 장소를 좋아하는 것, 미처 이익을 얻기 전에 방편을 써서 구하는 것, 다른 이의 이익에 대하여 희망하는 마음을 내는 것, 자기의 이익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다른 이의 이익에 질투하는 것, 항상 다른 이의 허물을 구하는 것,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것, 해탈하는 계율을 굳건히 지니지 않는 것,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공경하고 삼가하는 뜻이 없으며 젠체하고 마음이 들떠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모든 번뇌[結使]를 일으키는 것, 12인연(因緣)을 거스르는 것, 치우친 소견[邊見]을 취하는 것,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지도 않고 욕심을 여의지도 않는 것, 나고 죽음을 좋아하면서 열반을 즐기지 않는 것, 외전(外典)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다섯의 덮개[五蓋]가 마음을 가리어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것, 업보(業報)를 믿지 않는 것, 삼해탈문을 두려워하는 것, 깊고 묘한 법을 비방하면서 번뇌를 고요히 사라지게 하는 행이 아닌 것, 3보(寶)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존경하지 않는 것 등이 바로 사문의 때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사문의 서른두 가지 때라고 하나니, 만일 이 모든 때를 여의게 되면 이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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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또 사문의 행을 가리는 여덟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교법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잘 생각[思惟]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아직 듣지 못했던 법을 듣고 나서 비방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중생이 없고 나도 없고 수명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법을 들은 뒤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요, 여섯째는 온갖 행(行)은 본래 생김이 없다 함을 듣고 나서도 유위(有爲)의 법은 이해하고 무위(無爲)의 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차례대로 설명하는 법을 들은 뒤에 몹시 깊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요, 여덟째는 온갖 법은 생김도 없고 성품도 없고 벗어남도 없다 함을 들은 뒤에 마음이 헤매어 가라앉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사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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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을 가리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출가한 사문이면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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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었다 하여 사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른바 공덕이 있고 의식(儀式)을 두루 갖춘 이라야 비로소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사문이 몸에 가사를 입었으면 마음으로는 마땅히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행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이 없어야만 비로소 나는 가사를 입으라고 허락하였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등이 있으면서 몸에 가사를 입으면, 오로지 계율을 지닌 데에만 마음을 쓰는 이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계율을 지니지 않는 사람은 곧 가사를 태워서 없애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성인의 표식(表式)으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따르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며 욕심을 여의어 없앤 이가 입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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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너는 이제 나의 말을 들어라. 성인의 표식에는 열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두 가지인가 하면 가섭아, 계율을 지니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선정에 드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지혜가 있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해탈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해탈에서 생겨난 지견[解脫知見]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드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니라. 12인연(因緣)을 잘 아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4무량심(無量心)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4선(禪)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4무색정(無色定)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4향(向)의 바른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온갖 번뇌[漏]를 끊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성인의 열두 가지 표식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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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라도 이 성인의 열두 가지 표식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고서 몸에 가사를 입는다 하면 나는 '이 비구는 바로 삿된 법을 행함이요,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님 법의 행을 여의고 열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생사의 행을 따르면서 악마에 걸려들었으므로 생사를 건너지 못하며, 바른 법에서 물러나 삿된 법을 행하고 있다'라고 말하느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출가한 비구가 몸에 가사를 입었을 때에 아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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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고 존중할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몸에 입은 가사가 마땅히 탑이라는 생각과 세존이라는 생각과 고요히 사라진다는 생각과 인자하다는 생각과 공경하기를 마치 부처님과 같다는 생각과 자신에게 부끄러워한다는 생각과 남에게 부끄러워한다는 생각과 나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여의고 사문의 법을 갖추게 할 것이라는 생각 등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가섭아, 이것을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고 존중한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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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네 가지 성인의 성품[四聖種]에서 만족할 줄을 모르고 사문의 법을 여의거나 또한 이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따로 사문 비슷한 이들만이 고통을 받는 작은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가섭아, 그 지옥 안에는 사문 비슷한 이들만이 그 안에서 죄를 받는데 옷과 발우와 온 몸뚱이가 모두 다 불에 활활 타고 있으며 앉고 눕는 곳과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도 역시 모두 활활 타고 있음은 마치 큰 불 무더기와 같나니, 사문과 비슷한 이들만이 이러한 죄를 받느니라. 왜냐 하면 깨끗하지 못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성취한 까닭에 이런 죄를 받는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범행을 하지 않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범행이 있다'라고 계율을 지니고 공덕이 구족한 사람에게 오른 편을 도는 등의 공경과 존중을 받게 되거나 또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그런 예배 공경과 공양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악(惡)인 줄을 모르면 그 악한 비구들은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여덟 가지 가벼운 법을 얻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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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여덟 가지 가벼운 법인가 하면 첫째는 어리석은 이가 되고, 둘째는 벙어리가 되며, 셋째는 난장이가 되고, 넷째는 얼굴이 추악하게 생길 뿐더러 비뚤어져서 보는 사람마다 비웃게 되며 다섯째는 여인의 몸으로 바꾸어 나서 가난하여 여종이 되고, 여섯째는 그 몸의 형상이 파리해지면서 일찍 죽게 되며, 일곱째는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면서 항상 악한 이름이 있고, 여덟째는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계율을 지닌 이들의 예배와 공경을 받으면 이와 같은 여덟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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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법을 얻게 되느니라. 가섭아,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이러한 법을 들은 뒤에는 마땅히 계율을 지닌 비구의 예배와 공경과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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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이 없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 큰 땅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침을 뱉을 곳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거나 가고 오고 하거나 몸을 구부리고 펴고 할 데가 있겠느냐. 왜냐 하면 과거의 대왕(大王)이 이 대지(大地)를 가져다 계율을 지니고 덕이 있는 이에게 베풀어 그 안에서 도(道)를 행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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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곳에는 온갖 신심 있는 이의 보시가 이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거늘 하물며 승방(僧房)과 사방에서 모인 객승이 묵는 절[招提僧舍]이며, 거니는 곳[經行處]이겠느냐. 설령 방사가 있거나 평상이 깔린 곳이나 동산 숲이 있으며 온갖 옷과 발우와 침구와 탕약 등의 온갖 믿음 있는 보시[信施]가 있다 하여도 받지 않아야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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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만일 어떤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이 없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한 털끝만큼도 믿음 있는 보시를 갚을 수 없으리라. 왜냐 하면 성인들의 복밭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가장 미묘하고 가장 뛰어나 어떤 시주(施主)가 깨끗한 믿음으로 보시의 종자를 그 복밭 안에 심는 것이며, 이러한 시주는 한량없이 보시한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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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마치 하나의 털을 백 개로 나누었을 때에 그 악한 비구가 받은 신도의 보시가 그 중의 한 털끝만큼 이라 하여도 그 받은 털끝만한 분량에 따라 곧 시주의 복덕을 덜어내는 것이므로 그렇게 큰 바다와 같이 많은 복의 한 부분이라도 다 갚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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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이 깨끗하여야 다른 이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을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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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대중 가운데서 깨끗한 행이 있고 욕심이 적어서 멍에를 여읜 2백의 비구들이 이런 말을 들은 뒤에 눈물을 닦으면서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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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죽어야겠나이다.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고서 다른 이의 신심 있는 밥 한 그릇의 보시조차도 받을 수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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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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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도다. 선남자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다면 그것이 곧 현재 세상에서의 영락(瓔珞)이니라. 선남자들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세상에는 신심 있는 보시[信施]를 받아도 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의 사람인가 하면 첫째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이요, 둘째는 해탈을 얻은 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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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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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비구로서 해탈을 얻은 이나 착한 법을 행한 이나 내가 말한 것과 같이 견고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나 온갖 행이 덧없고 괴롭다는 것과 온갖 법에는 나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는 이가 열반의 경계인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관찰하면서, 원하고 구하며 얻고자 하면 이러한 비구들은 남의 신시(信施)를 받은 것이 마치 수미산 만큼이라 하여도 그들은 반드시 그 신시의 복을 갚을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신심 있는 시주의 보시를 받게 되면 이 시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항상 복덕이 생기기 때문이니, 세 가지 복이 있느니라. 첫째는 항상 음식을 보시하게 하고, 둘째는 절 방사(房舍)를 보시하게 하며, 셋째는 인자한 마음을 행하게 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복 중에서 인자한 마음이 가장 뛰어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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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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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비구가 시주로부터 보시를 받았을 때에 즉 옷이나 발우나 침구나 탕약 등을 받고 나서 한량없는 선정에 들게 되면 그 시주로 하여금 한량없는 복을 얻게 하고 한량없는 과보를 얻게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큰 바다조차도 오히려 다 마르게 할 수 있지마는 이 시주가 얻는 복과 과보는 다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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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알아야 하느니라. 계율을 깨뜨린 비구는 시주의 그렇게 많은 복덕을 손상시키게 되나니, 만일 시주의 보시를 받은 뒤에 악한 법을 행하면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훼손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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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것을 사문의 때[垢]라 하고, 사문의 죄악이라 하고, 사문의 아첨이라 하고, 사문 안의 도둑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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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계율을 지니는 비구면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쓰면서 이러한 온갖 악한 법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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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른바 사문이라 함은 눈[眼]이 빛깔[色] 안에 흐르지 않고 귀·코·혀·몸·뜻이 법(法)안에 흐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또 6입(入)을 선택하고 6통(通)을 환히 통달하며 6념(念)을 오로지 생각하고, 6경(敬)의 법에 편히 머무르며, 6중(重)의 법을 행하는 것이니, 이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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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구품(比丘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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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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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대로 비구란 번뇌를 잘 깨뜨리기 때문에 비구라 하며 나라는 생각[我想]과 중생이라는 생각[衆生想]과 사람이라는 생각[人想]과 남자라는 생각[男想]과 여자라는 생각[女想]을 깨뜨리면 이를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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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계율을 닦고 지혜를 닦는 이를 바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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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두려움을 여의기 때문에, 세 가지 있음[三有]과 네 가지 번뇌의 흐름[四流]을 건너기 때문에, 있음[有]과 흐름[流]의 모든 허물과 근심을 보기 때문에, 온갖 존재와 흐름을 여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도(道)에 편안히 처하기 때문에, 이를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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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이러한 법과 그 밖의 착한 법을 스스로 성취하지 않은 줄을 알고 또 이 법을 여의면서 그 밖의 도를 행한다면, 가섭아, 그런 비구는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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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악한 비구들이 많이 있어서 나의 불법을 파괴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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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95부류 외도(外道)가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 밖의 외도들이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법 안에 있는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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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의 법을 파괴할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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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비유하면 사자는 짐승중의 왕이라 설령 그가 죽은 뒤라 하여도 범이나 이리나 새나 짐승들 중에는 그의 살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가섭아, 사자의 몸 속에서 저절로 모든 벌레가 생기어 도리어 그 살을 파먹는 것처럼, 가섭아, 나의 법 안에서도 이러한 악한 비구들이 나와서 이익을 탐내고 이익에 가려져서 악한 법은 없애지 않고 착한 법은 닦지 않으며 거짓말을 여의지 못하나니, 가섭아, 이러한 비구들이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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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한 이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탐내는 이와 성내는 이와 어리석은 이와 젠체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잘난 체하면서 아주 방자한 이와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와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와 입의 허물을 삼가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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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들떠서 동요하는 이와 남을 업신여기는 이와 이익을 탐하는 이와 그릇된 법을 많이 행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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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간사하고 거짓이 많은 이와 다른 사람을 현혹되게 하는 이와 삿된 생활을 많이 하는 이와 악한 말을 많이 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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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현재 남의 은혜를 받으면서 보답할 줄 모르는 이와 남에게 조그마한 은혜를 베풀면서 큰 보답을 바라는 이와 먼저 다른 이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와 친한 벗을 침범하고 훼손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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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고서 다른 이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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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과보를 잃게 하는 이와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이와 받은 계율을 가벼이 여기는 이와 굳건하게 계율을 지니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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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나[我]가 있다고 논하는 이와, 중생이 있다고 논하는 이와, 수명이 있다고 논하는 이와, 사람이 있다고 논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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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가르침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스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계율을 공경하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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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스님네가 화합하는 것을 마음에 기뻐하지 않는 이와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와 대중들 가운데에 있기를 즐기는 이와 항상 세속에 있는 온갖 말들을 논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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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이익을 구하는 이와 큰 명예를 구하는 이와 많은 벗들을 구하는 이와 성스런 종자[聖種]에 머물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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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악마에 매달려 있는 이와 악마에게 해를 당하는 이와 잠을 많이 자는 이와 선(善)을 행하는 데에 기뻐하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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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불법 중에서 썩고 망가진 이와 마음에 아첨을 품고 있는 이와 번뇌에 해를 당하는 이와 사문의 과위[沙門果]을 여읜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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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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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음욕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성냄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어리석음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또한 온갖 번뇌의 불에 타고 있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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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음녀(婬女)가 있는 마을에 많이 놀고 있으면서도 그의 허물을 알지 못하는 이와, 만족할 줄 모르는 이와, 비록 학문이 많다 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이와, 필요한 물건에 대하여 항상 시샘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다른 이에게 보시하지 못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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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어두운 데서부터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어리석음에서부터 어리석은 데로 들어가는 이와 거룩한 진리[聖體]를 보지 못하여 의혹을 많이 내는 이와 항상 생사에 얽매어 있는 이와 열반의 문을 닫어버린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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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몸에 간사한 행[姦行]이 많은 이와, 입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와, 뜻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와, 의식(儀式)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이니라. 어떤 것을 몸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찬찬히 다니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요,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며, 좌우를 돌아보기는 하나 한 길[一尋]을 넘지 않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요, 삿된 생활을 하여 옷을 입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니라. 아첨하는 마음으로 한적한 곳을 다니고, 한적할 데서 행할 법을 구하지 않으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걸식(乞食)을 하면서 걸식하는 모양을 관찰하지 않고, 아첨하는 마음으로 누더기[糞掃衣]를 입나니, 부끄러워 할[慚愧] 줄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또 아첨하는 마음으로 산의 굴과 나무 아래를 다니고 12인연(因緣)의 행을 분별할 줄 모르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오래 묵어서 버릴 약을 먹으면서도 감로(甘露)의 법약(法藥)은 구하지 않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몸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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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것을 입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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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다른 이가 나를 청한다. 구하는 대로 나는 이미 얻었다. 나는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다른 이가 나에게 아주 훌륭한 공양을 보내주면 나는 모두 받는다. 많은 이익을 나도 역시 얻었다. 나는 항상 착한 법을 행하고 있으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 나는 문답을 잘한다. 나는 법의 모양에 잘 순종한다. 나는 법의 모양에 잘 거역한다. 나는 온갖 법에 대하여 이치와 이치가 아님을 안다. 다른 이가 만일 나에게 이렇게 물으면 나는 이렇게 잘 대답한다. 대답한 뒤에는 그를 조복시켜 그로 하여금 잠자코 있게 한다. 나는 이것을 말한 뒤에는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다 기뻐하게 한다. 또한 모두가 잘한다고 감탄하는 말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대중들로 하여금 나를 청하여 공양하게 한다. 공양을 받은 뒤에는 또 그 시주로 하여금 나를 자주자주 오라고 청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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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입을 조복시키지 못하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는 온갖 말은 모두 바른 말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입에 간사한 행이 많은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입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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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것을 뜻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마음으로는 끄달리어 옷과 발우와 침구와 의약 등의 이익을 탐하고 구하면서도 입으로는 말하기를 '온갖 이익이 나에게는 필요 없다'라고 하거나 마음으로는 진실로 많이 구하고 있으면서도 '만족할 줄을 안다'라고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뜻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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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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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는 이익을 구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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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만족할 줄 안다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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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된 생활을 하면서 이익을 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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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유쾌한 즐거움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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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에는 간사함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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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것을 모두 속이게 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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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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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깨끗하지 않은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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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하늘과 용과 신(神)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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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天眼)이 있는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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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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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그것을 알고 보시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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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악한 비구는 착한 법의 의식(儀式)을 여의고 삿된 생활[邪命]을 하기 때문에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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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타라품(旃陀羅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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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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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를 전타라와 같은 사문 (旃陀羅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도살하는 전타라가 항상 무덤 사이를 다니면서 죽은 시체를 구할 때에 자비로운 마음이 없이 중생과 죽은 시체를 보면 몹시 기뻐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는 항상 인자한 마음이 없이 시주(施主)의 집으로 가서 착하지 않은 마음을 쓰고 구하던 것을 얻고 나면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며 시주의 집에서 이익을 받은 뒤에는 시주에게 부처님의 법과 율[毘尼]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이익만을 위하여 집에 있는 이[在家]들을 가까이 하며 법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자한 마음도 없고 언제나 이익만을 구하느니라. 가섭아, 이런 사람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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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마치 전타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듯이 이른바 대신이나 장자며 모든 작은 왕·찰제리·바라문 그 밖의 서민 및 하천한 이들까지도 멀리하면서 그와 함께 벗이 되려고 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도 역시 모두에게 멀리함을 당하나니, 이른바 계율을 지니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을 이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하늘·용·귀신 및 건달바 등이 그런 분들이니, 그가 계율을 깨뜨리고 악한 법을 행하는 줄 알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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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마치 전타라가 지니고 있는 의복과 음식과 모든 필요한 물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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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받아쓰지도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가 지니고 있는 옷과 발우와 사용하는 물건들은 모두가 이는 계율을 깨뜨리고 법답지 않으며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아첨하여 얻은 것이라 계율을 지니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버리면서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수용하지도 않으면서 이 사람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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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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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마치 전타라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는 그릇을 가지고 다른 이에게 걸식을 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승방으로 들어가고 다른 집에 이르고 혹은 대중 가운데로 가기도 하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로 가고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여래의 탑에 예배하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다니고 서고 앉고 누우며 온갖 행하는 것이 모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니, 악한 법을 감추고 숨기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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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전타라가 이르게 된 곳마다 착한 곳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법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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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가 이르게 되는 곳도 역시 착한 길[善道]에는 이르지 못하나니, 악한 업을 많이 짓고 악한 길의 법을 막지 않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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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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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 부패한[敗壞] 사람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향기와 맛을 갖춘 좋은 술에서 이 술의 제호(醍醐)를 다 짜고 나면 찌꺼기만이 있게 되므로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베풀어 사용함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렇듯 부패한 사문도 법 맛[法味]을 여의고 번뇌의 찌꺼기를 취하므로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베풀어 사용함이 없으며 계율을 지니는 향기를 여의고 모든 번뇌를 맡고 있는지라 이르는 곳이 있어도 자기의 이익이 되지 못하고 또한 남을 이롭게 하지도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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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부패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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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부패하고 썩었다 함은 마치 먹은 음식이 변하여 더러운 똥이 되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싫어하고 여의게 되는 것과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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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가섭아, 이러한 썩은 사문도 마치 더러운 똥과 같나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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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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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비유하면 썩은 종자를 대지에다 심어도 끝내 싹과 열매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부패하고 파괴된 사문도 비록 부처님 법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선근이 생기지 않고 사문의 과위도 얻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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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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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의 상자[沙門篋]라 하는가 하면 비유하면 마치 그림이 그려진 상자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다 더러운 냄새나는 것을 넣으면 갖가지로 깨끗하지 못한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상자도 밖으로는 사문으로서의 행을 성취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안으로는 갖가지의 더러운 때가 있으면서 모든 악한 업을 행하고 있나니, 가섭아, 이런 이를 사문으로서의 상자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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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의 구란도(枸欄茶)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구란다꽃의 빛깔과 모양은 산뜻하여 좋지마는 그 몸은 딱딱하여 마치 나무나 돌과 같고 그 냄새는 악취가 나서 마치 똥을 발라 놓은 것과 같으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이 꽃을 보게 되면 가까이 하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으면서 멀리 피하며 도망을 가거니와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 그의 허물을 모르고 가까이 하면서 냄새를 맡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도 사문과 같은 행을 나타내기는 하나, 거칠고 사나움이 있으며 오만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더러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며 또 계율을 깨뜨리고 의식의 행이 없으면서 바른 소견을 깨뜨린 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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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는 지혜 있는 이가 가까이 하지도 않고 예배하고 공경하면서 오른편으로 돌지도 않으며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멀리하고 여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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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리석어서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이가 있다면 그러한 어리석은 이들만이 친근할 바요 예배 공경하고 오른편으로 돌면서 그의 말을 믿어 받으리니, 마치 구란다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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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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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2 / 3476] 쪽 |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아첨하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인색하여 탐욕에 가려져 있으므로 만일 다른 이의 재물을 보면 희망하면서 얻으려 하며 날카로운 칼과 몽둥이를 쌓아 두고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서 항상 해치려는 마음이 있으며 설령 빈 늪과 산 숲과 마을을 다니면서도 다른 이의 재물을 희구하고 얻고자 하며 항상 자기 것은 몸에 감추고서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하려는 이런 마음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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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는 마음이 항상 인색하면서 탐욕에 가려져 있으므로 얻은 바의 이익에 있어서도 마음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다른 이의 재물을 희망하면서 얻고자 하며 이르게 되는 성읍이나 마을에서마다 항상 이익만을 위하고 착한 법은 위하지 않으면서 모든 악(惡)을 감추고 숨기느니라. 이를테면 '착한 비구는 내가 계율을 깨뜨리고 있음을 알 것이요, 알고 난 뒤에 만일 설계(說戒)할 때에 혹은 나를 쫓아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착한 비구에게 두려움만을 내면서 마음에 항상 아첨을 떨면서 의식(儀式)을 나타내게 되느니라. 그러나 온갖 하늘·용·귀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들은 그 비구가 '올 때에는 도둑이 오고 갈 때에는 도둑이 가며 다닐 때에는 도둑이 다니고 앉을 때에는 도둑이 앉으며 누울 때에는 도둑이 눕고 옷을 가질 때에는 도둑이 옷을 가지며 옷을 입을 때에는 도둑이 옷을 입고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도둑이 마을에 들어가며 마을을 나올 때에는 도둑이 마을을 나오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도둑이 먹으며 마실 때에는 도둑이 마시며 머리를 깎을 때에는 도둑이 머리를 깎고 있다' 함을 알고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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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가고 오고 하는 의식은 모두 하늘·용·귀신들이 알고 보게 되므로 본 뒤에는 꾸짖되 '이러한 악한 사람이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파괴하고 멸망시키고 있다'라고 하며 이렇게 모든 악한 비구들을 꾸짖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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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모든 하늘·용·귀신들은 계율을 지니고 청정한 행[梵行]을 닦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면 더욱더 믿는 마음으로 예배 공경하고 존중하나니, 이런 사람은 불법 가운데서 마땅히 이익을 받을 만한 이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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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3 / 3476] 쪽 |
가섭아, 이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는 불법 가운데에 출가하였으면서 한 생각도 고요히 사라진 욕심을 여읜 마음을 낼 수조차 없거든 하물며 사문의 과위를 얻겠느냐. 만일 얻는 이가 있다면 옳지 못한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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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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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피 사문[稗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보리 밭 안에 피가 났을 적에 그 형상은 흡사 보리와 같아 분별할 수 없으므로 그때 농부는 생각하기를 '이 피도 모두 좋은 보리이다'라고 하다가 뒤에 그 이삭이 난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 '모두가 다 보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피 사문도 대중 가운데에 있으면서 계율을 지니고 덕행이 있는 이와 같으므로 시주들을 보고 '모두 이들은 사문이다'라고 여기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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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어리석은 사람들은 실로 사문이 아니면서도 '나는 사문이다'라고 하고 범행이 있는 이가 아니면서도 '나는 범행이 있다'라고 하지만 원래 썩고 망가져서 계율을 여의었으며 또한 대중의 수효에 들지 못할 이이므로 불법 중에서 지혜의 생명이 없고 당연히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니, 마치 피가 좋은 보리들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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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늘·용·귀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면 그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을 보게 되며 본 뒤에는 저마다 서로 말하기를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선 사문과 같기는 하나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고 있으므로 이제 큰 지옥 안에 떨어지게 되리라. 이제부터는 끝내 사문으로서의 덕행과 사문의 과위를 얻을 수가 없음은 마치 피가 좋은 보리 안에 있는 것과 같구나'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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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피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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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부들로 생긴 사문[蒲生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부들이 벼 모 안에서 생기지만 익지 않기 때문에 부들로 생겼다 하며 속이 차 있지 않기 때문에 바람에 날려 없어지고 굳고 무거운 힘이 없는지라 벼와 같으면서도 벼가 아닌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부들로 생긴 사문은 형상은 사문과 같으나 가르쳐주고 꾸짖어 줄 사람도 없고 덕의 힘이 없는지라 악마의 바람에 날리며 또한 혈기(血氣)인 계율을 지니는 힘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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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4 / 3476] 쪽 |
많은 견문[多聞]을 여의었으며 선정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역시 지혜에서 멀어졌고 모든 번뇌의 도둑을 깨뜨릴 수 없나니, 이러한 사람은 가볍고 비열하고 힘이 없다 하겠으므로 악마에 매이게 되고 악마의 갈고리에 걸리게 되며 온갖 번뇌 속에 빠져 있으면서 악마의 바람에 날림이 마치 부들로 생긴 벼와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부들로 생긴 벼는 종자가 되지도 못하고 또한 싹도 나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부들로 생긴 사문은 부처님 법 중에서 도(道)의 종자도 없고 성현의 법 가운데서 해탈할 수도 없느니라. 가섭아, 부들로 생긴 사문이란 이른바 계율을 깨뜨리고 악(惡)을 행하는 이이니, 이들을 부들로 생긴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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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비슷한 사문[似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공교하게 금을 구리에 발랐을 때에 그 빛깔은 금과 비슷하나 그 값어치는 금과는 같지 않으며 그것이 닦였을 때에야 비로소 금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처럼 가섭아, 비슷한 사문이란 자신을 꾸미기 좋아하여 항상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면서 사문으로서 지니는 의식(儀式)은 모두 갖추고 있으며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는 데에 항상 의식을 바르게 갖느니라.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탐냄·성냄·어리석음에 해를 당하고 있고 또한 이익과 예배와 공경과 찬탄에 해를 받고 있으며 또한 아만(我慢)과 증상만(增上慢)과 온갖 번뇌에 해를 받고 있으므로 비록 사람들이 귀히 여긴다 하더라도 귀중한 법이 없으며 항상 부지런히 몸을 장엄하고 음식을 희망하며 성인의 법을 구하지 않고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현재에는 존중받지마는 장래에는 존중을 받을 이가 아니며 다만 몸을 살찌우기만 하면서 이익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지 않으며 갖가지에 속박되어 집안의 일에나 힘쓰고 집에 있는 이의 마음을 따르며 또한 그것에 따라 받나니, 괴로울 때에는 괴로움을 받고 즐거울 때에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사랑과 미움에 해를 당하며 사문의 법대로 하려 함이 없고 모든 의식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그 사람에게는 사문으로서의 진실이 없고 사문으로서의 명칭도 없으며 사문과 더불어 같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비슷한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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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의 혈기(血氣)를 잃었다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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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마치 남자거나 여인이거나 사내아이거나 계집아이거나 간에 사람 아닌 것[非人]이 그의 혈기를 빨아먹으면 그 사람은 쇠약해지고 얼굴빛이나 힘이 없게 되는 것과 같이 피와 기운을 잃게 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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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사람은 혈기를 상실했기 때문에 모든 약이나 주술(呪術)이나 모든 칼·몽둥이로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죽기에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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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와 같은 사문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혈기가 없고 자(慈)·비(悲)·희(喜)·사(捨)의 혈기도 없으며 또한 보시하고 조복하여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보호하는 혈기도 없고 또한 네 가지 성인의 성품에 편히 머무르는 혈기도 없으며 의식(儀式)의 혈기도 없고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는 혈기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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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혈기를 잃은 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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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혈기를 잃은 사문이라 하면 비록 여래의 법약(法藥)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법약이라 함은 이른바 만일 음욕이 일어나면 마땅히 깨끗하지 않다고 관찰해야 하고, 성과 분이 일어나면 마땅히 인자한 마음[慈心]을 내어야 하며,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마땅히 12인연(因緣)을 관찰하여야 하고, 모든 번뇌에 대하여는 바른 생각[正思惟]을 해야 하며, 대중을 좋아하는 일을 여의고 나의 소유(所有)를 버리면서 출가한 이의 세 가지 일을 좋아하며 지켜야 하느니라. 세 가지 일이라 함은 이른바 계율을 깨끗하게 지니는 것이요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며 선정에 들어서 산란하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약(法藥)은 내가 말한 것이요 내가 먹도록 허락한 것이나 비록 이런 약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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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또 세간을 벗어나는 법이 있나니, 이른바 공관(空觀)과 무상관(無相關)과 무작관(無作觀)이며, 5음(陰)·18계(界)·12입(入)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體]와 12인연(因緣)을 아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약으로써도 그 사람은 역시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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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사문은 더러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나니,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이요 복덕이 얇기 때문이며 극히 하천한 곳에 태어나서 교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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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니라.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다른 곳에는 태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큰 지옥에 떨어지리니, 마치 사람이 혈기를 잃으면 반드시 죽기에 이르는 것처럼 이러한 사문도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혈기를 잃은 한 사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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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씀하여 마치자마자 5백의 비구들이 계율을 버리고[捨戒] 세속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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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러 비구들은 그 비구들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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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대덕들이 부처님 법 안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좋지 않으며 이러한 일이야말로 법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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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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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법을 따른다고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고 싶지 않아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을 법에 따르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 모든 비구들은 믿고 이해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에 뉘우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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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깨끗하지 않은 행을 행하면서 다른 이들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았었다면 마땅히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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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이제 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리라.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琓率天)의 미륵보살이 있는 곳에 태어났다가 미륵여래가 세간에 출현할 때에는 그 모든 비구들은 첫 번째 모인 법회(法會)의 수효 안에 들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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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사비구품(營事比丘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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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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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어떻게 비구가 여러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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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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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부류의 비구가 여러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다고 허락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요, 둘째는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금강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니라. 또 두 부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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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업보(業報)를 아는 이요, 둘째는 모든 부끄러워함[慚愧]과 뉘우치는 마음이 있는 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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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부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아라한이요, 둘째는 팔배사(八背捨)를 닦는 이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두 부류의 비구라야 나는 일을 맡아 하도록 허락하여도 스스로 부스럼과 혹이 없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가섭아, 다른 사람들의 뜻을 보호하는 이런 일은 어렵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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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부처님 법 가운데서 갖가지로 출가하여 갖가지의 성품과 갖가지의 마음과 갖가지로 해탈하고 갖가지로 번뇌[結]를 끊으면서 혹 어떤 이는 아란야(阿蘭若)에 있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걸식을 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숲에 머무르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마을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네 가지의 멍에[扼]를 여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부지런히 많은 견문을 닦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모든 법을 잘 말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계율을 잘 지니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비니(毘尼)의 의식을 잘 지니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모든 성읍과 마을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법을 말하는 등의 이러한 모든 비구승들이 있게 되나니, 일을 맡아보는 비구[營事比丘]는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잘 간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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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아란야 비구가 한적한 곳을 좋아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온갖 사역(使役)을 시키지 않아야 하느니라. 때로 아란야 비구가 비구들간의 차례에 따라 사역을 하게 되더라도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대신 그 일을 하여야 하고 만일 스스로가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서라도 그 비구 대신 일을 하게 해야 하며 아란야 비구를 부려서는 안 되느니라. 만일 도를 행하지 않을 때에는 조금은 일을 시킬 수 있느니라. 또 걸식하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 걸식하는 비구에게는 좋은 음식을 주어야 하며 또 어떤 비구가 네 가지 멍에를 여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구한 바의 물건들을 마땅히 공급(供給)해야 되나니, 이른바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 등이 그것이니라. 또 멍에를 여읜 비구가 머물러 있는 곳이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가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높은 소리로 크게 불러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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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른 이를 시켜서 높은 소리로 크게 부르게 해도 안 되나니, 그 멍에를 여읜 비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이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멍에를 여읜 비구에 대하여 마땅히 존경하기를 마치 세존과 같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생각하기를 '이러한 비구는 부처님 법 가운데서 법의 기둥이 될 것이므로 구하는 대로 그에게 공급해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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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많은 견문[多聞]을 부지런히 닦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권유하면서 말하기를 '대덕께서도 많은 견문을 부지런히 닦으셔서 읽고 외며 환히 알게 하십시오. 나는 여러 대덕을 위하여 공급하며 심부름을 할 것입니다. 만일 모든 대덕께서 많은 견문을 부지런히 닦으시면 비구승 가운데서 이는 좋은 영락(瓔珞)이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널리 바른 법을 말씀하실 수 있으며 또한 저절로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느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바른 때가 아니면 일을 시켜서는 안 되며, 마땅히 옹호해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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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설법하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일마다 모두 공급해야 하고 설법하는 비구를 데리고 성읍이나 마을에 이르러서 모든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법을 듣게 해야 하며 설법하는 곳도 역시 공급해야 하고 설법하는 사람을 위하여 좋고 높은 자리를 펴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억지로 힘을 써서 설법을 파괴하려고 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에게로 가서 화해시켜야 하며 또한 자주자주 설법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아주 잘하십니다'라고 하며 칭찬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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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율을 잘 지니고 계율의 이치를 잘 지니면서 일을 하되 자주자주 이치를 물으면서 '제가 어떻게 일을 맡아보면 죄를 짓지 않게 되며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도 없고 남을 해치지도 않게 됩니까'라고 해야 하느니라. 그 계율의 이치를 지니는 비구는 그 일을 맡아보는 이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맡아보는 일에 따라 설법해 주어야 하나니, 이를테면 '이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계율을 지닌 사람에게 일심으로 믿음을 내어 예배 공경하고 공양해야 되느니라. 만일 비구승들이 소유하는 몫의 물건들이면 마땅히 때때로 대중들에게 공급해야 하고 대중이 구하는 것을 감추지도 말 것이며 마땅히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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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되 때맞추어 주어야 하며 악한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고 법답지 않게 주어서도 안 되며 욕심을 내며 주어서도 안 되고 성을 내면서 주어서도 안 되며 어리석은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며, 상가의 법[僧法]과 행을 따르고 집에 있는 이[在家]의 행을 따르지 않으며, 상가의 제정된 행에 따르고 자신이 제정한 행에 따르지 않으며, 승물(僧物)에 대하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 되며, 조그마한 일에 이르기까지도 대중과 함께 판단해야 하고 제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느니라. 또 소용되는 물건[所用物] 즉 상주승(常住僧)의 물건과 부처님 물건[佛物]과 사방에서 모인 객승들[招提僧]의 물건에 있어서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느니라.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들에게 주어서도 안 되고 객승들의 물건을 상주승에게 주어서도 안 되며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들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고 객승들의 물건을 상주승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며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들의 물건을 부처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고 부처님 물건을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들의 물건에 함께 섞어서도 안 되느니라. 만일 상주승의 물건이 많아서 객승이 구하는 것이 있다면 일을 맡아 보는 비구는 마땅히 대중을 집합하여 상의한 뒤에, 만일 대중들이 동의하면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에게 나누어주어도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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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여래의 탑에 혹 필요한 것이 있고 또는 무너지려 할 때면, 상주승의 물건이나 객승의 물건이 많이 있을 때에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대중을 집합하여 그들과 상의하면서 말하기를 '이 부처님 탑이 파괴되려 하니 이제 수선을 하여야겠습니다. 이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이 많으니, 대덕 스님네는 들으십시오. 만일 스님네께서 때가 되고 스님네께서 허락하시거나 스님네께서 얻으신 시주의 물건에 아까워하시지 않는다면 이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을 가져다가 부처님 탑을 수리하겠습니다'라고 하느니라. 만일 대중들이 동의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승물(僧物)로써 부처님 탑을 수리해야 되거니와 만일 대중이 화합하지 않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그 밖의 집에 있는 이들에게 권하여 거기서 얻은 재물로써 부처님 탑을 수리해야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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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설령 부처님 물건[佛物]이 많다 해도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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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물건으로 상주승에게나 객승에게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물건은 마땅히 세존과 같다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소유물은 한 오라기의 실까지도 모두가 이는 시주의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한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은 이 물건에 대하여는 부처님의 탑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겠거든 하물며 3보(寶)의 물건이겠느냐. 만일 부처님 탑에 먼저 옷을 보시하였다면 이 옷이 부처님 탑 안에서 차라리 바람에 날리고 비에 문드러져서 다 해지고 못쓰게 될지언정 이 옷으로써 다른 보물과 바꾸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의 성탑(聖塔)에 있는 물건은 값을 쳐서 줄 사람도 없고 또 부처님께서는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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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와 같이 착하고 깨끗하게 일을 맡아보는 사람은 3보의 물건을 뒤섞이게 하여서는 안 되며 또 자기의 이익에 대하여 마음에 항상 만족할 줄 알면서 3보의 물건 안에서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어서도 안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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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만일 성을 내면서 오른쪽으로 돌며 예배하고 공경해야 할 계율을 지닌 큰 덕이 있는 이에게 자기 마음대로 몰아쳐 부리면 이 때문에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성내는 마음으로 인하여 큰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설령 사람으로 된다 하여도 남의 노예가 되어 항상 그 주인에게 고역(苦役)을 당하면서 남들에게 매를 맞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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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제 마음대로 다시 중한 법제(法制)를 만들어서 대중이 통상하는 한계를 넘어 비구들을 벌주고 때 아닐 적에 부리게 되면 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못이 많은 작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그 안에 태어난 뒤에는 백천 개의 못이 그의 몸에 박히면서 그의 몸은 훨훨 큰 불길을 뿜어냄이 마치 큰 불 무더기와 같을 것이니라. 만일 계율을 지니고 큰 덕이 있는 이에게 심각한 일로 그를 두렵게 하면서 성내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지옥에 떨어져서 5백 유순이나 되는 긴 혀를 얻게 되고 그 혀에다 백천 개의 못을 박게 되며 각각의 못에서는 큰 불길을 뿜어내게 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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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자주자주 승물(僧物)을 얻어서는 아까워하면서 감추어 두거나 혹은 적당하지 않은 때에 대중에게 주거나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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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렵게 주거나 혹은 괴롭히면서 주거나 혹은 적게 주거나 혹은 주지 않거나 혹은 어떤 이에게는 주고 혹은 어떤 이에게는 주지 않거나 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더럽고 악한 아귀(餓鬼)에 떨어져서 항상 똥덩이를 먹게 될 것이니라.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치고 장차 이 안에 태어나면 그 때 다시 어떤 아귀가 있으면서 음식을 그에게 보이면서도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 아귀는 그 때 그 음식을 얻고 싶어하면서 그 음식을 뚫어지게 보며 눈을 잠시도 깜박거리지 않으면서 배고프고 목마르는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그는 백천 년 동안 항상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되며 혹시 음식을 얻게 되더라도 변하여 똥오줌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피고름으로 되어버리느니라. 왜냐 하면 사람들이 공경하고 예배할 계율을 지닌 사람에게 승가 대중이 소유할 물건을 제 마음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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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상주하는 승려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과 부처님 물건을 제멋대로 뒤섞어서 쓰면 일 겁 동안 아니 일 겁을 더 넘게 모진 고통의 과보를 받느니라. 왜냐 하면 3보의 물건을 침범하였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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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이러한 죄를 듣고 다시 이러한 죄를 알면서도 일부러 계율을 지닌 이에게 성을 내게 되면 내가 이제 이들에게 말하리니,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러한 그릇된 법의 죄를 듣고 나면 마땅히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잘 지키면서 제 자신도 보살피고 남도 또한 보살펴야 하느니라. 가섭아,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차라리 제 몸의 살을 먹을지언정 끝내 3보의 물건을 뒤섞어 써서 옷이나 발우나 음식을 만들지 말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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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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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전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여래께서는 스스로 인자한 마음으로 이와 같은 법을 말씀하시어, 부끄러워함[慚愧]이 없는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워함이 없는 법을 말씀하셨고 부끄러워함이 있는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워함이 있는 법을 말씀하셨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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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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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4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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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량 사문 석도공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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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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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보량취회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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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란야비구품(阿蘭若比丘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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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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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스스로 '나는 아란야 비구다'라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 되어야 아란야 비구라 하나이까? 또 어느 정도 되어야 걸식하는 비구[乞食比丘]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야 누더기를 입는 비구[糞掃衣比丘]라 하며 어느 정도 되어야 나무 아래의 비구[樹下比丘]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야 무덤 사이의 비구[塚間比丘]라 하며 어느 정도 되어야 거리에 있는 비구[露處比丘]라 하게 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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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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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야 비구는 반드시 아란야 처소를 좋아하고 아란야 처소에 머무르는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처소라 하면 이른바 큰 소리가 없고 대중의 시끄러운 소리도 없으며 노루·사슴·범·이리나 모든 날짐승도 떠나고 모든 도둑이나 소를 치고 양을 치는 이도 멀리하여 사문의 행을 따르는 곳이다. 이러한 곳이 아란야의 처소이니, 마땅히 이런 가운데서 수행해야 하느니라. 그 비구가 만일 아란야 처소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을 생각해야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나는 마땅히 몸을 버리리라'고 하며, 둘째는 '마땅히 목숨을 버리리라'고 하고, 셋째는 '마땅히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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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버리리라'고 하고, 넷째는 '마땅히 온갖 좋아하는 곳을 여의리라'고 하며, 다섯째는 '산간에서 죽기를 마치 사슴이 죽듯 하리라'고 하고, 여섯째는 '아란야 처소에서는 아란야의 행을 받으리라'고 하며, 일곱째는 '마땅히 법으로써 스스로 살아가리라'고 하고, 여덟째는 '번뇌로써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리라'고 하는 것이리라. 가섭아, 이것을 여덟 가지 법이라 하나니, 아란야 비구는 마땅히 생각한 뒤에야 아란야 처소에 가야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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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 처소에 도착한 뒤에는 아란야의 법을 행하는 것이니, 여덟 가지 행으로써 사랑[慈]을 행하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 행인가 하면 첫째는 사랑으로 이익 되게 하고, 둘째는 사랑으로 즐겁게 하며, 셋째는 성을 냄이 없이 사랑하고, 넷째는 바르게 사랑하며, 다섯째는 차별 없이 사랑하고, 여섯째는 따르면서 사랑하며, 일곱째는 온갖 법을 관찰하면서 사랑하고, 여덟째는 깨끗하게 마치 허공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여덟 가지 행으로써 모든 중생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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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 처소에 이른 뒤에는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먼 데에 와 있으면서 혼자요 벗이 없으므로 내가 착한 일을 하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든 아무도 가르쳐 주고 꾸짖어 줄 사람이 없구나'라고 한다. 다시 생각하기를 '여기에는 모든 하늘·용·귀신과 모든 부처님·세존이 계시면서 나의 마음을 오로지 한군데에만 쓰는 것을 아시고 그 분들이 나를 위해 증명하시리라. 나는 이제 여기에 있으면서 아란야의 법을 행하되 나의 착하지 않은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내가 이렇듯 먼 곳으로 와서 혼자요 벗이 없으므로 친근할 이도 없으니 나에게 있는 바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욕망의 느낌과 성내는 느낌과 괴로운 느낌을 깨달아야 하며 그 밖의 착하지 않은 법도 역시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제 대중을 좋아하는 이와는 같지 않아야 하고 또한 마을을 가까이 하는 사람과도 같지 않아야 된다. 만일 그와 같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 나는 곧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을 속인 것이요 벌써 모든 부처님께서 나를 보시고 역시 기뻐하지 않으시리라. 내가 이제 아란야 법대로 한다면 곧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에게 꾸지람을 받지 않을 것이요 모든 부처님께서도 나를 보시고 또한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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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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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아란야 처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란야의 법을 행하되 일심으로 해탈하는 계율을 굳게 지니면서 계율을 잘 지키어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고 아첨하는 행이 없으면서 바른 생활[正命]을 깨끗하게 하며 마음은 모든 선정을 향하되 들었던 법대로 기억하면서 부지런히 바른 생각[正思惟]을 하며 욕심을 여의고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열반을 향하여 나아가며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5음(陰)은 마치 원수와 같다고 관찰하고 4대(大)는 마치 독사와 같다고 관찰하며 6입(入)은 마치 텅 빈 무더기와 같다고 관찰하느니라. 방편을 잘 알고 12인연(因緣)을 관찰하여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여의며 중생(衆生)도 없고 나[我]도 없고 사람[人]도 없고 목숨[命]도 없다고 관찰하며 법의 공한 모양을 알고 모양이 없음[無相]을 행하며 점점 지을 바를 줄이면서 지음이 없음[無作]을 행하고 마음은 항상 삼계의 행(行)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고 항상 정진하면서 끝내 물러나지 않으며 몸의 참 모습[實相]을 관찰하느니라.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 이와 같은 법을 관찰해야 하나니, 마땅히 괴로움[苦]의 근본을 알고 온갖 쌓임[集]을 끊으며 사라짐[滅]이 다함을 증득하고 도(道)를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인자한 마음을 행하면서 4념처(念處)에 편안히 머무르고 착하지 않는 법을 여의면서 착한 법의 문에 들어가며 4정근(正勤)에 편안히 머무르고 4여의족(如意足)에 들어가며 5선근(善根)을 수호하고 5력(力) 가운데서 자재함을 얻으며 7보리분(菩提分)을 깨닫고 여덟 가지 성스럽고 착한 길[八聖善道分]을 부지런히 행하며 선정을 받아 지니어 지혜로써 모든 법의 모양을 분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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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러한 법으로써 엄숙하게 장식함을 말하노니, 아란야 비구는 이렇게 엄숙하게 장식한 뒤에 산과 숲에 머무르면서 초저녁과 새벽에도 부지런히 모든 행을 닦으면서 잠을 자지 않아야 하며 항상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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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무릇 머무르는 곳마다 항상 도를 수행하되 스스로 몸과 모든 의복은 장엄하지 않으면서 마른 풀을 주어다 자리에 깔아 방석을 삼고 상주승의 물건[常住僧物]과 객승의 물건[招提僧物]을 여의며 아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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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소에서는 의복에 만족하여 몸을 가리게만 하나니, 거룩한 도를 수행하기 위해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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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만일 걸식(乞食)하기 위하여 성읍이나 마을에 이르게 되면 생각하기를 '나는 아란야 처소로부터 이 성읍과 마을에 이르렀지만 밥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근심하거나 기뻐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만일 밥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서 전생에 지은 업의 갚음[業報]이라 생각하여야 하며 나는 이제 부지런히 복된 업을 닦아 익혀야 한다'라고 하면서, 또 여래께서도 걸식하다가 얻지 못한 일이 있음을 생각할 것이니라. 그 아란야 비구가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할 때는 마땅히 법으로 장엄(莊嚴)하여야 하고 법으로 장엄한 후에야 걸식할 것이니라. 어떻게 법으로 장엄한다 하는가. 설령 뜻에 맞는 물질을 본다 하여도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뜻에 맞지 않은 물질을 본다 하여도 역시 성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또는 뜻에 맞는 소리와 뜻에 맞지 않은 소리를 듣거나 또는 뜻에 맞는 냄새와 뜻이 맞지 않은 냄새를 맡거나 뜻에 맞는 맛과 뜻에 맞지 않는 맛이거나 뜻에 맞는 접촉과 뜻에 맞지 않은 접촉이거나 뜻에 맞는 법(法)과 뜻에 맞지 않은 법이거나 간에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고 또한 성을 내지도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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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관의 문을 거두어 보살펴도 한 길[一尋]까지 주의하여 똑똑히 보면서 그 마음을 조복하여 본래 생각한 법을 마음에서 여의지 않게 하고 음식으로써 마음을 더럽히면서 걸식을 하지 않으며 차례대로 걸식하여야 하고 음식을 얻은 곳이라 하여 집착을 내어서도 안 되며 음식을 얻지 못한 곳이라 하여 성을 내어서도 안 되느니라. 또 열 집이나 열 집을 넘게 다녔어도 밥을 얻지 못하였다 하여 근심하지 않으며 생각하기를 '이 모든 장자(長者)와 바라문(婆羅門)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또 이 장자나 바라문들은 일찍이 마음에서 나를 생각한 일조차도 없었거든 하물며 나아게 밥을 주는 것이랴'라고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만일 이렇게 하게 되면 걸식을 하는 동안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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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걸식할 때에 만일 중생으로서 남자나 여자나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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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나 계집아이를 보게 되고 나아가 짐승을 보게 되면 마땅히 이러한 이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면서 '나는 이렇게 정진한다'라고 하고, 서원하기를 '만일 중생으로서 나를 보고서 나에게 밥을 주는 이는 모두가 천상에 태어나게 하소서'라고 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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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거친 밥을 얻거나 좋은 밥을 얻거나 간에 이 밥을 얻은 뒤에는 마땅히 사방을 관찰하면서 '이 마을이나 성읍 가운데서 누가 가난한 사람일까? 이 밥을 덜어서 그에게 베풀어주리라'고 하고서, 만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걸식한 밥을 반으로 나누어주되 만일 가난한 이를 만나지 못하면 마땅히 이러한 마음을 내나니, '내 눈으로 그런 중생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내가 얻은 이 밥 가운데서 좋은 것으로 그에게 베풀어주려 하노니, 나는 시주(施主)가 되고 그는 받는 이가 되소서'라고 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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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걸식하다가 밥을 얻게 되면, 가지고 아란야 처소로 와서 깨끗이 손발을 씻고 깨끗한 사문의 의식(儀式)으로 모든 깨끗한 법을 갖추고는 법답게 풀을 가져다 놓고 가부하고 앉을 것이며 앉은 뒤에는 밥을 먹되 마음에 애착함도 없고 또한 뽐내는 일도 없으며 성내는 마음도 없고 혼탁하고 어지러운 마음도 없느니라. 밥을 먹으려 할 때에는 생각하기를 '지금 이 몸 속에는 8만 마리의 벌레가 있다. 벌레들은 이 밥을 먹고서 모두 다 안락하여라. 내가 지금은 밥으로써 이 벌레들을 거두거니와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법으로써 거두리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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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또 때로 아란야 비구는 음식이 부족하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몸이 가벼워 인욕을 닦을 수 있으며 모든 악(惡)을 끊어 없애고 대소변도 적게 되었다. 그리고 몸이 가볍기 대문에 마음도 가볍게 되었으며 또 잠도 줄었고 음욕의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도다'라고 이러한 생각을 하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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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만일 걸식을 하다가 많이 얻었으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밥 가운데서 한 덩이를 떠내어 깨끗한 돌 위에다 놓고 생각하기를 '모든 날짐승·길짐승들에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는 이것을 베푸나니, 그들은 받는 이가 되어라'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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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밥을 다 먹으면 발우를 씻고 양치질하고 손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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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깨끗이 씻은 발우를 손으로 닦아 마르게 한 뒤에 승가리(僧伽梨)를 올려놓고 아란야 처소의 행에 의지하여 본래 생각한 법 모양을 여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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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행을 행할 때에 그가 범부로서 아직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였으면 때로 범이나 이리가 그 곳에 오게 될 터인데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생각하기를 '내가 본래 아란야 처소에 도착하였을 때에 이미 몸과 목숨을 버렸으므로 나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마땅히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온갖 악을 여의고 또한 두려움을 여의어야 한다. 만일 모든 범이나 이리가 나의 목숨을 끊고 내 살을 먹게 된다면 당연히 생각하기를 나는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이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써 장차 견고한 몸을 얻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 모든 범이나 이리에게 나는 먹이를 주지 못했으므로 이제 나의 살을 먹은 뒤에는 몸에 안락함을 얻으라고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법을 행할 적에는 마땅히 이와 같이 몸과 목숨을 버려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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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법을 행할 때에 혹 어떤 사람 아닌 것[非人]이 좋은 모습이 되거나 나쁜 모습이 되어서 그에게로 오게 되면 이 사람 아닌 것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도 내지 말고 성내는 마음도 내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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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혹 일찍이 부처님을 뵈러 모든 하늘들이 아란야 처소로 와서 질문을 하는 일이 있기도 한데 질문을 하게 되면 아란야 비구는 힘닿는 대로 배운 법대로 그 하늘들을 위하여 말할 것이며 때로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말할 것이며 때로 모든 하늘들이 깊은 이치를 물어서 아란야 비구가 대답할 수 없게 되면 교만한 마음을 내어서는 안되며 말하기를 '내가 견문이 많지 않다 하여 당신들은 나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나 이제 부지런히 부처님 법을 닦고 배워서 뒷날 내가 부처님 법을 통달하고 나면 모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할 것이며 또 모든 하늘들에게 청하면서 '당신들은 이제 나를 위하여 설법하여 주십시오. 나는 듣고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하기도 하며 또 이렇게 용서를 비는 말로 '부디 미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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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법을 행하면서 아란야의 생각을 잘 닦나니, 마치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이 주인도 없고 나도 없고 속(屬)한 데도 없는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 나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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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이 법은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라. 이 법 가운데서 잘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모든 소견을 끊어야 하며 항상 공하고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는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라고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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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아란야의 법을 행할 때에 열매와 약초와 모든 나무 숲이 어떻게 화합하고 어떻게 흩어져 없어지느냐 하면, 이와 같은 바깥의 물건들은 주인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다툼도 없어서 저절로 났다가 저절로 없어지므로 나고 없어지는 것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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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마치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이 나도 없고 주인도 없고 속한 데도 없는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 나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뭇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인연이 떠나면 곧 사라지는 것이니, 이 실다움[如實] 가운데서는 하나의 법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 없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으로 아란야 비구는 아란야의 처소에 이르러서 닦고 수행하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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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이러한 법을 행할 때에 만일 성문승(聲聞乘)을 배워서 빨리 사문의 과위를 얻게 되거나 혹은 장애 되는 법이 있어서 생에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한다 하여도 불과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세 분의 부처님을 뵈올 때까지는 반드시 온갖 모든 번뇌를 여의게 되느니라. 또 보살승(菩薩乘)을 배우는 이는 금생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장애 없는 법을 얻어서 반드시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되며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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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란야품(阿蘭若品)」을 말씀할 때에 5백의 비구가 온갖 번뇌를 끊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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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걸식비구품(乞食比丘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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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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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비구가 걸식을 하는가 하면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먼저 본래의 서원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나는 걸식에 의거하여 출가하였고 나는 지금 먼저의 서원에 머물러 있다'라고 하여 그 비구는 오로지 그 생각만 하여 아첨함이 없고 온갖 음식의 접대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온갖 대중들의 공양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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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 견고하게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다. 걸식하는 비구는 온갖 맛[味]에 대하여 좋은 맛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또 훌륭한 음식에 대하여 스스로 그 마음에 이런 생각을 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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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전타라(旃陀羅)와 같아서 마땅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고 음식을 깨끗이 하지는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좋은 밥을 먹은 뒤에는 모두가 똥이 되면서 더러운 냄새가 나고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니, 나는 좋은 밥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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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마음을 조복한 뒤에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차례대로 걸식을 할 때에 그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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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나에게 밥을 주고 여인은 주지 않을 것이다. 여인이 나에게 밥을 주고 남자가 주지 않을 것이다. 사내아이가 나에게 밥을 주고 계집아이가 주지 않을 것이다. 계집아이가 나에게 밥을 주고 사내아이가 주지 않을 것이다. 좋은 밥을 얻고 거친 밥은 얻지 않아야겠다. 맛있는 밥을 얻고 맛없는 밥은 얻지 않아야겠다. 때맞추어 밥을 주고 주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쉽게 밥을 얻고 어렵게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리 밥을 얻고 느리게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마을에 들어가면 공경을 받을 것이요 공경 받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 한 밥을 얻고 묵은 밥은 얻지 않아야겠다. 부자 집에서 밥을 얻고 가난한 집에서는 얻지 않겠다. 남자와 여인들이 모두 나와서 나를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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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이러한 착하지 않는 법을 생각하지 말 것이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스스로 장엄해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걸식이요 언제나 행할 법이니라. 또 걸식할 때에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근심하거나 기뻐함이 없고 거칠거나 좋은 밥이라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라. 왜냐 하면 대개의 중생들은 좋은 맛에 탐착하게 되고 좋은 맛에 탐착하는 까닭에 모든 악업(惡業)을 짓게 되며 악업을 지은 인연 때문에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만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은 맛을 탐착하지 않으면서 좋은 밥을 버리고 거친 밥을 받으며 혀로 탐착하는 맛을 없애고 그 마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극히 거친 밥을 얻는다 하여도 역시 만족할 줄 알아야 하나니, 그런 이가 만일 목숨을 마치면 천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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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인간 세계에 태어나게 되며 천상에 태어난 뒤에는 하늘의 좋은 음식을 먹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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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와 같이 걸식하는 비구는 맛의 애착을 버리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설령 7일 동안 콩을 먹게 된다 하여도 역시 근심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몸을 살리기 위하여 나는 지금 밥을 먹으며, 그리하여 도 닦기 위하여 먹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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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가 이 밥을 얻으면서 발우 속에 떨어지게 되면 법대로 얻은 것이요, 법다운 이익이므로 마땅히 청정한 행[梵行]이 있는 비구와 함께 이 밥을 먹어야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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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가 때로 병이 들어서 시킬 사람도 없어서 걸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되나니 '나 혼자요 벗이 없이 한 몸으로 출가한지라 법이 나의 벗이므로 나는 마땅히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 지금 나는 병으로 괴로움을 받지만 마치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고 하셨음과 같이 나는 들었던 법을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어떻게 잘 생각하는가 하면 사실대로 몸을 관찰하는 것이니, 사실대로 몸을 관찰하고 나서 지혜가 있는 이가 만일 혼자 일심으로 초선(初禪)을 얻게 되면 곧 당연히 초선의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하루 또는 이틀 나아가 7일 동안은 선(禪)으로써 음식을 삼아 그 마음은 기뻐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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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이러한 법을 수행하면서도 만일 선(禪)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부지런히 행하면서 착한 법 안에 편히 머물러야 하며 여러 사람이 아는 바가 있고 모든 하늘·용·귀신들이 음식을 그에게 보내 주리니, 이것이 바로 멍에[扼]를 여읜 과보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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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혹 걸식하는 비구가 큰 비를 만나고 혹은 큰 바람이 불어서 걸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때에는 사랑[慈]으로써 밥을 삼아 스스로 장엄하면서 행할 법에 편안히 머물러 생각해야 한다. 이틀 밤 사흘 밤을 먹지 못하게 되면 생각하기를 '어떤 많은 중생들이 아귀 세계에 떨어져서 그 지은 악업 때문에 고뇌에 시달리며 백 년이 되도록 침 한 방울조차 얻지 못하거니와 나는 지금 모든 법의 문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다'라고 해야 하며,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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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몸과 마음이 여위어졌지만 지금 나는 이런 배고프고 목마름은 참아 낼 수 있다. 부지런히 거룩한 도를 닦으면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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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남자나 여인이나 사내아이나 계집아이 등 집에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되느니라. 가섭아, 만일 걸식하는 비구가 집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밥 속에 있는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골라 버리게 할 때는 그가 있는 곳에 앉아서 그에게 설법을 해주어야 하며 이윽고 밥이 깨끗해져서 도로 받게 되면 먹고 난 뒤에야 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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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스스로 아첨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을 스스로 아첨한다고 하는가 하면 만일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더러운 밥을 얻었다. 또 부족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었으며 나는 적게 먹었다. 나는 지금 배고프고 목이 말라서 몸과 힘이 쑥 빠져버렸다'라고 하게 되면, 가섭아, 이것을 스스로 아첨을 한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이러한 일들을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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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온갖 일에 대하여 버리는 마음[捨心]을 내어야 하느니라. 만일 발우 안에 들어온 음식이면 거칠거나 좋거나 적거나 많거나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거나 간에 모두 받아 마음에 근심하거나 기뻐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 모든 법의 몸을 관찰해야 하며 나아가 몸을 살려서 거룩한 도를 수행하기 위하여 음식을 받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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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걸식하는 비구가 때로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차례대로 걸식하다가 만일 밥을 얻지 못하여 빈 발우로 나오게 되면 마땅히 생각하기를 '여래께서는 큰 위덕이 있으시어 전륜왕(轉輪王)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으며 온갖 나쁜 법을 끊고 온갖 착한 법을 이루셨는데도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오히려 빈 발우로 나오신 일이 있거늘 하물며 나 같이 박복하고 선근을 심지 못한 자가 빈 발우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근심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선근을 심지 못했으면서 거친 밥이나 좋은 밥을 얻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얻지 못한 것은 혹 자기에게 악마가 있거나 혹은 악마에 홀렸거나 혹은 악마가 저 모든 바라문과 거사들을 가려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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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내가 걸식하여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니, 나는 부지런히 닦아서 사마(四魔)를 여의고 온갖 번뇌를 끊어야겠다. 만일 내가 부지런히 이와 같은 도를 닦고 나면 악마 파순(波旬)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악마가 부리지도 못하며 훼방을 놓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성스런 종자[聖種]를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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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소의비구품(糞掃衣比丘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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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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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糞掃衣]를 입는 비구는 누더기가 될 물건을 주우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니 '부끄러워하기[慚愧] 위해서요 옷으로 자신을 장엄하게 꾸미지 않기 위해서며 바람과 햇빛이며 모기·등에·두꺼비 등의 모든 나쁜 접촉을 막기 위해서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편히 머무르기 위해서며 깨끗하고 좋은 옷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이다'라고 하느니라. 쓰레기 가운데서 버린 물건들을 줍고 취할 때에는 마땅히 두 가지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 생각인가 하면 첫째는 만족할 줄 아는 생각이요, 둘째는 기르기 쉽다는 생각[易養心]이니라. 또 두 가지 생각을 내나니, 첫째는 자만함이 없는 생각[無慢想]이요, 둘째는 성스런 종자를 지닌다는 생각[持聖種想]이니라. 또 두 가지 생각이 있나니, 첫째는 그것으로써 몸을 장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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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쓰레기 속에서 버린 물건들을 주울 때에 만일 그 곳에서 모든 친족이나 아는 이를 만났을 때에 그들을 보고는 곧 그만두고 줍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들이 혹시 나에게 (너는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구나)라고 꾸짖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가섭아, 나는 '이 비구는 깨끗한 행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하리라. 왜냐 하면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마음이 견고함이 돌과 같아서 바깥의 사물이 들어가지 못하고 또한 움직일 수도 없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쓰레기 안에서 물건들을 주어다 깨끗이 씻어서 더러운 때가 없게 하여야 하고 씻은 뒤에는 물을 잘 들이며 물들인 뒤에는 승가리(僧伽梨)를 만들되 잘 모으고 잘 붙이며 잘 기워서 잘 받을 것이니, 받은 뒤에는 입어야 하되 터지거나 찢어지지 않게 해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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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 / 3476] 쪽 |
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부정관(不淨觀)에 편히 머무르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탐욕을 여의기 위해서요, 인자한 마음으로 누더기를 입나니 성냄을 여의기 위해서며, 12인연(因緣)을 관찰하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어리석음을 여의기 위해서요, 바른 생각을 하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온갖 번뇌를 끊기 위해서며, 모든 감관을 거두어 보살피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6입(入)을 알기 위해서요, 아첨하지 않고 누더기를 입나니 모든 하늘·용·귀신으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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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무엇 때문에 누더기[糞掃衣]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죽은 재는 사람들이 탐내지도 않고 내 것이라는 마음도 내지 않으며 으레 버려버리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누더기는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며 이는 쉬이 얻을 수 있고 삿된 생활[邪命]도 아니며 다른 이에게서 구하지도 않고 남의 얼굴빛도 보지 않으며 버려진 물건이어서 쓰레기와 다름이 없고 또한 딸린 데도 없는지라 이 때문에 누더기[糞掃衣]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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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누더기는 곧 법의 당기[法幢]이니 그로써 큰 선인(仙人)이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종성(種姓)이니 그로써 성인이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편히 머무름이니 그로써 성종(聖種)이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오로지 마음을 한 곳으로 쏟게 되나니 그로써 착한 법의 의식(儀式)이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잘 보호하나니 그로써 계율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문(門)을 향함이니 그로써 선정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편히 머무름이니 그로써 지혜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몸[身]이니 그로써 해탈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법을 순종함이니 그로써 해탈지견(解脫知見)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누더기를 입는 것은 큰 복덕을 얻고 희구하는 것도 없으며 탐착하는 것도 없고 교만한 마음도 여의며 무거운 짐을 버리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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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누더기를 입으면 만족할 줄을 알기 때문에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들이 몹시 좋아하면서 보고 싶어하느니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가 만일 선정에 들어가면 제석(帝釋)·범왕(梵王)·사천왕(四天王)이 길게 무릎 꿇고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예배를 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작은 하늘들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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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만일 어떤 악한 비구가 애써 의복을 구하여 몸을 장엄하게 꾸미고 밖으로는 청정한 행을 나타내면서도 안으로는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 비록 이와 같이 몸을 장엄하게 꾸민다 하더라도 모든 하늘·용·귀신들이 그 곳으로 가서 예배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이 비구는 애써 의복을 구하여 그의 몸을 장엄하게 꾸미면서도 심(心)·심수법(心數法)의 때[垢]를 제거하지 못하였다 함을 알기 때문이니, 모든 하늘들이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멀리 버리고 떠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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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너는 주나사미(周那沙彌)를 보았었느냐. 그는 깨끗하지 못하고 악취가 나는 쓰레기 속에서 물건들을 줍고 걸식한 뒤에 아뇩(阿耨)의 큰 못에 나아가서 그것을 빨려고 하자 그 때 못 곁에 상주(常住)하고 있던 모든 하늘들이 모두 멀리서 받들어 영접하면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그 모든 하늘들을 모두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그 주나사미가 주어 온 깨끗하지 못한 누더기 옷감들을 받아다 그를 위하여 깨끗이 빨아 더러운 때가 없게 하였고 또 그 빨은 물로써 자신들의 몸을 씻었느니라. 모든 하늘들은 주나가 깨끗한 계율을 지녔고 모든 선정에 들었으며 큰 위덕이 있음을 알았었나니, 이 때문에 받들어 영접하면서 공경하고 예배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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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너는 수발타(須跋陀) 범지(梵志)를 보았었느냐. 깨끗한 옷을 입고 걸식한 뒤에 아뇩의 큰 못에 이르려고 할 때에 상주하는 그 하늘들은 못의 사면에서 저마다 5리(里)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범지를 막으며 못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그것은 깨끗하지 못한 음식과 밥 찌꺼기로 이 큰 못을 더럽힐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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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너는 이제 실제로 그런 일들을 보았거니와 성인의 바른 행과 위엄있는 덕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는 것이니라. 주나사미는 깨끗하지 못한 쓰레기 속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모든 하늘들이 가져다 그를 위하여 빨아주었고 또한 그 빨은 물로써 그의 몸까지 씻었거니와 수발다 범지는 못에서 5리쯤 떨어져 있는 데서부터 그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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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그 누가 이런 일을 듣고 나서도 거룩한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닦고 배우지 않겠느냐. 저 모든 성인과 모든 하늘이며 세간 사람들은 모두가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할 것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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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덕을 구하고자 하여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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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성종(聖種)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근심하지 않아야 하고, 누더기에 대하여 탑(塔)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세존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고, 세간을 벗어난다[出世]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누더기를 입으며 마땅히 그의 마음을 조복해야 하나니,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몸의 깨끗함을 얻거니와 몸이 깨끗하다 하여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것은 아니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몸은 꾸미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부처님 법 중에서 범행(梵行)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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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와 같이 누더기를 입는 비구가 이렇게 잘 배우면 나를 배우는 것이 되고 또한 너에게서 배우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네가 이와 같이 거친 옷을 저축하면 곧 만족할 줄 알아서 성종(聖種)을 행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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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네가 승가리(僧伽梨)를 평상 위나 앉아 있던 곳에 놓아두고는 우다라승(憂多羅僧)을 입고 거닐고 있으면 곧 천만의 모든 하늘들이 너의 승가리에 예배할 것이니, 이 승가리야말로 바로 계율·선정·지혜가 배어든 것이요 몸을 가리는 옷이니라. 가섭아, 알아야 하느니라. 너의 옷조차도 오히려 이렇게 존중과 예배와 공경을 받게 되거늘 하물며 너의 몸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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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전륜왕(轉輪王)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지만 먼저는 좋고 훌륭한 비단옷과 두라옷[頭羅衣]과 가는 무명옷 등의 온갖 훌륭한 옷들을 모두 입었느니라. 나는 지금 만족할 줄 알고 성종(聖種)을 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부러 좋은 옷을 버리고 무덤 사이에 있는 옷들을 가져다 입는 것이니, 만일 장차 오는 세상의 비구들이 나의 이 법을 들으면 곧 나를 배우게 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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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네가 본래 가졌던 금실로 된 훌륭한 옷[金縷上衣]을 내가 너에게 구하자 너는 가져다 나에게 주었느니라. 가섭아, 나는 너를 가엾이 여기어서 곧 너를 위하여 받았던 것이요 탐욕 때문도 아니고 몸을 장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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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어떤 악한 비구는 나를 배우지도 못하고 또한 너를 배우지도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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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탐욕에 가려져서 옷과 발우를 많이 저축하고 음식을 쌓아 모으면서 감추어 놓고 버리지도 못하며 또한 금·은·유리·곡식·소·양·닭·돼지·나귀·말·수레 및 농사짓는 기구 등의 집안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해서 쌓아 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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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지혜 있는 사람은 비록 집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착한 법을 늘릴 수 있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출가하였으면서도 이런 착한 갈래를 얻을 수 없느니라. 어떻게 지혜 있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도 착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는가 하면 가섭아, 어떤 출가한 이가 가사(袈裟)를 목에 둘렀을 때에 사문으로서의 행이 없고 반연하는 일이 많으며 갖가지로 속박되어 좋은 의복과 음식을 구하고 있는데도 가사를 입고 있다 하여 집에 있는 사람은 그를 보고 예배 공경하면서 의복·음식·침구·탕약 등을 공급하며 오고 가는 데에 맞이하고 배웅하느니라. 가섭아, 집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착한 법을 얻고 있거니와 저 출가한 사람에게는 이런 일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출가한 사람은 구하는 것만 많으면서 남에게는 보시할 줄 모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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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비구가 옷과 발우를 많이 저축하고 모든 물건들이 많이 있을 때에 그 비구에게는 많은 집에 있는 사람들이 예배와 공경과 존중과 찬탄을 받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비구는 다른 이의 보시를 많이 받아서 혹시 가져다 나에게 주기도 하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때마다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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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혹 어떤 비구가 계율을 지니면서 세간의 허물을 보고 부지런히 착한 법을 닦으면서 온갖 번뇌를 여읨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며 그 마음은 만족할 줄 알고 모든 반연하는 일이 적으며 부지런히 자기의 이익을 닦으면서 온갖 악한 인연을 익힌 이를 여의고 있을 때에 그 비구에게는 그에게 가는 사람도 없고 친근히 하는 이도 없으며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이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은 경솔하고 천박하여서 현재 세상의 이익만을 보고 미래 세상의 이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 비구의 곁에서는 친근하여 예배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여 보았자 이익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느니라. 가난한 사람과 선근이 적은 이와 전생의 인연으로 마땅히 공경해야 할 사람만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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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람들이 친근하고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사람은 계율을 지닌 비구이니, 그를 선지식(善知識)으로 삼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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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이렇게 말하고 나면 두 부류의 사람의 뜻과 일치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聖諦]를 본 이요, 둘째는 나고 죽음의 허물을 본 이니라. 다시 두 부류가 있으니, 첫째는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네 가지 멍에[扼]를 여의려고 하는 이요, 둘째는 사문의 과위[沙門果]를 얻고자 하는 이이니라. 또 두 부류가 있나니, 첫째는 오로지 업보(業報)만을 생각하는 이요, 둘째는 모든 법 모양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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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나는 이제 온갖 게으른 이의 문을 닫아 막나니, 이른바 업을 모르고 업보를 모르는 이요 착한 의식(儀式)을 여읜 이니라. 미래 세상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현재 세상의 이익만을 보고 뒷세상의 이익은 보지 않나니, 한 생각도 해탈의 문을 향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저 악한 비구는 희망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하노니, 만일 이와 같은 법을 말하거나 이와 같은 법을 만나거나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면 스스로 행할 바를 알겠거늘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비방하면서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논사(論師)가 지었다, 혹은 악마가 한 말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느니라. 저 악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 또한 남을 해치며 자기 자신이 더러움에 물들면서 또한 남도 물들게 하나니, 이런 악한 비구는 자기를 이익 되게 할 수도 없고 또한 남도 이익 되게 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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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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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마치 모든 부처님의 대비(大悲)와 같기 때문에 오로지 수행하는 비구에게 모든 법 가운데서 자재할 수 있다는 말씀을 여래께서는 이 경 가운데서 이미 널리 말씀하여 마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들은 뒤에 믿고 이해하여 읽고 외우면서 여실(如實)한 법을 향하면 이 중생이야말로 벌써 모든 부처님께서 거두어들이신 줄 알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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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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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이라도 이 경을 받아 지니면 이미 먼저의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지금 이 경을 읽고 외우면서 환히 알려고 하는 것이요 해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니라. 이른바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출가하여 배우는 이거나 집에 있으면서 배우는 이거나 간에 이 법문으로 모든 번뇌를 끊고 또한 열반도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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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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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이 경을 받아 지니려 하옵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며 어떻게 받아 지니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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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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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의 이름은 『선택일체법보경(選擇一切法寶經)』이라 하며 또한 『안주성종의식경(安住聖種儀式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섭취지계자경(攝取持戒者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절해파계자경(節解破戒者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량경(寶梁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취경(寶取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장경(寶藏經)』이라고도 하며 또한 『제보법문경(諸寶法門經)』이라고도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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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가섭이 이 『대승보량경』을 물어 마치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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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5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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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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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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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무진혜보살회(無盡慧菩薩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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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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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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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다시 1만의 보살마하살이 함께 있었으니, 이른바 혜당(慧幢) 보살·법당(法幢) 보살·월당(月幢)보 살·일당(日幢) 보살·무변당(無邊幢) 보살들이었고, 다시 열여섯 명의 재가(在家)보살이 있었으니 발타바라(跋陀婆羅)가 으뜸이었으며, 다시 60명의 비유할 데 없는 마음[無比喩心]을 지닌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문수사리(文殊師利)가 으뜸이었고, 다시 현겁(賢劫) 중의 온갖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미륵(彌勒) 보살이 으뜸이었다. 또 6만의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무진혜(無盡慧) 보살이 으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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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무진혜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머리 조아려 예배 공경하고 뭇 보배꽃을 부처님께 받들어 뿌린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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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말씀한 보리심(菩提心)이라 함은 무슨 이치 때문에 보리심이라 말씀하시나이까? 보살은 다시 몇 가지 법으로써 보리심을 성취하나이까? 어찌하여 이 보리심은 보리 가운데서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마음 가운데서도 보리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보리를 여의고서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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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고서 보리 또한 얻을 수 없나이까? 보리란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으며 마음도 역시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드러내 보일 수도 없으며 중생도 역시 그러하여 모두 얻을 수 없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이와 같거늘 어떤 이치에 의거하여 수행하여야 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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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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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너는 이제 자세히 나의 설명을 들어라. 보리란 본래 이름도 말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보리 가운데서는 이름과 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마음과 중생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만일 이와 같이 알면 보리심이라 한다. 보리란 과거와 미래와 현재도 아니며 마음과 중생도 역시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아니니, 만일 이런 이치를 알면 이것을 보살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역시 얻을 수 없고 온갖 법에서도 도무지 얻을 것이 없나니, 이것을 보리심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마치 아라한이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으면서도 이 가운데서는 도무지 얻은 것이 없고 오직 세속에서 말하는 것에 따라 과위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온갖 법에서 모두 얻을 것이 없다. 보리심을 얻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처음 행하는 보살을 이끌어 거두기 위하여 보리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그 가운데서는 마음도 없고 마음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보리도 없고 보리라는 이름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중생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성문(聲聞)도 없고 성문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독각(獨覺)도 없고 독각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보살도 없고 보살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여래도 없고 여래라는 이름도 없으며, 유위(有爲)도 없고 유위라는 이름도 없으며, 무위(無爲)도 없고 무위라는 이름도 없으며, 현재에 얻는 것도 없고 장래에 얻을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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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나는 이제 말에 의거하여 이와 같이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리라. 만일 어떤 모든 중생이 선근이 광대하여 모든 중생 가운데서 뛰어나기가 마치 수미산이 온갖 것을 뛰어넘는 것과 같으며, 이것이 첫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보시[施]바라밀의 인(因)이 되느니라. 마치 대지(大地)와 같아서 온갖 하는 일에 잘 머무르면 이것이 두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계율[戒]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뜻함이 용맹스럽고 번뇌를 편안히 받아들임이 마치 사자왕이 많은 짐승들을 위력으로 항복시키면서 몸에 두려워함이 없는 것같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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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이것이 세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인욕[忍]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세력이 씩씩하고 재빠르면서 번뇌를 잘 조복함이 마치 나라연역사(那羅延力士)가 다른 대중을 꺾어 다스리듯 하면 이것이 네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정진(精進)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공덕과 선근을 갖가지로 개발함이 마치 파리질다나무[波利質多樹]와 구비다라나무[俱鞞陀羅樹]의 꽃이 활짝 핀 듯 하면 이것이 다섯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선정[禪]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제거함이 마치 해의 광명이 그지없듯 하면 이것이 여섯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반야(般若)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공덕과 즐겨하는 마음[意樂]으로 온갖 장엄이 모두 원만하게 함은 마치 큰 우두머리 상인[大商主]에게 재물이 풍족하여 교묘한 방편으로써 많은 어려움을 구제하듯 하면 이것이 일곱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방편(方便)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장애가 없어지고 하고자 하는 뜻[意樂]이 두루 갖추어짐이 마치 깨끗한 보름달같이 되면 이것이 여덟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역(力)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이 모두 다 장엄하고 깨끗하고 착한 법이 두루 갖추어지며 할 일을 다 마침이 마치 가난한 사람이 다함 없는 보배창고를 얻어서 바라는 바가 원만하여짐 같이 하면 이것이 아홉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원(願)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복과 지혜가 그지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고 법에서 자재함이 마치 전륜왕이 이미 관정(灌頂)을 받은 것같이 하면 이것이 열 번째 내는 마음이어서 지(智)바라밀의 인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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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만일 이 열 가지 내는 마음을 닦아 익히어 성취하면 보살이라 하고 가장 뛰어난 중생이라 하며 장애 없는 중생이라 하고 하열하지 않은 중생이라 하느니라. 그러나 진실한 이치로서는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그 가운데서는 중생도 없고 마음도 없고 보리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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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야,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믿음의 뿌리[信根]요, 둘째는 믿음의 힘[信力]이며, 셋째는 하고자 하는 뜻[意樂]이요, 넷째는 더욱 하고자 하는 뜻[增上意樂]이며, 다섯째는 중생을 이롭게 함이요, 여섯째는 크게 인자함[大慈]이며, 일곱째는 크게 가엾이 여김[大悲]이요, 여덟째는 4섭법(攝法)을 행함이며, 아홉째는 부처님 법을 좋아함이요, 열째는 온갖 지혜[一切智]를 구함이니,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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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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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계율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몸의 업[身業]이 깨끗하고, 둘째는 말의 업[語業]이 깨끗하며, 셋째는 뜻으로 짓는 업[意業]이 깨끗하고, 넷째는 원망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며, 다섯째는 나쁜 갈래[惡趣]를 깨끗이 제거하고, 여섯째는 여덟 가지 어려움을 멀리 여의며, 일곱째는 모든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를 초월하고, 여덟째는 부처님의 공덕에 편히 머무르며, 아홉째는 모든 희망을 만족시키고, 열째는 큰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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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인욕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성을 내지 아니하고 둘째는 그의 몸을 헤아리지 않으며, 셋째는 그의 목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넷째는 믿고 이해하며, 다섯째는 중생을 성숙시키고, 여섯째는 인자한 힘을 내며, 일곱째는 법인(法忍)을 따르고, 여덟째는 법인이 매우 깊으며, 아홉째는 뛰어난 법인이 광대하고, 열째는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깨뜨리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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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정진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모든 중생의 짓는 일을 따라서 짓고, 둘째는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항상 따라 기뻐하는[隨喜] 마음을 내며, 셋째는 게으름이 없고, 넷째는 힘써 나아가며, 다섯째는 4정근(正勤)을 닦고, 여섯째는 4념처(念處)를 닦으며, 일곱째는 번뇌의 원수를 깨뜨리고, 여덟째는 모든 법을 관찰하며, 아홉째는 온갖 중생을 성숙시키고, 열째는 온갖 지혜를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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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선정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착한 법에 편히 머무르고 둘째는 마음이 한 경계를 반연하며, 셋째는 반연하는 경계에 평등하게 이르고, 넷째는 바른 선정[正定]이요, 다섯째는 선에서 해탈함[禪解脫]이며, 여섯째는 선정의 뿌리[定根]요, 일곱째는 선정의 힘[定力]이며, 여덟째는 번뇌의 원수를 깨뜨리고, 아홉째는 선정의 무더기가 원만하며, 열째는 법을 보호하는 삼매(三昧)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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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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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첫째는 모든 음(陰)을 잘 관찰하고, 둘째는 계(界)와 처(處)를 잘 관찰하며, 셋째는 바른 소견[正見]을 지니고, 넷째는 바른 기억[正念]을 지니며, 다섯째는 거룩한 진리[聖諦]를 분명히 알고, 여섯째는 모든 소견을 버리고 여의며, 일곱째는 지혜의 뿌리[慧根]요, 여덟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이며, 아홉째는 지혜의 힘[慧力]이요, 열째는 장애 없는 지혜[無障碍智]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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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방편(方便)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모든 중생의 마음의 작용[心行]과 즐겨 행함[欲樂]에 들어가고, 둘째는 힘으로써 모든 중생을 가호(加護)하며, 셋째는 크게 사랑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며, 넷째는 중생을 성숙시키면서 싫증을 내거나 게으름이 없으며, 다섯째는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버리고 여의며, 여섯째는 지혜와 소견[智見]이 빼어나며, 일곱째는 모든 바라밀을 닦아 익히며, 여덟째는 사실대로 모든 법을 관찰하고, 아홉째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거두며, 열째는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地]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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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힘[力]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지어 가는[心行] 빽빽한 숲[稠林]을 알고, 둘째는 모든 중생이 번뇌로 지어 가는[煩惱行] 빽빽한 숲을 알며, 셋째는 모든 중생이 의욕과 뛰어난 견해로 지어 가는[意樂勝解行] 빽빽한 숲을 알고 ,넷째는 모든 중생이 감관으로 지어 가는[根行] 빽빽한 숲을 알며, 다섯째는 모든 중생이 갖가지 계로 지어 가는[界行] 빽빽한 숲을 알고, 여섯째는 온갖 중생이 수번뇌로 지어 가는[隨煩惱行] 빽빽한 숲을 알며, 일곱째는 온갖 중생이 죽음과 삶으로 지어 가는[死生行] 빽빽한 숲을 알고, 여덟째는 모든 중생이 3세의 업보로 지어 가는[三世業報行] 빽빽한 숲을 알며, 아홉째는 모든 중생이 습기와 번뇌로 지어 가는[濕氣煩惱行] 빽빽한 숲을 알고, 열째는 피곤해함이 없는 마음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면서 모든 감관으로 지어 가는[諸根行] 빽빽한 숲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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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소원[願]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온갖 법은 생김이 없음[無生]을 알고, 둘째는 온갖 법은 모양이 없음[無相]을 알며, 셋째는 온갖 법은 사라짐이 없음[無滅]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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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넷째는 온갖 법은 아무 것도 없음[無所有]을 알며, 다섯째는 온갖 법에 대하여 집착이 없고, 여섯째는 온갖 법은 옴이 없음[無來]을 알며, 일곱째는 온갖 법은 감이 없음[無去]을 알고, 여덟째는 온갖 법에는 제 성품[自性]이 없음을 알며 아홉째는 온갖 법은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없어서 평등함을 알고, 열째는 온갖 법은 처음이나 중간이나 나중의 분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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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보살이 지혜[智]바라밀을 행하는 데에는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느니라. 첫째는 온갖 법을 분명히 알아서 잘 결정하여 가리고[決擇], 둘째는 희고 깨끗한 법[白法]을 잘 원만하게 하며, 셋째는 보살의 한량없는 양식[資糧]을 쌓아 익히고, 넷째는 광대한 복과 지혜의 양식을 성취하며, 다섯째는 크게 가엾이 여김[大悲]이 원만하고, 여섯째는 갖가지 차별된 세계에 들어가며, 일곱째는 중생의 모든 번뇌의 행에 들어가고, 여덟째는 뜻을 내어[作意]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며, 아홉째는 10력(力)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畏]과 다른 이와 공유하지 않는 열 여덟 가지 부처님 법[十八不共佛法]의 수승한 경계에 들어가고, 열재는 관정위(灌頂位)를 받아 온갖 지혜의 가장 뛰어난 모양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법이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바라밀을 행하는 데 있어서 모두 열 가지 법을 으뜸으로 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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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야, 어떤 것이 바라밀의 이치냐 하면, 이른바 모든 성문이나 독각을 초월하여 행할 바를 밝혀 보이기 때문이요, 광대하고 원만한 여래의 지혜이기 때문이며,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요, 나고 죽음의 허물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깨닫게 하기 때문이요, 여래의 그지없는 법의 창고[法藏]를 얻기 때문이니라. 장애 없는 해탈을 얻기 때문이요, 보시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기 때문이며, 계율을 지님으로써 본래 세운 서원을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요, 인욕으로써 단정하고 엄숙한 모양을 두루 갖추기 때문이며, 정진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법을 마치기 때문이요, 선정으로써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을 나오게 하기 때문이며 반야로써 모든 번뇌를 없애기 때문이니라. 방편으로써 모든 부처님 법을 쌓아 모으기 때문이요, 소원으로써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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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 법을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며, 힘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깨끗하게 믿게 하기 때문이요, 지혜로써 여래의 온갖 지혜를 두루 갖추기 때문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기 때문이요,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地]를 얻기 때문이며,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다스리기 때문이요, 중생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며,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모든 여래의 지혜를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요, 많은 악마를 항복 받기 때문이니라. 사신족(四神足)에 노닐기 때문이요, 생사와 열반에서 다 같이 머무름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성문과 독각과 보살의 공덕을 뛰어넘기 때문이요, 모든 다른 이론[異論]을 꺾어 다스리기 때문이며,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불공불법(不共佛法)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최고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기 때문이며, 열두 가지 법륜(法輪)을 굴리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온갖 것이 바로 바라밀의 이치이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장차 처음의 환희지(歡喜地)에 머무르려 할 적에는 먼저 이런 조짐이 있게 되나니,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백천만억 나유타의 뭇 보배가 묻힌 창고[伏藏]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2의 이구지(離垢地)에 머무르려 할 적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삼천대천세계의 땅이 편편하기가 마치 손바닥과 같이 되고 한량없는 백천 나유타의 뭇 보배 연꽃이 청정하고 엄숙하게 장식된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3의 발광지(發光地)에 머무르려 할 때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자기 몸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고 용맹스럽고도 굳세게 원수를 꺾어 조복하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4의 염혜지(焰慧地)에 머무르려 할 적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면서 갖가지 이름 있는 꽃이 땅에 널리 깔린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5의 난승지(難勝地)에 머무르려 할 때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여인의 머리에 아제목다(阿提目多)꽃의 꽃다발과 바리사가(婆利師迦)꽃의 꽃다발과 첨복가(瞻蔔迦)꽃의 꽃다발을 이고 있고 몸에는 갖가지 뭇 보배의 꾸미개를 차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6의 현전지(現前地)에 머무르려 할 때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꽃이 핀 못에 8공덕수(功德水)의 맑은 물이 가득 차 있고 그 밑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으며 보배의 계단으로 된 네 개의 길이 있으면서 또 그 못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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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발라(優鉢羅)꽃과 파두마(波頭摩)꽃과 구물두(拘物頭)꽃이 피었고 다시 분타리(分陀利)꽃으로 장엄한 것이 보이며 다시 자기 자신이 그 안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7의 원행지(遠行地)에 머무르려 할 때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자기 몸의 좌우 양 곁에 모두 지옥이 있는데 그것을 뛰어넘으면서 조금도 다친 데가 없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8의 부동지(不動地)에 머무르려 할 때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자기 몸의 양어깨가 큰 사자의 어깨처럼 되면서 온갖 모든 짐승들이 모두 다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9의 선혜지(善慧地)에 머무르려 할 적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자기의 몸이 전륜왕이 되어서 바른 법으로 교화하고 한량없는 백천 나유타의 모든 왕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갖가지의 보배로 장엄된 산뜻한 일산이 보살 위를 덮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이 장차 제10의 법운지(法雲地)에 머무르려 할 때에는 먼저 이러한 조짐이 있게 되나니, 자기 몸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여래의 서른 두 가지의 대장부 모습[相]과 한 길이나 되는 원광(圓光)을 두루 갖추면서 높고 넓은 사자자리[師子座]에 앉으며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의 범천(梵天)들이 앞뒤로 에워싸고서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설법을 듣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삼매(三昧)의 힘으로 이렇게 10지(地)에서 먼저 나타나는 조짐이 있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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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야, 초지(初地) 보살은 보시[施]바라밀이 원만하게 되고, 2지(地) 보살은 계율[戒]바라밀이 원만하게 되며, 3지 보살은 인욕[忍]바라밀이 원만하게 되고, 4지 보살은 정진(精進)바라밀이 원만하게 되며, 5지 보살은 선정[禪]바라밀이 원만하게 되고, 6지 보살은 반야(般若)바라밀이 원만하게 되며, 7지 보살은 방편(方便)바라밀이 원만하게 되고, 8지 보살은 힘[力]바라밀이 원만하게 되며, 9지 보살은 소원[願]바라밀이 원만하게 되고, 10지 보살은 지혜[智]바라밀이 원만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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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야, 첫 번째로 발심(發心)하면 보배가 나타나는[現寶] 삼매(三昧)를 얻고, 두 번째로 발심하면 잘 머무르는[善住] 삼매를 얻으며, 세 번째로 발심하면 동요하지 않는[不動] 삼매를 얻고, 네 번째로 발심하면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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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不退轉] 삼매를 얻으며, 다섯 번째로 발심하면 보배꽃[寶花]의 삼매를 얻고, 여섯 번째로 발심하면 햇빛 광명[日輪光明]의 삼매를 얻으며, 일곱 번째로 발심하면 온갖 이치를 성취하는[成就一切義] 삼매를 얻고, 여덟 번째로 발심하면 지혜 횃불[智炬]의 삼매를 얻으며, 아홉 번째로 발심하면 현재 부처님 법을 증득하는[現證佛法] 삼매를 얻고, 열 번째로 발심하면 수능엄(首楞嚴) 삼매를 얻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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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야, 보살은 초지(初地)에서 훌륭한 자비로 호지하는[殊勝加持] 다라니(陀羅尼)를 얻고, 제2지(地)에서는 보다 나은 이가 없는[無能勝] 다라니를 얻으며, 제3지에서는 잘 머무르는[善住] 다라니를 얻고, 제4지에서는 무너뜨릴 수 없는[不可壞] 다라니를 얻으며, 제5지에서는 때 없는[無垢] 다라니를 얻게 되느니라. 제6지에서는 지혜 바퀴 등불[智輪燈]의 다라니를 얻고, 제7지에서는 훌륭한 행[殊勝行]의 다라니를 얻으며, 제8지에서는 깨끗하게 분별하는[淸淨分別] 다라니를 얻고, 제9지에서는 그지없는 법문을 나타내 보이는[示現無邊法門] 다라니를 얻으며, 제10지에서는 그지없는 법을 간직한[無盡法藏] 다라니를 얻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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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모임 가운데에 무애광명사자당(無礙光明師子幢)이라는 한 천자(天子)가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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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희유하나이다. 선서(善逝)이시여, 이와 같은 법문은 매우 깊고 광대하여서 모든 불법을 모두 포함하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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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부처님께서 무애광명사자당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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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너의 말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라도 이 법문을 잠시 동안만 들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그 선남자와 선여인은 일찍이 모든 선근을 심고 그 선근이 성숙된 까닭에 이러한 경전을 듣게 되는 것이요, 이 경전에서 인가(印可)를 받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남자나 여인이 이 경전을 들으면 심었던 선근이 모두 다 깨끗하여져서 당연히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으며 뭇 승가[僧]에게 공양하고 중생을 성숙시키기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해인다라니(海印陀羅尼)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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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지없는[出現無盡] 다리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중생의 욕락과 마음의 작용에 들어가는[入衆生欲樂心行]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청정한 햇빛 당기[淸淨日光幢]의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느니라. 또 때 없는 달빛 당기[無垢月光幢]의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온갖 번뇌를 쉬는[息一切結]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끝없이 견고함이 마치 금강산과 같은 번뇌를 꺾어 없애는[摧滅無邊堅如金剛山煩惱]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평등한 법 성품과 언설에 들어가는[入平等法性言說]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진실한 언어와 음성에 들어가는[入眞實語言音聲]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마치 허공과 같이 끝없이 깨끗한 도장과 도장 찍을 대상이 나타나는[如虛空顯現無邊淸淨印所印]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며, 끝없는 부처님 몸을 성취하고 나타나는[成就顯現無邊佛身] 다라니를 버리거나 여의지 않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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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은 다라니를 성취하면 시방의 온갖 국토에서 변화로 부처님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성품에서는 오거나 감이 없으며 또한 다시 중생을 교화함도 없다. 설한 바의 법에서 문자(文字)에 집착하지 않고 평등하여 동요함이 없느니라. 비록 몸으로 나고 죽음을 나타내더라도 일어나거나 사라짐이 없으며, 또한 조그마한 법도 가고 옴이 있는 것이 없으니 모든 행(行)이 본래 고요하여 불법에 편히 머무름을 분명하게 아느니라. 왜냐 하면 저 온갖 모든 법에는 분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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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을 말씀할 때에 대중 가운데 3만의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한량없는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位]를 얻었으며, 한량없는 중생이 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비구들의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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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무진혜(無盡慧) 보살과 모든 비구며 세간의 하늘·사람·아수라·건달바 등이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믿어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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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문수설반야회(文殊說般若會) ① |
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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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승 천 인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 십천(十千) 인도 큰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모두 다 이미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미륵(彌勒) 보살과 문수사리(文殊師利) 보살과 무애변(無礙辯) 보살과 불사담(不捨擔) 보살이었으니, 이와 같은 큰 보살들과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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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 동진(文殊師利童眞) 보살마하살이 동트는 무렵에 그가 있던 곳에서부터 부처님 계신 데로 나와서 밖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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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과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와 대목건련(大目犍連)과 마하가섭(摩訶迦葉)과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과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의 이러한 큰 성문들이 저마다 있던 데서부터 다 함께 부처님 계신 데로 나와서 밖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이 모두 다 모여있는 것을 아시고 그 때 여래께서는 계시는 곳으로부터 나오셔서 자리를 펴고 앉으신 뒤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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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른 새벽에 문 밖에 서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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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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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문수사리 동진 보살이 먼저 이미 이 곳으로 와서 문 밖에 서있었사오며 저는 사실 그 뒤에 늦게 나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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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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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실로 이 곳에 먼저 와 있으면서 여래를 보려고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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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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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실로 이곳으로 와서 여래를 뵙고자 하였나이다. 왜냐 하면 저는 바르게 관찰하여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려 한 까닭이옵니다. 저는 여래의 여여한 모습[如如相]과 다르지 않은 모습과 움직이지 않는 모습과 짓지 않는 모습과 생김이 없는 모습과 사라짐이 없는 모습과 있지 않은 모습과 없지 않은 모습과 한 곳에 있지도 않고 한 곳을 여의지도 않으며 3세(世)도 아니고 3세가 아닌 것도 아니면서 두 모습도 아니며 둘이 아닌 모습도 아니며 더러운 모습도 아니며 깨끗한 모습도 아님을 관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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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사오며 이러한 것들로 바르게 여래를 관찰하여 중생을 이익 되게 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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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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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와 같이 여래를 본다면 마음에 취하는 것도 없고 또한 취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쌓아 모은 것도 아니고 쌓아 모으지 않는 것도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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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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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이 말씀한 것과 같아서 여래를 뵙는 것이 매우 희유합니다. 모든 중생을 위하여 여래를 뵈오면서도 마음에 중생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열반에 향하게 하면서도 역시 열반에 향하게 하는 모양도 취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큰 장엄을 일으키면서도 마음에는 장엄한 모양을 보지도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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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문수사리 동진 보살마하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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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씀과 같습니다. 비록 온갖 중생을 위하여 큰 장엄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중생의 모양이 있음을 보지도 않으며 온갖 중생을 위하여 큰 장엄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중생의 세계 또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 가령 한 부처님이 세간에 머무시면서 1겁 또는 1겁을 더 지나도록 이러한 한 부처님 세계에서 다시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이 계시고 각각의 부처님께서 1겁 또는 1겁을 더 지나도록 밤낮으로 설법하면서 마음에 잠시도 쉬지 않고 각각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모두 열반에 들게 한다 하여도 중생세계는 역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도 역시 그와 같아서 각각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법하고 교화하여 각각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여 모두를 열반에 들게 한다 하여도 중생세계는 역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중생이란 일정한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중생 세계는 더하거나 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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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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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중생의 세계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 항상 설법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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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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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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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중생이 모두 공한 모양이라면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보살도 없을 것이오며 그들을 위하여 설법할 중생도 없을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저의 설법 중에는 한 법도 얻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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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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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중생이 없다면 어찌하여 중생과 중생 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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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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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세계의 모양은 마치 모든 부처님 세계와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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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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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세계란 한량[量]이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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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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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세계의 분량은 마치 부처님 세계의 분량과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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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세계의 분량에는 처소가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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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세계의 분량은 불가사의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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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세계의 모양은 머무름이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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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머무름이 없음은 마치 허공에 머무름과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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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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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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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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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지 않는 법[不住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무르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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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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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머무르지 않는 법을 반야바라밀에 머무른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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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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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이 없는 모양[無住相]으로써 곧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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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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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를 때 이 모든 선근(善根)은 어떻게 더욱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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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어떻게 줄어 없어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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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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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를 수 있으면 모든 선근에는 더함이 없고 줄어짐도 없으며 또한 온갖 법에서도 더함이 없고 줄어짐도 없으며 이 반야바라밀의 성품[性]과 모양[相] 역시 더함이 없고 줄어짐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곧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고 성현의 법을 취하지도 않나이다.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취할 수 있거나 버릴 수 있는 어떠한 법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역시 좋아할 만한 열반이나 싫증낼만한 생사도 보지 못하옵니다. 왜냐 하면 생사조차도 보지 못하거늘 하물며 싫증을 내며 여의겠나이까? 열반조차도 보지 못하거늘 하물며 즐거워하며 집착하겠나이까?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버릴 만한 때나 괴로움[垢惱]을 보지 못하고 또한 취할 만한 공덕도 보지 못하며 온갖 법에서 마음은 더하거나 줄어짐이 없나이다. 왜냐 하면 법계(法界)에는 더함과 줄어짐이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을 닦는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에서 생김이 있고 멸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에서 더함이 있고 줄어짐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에 희망하여 취함이 없고 법의 모양에서 취할 만한 것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름답거나 추(醜)하다고 보지 않고 높거나 낮음을 생하지도 않으며 취하거나 버림도 짓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법에는 아름답거나 추함이 없나니 모든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요, 법에는 높거나 낮음이 없나니 평등한 법 성품이기 때문이며, 법에는 취하거나 버림이 없나니 실제(實際)에 머무르기 때문이옵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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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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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부처님 법이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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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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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법에서 훌륭하고 여여한 모양[勝如相]을 보지 못하였사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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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스스로 온갖 법의 공함을 깨달으셨나니, 이것을 증득하여 알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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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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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여래는 바르게 깨달았고 스스로 공한 법을 증득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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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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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공한 법 중에는 수승하고 여여함[勝如]이 있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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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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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야, 너의 말과 같아서 그것이 진실한 법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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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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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阿耨多羅)를 바로 불법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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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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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아뇩다라를 바로 불법이라 하나이다. 왜냐 하면 얻을 만한 법이 없음을 아뇩다라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법의 그릇[法器]이라 하지 않고 범부를 교화하는 법도 아니며 또한 부처님 법도 아니고 더욱 자라는 법도 아니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또 세존이시여, 반아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분별하고 생각할 만한 어떠한 법도 보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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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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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느냐[不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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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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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한 대로라면 부처님 법을 보지 못하고 또한 이것이 범부의 법이요 이것이 성문의 법이며 이것이 벽지불의 법이라고 분별할 수도 없나니, 이와 같은 것을 위없는 부처님 법이라 하나이다. 또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범부의 모양을 보지 않고 부처님 법의 모양도 보지 않으며 모든 법의 결정됨[決定]이 있는 모양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또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욕심 세계[欲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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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 모습의 세계[色界]도 보지 않으며 모습 없는 세계[無色界]도 보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어떠한 법도 이것이 다하여 없어지는 모양을 보지 않기 때문이오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또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은혜를 베푸는 이를 보지 않고 은혜를 갚는 이도 보지 않으며 두 모양을 생각하는 마음에도 분별이 없사오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또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사옵니다. 또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이것이 부처님의 법이라 취해야 한다고도 보지 않고 이것이 범부의 법이라 버려야 한다고도 보지 않사오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또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범부의 법이라 소멸해야 된다고도 보지 않고 또한 부처님의 법이라 마음으로 증득하여 안다고도 보지 않사오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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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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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너는 그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의 모양을 잘 설명하였도다. 이것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배울 법인(法印)이고, 또 성문과 연각 가운데 배울 것이 있는 이[有學]와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人]도 역시 이 법인을 여의지 않으면서 도의 과위[道果]를 닦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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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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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이 법을 얻어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천의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요 나아가 백천만억의 부처님 처소에서 오래도록 덕의 근본을 심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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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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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 반야바라밀의 이치를 말씀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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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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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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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이 법에는 머물러야 하고 이 법에는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함을 보지 않으며 또한 취하고 버려야 할 모양의 경계도 보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마치 모든 여래처럼 온갖 법이나 경계의 모양을 보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또 모든 부처님의 경계도 보지 않거든 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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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성문이나 연각과 범부의 경계이겠나이까?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리는 모양[思議相]도 취하지 않고 또한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모양[不思議相]도 취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약간 있는 모양도 보지 않고 스스로 공한 법의 불가사의함을 증득하나이다. 이러한 보살마하살은 모두 이미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모든 선근을 심었었기에 비로소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수 있나이다. 또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속박도 보지 않고 해탈도 보지 않으며 그러면서 범부로부터 3승(乘)에 이르기까지의 차별된 모양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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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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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얼마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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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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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모든 부처님께서는 마치 허깨비와 같은 모양이므로 공양과 주고받는 이를 보지 못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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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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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불승(佛乘)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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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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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과 같아서는 하나의 법도 보지 않거늘 어떻게 불승에 머무를 수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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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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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너는 불승을 얻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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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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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승이라 함은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볼 수 없는 것이어늘 제가 어떻게 얻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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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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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너는 장애 없는 지혜[無礙智]를 얻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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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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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곧 장애 없는 것이어늘 어떻게 장애 없는 것으로써 장애 없는 것을 얻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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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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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량(道場)에 앉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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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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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모든 여래께서 도량에 앉으시지 않으셨거늘 제가 이제 어떻게 혼자 도량에 앉겠나이까? 왜냐 하면 현재 모든 법을 보건대 실제(實際)에 머물렀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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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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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실제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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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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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소견[身見] 등이 바로 실제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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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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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몸에 대한 소견이 바로 실제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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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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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여여한 모습을 보아서 진실도 아니고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또한 몸이면서 몸도 아니오니, 이것을 실제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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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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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이런 이치를 진실로 환히 알아서 결정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라 하리이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의 모양을 듣고도 마음에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침몰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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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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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을 얻어듣고 법의 모양을 두루 갖추면 이것은 곧 부처님 자리에 근접한 것이리이다. 왜냐 하면 여래는 현재 이 법 모양을 깨달으셨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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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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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침몰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으면 이 사람이야말로 곧 부처님을 뵈었는 줄 알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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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다시 무상(無相) 우바이가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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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범부의 법과 성문의 법과 벽지불의 법과 부처님의 법의 이 모든 법은 모두 모양이 없사오니, 이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도 모두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침몰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나이다. 왜냐 하면 온갖 모든 법은 본래 모양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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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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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나 선여인이 만일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마음에 결정함을 얻고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침몰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면 이 사람이야말로 곧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地]에 머물러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믿고 좋아하고 듣고 받아들이며 기뻐하면서 싫어하지 않으면 이는 곧 단(檀)바라밀과 시(尸)바라밀과 찬제(羼提)바라밀과 비리야(毘梨耶)바라밀과 선(禪)바라밀과 반야(般若)바라밀을 두루 갖춘 것이요, 또한 다른 이를 위하여 드러내 보이고 분별하면서 말씀한대로 수행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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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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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떠한 이치를 관찰하였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르게 되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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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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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도 없고 저는 불승(佛乘)에 머무르지도 않았거늘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겠나이까? 제가 말한 것과 같은 것이 곧 보리의 모양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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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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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너는 매우 깊은 법 중에서 이런 이치를 교묘히 설명하였도다. 너는 이미 먼저의 부처님께 오래도록 선근을 심었고 모양이 없는 법으로써 깨끗이 범행(梵行)을 닦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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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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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양이 있음을 보았다면 모양이 없음을 말하겠사온데 저는 지금 모양이 있음을 보지 못하며 또한 모양이 없음도 보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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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는 법으로써 깨끗이 범행을 닦았다'고 말씀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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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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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성문(聲聞)의 계율을 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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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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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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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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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떻게 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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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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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범부의 소견을 짓지도 않았고 성인의 소견도 짓지 않았으며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소견도 짓지 않았고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소견도 짓지 않았으며, 큰 소견도 짓지 않았고 작은 소견도 짓지 않았으며, 조복하는 소견도 짓지 않았고 조복하지 않는 소견도 짓지 않았으며 본 것도 아니고 보지 않은 것도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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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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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제 그와 같이 성문승(聲聞乘)을 관찰하셨군요. 만일 불승(佛乘)을 관찰한다면 다시 어떻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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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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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법을 보지 못하고 보리를 수행하는 이와 보리를 증득한 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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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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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하고 어떻게 부처님을 관찰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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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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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나[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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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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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함은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며 이름의 모양은 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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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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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나[我]가 이름이 있을 뿐인 것처럼 부처님도 역시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니, 이름의 모양이 공하니 곧 그것이 보리입니다. 이름으로써는 보리를 구하지 못하나니, 보리의 모양은 말도 없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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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말[言說]과 보리는 둘 다 공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리불이여, 당신은 '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하고 어떻게 부처님을 관찰하느냐'라고 묻는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이름도 아니고 모양도 아닌 것을 부처님이라 합니다. 그리고 마치 자기 몸의 참 모습[實相]을 관찰하는 것처럼 부처님을 관찰하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오직 지혜 있는 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을 뿐이니, 이것을 부처님을 관찰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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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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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6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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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梁) 삼장 만다라선(曼陀羅仙)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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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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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문수사리설반야회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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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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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문수사리가 말한 것과 같은 반야바라밀은 처음 배우는[初學] 보살로서는 환히 알 수 있는 것이 못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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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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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처음 배우는 보살만이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승(二乘)으로서 할 일을 다 마친 이조차도 역시 환히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설법은 알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보리의 모양은 실로 어떠한 법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볼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으며 난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말하는 이도 없고 듣는 이도 없어서 이와 같이 보리의 성품[性]과 모양[相]은 공하고 고요하므로 증득할 것도 없고 알 것도 없으며 형용도 없고 모양도 없거늘 어떻게 보리를 얻는 이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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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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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법계(法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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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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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사리불이여, 왜냐 하면 세존이 곧 법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법계로써 법계를 증득한다 하면 이것은 곧 다투는 이론[諍論]이 됩니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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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불이여, 법계의 모양은 곧 그것이 보리입니다. 왜냐 하면 이 법계 안에는 중생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온갖 법이 공하기 때문이니, 온갖 법이 공함이 곧 보리이어서 둘도 없고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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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여, 분별이 없는 가운데서는 곧 아는 이가 없나니, 만일 아는 이가 없다면 곧 말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말과 설명의 모양이 없으므로 곧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니, 온갖 모든 법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왜냐 하면 온갖 모든 법은 처소를 보지 못하니 결정된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역죄(逆罪)의 모양이 불가사의한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의 참 모습[實相]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역죄도 역시 본래 성품이 없어서 천상에 가 나지도 않고 지옥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열반에 들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온갖 업연(業緣)은 모두가 실제(實際)에 머물러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인과(因果)도 아니고 인과가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법계(法界)는 끝이 없어서 앞도 없고 뒤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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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만일 중죄를 범한 비구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행하는 이도 열반에 들지 않음을 보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공양을 받을 만한 이[應供]도 아니요 공양을 받을 만하지 않는 이도 아니며 번뇌가 다한 이도 아니요 번뇌가 다하지 않는 이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 가운데서 평등한 데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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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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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법인(法忍)에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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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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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법도 나고 없어지는 모양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을 법인에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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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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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또 조복하지 않는 비구[不調比丘]라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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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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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다한 아라한[漏盡阿羅漢]을 바로 조복하지 않는다 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더 조복할 것이 없기 때문에 조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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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고 합니다. 만일 마음의 작용[心行]이 지나치면[過] 범부라 합니다. 왜냐 하면 범부 중생은 법계(法界)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지나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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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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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십니다. 당신은 지금 저를 위하여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이치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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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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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곧 번뇌가 다한 진실한 아라한입니다. 왜냐 하면 성문을 구하는 욕심과 벽지불의 욕심을 끊었기 때문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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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와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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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道場)에 앉았을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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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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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도량에 앉아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음이 없나이다. 왜냐 하면 보리와 같은 모습에는 조그마한 법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지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모습이 없는 것이 보리이거늘 그 누가 앉는 이겠나이까? 또한 일어나는 이도 없나니 이런 인연으로 보살이 도량에 앉은 것을 보지 못하며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지도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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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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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보리가 곧 5역죄(逆罪)이며 5역죄는 두 모습이 없기 때문이오니, 깨달을 것도 없고 깨닫는 이도 없으며 볼 것도 없고 보는 이도 없으며 알 것도 없고 아는 이도 없으며 분별할 것도 없고 분별하는 이도 없나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리라 하나니, 5역의 모습을 보는 것도 역시 그와 같나이다. 만일 보리가 있어서 증득한 이를 본다면 이런 무리가 곧 잘난 체[增上慢]하는 사람인 줄 알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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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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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여래'라고 말하는데 역시 나를 여래라고 여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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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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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를 여래라고 여기지 않나이다.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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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 모습이 없는지라, 여(如)라 할 수 있고 또한 여(如)를 알 수 있는 여래의 지혜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여래와 지혜는 두 모양이 없기 때문이오니, 공함이 여래인데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거늘 제가 어떻게 이 여래라고 여기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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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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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래를 의심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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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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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가 정해진 성품이 없어서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고 관찰하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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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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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여래가 세간에 출현하였다고 여기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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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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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함이 있다면 온갖 법계(法界)도 역시 출현하여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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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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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고 여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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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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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은 한결같은 양[一相]이어서 불가사의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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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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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부처님은 바로 한 모양이어서 불가사의 한 모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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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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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지금 세간에 머물러 계시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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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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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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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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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부처님께서 세간에 머물러 계신다면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도 역시 세간에 머물러 계셔야 하나이다. 왜냐 하면 온갖 모든 부처님은 모두가 동일한 모습이어서 불가사의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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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양이란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습니다. 만일 미래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면 온갖 모든 부처님도 역시 모두 세간에 출현하실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불가사의한 가운데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오니, 다만 중생들이 취하고 집착하여 세간에 출현하심이 있다고 여기고 부처님은 멸도(滅度)하신다고 여길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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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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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여래와 아라한과 아비발치(阿毘跋致)의 보살이 이해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이 세 부류의 사람은 심히 깊은 법을 듣고도 비방하지 않고 또한 찬탄하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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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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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불가사의를 그 누가 비방하겠으며 그 누가 찬탄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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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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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불가사의하며 범부도 역시 불가사의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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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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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범부도 역시 불가사의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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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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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가사의하니라. 왜냐 하면 온갖 마음의 모양이 모두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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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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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와 같이 여래도 불가사의하고 범부도 역시 불가사의하다고 말씀하시면 지금 수없는 모든 부처님께서 열반을 구하시는 것도 한갓 지치기만 할 뿐이옵니다. 왜냐 하면 불가사의한 법이 곧 열반이어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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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이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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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범부의 불가사의와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오래도록 선근을 익히고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여야 비로소 분명히 알 수 있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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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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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5 / 3476] 쪽 |
“너는 여래로 하여금 모든 중생들보다 가장 뛰어나게 하려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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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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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래로 하여금 모든 중생들보다 으뜸가고 제일가게 하려고 하오나 다만 중생의 모양을 역시 얻을 수 없을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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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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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래로 하여금 불가사의한 법을 얻게 하려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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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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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로 하여금 불가사의한 법을 얻게 하려고 하오나 모든 법을 성취하는 이가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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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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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로 하여금 설법하고 교화하게 하려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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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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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로 하여금 설법하고 교화하게 하려고 하오나 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모두 얻을 수 없나이다. 왜냐 하면 법계(法界)에 머무르기 때문이오니, 법계의 중생에게는 차별된 모양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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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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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래로 하여금 위없는 복전(福田)이 되게 하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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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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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바로 그지없는 복전이요 바로 그지없는 모양이오니, 그지없는 모양이 곧 위없는 복전이로되 복전도 아니며 복전이 아닌 것도 아님을 바로 복전이라 하며 밝고 어둡고 나고 없어지는 등의 모양이 없음을 바로 복전이라 하나이다. 만일 이와 같이 복전의 모양을 이해하게 되면 선근의 종자를 깊이 심었으되 역시 더함도 없고 줄어짐도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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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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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선근을 심었으되 더하지도 않고 줄어지지도 않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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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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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전의 모양은 불가사의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그 가운데서 법답게 선근을 닦으면 역시 불가사의하나니, 이와 같이 선근을 심으면 더함도 없고 줄어짐도 없다고 하며 또한 이것이 위없는 가장 뛰어난 복전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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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6 / 3476] 쪽 |
그때 대지(大地)는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서 덧없는 모양을 나타냈는데 만 6천 명이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7백의 비구와 3천의 우바새와 4만억의 우바이와 6천억 나유타의 6욕천(欲天)의 하늘들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의 깨끗함을 얻었다.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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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이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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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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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전에 대한 차별이 없는 모양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런 상서(祥瑞)를 나타내느니라. 옛날 모든 부처님께서도 역시 이 곳에서 이렇게 복전의 모양을 말씀하시어 중생을 이익 되게 하시자 온갖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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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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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문수사리는 바로 불가사의하나이다. 왜냐 하면 말한 바의 법 모양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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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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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사리불의 말과 같아서 네가 말한 것은 실로 불가사의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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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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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불가사의는 말로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과 헤아릴 수 없는 성품은 다 같이 말할 수 없으며 온갖 소리의 모양도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도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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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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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불가사의의 삼매(三昧)에 들어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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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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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곧 생각하거나 헤아릴 수 없어서[不思議] 어떤 마음으로도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거늘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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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불가사의의 삼매에 들어갔다'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처음 발심하면서 이 선정에 들어가려 하였사오나 지금 생각하면 실로 들어가려는 마음의 모양이 없이 이 삼매에 들어가나이다. 마치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면서 오래오래 익히면 익숙하여져서 뒤에는 비록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익혔기 때문에 쏘는 화살마다 모두가 적중하는 것처럼 저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처음 이 불가사의 삼매를 배울 적에는 마음을 한 반연에 매어두었으나 오래 익혀서 성취한지라 다시는 마음이나 생각이 없어도 항상 선정과 함께 하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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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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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뛰어나고 묘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는[寂滅] 선정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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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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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불가사의 선정이 있다 한다면 당신은 '고요히 사라지는 선정이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겠거니와 내가 이해하기로는 불가사의의 선정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고요히 사라지는 선정이 있느냐'라고 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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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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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의 선정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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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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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리는 선정[思議定]은 바로 얻을 수 있는 모양이거니와 불가사의의 선정은 얻을 수 없는 모양이며 모든 중생은 실로 불가사의의 선정을 성취합니다. 왜냐 하면 온갖 마음의 모양은 곧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을 불가사의한 선정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의 모양과 불가사의한 삼매의 모양은 평등하여 분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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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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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너는 모든 부처님께 오래도록 선근을 심어서 청정한 행[梵行]을 닦았기에 이 같이 깊은 삼매를 연설할 수 있느니라. 너는 이제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 안에 편히 머물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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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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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제가 반야바라밀 안에 머물러 있다면 '곧 그것은 있다는 생각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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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라는 생각[我想]에 머무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이다. 만일 있다는 생각과 나라는 생각 안에 머물렀다면 반야바라밀에는 곧 처소가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이 없음[無]에 머물러도 역시 이는 나라는 생각이며 역시 처소가 있다고 할 것이니, 이 두 가지 처소를 여의고 머무를 바 없는 데[無所住]에 머무르면 마치 모든 부처님이 머무르는 것과 같이 고요히 사라진 불가사의한 경계에 편안히 있게 될 것이옵니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함을 반야바라밀의 머무를 곳이라 하나이다. 반야바라밀은 온갖 법의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데에 처하나니, 반야바라밀은 곧 불가사의요 불가사의는 곧 법계(法界)이며 법계는 곧 모양이 없고 모양이 없으면 불가사의하며 불가사의는 곧 반야바라밀이옵니다. 반야바라밀과 법계는 둘이 아니고 구별도 없으며 둘이 없고 구별도 없으면 곧 법계요 법계는 곧 모양이 없으며 모양이 없음은 곧 반야바라밀의 경계요 반야바라밀의 경계는 곧 불가사의의 경계며 불가사의의 경계는 곧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경계요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경계가 곧 불가사의의 경계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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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이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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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경계와 저의 경계는 곧 둘이 없는 모양[不二相]이오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이면 곧 보리를 구하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보리의 모습을 여의면 곧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나의 모양은 집착할 수 없음을 알아서 아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면 이것이 부처님께서 알 것입니다. 불가사의하여 아는 것도 없고 집착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알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알음[知] 자체의 본래 성품은 있는 모습이 없으니 어떻게 법계(法界)를 굴릴 수 있겠나이까? 만일 앎의 본래 성품이 자체도 없고 집착도 없다면 곧 물건이 없다[無物] 합니다. 만일 물건이 없다면 이것은 처소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는 것이오니, 의지한 데도 없고 머무른 데도 없으면 곧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면 곧 그것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공덕이옵니다. 만일 이와 같이 알면 마음이나 생각이 없으며 마음이나 생각이 없으면 어떻게 유위와 무위의 공덕을 알겠나이까? 앎이 없는 것이 곧 불가사의요 불가사의면 바로 부처님만이 알 것이어서 역시 취하는 것도 없고 취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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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없으며 3세(世)의 가고 오는 모양도 보지 않으며 나고 없어짐과 모든 일으키고 짓는 것도 취하지 않으며, 또한 아주 없어지지도 않고[不斷] 항상 있지도 않나이다[不常].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을 바른 지혜[正智]요 불가사의한 지혜[不思議智]라 하나니, 마치 허공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비교할 것도 없으며 좋아하거나 싫어함도 없고 같은 것도 없고 형상도 없고 모습도 없는 것과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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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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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렇게 알면 물러나지 않는 지혜[不退智]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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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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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이 없는 지혜[無作智]를 물러나지 않는 지혜라 하리니, 마치 금광(金鑛)은 먼저 쇠몽둥이로 두드린 다음에야 비로소 좋고 나쁜 것을 알고 만일 다듬고 두드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처럼 물러나지 않는 지혜의 모양도 그와 같아서 중요한 행[要行]의 경계는 생각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일으킴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두루 갖춘 때라야 비로소 나타나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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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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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모든 여래께서 스스로 당신들의 지혜를 말씀함과 같거늘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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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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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지혜는 열반의 법도 아니요 나고 죽는 법도 아니며, 이것은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행이요 움직임이 없는 행이어서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끊지도 않았고 또한 끊지 않은 것도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다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나고 죽음을 여의지도 않고 또한 여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도를 닦지도 않고 도를 닦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니, 이런 견해를 지으면 바른 믿음[正信]이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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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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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네가 말한 것과 같나니, 이런 이치를 깊이 이해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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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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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장차 오는 세상에 만일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바른 법을 말하면 그 누가 믿고 이해하면서 들은 대로 받아들여 행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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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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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 모임 안에 있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이 경을 듣게 된 이러한 사람들이 미래 세상에 만일 이 법을 듣게 되면 반드시 믿고 이해해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읽고 외우고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닐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분별하고 베풀어 설할 것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장자(長者)가 마니보(摩尼寶)를 잃고는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뒤에 도로 얻게 되면 마음에 몹시 기뻐하는 것처럼 가섭아,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믿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도 만일 법을 듣지 못하면 괴로워하다가 만일 듣게 되었을 때에는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니면서 항상 읽고 외우기를 좋아하며 매우 크게 기뻐하리니, 이러한 사람은 곧 부처님을 뵈었고 또한 곧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공양하고 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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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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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마치 도리천(忉利天) 위에 파리질다라수(波利質多羅樹)에서 움이 처음 나올 때에 그 곳에 있는 모든 하늘들은 이 나무를 보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 나무는 오래지 않아서 반드시 꽃이 피겠구나'라고 하는 것처럼,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이 반야바라밀을 듣게 되면 믿고 이해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사람들도 오래지 않아서 역시 온갖 불법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니라.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반야바라밀을 들은 이가 믿고 받아 읽고 외우면서 마음에 뉘우치거나 침몰하지 않으면 이 사람이야말로 이 모임에서 경을 들어 받았고 또한 사람들을 위하여 마을과 성읍에서 널리 연설하고 유포하였는 줄 알 것이요, 이 사람이야말로 부처님의 보호와 염려를 받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믿고 좋아하며 마음에 의혹이 없으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과거 세상의 모든 부처님께 오래도록 닦고 배우면서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구슬을 꿰다가 홀연히 최상의 진짜 마니보(摩尼寶)를 얻게 되어서 마음에 크게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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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함은 이 사람이 반드시 전에 이미 본 일이 있었기에 그러한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가섭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른 법을 닦고 배우다가 홀연히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게 되면 기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나니, 이 사람은 전에 이미 들은 일이 있었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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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중생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게 되어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고 크게 기뻐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역시 크게 기뻐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역시 일찍이 수없는 부처님을 가까이하면서 그 부처님으로부터 반야바라밀을 듣고 이미 닦아 배웠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전에 멀리서 그 성읍과 마을을 보았었는데 뒤에 어떤 사람이 그 성에 있는 모든 동산과 갖가지 못과 샘물과 꽃과 열매와 숲과 나무며 남녀 대중들이 모두 좋아할 만하다고 찬탄하면 이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곧 크게 기뻐하면서 다시 더 그 사람에게 이 성의 동산과 많은 좋은 장식과 여러 가지 꽃과 못과 샘물과 여러 단 열매의 많은 것이며 갖가지 진기하고 묘한 모든 좋은 일들을 설명하도록 권하면서 이 사람은 그 말을 거듭 들으며 기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가 전에 그런 일들을 보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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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들어 받으면서 기뻐하는 마음을 내며 듣기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으면서 다시 말하기를 권하는 것은 이들이 이미 문수사리로부터 일찍이 이러한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었기 때문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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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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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장차 오는 세상의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같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믿고 좋아하면서 받드는 이런 모양 때문에 이 사람들도 역시 과거 세상의 부처님 처소에서 일찍이 듣고 닦아 배웠는 줄 알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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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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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의 지음이 없고 모양이 없는 제일의 적멸(寂滅)을 말씀하셨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와 같이 그 이치를 자세히 알고 들은 대로 설명할 수 있으면 모든 여래의 찬탄을 받고 법의 모양에 어긋나지 않으며 이는 곧 부처님의 말씀이요 또한 이것은 불이 활활 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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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한 반야바라밀의 모습이요 또한 불이 활활 타듯 부처님 법을 완전히 갖추고 참 모습[實相]의 불가사의함을 통달한다고 이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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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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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보살의 도[菩薩道]를 수행할 때에 모든 선근을 닦으면서 아비발치의 지위[阿毘跋致地]에 머무르려고 하여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려고 하여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였나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의 모양을 알고자 하고 온갖 중생의 마음의 경계[心界]를 알고자 하면 모두 똑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문수사리야, 온갖 불법을 배워서 두루 갖추고 장애가 없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모든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을 때에 상호(相好)와 위의(威儀)의 한량없는 법식(法式)을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모든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않았을 때 온갖 법식과 모든 위의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공한 법 가운데서는 모든 부처님의 보리 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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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와 같은 등의 모양을 알아서 의혹이 없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나니,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의 나고 없어지고 더럽고 깨끗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선남자와 선여인은 이렇게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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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없는 평등한 모습을 알고자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나니, 왜냐 하면 법계(法界)의 성품[性]과 모습[相]은 과거·현재·미래[三世]가 없기 때문이니라. 온갖 법이 다 같이 법계에 들어가 마음에 걸림이 없음을 알고자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세 번 거듭하여 열두 가지 모습으로 말씀한[三轉十二行] 법륜(法輪)을 얻고 또한 스스로 증득하여 알면서 취하여 집착하지 않고자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인자한 마음으로 두루 온갖 중생을 덮음에 제한이 없고, 또한 중생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자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온갖 중생에 대하여 다투는 말[諍論]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다투는 말이 없는 모양도 취하지 않고자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이 옳음과 그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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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힘[是處非處智力) 등의 10력(力)과 두려워함이 없음[無畏]을 알고 부처님의 지혜에 머무르며 걸림 없는 변재[無礙辯]를 얻고자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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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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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바른 법을 관찰하건대, 함[爲]이 없고 모양이 없으며 얻음이 없고 이익이 없으며 생김이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아는 이도 없고 보는 이도 없고 짓는 이도 없으며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고 또한 반야바라밀의 경계도 보지 못하며 증득하는 것도 아니고 증득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쓸모 없는 이론[戱論]도 짓지 않고 분별도 없으며 온갖 법은 다함이나 다함을 여읨도 없으며 범부의 법도 없고 성문의 법도 없으며 벽지불의 법도 없고, 부처님의 법을 얻는 것도 아니고 얻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고 죽음을 버리지도 않고 열반도 증득하지 않으며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리는 것도 아니고 생각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법의 모양이 이와 같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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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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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알면 그것이 반야바라밀을 배운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만일 보리의 자재한 삼매를 배우고자 하여 이 삼매를 얻고 하면 온갖 매우 깊은 부처님 법을 밝게 비추고 온갖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알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모두 환히 통달하여 장애가 없나니, 마땅히 문수사리가 말한 것과 같은 반야바라밀 안에서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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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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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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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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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은 끝도 없고 변두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생각하거나 헤아리는 것도 아니고 귀의할 데도 없으며 넓은 육지도 없고 작은 섬도 없으며 범함도 없고 복도 없으며 어두움도 없고 밝음도 없으며 법계(法界)와 같아서 나뉨[分齊]도 없고 또한 한계나 수량도 없나니,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또한 보살마하살이 행하는 곳[行處]이라하나 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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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도 아니고 행하지 않는 곳도 아니어서 모두가 1승(乘)에 들어가므로 행하는 곳이 아니라[非行處] 하느니라. 왜냐 하면 생각도 없고 조작도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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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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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어떻게 행하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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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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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마치 반야바라밀에서 말한 것과 같이 행하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느니라. 또 일행삼매(一行三昧)가 있나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삼매를 닦으면 역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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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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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행삼매라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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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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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는 한 모양[一相]이요 그 인연이 법계에 매달리나니,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행삼매에 들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반야바라밀을 듣고 말씀한대로 닦고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일행삼매에 들어갈 수 있나니, 마치 법계를 반연함과 같이 물러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으며 불가사의하고 장애가 없으며 모양이 없느니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일행삼매에 들고자 하면 마땅히 한적한 데 있으면서 모든 어지러운 뜻을 버리고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한 부처님께 매어 오로지 그 명호를 부르며 그 부처님이 계신 곳을 따라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향하여서 한 부처님을 생각생각에 서로 끊어지지 않게 하면 곧 그 생각하는 가운데서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뵈옵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한 부처님을 생각하는 공덕은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또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공덕과 더불어 둘이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법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며 모두가 한결같음[一如]에 의지하여 가장 바른 깨달음[最正覺]을 이루기 때문이니, 모두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변재를 갖추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일행삼매에 들어간 이는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의 법계(法界)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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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는 모양을 모두 알게 되느니라. 아난(阿難)이 부처님법을 들은 바로 기억의 다라니[念總持]와 변재와 지혜를 얻어서 성문(聲聞) 중에서는 비록 가장 수승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분량과 수량에서 곧 한계와 장애가 있다. 만일 일행삼매를 얻으면 모든 경의 법문을 낱낱이 분별하여 모두 다 분명히 알아서 결정코 장애가 없으며 밤낮으로 말하여도 지혜와 변재가 끝내 끊어지지 않나니, 만일 아난의 많이 들음과 변재를 여기에 비교하면 백천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어떻게 하면 일행삼매의 불가사의한 공덕과 한량없는 명칭(名稱)을 체득하게 될까'라고 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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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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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일행삼매를 생각하면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며 게으르지 않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차례로 점점 닦고 배우면 곧 일행삼매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얻으면서 증득하게 되느니라. 다만 바른 법을 비방하며 믿지 않고 악업으로 무거운 죄와 장애[罪障]가 있는 이만은 들게 되지 못하느니라. 또 문수사리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마니주(摩尼珠)를 얻어서 보석 감정하는 이에게 보이자 그 감정하는 이는 대답하기를 '이것은 값으로는 칠 수 없는 진짜 마니보배입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요구하되 '나를 위하여 잘 다듬고 닦아서 빛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오'라고 할 때에 그는 잘 다듬은 뒤에 그것을 갈고 닦음에 따라 구슬의 빛이 속까지 환히 비치는 것처럼 문수사리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행삼매의 불가사의한 공덕과 한량없는 명칭을 닦고 배우면 그가 닦고 배움에 따라 모든 법의 모습을 알고 분명하게 걸림 없이 통달하며 공덕이 더욱 자라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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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비유하면 마치 햇빛 광명이 두루 가득 차고 사라지는 모양이 없는 것처럼, 만일 일행삼매를 얻으면 모두 온갖 공덕을 두루 갖추어서 이지러지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도 역시 그와 같나니, 불법을 밝게 비춤은 마치 햇빛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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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내가 말한 법은 모두가 이는 동일한 맛[一味]이며 맛을 떠난 맛[離味]이며 해탈의 맛[解脫味]이요 고요히 사라진 맛[寂滅味]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일행삼매를 얻으면 그가 연설하는 것도 역시 한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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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여읜 맛이며 해탈의 맛이요 고요히 사라진 맛이며 바른 법을 따르면서 그릇된 모양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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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이 이 일행삼매를 얻으면 모두 도를 돕는 법[助道之法]을 다 만족하면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또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이 법계(法界)에 분별이 있는 모양과 그리고 한 모양조차도 보지 않으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모양의 불가사의함을 얻게 된다. 이 보리 안에서는 부처도 증득할 수 없으니 이렇게 알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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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온갖 법이 모두가 곧 불법임을 믿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의혹하지도 않으면 이와 같이 아는 이가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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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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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원인(因)으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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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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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함은 원인[因]으로써 얻음도 아니고 원인 아닌 것으로 얻음도 아니다. 왜냐 하면 불가사의한 경계는 원인으로써 얻음도 아니며 원인 아닌 것으로 얻음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와 같은 설법을 들음에 게으르지 않으면 이 사람은 이미 먼저의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는 줄 알지니라. 그러므로 비구와 비구니가 이와 같은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것이요 만일 우바새와 우바이가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마음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진실하게 귀의할 곳[歸依處]을 이룬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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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익히지 않으면 곧 이것은 불승(佛乘)을 닦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대지(大地)의 온갖 약나무는 모두 땅에 의지하여 생장하게 되는 것처럼,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온갖 선근은 모두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더욱 자라게 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서로 위배(違背)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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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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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염부제(閻浮提)의 성읍이나 마을의 어느 곳에서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연설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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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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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모임 안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모두 서원하기를 '미래 세상에서는 항상 반야바라밀과 상응하게 되소서'라고 하면 이로부터 믿고 이해하면 미래 세상 안에서는 이 경을 들을 수 있으리니, 이런 사람은 그 밖의 조그마한 선근 중에서 온 이가 아닌지라 받아들은 뒤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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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만일 또 어떤 사람이 너로부터 이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마땅히 말하기를 '이 반야바라밀 안에는 성문과 벽지불의 법과 부처님 법도 없고 또한 범부의 나고 없어지는 등의 법도 없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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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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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저에게 와서 묻기를 '어떻게 여래께서는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느냐'라고 하면 저는 마땅히 대답하되 '온갖 설법에는 다투는 말[諍論]의 모습이 없거늘 어떻게 여래께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겠느냐'라고 해야 하오리니, 왜냐 하면 함께 다투어 말할 어떤 법도 보지 않고 또한 마음의 앎[心識]으로는 알 수 있는 중생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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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존이시여, 저는 다시 궁극의 실제[究竟實際]를 설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온갖 법의 모양은 다 같이 실제에 들어가기 때문이옵니다. 또 아라한에는 특별히 뛰어난 법이 없나니, 왜냐 하면 아라한의 법과 범부의 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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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법을 설하면 중생으로서 이미 열반을 얻었거나 지금 얻거나 장차 얻을 이도 없사오니, 왜냐 하면 결정된 중생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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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이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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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듣고자 하면 저는 마땅히 말하기를 '듣는 이는 생각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듣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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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로 된 사람은 분별하는 것이 없는 것같이 하여야 한다'라고 해야 하오리니,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 바로 진실한 설법이옵니다. 그러므로 듣는 이는 두 모양을 짓지 말 것이며 모든 소견을 버리지 않고 불법을 닦으며 불법을 취하지도 않으며 범부의 법을 버리지도 않을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과 범부의 두 법의 모양은 공하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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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물으면 '이와 같이 마음을 위로하고 몸을 편히 할 것이요 이와 같이 건립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며,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이렇게 물으면서 이와 같이 머물러 마음에 물러나거나 침몰하지 않아서 마땅히 법의 모습이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임을 알아야 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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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찬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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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너의 말과 같으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법답게 공양하고자 하면 이와 같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만일 '여래는 바로 나의 세존'이라고 말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또 '여래는 나의 세존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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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자 하면 역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않으려고 하여도 역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만일 온갖 삼매(三昧)를 성취하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또 온갖 삼매를 성취하지 않으려고 하여도 역시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나니, 왜냐 하면 지금 없는 삼매에는 다른 모습이 없기 때문이요 온갖 법에는 생겨남도 없고 벗어남도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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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온갖 법에 붙인 이름[假名]을 알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만일 온갖 중생이 보리의 도를 닦되 보리의 모습을 구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물러나거나 침몰하지 않음을 알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에는 모두 보리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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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중생의 행은 행하는 모습이 아니며 행이 아니면 곧 보리요 보리는 곧 법계이며 법계가 곧 실제(實際)임을 알아서 마음에 물러나거나 침몰하지 않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또 온갖 여래의 신통 변화하는 모양도 없고 걸림도 없으며 또한 일정한 곳도 없음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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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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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지지 않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한 수의 네 귀절로 된 게송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며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하고 참 모습[實相]을 따라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부처님 국토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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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이런 이들은 부처님의 인가(印可)를 받은 줄 알지니, 그것이 부처님이 행한 대승법인(大乘法印)이니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인을 배우면 나쁜 갈래를 뛰어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들지 않으리니, 모두 뛰어 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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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제석(帝釋)과 삼십삼천(三十三天)들이 하늘의 예쁜 꽃인 우발라(優鉢羅)꽃과 하늘의 만다라(曼陀羅)꽃이며 하늘의 전단향(旃檀香)과 그 밖의 갖가지 가루향과 금 보배와 하늘의 음악을 울리면서 반야바라밀과 아울러 모든 여래와 문수사리에게 공양하며 그 위에다 뿌렸다. 이렇게 공양한 뒤에는 '원컨대 저는 항상 반야바라밀의 법인(法印)을 듣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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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환인(釋提桓因)은 다시 이렇게 서원하였나니 '원컨대 염부제의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항상 이 경을 듣게 되고 결정코 부처님 법을 모두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 사람들에게 연설하게 하며 온갖 모든 하늘들이 그들을 옹호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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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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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시가(憍尸迦)야,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선남자와 선여인은 결정코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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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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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렇게 받아 지니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큰 이익을 얻고 공덕이 한량없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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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온갖 대지(大地)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부처님께서 이 때에 빙그레 웃으시면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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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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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곧 그것이 여래께서 반야바라밀을 인가하시는 모습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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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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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야,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반야바라밀을 말하고 나서 모두 이런 상서(祥瑞)를 나타내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인가하기 위해서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지니게 하고 찬탄하거나 훼방함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모양이 없는 법인(法印)이라 찬탄하거나 훼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 법인으로 모든 하늘 악마들로 하여금 틈을 얻지 못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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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그때 모든 큰 보살들과 사부 대중들이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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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7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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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西晋) 삼장 축법호(竺法護)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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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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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보계보살회(寶髻菩薩會)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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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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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열기(羅閱祇)의 영취산(靈鷲山)에서 큰 비구 대중 4만 2천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도 8만 4천이 함께 있었으니, 저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여기에 와 모였다. 모두가 이미 통달하여 일생보처(一生補處)이고 집착함이 없음[無所著]과 걸리는 것이 없음[無罣礙]을 얻었으며 용맹복삼매(勇猛伏三昧)가 나타나는 것으로부터 상연화(上蓮花) 삼매와 금강도량(金剛道場) 삼매와 선견주(善堅住) 삼매와 순숙수(淳淑修) 삼매와 당영왕(幢英王) 삼매와 금강(金剛) 삼매와 정덕사(淨德事) 삼매를 얻었으며 분별하여 방편을 행하니 모두가 모든 부처님의 법에 가까이 가게 되었다. 보리수[佛樹] 아래 있으면서 항복 받은 것이 많고 모든 악마의 경계를 건너서 모든 부처님들의 국토를 세우게 되었으며 말할 바가 다함 없는 총지[無盡所說總持]를 이루었고 중생의 온갖 근원을 알게 되었으며 묘한 변재로써 모든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사자의 걸음걸이로 두려움이 없었으며 만일 대중의 모임에 들어가면 그들을 따르면서 때에 맞게 문자와 구절을 널리 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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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을 성취하여 곧 위엄 있는 모양으로 스스로 장식하였고 세간의 재물을 버리고 모든 외도(外道)를 배척하였으며 공훈이 널리 들어나 명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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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에 사무쳤고 모든 부처님께서 그 덕이 한량없음을 찬탄하셨으니, 모두가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一心)·지혜로부터 이루어졌다. 또 수없는 겁 동안 백천 나유타(那由他)로부터 도업(道業)을 닦고 다스렸고 온갖 중생의 질병을 보면 병에 따라 약을 주면서 모두 낫게 하였다. 깊고 묘하게 연기법[緣起法]을 밝힘에 있어서 아주 없다[斷滅] 함과 항상 있다[有常]는 견해를 버렸고 그 행이 깨끗하고 뜻함에 흠이 없었으며 마음의 성품[心性]이 선명하여 중생을 교화하여 저마다 거두어 보살피면서 마땅한 곳을 얻게 하였으며 환히 알면서 가르쳐 주며 뜻이 자재하였고 세력이 굳고 강하면서 인자한 마음을 헐지 않았으며 믿음[信]과 지계[戒]와 들음[聞]과 베풂[施]과 스스로 뉘우침[慚]과 남에게 부끄러워함[愧]과 지혜(智慧)의 일곱 가지 재보를 두루 갖추어서 중생을 교화하려 하였고 착한 방편을 쓰면서 한적한 데에 살고 있었으며 수행의 힘을 써서 모든 서원을 잘 세우며 거룩한 덕은 한량없고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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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은 광관(光觀) 보살과 상명요(常明曜) 보살과 광세음(光世音) 보살과 대세지(大勢至) 보살과 사자의(師子意) 보살과 사자보(師子步) 보살과 사자뢰음(師子雷音) 보살과 존의(尊意) 보살과 금강의(金剛意) 보살과 금강보(金剛步) 보살과 금강당(金剛幢) 보살과 금강지(金剛志) 보살과 보부동적(步不動迹) 보살과 독보세(獨步世) 보살과 선명(善明) 보살과 연화목(蓮花目) 보살과 연화정(蓮花淨) 보살과 보정(寶淨) 보살과 구쇄(鉤鎖) 보살과 보당(寶幢) 보살과 보사(寶事) 보살과 보인수(寶印手) 보살과 덕요왕(德曜王) 보살과 정왕(淨王) 보살과 집리의왕(執離意王) 보살과 전광엄(電光嚴) 보살과 허공장(虛空藏) 보살과 유음(濡音) 보살과 우음(雨音) 보살과 불리음(不離音) 보살과 의정(意淨) 보살과 뇌음(雷音) 보살 및 해박(解縛) 보살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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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열여섯 명의 바른 선비[正士]에서는 부(溥)가 그 분들의 으뜸이었고 열여섯 명 거룩한 선비[聖士]에서는 중향(衆香)이 그 분들의 으뜸이었으며 서른두 명의 깨끗한 행의 선비[行士]에서는 자씨(慈氏)가 그 분들의 으뜸이었으니, 모두가 이 분들은 현겁(賢劫)의 모든 보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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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항마(降魔) 천자와 정부정(淨復淨) 천자와 선묘(善妙) 천자와 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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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3 / 3476] 쪽 |
(賢護) 천자와 획승(獲勝) 천자와 의승(意勝) 천자와 적화음(寂化音) 천자와 선사(善思) 천자 등의 2만 명은 모두가 대승(大乘)에 뜻을 둔 이들이었으며, 사천왕천(四天王天)과 제석(帝釋)과 인적범천(忍迹梵天)과 악마의 아들 도사(導師)와 유미(濡美) 천자며 아울러 그 밖의 모든 하늘·용신·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이[人非人]들이 있었으니,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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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대중들에게 에워싸여서 그들을 위하여 경을 설하고 계셨으니, 크고 청정한 사자의 평상에 앉으셔서 용맹하고 두려워함이 없이 사자후(師子吼)를 토하였다. 마치 해가 두루 비춤과 같고 달이 한창 밝은 것과 같았으며 마치 불이 어두움을 녹이는 것과 같았다. 그 자리는 번쩍거리고 거룩한 광명은 높고 높아 제석과 범왕보다 뛰어났으며 부처님 몸이 특히 두드러져서 마치 수미산(須彌山)이 큰 바다에 나타난 것과 같았고 말씀하신 경전은 상·중의 뜻과 말씀이 묘하고 착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이치는 아름다우면서 구족하여 마지막[究竟]까지 청정하였고 항상 닦으신 범행(梵行)으로 은혜와 사랑을 널리 베푸시고 보살의 행(行)을 펴시고 보살의 법(法)을 강(講)하셨으니, 좇아 닦아야 할 것은 깨끗한 행[淨行]이라 이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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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동방(東方)으로 9백 20만의 국토를 지나가서 선변(善變)이라는 세계가 있었고 그 곳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정주(淨住) 여래·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이라 하셨으며 현재도 설법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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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부처님 곁에는 라타린나주(羅陀隣那朱)[진(晋)나라 말로 보계(寶髻)라 한다]라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8천의 보살들과 함께 그 불국토에서 홀연히 사라져 이 사바세계[忍界]에 와서 범천(梵天)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의 보배 일산으로써 이 삼천대천의 사바세계를 덮고 여러 가지 빛깔의 하늘꽃을 두루 비오듯 내리며 범천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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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대중들에게 좋은 이익을 주게 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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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석사자(釋師子)를 뵙고자 바라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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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 불타는 세속 일들을 녹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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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4 / 3476] 쪽 |
견고한 서원으로 불도(佛道)에 뜻을 두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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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모래만큼이나 수많은 보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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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의 힘으로 행(行)이 뛰어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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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억의 악마 대중의 항복을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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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도를 이루고 때와 근심[垢憂]을 여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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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방으로부터 왔사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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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 이름은 선변(善變)이라 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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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주 부처님[淨住佛]곁에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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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자께 머리 조아리려 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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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사람이 법을 듣고자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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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의 모든 보살을 만나고자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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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세존께 귀의하여 예배하고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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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영축산(靈鷲山)으로 오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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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잡이[導師]는 만나 뵙기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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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법요(法要)도 매우 만나기 어려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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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도 얻기 어렵고 그리고 한가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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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禁戒)를 돈독히 믿는 정성 또한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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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제 덕(德)의 근본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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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삿되고 어둔 데에 있음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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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깨우쳐 멸도(滅度)케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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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함께 가장 훌륭한 이[最勝者]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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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세 가지 악한 길[三惡道]을 벗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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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과 인간에서 안온하게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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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5 / 3476] 쪽 |
무위(無爲)를 체득하고 생사(生死)를 녹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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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견줄 수 없는 이[無等倫]께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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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의사[醫王]가 되어 감로(甘露)를 베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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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은 마치 길잡이처럼 바른 길을 보이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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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법왕(法王)은 존귀한 보배를 가지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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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중생의 갈래[趣]를 항복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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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보계(寶髻)는 이 게송을 말하여 마친 뒤에 이 게송의 음성을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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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이 사리불(舍利弗)이 이 게송을 듣고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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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세존이시여, 이 묘한 게송의 이치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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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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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으로 여기에서 9백 20만의 불국토를 지나가면 선변이라는 세계가 있고 정주(淨住) 여래·지진·등정각이라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현재도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그 부처님의 곁에 보계라는 보살이 8천의 보살들과 함께 이 사바세계로 와서 나를 보고 머리 조아려 문안한 뒤에 경전을 물어 받으려고 하며 아울러 시방에서 모두 모인 보살들을 만나려고 일부러 범천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런 게송으로 말한 것이니라. 그리하여 이 게송의 음성을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알리면서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많은 덕의 근본을 심게 하는 것이니, 함께 곧 이 곳으로 올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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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보계는 8천의 보살과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천자들에게 둘러싸여 백천의 음악을 울리고 여러 묘한 꽃을 비오듯 뿌리며 큰 광명을 놓고 삼천세계를 진동시키면서 부처님께로 와서 발아래 머리 조아리고 저마다 일곱 번을 돌고 부처님 앞에 똑바로 서 있었으니, 8천의 보살들도 역시 그와 같이 하였고 모든 천자들도 모두가 다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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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 보살이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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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정주 여래께서 공손히 문안함이 한량없었나이다. 뜻하신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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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6 / 3476] 쪽 |
가 모두 잘 되시며 몸은 가벼우시며 힘쓰시기는 편안하시옵니까?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을 뵙기는 불가사의 하므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비루한 몸이 여기 왔사오니, 원컨대 은혜와 사랑을 드리우사 모든 보살·대사(大士)들을 위하여 도의 가르침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차례대로 말씀하여 주소서. 보살은 여기에 머물러서 마지막[究竟]을 얻어 이루고 깨끗함을 모두 갖추어 널리 온갖 덕(德)의 갑옷을 입으며 많은 선(善)과 평등한 행을 쌓아 그 몸을 깨끗이 닦으면서 모두가 온갖 중생들이 생각하는 것을 보고 그 모양과 행을 관찰하면서 따라 교화하게 하며 곧 지혜로써 음행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며 법을 강설하여 주셔서 묘한 행에 이르게 하옵소서. 만일 중생이 삿된 법에 머물러 있으면 곧 평등한 가르침을 펴 보이시고 모든 여래께서 돌보아 가려 주심에 중생 모두가 힘입게 하시오며 온갖 악마가 틈[便]을 얻지 못하고 모든 부처님을 뵈옵되 거리낌이 없게 하여 주소서. 감히 좇아 닦으면 모두가 여래의 깨끗한 행을 이룰 수 있으리니, 이와 같은 이치에는 어떤 인연으로 이르게 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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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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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도다. 족성자(族姓子)야, 여래에게 이러한 이치를 묻는구나.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할지어다. 나는 장차 모든 보살들이 행해야 할 청정함을 해설하겠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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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 보살과 모든 대중들은 가르침을 받아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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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행할 청정함에는 네 가지 일과 법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일과 법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도무극(度無極)을 행하고, 둘째 항상 모든 부처님의 도품(道品)을 좇아 닦아야 하며, 셋째는 신통(神通)을 갖추고, 넷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일과 법이니라. 도무극을 수행하여 해야 할 바를 권하고 도와서 많은 덕(德)의 근본에 두루 들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요, 도품의 법이라 함은 큰사랑에 노닐면서 분명히 알며 때에 맞추어 지혜가 들어가는 것을 말 함이요 신통을 갖춘다 함은 대중들의 생각과 행한 선악의 업을 분별하는 것이요, 중생을 교화한다 함은 크게 가엾이 여김이 견고하면서 뜻하는 성품이 귀착하는 곳을 밝게 아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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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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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7 / 3476] 쪽 |
“무엇을 보살이 보시[施] 도무극(度無極:波羅蜜多)으로 행할 깨끗함[淸淨]이라 하는가 하면 간탐을 익혔던 마음들을 모두 다 버리고 보시하지 않는 마음들을 모두 다 버리고 보시할 마음을 익히며 좋은 것을 탐내고 더러운 것을 버리는 일을 놓아버리고 무너뜨린 뒤에는 보시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권하면서 온갖 자신이 가진 물건을 베풀되 인색하지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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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시를 할 때는 네 가지 일에 대하여 약간(若干)의 마음도 짓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무리에 따라서 조금도 마음의 변화가 없어야 하고, 둘째는 온갖 경법(經法)에 있어서도 저마다 다르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권하여 도와줌이 있어도 차별이 없어야 하고, 넷째는 뜻하는 대로 보시하는 데 있어도 약간의 차별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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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을 말하여 모든 중생에 대하여 약간의 마음도 없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나는 아무에게는 보시해야 하고 아무에게는 보시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에게 보시하면 복이 많을 것이나 아무에게 보시하면 복이 적을 것이다. 아무에게는 많이 보시하고 아무에게는 적게 보시하겠다. 아무에게는 좋은 것으로 보시하고 아무에게는 되는 대로 보시하리라. 아무에게는 항상 보시해야 되고 아무에게는 가끔 한 번만 보시하면 된다. 아무에게는 몸소 내가 주어야 하나 아무에게는 내가 수고하면서까지 줄 것은 없다. 아무에게는 모두 다 주어야 하고 아무에게는 대략만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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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계율을 받들고 있으나 사람은 계율을 헐어뜨렸다. 이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 사람은 복이 적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여러 가지 복덕을 잘 이룬 사람이지만 저 사람은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바른 도를 닦고 있지만 저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고 있다. 이 사람은 평등한 업을 받들어 행하는데 저 사람은 도리어 삿된 일에 떨어져 있다고 하는 이런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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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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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족성자야, 보살이 보시를 할 때는 모두 마땅히 이러한 마음을 다 버리고 평등한 뜻을 닦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품지 않고 항상 중생을 생각함에 평등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교화할 때에도 평등한 뜻으로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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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고 사랑하며 가엾이 여기고 함께 기뻐하며 보살피기[慈悲喜護]를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이른바 평등이라 함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더하거나 덜함이 없는 것이니라. 이것이 중생에 따라 약간의 마음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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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보계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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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모든 경법(經法)에 있어서도 각각 다르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가령 설법을 한다 하여도 평등하게 펴는 것이니라. 또한 '법을 받들어 닦는 이라서 나는 경을 주어야겠지만 법을 따르지 못하는 이면 주지 않아야겠다. 만일 두루 온갖 법을 갖추게 된 이면 나는 그에게 주어야 되지만 법을 갖추지 못한 이면 나는 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되나니, 도의 가르침을 일으키려고 법보시[法施]를 행하는 이면 범부에게 보시하면서도 손해가 된다고 여기지 않고 성현에게 보시하면서도 이익이 된다고 여기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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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든 법은 본래 모두가 청정하고 평등하여 차이가 없다고 헤아리면서 이 때문에 보시하되 평등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을 모든 법에 있어서도 저마다 다르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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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풀어주는 공양 거리로 권하고 도와줄 것이 있어도 역시 약간의 마음도 없어야 하는 것이니, 만일 보시할 때에 '나는 당연히 복을 얻어서 제석이나 범왕이나 천상 사람들의 지위를 바래야 하며 인간의 임금이나 존귀한 이나 장자 등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빛깔·소리·냄새·맛·닿임[細滑]의 법을 그리거나 구하지도 않고 넉넉한 재물과 값진 보배와 권속과 시종(侍從)도 바라지 않으며 다섯 세계[趣]에서 나고 죽고 하면서 두루 돌아다니는 것도 부러워하지 않고 성문승이나 연각승도 구하지 않겠다. 감히 보시하는 것으로써 제일이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구해야 된다'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도와주는 데 있어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니, 모두를 놓아 버려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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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는 성품[志性]이 도(道)에 있으면서 차별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니, 만나게 되거나 이별하거나 간에 처음부터 더하거나 덜하는 마음이 없고 상대에게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오직 모든 미치지 못한 이들을 제도하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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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건네 주려 할 뿐이며 그 마음은 질박(質朴)하면서 아첨함이 없고 독실한 믿음을 품고서 속 성품이 순숙(淳淑)하며 일찍이 뉘우치거나 변하는 일이 없고 몹시 좋아하는 것을 보시하고서도 그 마음은 기뻐하며 만일 어떤 이가 와서 구하면 잘 보시하면서 더욱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족성자로서 뜻하는 성품으로 보시하는 데서도 역시 다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니라. 이런 것들을 보살이 보시 도무극에서 약간의 마음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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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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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삿된 길을 버리고 보시 업을 행하는 데에 여덟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여덟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나를 보지 않는 것이요 사람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며 수명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요 아주 없다[斷滅]고 보지 않는 것이며 항상 있다[有常]고 보지 않는 것이요 주는 이와 받는 이 주는 물건의 세 가지[三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며 세 가지가 없다[無處]고도 보지 않는 것이니, 만일 보시하는 사람이면 이 여덟 가지 일을 청정하게 장엄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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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보시할 때에 네 가지의 머무르는 일[住業]을 버리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그릇된 법을 버리고 경전으로써 범부를 교화하고, 둘째는 성문의 뜻을 버리면서 크나큰 도[大道]에 뜻을 두며, 셋째는 연각의 법을 버리면서 평등을 수행하고, 넷째는 끊어야 하고 모든 의지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을 멀리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머무르는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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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네 가지 생각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생각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항상 있다는 생각[常想]이요, 둘째는 편안하다는 생각[安想]이며 셋째는 깨끗하다는 생각[淨想]이요, 넷째는 나라는 생각[我想]이니, 이것이 네 가지 생각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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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청정한 보시가 되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몸이 청정하고, 둘째는 말이 청정하며, 셋째는 마음이 청정하고, 넷째는 성품이 청정한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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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시에 모든 걸림을 초월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희망을 버리고, 둘째는 품은 원한을 버리며,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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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는 소승(小乘)을 여의는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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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땅히 보시해야 하는 데에 모든 두려움을 여의게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 일이라 하는가, 첫째는 뽐내는 일이요 둘째는 깔보는 일이며, 셋째는 악마의 일[魔業]이니, 이것이 세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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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법으로써 진리를 보는 네 가지 보시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보시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안의 공함[內空]이요, 둘째는 바깥의 공함[外空]이며 셋째는 사람의 공함[人空]이요, 넷째는 도의 공함[道空]이니, 이것이 네 가지 보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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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로지 정진(精進)만을 생각하는 네 가지 보시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보시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을 배불리 먹이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며, 셋째는 상호(相好)의 엄숙한 용모를 다 성취하여 갖추고, 넷째는 불국토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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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음에서 항상 버리지 않는 네 가지 보시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보시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뜻에 항상 도(道)를 생각하고, 둘째는 항상 부처님을 뵙고자 하며, 셋째는 큰 사랑[大慈]을 닦고, 넷째는 중생의 진로(塵勞)의 더러움을 없애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보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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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도량(道場)을 깨끗하게 장엄하는 세 가지 보시가 있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 보시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나를 깨끗하게 하고, 둘째는 사람을 깨끗하게 하며, 셋째는 도량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 보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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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청정하게 줄 네 가지 보시가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보시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지혜로써 보시하고, 둘째는 중생의 마음을 즐겁게 하며, 셋째는 권하고 도울 일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넷째 경전을 관찰하여 환히 이해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보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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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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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살로서 닦아야 할 법 보시 도무극으로 청정한 행에 이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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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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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계율 도무극[戒度無極]을 행할 때에 청정한 데에 이르는 한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한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보살의 마음은 견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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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이 없어서 그 마음은 온갖 세간을 뛰어나 가장 높고 비교할 데가 없어서 모든 성문이나 연각의 뜻을 초월함을 알고 마음으로 온갖 악마를 항복 받으며 중생에 들어가면 이르는 곳마다 이름[名]과 덕(德)이 한량없는 보배와 같고 모든 좇아 익힌 법은 널리 보호함이 있어서 마음에 잊는 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한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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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으로 청정한 행이 되는 두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항상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품으면서 중생을 해침이 없고, 둘째는 마음으로 도(道)에 뜻을 두면서 성품과 행이 조화롭고 부드러운 것이니,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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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세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몸의 청정함이니, 몸에 대한 세 가지 일을 청정하게 하면서 계율에 빠짐이 없고 마지막까지 다 갖추는 것이다. 둘째는 말의 청정함이니, 온갖 하는 말에 아첨함이 없는 것이다. 셋째는 뜻의 청정함이니, 모든 더러운 탐욕과 위해(危害)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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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그 계율이 청정하고, 둘째는 금계를 받들면서 헐지 않으며, 셋째는 이 계법(戒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넷째는 계율을 지니는 사람을 보면 마치 부처님처럼 그를 공경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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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다섯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자기 몸을 찬탄하지 않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헐뜯지 않으며, 셋째는 성문(聲聞)의 뜻을 버리고, 넷째는 연각(緣覺)의 뜻을 여의며, 다섯째는 탐착(貪箚)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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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여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여섯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계율을 훼범하지 않고, 둘째는 항상 경법(經法)을 생각하면서 그 행을 따라 닦으며, 셋째는 항상 성인 대중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넷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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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보시를 생각하면서 티끌 세상의 욕심을 널리 버리며, 다섯째는 항상 금계(禁戒)를 생각하면서 다시는 온갖 다섯 세계[五趣]를 그리워하지 않고, 여섯째는 항상 모든 하늘을 생각하면서 많은 덕의 근본[德本]을 펴는 것이니, 이것이 여섯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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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일곱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일곱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독실히 믿으면서 모든 부처님 법을 좋아하고, 둘째는 항상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대중의 무거운 책임을 맡으며, 셋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생각으로 도품(道品)의 법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넷째는 어질고 온화하여 남이나 나를 괴롭히지 않으며, 다섯째는 해침이 없으면서 미래 세상에 받을 재앙이나 죄를 두려워하거나 다치지 않으며, 여섯째는 남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서 근심하지 않으며, 일곱째는 고뇌하는 모든 중생을 보면 그들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일곱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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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여덟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여덟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아첨함이 없고, 둘째는 바라는 마음이 없으며, 셋째는 이익을 탐내지 않고, 넷째는 간탐을 버리고 의뢰하는 것이 없으며, 다섯째는 자기가 지닌 물건에만 만족할 줄 알고, 여섯째는 성현의 선정을 수행하면서 담박(澹泊)함을 갖추며, 일곱째는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덟째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서 대중의 모임을 멀리 여의고 도법(道法)을 좋아하며 삼계(三界)를 두려워하며 함[爲]이 없음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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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아홉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아홉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계율에 나아간 바 없이 중생을 교화하면서 제도가 되게 하고, 둘째는 점차로 선정을 익혀 그 근원을 닦고 다스리며, 셋째는 마음으로 하여금 마침내 고뇌의 더운 열을 품지 않게 하고, 넷째는 쓸쓸하고 고요함을 구하면서 마음의 생각을 그치며, 다섯째는 바른 위의와 예절을 익히어 행하고, 여섯째는 계율을 초월해서 자기의 몸을 생각하지 않으며, 일곱째는 속이거나 헷갈리게 하는 일이 없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면서 대승(大乘)을 두루 갖추고, 여덟째는 마침내 계법(戒法)의 업을 성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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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이지러지지 않게 하며, 아홉째는 마음에 늘 품고 있으면서 덕의 근본을 권하고 돕는 것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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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열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몸에 대한 세 가지 일을 청정하게 하고, 둘째는 입에 대한 네 가지 일을 청정하게 하며, 셋째는 뜻에 대한 세 가지 일을 청정하게 하고, 넷째는 생각에 아첨을 버리고 뜻하는 성품이 질직(質直)하면서 쉽게 부서지지 않으며, 다섯째는 심성(心性)이 두루 들어가면서 제도를 받지 않는 이가 없고, 여섯째는 온갖 깨닫는 바에 절도와 한계를 알고 가엾이 여김을 근본으로 삼으면서 모든 번뇌를 모두 벗어나며, 일곱째는 마음에 억셈이 없이 중생을 교화하면서 업(業)을 모두 조화시키고, 여덟째는 항상 자기 몸을 닦으면서 여러 사람들을 보면 진실로 공경하며, 아홉째는 복이 많은 이들에게 불법 행하는 일[法事]을 권해 보이며, 열째는 옷과 밥만을 받으면서 세간의 일을 여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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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율 도무극에 청정한 행이 되는 두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헐뜯고 욕하는 이가 있어도 차라리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끝내 계율을 범하지 않고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며 재물에 대한 일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둘째는 돌아다니지도 않고 또한 탐하거나 구하지도 않나니, 모든 법과 계(戒)는 공하여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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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안의 청정함[內淨]이니, 모든 쇠한 감관[入]을 제거하는 것이요, 둘째는 바깥의 청정함[外淨]이니, 모든 경계를 버리는 것이니라. 이것이 두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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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가지 일이 있느니라. 첫째는 그 도의 마음[道心]을 청정하게 하나니, 스스로 그러한 모양[自然相]을 이해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계품(戒品)이 청정하나니, 모든 모양이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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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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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살의 계율 도무극에서의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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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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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이 인욕[忍] 도무극에서 행할 청정함이라 하는가 하면 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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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꾸짖는 이가 있어도 잠자코 대꾸하지 않으면 곧 입이 청정하다 하고, 매로 때리는 이가 있어도 맞으면서 대항하지 않으면 곧 몸이 청정하다 하며, 성을 내는 이가 있어도 가엾이 여기면서 화내지 않으면 곧 마음이 청정하다 하고, 헐뜯거나 모욕하는 이가 있어도 원한을 품지 않으면 곧 성품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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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일 남의 추악한 말을 들으면 그 중생을 보호하면서 분을 내지도 않고 설령 어떤 이가 칼과 몽둥이를 몸에다 대거나 기와와 돌로써 때리고 던진다 하여도 뒷날을 보호하면서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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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몸을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근심하지 않는 것은 도(道)를 따르려 하기 때문이요, 남이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아도 성을 내지 않는 것은 네 가지 은혜를 갚으려 하기 때문이며, 인자한 마음을 내면서 괴롭히거나 성내지 않는 것은 불도를 가까이 하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는 것은 서원을 모두 갖추려 하기 때문이며, 공훈(功勳)이 유포되어 명(命)을 받들지 아니함이 없는 것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많기 때문이며, 어진 마음과 덕(德)스런 이름으로 보시하는 것은 도법(道法)의 행을 악마 하늘을 버리려 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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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 도를 생각하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요, 깨닫는 뜻[覺意]을 생각하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10력(力)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이며, 지혜를 생각하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세 가지 통달하여[三達] 걸림 없기 위해서요, 가엾이 여기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크게 인자함[大慈]을 이루기 위해서이며, 제도가 허망함을 생각하면서도 인욕을 하는 것은 크게 가엾이 여김[大哀]을 다하기 위해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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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사자와 같이 두려울 것 없이 인욕을 하는 것은 두려워 할 것이 없기 때문이요, 꼭대기[頂]를 볼 수 없음을 생각하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중생 가운데 있으면서도 스스로 크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며, 상호(相好)를 갖추기를 생각하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널리 온갖 세상을 구제하려고 하기 때문이요, 모든 불법을 갖추면서 인욕을 하는 것은 통혜(通慧)를 이루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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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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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의 힘을 청정하게 하는 데에 두 가지 법이 있느니라. 첫째는 힘써 도업(道業)을 닦는 것이요, 둘째는 뜻과 힘[義力]을 한군데로 모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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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대로 만일 인욕하면서 몸과 마음에 기울어짐이 없으면 이것이 뜻과 힘을 모으는 것이요, 온갖 법에 집착함이 없이 인욕을 행하면 이것은 도를 닦는다는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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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참음이 있는 이는 능히 중생을 참아서 사람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며, 모든 법을 다 참고 견디어 모두 담박(澹泊)하여진다. 이것이 깨끗한 참음이다. 그 까닭은 그에게 또한 참을 수 있는 것과 또한 참을 수 없는 것조차 온갖 법에서 체득할 것이 없어야 비로소 참음이라 하고 참음도 또한 얻을 수 없다고 헤아리면서 온갖 집착함이 없는 이라야 비로소 참음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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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의뢰할 것도 없고 참음에 처소가 없으므로 모든 법을 받지 않는 것을 참음이라 하나니, 취할 것으로써 인욕을 삼지 않는 것이니라. 또 그 어떤 이가 나와 사람과 수명의 법을 헤아리지 않는 것을 참음이라 하며 몸과 목숨에 집착하지 않고 살피기를 마치 담장·벽·기와 및 돌과 같이 하여야 비로소 참음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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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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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에게는 두 가지 인욕이 있나니, 첫째는 몸둥이는 흩어진다는 일을 분명히 깨달아 아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법은 모두 다 본래부터 없다 함을 분명히 알아야 인욕이 성취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로서 인욕 도무극에서 행하는 청정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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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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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의 정진[進] 도무극에서 청정한 행이 되는가 하면 도의 마음[道心]을 버리지 않고 일으켜야 하는 업(業)에 일찍이 겁내는 일이 없으며 항상 좇아 힘써 닦으면서 잠을 자지 않고 덕의 근본을 여의지 않으면서 공덕을 쌓으며 도무극에서 물러나거나 돌아오지 않고 만일 행을 짓는 이가 방편으로 법을 구하면 그 사람을 위하여 경전을 강설(講說)할 수 있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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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른 법을 보호하면서 제도하는 일이 많고 큰 지혜에 싫증내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면서 소승을 제도하고 본래의 서원과 마지막의 거룩한 지혜를 두루 갖추며 일찍이 보시와 계율과 널리 들음[博聞]을 어기거나 잃는 일이 없고 방편의 지혜[權慧]를 가까이하여 벌써 복가(福家)에 이르게 되므로 마땅히 어떤 뜻으로써도 힘써 중생을 구제하면서 교만이 없게 해야 하나니, 이것을 정진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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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을 말하여 청정하다[淨]고 하는가 하면 만일 몸은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다 함을 분명히 깨달아 알면 하는 말이 부드럽고, 앎[識]도 게으르지 않으며, 그 지혜는 궁극에 이르고, 마음은 깨끗하고 고요하여지며, 행한 일도 영원히 다할 수 없음을 환히 알며, 모든 사라짐[滅]을 분별하면서 지혜로써 소화하며, 그리하여 한 마음[一心]의 지혜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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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 가지 일로 정진을 여의게 되느니라. 첫째는 인연(因緣)에 의뢰하면서 집착하고, 둘째는 뒤바뀐[顚倒] 일을 행하며, 셋째는 바라는 생각이 사라짐이니, 만일 삼계(三界)에 의뢰하거나 집착함이 없으면 이것이 정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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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눈[眼]이 집착한 것이 없고 빛깔[色]에 의지함이 없으며 알음[識]을 탐내지도 않는 것이니, 귀와 소리와 알음에서도 코와 냄새와 알음에서도, 혀와 맛과 알음에서도, 몸과 접촉과 알음에서도, 뜻과 법과 알음에서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역시 집착함이 없고 또한 받는 것도 없으며 익히는 것도 없나니, 그러므로 정진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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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마다 아끼지 않음이 없고, 계율마다 범하지 않음이 없으며, 인욕마다 다투지 않음이 없고, 정진마다 게으르지 않음이 없으며, 선정마다 산란하지 않음이 없고, 지혜마다 어리석지 않음이 없으며, 덕의 근본을 짓지도 않고, 또한 착하지 않음도 없으며, 부처님의 도를 구하지도 않고, 성문이나 연각의 지위를 얻지도 않으며, 그는 행하는 것도 없고 또한 행하지 않음도 없으면 곧 두 가지 정진의 청정함을 이루게 되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정진의 청정함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안으로 머무르는 것도 없으면서 모든 인연을 일으키는 것이요, 둘째는 밖으로 보는 뭇 생각과 모든 알음[識]을 버리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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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7 / 3476] 쪽 |
니, 이것이 두 가지 정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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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가지 청정함이 있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청정함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속으로는 고요하고 안정되며, 둘째는 바깥으로 놀아나지 않으면서 역시 방일(放逸)함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두 가지 청정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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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관[根]이 모든 행할 바에 정진하면서도 행하는 것이 없으며 또한 가벼이 놀지도 않나니, 이것이 보살로서 정진 도무극에서의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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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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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보살의 선정[寂] 도무극에서의 청정한 행이라 하는가 하면 은근히 한 마음[一心]으로 모으는 일이며 마땅히 살펴야 할 바를 관찰하면서 바르게 받아들이는[正受] 것이니, 그가 만일 한 마음의 선정[禪]을 닦으려면 물질[色]에 집착하지도 않고 느낌[痛痒=受]·생각[思想=想]·지어감[生死=行]·의식[識]도 버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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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일 선정을 닦는 이면 눈·귀·코·혀·몸·뜻에 집착하지 않고, 그가 만일 선정을 닦는 이면 빛깔·소리·냄새·맛·접촉[細軟] 법을 탐내지 않으며, 그가 만일 선정을 닦는 이면 땅[地]·물[水]·불[火]·바람[風]·허공[空]에 집착하지 않고, 제석(帝釋)·해·달·범천의 높은 지위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도 집착하지 않고, 금세(今世)와 후세(後世)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몸에 머무르지 않고, 처(處)한 데도 없으며, 언사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이 고달프지도 않으며, 모두 머무는 데가 없고 돌연함[卒暴]도 없으며, 맨 끝에도 머무르지 않고 생각하는 것도 없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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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일 선정을 닦는 이면 몸이 있다고 헤아리지 않고 모든 소견도 일으키지 않으며, 나와 사람과 수명도 탐내지 않고 미묘하게 좋은 일과 나쁜 일도 보지 않으며, 아주 없다[斷滅]고 보지 않고 덧없다[無常]고도 보지 않으며, 나고 없어지고 있는 것, 없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그가 만일 선정을 닦는 이면 뭇 번뇌의 근원을 영원히 다하지도 않고, 모든 부처님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고요히 사라지는 증과(證果)의 자취에 들지도 않고, 또한 행할 것이 없는데서 오래 머무르지도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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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선정을 수행하는 이라면 한 마음[一心]이 공(空)임을 알면서도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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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證]으로 삼지도 않고, 모양이 없고[無相] 바람이 없음[無願]을 구하면서도 모양이 없고 바람이 없음을 깨달음으로 삼지도 않으며, 큰 덕(德)의 갑옷을 입고서 끝없는 사랑을 행하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생각에 머무르며 모두를 두루 갖추되 공한 일을 받들어 행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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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구족하게 공한 일을 행한다 하는가 하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생각하지 않고, 좋은 방편으로 교화할 것들도 생각하지 않으며, 자(慈)·비(悲)·희(喜)·호(護)도 생각하지 않고, 거룩한 지혜[聖慧]에 드는 것도 바라지 않으며, 도의 마음[道心]으로 관찰할 것도 생각하지 않고, 뜻하는 성품으로 해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네 가지 은혜준 이에게 어짊과 사랑을 베풀면서 사람들을 평등하게 이익 되게 하며, 모두를 구제할 것도 생각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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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이 조용하면서 둘 곳이 있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념처[意止:念處]와 4정근[意斷:正勤]과 4신족(神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지[覺意:覺支]와 8정도[由行:正道]도 생각하지 않으며, 고요하고 조용하게 관찰할 법도 생각하지 않고, 조화와 안정을 이루는 부드러운 행동도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 할 줄 알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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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불도에 머무르면서 단절(斷絶)하는 일이 없고 법안(法眼)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번쩍거리는 횃불을 들며, 성인 대중의 계율을 좇으면서 언제나 깨끗하게 닦고 밝게 중생을 관찰하면서 부처의 몸을 성취하며, 덕(德)으로 장엄하면서 세간의 영웅이신 부처님을[世雄] 따르고, 구족한 음성을 들으면서 부처님의 삼매(三昧)를 받들며, 바르게 깨달은 신족(神足)의 변재를 얻고, 열 가지 힘[十力]을 받아서 두려울 바 없는[無所畏] 데에 머무르며, 미묘한 열여덟 가지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모든 부처님의 법에 이르고, 성문이나 연각과 더불어 같게 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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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칠 곳[止處]과 모든 욕심의 더러움을 뽑아내고, 신통을 여의지 않으면서 중생들을 인도하며, 4분별변(分別辯)으로 정진함이 명료하고, 이 세상에서 세간을 제도하는 법으로 중생들을 교화하며, 남들과는 뛰어나게 다르면서 질직(質直)하게 출가하고, 센 물결을 건너면서 넓은 강을 지나가며, 모든 가진 물건과 살던 곳을 끊고 저절로 고요하여져서 법을 가르침이 담박(澹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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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몸과 법을 살피면서 탐애하는 것이 없고, 불법에 뜻하면서 스스로 그러한 생각[自然想]을 환히 알며, 모든 서고 가고 잠잠하고 말하는 일들을 초월하면서, 말이 있을 때는 항상 부처님의 말을 펴고 이러한 지극한 정성으로 항상 그러함[常然]을 없애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 이것을 구족하게 공을 행한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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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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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인민들이 모두가 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자. 저마다 익힌 것이 있지만 솜씨도 같지 않고 능력도 틀리므로, 어떤 이는 집은 잘 그리면서도 사람 몸은 잘 그리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본떠 그려 놓고도 색칠을 잘 못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손발을 잘 그리고 또 귀와 눈을 잘 그리는 이도 있으며, 혹은 머리는 시원찮으면서도 몸은 예쁘게 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것도 그릴 수 없는 이도 있으며, 익힌 것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처럼 되기도 하고 사람처럼 되지 않기도 하는 등 아는 것도 서로가 다르고 용모도 같지가 않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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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그 그림 그리는 이들을 모두다 불러서 모두가 다 때맞추어 오자 왕은 그들에게 삼계(三界)의 모든 형상을 그리게 하면서 말하기를 '저마다 그림을 그린 뒤에 나에게 가져와서 보이도록 하라'고 하고 모두 한군데다 모아놓고 저마다 그림을 그리게 하면 그 중 어느 한 사람이 가장 훌륭하게 그 형체를 그릴 것이니라. 족성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두가 자기 능력대로는 다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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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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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잘할 수 있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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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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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를 빌어서 이 이치를 알게 하리라. 마치 그림을 그리는 어떤 이가 모든 형상을 그리면서 저마다 그 자체를 얻어 그 본 뜻을 잃지 않는 것처럼, 이 법을 배우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은근하게 정진하면서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으면 부처님 법을 이루게 되며, 하나를 바르게 행함으로써 많은 일을 모두 갖추게 되나니, 이로 말미암아서 공의 행을 두루 갖추어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면 곧 온갖 부처님 도를 성취하여 티끌 세상의 욕심과 뒤바뀐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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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생각과 젠체하면서 뽐내는 것과 좋지 않은 방일(放逸) 등을 모두 없애게 되며, 비록 더러운 곳에 있더라도 그들과 함께 닮게 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공의 행[空行]을 두루 갖추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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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하실 때에 8천의 보살은 두루 공의 행을 갖추고 법인(法忍)을 체득하였다. 이것이 보살의 선정 도무극에서의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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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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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의 지혜[智] 도무극에서의 청정한 행이라 하는가 하면 청정한 행이 되는 것에 열두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두 가지 일인가 하면 과거 세상을 보는 지혜가 걸림이 없고 미래 세상을 보는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현재를 보는 지혜가 걸림이 없어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모두 환히 깨달아 알므로 온갖 세간의 모든 재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면서 세간을 제도하고 진리[眞諦]의 이치를 분별하여 설명하며, 그가 익힌 것을 알아서 그 처음과 끝[本末]을 펴고, 모든 중생의 근성(根性)으로 나아가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과 그 중간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아는 지혜에도 걸림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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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룩함은 높고 뛰어나서 세간의 지혜를 초월하였으므로 중생의 뜻하는 성품과 행하는 것과 모습이 변하여 달라짐과, 알기도 어렵고 미치기도 어려운 깊숙한 이치를 모두 보면서 모든 소견을 없애고 뭇 삿되게 머무르는 모든 곳에서의 장애 되는 일을 여의며, 성스런 지혜[聖慧]에 들어가서 중생에게 두루 미치게 하고, 법의 지혜[法慧]에 들어가 거룩한 법장[聖藏]의 이치에 귀착하는 것을 밝게 알아 진실로 들어갈 바를 환히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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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명이 비추는 곳은 착각이나 어지러움이 없고 장애도 없으며 시절(時節)을 관찰하고 즐기는 것이 한량없으며 보게 되는 모든 일은 모두 다 분명히 알면서 어기거나 잃는 것이 없고 진실[誠諦]을 깨달아 알아서 참으로 없애 다하지 않으며, 그가 관찰하는 모든 것은 다 어김이 없고 한결같이 행하면서도 행한 것이 없으며 중생들이 받들어 행하는 위의와 예절을 모두 다 보고 세간 대중들의 마음과 뜻이 나아가는 것도 보살은 모두 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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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을 여의지 않으면서 모든 세간의 경계를 모두 뛰어나고 아직 부처님의 국토를 성취하지는 못하였으나 온갖 짓는 인연을 초월하면서 중생들을 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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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모든 행(行)이 뛰어나면서 두루 많은 덕행을 마치고, 온갖 인연으로 짓는 마음의 작용를 널리 제도하여 중생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모두 보고, 세간의 법을 보살핌이 두루 미치게 하지 않음이 없고, 세속에서 행하는 것을 버리지 않고 진실로 중생의 생각[念]에 들어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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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혜를 헤아리건대 갑작스러움이 없고 위험한 일을 범하지 않으면서 모든 감관이 고요하며, 일찍이 고달퍼하거나 게으름이 없어서 산란하지도 않고 영원히 거룩한 지혜를 관찰해서 항상 덕(德)과 합치되며 보리수에 나아가 도량(道場)에 앉아서 뭇 악마를 항복 받고 외도(外道)를 버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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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에는 받는 것이 있으면서 성스럽게 빛나고 널리 사무치며, 또한 취할 것도 없으면서 큰 성인만이 미칠 수 있으며, 모든 부처님의 머무름을 얻어 중생을 즐겁게 하고, 선정과 지혜[定慧]를 모두 보면서 많은 이치에 두루 들어가며, 모든 법을 모두 같은 맛[同味]으로 삼아 권방편[權方便]의 지혜 도무극을 붙잡고 저 언덕에 건너감이 한량없으므로 이것을 지혜 도무극이라 하고, 온갖 인연으로 일어나는 많은 생각과 상서로움[瑞應]과 기이한 변화[怪變]와 마음의 작용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환히 깨달아 알면서 건너갈 수 있게 하므로 이것을 곧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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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지혜를 헤아릴 때에 두 가지 청정함이 있느니라. 첫째는 장애 없는 지혜[無礙慧]라는 생각에서의 청정한 행이요, 둘째는 엄숙하게 청정하므로 어떤 사람도 그 지혜의 모양에 당할 수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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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 가지 청정함이 있나니, 첫째는 청정하여서 뒤바뀜이 제거되고, 둘째는 청정하여서 모든 소견을 버리게 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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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보살이 행하는 지혜는 두루 들어가지 않음이 없고 거룩한 광명이 갖추어져 있으며 중생을 환히 알고 경전을 통달하여 아느니라. 그 보살은 이 지혜로써 있는 바가 없음[無所有]을 알면서 모두 번뇌의 세간에 들어가 친히 애욕을 다스리고, 태어난 곳에서는 모든 세계에 있으면서 지혜를 이룩하여 모든 국토에 노닐면서 모두 경계와 진실한 지혜를 환히 알되 저 언덕과 이 언덕을 건너지도 않고 그 중간에 처하지도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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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혜는 두루 들어가서 시방을 보되 걸리는 바가 없고 가리움이 없는지라 끝없는 맨 끝에 이르게 되며, 진실한 지혜를 본지라 온갖 모든 법의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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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끝[本末]과 부분[部黨]과 알맞은 때[時節]를 환히 깨달아 알고, 이미 진실한 지혜로 이치가 돌아가는 바를 알고 분별하였기 때문에 응함[應]이나 응하지 않음이 없으며 합침도 없고 분별도 없으며 게으름도 없고 정진함도 없으며 함께 함도 아니고 외톨이도 아니며 모든 법을 헤아리는 데서도 역시 응하거나 합침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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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보살이 만일 지혜의 일을 행하게 되면 지혜로써 집을 삼아 곧 복 집[福堂]을 이루게 되고 돈독한 믿음과 도법(道法)의 방으로 삼아 총지(總持)와 분별지변(分別智辯)에 머물러 온갖 것이 두루 갖추어지고 지혜에 관한 일이 온전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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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보살이 지혜 도무극을 받들면서 닦는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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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다 하시고 나자 그 때 모임 안에 있던 2만 2천 사람이 모두 최고의 바르고 참된 도의 뜻[正直道意]을 내었고 8천의 보살이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하였으며 5천의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뜻이 풀리고 1만의 천자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모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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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모든 천자들은 소리 높여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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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중생이 이 모든 도무극(度無極)의 청정한 행의 도(道)에 대한 법문을 들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얻게 되겠거든 하물며 어떤 이가 듣고서 잘 받들어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서 위의 가르침대로 수행함이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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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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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보살로서 부처님의 도품법[佛道品法]에서의 청정한 행이라 하는가 하면 스스로 그의 몸[身]을 관찰하여 본래부터 몸이 없는 줄을 아는 것이 뜻에 머무름[意止]이 되나니, 곧 두 가지 일로써 그 뜻을 세우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일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거칠고 더럽다[荒穢]고 살피는 것이요, 둘째는 청정한 행[淸淨行]을 관찰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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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거칠고 더럽다고 하는가 하면 이 몸은 무상(無常)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 가득 차 있으며, 이 몸은 힘도 약하여 세력이 없고, 이 몸은 임시로 서 있는 것이 마치 다 기울어진 집과 같다는 것이며, 어떻게 청정한 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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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한다 하는가 하면 '나는 이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써 부지런히 힘쓰면서 공임을 알아 여래의 몸과 법의 몸[法身]을 얻어야 하며, 법신은 높고 뛰어나며 덕을 갖춘 몸[德身]이라 한량이 없나니,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육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서 모두를 기쁘게 하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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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족성자야, 몸의 두 가지 일을 관찰해서 그 뜻을 세우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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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보살은 몸을 관찰하여 몸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나면 청정한 두 가지 법을 얻게 되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 법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보는 것이요, 둘째는 있다[有常]고 살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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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은 무상하여 오래 존립할 수 없고 늙음과 질병이 다가와 마침내 죽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나니, 이미 이런 이치를 통달하고 나면 몸 때문에 삿된 행위를 짓지 않고 몸을 탐내지도 않으면서 굳고 긴요한 도를 닦으며 세 가지 굳은 법을 행하게 되나니, 첫째는 몸의 긴요함[身要]이요, 둘째는 목숨의 긴요함[緊要]이며, 셋째는 재물의 긴요함[財要]이니, 이 몸은 무상한 것인데도 모든 중생들은 귀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 무엇이 이익 되겠느냐. 마땅히 마음 아파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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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몸의 긴요함이라 하는가 하면 몸이 죄악을 범하지 않고 겸손하며 공손히 따르면서 지혜가 많은 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요, 무엇을 목숨의 긴요함이라 하는가 하면 3보(寶)에게 귀의하면서 열 가지 덕[十德]과 육바라밀[度]과 네 가지 같음[等]을 받들어 닦는 것이다. 무엇을 재물의 긴요함이라 하는가 하면 자기 것을 덜어서 보시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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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나의 소유[所有]가 아니요 입으로 말하는 것도 모두가 허물이 많아서 아첨하고 추악하며 바르지 못한 말을 하기에 이르나니, 이 때문에 이런 행을 모두 버리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이미 몸은 없고 수명은 보전할 수 없음을 보았으니 설령 손해를 입는다 해도 악한 일을 범하지 말 것이요, 몸은 덧없고 흩어지는 법임을 깨달았으니 마땅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 것이며, 온갖 가진 물건을 보시하여 탐냄이 없고, 이미 몸이 없음을 알게 되면 그 얻게 되는 착한 덕과 공훈은 뚜렷이 드러나면서 헤아릴 수도 없고, 함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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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함이 있다[有常]라고 하는가 하면 설령 몸을 관찰하여 몸이 없다 함을 분명히 아는 이라 하여도 따로 마음으로 아는 지혜를 섭취하여 온갖 지혜[一切智]를 관찰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법의 말씀[法言]을 잃지 않으며 성인 대중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대중들을 거두어 주는 것이니, 이것을 함이 항상함[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할 수 없기[不可盡] 때문이며 다함이 없고 하는 것은 무위(無爲)를 말하는 것이니라. 그것은 도(道)와 더불어 일치한 것이라 끝도 없고 시작도 없으며 현묘하여 영원히 존재하므로 이것을 무위라 하며 그 무위는 바로 영구할 뿐이니, 보살은 거기에 있으면서 모든 덕의 근본으로써 모든 신통과 지혜를 관찰하여 무위에 이르게 되므로 이것을 항상함이 있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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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항상 하다 함은 공하고 모양이 없고 바램이 없는 것으로써 보살의 도를 닦되 항상 공의 행을 받들고 모양이 없음을 관찰하며 바램이 없다고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루 온갖 정진의 행을 갖추는 것이니, 이것을 항상 함이 있다고 하느니라. 말한 바 항상 하다 함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을 말하므로 보살이 마음을 평등하게 지니기를 마치 허공과 같아서 다름도 없고 생각도 없나니, 이와 같이 행한 이를 보살이라 하며, 이것을 항상 함이 있는 최고의 바르고 참됨[無上正眞]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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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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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몸을 관찰하면서 본래부터 몸이 없음을 분명히 알면 곧 뜻에 머무름[意止]이면 주라 하느니라. 온갖 사람의 몸은 모두 다 본래부터 공하기 때문에 몸이 공함을 알면 뜻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므로 중생의 몸을 관찰할 때에 바로 그 몸은 부처님 몸[佛身]인 것이니, 마땅히 관찰하기를 '만일 여래의 몸에 모든 번뇌[漏]가 없다면 나의 몸도 역시 그렇다'라고 하여야 하며 모든 법을 자세히 살피면서 도의 의치[道義]을 받들어 행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잃지 않으며 번뇌가 없는 몸이 되어서 중생을 관찰하고 모든 모양을 분별하되 번뇌가 없는 몸으로써 하느니라. 번뇌가 없어서 청정하면 본제(本際) 역시 청정하며 마치 그 덕의 근본이 모든 행을 일으켜 세우는 것처럼 덕의 근본을 권하고 돕는 것도 역시 모든 번뇌가 없나니, 번뇌가 없는 법에 이르게 되면 모든 번뇌에 머무를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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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모든 번뇌[漏]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욕망의 번뇌[欲漏]요, 둘째는 존재의 번뇌[有漏]며, 셋째는 견해의 번뇌[見漏]이니라. 그가 욕망의 번뇌를 끊고 설령 욕심 세계[欲界]에 태어나 중생을 교화하며 만일 있음의 번뇌를 끊으면 생사(生死)에 노닐면서 모든 받은 것을 대중들에게 가르쳐 주며, 또 견해의 번뇌함은 바로 무명(無明)의 어리석고 어두운 번뇌이니, 보살은 거기에서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마지막까지 정진하여 그 근원을 뽑아버릴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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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일 몸을 관찰하면서 뜻에 머무름[意止]을 받들어 닦으면 지난 옛날의 모든 하지 않았어야 할 행을 초월하여 뭇 더러움[穢]을 여의고 담박(澹泊)을 따르게 되나니, 이렇게 몸을 관찰하면 곧 제도할 것도 없고 또한 생하는 것도 없으며 그러므로 할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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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몸을 관찰하나니 설령 관찰하였다 하여도 몸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또한 살필 것도 없으며 탐내는 몸을 버리고 나를 헤아리지도 않나니, 이미 나가 없으므로 탐낼 것도 없고, 이미 탐낼 것이 없으므로 다툴 것도 없으며, 이미 다툴 것이 없으므로 재앙도 없고, 이미 재앙이 없으므로 법인(法忍)을 체득하며, 이미 법인을 체득하였으므로 돌아갈 데도 없고, 이미 돌아갈 데가 없으므로 갑작스러움[卒暴]도 없으며, 이미 갑작스러움도 없으므로 스스로 큰 체하는 데에 머무르지도 않고, 곧 법에 머무르게 되느니라. 이미 법에 머무른 이는 그릇된 법을 행하지 않고 법을 따라 행하는 이라 항상 법과 함께 하며, 도법을 닦는 이는 곧 법의 사랑[法慈]을 체득하게 되고, 이미 법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법의 소리[法音]를 듣게 되며, 이미 법의 소리를 행한지라 경계의 소리[界音]를 듣지 않게 되며, 이미 경계의 소리가 고요하기 때문에 곧 삼매(三昧)를 체득하게 되고, 이미 대경을 바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正受] 관찰함이 자세하게 되느니라. 이미 관찰함이 자세하게 되면 곧 생각하는 것도 없고, 이미 생각한 것이 없으면 곧 짓는 것이 없으며, 이미 지은 것이 없으면 짓지 않은 것도 없고, 이미 모든 지음에 지음이나 짓지 않음도 없으면 바르고 참된 법[正眞法]에 이르러 곧 모든 법에 평등하여지고, 이미 모든 법에 평등하기 때문에 곧 신통의 지혜 등 온갖 지혜를 체득하게 되느니라. 이것이 족성자 보살이 몸을 관찰하되 본래부터 몸이 없음을 분명히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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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뜻으로 하여금 그 경계에 머무르게 하는[意止]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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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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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의 느낌[痛痒:受]으로 뜻에 머무름[意止]이라 하는가. 느낌에는 본래부터 느낌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이렇게 그 뜻에 머무르게 되느니라. 모든 괴로운[苦] 느낌을 보되 모두가 중생은 모두 근심과 어려움에 있다고 보면서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게 되면 크게 가엾이 여기니 오직 생각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고뇌에 있으나 만일 편안함을 얻으면 비로소 고통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서 곧 온갖 위험과 해로움을 끊어 없애준다. 이리하여 느낌을 관찰하면서 본래 느낌이 없다 함을 알면 뜻에 머무르면서 행하는 것에 벌써 느낌이 사라지고,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큰 덕의 갑옷을 입게 되면서 먼저 자신의 그릇된 법 행을 없애고 또한 이미 느낌이 사라졌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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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느낌이 일어나면 널리 모두를 위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면서 그들에게 영원한 안락을 보여 많은 근심을 없애준다. 탐욕을 내는 사람을 위해서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면서 먼저 자기의 탐욕을 없애어 탐욕에 묶이지 않으면 설령 몸에 고통을 당한다 하여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요, 성내는 사람을 위해서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면서 자기의 성내는 번뇌를 끊으면 그는 곧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不苦不樂] 느낌을 보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서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면서 자기의 어리석음의 속박을 없애면 그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관찰하면서 집착하는 것이 없고 모든 번뇌를 녹여 무너뜨리면서 스스로 편안함을 누리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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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괴로운 느낌이 있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모든 유위(有爲)를 버리면 곧 잘 좇아 닦아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게 되고 그로써 어리석음이 무너지게 되며, 설령 즐거운 느낌이 있더라도 쌓아 모으는 것이 없고 설령 많은 환난을 만난다 하여도 몸이 덧없다 함을 분명하게 알므로 괴로운 느낌을 관찰하면서 느낌에는 나가 없다고 살피게 되나니, 그는 즐거운 느낌을 관찰하여 안온함을 닦아 행하며, 그 괴로운 느낌은 곧 창병(瘡病)이 된다고 관찰하느니라. 이 때문에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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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모든 존재하는 것이 안락한 것이라고 본다 하여도 모두 무상(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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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데로 돌아가 그것에는 많은 고통이 있는 것이다. 괴로운 것에 대하여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역시 나도 없다고 헤아린다. 보살이 만일 모든 안락한 일을 보면 모든 것은 본래 안락한 것이 없다고 분명히 알면 이것이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니라. 느낌은 뿌리가 없어서 생기자마자 이내 없어지는 줄 알고, 모든 법은 오래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달아 알며, 만물은 불꽃처럼 생겼다가 갑자기 없어진다고 자세히 살피고,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어디서 왔다가 이내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보며, 모든 법은 본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다고 관찰하면서 '어디서부터 왔고 갈 때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고 하면 곧 어디서부터 오는 것도 없고 가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음을 환히 알게 되므로 모든 법을 관찰함으로써 걱정으로 여기지 않고, 온갖 것을 널리 보면서 독실하게 믿으면 쉬게 되느니라. 이로 인하여 도(道)를 이루게 되고 도를 이룸으로써 역시 얻는 것도 없으며 다시 물러나거나 되돌아오지도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근본에서 일으킨 이 사라져 다함[滅盡]을 알면서도 자기 몸을 위해서는 사라짐[滅]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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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족성자·보살·대사(大士)가 좋은 권방편(權方便)으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느낌을 관찰하여 본래 느낌은 없다 함을 분명히 알아 뜻에 머무는 행이 되나니, 모든 소견을 없애고 여기에서 삼계(三界)의 모든 느낌을 만나지 않고 번뇌가 고요히 사라져 깨달음의 끝[證際]을 취하게 됨을 분명하게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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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은 느낌에 대하여 부처님이 찬탄하신 근본임을 관찰해서 모든 느낌은 고요하고 담박(澹泊)하여 본래 있는 것이 없음을 알면 역시 어려움을 만나는 일도 없고, 영원히 어려움을 만남이 없으면서 모든 법이 다 공하여 나를 여의게 되며, 다만 인연(因緣)에 의지하여 모였다고 보면서 모두 주인도 없고 또한 나도 없으며 모든 소견을 버려서 기르는 바가 없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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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와 같이 관찰하면 곧 진실로 보는 것이어서 인연으로 모인 바도 얻을 수 없다. 이미 얻을 수 없으면 곧 '마치 인연이 공함과 같이, 이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법도 역시 공하다고 관찰한다. 이미 공의 이치를 통달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느낌을 관찰하여 본래 느낌이 없다고 여겨 뜻에 머무르게[意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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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나니, 이른바 고요하게 몸이 담박하여지기 때문에 모든 이치를 가려내는 도의 거룩한 지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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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족성자보살이 몸의 느낌을 관찰하여 본래 느낌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 뜻에 머무는[意止]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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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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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마음[心]을 관찰하여 본래 마음이 없다 함을 분명히 알면 뜻에 머무는[意止] 행이 된다. 도의 마음[道心]에 서서 그로써 마음을 세우게 되며 자기 뜻의 지혜로써 그 마음의 근본을 구하여도 안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바깥의 마음도 보지 못하고 안팎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 마음의 근본을 자세히 살펴도 5음(陰)을 보지 못하고 네 가지 요소[四大種]도 없으며 여러 감관[諸入]도 없으며 그 마음은 고요하여 평정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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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탱하는 곳은 어디서부터 일어나게 되는가를 구하면 곧 다시 마음은 연(緣)으로부터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되며 다시 또 생각하기를 '그 마음이 달라지는 것인가, 인연이 달라지는 것인가'라고 한다. 또 스스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안다. 설령 인연이 달라지면 그 마음이 달라진다고 하는 두 가지 마음이 있게 된다. 설령 인연이 바로 마음이며 마음 그것이 인연이라면 이 때문에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마음을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거짓이요 진실이 없는 모든 티끌 세계가 허공에 머무르는 것과 같고 날카로운 칼로 손가락을 다치게 하면 그 때에는 상처가 있지만 손가락의 상처가 나으면 아픔이나 괴로움이 없는 것도 이와 같다. 성자야, 마음도 역시 그와 같다. 이런 까닭에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도 곧 보는 것이 없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이 머무르는 곳을 관찰하면 역시 죄를 일으킴도 없으며 아주 없다[斷滅]고도 보지 않으며 항상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몸도 없으며 몸은 마치 담장이나 벽과 같다고 하여야 하느니라. 그리고 인연이 어지럽히지 못하고, 근심 걱정을 여의지도 못하며, 또한 이것이 있지도 않고, 또한 다른 것이 있지도 않나니, 이것이 마음이니라. 마음 지니기를 이와 같이 하면 마음이 움직여서 법이 되나니, 마음은 머무르는 데도 없고 또한 행하는 것도 없으며 마음은 볼 수도 없고 마음의 모양은 스스로 그러하므로[自然] 이렇게 깨달아 알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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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이와 같다면 보는 바를 여의지 않으면서 그 마음은 고요하여지고 뿌리가 없음을 밝게 알게 되나니, 이것이 보살로서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이 없음을 아는 뜻에 머무름[意止]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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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설사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생각도 없어서 응함[應]이나 응하지 않음도 없으며 또한 가벼이 여김도 없고 방일하지도 않으면 이것이 마음을 관찰하는[觀心] 것이요 본래 마음이 없음을 알면 뜻에 머무름[意止]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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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치 마음이 빛깔이 없는 것처럼 그 인연이 모임과 변재(辯才)도 역시 그와 같아서 덕의 근본[德本]도 빛깔이 없어서 마치 마음이 함[心無爲]이 없는 것처럼 덕도 역시 빛깔이 없고 권하는 것도 도의 마음도 역시 빛깔이 없으며 설사 도의 마음과 권하고 도와주는 것도 형색이 없으므로 도(道)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 있는 바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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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치 그 마음과 같이 하는 이는 행도 그와 같이 하고, 권하면서 돕는 도의 마음 같은 것을 헤아려 보아도 역시 그와 같으며 마치 그 도의 마음과 같이 사람의 마음이 본래 청정한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도의 마음도 본래 청정하고 온갖 모든 법도 역시 그와 같다'라고 한다. 이런 마음과 같이 하면 깨달아 알면서 널리 들어가느니라. 이것이 보살로서 마음에 마음 없음을 관찰하면서 뜻에 머무는[意止] 것이 되느니라. 뭇 환난에 시달리면서 일찍이 멈추는 일이 없음은 마치 원숭이나 빨리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또한 등불의 빛이 빛나다가 홀연히 꺼져가는 것과 같아서 몸은 모습이 없어지면서 쉬이 물러나게 되거늘 모든 경계를 탐내고 아끼는 여섯 가지 마음의 근심으로써 집을 삼아 잠깐 동안에도 변하며 달라지면서 저마다 알맞은 바를 따르거니와 '마음은 처소가 없으면서 혼자 돌아다니고 견고하거나 긴요함도 없으며 또한 긴요하지 않은 것도 없다'라고 고요히 혼자 관찰하면 이것을 마음에 마음이 없음을 관찰하면서 뜻에 머무는[意止] 청정함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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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들어갈 지혜는 마음의 법계(法界)이니, 지혜의 마음이 머무르는 그 광명은 본래 깨끗하여 산뜻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마음의 참된 이치를 안다. 현재 눈으로 보게 되는 마음과 법이 평등함을 깨달으면 지혜도 역시 마음과 같다. 마음은 3세(世)에 평등하며 이미 평등하여지면 곧 참되고 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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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正]을 알면서 마음과 지혜는 스스로 그러하여[自然] 보호하거나 지닐 수도 없고 관찰하여도 볼 수가 없나니, 이것을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이라고 할 것이 없다고 하며 뜻에 머무름[意止]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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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래 깨끗함을 헤아리면 곧 스스로 그러하기[自然] 때문에 마음 역시 본래 깨끗하여 중생의 마음을 환히 알며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교화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자기의 마음이 스스로 그러함을 잘 알므로 모든 중생도 역시 또 스스로 그러한 줄 아나니, 만일 마음이 이와 같다고 분별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의 모양을 보면서 그들에게 설법하며 마치 마음의 모양이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중생의 마음의 모양이 스스로 그러한 것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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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모양을 통달한 이면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자기 마음이 공하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도 역시 공하며 이미 이 공함을 알고 나서 그들에게 설법하므로 자기 마음을 평등하게 부린다. 만일 마음을 평등하게 부리면서 설법하게 되면 자기 몸도 곧 평등하여지며 이미 자기의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에 중생에 대해 평등하고 이미 중생에 대해 평등하면 모든 법에 평등하며 이미 모든 법에 평등하면 모든 부처님에 대해 평등하여지느니라. 이러한 진리를 깨달으면 그 마음으로 하여금 탐욕을 여의게 하지도 않고 탐욕에 처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이미 머무르게 된 이는 곧 법계(法界)에 들어가 스스로 그러함[自然]에 나아가면서 마음은 머무르는 곳이 없고 법에서도 동요함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이 없다고 하는 뜻에 머무르는[意止] 청정함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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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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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법(法)을 관찰하면서 본래부터 법이 없는 줄 알면 뜻에 머무는[意止] 행이 되느니라. 곧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법이 생기면 곧 생기고 법이 사라지면 곧 사라진다. 처음과 끝을 헤아려 보건대 역시 나의 몸도 없고 사람도 수명도 없으며 사람과 사람 아닌 이[非人]가 나고 늙고 병들고 죽거나 죽은 뒤에 나아가는 데도 없다. 이 모든 법에서는 모든 법이 합하고 모인지라 그 합하고 모임으로 인하여 습관이 되거니와 만일 인연의 합함이 없으면 이런 것도 없다. 그 습관을 좋아함에서 인(因)이 이루어지고 연(緣)이 모여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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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의 근본과 악(惡)의 근본을 일으키지만 무상(無常)한 데로 돌아가고 나면 인연의 모임도 없게 되는지라 습관도 없는 것으로부터 모든 법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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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관찰하여 모든 법을 환히 깨달으면 귀착하는데도 역시 아무것도 없어서 공하여 모양도 없고 소원도 없으며 짓는 공덕과 공덕이 없는 것 등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서 덧없다고 보게 되나니 마땅히 정진을 받들어 행하면서 설령 인연이 일어났다 하여도 열 가지 높은 행으로서 극히 으뜸가고 더 숭상할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인연을 제거하고 큰 법[大法]에 뜻을 두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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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면 몸이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고 모든 상호(相好)와 종호(種好)로 정수리를 볼 수 없어서 온갖 모든 침해를 벗어나며 뜻하는 성품이 청정하여 열 가지 일을 두루 갖추고 그 마음이 청정해져서 바른 행을 완전히 갖추며 60억의 음성을 내어 중생을 즐겁게 하여주며 그 마음이 청정한 이는 항상 인자한 생각을 품고 온갖 것을 가엾이 여기어 해를 끼침이 없으면서 그 뜻은 언제나 안정하여 일찍이 산란함이 없느니라. 변재가 청정하여 강설(講說)할 때에는 법의 이치에 알맞으면서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큰사랑[大慈]이 청정하여 중생을 깨우쳐주고 교화하여 모두가 열반의 경계를 즐기게 하며 크게 가엾이 여기고 청정하여 수없는 겁 동안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열 가지 힘을 청정하게 하여 중생의 근원과 생각하는 바가 각각 같지 않음을 환히 깨달아 아느니라. 청정하고 두려움이 없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법과 중생의 쌓인 무더기[積聚]를 분별하고 의거하며 모든 부처님만이 지니는[不共] 법을 갖추고자 하면서 과거·미래·현재의 지혜가 3세(世)에 걸림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이 청정하여 작용이 자재하면서 거룩한 지혜에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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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이 높고 묘하고 극히 으뜸가서 더 능가할 것이 없는 큰 법의 열 가지 행에 이르게 되면 헤아리고 생각해서 싫어하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공훈을 쌓으면서 덕이 없는 행에 떨어지지 않고 은근하게 정진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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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모든 법이 근원에서 오는 처소가 없게 되며 머무르는 모든 묵은 번뇌[塵勞]에서 건너간다고 하는가 하면 만물이 모두 무상한 것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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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무상삼매(無常三昧)를 이루게 되고 이 선정을 얻은 이는 견고하고 긴요한 생각[緊要想]이 없으면서 삼매에서 산란하지 않으며 그 본래의 서원[本願]에 따라 향하여 태어날 곳을 보이며 그로부터 와서 들어가는 바가 있어서 다시 태어나게 되어 공덕의 행을 널리 펴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 이것이 족성자 보살·대사(大士)가 좋은 방편으로 경전을 두루 설하여 모든 법을 관찰해서 본래 법이 없는 줄 통달하여 뜻에 머무는[意止]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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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道)에 이르고 경전을 좇아 닦으면서 만일 도품(道品)의 법을 깨달아 알면 많은 선(善)을 짓지도 않고 항상 있다고 보지도 않으며 또한 집착하는 것도 없고 악한 법을 제거하지도 않으며 도의 마음[道心]으로 보는 것과 있는 대상에 끊어짐도 없고 또한 항상 있다고 헤아리지도 않고 아주 없음[斷滅]에도 떨어지지 않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항상 있다거나 아주 없다고 보는 일을 버리고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면서 머무르지 않으면 중간(中間)에 처하게 되나니, 무엇을 중간이라 하는가 하면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생각하거나 행하지 않아야 하고 이것을 모두 없애버리면 이것을 중간이라 하며 명령함도 없고 가르쳐 줄 만한 것도 없으며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요약하면 무명·지어감[行]·인식[識]·이름과 물질[名色]·여섯 감관[六入]·접촉[觸]·느낌[痛]·욕망[愛]·집착[取]·존재[有]·태어나고[生] 늙고 죽고[老死] 근심하는 괴로움이 모일 만한 것도 없고 모두 이미 없애고 다하면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그가 가르치는 바에 지혜도 없고 또한 일정한 곳도 없으면 이것을 중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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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간이란 역사(驛舍)도 없고 또한 파견한 이나 이와 같이 묵을 곳[宿處]도 없으며 그 있는 바를 헤아려 보아도 명령함이 없고 가르쳐 주는 이도 없으며 이 본말(本末)을 헤아려 보아도 결단하여 마칠 수도 없고 아직 처한 데도 없으며 붙잡을 수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고요하고 쓸쓸하며 담박(澹泊)하여 홀연히 벌써 사라져 버리나니,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비유하면 족성자야, 메아리가 나오는 곳은 일정한 처소가 없으되 그는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 소리를 대치해 내는 것처럼 진리를 보면 진실과 거짓에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중간이 되어 언어도 없고 설명도 없나니, 그것은 곧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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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없고 처소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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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아서 족성자야, 인(因)이 되어 인식과 물질[識色]을 일으키는 일과 그러한 인(因)이 합하여 이루어지도록 시키는 것은 두 연(緣)이 상대함에 따른다. 그 중간에는 가르치는 것도 없고 설명도 없나니 이것을 중간이라 하며, 인과 연[因緣]이 합하여 이루어지면 이치가 소용이 없고 그 이치란 것을 얻을 수 없으며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거듭 오지 않고 그것이 거듭 오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또 나라는 것을 헤아려 보면 곧 나[我]가 없고 사라져서 고요하며 이것에서는 나와 나가 아님이 저절로 청정하게 환히 아나니, 이것이 중간에 처하는 것이다. 사람과 수명을 헤아려 보면 사람과 수명은 보이는 것이 없고 청정하여 자연이므로 이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과 생각이 없는데서 생각하는 즐거움이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고 뒤바뀐 일에 있는 바가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느니라. 허망함과 어리석음과 지극한 정성의 가르침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을 중간이라 하며 이 언덕[比岸]과 저 끝[彼際]으로 자기 몸을 소화하여 집착함이 없게 하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에서 모든 것을 익히지 않는 것을 중간이라 하며 생사를 제거하고 열반도 버리면서 모든 언어와 가르침이 없는 것을 중간에 처한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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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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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法)을 관찰하되 법은 본래 없는 줄 환히 알면서 뜻에 머무르는[意止] 사람은 법계(法界)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뜻이 스스로 그러하여[自然] 그 뜻으로 하여금 대경에 머무르게 할 수 있나니, 그는 법계에 인도하여 모든 법을 깨달아 알므로 그 법의 경계와 사람의 경계를 헤아릴 때에는 그 법의 경계에 있어서도 역시 무너뜨리는 것이 없고 사람의 경계도 헐어뜨리지 않아서 사람의 경계와 법의 경계 이 두 가지 일에 똑같아서 마치 허공의 경계[空界]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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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경계로써 모든 법을 널리 보되 혜안(慧眼)으로써 보고 법의 경계로써는 부처님께서 행하신 것을 관찰하거니와 만일 어떤 사람이 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는 곧 보는 것이 없나니, 이 때문에 모든 법은 약간이라도 본래 법이 없다고 보면 약간의 것도 보지 못하느니라. 만일 법을 관찰하여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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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을 본다면 육안(肉眼)으로도 보지 못하고 천안(天眼)으로도 보지 못하며 혜안(慧眼)으로도 보지 못하느니라. 그 까닭은 눈을 부린다고 헤아린 이가 생각[想]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니라. 육안으로 보지 않으면 그 눈은 생사(生死)의 행에 떨어지지 않고 만일 천안으로써 보는 바가 없다면 그 눈을 이용하여 방일을 하지 않으며 만일 혜안으로써 보는 바가 없다면 그는 법을 관찰해서 법은 본래 없는 줄 알며 모든 법을 널리 보면서도 처소가 없고 법에 머무르는 것이 없으며 이미 모든 법을 보면서 머무르는 것이 없다면 법의 뜻[意]을 행하면서 곧 옛날에 서원한 바에 어긋나거나 상실하지 않으리니, 이것이 보살로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스스로 뜻을 세워 감히 깊고 묘한 법을 관찰할 수 있으며 도의 마음으로 모든 신통과 지혜[通慧]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이것이 족성자 보살·대사로서 본래 법이 없다고 관찰하여 뜻에 머무는[意止]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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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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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네 가지 의지[四意止: 四念處]의 행이니, 네 가지 정진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네 가지 정진이라 하는가 하면 몸[身]을 몸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실은 깨끗하지 않은[不淨] 것인데도 깨끗하다고 헤아리는 뒤바뀐 생각을 버리는 것이요 느낌[痛]을 느낌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괴로운 것[苦]인데도 즐겁다고 여기는 뒤바뀐 생각을 버리는 것이며 마음[心]을 마음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항상 없는 것[無常]인데도 항상 있다고 헤아리는 뒤바뀐 생각을 없애는 것이요 법(法)은 법이라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면서 나 없는 것[無我]인데도 나라고 여기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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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뒤바뀜[顚倒]에서 평등함을 닦으면 집착할 것이 없게 되나니, 보살이 만일 평등함을 잘 수행하면 온갖 모든 행이 청정하게 되느니라. 보살이 이 평등하고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받들면 곧 법인(法忍)을 체득하게 되며 사의단(四意斷)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역시 법인을 체득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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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단(意斷)의 청정함이라 하는가 하면 수행하는 이가 도법(道法)을 강설하여 이 인연으로써 선의 근본[善本]되는 법행은 자연히 따르고 악의 근본[惡本]은 좇지도 않고 잘못을 일으키지도 않는 것이니라. 모든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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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이 아닌 것이 아직 싹트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도록 정진하여 받들고, 모든 악이 일어났거나 그릇된 법의 일이면 곧 그것이 없어지게 하기 위하여 정진을 닦으며, 모든 착한 법의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면 권하여 일으켜 내며 일어난 착한 법으로써 더욱더 정진하여 그것을 두루 갖추게 함과 동시에 잊거나 잃어버림이 없게 하도록 정진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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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살이 본시 행한 청정한 업은 스스로 다스려서 잘 보살피고 착한 법은 잃지 않고 자재로이 머무를 수 있게 하며 점차로 더욱 기르면서 착한 법을 드날리고 착한 법으로서 이미 일어나 있는 것이면 다시는 잊거나 잃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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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족성자가 이와 같이 청정함을 행하면 이것이 4의단(意斷)이다. 그것이 보살의 행이니,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서 정진에 어지럽지 않고 그 깨끗함과 더러움이 함께 합하지 않으며 청정하여 때[垢]가 없으면서 부처님의 지혜에 어긋나지 않고 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대비(大悲)를 행하며 마음과 마음이 서로 대하여 그 생각하는 바를 보고 정진을 잃지 않으면서 평등함을 행하므로 의단(意斷)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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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평등하고 찬찬함을 좇으면서 삿된 일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니, 찬찬함[安祥]으로 인하여 삿된 일을 좇지 않으면 곧 의단(意斷)의 평등한 삼매를 체득하게 되고 이미 삼매를 얻은지라 평등한 4의단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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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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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4의단을 잘 수행하면 곧 4신족(神足)을 받들어 행하여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탐욕을 끊어 없애고 정진을 받들어 행하면서 도의 마음[道心]으로 하여금 고요해져 더러움이 없게 되며 생각하는 것이 얇고 적어지고 벌써 그릇된 법을 버려서 가볍고 편안하게 되며 대비(大悲)를 이루게 되어 정진이 가쁜 하고 권방편(權方便)을 얻으면서 벌써 타이름[誡]이 가쁜 해지나니, 이로 인하여 4신족을 성취하여 도의 집[道堂]에 올라 네 가지 자재함[自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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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네 가지 자재함이라 하는가 하면 수명(壽命)에서 자재하게 되어 이미 목숨이 길어져서 오래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한없이 누리고 명이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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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6 / 3476] 쪽 |
이들 가운데서도 한량없는 수명을 갖추어 중생을 교화하게 되며 오래 사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설법을 듣고 살피느니라. 또 어떤 이가 싫증내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수명을 짧게 하면 간절히 법을 우러르면서 은근히 이치를 구하기도 하는 등, 천상과 인간에 태어날 때마다 각각 그 수명에서 자유자재하나니, 이것이 첫 번째 체득하는 자유자재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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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몸과 입에서 자재하게 되느니라. 그 사람의 몸과 입은 자기의 마음을 따르고 몸에 의뢰하지 않으면서 뜻에 따라 모습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의 용모를 따르면서 색상(色像)을 보이고 그 중생의 예의와 예절과 몸이 아름다운지 못생겼는지 큰지 작은지 착한지 악한지에 따라 어떠한 율의(律儀)로써 교화하는가 생각하여 바르게 정한다. 보살은 곧 그 형모를 변화시켜서 앉고 일어나고 오고 가거나 뜻을 일으키는 그 순간에 기어다니고 숨을 헐떡거리는 사람 또는 동물에게 몸의 형상과 얼굴빛을 모두 한 가지로 하여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이것이 두 번째 체득하는 자유자재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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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법(法)에서 자재하게 되느니라. 삼계(三界)에 있으면서 세간을 건지는 바른 성전[正典]을 가지고 세속의 법을 행하지 않으면서 세속의 습관을 따라 널리 변화를 나타내며 또한 세간을 건지는 지혜를 버리지도 않고 또한 잃는 것도 없으며 장애 없는 지혜와 깊고 오묘한 도에 이르고 12연기(緣起)의 인연의 법으로 미혹을 보게 되느니라. 만일 천상에 태어나거나 인간과 함께 하면 그 언어를 따르면서 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계율과 가르침을 따르고 그들이 좋아하는 바에 따라 상·중·하의 소원으로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하는 등 얻는 것이 자유자재하여 높고 뛰어남이 그와 같나니, 이것이 세 번째 체득하는 자유자재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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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보살은 그 마음을 먹은 대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니라. 그 자유자재하다 함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큰 바다를 거두어들여 하나의 바다로 만들 수도 있고 또 가고 옴이 없으면서도 변화를 나타내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하나의 산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천왕과 도리천(忉利天)의 하늘들로 하여금 그것이 합치고 흩어지고 가고 오고 나아가는 바를 알지 못하게 하고 그로 인하여 삼천세계가 변화를 나타내게 하며 그러면서 모든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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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이 모두 나무와 꽃과 열매의 수효를 알 수 있게 하고 허공 속에 물과 불이 가득 차게도 하느니라. 혹은 뭇 보배를 변화하되 변화시키는 대로 만들어지게 하고 만들어진 뒤에는 순식간에 생각대로 되지 않음이 없어서 홀연히 본래대로 되기도 하나니, 이것이 네 번째 체득하는 자유자재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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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보살은 이 4신족을 행하여 스스로 닦아 세웠기 때문에 시방의 부처님과 함께 말을 하고 앉고 일어나고 거닐면서 그 곁을 떠나지 않으며 모든 제석·범왕·사천왕과 하늘·용·귀신·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및 사람과 사람이 아닌 이 등 모든 중생들과 함께 서로 따르면서 말을 하고 앉고 일어나고 다니고 걷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의 신족은 미묘하고 높고 뛰어나서 특이함이 있기 때문이니, 옛날에 수행한 착한 법의 이치가 이지러짐이 없었기에 이런 일을 얻게 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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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신족으로서 옛날에 수행한 착한 법의 이치라 하는가 하면 그의 몸을 가쁜 하게 하면서 어른을 공경하고 복 많은 이[衆祐]를 받들어 섬기면서 총총히 달리며 심부름하면서도 괴롭다고 여기지 않으며 겸손하고 뜻을 낮추면서 젠체하지 않고 입으로는 좋은 말만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으며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음이 없어서 스스로 머리 조아리고 예절을 두루 갖추었으며 말과 행이 상응하여 그의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고 오만하거나 방자하지 않아서 해치려는 뜻이 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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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겸양과 공경을 닦아서 스스로 제 마음을 조복하고 어른의 말을 들어 받아 가르침에 순종해서 예배하였으며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면서 그의 뜻을 다스리고 정진과 수행을 버리거나 여의는 일이 없었으며 그 사람은 계율과 예절을 두루 갖추고 몸으로 짓는 일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났으며 마음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또한 방일하지도 않았느니라. 그는 탐욕으로부터 허물이 생기고 성을 내며 어리석은 몸이 생기는 것이라, 이것을 제거하여 탐욕과 질투가 없어져서 재물과 음식에 대한 온갖 탐냄을 스스로 제거하였고 뜻하는 성품을 일으키지 않아 곧 병이 낫게 되어 뭇 일들을 법도대로 하였으며 짊어진 무거운 짐은 열약(劣弱)으로 인하여 이런 우환에 이르는 것이라 뭇 일을 덮어 가리면서 그 짐을 버렸느니라. 다섯 가지 일[事]로 받은 것은 은혜로써 베풀고 교량과 길에 의지하여 건너갔으며 큰배로써는 네 가지 큰 강[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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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온갖 중생들을 넓은 물살에서 온전히 건너게 해주었으며 교화를 할 때는 빼어나게 다름이 있었으니, 산란한 이는 바르게 하고 멋대로 구는 이는 안정시켰으며 나쁜 버릇이 있는 이는 옳게 고쳐 주고 헐뜯는 이는 웃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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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흐르는 물결에 거리끼지 않고 모든 의심을 결단하였으며 말하는 것은 특이하고 모든 동요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생각의 모든 경계를 구하고 깨치지 않았으면 깨닫게 하였으며 사랑하고 소중한 것을 매양 보시하면서도 뒤에 뉘우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여 도의 뜻[道義]을 도왔으며 만일 다른 이가 덕의 근본을 쌓는 것을 보면 그를 대신하여 기뻐하고 자신을 찬탄하거나 몸의 안락을 도모한 일이 없었으며 다른 사람의 안락을 보면 기뻐하며 찬양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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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기르면서 만족할 줄 알고 다른 이익을 바라지 않았으며 출가(出家)하기를 좋아하여 남에게도 출가하여 배우기를 권하였고 큰 자비를 닦아서 늘 도의 마음을 품었으며 원수나 친한 벗을 평등히 여겨서 좋아하기를 마치 허공과 같이하고 피로한 이를 보면 탈 것을 마련하여 주었고 두려움이 없음[無畏]으로써 중생에게 베풀었으며 학문하는 이를 보면 공경하기를 마치 부처님같이 하고 배우지 못한 이에게는 깔보는 마음이 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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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에게는 재물로써 보시하고 병든 이에게는 의약으로 구제해서 목숨을 살렸으며 구호 받은 이에게는 은혜를 갚기 위하여 효순(孝順)하고 계(戒)를 수행하는 이에게는 스스로 잘 닦고 삼가도록 공양하고 섬기면서 그 뜻을 잃지 않게 하였으며 조심성이 없는 이에게는 세간 사는 법으로 권해서 구제하고 돌아다닐 적에는 모든 악(惡)을 범하지 않았으며 세간 일에 대하여 집착이 없이 모든 덕(德)을 받들어 행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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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족성자야, 미묘하고 높고 뛰어난 모든 신족을 닦을 적에 이와 같이 지니고 행하여서 신족을 상실하지 않았고 항상 그와 함께 하면서 불도를 이루기에 이른다. 이것이 보살로서 신족에서의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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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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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8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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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삼장 축법호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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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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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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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보계보살회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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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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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의 다섯 가지 뿌리[根]의 청정한 행이라 하는가.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도의 이치를 닦는 것이 믿음의 뿌리[信根]요, 저 언덕[彼岸]을 건너기 원하면서 남을 부리지 않는 것이 정진의 뿌리[精進根]이며, 도의 뜻을 버리지 않고 모든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뜻의 뿌리[意根]요, 크게 가엾이 여겨서 위험이나 어려움을 구제하려 하는 것이 선정의 뿌리[定根]이며 모든 법을 받들어 받으면서 고요함[寂寞]을 닦는 것이 바로 지혜의 뿌리[智慧根]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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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모든 부처님 법을 독실히 믿어서 도의 자취[道跡]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믿음의 뿌리요,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들어 게으름이 없는 것이 정진의 뿌리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고 거룩한 이치[聖義]를 마음에 두어서 잊거나 버리는 일이 없는 것이 뜻의 뿌리요, 부처님의 선정을 닦아 익히면서 처음부터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는 것이 선정의 뿌리이며, 온갖 중생의 의심의 번뇌를 없애면서 생각하거나 원하는 바가 없는 것이 바로 지혜의 뿌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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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의 도를 사모하면서 망설이지 않는 것이 믿음의 뿌리요, 그 성품이 유순하고 정진을 닦으면서 물러남이 없는 것이 정진의 뿌리이며, 덕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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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을 돕고 자라게 하면서 손상함이 없는 것이 뜻의 뿌리요, 평등하게 광명을 펴서 중생을 비추어서 마음의 산란함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선정의 뿌리이며, 모든 사람의 근원을 분별해서 그를 위해 설법을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뿌리이니라. 온갖 모든 거리낌을 초월하고 집착함이 없는 것이 믿음의 뿌리요, 중생의 번뇌를 없애주고 모든 속박이 없게 하는 것이 정진의 뿌리이며, 뜻하여 받들어 행하는 것에 집착이 없고 홀로 삼계(三界)를 거닐면서 우뚝하여 남과 다른 것이 뜻의 뿌리요, 모든 거리낌은 인연(因緣)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아는 것이 선정의 뿌리이며, 모든 집착과 의뢰를 환히 아는 지혜를 통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지혜의 뿌리이니라. 또 좇는 것으로 하여금 미혹됨이 없게 하는 것이 믿음의 뿌리요, 사람을 교화하되 미혹되지 않고 때 아닐 때[非時]에 버리면서 항상 즐거움을 품는 것이 정진의 뿌리이며, 좇는 법을 항상 청정하게 행하고 미묘한 법을 여러 가지 더러움으로 헷갈리지 않으며 도의 이치를 잊지 않고 날마다 더욱더 닦는 것이 뜻의 뿌리요, 그 마음이 깨끗해서 평등함을 받들어 행하고 바르게 받아들임[正受]과 거룩한 지혜가 고르고 나란하여서 제도되는 것이 선정의 뿌리이며, 만일 법계(法界)에 걸릴 것이 없음을 환히 알아서 모든 때아닌[非時] 것을 버리고 분명히 아는 법에 머무르는 것이 바로 지혜의 뿌리이니라. 모든 선이 아닌[非善] 근본을 없애고 뭇 덕을 수행하는 것이 믿음의 뿌리요, 모든 선의 근본[善本]을 좇아서 경전(經典)에 순종하는 것이 정진의 뿌리이며 뭇 선(善)을 쌓아서 법을 잃거나 어기지 않는 것이 뜻의 뿌리요, 선정의 뜻으로 기뻐하면서 안락을 탐하지 않고 중생의 모든 덕의 근본을 분별하는 것이 선정의 뿌리이며, 뭇 선을 받들어 행하고 그 방편을 따르면서 평등하게 도법을 닦는 것이 바로 지혜의 뿌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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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고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게으름을 버리며 뜻에 구하는 것이 없고 있거나 잃는 것도 없으며 선정의 뜻을 보호하면서 미혹되지 않게 하고 지혜를 받들면서 어리석은 이들을 교화하느니라. 또 믿음을 행하는 이는 삿된 법을 버리고, 정진을 행하는 이는 나를 놓아버리며 그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만 쓰면서 탐내는 몸을 제도하고 선정을 잘 행함으로써 예순두 가지 소견[六十二見]의 그물을 찢어 무너뜨리며, 저 지혜 있는 이는 온갖 기대고 집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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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사랑을 없애버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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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보살이 닦을 다섯 가지 뿌리의 깨끗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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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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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보살이 행하는 다섯 가지 힘[五力]의 깨끗함인가 하면, 만일 이것을 헤아리면서 다섯 가지 뿌리를 잘 세워 받들어 행하고 버리지 않으면 네 악마를 항복 받고 성문승과 연각승을 좇지 않으며 대승을 따르면서 물러나는 일이 없고 뭇 애욕과 번뇌의 더러움을 녹이며 그 서원은 견고하고 마음에 자재함을 얻으며 뜻함이 용맹스럽고 그 몸은 강건해져서 세력이 있으며 모든 감관은 담박(澹泊)해지고 독실한 믿음이 파괴되지 않나니, 족성자야, 이것을 믿음의 힘[信力]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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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야 할 것은 하지 않고 그 성품을 제어(制御)하면서 고르게 하는 것이 정진의 힘[精進力]이요, 닦아야 할 것은 모두 수행해서 그 뜻의 세력이 강한 것이 뜻의 힘[意力]이며, 지을 도업(道業)을 잊거나 잃지 않고 온갖 것을 제도하는 것이 선정의 힘[定力]이요,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닿임[細滑]과 뭇 생각의 위험한 것을 받지 않고 온갖 망설이는 모든 번뇌를 벗어나서 그것을 뜻에 머무르는 것이 바로 지혜의 힘[慧力]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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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다른 이의 가르침을 좇지 않으면서 받는 바가 있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붙잡아 가져야 할 것을 잊거나 버리지 않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총지(總持)를 체득하면서 도의 뜻을 잃지 않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설법이 평등하여 한쪽 무리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모든 의심을 결단하고 번뇌의 그물에 묶인 중생들을 풀어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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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진실로 믿는 힘을 두루 갖춘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해탈이 굳고 강하여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반야바라밀[慧度]과 지견(知見)의 힘을 알아서 모두 갖추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궁극에 깨달으려는 뜻과 성품[志性]의 힘을 두루 갖추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온갖 행(行)의 근원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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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아끼고 탐내는 허물과 더러운 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온갖 가진 물건을 모두 놓아 버리는 것이며, 뜻의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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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나타난 덕의 근본으로 도의 마음을 권하고 돕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평등한 마음으로 행을 따르며 모든 구할 바를 버리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모든 수행할 수 있는 일에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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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온갖 계율을 깨뜨리는 무더기를 풀어 없애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은근하게 계율을 닦아서 일찍이 어기거나 잃는 일이 없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도의 마음을 두루 갖추어서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문득 어질고 온화한 자리에 나아가 돌아가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모든 행한 바에서 모두 나고 죽음을 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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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다툼과 성을 내는 근본을 여의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행할 바를 바르게 생각하고 인욕을 좇아 닦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도의 행[道行]을 두루 갖추고 또한 법을 헐뜯지도 않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먼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해서 방일하지 않게 하고 온갖 중생의 무리를 옹호하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나를 헤아리지 않고 또한 사람이란 생각도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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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게으름의 더러운 때[塵垢]를 버리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모두 온갖 인연(因緣)을 초월하게 되어서 나쁜 일에 미혹을 당하지 않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도를 수행해서 온전히 갖추게 하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몸에 휴식을 얻어서 악마를 고루 항복 받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모든 지어야 할 일을 짓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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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모든 때[垢]와 뭇 삿된 행을 녹여 없애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중생을 모으고 합쳐서 그들을 교화하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항상 그의 뜻을 한결같이 하면서 권하고 돕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항상 고요함을 수행하면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법을 환히 깨달아 아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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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모든 소견으로 아는 때[垢]를 버리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항상 부지런히 수행해서 해박한 견문(見聞)을 구하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생각함이 엄숙하고 깨끗해서 하는 일이 알맞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마음에 생기는 것이 없어야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부지런히 배우고 감당해 내면서 성취되게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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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믿음의 힘이란 항상 지성스럽게 불도에 이르는 일곱 가지 성스런 재물[七財]을 얻는 것이요, 정진의 힘이란 깨달아 알고 분별해서 7각의(覺意)에 이르는 것이며, 뜻의 힘이란 마음이 항상 정연(整然)하여 일찍이 산란함이 없는 것이요, 선정의 힘이란 일곱 가지 심식이 머무르기 좋아하는 것[七識住]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며, 지혜의 힘이란 여덟 가지 삿된 견해를 벗어나서 집착이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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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할 수 있는 이도 없고 마음이 항상 깨끗한 것이 바로 믿음의 힘이요, 깨끗함을 받들어 행하여 물러나지 않으면서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는 것도 없고 응(應)하거나 응하지 않는 것도 없는 것이 바로 정진의 힘이며, 그 뜻을 깨끗하게 하여 뭇 도품(道品)의 법을 합쳐 모아서 뜻함도 없고 생각도 없는 것이 바로 뜻의 힘이요, 그 마음으로 정진하면서 고요함을 닦아야 비로소 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선정의 힘이며, 만일 깨끗하여 모든 소견에 미혹되지 않고 모든 덕의 근본을 받들게 되면 그것이 바로 지혜의 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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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을 보살이 행할 다섯 가지 힘의 청정함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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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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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의 7각품(覺品)의 청정함이라 하는가 하면, 보살은 이것으로 일으키고, 드러내 보이느니라. 의각품(意覺品)이라 함은 자유자재하면서 도와 지혜를 잃지 않는 것이요, 법각품(法覺品)이라 함은 행할 바를 관찰하여 때에 따라 응하면서 집착함이 없는 것이며, 정진각품(精進覺品)이라 함은 힘써 수행할 것에 걸림이 없게 하는 것이요, 환열각품(歡悅覺品)이라 함은 마음에 좋아할 것이 없음을 성취하는 것이며, 신각품(信覺品)이라 함은 몸과 뜻이 쉬면서 궁극[究竟]에 이르게 되는 것이요, 선정각품(禪定覺品)이라 함은 뜻의 맛을 여의면서 지극함을 통달하게 되는 것이며, 관찰각품(觀察覺品)이라 함은 지을 수 있는 업(業)을 모두 다 이루어 마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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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도의 마음을 구하되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는 것을 의각품이라 하고, 만일 법을 보호하려고 정진하여 날마다 새로우면 이것을 법각품이라 하며, 중생을 교화하면서 싫증을 내거나 게으르지 않으면 이것을 정진각품이라 하고, 즐거운 법락(法樂)을 베풀면서 은근하게 생각하고 의논하면 이것을 환열각품이라 하며, 만일 대중들을 교화하면서 번뇌를 없애고 도(道)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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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하면 이것을 신각품이라 하고, 만일 평등한 뜻에 머무르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이것을 선정각품이라 하며, 만일 성현의 지혜를 살피고 행하면서 뭇 사람을 이룩하여 세우면 이것을 관찰각품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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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이 없고 생각하지 않음이 마치 사자와 같아서 성문이나 연각의 승(乘)을 뛰어넘으면 이것이 의각품이요, 온갖 모든 법은 모두 다 청정하므로 이것을 환히 깨달아 알면 이것이 법각품이며, 그 행이 깨끗하여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해서 범하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정진각품이요, 깨끗하여 집착할 것이 없고 위험을 여의면 이것이 환열각품이며, 해야 할 바를 엄숙하게 닦고 해야 할 바를 모두 다 이루어 마치면 이것이 믿음의 각품이요, 세간을 따르면서 티끌[塵]에 어울리는 일이 없이 빛깔이나 모습[色像]에 평등하면 이것이 선정각품이며, 두 가지 치우친 행에 머무르는 일이 없고 표류(漂流)를 여의며 항상 중생을 보살피고 구하면 이것이 관찰각품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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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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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각품(覺品)이라 하는가 하면 모든 법을 똑똑히 깨달아 알아서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고 분별하고 헤아려서 의식이 나아갈 바를 알며 그 위의와 예절의 돌아가는 곳을 이해하면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니라.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기 몸을 부지런히 닦고 도의 이치를 널리 행하며 번뇌의 속박과 모든 구애되는 일을 제거하면 이것이 의각품(意覺品)이니라. 이는 곧 성현(聖賢)이 하는 행이요 어리석은 범부가 닦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성현의 행을 말하는 것이요 악마가 행할 것이 아니며 이것은 젠체하고 뽐내면서 행할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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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의 행[聖賢行]이란 이는 곧 외도(外道)나 배우는 바가 다른 이들[異學]이 미칠 바가 아니요, 성현이 행하는 것은 빛깔·소리·냄새·맛·접촉의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성현의 행이란 뭇 생각으로 인연(因緣)에 대한 집착이 없고, 성현의 행이란 처소와 방면을 선택하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으며, 성현의 행이란 마음[心]·뜻[意]·의식[識]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행이 없고, 성현의 행이란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법을 여의며, 성현의 행이란 열반이나 생각으로 지음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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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법에서 행하는 것이 없는 것이 성현의 행이요, 경전(經典)을 닦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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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응(應)함과 응하지 않음이나 기억함과 기억하지 않음도 없고 또한 다른 생각도 없는 것이 성현의 행이며, 온갖 법에서 모두 머무르는 것도 없고 높은 처소를 사모하지도 않는 것이 성현의 행이요, 온갖 법에서 착각하여 어지럽지 않고 바른 이치를 따라 행하면서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하는 것이 성현의 행이며, 온갖 법에서 다투는 일이 없이 같이 어울리면서 머무르는 것이 성현의 행이요, 모든 법을 받들어 행하면서도 모든 법이라는 생각이 없고 도의 뜻을 잃지 않는 것이 성현의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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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일곱 가지 각품을 닦는 성현의 깨끗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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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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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여덟 가지 도법[八法]을 닦는 청정한 행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여덟 가지 도법의 행이란 첫째는 바른 소견[正見]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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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른 소견이라 하는가 하면 만일 온갖 모든 법을 받들어 행하면 나[我]와 나 아님에 대하여 공하다는 관[空觀]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그 까닭은 몸과 나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등하여 차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다시 몸과 사람과 공을 관찰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몸과 사람과 공도 역시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다시 사람의 수명과 공이 다르다고 관찰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사람의 수명과 공을 마음에서 관찰하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다시 모든 나고 죽음[生死]도 관찰하지 않고 마지막과 처음[終始]도 공하여 없다는 이치를 여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나고 죽음과 마지막과 처음에 대한 근심[憂患]과 공이라고 보는 것도 역시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공하여 아주 없다[斷滅]거나 항상 있다[有常]고 하는 소견이나 나가 있다고 관찰하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 하면 아주 없다거나 항상 있다거나 하는 소견 역시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몸과 관(觀)한 바의 공도 헤아리지 않고 또한 이것에 머무르지도 않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몸과 나와 공도 역시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다시 불(佛)·법(法)·승가[衆]를 보거나 공을 관찰하는 행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불·법·승을 보는 것과 관하는 공도 역시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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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이런 견해와 저런 견해가 있으면서 멸도(滅度)에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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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소견으로 불·법·승을 보는 것이니, 그것이 삿된 소견[邪見]이면 뒤바뀜을 여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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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소견에서 생각하는 바가 없이 으뜸가고 묘하고 중간(中間:中道)이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그것들과 같이 관찰한다면 곧 삿됨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소견을 삼는가 하면 그가 보는 것에서는 마땅히 평등하게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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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의 법은 비천하다 여기고 배워야 할 법은 높다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요, 범부의 법은 더러운 행이 아직 사라지지 못하였고 보살의 법은 번뇌가 없다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며, 범부의 법은 유루(有漏)라고 여기고, 배울 것이 없는 법은 무루(無漏)라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요, 범부의 법에서는 옷과 밥을 구함이 있고 연각의 법에서는 공양을 바라지 않는다고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 되느니라. 또 소인(小人)들의 뜻에는 바라는 것이 있거니와 보살의 뜻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요, 범부의 법에서는 방일하다 여기고 보살의 법에서는 욕심이 없다고 여기면서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며, 범부의 법은 모두가 유위(有爲)의 일이고 부처님의 바른 법은 바로 무위(無爲)의 도(道)라고 여기면서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 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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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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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범부의 법을 관찰하면서 '온갖 법은 모두 본래부터 깨끗하고 그 배우는 법[學法]도 역시 본래부터 깨끗하다'라고 하여 모든 법은 모두가 스스로 그러하다[自然]고 관찰해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이나 배우는 법도 역시 공하므로 배우는 법이 공임을 분명히 알아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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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의 법은 인연(因緣)에 있어서 평등하다 여기고 이와 같은 연각(緣覺)의 법도 역시 인연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깨달아 알아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은 고요하면서 잠잠하고 보살의 법도 역시 욕심이 없으면서 깨끗하다고 알아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은 성취된 바가 없고 모든 부처님의 법도 역시 마지막[究竟]이 없다고 알아야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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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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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른 소견이란 마음에 둘을 받아들이지 않고 둘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사람 또한 둘이 없고 나도 보지 않으면 곧 바른 소견이니라. 약간(若干)의 보는 것도 없고 약간 다르게도 보지 않으면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므로 곧 온갖 모든 법에 상·중·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온갖 법에 대하여 생각할 것도 없다고 보게 되나니, 이 때에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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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른 소견이란 약간의 보는 것도 없고 볼 것도 없으며 또한 보게 되는 이도 없어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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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온갖 법을 관찰하면서 이와 같이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법과 계율을 차례대로 펴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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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하실 때에 5백의 비구들이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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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寶髻)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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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바른 생각[正念]이라 함은, 모든 생각과 생각하지 않음을 다 함께 없애고 한군데로 모아 고요히 하여 지혜와 덕을 관찰하여 담박(澹泊)한 법에 이르게 하며 관찰하는 바를 분명히 알면서 모든 법을 보는 것이니라. 생각할 바를 믿는 이는 '무엇을 법이라 하고 무엇을 법이 아니라고 할까' 하여 모든 법은 각각 다르고 차이가 있음을 알면서 서로 친근하지도 않나니, 이렇게 분명히 알게 되면 평등함조차도 생각하지 않거든 하물며 삿되고 아직 있지도 않은 것을 믿겠느냐. 온갖 생각에서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도 없고 다시 생각할 것도 없으며 응(應)하거나 응하지 않음도 없으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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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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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른 말[正言]이라 하는가 하면 그가 말한 말에서 자기 자신을 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도 보지 않으면서 나와 남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위태롭게 하지도 않고 다른 이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느니라. 또 바른 말이라 함은, 모든 법을 평등하게 알고, 온갖 법은 없어져 다한 것임을 알며, 온갖 법은 성현의 법과 해탈에 귀착한다 함을 알면서 하는 말이니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나니, 인자한 마음을 받들어 행하고 거듭 더 가엾이 여기며 친한 이나 원수에 구별이 없고 바른 말도 역시 공하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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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모든 법을 평등하게 연설하며 모양도 없고 원하지도 않으면서 모두 지을 바가 없으며 생기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으며 모든 법의 말은 평등하고 모든 법은 덧없고 괴롭고 공하고 몸이 아니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니라. 그 바른 말이라 함은, 온갖 모든 법에는 사람도 수명도 없으므로 모든 법을 평등하게 연설하고 뜻의 연[意緣]으로부터 일어남은 마치 그 심은 종자대로 그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은 지라 보살은 중생에게 평등하게 보이면서 그 경법(經法)을 연설하여 부처님 도를 행하게 하는 것이니, 그 바른 말이 깨끗하면 모든 시방의 부처님이 옹호를 받게 되느니라.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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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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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바른 행위[正業]라 함은 모든 지을 행위를 녹여 없애고 다시는 그 원인이 될 근원을 짓지 않으며, 닦는 행위로는 뭇 고뇌를 없애고 모든 통상 하는 일도 모두 헛된 일로 알게 하며 삿된 행위를 일으키지 않고 번뇌를 여의어 더럽고 흐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행위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이 행위와 모든 법을 분명히 알면서 모든 선의 근본[善本]에서도 짓는 바가 없이 덕행을 닦으면 이것을 말하여 짓는 바 없이 곧 행을 지음이라 하며 허망하고 긴요함도 없는 공허(空虛)한 집[宅]을 짓는 것이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은 으뜸가고 높은 도를 행하는 바른 행위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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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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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바른 생활[正命]이라 함은,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 않고 남이 있다고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하느니라. 그 바른 생활이라 함은 역시 온갖 번뇌를 쌓지도 않느니라. 보살의 바른 생활은 곧 중생이 부처 되려는 뜻과 성품[志性]을 깨끗하게 닦으며 이미 그 뜻과 성품이 깨끗해지면 스스로 몸을 헤아리지도 않고 또한 수명 등도 없으며 그와 나와 그리고 법을 위하기 때문에 깨끗한 이치를 수행하니,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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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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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바른 방편[正便]이라 함은, 해서는 안되고 법이 아닌 일에 대하여는 마음에 덕(德)을 버리지 않고 지을 방편에 편안하면서 겁을 내지 않으며 바른 행을 맑고 깨끗이 닦으면서 거기에 가까이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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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이라 하느니라. 그 바른 방편이라 함은, 삿된 방편을 쓰지 않고 지을 방편에서도 그 말대로 하며 모든 법의 같음과 같지 않음을 헤아리지 않고 짓거나 짓지 않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이 머무르는 그대로 그 행할 바를 따르면서 방편을 베푸는 것이니라. 그리고 마치 이 법에서와 같이 모두 부처님의 법을 헤아림도 역시 그와 같나니, 저 고요한[寂然] 그대로의 일을 방편으로 삼으면 모든 법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고 행할 바도 역시 평등할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삿된 방편을 제거하면서 모든 신통과 지혜를 돕고 권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보살로서 행해야 할 바른 방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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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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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바른 뜻[正意]이라 함은 부처님 도를 기억하면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자(慈)·비(悲)·희(喜)·호(護)를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뜻이라 하느니라. 생각할 때는 은근하게 하면서 온갖 번뇌[塵勞]의 더러움을 듣지 않고 악마의 틈[便]을 따르지 않나니, 그 생각할 삿된 것은 마음을 기울여 내되 삿된 소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고 그 뜻을 잘 부려서 그 생각할 바를 다스림은 마치 문을 지키는 이가 닫고 여는 일을 아는 것같이 하며 온갖 착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버리고 생각하는 것도 없으며 삿된 생각을 허락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바른 뜻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미 이 바른 뜻에 있으면서 이 안의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도[寂滅道]의 성품에서 깨달음의 과위를 증득하여 취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바른 뜻에서의 깨끗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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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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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보살의 바른 선정[正定]이라 함은 성현의 행을 따르면서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알고,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集諦]의 종자를 끊으며, 사라짐의 진리[滅諦]의 종자를 증득하고, 도의 진리[道諦]의 종자를 받드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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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일 바르게 받아들이면[正受] 자기 몸을 평등하게 여기면서 모든 법도 또한 평등히 하며 자기 몸이 깨끗해지면서 모든 법도 역시 깨끗해지며 자기 몸이 공하니 모든 법도 역시 공하여지나니, 선정의 뜻으로 바르게 받아들여 곧 평등한 데로 들어가서 대하여 없어짐[滅盡]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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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살로서 바른 선정에서의 청정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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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발심(發心)할 때 행하는 바가 평등하여 지혜와 온갖 거룩한 복을 두루 갖추면서 모든 법을 깨달아 환히 아나니, 이것이 보살로서 바른 선정에서의 깨끗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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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바른 선정의 깨달음을 말씀하실 때에 천 6백의 하늘과 사람으로서 소승(小乘)을 좋아하여 이미 그 법에 들어가 행하고 있던 제자들이 그 법을 바꾸어서 최고의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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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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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깨달음의 뜻[覺意]을 보호한다 하는가 하면 그 마음을 돕고 기르면서 일어나지 않게 하며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제거해서 물질[色]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느낌[痛]·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에서도 그 세 곳[三處]에 있으면서 집착함이 없으며, 삼계(三界)를 홀로 걸으면서 3해탈문(解脫門)을 지나가고 3달(達)의 지혜에 이르러 과거·미래·현재를 보되 거리낌이 없으며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더러운 때를 없앰이 마치 햇빛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이 하고 착한 방편과 지혜로 때를 따라서 다투어 보이며 3세에 노닐되 마치 물 속의 연꽃과 같이 하고 모두를 교화하여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도를 깨닫는 뜻을 보호하는 깨끗한 행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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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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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이 성취한 신통(神通)의 깨끗한 행이라 하며, 또 다섯 가지 일로써 두루 갖추어 꿰뚫어 본다고 하는가 하면 다섯 가지 일이란 곧 광명을 체득하므로 천안(天眼)이라 하고 또 시방을 두루 비추어 어둠을 녹이면서 빛나게 하지 않음이 없고 모든 부처님이 교화하는 것과 많이 제도하시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에 천안이라 하며 또 멀리서 중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아가는 것을 보고 그 뜻을 장엄하므로 천안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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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방의 온갖 틀과 빛깔[形色]과 모습[像貌]과 종류(種類)와 고움과 미움[好醜], 길고 짧음[長短]을 모두 보나니 그 천안은 걸리는 것이 없고 뜻과 생각이 고요히 사라지며 그 모양은 함[爲]이 없고 모든 하늘·용·신·건달바와 성문·연각보다 뛰어나게 그 처음과 끝[本末]을 보되 통달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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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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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이와 같은 종류로 5신통에 이르게 되며 이 천안을 얻으면 바로 보살의 눈이 되나니, 이것이 보살이 지닌 천안의 깨끗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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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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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섯 가지 일로써 그것을 꿰뚫어 듣되 듣지 못하는 것이 없느니라.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하면 사람의 음성을 듣고 또한 사람 아닌 이[非人]의 음성을 꿰뚫어 들으며 또한 지옥·아귀·축생들의 몹시 고통 받는 소리를 듣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설법도 또한 모두 들으며 시방의 모든 언어와 음성으로서 모두가 같지 않고 저마다 다른 억만 가지의 음성도 모두 환히 듣나니,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서 보살이 신통으로 꿰뚫어 듣는 깨끗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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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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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섯 가지 일로써 사람의 마음속의 생각을 알게 되느니라.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하면 모든 하늘·사람·지옥·아귀·축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선악과 장차 오는 세상에 다시 받을 몸을 모두 다 알고 과거·미래·현재에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나아간 바로써 결정코 오는 세상에서는 삿된 행위를 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며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하게 되는 선악 등을 모두 다 환히 아느니라. 그리고 그의 마음과 뜻을 살피면서 혹 탐냄·성냄·어리석음을 품고 있는 이면 그 본래의 행에 따라 알맞게 설법하여 주나니, 이것이 보살로서 모든 이의 마음속의 생각을 아는 깨끗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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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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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이 과거 세상을 아는 신통의 깨끗함이라 하는가 하면 다섯 가지 일로써 과거 세상을 환히 알게 되느니라. 그 어떤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받는 이는 모두 저절로 성숙되지 못한 생각을 받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이르게 되었음을 환히 알며 또 자기 몸이 헤아릴 수 없는 세상 동안에 오로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사랑·가엾이 여김·함께 기뻐함과 보살핌만 생각하였고 그 선정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런 일을 체득하였으니 역시 자신이 한 일에 따라 그것을 받는다 함을 알게 되느니라. 또 내가 생각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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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인연과 모든 모양을 관찰하는 그 모양의 인연도 역시 자신이 한 일에 따라 저절로 받는다 함을 알고 또 생각했던 그 마음과 자기 자신이 관찰한 그 뜻으로 그런 어리석은 문으로 들어가서 역시 저절로 받는다 함을 알며, 또 이런 일을 기억하여 안 뒤에는 그 빛깔과 모습[色像]이나 권속·세력·명칭·호귀·빈천·고락 등이 따르는 것도 역시 자기 자신이 한 것이라 모두가 저절로 되어서 이런 어려움을 받고 있다 함도 아는 것이니라. 이것이 보살로서 과거 세상의 마음과 생각을 아는 깨끗한 신통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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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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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살이 신족(神足)을 갖춘다고 하는가 하면 다섯 가지 일로써 신족을 체득한 것이니라.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하면 육신을 나타내 보이면서 신통이 자유자재하고 소리[音聲]를 신령하게 알면서 신통스런 발로써 모든 곳에 다 이르며 마음과 뜻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신족으로 두루 다 마치고 온갖 중생이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신족으로 모두 구별하며 볼 바를 친근히 하면서 신족으로 어느 곳이든지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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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앉아서 시방의 수없는 국토를 보고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두루 미치며 그 익힌 바를 따라 그 몸의 모습을 나타내고 몸은 온갖 시방의 중생에 두루하며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깨우쳐 주며 큰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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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보살이 행하는 신족의 깨끗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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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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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지혜의 눈으로 천안(天眼)의 깨끗함을 갖추느니라. 그 천안으로는 신령한 앎에 머무르면서도 역시 집착함이 없으면 천이(天耳)로 본말(本末)이 청정함에 이르러 걸림이 없어서 중생이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을 알아서 통달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리하여 과거와 미래의 처소를 알면서 모두 잘 증명하고 행할 바 없는 데에 머무르며 모든 번뇌와 나고 죽는 행을 모두 마치고 곧 청정한 신족으로 환히 통하며 사무치나니, 이른바 신통이며, 곧 모든 번뇌가 다한[漏盡] 거룩한 지혜의 문이니라. 보살은 그것에 있어서 이 다섯 가지 신통으로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며 그 마음은 모든 번뇌가 다한 지혜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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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3 / 3476] 쪽 |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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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마치 이 사는 읍(邑)에서 백천 유순(由旬)의 아주 먼 길을 지나가면 한 큰 나라의 성(城)이 있는데 그 길을 가는 데는 위험하여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이 있고 길은 험하고 좁고 울퉁불퉁한데다 도둑이 나와 재물을 빼앗으며 사자와 범과 이리가 있어서 마구 잡아먹느니라. 그러나 이 길을 벗어나 그 나라에 도달하여 큰 성에 들어가게만 되면 모든 근심걱정을 다 벗어나고 안온함이 한량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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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어느 한 사람이 그 나라 성의 은덕과 공훈과 즐거움이 많음을 듣고 그가 애지중지하며 언제나 잊지 못하는 외아들을 버려 두고 자기 혼자만 그 나라를 향하여 떠나갔느니라. 그리하여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가면서 모든 고난과 위험한 일들을 참고 밤낮 게으르지 않고 나아가다가 그늘지고 서늘한 데를 만나게 되었다. 몸에 갖춘 여섯 가지 재주와 다섯 가지 병기를 붙잡고서 그 곳을 뛰어넘어 그 성문(城門)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는 그 성문 위에 멈추게 되었느니라. 그리하여 그는 다시 점차로 나아가다가 두 번째 문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 성문을 열고 혼자 서면서 갑자기 생각하기를 '외아들을 남겨두고 나 혼자 와 있을 수는 없다'라고 하며 아들의 정에 끌리어 그 큰 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만 도로 되돌아와서 그 아들을 데리고 함께 그 즐거운 나라로 다시 도달하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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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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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이와 같이 끝없는 갑옷을 입고 큰 정진과 견고한 뜻과 성품으로 정성스럽게 이루어 큰 도[大道]를 드러내 보이며 마음의 업과 순숙(淳淑)한 행을 청정하게 다스리고 모든 번뇌를 다하면서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키며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지혜로 생사를 끊고서 번뇌가 다한 궁극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그들을 구제하고 보살피기 위하여 다시 되돌아와서 범부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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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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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城)'이란 거룩한 지혜가 높고 훌륭해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 데에 비유한 것이요 '어려움을 겪으면서 멀리 백천 유순의 아주 먼 길을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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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4 / 3476] 쪽 |
것'은 곧 한량없이 나고 죽는 모든 재난에 노닐면서 중생을 구제하되 장애로 여기지 않는 것이며, '도둑과 범과 이리'는 바로 뭇 악마와 삿된 소견과 그릇된 법의 재난을 말하는 것이니라. '서로 잡아먹는다'는 것은 삼계(三界)의 어둡고 쇠약한 환난을 말하고 '그늘지고 서늘한 데를 만났다'는 것은 평등한 행을 말하는 것이며 여섯 가지 재주와 다섯 가지 병기'는 여섯 도무극(度無極:波羅蜜)과 다섯 신통을 말하고 '그 사람'이란 보살이며 '그 성에 도달하여 성문 위에 서 있다가 바깥문으로부터 점차로 나아가 가운데 문에 이르러서 더 나아가지 않고 서 있었다'는 것은 바로 보살이 유위(有爲)로부터 무위(無爲)로 이르러서 모든 번뇌가 다하고 그 마음이 밝게 사무친 뒤에는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시방을 제도하려 한 것이 마치 외아들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니라.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는 것은 보살이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치 외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와 같으며 생사와 모든 번뇌의 재난을 없애고 뛰어넘어 법의 꼭대기에 있어서 비록 생사를 벗어났다 하더라도 모든 번뇌를 다하지 않고 도로 다시 돌아와 다섯 갈래[五趣]에 있으면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좋은 권방편을 쓰는 대비(大悲)의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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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계 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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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일이옵니다.천중천(天中天)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마음에 대비를 품고 해탈을 좋아하지 않으며 중생을 마치 자기의 손바닥 보듯 제도하려 하며 다시 생사로 돌아와 싫증을 내지 않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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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다시 부처님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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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어떤 법을 좇고 닦으면서 생사를 싫어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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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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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데에 스무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스무 가지의 일이라 하는가 하면 덕의 근본을 받들어 행하면서 끝없는 인자함[慈]에 이르고 큰사랑을 지니면서 큰 위험을 거두어 주며, 크게 가엾이 여기면서 작은 근심도 거두어 주고, 중생을 교화하면서 모두를 제도 해탈시키며 항상 정진으로써 모든 겁내고 못난이들을 거두어 주고, 조화된 성품으로써 모든 번뇌 있는 이들을 거두어 주며, 권도 방편으로써 조절할 줄 모르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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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5 / 3476] 쪽 |
를 거두어 주고, 지혜로써 모든 어리석은 이를 거두어 주고, 신통으로써 통달하지 않은 이를 거두어 주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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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거룩한 광명으로써 모든 어두운 이를 거두어 주고, 때에 맞추어 모든 의(義)가 없는 사람을 거두어 주며, 뜻을 한 곳으로 쏟으면서 모든 번거로운 것을 거두어 주고, 도의 마음을 좇고 받들면서 모든 배우지 않는 사람들을 거두어 주며, 네 가지 은혜[四恩]를 행하면서 모든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거두어 주고, 보시로써 가난한 이를 거두어 주며, 계율을 공경함으로써 예절 없는 사람을 거두어주고 넓은 견문(見聞)으로써 지혜가 적은 이를 거두어주며, 총지(總持)로써 잘 잊어버리는 이를 거두어 주고, 변재로써 고집부리거나 더듬거리는 이를 거두어 주며, 으뜸가는 덕(德)으로써 복이 적은 이를 거두어 주나니, 이 때문에 큰 지혜를 이루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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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이것이 보살이 행하는 스무 가지 일로서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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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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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살이 생사를 잘 좇고 수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더욱 이익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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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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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보살로 하여금 공덕으로 장엄하면 생사에 잘 좇게 되고, 복으로는 가난한 이와 재액있는 이를 윤택하게 하며, 넓은 견문으로 장엄하면 생사를 잘 좇게 되고, 변재로는 이익 되게 함이 많으며, 그 뜻을 잘 붙잡아 갑자기 잊지 않게 하여 총지(總持)를 체득하면 생사를 잘 좇게 되고, 온갖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지혜를 듣게 하며 보배의 손바닥을 얻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장엄하여 재물이 줄어들지 않게 하면서 이 재보로써 이익 되게 함이 많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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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방일하지 않으면서 생사를 잘 좇고 법을 강설하되 게으르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함이 많으며, 또 모든 모양을 평등하게 쌓으면서 생사를 잘 좇고, 지혜를 닦으면서 모든 중생을 장엄하며 말과 행동이 상응하면서 생사를 잘 좇고, 적당한 때에 함으로써 시절을 잃지 않으면서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함이 많으며, 여러 가지 많은 물건을 보시하되 인색하지 않으면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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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6 / 3476] 쪽 |
사를 잘 좇고, 때를 따라 교화하면서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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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시 도무극(度無極)으로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이 많고 깨끗한 계율을 받들면서 생사를 잘 좇으면, 장엄하게 계율을 지니면서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이 많고, 인욕·정진·선정·지혜로써 생사를 잘 좇으며, 여섯 가지 도무극으로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이 많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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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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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는 오랜 겁 그 때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보괴세(普壞世) 여래(如來)·지진(至眞)·등정각(等正覺)·명행성위(明行成爲)·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부처님 세존이었고 그 세계의 이름은 천관(天觀)이며 겁의 이름은 흔예(欣豫:기쁘고 즐거움)였느니라. 무엇 때문에 그 겁의 이름을 흔예라 했는가 하면 그 겁 동안에 6만의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셨으므로 그 때 정거천(淨居天)은 수없는 음성으로 그 부처님들의 덕을 연설하는 것을 들었고, 또 그 겁 동안 6만의 부처님이 계실 때에 천상과 세간 사람들은 다 함께 노래하고 찬송하는, 그 찬탄하는 소리를 듣고 모두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고 착한 마음이 생겼으므로 이 때문에 겁의 이름을 흔예(欣豫)라고 지은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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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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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의 세계는 안온하고 쾌락하였으며 그 덕은 높고 뛰어나서 하늘[天]과 사람들이 그 세계를 보면서[觀] 싫어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이 세계의 이름을 천관이라 한 것이며, 그 국토는 미묘하고 지성(至誠)으로 장엄하였으며 여러 가지 향으로써 그 땅이 되었는데 단단하여 일천 개의 세계를 받칠 수 있었느니라. 또 그 부처님 국토에서 풍기는 향기는 시방의 한량없고 수많은 국토에 두루 미쳤고, 전단(旃檀)의 연기는 그 온 땅을 다 덮었으며, 저절로 끝없이 광명요(光明曜)라고 하는 연꽃이 피었고 그 연꽃의 광명은 항상 그 세계를 온통 비추고 있었느니라. 모든 인민들은 누구나 신족(神足)이 있었고 전생에 지은 덕으로 누관(樓觀)과 강당(講堂)과 정사(精舍)며 처마·문·창·평상·깔개 등은 모두 향(香)으로 되어 있어서 미묘하기 그지없었으며 그 부처님의 국토에는 또한 나라나 읍이나 군(郡)·현(縣)·촌락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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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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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대중들은 모두가 신통이 있어서 허공을 걸어다녔고 누각과 강당 역시 공중에 있었으므로 그 누각과 강당에 앉아서 오로지 도(道)에 힘쓰면서 읽고 외우고 강론(講論)하였으며, 그 곳에는 여인도 없었고, 역시 아이를 배는 일도 없었으며, 사람들 모두는 변화로 태어나고[化生] 여인이란 이름은 듣지도 못하며 또한 3도(塗)라는 악한 세계[惡趣]의 이름조차도 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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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뭇 괴로움과 우환이 없고, 많은 사람들은 선정의 즐거움으로 음식을 삼았으며, 독실한 믿음이 미묘하여 대승을 뜻하였고, 그 곳에는 다른 승(乘)인 성문이나 연각의 이름도 없었으며, 그 국토나 연각의 이름도 없었으며, 그 국토 인민들은 모두가 관을 쓰고 훌륭한 의복을 입었으며, 얼굴빛은 마치 천상의 사람들과 같았고 설령 집을 나와 배운다 하여도 번뇌와 애욕을 이내 모두 버리면서 걱정 근심이 없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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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여래는 모든 보살들에게도 법복(法服)을 입으라고 시키지 않았나니, 그 까닭은 그 사람들은 흐린 마음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그 여래의 모습과 거룩한 얼굴은 마치 범천과 같았고, 모든 보살들도 몸가짐과 예절을 갖추지 않음이 없었으며 앉고 일어나는 데에 차분하였고 경도(經道)를 강설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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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있는 신통 변화가 끝없는 보살들이 이 천관 세계로 나올 때에는 모든 나라를 통과하면서 여래를 뵈옵고 머리 조아려 귀의한 뒤에 경전의 해설을 듣게 되며 이 부처님 국토의 짝할 데 없고 그 덕이 빼어나 높고 뛰어남이 한량없음을 보고는 모두가 '기이하게 여기며 전에 없는 일이옵니다'라고 소리 높여 찬탄하고서야 이 곳을 떠나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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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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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여래께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도를 펴시면서 교화하실 적에는 땅에서 예순 여섯 길이나 되는 허공으로 솟아올라 미묘하고 청정하게 장엄된 사자자리[師子座]에 앉으셔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으뜸가는 법의 가르침을 논하되 대강 그 요점만 말씀하시고 그 속의 이치는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으니, 마치 내가 여기서 은근히 설하는 것이 많은 것과 같으니라. 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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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이 모든 정사(正士)는 모두가 거룩한 지혜에 들어서 한 마디 구절로써도 곧 백천의 이치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니라. 이 때문에 여래는 간략하게 경의 가르침을 펴시면서 많은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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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네 가지 깨끗한 행을 말씀하셨나니, 도무극(度無極)의 깨끗함이요 도품법(道品法)의 깨끗함이며 신통행(神通行)의 깨끗함이요 중생을 교화함[化衆生]의 깨끗함이니라. 이것이 네 가지 깨끗한 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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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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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부처님 국토에 진보(珍寶)라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그는 곧 보괴세 여래께 여쭈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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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생사(生死)를 잘 좇아 있으며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이 많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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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여래께서는 곧 그 보살을 위하여 이 두 구절의 이치를 자세히 말씀하시되 '이 큰 지혜에 대하여는 다 말할 수 있는 이가 없나니, 보살이 행할 것은 항상 생사에 있는 것이며, 지혜의 빛[慧曜]을 체득하면 이롭게 하는 것이 많으니라'고 하셨으며,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마자 6만의 보살이 유순인(柔順忍)을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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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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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살이 다시 물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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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도량(道場)을 맑고 깨끗하게 장엄하고 보리수[佛樹] 아래에 앉는다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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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여래는 진보 보살에게 말씀하시되 '방일함이 없음[無放逸]으로써 도량을 맑고 깨끗하게 장엄하고 보리수 아래에 앉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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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방일함이 없다고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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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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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받들며 행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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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하여 경전을 받들며 행한다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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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말씀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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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이 상응하면 바로 방일함이 없는 것이니라. 또 방일함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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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스스로 부산하게 내닫지 않으며 한량없는 큰 덕[無量大德]의 갑옷을 닦으면서 5음(陰)과 더불어 합하지도 않고 5음을 초월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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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가 한량없음[無量]은 다할 수 없기 때문이요, 지계가 한량없음은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위하기 때문이며, 인욕이 한량없음은 모든 고통을 참아내기 때문이요, 정진이 한량없음은 정사(正士)로서의 할 일이기 때문이며, 선정이 한량없음은 물러나거나 타락함이 없기 때문이요, 지혜가 한량없음은 걸림이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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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한 마음이 한량없음은 중생을 교화하되 끝[限]이 없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김이 한량없음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모자라는 이를 구제하기 때문이며, 기쁘게 함[喜]이 한량없음은 법으로써 중생들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요, 보호함[護]이 한량없음은 중생들을 구제하면서 돕고 기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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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죽음[生死]이 한량없음은 온갖 부처님의 도법(道法)을 길이 기르기 때문이요, 사람을 교화함이 한량없음은 그와 나를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며 바른 법이 한량없음은 때를 따라 돕고 순종하면서 정진이 견고하기 때문이요, 덕과 지혜가 한량없음은 권방편을 붙잡고 평등하게 때를 맞추기 때문이며, 부처님을 받들음이 한량없음은 지혜를 두루 갖추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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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을 구함이 한량없음은 지혜가 우뚝해지기 때문이요, 마음의 받아들임이 한량없음은 중생의 뜻함과 성품과 행실을 보기 때문이며, 절개와 덕이 한량없음은 뜻을 한적한 데 두면서 한정(限定)이 있기 때문이요, 한적한 데 삶이 한량없음은 마음을 돕고 따르기 때문이며, 고요하고 잠잠함이 한량없음은 살피는 바가 넓고 두루 하면서 빨리 모든 통혜(通慧)를 갖추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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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께서 이어 진보보살에게 말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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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방일함이 없는 데에서 마땅히 준수해야 할 법이니, 보살이 이 방일함이 없음을 수행하면 도량을 깨끗하게 장엄하고 보리수 아래에 앉게 된다는 그 이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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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족성자야, 이 방일함이 없음을 모든 도품의 법[道品法]에서 세운 근본은 방일함이 없는 거룩한 지혜의 근원에 이르고, 견고하고 중요한 법을 체득하여 방일함이 없음으로써 덕의 근본을 쌓되, 방일하지 않게 하며, 옛날 오래도록 들었던 법을 잊는 일이 없고, 두루 온갖 경전을 품어 가지며 티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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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塵勞]의 한량없는 번뇌[陰蓋]를 소멸시키고, 모든 도의 이치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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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함이 없는 이는 너른 들판에 쌓인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태워 없애고, 온갖 경법(經法)을 모두 보호할 수 있으며, 모든 모양을 없애고, 모든 감관을 억제하는 것이요, 방일함이 없는 이는 삿된 길을 버리고 뭇 선(善)을 받들어 행하며, 세력이 뛰어나서 열 가지 힘[十力]을 두루 갖추고, 힘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견줄 이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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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함이 없는 이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온갖 부처님 법을 구족하고 성취하여 그 정상에 도달할 것이며, 방일함이 없는 이는 곧 부처님의 모든 신통과 지혜를 획득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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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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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께서 이 방일함이 없음을 말씀하실 때에 만 2천 명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체득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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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때의 진보 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달리 생각하지 말라. 그 까닭은 바로 지금의 네 몸이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마땅히 '보살로 하여금 방일함이 없게 하여야 도량을 깨끗하게 장엄하고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여래의 도에 들어감이 한량없다'고 하는 이런 관(觀)을 지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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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다시 보계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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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면서 보살행이 깨끗한 이면 중생의 행과 마음에 품은 선악을 보고 곧 한량없고, 한이 없고, 불가사의한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저마다 끝없는 법을 받들어 행하게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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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살은 뜻하는 성품이 부드럽고 자상(仔詳)한 데에 들어가서 자유자재하게 어느 정도의 인민들을 교화할 때에 그 족성자들은 사람의 근성(根性)이 같지 않고 소견도 저마다 다르리니, 그러므로 보살은 때에 따라 나타내고 보이면서 그들을 유도하고 나아가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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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어떤 사람에게는 굳고 바른 계율이라야 교화할 수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계율을 깨뜨림으로써 교화를 받게 되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옷과 재물로 왔다갔다하면서 교제함으로써 그것이 인연이 되어 교화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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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부드럽게 함으로써, 어떤 이에게는 거칠게 함으로써, 어떤 이에게는 독한 마음을 품게 함으로써, 어떤 이에게는 두렵게 함으로써, 어떤 이에게는 괴롭게 함으로써, 또 어떤 이에게는 안온하게 함으로써 교화되도록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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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에게는 말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 더 훌륭하게 됨으로 인하여, 어떤 이에게는 인연이 생김으로 인하여, 어떤 이에게는 뜻하는 성품으로 인하여, 어떤 이에게는 괴롭게 굶주림으로 인하여, 어떤 이에게는 뜻에 순종하여 줌으로 인하여, 어떤 이에게는 가진 물건으로 인하여, 어떤 이에게는 아무 것도 없음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는 흥성하게 하여 줌으로 인하여 교화를 받도록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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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어떤 이에게는 받는 것이 있음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받는 것이 없음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재물로 살림을 하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고요하면서 바꾸거나 취함이 없음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예쁜 얼굴을 탐하고 사모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나쁜 얼굴 빛깔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빛깔·소리·냄새·맛·접촉의 법으로 인하여, 교화를 받게 되도록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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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에게는 성을 내고 나쁜 기색을 하고, 거칠게 다루는 법으로 인하여 교화할 수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함께 살고 묵음으로써 교화를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자주 자주 서로 오고 가고 하면서 만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부처님과 교법과 성인 대중을 듣게 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기쁘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근심하고 걱정하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나[我]가 없게 함으로 인하여, 교화를 받게 하기도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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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에게는 고요한 음성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음성으로 인하여, 교화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중생의 유위(有爲)의 괴로움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천상과 세간에서 만나게 될 안온함을 듣게 함으로 인하여 교화를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성문승에서 말하는 가르침을 듣고, 혹은 연각승의 가르침을 듣고, 혹은 대승을 듣고서 교화를 받게 되기도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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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에게는 언제나 기뻐하면서 괴로워하지 않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근심하면서 기쁘게 하지 않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재물의 이익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지나친 사랑과 공경을 받지 않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이익을 얻게 함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손해를 보게 함으로 인하여 혹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네 가지 은혜로 인하여 교화되도록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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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에게는 안의 업[內業]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바깥 업[外業]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눈·귀·코·혀·몸과 손발로 인하여 교화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재미있게 즐기고 노래하고 놀게 함으로써, 또 어떤 이에게는 꽃과 향으로써 교화를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그의 몸에 괴로움과 우환만 만나게 함으로써 또 어떤 이에게는 항상 즐겁게만 함으로써 교화를 받기도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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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에게는 그의 마음에 고요한 방편을 얻게 함으로써, 또 어떤 이에게는 변화로 된 비구의 형상으로 인하여, 또 어떤 이에게는 변화로 된 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향상으로 인하여 교화를 받게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부처님의 향상과 용모가 나타나게 함으로 인하여 그를 교화하게 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제석·범왕·전륜성왕의 형상과 같게 함으로 인하여 교화되게 하기도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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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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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러 가지의 변화를 나타내지 않고 그의 성행(性行)과 그의 마음 속의 생각만을 보면서 교화하게 한다면 그를 제도하지 못하게도 되나니, 마땅히 중생의 성품과 행동을 분명히 알면서 병에 따라 약을 주어야 제도되는 이가 많게 되느니라. 설령 보살이 도무극(度無極)을 행한다 하여도 부처님의 도품법(道品法)을 잘 받들어 받고, 또한 신통의 지혜를 분명히 안 뒤에야 고요히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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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에게는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네 가지 법이 있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우환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아직 미치지 못한 이를 인도하고 교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의 안락은 탐하지 않으면서 모두의 안락을 원하는 것이며, 셋째는 언제나 때에 알맞게 도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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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펴 보이는 것이요, 넷째는 중생들의 심성과 행할 바를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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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말이 부드럽고 언사가 공경 받을 만하며, 둘째는 계율을 깨끗하게 받듦이 마치 해와 달과 같으며, 셋째는 얼굴에 항상 기쁜 빛을 띄면서 원한을 품는 일이 없으며, 넷째는 항상 인자한 마음을 품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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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둘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뜻을 지니며, 셋째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넷째는 항상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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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성질과 행실이 깨끗하고, 둘째는 아첨함이 없으며, 셋째는 정진함이 굳세고 강하며, 넷째는 괴로움과 즐거움[苦樂]과 선악(善惡)을 참아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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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살로서 중생을 교화하는 데 있어 네 가지 법이니, 마땅히 '이렇게 하여야 비로소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라고 하는 관(觀)을 지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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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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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과거 세상의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오랜 겁 전, 그때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이구광(離垢光) 여래·지진·등정각·명행성위·선서·세간해·무상사·도법어·천인사·부처님·세존이었고 세계 이름은 적연(寂然)이었으며 겁의 이름은 애경(愛敬)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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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연 세계는 풍요하고 안락하였으며, 오곡이 남아돌고 즐거움이 한량없었으며, 천상과 인간이 번성하였느니라. 그리고 이구광 부처님의 성문 대중은 96억이었고, 보살은 8만 4천이었으며, 그 부처님의 수명은 33만 6천세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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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어떤 범지(梵志)가 큰 국왕이었고 그 국왕에게는 업수(業首)라 하는 태자가 있었으며, 단정하고 잘생겨서 보는 이마다 싫어함이 없었느니라. 그의 나이 열여섯이 되었는데 얼굴에 미혹하고 호귀(豪貴)함을 믿으면서 거칠고 문란하며 젠체하면서 이구광 부처님께 나아가려 하지도 않고 공경하거나 머리 조아려 예배하는 일도 없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시기를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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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수는 어째서 갑자기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과 덕의 근본을 돕는 일을 잃었단 말이냐. 전생에 지은 근본을 알지 못하여 나를 헤아리고 용모와 재보와 호귀함에 미혹되어 젠체하고 뽐내면서 자주 나에게 나오지도 않으며, 여기에 나온다 해도 귀의하려 하지 않고 예절을 어기고 있으니, 만일 그를 위하여 은밀히 그의 본행(本行)을 말하여 주면 반드시 전생 일을 알게 되어 자주 여래에게 나와 머리 조아리며 가르침을 받게 되리라'고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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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이구광 여래는 8만 4천의 보살을 모두 다 한군데에 모아 놓고 제비를 뽑아 누구든지 태자 업소에게로 가서 8만 4천 년 동안 교화하고 설법하면서 온갖 괴로움과 핍박을 당한다 하여도 싫증내거나 괴롭다고 여기지 않을 적임자를 선출하게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가서 그를 교화하려 하면 접대하지도 않고 한 자리에서 말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꾸짖고 욕설을 퍼붓고 비방만 할 뿐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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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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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이렇게 제비를 뽑아 보내려 하였는데도 그 8만 4천의 모든 보살 중에서는 한 보살도 그 제비에 응하려 하지 않았는데, 마침 그 모임 안에 있던 극묘정진(極妙精進)이라는 한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 길게 무릎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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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8만 4천 년 동안 태자 업수에게로 가서 자주자주 만나면서 온갖 안락을 버리고 뭇 고통을 참겠사오며 비록 여러 고난을 만난다 하더라도 괴롭다고 여기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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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묘정진이 이런 말을 하여 마치자마자 삼천대천세계가 때맞추어 여섯 갈래로 진동하였고 백천의 천상사람들이 허공에 있으면서 소리 높여 찬탄하되'장하고 장하십니다. 끝이 없는 정진으로 큰 서원의 갑옷을 입으셨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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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극묘정진 보살은 업수 태자에게로 나아가 문 앞으로 가서 서 있었느니라. 태자는 막 그를 보자마자 꾸짖고 욕을 퍼붓고 성을 내면서 비방하는 말이 한이 없었으며 흙을 집어서 던지고 기왓조각과 돌로 때렸으며 칼과 몽둥이로 마구 해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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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보살은 이러한 곤욕을 당하면서도 성을 내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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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서 또한 후회하거나 되돌아오지도 않고 기어이 그 마음을 굳게 먹고 정진의 갑옷을 입고는 지혜의 힘을 더욱 더하면서 그를 가엾이 여기며 나아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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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서 천 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첫 번째 문에 가 닿을 수 있었고 그로부터 받는 곤욕과 비방과 깔보는 재난도 마다하지 않고 다시 더 차츰차츰 나아가 이번에는 1만 년이 되어서야 왕궁의 첫 번째 마당까지 이르렀으며 다시 2만 년을 지난 뒤에야 대궐 안의 두 번째 마당에 가 닿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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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차례로 나아가면서 8만 4천 년 만에 일곱 번째 되는 마당에 가 닿아서 이레 낮 이레 밤을 지났었느니라. 태자 업수는 그 때 다시 그를 보면서 곧 묻기를 '비구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고 무엇을 구하는 것이오'라고 하자 보살은 대답하기를 '태자의 명성과 공훈을 칭찬하려고 일부러 왔습니다'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태자는 생각하기를 '기이하고 전에 없던 일이다. 지금 이 비구는 계율의 덕이 한량없어서 미칠 이가 없다. 그 많은 곤욕을 당하면서도 일찍이 그만두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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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묘정진 보살은 기뻐하면서 업수에게 곧 게송으로 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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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여, 나는 지금 구하는 것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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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도 의복도 소용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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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맘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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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 때문에 일부러 여기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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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에서 높으신 이구광(離垢光)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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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인이 계시면서 많은 이익 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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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법(經法)을 강설하여 고통 근심 없애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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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도 들으면 감로(甘露)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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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은 매우 만나기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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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천 겁에도 만나기 어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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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명하여 법을 받게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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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간의 밝은 횃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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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욕심으로 방일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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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색(財色)을 탐하면서 즐기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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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귀(豪貴)와 왕위에 미혹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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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法王)을 뵈러 가려 하지 않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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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은 덧없고 목숨은 잠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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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사람 목숨은 마치 아침의 이슬과 같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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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 스스로도 역시 그렇다고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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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듣고서도 다시 방일하려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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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이는 일찍이 불도에 뜻을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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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불러다 제도하려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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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슨 일로 욕심에 부림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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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하고 있으니 어찌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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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부처님[最勝]께 돌아가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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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조복하여 번뇌를 없애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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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이도 정진하며 모두를 가엾이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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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뒷날 한(恨)이나 근심이 없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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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왕자는 이 게송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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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뜻을 낮추어 공경심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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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묘정진의 발에 머리 조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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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보살에게 지은 죄를 참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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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땅히 온갖 일을 다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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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7 / 3476] 쪽 |
호귀(豪貴)나 국토를 탐하지 않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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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편안히 머물 데로 나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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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버리고 이로움을 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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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곧 1억 8만 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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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여러 꽃과 향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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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부처님이 계신 데로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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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이구광을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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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부처님이 계신 데로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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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조아리고 공양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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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으로 물러나 부처님 곁에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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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태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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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묘정진 보살은 바로 저의 스승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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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증 내지 않고 온화한 얼굴로 권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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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덕은 참으로 더할 데 없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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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양으로 족히 보답 못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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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法王)의 교명(敎命)을 잃고 어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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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나이다. 세간을 구제하고 보호하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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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정성껏 귀명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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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저의 자수(自首)하는 뜻을 받아들이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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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발심하여 모든 부처님 따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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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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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삿되거나 방일하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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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덕을 세워 불도 이루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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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8 / 3476] 쪽 |
그 때 태자는 영광스런 자리[榮位]를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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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8만의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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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에게서 사문(沙門)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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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내어 부처님의 도를 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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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부처님은 그의 소원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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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위해 최고의 불도를 말씀하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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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청정한 법을 듣고 유순인(柔順忍)을 얻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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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높은 선비[高士]는 나 없는 법[無我法]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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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보계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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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극묘정진 보살을 알고 싶으냐. 바로 지금의 내 몸이며 그 태자 업수는 바로 지금의 미륵보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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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성자야, 과거에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에 게으르지 않았고 위덕이 높고 뛰어나서 한량없기가 이와 같았으며 배운 것도 날로 깊었으며 정진에도 짝할 사람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면 마치 저 과거 세상의 극묘정진 보살의 덕을 생각하면서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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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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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자재함을 얻는 데에 네 가지 업이 있나니, 이 네 가지 업으로써 모든 부처님 도법을 섭취(攝取)하게 되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업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모든 악마를 초월하면 귀순하여 항복하지 않음이 없고, 둘째는 청정한 불국토를 생각하면서 청정한 가르침을 닦게 하며, 셋째는 몸과 입과 뜻을 엄숙히 하면서 개사(開士)의 근본을 순종하고, 넷째는 모든 부처님의 도품(道品)을 합하고 모으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 법의 자재한 업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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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살 업(業)이 되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그 지혜로 뜻하는 성품[志性]을 깨달아 알고, 둘째는 중생의 근원이 귀착하는 것을 널리 보며, 셋째는 온갖 모든 갈래[趣]에 좇는 바를 분별하면서 병에 따라 약을 주고, 넷째는 가야할 모든 길을 분명히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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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9 / 3476] 쪽 |
고요함을 얻어 성을 내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로서 행할 자재한 도업으로서의 네 가지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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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보계 보살은 수없는 겁 동안 헤아리기 어려운 백천의 덕의 근본을 심었었기 때문에 그 값어치가 삼천대천세계와 맞먹는 상투 속의 명월주(明月珠)를 꺼내어 여래께 받들어 올리면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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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수리 위의 보배를 여래께 바치옵니다. 이 덕의 근본으로 인하여 그 정수리 몸매[頂相]를 볼 수 있는 이가 없게 하시옵고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거룩한 지혜의 정수리를 이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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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그러자 5색의 광명이 그 입으로부터 나와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 국토를 비추고는 곧 도로 되돌아와서 부처님을 세 번 돌고 홀연히 정수리 위에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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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 모임 안에 있던 첩변(捷辯)이라 하는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길게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세존을 찬탄하며 게송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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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으셔서 견줄 이 없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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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世俗)을 뛰어나서 으뜸이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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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垢]가 없고 더러움을 여의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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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에서 그 덕(德)을 칭송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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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비는 짝할 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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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보다 뛰어났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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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 때문에 웃으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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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써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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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계율로 조복하고 안정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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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을 깨달은 이라 말씀을 공경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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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 하여금 뜻함이 편안한 데로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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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고요함을 잘 닦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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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0 / 3476] 쪽 |
여기 계신 천상 인간에서 높으신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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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이 아주 견고하고 묘하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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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요구에 응하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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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이 여기면서 지금 웃으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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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에서 온통 세력이 강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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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과 복이 빛나고 뛰어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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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사자(師子)께서는 어둠을 파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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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노니시되 두려워할 바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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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에서는 짝할 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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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다 특수한 이 있을 수 있으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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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집[法宅]에서 저를 위하여 해설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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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기쁜 듯이 웃으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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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垢]를 여읜 성품이 편안한 데 노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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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빛은 항상 온화하고 기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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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덕은 허공을 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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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내달음은 한정할 수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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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두움을 녹여 없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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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은 비추지 않음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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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머무르며 다 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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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기쁜 듯이 웃으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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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을 닦으신 마음은 청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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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마치 금보산(金寶山)과 같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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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미치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쳐 주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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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 사람이 두루 공양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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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1 / 3476] 쪽 |
곧 으뜸가고 좋은 밭이 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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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많은[衆祐] 성인이라 세간을 초월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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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자(釋師子)는 법요(法要)를 나타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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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신 것이 마치 허공과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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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하늘과 대중들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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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거나 같을 이가 없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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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마음은 매우 굳고 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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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과 자상함이 풍성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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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뛰어나신 덕은 백천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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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는 마치 꽃이 만발하듯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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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수승한 능인(能仁)께서 웃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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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밝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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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혜는 걸림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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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世)에 널리 퍼져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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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몸과 뜻에 처하실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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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집착함이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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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에 모두 환히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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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며 행하고 교화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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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사자께서는 웃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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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은 무엇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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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하늘은 공중에 서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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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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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모든 대중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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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고는 귀의하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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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2 / 3476] 쪽 |
능인(能仁)께서 훌륭하고 독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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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감로(甘露)의 말씀을 해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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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하늘과 신(神)과 사람들이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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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어두움이 사라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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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첩변(捷辯)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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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찌 보계 보살을 보지 못했느냐. 이 상투 속의 보배구슬을 여래에게 받들어 올리면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원하면서 곧 부처님의 근원이 되는 지혜에 공양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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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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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미 보았나이다, 세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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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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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족성자 보계 보살은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겁 동안 항하의 모래만큼의 여래·지진(至眞)을 공양하면서 언제나 범행(梵行)을 닦았고 수없는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3승(乘)을 세웠으므로 10아승기겁을 지난 뒤에 장차 부처님이 되리니, 그 명호는 보성(寶成) 여래·지진(至眞)·등정각·명행성위(明行成爲)·선서·세간해·무상사·도법어(道法御)·천인사·부처님 세존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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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름은 이구광(離垢光)이요 겁의 이름은 무구(無垢)이며 그 이구광 세계는 7보(寶)가 합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두 광명이 나면서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를 비추어 주고 그 광명은 자금(紫金) 빛인데 만일 중생으로서 이 광명을 만나는 이면 온갖 번뇌[塵勞]가 모두 사라지게 되며 그 국토는 풍요하고 안락하며 모든 보살들은 집착함이 없고 다른 배움[異學]으로써 서로 다투는 이도 없으며 도의 보배를 널리 닦나니, 이 때문에 여래의 명호를 보성(寶成)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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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보살들은 모두가 신통을 얻고 다 함께 변재가 있을 것이며 그 국토의 모든 하늘과 인민들은 모두가 순박하고 맑으면서 평등한 깨달음을 따르므로 미치지 못했다거나 지혜가 없는 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그 국토에는 또한 군주(君主)도 없고 오직 세존으로 위없는 법왕을 삼으며 모든 하늘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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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3 / 3476] 쪽 |
민들은 저절로 변화로 태어나고[化生] 여인도 없으며 애욕이라는 이름도 없을 것이요, 그 국토의 인민들은 모두가 덕의 근본을 심은지라 복이 없는 이도 없고 모든 감관이 모두 갖추어지며 모두가 상호(相好)로써 그 몸을 장엄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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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여래의 모든 보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부처님의 수명은 14겁 동안이며 처음부터 다른 말은 없고 말하는 것은 오직 보살의 지혜와 모든 도무극(度無極)과 변재와 크게 가엾이 여기는 순숙한 한 가지의 교법을 널리 펼 뿐이며 이 모든 보살들은 모두가 일찍이 가르침을 입었기 때문에 모든 감관이 분명하게 통달하여 한 구절로써 모든 부처님의 도에 널리 통할 것이요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총지(總持)의 말씀과 가르침을 펴시면서 인자한 마음이 마치 땅과 같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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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총지의 말씀과 가르침이라 하는가 하면 하나의 절구(絶句)로써 모든 문장에 널리 통한다는 것이요, 무엇을 하나의 절구라 하는가. 묘하고 거룩한 구절로써 도품(道品)의 법을 다 궁구할 수 없다는 것이며, 무엇을 다함이 없는 구절[無盡句]이라 하는가. 부처님의 도를 궁구하되 다할 수 없다는 것이요, 무엇을 다함이 없다[無盡]고 하는가 하면 없음[無]을 논하는 것을 다함이 없는 구절이라 하나니, 이미 없음에 잘 들어갔기 때문에 문자(文字)에 널리 들어갔으며 이것이 한 구절이요 온갖 문자이면서 다할 수 없는 것이니라.
|
또 두 글자[二字]가 있다면 본래 듣지도 못한 것이요, 또한 아직 행하지도 못한 것이며, 널리 말을 하되 한 글자에서 나오는 것이요, 이 한 글자는 두 글자와 더불어 세력이 같지 않으며, 이는 한 글자로써 가르치는 것이니라. 만일 이 가르침을 널리 펴는 이면 생각함이나 생각하지 않음도 없고 응(應)함이나 응하지 않음이 없다. 이 구절은 생각도 없고 생각하지 않음도 없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구절로써 교화하게 되느니라. 이것이 족성자가 총지의 가르침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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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총지의 언구(言句)를 말씀할 때에 그것에서 배워 이 한 구절[一句]에 들어가면 곧 모든 부처님의 뜻에 널리 들어가게 되나니, 나는 1겁 동안 또 1겁을 더 지나면서 이구광 세계의 공덕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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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4 / 3476] 쪽 |
한 칭찬을 분별하고 감탄한다 하여도 그 맨 끝을 궁구하여 다 얻을 수가 없느니라. 보성 여래가 강설하는 경전과 도와 공덕에 대한 칭찬의 지혜는 불가사의하여 또한 줄 수도 없으며 그 부처님의 큰 덕과 국토의 깨끗함은 높고 뛰어나서 이를 수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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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 보살은 이 부처님의 수기[授決:授記]를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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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아시고 모두 다 보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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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을 제도하여도 끝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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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온갖 모든 흠과 더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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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초월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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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혜는 일찍이 없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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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옛날 일을 모두 다 아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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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수(數)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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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모두 갖추어 말씀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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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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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本末)도 그렇게 환히 아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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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루한 말세(末世)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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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을 환히 아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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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처님의 수기[授決]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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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더 의심이 없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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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 모든 근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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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을 교화하고 제도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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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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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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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 / 3476] 쪽 |
부처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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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바뀌거나 변함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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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정성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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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신 말씀은 거짓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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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깨달음의 도(道)로써 부처를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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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가운데서 으뜸[人中上]이 된다고 수기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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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뜻하고 원하는 것과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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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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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또한 그와 같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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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마음을 모두 아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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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 가르침을 듣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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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얼굴로 망설임이 없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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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을 행도 훌륭하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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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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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행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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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욱 한량없이 하여야겠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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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제(本際)를 엄히 다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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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몸은 청정한 행을 받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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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을 일으켜서 부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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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을 제도하되 끝이 없겠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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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힘쓰고 겁을 냄이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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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정진함이 지극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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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도 거뜬히 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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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6 / 3476] 쪽 |
저의 도의(道意)로써 받겠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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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정진을 버리는 일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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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가엾이 여기는 여래에 이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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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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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本末)을 그렇게 하겠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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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땅히 모두를 교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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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되어 달리 배우는 이들을 제도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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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계 보살이 이 게송을 말할 때에 7만 2천 인이 모두 가장 훌륭하고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어 모두가 그 이구광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소리를 내어 함께 말하였다.
|
“보성 여래께서 불도를 이루실 때에는 두루 저희들로 하여금 그 불국토에 가 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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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모두 그들이 그 국토에 가 날 것을 수기하셨다.
|
그 때 세존께서 어진 이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읊고 외우고 말하면서 널리 사람들에게 그 뜻을 베풀어 전하고 은밀하게 이 경전의 법요(法要)를 권하고 도우면 천상과 세간의 모두가 돌아와 항복하면서 함께 공양하게 되리라. 왜냐 하면 그가 이 경을 들으면 나는 모두 수기할 것이요 믿지 않는 이는 본래 지은 덕이 적기 때문이며 그가 이 경을 받으면 그 덕의 근본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을 듣고자 나아가면 태어나는 세상마다 부처님을 만나게 되겠거든 하물며 듣고 지니면서 받들어 행하고 해설함이겠느냐. 그 공훈은 한이 없느니라.
|
어떤 족성자와 족성녀(族姓女)가 만일 일곱 가지 보배로써 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히 채우고는 때에 따라 보시하면서 이렇게 똑같이 하기를 백천 년 동안 한다 하여도 그가 이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지니는 이 공덕이 저 공덕보다 더 뛰어나느니라.”
|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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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며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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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7 / 3476] 쪽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이 경의 이름은 보살정행보계소문경(菩薩淨行寶髻所問經)이라 하나니, 이렇게 받들어 지닐지니라.”
|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보계 보살과 시방에서 모인 모든 보살과 어진 이 아난과 하늘·용·귀신·건달바·아수라와 세간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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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8 / 3476]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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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19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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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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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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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승만부인회(勝鬘夫人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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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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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
그 때에 교살라(憍薩羅)의 파사닉왕(波斯匿王)과 말리부인(末利夫人)이 처음 법을 증득한 뒤에 함께 의논하기를 “우리 딸 승만(勝鬘)은 인자하고 총명하며 견문이 넓고 지혜가 있으므로 만일 여래를 뵙게 되면 깊은 법을 빨리 이해하면서 모든 의혹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잘 타일러 딸로 하여금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도록 해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의논을 한 뒤에 왕과 부인은 곧 여래의 진실한 공덕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 그 때 진제라(眞提羅)라고 하는 한 사신을 보내어 왕의 편지를 가지고 무투성(無鬪城)으로 가서 승만 부인에게 주게 하였다.
|
그 때 승만 부인은 편지를 펴서 읽어 본 뒤에 정수리에 이고 기쁜 마음을 내며 진제라를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
|
내가 듣건대 여래의 음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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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선 만나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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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진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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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9 / 3476] 쪽 |
마땅히 그대에게 옷을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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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저 부처님·세존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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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을 이익 되게 하려고 출현하셨다면
|
반드시 보시고 가엾이 여기시어
|
나로 하여금 참 모습을 보게 하여야 하리라.
|
|
이렇게 말을 하는 잠깐 동안에
|
부처님은 허공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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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몸을 나타내시며
|
큰 광명을 널리 놓으셨네.
|
|
승만과 그의 권속들은
|
모두가 나와 모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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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고 우러러 예배하면서
|
큰 길잡이[大導師]를 찬탄하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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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묘한 색신(色身)은
|
세간에서는 짝할 이가 없으며
|
견줄 데 없이 불가사의하나니
|
그러므로 이제 공경 예배하나이다.
|
|
여래의 모습은 다함이 없고
|
지혜도 역시 그러하며
|
모든 법에 항상 머무르시니
|
그러므로 저희는 귀의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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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허물을 잘 다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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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네 가지 요소[四種]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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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0 / 3476] 쪽 |
불가사의한 자리에 이르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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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저희는 이제 공경·예배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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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염(爾炎) 법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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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몸은 걸림이 없으며
|
법에 있어서 잃어버림이 없나니
|
그러므로 저희는 이제 공경 예배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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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림을 넘어선 이께 머리 조아리고
|
비교할 이 없는 이께 머리 조아리며
|
법에 자재한 이께 머리 조아리고
|
생각을 넘어선 이께 머리 조아리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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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보호하여
|
법의 종자가 더욱 자라게 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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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나중의 몸[最後身]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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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여래의 앞에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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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닦는 복된 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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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과 그리고 그 밖의 세상에서
|
이 선근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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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항상 거두어 받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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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승만 부인이 이 게송을 말하여 마치자 모든 권속과 대중들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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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은 곧 승만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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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 보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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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1 / 3476] 쪽 |
일찍이 너에게 열어 보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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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나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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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세상에서도 역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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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고 곧 그 모임 안에서 승만 부인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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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여래의 훌륭한 공덕을 찬탄한 이 선근 때문에 장차 한량없는 아승기 겁 동안에 천상과 인간에서 자재로운 왕이 되어서 모든 받아 쓸 것이 모두 다 구족할 것이요,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나를 만나게 되어 내 앞에서 찬탄함이 지금과 같이 다름이 없으리라. 그리고 또 한량없고 수없는 모든 부처님·세존을 공양하고 2만 아승기 겁을 지난 뒤에는 장차 부처님이 되리니, 명호는 보광(普光) 여래·응공·정등각이라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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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의 국토는 모든 악한 모습과 쇠함과 늙고 병드는 고통이 없고 또한 착하지 않은 악한 업도(業道)의 이름도 없으며 그 안의 중생들은 모습이 단정 엄숙하고 다섯 가지 묘한 경계를 갖추어 순수하게 쾌락을 받음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들 보다 더 낫느니라. 그리고 그 모든 중생들은 대승에 나아갈 것이요, 이렇게 대승을 배우는 이들은 모두 그 곳에 태어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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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승만 부인이 이 수기(授記)를 받고 나자 한량없는 하늘과 사람들이 기뻐서 뛰며 다 함께 그 부처님 세계에 나기를 원하였으므로 이 때 세존께서는 장차 모두 그 곳에 태어날 것을 수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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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승만 부인이 부처님의 수기를 들은 뒤에 여래 앞에서 합장하고 서서 열 가지 큰 서원을 세우며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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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菩提]에 이르기까지 받은 모든 계율을 범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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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승과 어른에 대하여 오만한 마음을 내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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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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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2 / 3476] 쪽 |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저보다 뛰어난 이나 모든 뛰어난 일에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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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비록 조금의 음식이 있다 하더라도 아끼는 마음을 내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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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제 몸을 위하여 재물을 받거나 쌓아두지 않겠으며 받으면 가난하고 고통받는 유정들을 구제하는 데에 쓰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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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은혜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사섭사(四攝事)를 행하면서 이익을 탐하는 마음도 없고 싫증내거나 만족해하는 마음도 없으며 한정하거나 장애 하는 마음도 없이 중생을 거두어들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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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으로서 의지할 데가 없거나 갇혀있거나 질병으로 괴로움을 받거나 갖가지 위험과 재액을 받는 사람을 보면 끝내 떠나버리지 않고 반드시 안온해지기를 원하면서 매우 이롭게 하여서 고통을 면하게 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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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나쁜 율의(律儀)로 여래의 깨끗한 계율을 범하는 사람을 보면, 저에게 속한 성읍(城邑)이나 마을에서 사는 사람으로 마땅히 다스려야 할 이면 다스리겠사오며 거두어 주어야 할 이면 거두어주겠습니다. 왜냐 하면 다스리거나 거두어 줌으로써 바른 법[正法]이 오래도록 머무르기 때문이오니,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기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은 더욱 가득 하고 나쁜 길[惡道]은 갈수록 줄어들어 여래의 법륜(法輪)으로 하여금 늘 구르게 할 수 있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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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바른 법을 거두어들여서 끝내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겠나이다. 왜냐 하면 바른 법을 잊거나 잃어버리면 대승을 잃기 때문이오니, 대승을 잃으면 곧 바라밀(波羅蜜)을 잃고 바라밀을 잃으면 곧 대승을 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보살이 대승에 대하여 굳건한 믿음을 내지 못하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이 견고하지 못하여, 범부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없으며 곧 크게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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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현재나 미래 세상에 바른 법을 거두는 모든 보살들은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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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3 / 3476] 쪽 |
넓고 큰 이익을 두루 갖추어 이런 큰 서원을 일으킵니다. 위대한 주인[聖主]이신 세존께서 비록 또 증명하며 아실 것이오나 모든 유정으로서 선근이 작고 얇은 이면 혹 의심 그물을 일으키어 이 열 가지 큰 서원을 성취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는 오랜 밤 동안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면서 모든 고뇌를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려고 이제 부처님 앞에서 정성스럽고 진실한 서원을 세우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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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 열 가지 큰 서원을 세운 것이 만일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라면 이 대중 위에 하늘 꽃이 내려오고 하늘의 묘한 음성이 들려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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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 부인이 여래 앞에서 이런 말을 하자마자 때에 공중에서는 하늘의 꽃이 내리고 하늘의 묘한 음성이 나면서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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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십니다. 승만 부인이여, 그대 말은 진실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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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대중의 모임에서는 이런 상서(祥瑞)를 보고 모든 의혹이 없어졌으므로 크게 기뻐하면서 소리를 같이하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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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컨대, 승만 부인과 함께 태어나는 곳마다 그의 서원과 행을 같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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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부처님·세존은 그 대중들에게 소원대로 될 것임을 모두 수기하셨다. 그 때 승만 부인은 다시 부처님 앞에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웠으니 이 서원의 힘으로써 끝없는 모든 유정들을 이익 되게 하였다. 그 첫 번째 서원은 '저의 선근으로 온갖 중생들에게 바른 법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라는 것이고 두 번째 서원은 '만일 제가 태어난 곳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나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베풀어 설하되 게으름이 없겠나이다'라고 하는 것이며 세 번째 서원은 '나는 바른 법을 거두어 보호하여 지니기 위하여 태어날 때마다 목숨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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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은 이런 서원을 듣고 나서 승만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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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온갖 물질[色]이 모두 공의 세계[空界]에 드는 것처럼 보살의 항하의 모래 같은 많은 서원들도 모두 이 서원 안에 들어가나니, 이 세 가지 서원이야말로 진실하고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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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승만 부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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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4 / 3476] 쪽 |
“세존이시여,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변재의 힘을 받들어서 큰 서원을 말씀하려 하나이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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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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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네 마음대로 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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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 부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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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지니는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모든 서원은 모두가 하나의 큰 서원 안에 들어 가리이다. 이 하나의 큰 서원이란 이른바 여래의 바른 법을 거두어 받는 것이오니, 이와 같이 바른 법을 거두어 받는 것은 진실이요 넓고 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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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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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도다. 승만아, 너는 오랫동안 닦아 익힌 지혜와 방편이 매우 깊고 미묘하여 네가 말한 이치를 환히 알 수 있구나. 그들이 오랜 밤 동안 모든 선(善)의 근본을 심었어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바른 법을 거두어 받으리니 이는 모두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 말씀하며 장차 말씀할 것이니라. 나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고서 역시 또 항상 갖가지 모양으로 바른 법을 거두어 받는 것을 말하였고 이와 같이 바른 법을 거두어 받는 것을 찬양한 것이니, 그것에서 얻게 되는 공덕은 끝이 없고 여래의 지혜도 역시 끝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바른 법을 섭수하면 큰 공덕이 있고 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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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승만 부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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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다시 바른 법을 거두어 받는 넓고 큰 이치를 연설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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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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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할 것을 허락하겠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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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 부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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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넓고 큰 이치란 한량없는 온갖 부처님의 법을 얻게 되고 나아가 8만의 행온(行蘊)을 거두게 되나이다. 비유하면 겁초(劫初)에 모든 빛깔의 구름이 일어나서 보배 비를 내리는 것처럼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착한 뿌리의 구름도 한량없는 복의 과보[福報]의 비를 내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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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5 / 3476] 쪽 |
세존이시여, 또 마치 겁초의 큰 물 속에서 삼천대천세계의 광[藏]과 4백억의 갖가지 큰 섬이 솟아 나오는 것처럼 바른 법을 거두어들일 때에도 대승의 한량없는 광과 모든 보살의 신통스런 힘과 갖가지 법문이 나와서 온갖 세간과 세간 밖에 안락이 두루 갖추어져서 온갖 천상과 인간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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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치 대지(大地)가 네 가지 무거운 짐을 짊어짐과 같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 무거운 짐인가 하면 첫째는 큰 바다요, 둘째는 모든 산이며, 셋째는 풀과 나무요, 넷째는 중생들이니, 그와 같아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이 네 가지 무거운 임무를 짊어질 수 있음은 저 대지보다 더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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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네 가지 무거운 임무인가 하면 착한 벗을 떠나 들음이 없고 그릇된 법을 지닌 모든 유정들을 인간과 하늘의 선근으로 성숙시키되 성문을 구하는 이면 성문승을 주고 독각을 구하는 이면 독각승을 주며 대승을 구하는 이면 대승으로 주나니, 이것을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고 하나이다.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네 가지 무거운 임무를 짊어질 수 있음은 저 대지보다도 더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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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바른 법을 섭수하는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대지(大地)를 이룩하고 세워서 네 가지 무거운 임무를 짊어질 수 있나니, 두루 중생을 위하여 청하지 않은 벗이 되어 주고 대비(大悲)로 이익 되게 하며 유정들을 가엾이 여기어 세간 법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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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치 대지가 이 네 가지 보배를 내는 곳인 것과 같나이다. 어떤 것이 네 가지 보배인가 하면 첫째는 값을 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無價]이요, 둘째는 아주 비싼 값어치의 것[上價]이며, 셋째는 그 중간 값어치의 것[中價]이요, 넷째는 아주 하찮은 값어치의 것[下價]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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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아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대지를 이룩하여 유정이 만나기만 하면 네 가지 큰 보배를 얻게 되나니, 온갖 보배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입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 큰 보배인가 하면 모든 유정들이 이 착한 벗을 만나면 어떤 이는 인간과 하늘의 선근을 얻으며 어떤 이는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혹은 무상승(無上乘)의 선근 공덕을 증득하는 것이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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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지를 이룩하여 세워서 유정이 그를 만나기만 하면 곧 네 가지 큰 보배를 얻게 된다고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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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큰 보배가 나온다 함은 진실하게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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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는 말은 또 다른 바른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는 것도 없으니, 바른 법이 곧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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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또 다른 바라밀도 없고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도 없나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곧 바라밀이옵니다. 왜냐 하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보시[施]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보시로써 성숙시키고 심지어는 몸을 버리면서 그의 뜻을 따르며 그를 성숙시켜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보시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계율[戒]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여섯 감관을 지키고 보살펴서 몸과 말과 뜻 나아가 위의를 깨끗하게 하면서 그 뜻을 따라 그를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계율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인욕[忍]으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설령 그 유정이 꾸짖고 욕하고 헐뜯고 비방하고 요란 시킨다 하여도 성냄이 없는 마음과 이익을 주려는 가장 으뜸가는 인욕의 힘으로써 심지어 얼굴빛조차도 변하지 않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인욕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정진(精進)으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그 유정에 대하여 게으르거나 보잘것없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크나큰 의욕을 일으켜 으뜸가는 정진으로써 네 가지 위의(威儀)에서 그의 뜻에 따라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정진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선정[靜慮]으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그 유정에 대하여 산란함이 없음으로써 바른 생각을 성취하여 일찍이 짓는 일을 끝내 잊거나 잃지 않으면서 그의 뜻을 따라 그를 성숙시켜 저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선정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지혜(智慧)로써 성숙시켜야 할 사람이면 그 모든 유정들의 이익을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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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모든 법을 물을 때에는 게으른 마음이 없이 그를 위하여 모든 이론과 온갖 명처(明處)와 나아가 갖가지 공교처(工巧處)를 연설하여 궁극을 얻도록 그 뜻을 따르며 그를 성숙시키어 그 유정으로 하여금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을 지혜바라밀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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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바른 바라밀도 없고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도 없나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곧 바라밀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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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승만 부인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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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과 변재의 힘을 받들어서 다시 큰 이치를 말씀드리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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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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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큰 이치라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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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바른 법을 거두어들인다 함은 달리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도 없고 또 다른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이도 없습니다.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바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만일 바른 법을 섭수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이면 바른 법을 위하여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기 때문이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몸[身]을 버리기 때문에 나고 생사를 벗어나 늙고 병듦을 멀리 여의면서 항상 무너지지 않는 힘을 얻어 달라지거나 바뀜이 없으며 마침내 고요하고 불가사의한 여래의 법신(法身)을 증득합니다. 목숨[命]을 버리기 때문에 나고 죽는 생사를 영원히 벗어나 끝없이 항상 함을 얻고 불가사의한 모든 착한 공덕을 성취하며 온갖 부처님 법과 신통 변화에 편히 머무름을 증득합니다. 재물[財]을 버리기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 유정을 뛰어넘어 다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과보(果報)가 원만하며 불가사의한 공덕으로 장엄함을 갖추므로 모든 유정들의 존중과 공양을 받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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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고 바른 법을 거두는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모든 여래의 수기를 받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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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은 바로 법이 소멸하려 할 때 어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서로서로 편을 갈라 분쟁을 일으키면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마음으로 바른 법을 좋아하고 바른 법을 거두어 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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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안에 들어가나니, 이 착한 벗 안에 들어간 이는 반드시 모든 부처님의 수기를 받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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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바른 법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이런 큰 힘이 있음을 보거니와 여래께서는 이것으로 눈을 삼고 법의 근본을 삼으며 인도하는 법을 삼고 통달하는 법을 삼으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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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은 승만 부인이 말한 바른 법을 거두어들임에 큰 위력이 있다 함을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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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장하구나 승만아, 너의 말과 같이 바른 법을 거두어들일 때의 큰 위덕의 힘은 마치 힘센 역사[大力士]가 살짝 손끝으로 만지기만 해도 큰 고통이 생기고 무거운 병이 더욱 더해지는 것처럼 승만아, 가령 조금이라도 바른 법을 거두어들여서 악마 파순(波旬)으로 하여금 몹시 근심하고 괴로워서 슬피 울고 탄식하게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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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나는 언제나 그 밖의 하나의 착한 법이라도 악마로 하여금 근심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나니, 마치 조금이라도 바른 법을 거둘 때와 같은 경우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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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비유하면 소왕[牛王]은 생김새가 단정하고 몸의 크기가 특출하여 다른 모든 소보다 뛰어나는 것처럼 승만아, 대승을 닦는 이가 설령 조금이라도 바른 법을 거두면 곧 성문이나 독각의 온갖 착한 법보다 뛰어나는 것이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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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또 마치 수미산이 높고 넓고 장엄하고 고와서 많은 산들보다 뛰어난 것처럼 승만아, 처음 대승에 나아가는 이가 이롭게 하려는 마음으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른 법을 거두면 곧 몸과 목숨을 돌보며 오래도록 대승의 온갖 선근에 머무르는 이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승만아, 마땅히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서 온갖 유정을 깨우쳐 보이고 교화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승만아, 바른 법을 거두면 큰 복의 이익과 큰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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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내가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이와 같이 바른 법을 거둘 때에 얻게 되는 공덕을 칭찬한다 하여도 다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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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어 승만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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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다시 내가 말한 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면 모든 부처님도 같이 좋아함을 연설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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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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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법을 거두어 받음을 곧 대승(大乘)이라 하나이다. 왜냐 하면 대승에서는 온갖 성문과 독각과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모든 착한 법을 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뇩달지(阿耨達池)에서 팔대하(八大河)가 나오게 되는 것처럼 이 대승에서도 온갖 성문과 독각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법이 나오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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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또 마치 온갖 종자와 초목과 우거진 숲은 대지(大地)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는 것처럼 이 성문과 독각과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법도 모두가 대승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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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물러서 대승을 거두어 받아들임이 바로 성문과 독각,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착한 법에 머물러 거두어 받아들이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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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부처님·세존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처소[處]와 같습니다. 그것은 곧 바른 법이 머무름[正法住]과 바른 법이 사라짐[正法滅]과 따로따로의 해탈[別解脫]과 비나야(毘奈耶)와 바른 출가[正出家]와 구족계를 받는[受具足] 것이니, 대승을 위하여 이 여섯 가지 처소를 말씀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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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바른 법이 머무른다 함은 대승을 위하여 말씀한 것으로서 대승이 머무르면 곧 바른 법이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바른 법이 사라진다 함도 대승을 위하여 말씀한 것으로서 대승이 사라지면 곧 바른 법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로따로의 해탈과 비나야의 이 두 가지 법은 뜻은 하나인데 이름만 다른 것입니다. 비나야는 곧 대승의 배움[大乘學]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에게 출가해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계율[戒蘊]이 바로 비나야며, 이것이 바른 출가요 이것이 구족계를 받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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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아라한에는 출가함과 구족계를 받는 것이 없나이다. 왜냐 하면 아라한은 여래가 되려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지 않기 때문이오니,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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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두려운 생각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 귀의하나이다. 왜냐 하면 아라한은 온갖 행에서 두려워함이 마치 어떤 사람이 칼을 쥐고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벗어나 궁극의 안락을 증득하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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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의지하면서도 의지함을 구하지 않음은 마치 모든 중생은 귀의함이 없으나 저 여러 가지를 두려워하여 안온함을 위하기 때문에 귀의를 구함과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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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라한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 귀의합니다.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태어나는 법[生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범행(梵行)은 아직 세우지 못하였으며 할 일[所作]도 아직 마치지 못하고 끊어야 할 것도 아직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반과는 거리가 머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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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오직 여래·응공·정등각만이 열반을 증득하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온갖 공덕을 성취하며 끊어야 할 것을 모두 이미 끊었고 마지막까지 청정하여 모든 유정들이 우러러 사모하며 이승과 보살의 경계를 뛰어나기 때문이오니, 아라한들은 이렇게 되지 못하므로 열반을 증득한다는 말은 부처님의 방편이옵니다. 그러므로 아라한들은 열반과는 거리가 머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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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이 해탈하는 지혜를 관찰하여 마침내 쉬게 된다는 말은 모두가 여래께서 다른 이의 뜻을 따라 한 말씀이요, 분명하지 않은 이치[不了義]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두 가지 죽음[死]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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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두 가지 죽음인가 하면 첫째는 분단(分段)이요, 둘째는 변역(變易)이옵니다. 분단의 죽음이라 함은 유정으로서 상속(相續)함을 말하며 변역의 죽음이란 곧 아라한과 벽지불과 자재한 보살이 보리에 이르기까지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意生身]을 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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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죽음 가운데서 분단의 죽음[分段死]으로써 아라한과 벽지불에게 '나의 생[我生]은 이미 다했다는 지혜가 생한다 합니다. 남음이 있는 과위[有餘果]를 증득한 까닭에 '범행(梵行)은 이미 섰다'라는 지혜가 생겼으며 범부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며 일곱 부류의 배울 것 있는 사람[學人]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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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지 못한 상속하는 번뇌를 마침내 끊은 까닭에 할 일[所作]을 이미 다 마친 지혜가 생겼다고 할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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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나중의 몸[後有]을 받지 않는 지혜를 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곧 아라한과 벽지불은 모든 번뇌를 다 끊지 못하였고 온갖 태어남을 받는데 대한 지혜도 환히 알지 못하였음을 뜻합니다. 왜냐 하면 이 아라한과 벽지불은 번뇌에 남음이 있어서 다 끊지 못하였고 온갖 생사를 환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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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주지(住地)의 번뇌와 일으킴[起]의 번뇌이옵니다. 이 주지의 번뇌에도 네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와 욕애주지(欲愛住地)와 색애주지(色愛住地)와 유애주지(有愛住地)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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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주지 번뇌가 두루 일어나는 온갖 번뇌를 냅니다. 두루 일어나는 번뇌[起煩惱]라 함은 찰나찰나마다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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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무명주지(無明住地)는 없는 때로부터 마음과는 상응하지 않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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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주지번뇌의 힘은 두루 생겨나는 번뇌의 의지할 곳이 되지만 무명주지에 비교하면 산수(算數)와 비유(譬喩)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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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무명주지는 유애주지(有愛住地)보다 그 힘이 가장 크나이다. 비유하면 악마 왕의 모습과 힘과 위덕과 대중 권속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들보다 뛰어난 것처럼 이 무명주지는 나머지 네 가지 주지번뇌보다 뛰어나나니,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번뇌가 의지하는 것이요, 또한 네 가지 번뇌로 하여금 오래 머무르게 하나이다. 그러므로 성문이나 독각의 지혜로는 끊을 수 없고 오직 여래의 지혜만이 끊을 수 있을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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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무명주지의 힘은 가장 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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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마치 집착함[取]이 연(緣)이 되어 유루업[有漏業]을 인(因)하여 세 가지 있음[三有]을 생하는 것처럼 무명주지가 연이 되고 무루의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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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漏業]을 인하여 아라한과 벽지불과 큰 힘 지닌 보살이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意生身]을 내는 것이니, 이 세 가지 지위에서의 생각하는 대로 생기는 몸과 무루의 업은 모두가 무명주지를 의지할 곳[所依處]으로 삼으니 그것에 비록 연(緣)이 있다 하더라도 역시 연이 될 수도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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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세 가지 생각대로 생기는 몸[意生身]과 무루의 업은 모두가 무명주지를 연(緣)으로 삼나니, 유애(有愛)주지에서와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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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유애주지는 무명주지의 업(業)과는 같지 않고 무명주지는 네 가지 주지번뇌와도 다르며 네 가지 주지번뇌와 다른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끊을 수 있나이다. 왜냐 하면 아라한과 벽지불은 네 가지 주지번뇌를 끊지만 번뇌가 다한[漏盡]힘에 있어서는 자유자재할 수 없으며 증득함을 나타내지도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라고 함은 '번뇌가 다함(漏盡)'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과 최후의 몸[最後有]으로 있는 보살들은 무명주지에 가려지기 때문에 저 여러 법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저 여러 가지 법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다하여야 할 것을 다하지도 못하나이다. 저 여러 모든 법에 끊지도 다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남음이 있는[有餘] 해탈을 얻고 모든 해탈을 얻지 못하며 남음이 있는 깨끗함을 얻고 온갖 깨끗함을 얻지 못하며 남음이 있는 공덕을 얻고 온갖 공덕을 얻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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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남음이 있는 해탈은 완전한 해탈이 아니요 나아가 남음이 있는 공덕은 완전한 공덕이 아니기 때문에 남음이 있는 괴로움[苦]을 알고 남음이 있는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으며 남음이 있는 사라짐[滅]을 증득하고 남음이 있는 도(道)를 닦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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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승만 부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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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다시 남음이 있는 괴로움을 알고 남음이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남음이 있는 사라짐을 증득하고 남음이 있는 도를 닦는다면 이것을 조그마한 부분의 멸도[少分滅道]라 이름하며 조그마한 부분의 열반을 증득하여 열반의 경계를 향하는 것입니다. 만일 온갖 괴로움을 알고 온갖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온갖 번뇌의 사라짐을 증득하고 온갖 도를 닦는다면 그것은 덧없고 무너지는 세간에서 항상 고요하고 맑고 시원한 열반을 증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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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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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그는 보호할 데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세간에서 보호하는 이가 되고 의지할 곳이 되나이다. 왜냐 하면 모든 법 가운데서 높고 낮음을 보는 이는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거니와 지혜가 평등한 이와 해탈이 평등한 이와 청정함이 평등한 이는 열반을 증득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열반을 평등한 한 맛[等一味]이라 하나이다. 어떤 것을 한 맛이라 하는가 하면 해탈의 맛[解脫味]을 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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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무명주지를 끊지도 못하고 다하지도 못하면, 열반인 한 맛의 평등한 맛을 얻지 못하옵니다. 왜냐 하면 무명주지가 끊어지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끊어야 할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온갖 허물의 법을 끊지 못하고 마땅히 다해야 할 것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오니,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온갖 허물의 법을 끊지도 못하고 다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모든 공덕의 법을 알지도 못하고 증득하지도 못하나이다. 그러므로 무명주지번뇌는 완전히 끊어야 할 법인 모든 수번뇌(隨煩惱)가 생기게 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마음을 장애 하는[障心] 번뇌와 그침을 장애 하는[障止] 번뇌와 관찰을 장애 하는[障觀] 번뇌와 선정을 장애 하는[障靜慮] 번뇌가 생기고 이와 같아서 나아가 삼마발지(三摩鉢底)와 가행(加行)과 지혜와 증과[果]며 힘[力]과 두려움이 없음[無畏]을 장애 하는 모든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온갖 번뇌를 생기게 하며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金剛智]로 끊을 수 있는 번뇌도 무명주지에 의지하고 무명주지를 인연으로 삼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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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일어나는[起] 번뇌는 찰나찰나마다 마음과 상응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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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무명주지는 끝없는 때로부터 오면서 마음과는 상응하지 않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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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다시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로 끊어야 할 법은 모두가 이 무명주지를 의지하여 이룩되며 세워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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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온갖 종자와 우거진 숲이 대지(大地)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며 만일 대지가 무너지면 그것들도 또한 무너지는 것처럼, 이 항하의 모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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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로 끊어야 할 법도 모두가 이 무명주지에 의지하여 나고 자라며 만일 그 무명주지가 끊어지면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여래의 보리와 부처님의 금강 같은 지혜로 끊어야 할 법도 모두 따라 끊어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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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보다 더 많은 끊어야 할 법인 온갖 번뇌와 일어난 번뇌가 이미 끊어졌기 때문에 곧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증득하고 온갖 법에서 걸림이 없는 신통을 증득하며 모든 지견(智見)을 얻고 온갖 허물을 여의며 모든 공덕을 얻어 대법왕(大法王)이 되고 법에 자재하면서 온갖 법의 자재한 지위를 증득하여 바르게 사자처럼 외치되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다 마쳤고 나중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나니, 그 때문에 세존께서는 사자후(師子吼)로써 분명한 이치[了義]에 의거하여 한결같이 말씀하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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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나중의 몸을 받지 않는 지혜에 두 가지가 있나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모든 여래는 조복하고 제어하는 힘으로 네 가지 악마를 꺾어 항복 받아 모든 세간을 초월하며 온갖 유정들이 우러러 쳐다보는 바 되며 불가사의하고 깨끗한 법신(法身)을 증득하며 알 자리[所知地]에서 법의 자재함을 얻고 가장 뛰어나며 위가 없어서 다시는 할 일이 없으며 다시는 증득할 지위도 보지 않고 10력(力)을 두루 갖추며 가장 뛰어나고 두려움이 없는 지위에 올라가 온갖 법에 걸림이 없이 관찰하면서 바르게 사자처럼 외치며 나중 몸을 받지 않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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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아라한과 벽지불은 한량없는 생사의 두려움을 건너서 해탈의 즐거움을 받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생사의 두려움을 이미 여읜지라 모든 괴로움은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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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이와 같이 관찰하면서 나중 몸을 받지 않는다고 여기나 제일 소식열반(第一蘇息涅槃)을 증득하지는 못하나이다. 그들은 아직 증득하지 못한 자리에서 법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제 남음이 있는 자리[有餘依地]를 증득한지라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고 스스로 깨달아 아나이다. 왜냐 하면 성문이나 독각이 모두 대승(大乘)에 들어가면 대승은 곧 그것이 불승(佛乘)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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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3승(乘)이 곧 1승(乘)이요, 1승을 증득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곧 그것이 열반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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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이라 함은 곧 그것이 여래의 깨끗한 법[法身]이오니, 법을 증득하면 곧 1승이어서 여래와 다름이 없고 법신과도 다름이 없나이다. 여래라 함은 곧 그것이 법신이오니, 마지막의 법신을 증득하면 곧 마지막의 일승이요 마지막의 일승은 곧 상속[相續]함을 여의나이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머무르는 때는 한량이 없으며 미래에도 그러합니다. '여래는 한이 없는 대비(大悲)와 한이 없는 서원으로 세간을 이익 되게 하신다'라고 이렇게 설명하면 이것을 '잘한 말씀[善說]'이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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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또 '여래는 바로 항상 계시고 그지없는 법이며 모든 세간이 마지막 의지할 분이다'라고 말한다면 역시 '잘한 말씀'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보호함이 없는 세간과 의지할 데 없는 세간에서 미래에도 더불어 함께 하여 끝없이 귀의[無盡歸依]하고 항상 머무르며 귀의[常住歸依]하며 마지막으로 귀의[究竟歸依]할 이가 귀의하면 여래·응공·정등각이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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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란 바로 1승의 도(道)요 승(僧)이란 바로 3승의 대중이니, 이 둘에 귀의함은 마지막의 귀의가 아니므로 조그마한 부분의 의지처[少分依]라 하나이다. 왜냐 하면 1승의 도에서 마지막 법신을 증득한다고 말하면 다시는 1승의 도를 말함이 없고, 3승의 대중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또 여래께 귀의하여 출가를 구하고 닦고 배우니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귀의는 마지막 의지처가 아니라 이것은 한정이 있는 의지처[有限依]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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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유정이 여래의 조복으로 여래께 귀의하면 법과 율에 젖어들어 믿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하게 되나이다. 이 두 가지 귀의는 법과 율에 젖어들어 믿어 들어가 귀의하게 되거니와 여래께는 법과 율에 젖어들어 믿음으로 들어가는 귀의가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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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라 함은 바로 진실한 귀의며 이 두 가지에도 진실한 이치로써 귀의하기 때문에 곧 마지막에는 여래께 귀의한다 하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는 이 두 가지 귀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여래는 곧 세 가지 귀의이옵니다. 왜냐 하면 1승의 도로 말하면 여래는 가장 뛰어난 네 가지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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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四無畏]을 갖추고서 바르게 사자후를 하시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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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여래께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방편으로써 2승을 말하면 곧 그것이 대승이오니, 제일가는 이치[第一義]에서는 2승이 없고, 2승이란 다같이 1승에 들어가며 1승이란 곧 으뜸가는 이치의 승[勝義乘]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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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성문과 독각이 처음에 거룩한 진리[聖諦]를 증득할 때는 하나의 지혜로써 모든 주지(住地)번뇌를 끊는 것도 아니요, 또한 하나의 지혜로써 네 가지 변지(遍知)와 모든 공덕 등을 증득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법으로써 이 네 가지 법의 이치를 환히 아는 것도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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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出世智]에서는 네 가지 지혜가 점차로 이르거나 점차로 반연한다는 것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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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에는 점차로 이르는 법이 없나니, 마치 금강유(金剛喩)와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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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성문이나 독각은 갖가지 거룩한 진리의 지혜로 모든 주지(住地)번뇌를 끊지마는 세간을 벗어나는 제일가는 이치의 지혜[出世第一義智]는 없고 오직 여래·응공·정변지에게만 있을 뿐이며, 모든 성문이나 독각의 경계가 아니요 불가사의한 공한 성품[空性]의 지혜로써 온갖 번뇌의 알을 깨부수는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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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번뇌의 알을 깨부수는 마지막 지혜를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제일가는 이치의 지혜라 하고 처음 거룩한 진리를 증득하는 지혜는 마지막의 지혜가 아니며 이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지혜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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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진실로 거룩한 이치[眞聖義]는 곧 2승(乘)이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성문이나 독각은 오직 조그마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거룩하다[聖]고 하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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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거룩한 진리라 함은 모든 성문이나 독각의 진리와 그의 공덕이 아니옵니다. 이 진리는 오직 여래·응공·정등각에게만이 있을 뿐이며 처음부터 환히 알고 난 연후에야 무명(無明)의 알에 감추어진 세간 중생들을 위하여 열어 보이고 연설하기 때문에 거룩한 진리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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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거룩한 진리는 매우 깊고 미묘하여서 보기도 어렵고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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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어려우며 분별할 수도 없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경계도 아니며 온갖 세간에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이요 오직 여래·응공·정등각만이 아실 뿐이옵니다. 왜냐 하면 여기서는 매우 깊은 여래장(如來藏)을 말씀하기 때문이옵니다. 여래장이란 바로 부처님의 경계요 모든 성문이나 독각이 행할 바가 아니며 여래장에서 거룩한 진리의 이치를 말씀하나니, 이 여래장이 매우 깊고 미묘하기 때문에 말한 거룩한 진리도 역시 깊고 미묘하여서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분별할 수도 없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경계도 아니며 온갖 세간에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이요 오직 여래·응공·정등각만이 알 수 있을 뿐이옵니다. 만일 한량없는 번뇌로 얽혀있는 여래장에 대하여 의혹이 없다면 온갖 번뇌의 창고를 벗어난 여래의 법신(法身)에 대하여도 역시 의혹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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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이 여래장과 부처님의 법인의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비밀한 경계에 대하여 마음에 마지막 경지[究竟]를 얻으면 거기서 말한 두 가지 거룩한 진리를 믿을 수도 있고 환히 알 수도 있으며 뛰어난 이해[勝解]를 낼 수도 있나이다. 어떤 것을 두 가지 거룩한 진리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지음이 있고[有作] 지음이 없는[無作] 것이옵니다. 지음이 있는 거룩한 진리라면 이것은 원만하지 않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니, 왜냐 하면 다른 이가 보호하는 까닭에 온갖 괴로움[苦]을 알고 온갖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으며 온갖 사라짐[滅]을 증득하고 온갖 도(道)를 닦게 될 수 없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와 열반에 대하여 알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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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지음이 없는 진리라면 바로 원만한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뜻하나니, 왜냐 하면 스스로가 보호하는 까닭에 온갖 괴로움을 알고 온갖 원인을 끊으며 온갖 사라짐을 증득하고 온갖 도를 닦게 되기 때문이오니, 이와 같이 말한 여덟 가지 거룩한 진리를 여래께서는 다만 네 가지 거룩한 진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옵니다. 이 지음이 없는 네 가지 거룩한 이치는 오직 여래·응공·정등각만이 일의 궁극에 이를 수 있고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힘으로서는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뛰어나거나 못난 하·중·상의 법으로써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어떻게 여래는 지음이 없는 진리에서 일의 궁극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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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여래·응공·정등각은 모든 괴로움을 두루 알아서 모든 번뇌를 끊고 그리고 번뇌에 포함된 괴로움의 원인을 넘어서 생각한 대로 생기는 몸[意生身]에 있는 모든 괴로움의 사라짐을 증득하며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는 도를 닦을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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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파괴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괴로움이 사라진다[苦滅]고 하나이다. 왜냐 하면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말은 처음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생기는 것도 없고 다하는 것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서 동요하지 않고 본래의 성품이 깨끗하여 번뇌의 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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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여래는 항하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해탈하는 지혜를 갖춘 불가사의한 법을 성취하셨기에 법신(法身)이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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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신이 번뇌를 여의지 않은 것을 여래장이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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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곧 여래의 공한 성품[空性]의 지혜이옵니다. 여래장은 온갖 성문이나 독각으로서는 일찍이 보지 못할 뿐더러 또한 얻지도 못하며 부처님만이 분명히 아시고 증득할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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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여래장의 공한 성품의 지혜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나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공여래장(空如來藏)과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이옵니다. 공여래장이란 이른바 해탈하지 않은 지혜와 온갖 번뇌를 여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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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불공여래장은 항하 모래보다도 더 많이 갖춘 부처님의 해탈하는 지혜와 불가사의한 법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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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두 가지 공한 지혜에 모든 큰 성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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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온갖 성문이나 독각은 공한 성품의 지혜를 네 가지 뒤바뀐 경계에 반연해서 굴리게 되나니, 그러므로 온갖 성문이나 독각은 보지도 못하고 또한 증득하지도 못하나이다. 온갖 괴로움의 사라짐[苦滅]은 오직 부처님만이 실제로 증득하여 모든 번뇌를 무너뜨리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도(道)를 닦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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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진리에서 세 가지 진리는 항상함이 없고[無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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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진리는 항상합니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세 가지 진리는 유위(有爲)의 모양에 들기 때문이오니, 유위의 모양이란 곧 항상함이 없는 것이옵니다. 항상함이 없다는 말은 바로 파괴되는 법이요 파괴되는 법이라면 진리도 아니고 항상 있는 것[常]도 아니며 귀의할 곳[歸依處]도 아니옵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진리를 한 가지 진리에서 보면 진리도 아니고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귀의할 곳도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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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한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苦滅諦]는 유위의 모양을 여읜 것이니 유위의 모양을 여읜지라 성품이 항상 머무르고 성품이 항상 머무르기 때문에 파괴되는 법이 아니며 파괴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진리요 이것은 항상하는 것이며 이것은 귀의할 곳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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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는 불가사의한 것이라 모든 유정의 심식(心識)의 경계를 넘어서고 또한 온갖 성문이나 독각의 지혜로도 미칠 바가 아니옵니다. 비유하면 소경이 모든 빛깔을 보지 못하고, 7일이 된 젖먹이는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움이 사라진 진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범부의 심식으로는 반연할 바가 아니고 또한 온갖 성문이나 독각으로서의 지혜의 경계도 아니옵니다. 범부의 심식(心識)이라 함은 두 가지 치우친 소견[邊見]을 말하며 온갖 성문과 독각의 지혜라 함은 깨끗한 지혜[淨智]를 이름하나이다. 치우친 소견이란 5취온(取蘊)을 집착하여 나를 삼으면서 다른 분별을 내는 것이니 치우친 소견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항상하다는 소견[常見]과 아주 없어진다는 소견[斷見]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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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또 나고 죽음[生死]은 덧없되 열반은 항상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아주 없다거나 항상 있다거나 하는 소견이 아니니,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나이다. 왜냐 하면 모든 헤아리는 이가 몸의 모든 감관의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법에서 없어지고 파괴된다고 보기 때문이오니, 상속(相續)함이 있는 것에 대하여 분명히 모르고 눈이 멀어서 지혜의 눈이 없으므로 아주 없다는 소견을 일으키게 되며 마음이 상속하여 찰나마다 사라지고 파괴되는 것에 대하여 어리석고 어두워서 의식(意識)의 경계를 분명히 모르므로 항상 있다는 소견을 일으키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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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0 / 3476] 쪽 |
세존이시여, 그리고 그 여러 가지 이치는 모든 분별과 하열한 소견을 초월한 것이온데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이 망령되어 다른 생각과 뒤바뀐 집착을 내므로 말미암아 아주 없다고도 여기고 항상 있다고도 여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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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뒤바뀐 유정은 5취온(取蘊)에 대하여 항상하지 않는 것인데도 항상하다[常]는 생각을 하고 괴로운 것인데도 즐겁다[樂]는 생각을 하며 나가 없는 것인데도 나[我]라는 생각을 하고 깨끗하지 않는 것인데도 깨끗하다[淨]는 생각을 하나이다. 그리고 성문과 독각이 지닌 청정한 지혜[淨智]로는 여래의 경계와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아직 보지 못하옵니다. 혹 어떤 중생은 여래를 믿기 때문에 여래에 대하여 항상 있다는 생각과 즐겁다는 생각과 나라는 생각과 깨끗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뒤바뀐 소견이 아니고 바로 바른 소견이오니, 왜냐 하면 여래의 법신은 바로 항상 있음의 바라밀이요 즐거움의 바라밀이며 나의 바라밀이요 깨끗함의 바라밀이기 때문이옵니다. 만일 모든 유정으로서 이러한 소견을 짓는 이라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나이다. 만일 바른 소견을 지닌 이면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라 하고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다 하며 바른 법으로부터 나왔다 하고 법의 교화로부터 나왔다 하리니, 불법을 얻은 이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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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깨끗한 지혜[淨智]라 함은 곧 온갖 성문이나 독각의 지혜바라밀이오니, 이 청정한 지혜는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苦滅諦]에 있어서도 오히려 경계가 아니거든 하물며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이겠습니까. 이것은 네 가지 입류(入流)의 지혜로 행할 것이오니, 왜냐 하면 3승(乘)의 맨 처음의 업[初業]으로서 법에 어리석지 않은 이는 그 이치를 당연히 증득해야 하고 당연히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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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무슨 이치 때문에 네 가지 입류를 말하는가 하면 세존이시여, 이 네 가지 입류는 바로 세간의 법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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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하나의 입류만이 모든 입류에서 가장 으뜸가고 맨 위이니, 제일가는 이치[第一義]로써 보면 이것이 입류이고 이것이 귀의(歸依)이며 이것이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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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나고 죽음은 여래장에 의거하며 여래장으로써 과거는 분명히 알 수 없다고 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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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1 / 3476] 쪽 |
세존이시여,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나고 죽음이 있게 되나니, 이것을 잘한 말씀[善說]이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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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나고 죽는다 함은 모든 느끼는 감관[根]이 소멸하고 끊임없이 상속하면서 아직 느끼는 감관이 생기지 않은 것을 나고 죽는다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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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나고 죽는 두 가지 법이 바로 여래장이며 세속의 법에서 나고 죽는다고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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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죽는다[死] 함은 모든 느끼는 감관이 사라지는 것이며 난다[生] 함은 모든 느끼는 감관이 생기는 것이어니와 여래장은 곧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오르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며 유위(有爲)의 모양을 여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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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항상 한결같아서 무너지지 않나이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해탈을 여의지 않는 지혜의 광[藏]과 함께 하면서 이것으로 의지[依]하고 이것으로 지속[持]되고 이것으로 이룩하여 세우며 또한 밖으로는 해탈하지 못한 지혜인 모든 유위의 법에 의지하고 유지되며 이룩되어 세우기를 떠나서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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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여래장이 없다면 마땅히 괴로움을 싫어하거나 즐거이 열반을 구하는 것도 없어야 하나이다. 왜냐 하면 이 6식(識)과 그것을 앎에 있어서 이러한 일곱 가지 법은 찰나마다 머무르지 않고 뭇 고통도 받지 않으며 싫증내어 떠나지도 않고 열반을 원하고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여래장이란 과거에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법이요 모든 고통도 없는 법으로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원하며 구하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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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나와 사람과 중생과 수명도 있지 않으며, 여래장이란 몸에 대한 소견[身見]을 지닌 유정이나 뒤바뀐 유정이나 공하다는 소견[空見]을 지닌 유정으로서 행할 경계가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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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여래장이란 바로 법계(法界)가 간직되어 있고 바로 법신(法身)이 간직되어 있으며 세간을 벗어남[出世間]이 간직되어 있고 성품의 청정함[性淨]이 간직되어 있으며 이것은 본래의 성품이 청정하나이다. 여래장이란 제가 이해하기로는 비록 티끌 같은 번뇌에 물들게 된다 하더라도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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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이것은 불가사의한 여래의 경계이옵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찰나찰나의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마음은 티끌 같은 번뇌로 물이 들 수는 없기 때문이옵니다. 왜냐 하면 번뇌는 마음에 닿지 못하고 마음도 번뇌에 닿지 않거늘 어떻게 법에 닿지 않는데도 마음을 물들일 수 있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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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번뇌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에 따라 마음을 물들임이 있거니와 번뇌를 따라 물이 드는 것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환히 알기도 어렵나니, 오직 부처님·세존만이 눈이 되고 지혜가 되고 법의 근본이 되고 높은 이가 되고 인도한 이가 되고 바른 법의 의지처[依]가 되어서 사실대로 아시고 보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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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승만 부인을 찬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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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구나. 너의 말과 같으니라. 성품이 청정한 마음이 번뇌를 따라 물드는 것은 참으로 환히 알기 어렵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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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승만아, 환히 알기 어려운 두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하면 성품이 청정한 마음을 환히 알기 어렵고 그 마음이 번뇌에 물들게 되는 것도 역시 알기 어렵느니라.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은 너와 큰 법을 성취한 보살이라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밖의 성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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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만일 나의 제자로서 믿음이 뛰어난 이라면 법지(法智)를 따라서 이 법 가운데서 궁극의 경지[究竟]를 얻으리라. 법지를 따른다 함은 감관[根]과 인식[識]과 경계[境]를 관찰하고 업보(業報)를 관찰하며 아라한의 번뇌[隨眠]을 관찰하고 마음의 자재함을 관찰하면서 선정의 즐거움[禪樂]을 좋아하며 성문과 독각의 성스런 신통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 교묘한 관찰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현재와 미래 세상의 성문 제자들이 뛰어나고 왕성한 믿음으로 인하여 법지를 따르면서 성품이 청정한 마음을 잘 알고 번뇌에 물이 들면서도 궁극을 얻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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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아, 이 궁극이란 대승의 인(因)이 되나니, 너는 이제 여래를 믿는 이는 매우 깊은 법에 대하여 비방을 하지 않는 줄 알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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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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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다시 그 밖의 이치가 있어서 이익이 많사오니, 저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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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그 일을 연설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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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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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도다. 이제 네 마음대로 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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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 부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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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선남자와 선여인이 있사온데 매우 깊은 법에서 스스로 헐뜯지 않고 많은 공덕을 내면서 대승의 도에 들게 되나이다. 어떤 것이 세 부류인가 하면,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스스로 깊고 깊은 법지(法智)를 성취하고 혹 어떤 이는 법지를 따라서 성취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이 깊고 깊은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직 부처님만이 알 바요 나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여래께 우러러 미루기도 하나이다. 이 부류의 선남자와 선여인을 제외하고 나서 그 밖의 유정들은 깊고 깊은 법에 대하여 자기가 취한 바를 따라 집착하고 망령되어 말하면서 바른 법을 어기고 모든 외도(外道)를 익히나니, 부패(腐敗)한 종자라 설령 다른 곳에 있다 하여도 마땅히 가서 제거하여야 하고 그 부패한 이는 온갖 하늘과 사람들이 함께 꺾어 항복시켜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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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 부인이 이 말을 다하고 나서 모든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고 예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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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세존께서 칭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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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구나. 승만아, 깊고 깊은 법을 방편으로 지켜 보호하면서 원수를 항복받고 잘 통달하였나니, 너는 이미 백천 억의 모든 부처님·여래를 친근하였기에 이런 이치를 말할 수 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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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은 수승한 광명을 놓아 대중을 널리 비추면서 몸을 다라수(多羅樹) 일곱 그루 높이의 허공으로 올라가셔서 신통의 힘으로 발로 허공을 밟으면서 사위성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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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승만 부인과 그의 권속들은 세존을 우러러 쳐다보면서 눈을 잠시도 떼지 않다가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뛸 듯이 기뻐하며 함께 여래의 공덕을 칭찬하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무투성(無鬪城)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우칭왕(友稱王)에게 권하여 대승을 이룩하여 세우게 하면서 성 안의 일곱 살 이상의 여인들을 대승으로 교화하였고 우칭 대왕 역시 대승으로써 일곱 살 이상의 남자를 모두 교화하였으니, 온 나라 대중들이 모두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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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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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은 서다림(逝多林:祇園精寺)으로 들어가셔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시며, 제석천왕을 생각하셨다. 그러자 제석천왕과 그의 권속들은 때맞추어 부처님 앞에 이르렀으므로 그때 세존께서는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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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시가(憍尸迦)야, 너는 이 경을 받아 지니면서 삼십삼천에게 연설하고 열어 보이어 안락함을 얻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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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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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역시 받아 지니면서 사부대중을 위하여 분별하고 연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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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제석천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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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오며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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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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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이야말로 끝없는 공덕을 성취하나니 온갖 성문이나 독각의 힘으로는 미칠 수조차 없거든 하물며 그 밖의 유정이겠느냐. 교시가야, 알아야 하느니라. 이 경은 매우 깊고 미묘한 큰 공덕의 무더기이니, 이제 너를 위하여 간략하게 그의 이름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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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제석천왕과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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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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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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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의 이름은 찬탄여래진실공덕경(讚歎如來眞實功德經) 또 설불사의십종홍서경(說不思議十種弘誓經)·이일대원섭일체원경(以一大願攝一切願經)·설불사의섭수정법경(說不思議攝受正法經)·설입일승경(說入一乘經), 설무변제경(說無邊諦經)·설여래장경(說如來藏經) 또 설불법신경(說佛法身經)·설공성의은부진실경(說空性義隱覆眞實經)·설일제의경(說一諦義經)·설상주부동적정일의경(說常住不動寂靜一依經)·설전도진실경(說顚倒眞實經)·설자성청정심번뇌은부경(說自性淸淨心煩惱隱覆經)·설여래진자경(說如來眞子經)·설승만부인정사자후경(說勝鬘夫人正師子吼經)이라고도 하나니 마땅히 이렇게 지녀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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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교시가야, 이 경에 말한 것은 모든 의심을 끊으며, 결정코 모든 이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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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밝혀 일승도에 들어간다. 교시가야, 이제 말한 승만부인사자후경을 너에게 부촉(付囑)하노니 법이 머물러 있을 때까지 시방세계에 열어 보이고 연설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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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천왕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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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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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제석천왕과 존자 아난과 그리고 이 큰 법회에 있는 모든 하늘·사람·아수라·건달바 등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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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20권대보적경 제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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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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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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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광박선인회(廣博仙人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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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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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무투전성(無鬪戰城)의 항하(恒河) 언덕 위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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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한량없는 비구 대중이 있었으니, 존자 아난(阿難)과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사리불(舍利弗)과 박구라(薄拘羅)와 이바다(離婆多)와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등이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모든 티끌[塵染]을 여의었으며,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고 다시는 물러나지 않았으며, 선정과 독경의 수행은 잠시도 쉬거나 게으름이 없었다. 혹은 기러기 떼가 머무는 것처럼 고요했고 혹은 숲 속에 머무르며 항상 선정을 닦았으며, 여래의 광명인 교문(敎門)에 편안히 머물렀고 모든 감관을 조복하여 두려워함이 없음[無所畏]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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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사라계(娑羅鷄) 숲에는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흐드러지고 향기로운 꽃이 온 땅에 널리 있었으며, 구지라새[拘枳羅鳥]와 가릉가새[迦陵伽鳥] 및 거위와 떼벌들이 한데 모여 살면서 가락에 맞추어 지저귀고 중생들의 모든 흐린 생각을 여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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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여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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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마땅히 할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계율의 위의(威儀)로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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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덮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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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서쪽에서 갑자기 번쩍거리는 것이 마치 햇빛과 같았다. 존자 아난은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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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지금 이 광명은 무슨 조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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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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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이것은 오통 선인(五通仙人)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흑향(黑香)의 제자 광박(廣博)이라는 이가 음식을 적게 먹어서 파리하고 몸에는 광택(光澤)이 없는데 불백(不白) 선인과 천인(天人) 선인과 점파야나(苫波野那) 선인·단도야나(丹荼野那) 선인·가마야나(迦摩野那) 선인·미가나사(迷佉那斯) 선인·의미(疑味) 선인·도라(度羅) 선인 등 5백 명의 동행자와 함께 앞뒤로 둘러싸여 나에게로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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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광박 선인은 멀리서 세존의 몸과 뜻이 고요하고 숲 속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이 모시고 호위하며 있는 것을 보고 곧 생각하기를 '기이하도다 높고 귀하시며 모든 지혜를 지닌 용모를 모두 갖추셨구나. 많은 신하와 전륜왕의 지위와 6만 명의 채녀들을 버리기를 마치 독이 든 음식을 버리듯이 하시고 숲에서 고행(苦行)을 하며 모든 욕락(欲樂)을 여의었다는 명성이 널리 들리더니 진실로 거짓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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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대중 가운데 나자타(那刺陀)라는 한 선인이 멀리서 여래를 보고 환희심을 내면서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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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꽃 있는 숲 아래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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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황금 더미 같은데 어떤 분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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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산(彌樓山)의 보배와 같이 흐르는 부처님의 광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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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달이 아무 것에도 가려진 것이 없는 것과도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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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모든 선인들은 모두가 즐거운 생각으로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점차 부처님께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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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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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저 염부주(閻浮洲) 안의 모든 선인들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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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이같이 머리가 흐트러져서 위로 쏠렸으며 숲 속에서 살면서 진흙을 바르고 숯불을 피우면서 밥알을 먹지 않으며, 혹은 한 달 또는 반 달 동안을 음식을 절제하기 때문에 파리해지고 사슴가죽과 나무 껍질로 옷을 지어 입으며, 머리와 손발톱을 깍지 않고 한데 쭈그리고 앉으며, 혹은 연기나 숯이나 검은 벌처럼 빛깔이 검고 주술(呪術)로 불에 제사지내면서 길상(吉祥)으로 여기고 빈 땅이나 나무 아래를 처소로 삼고 살며 혹은 높은 바위 위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깊은 물 속으로 몸을 던지기도 하며 훨훨 타는 불길이나 뙤약볕에 몸을 구우며 신체를 괴롭혀 그의 종성(種姓)이 뛰어남을 자부하여 훌륭한 지혜를 여의고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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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모든 선인들은 청정하지 못한 것을 보고 모든 존재[有]에 탐착하므로 윤회하는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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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을 듣고 모두 소리를 같이하여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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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은 지금 여래를 의지하여 부지런히 범행(梵行)을 닦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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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광박 선인은 그 동행들과 함께 점차 부처님께 오면서 모든 아라한들의 위덕이 높고 엄숙한 것을 보고는 속으로 몹시 두려워하며 몸을 굽히고 눈을 내리깔며, 저마다 흐트러진 머리를 만지고 몸에는 흰 끈을 찼는데 얼굴은 검고 두 눈은 누루거나 푸르렀으며, 머리카락은 바짝 마르고 세 갈래로 된 지팡이를 쥐었으며 몸의 형상은 누추하였으나 허공을 걸어오기도 하고 혹은 세속의 전적[俗典]을 이야기하면서 여래의 앞에 다가와서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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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지금 이 대중의 모임이 기회[時]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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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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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이여, 나는 이미 모든 존재[有]의 태어남과 제 성품[自性]을 환히 알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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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아난이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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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 분은 어떤 선인(仙人)이기에 대중에게 둘러싸이고 말씨와 지혜가 총명하며 머리카락은 위로 쏠렸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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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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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이 분이 바로 광박(廣博)이니라. 베다의 경전을 지었고 사갈라교(賖羯羅敎)를 봉행하고 익히면서 모든 갖가지 세속의 문자를 만든 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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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모든 아라한들은 서로 함께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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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인들은 얻을 것이 무엇이기에 이와 같은 고행을 하며 나고 죽음 가운데서 해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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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이 선인들은 지금 부처님께로 와서 무엇을 물려는 것일까? 인연(因緣)에 대하여 물을 것인가. 나 없음[無我]에 대하여 물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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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광박 선인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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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부처님은 출현하시기 어렵고 대중의 모임 역시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조그마한 의심이 있사오니, 원컨대 가엾이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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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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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大仙]이여, 그대의 마음대로 물어라. 해설하여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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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 선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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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보시[施]이고 어느 것이 보시라는 뜻[施義]이며, 어떤 것이 시주(施主)이고 어느 것이 보시라는 뜻이며, 어떤 것이 시주이고 시주란 무슨 뜻입니까? 또 어찌하여 보시하는 이[施者]를 시주라 하지 않고 어찌하여 시주를 보시하는 이라고 하지 않으며 어찌하여 보시를 받는 이에게 보시하여 복의 과보를 얻고 어찌하여 보시한 복은 보시한 뒤에 현재의 세상에서 또는 목숨을 마친 뒤에 행을 따라 쌓이고 모이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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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 탑묘(塔廟)에 공양하면 누가 공양 받는 이가 되어 복의 과보를 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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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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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그대가 지금 묻는 것은 매우 희유하도다. 새로 발심한 이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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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사리불이 흰 머리와 주름진 얼굴로 오른 손으로 눈썹을 쓰다듬으며 돌아보고는 잠시 후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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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찍이 광박 선인이 세간에서 칭찬 받는 것을 들었는데, 어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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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물을 줄을 모르는 것이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을까? 어찌하여 인연이나 나 없음의 깊고 묘한 이치는 묻지 않고 겨우 보시에 대한 과보를 묻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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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 아난이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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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 선인은 보시에나 탐착하고 있사오니 제가 그에게 보시에 대한 뜻을 해설하게 하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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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아, 여래에게 물은 것을 성문(聲聞)이 대답하는 것은 여래의 교법(敎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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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사리불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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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선인은 여러 의심이 있사온데 제가 해설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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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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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느니라. 네가 성문에서 으뜸이기는 하나 만일 내 앞에서 해설하게 된다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악한 세계[惡趣]에 떨어질 것이며 그들은 비방하기를 '여래는 결정된 지혜를 지닌 이가 아니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여래는 성품을 깨달으신 뒤에도 오히려 아만(我慢)이 있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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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한 것을 듣고 청정하게 믿는 마음을 내면서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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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광박 선인의 의문을 끊어 없애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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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처님께서 광박 선인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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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이제 보시의 과보와 업(業)의 차별을 자세히 들어라. 만일 모든 받는 이가 시주로 하여금 과보를 내게 하면 이것은 보시라는 뜻[施義]이며, 만일 어떤 중생이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자기의 재보를 맡아보는 이에게 보시하도록 하면 그 재보의 주인을 시주(施主)라 하고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보시하는 이[施者]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진 재물을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시주이면서 또한 보시하는 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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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서른두 가지 청정하지 않은[不淨] 보시가 있으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만일 또 어떤 사람이 뒤바뀐 소견으로 보시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은혜를 갚기 바라며 보시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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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이 여기지 않으면서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색욕(色欲)을 위해서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만일 불 속에서 보시한다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물 속에 던져 놓고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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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며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다섯 집[五家]에 보시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독으로써 보시한다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칼이나 무기를 보시한다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산목숨을 살해하여 보시한다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다른 이를 포섭하기 위하여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칭찬 받기 위하여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창녀(娼女)에게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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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이나 관상쟁이에게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 이에게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벗을 사귀기 위하여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잘 사는 집 안에서 날짐승·길짐승들이 와서 먹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기술을 배우면서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명이 다한 병으로 인하여 의약을 베푸는 것은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먼저 때리고 욕설을 퍼부은 뒤에 재물을 베풀어주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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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의혹을 품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제 보시하는 것을 갚겠느냐, 갚지 않겠느냐'라고 하면서 이렇게 보시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만일 보시하고 나서 속으로 몹시 괴로워하면서 애석히 여기고 후회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만일 받는 이에게 '뒤에 나를 위하여 소나 짐승이 되어 주라'고 말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만일 '복의 과보는 내가 스스로 받으리라'고 말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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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람이 젊었을 때에 청정하게 믿는 마음이 없다가 뒷날 병고를 만나거나 혹은 죽는 길에 임하여 모진 고통이 몸에 와서 사지가 갈가리 찢기는 듯하고 염라(閻羅)의 사자(使者)가 앞에서 조롱하며 집안 사람과 친한 이들이 마주보면서 슬피 우는 때를 당해서야 비로소 보시하기 시작한 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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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그 밖의 성읍(城邑)에서 내가 보시한 것을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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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다'라고 한 보시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만일 질투하는 마음을 왕성하게 품고서 한 보시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다른 호족(豪族)을 사모하면서 혼인하기 위하여 모든 금·은과 비단과 의복을 가져다 베풀어주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만일 아들딸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인연을 바라면서 베풀어주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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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이가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면 미래 세상에는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한 것이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고, 가난한 이를 볼 때 가엾이 여기지 않으면서 도리어 금전과 재물을 가져다 부귀한 사람에게 보시하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으며, 혹은 꽃이나 과일을 탐내면서 베풀어주면 청정한 보시라 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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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이 서른두 가지 물이 든 보시는 마치 어떤 사람이 종자를 가지고 가서 메마른 밭에 심으나 그 종자는 땅의 요소[界]에 의하고 비를 맞아 틀림없이 싹은 나오게 되지만 꽃과 열매는 조금 밖에 수확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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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광박 선인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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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시하면 계율을 지닌 이거나 깨뜨린 이거나 소멸되거나 파괴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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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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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청정하게 인과(因果)를 믿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후회하거나 인색함이 없이 계율을 지닌 이나 계율을 깨뜨린 이를 분별하지 않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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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여, 다섯 가지 보시가 있으니 큰 보시[大施]라 하느니라. 무엇을 다섯 가지 보시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적당한 시기에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도(道)를 행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병든 사람과 간병(看病)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바른 법을 말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다른 나라로 나아가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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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법시(法施)이고, 둘째는 음식을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머물러 사는 곳이고, 넷째는 등불이며, 다섯째는 향과 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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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이 다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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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청정한 것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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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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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믿는 마음을 일으켜 모든 중생을 위해 속으로 가엾이 여기며 보리(菩提)에 회향하고 두루 깨끗하게 해탈하면 청정한 것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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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섯 가지 훌륭한 보시가 있느니라.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여래께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여러 스님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셋째는 설법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아버지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어머니에게 보시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가 훌륭한 보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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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시하는 것이 있으니, 큰 보시[大施]라 하느니라. 이른바 왕위를 상실한 국왕에게 보시하면 큰 보시라 하고, 관리에게 핍박을 당하는 사람이나 의지할 데도 없고 병이 들어서 고통을 받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보시하면 큰 보시라 하며, 만일 왕에게서 버림을 받아 형장(刑場)에 있거나 그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이에게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 그의 목숨을 구제하여 주면 큰 보시라 하느니라. 혹 병이 든 사람에게 의약을 베풀어주면 역시 큰 보시라 하고, 계율을 갖춘 여러 스님에게 때맞추어 보시하면 역시 큰 보시라 하며, 지혜를 구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역시 큰 보시라 하고, 축생의 무리나 두꺼비·거머리·까마귀 및 그 밖의 날짐승·길짐승에게 베풀어주면 역시 큰 보시라 하며, 궁핍하고 못난이에게 보시하여 그들을 만족하게 하면 역시 큰 보시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청정하게 보시할 것을 권하거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할 수 있으면 역시 큰 보시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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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그대가 먼저 묻기를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떻게 심으면 복의 과보를 얻게 됩니까'라고 했는데, 선남자여, 모든 여래는 모두가 법신(法身)이요 육신[色身]이 아니므로 세간에 계시거나 열반에 드시거나 모든 공양하는 복에는 다름이 없느니라. 마치 전륜왕이 그 큰 땅에서 부르짖되 '이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도 중생을 살해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고 할 때에 그 나라 사람들은 비록 왕은 보지 못하고 또 친히 모시지 못하더라도 다만 그 교칙(敎勅)만을 듣고 따라 받들면 왕은 이 사람에 대하여 반드시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그 사람은 왕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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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얻거니와 그 명을 어긴 이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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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큰 선인이여, 비록 어떤 중생이 나의 육신을 보았다 해도 그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얻을 것이 있겠는가. 마치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비록 나를 만났지만 오히려 지옥에 떨어진 것과 같으니라. 또 어떤 사람이 내세에 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닦는다면 곧 회유한 일이어서 마치 나의 몸을 본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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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그대가 물은 것처럼 '본덕의 인연이 쌓인다' 함은 마치 억새나 갈대 속에 불이 나서 타게 되면 불길이 일어나고 이 불길은 '쌓인다, 모인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시주가 양식[資粮]을 쌓고 모음은 마치 그림자에 형상이 따르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볼 수 없는 것도 역시 포도나 사탕수수를 아직 짜지 않았을 때에는 그 즙(汁)은 볼 수 없고, 그것의 한 마디나 두 마디 속에 즙이 쌓여 있는 것을 보려고 해도 끝내 보이지 않지만 그 즙은 그것 이외에는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복덕의 과보도 또한 그와 같아 시주의 손 안이나 마음속이나 몸 속에 있지 않지만 역시 그것들을 여의지도 않나니, 마치 니구다나무[尼拘陀]의 씨가 아직 성숙되지 못하였을 때는 그 싹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장사하는 사람이 적은 재물을 가지고 큰 성(城)으로 나아가 팔았다 샀다 하면서 잘 교환하면 재물의 이익을 크게 얻는 것처럼 복의 과보도 또한 그러하나니, 마치 벌이 꽃을 따면서도 그 빛깔을 손상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구름에는 비가 있되 그 누가 있는 것을 보겠는가만은 거기에서 비가 내리고 반드시 저절로 구실을 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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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보시의 차별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환히 알았나이다. 어찌하여 이 의식[識]이 몸 속에 머무르면서 애착함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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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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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마치 국왕이 성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참호(塹濠)를 파고 양식을 저장하며,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모든 번기를 세우며, 취한 코끼리를 잘 길들이면서 뭇 병사들에게 엄히 경계하며 부르짖되 '경비할 때는 갑옷을 입고 오로지 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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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생각으로 날카로운 칼과 무기를 가지고 칼날을 번득이며 서 있어라'고 하지만 왕의 복이 다한 까닭에 다른 나라 군사가 강성하여 끝내 멸망하고 파괴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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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의식[識]은 몸[身]의 성에 머무르면서 6근(根)이 덧없이 침해하는 것을 보고 믿음[信]의 참호를 파고 바른 기억[正念]의 갑옷을 입으며, 취한 법(法)의 코끼리를 통제하고 뜻[意]의 말(馬)을 잘 길들이면서 6근에게 이르되 '이제 무상(無常)이란 위력 있는 군사들이 오면 속히 보시[施]의 갑옷을 입고 지혜[智]의 칼날을 가지며 참괴[慚愧]의 큰 활을 갖추고 계(戒)의 둑을 잘 막도록 하라'고 하지만 이 때 무상의 군사들이 6근을 점차 핍박하여 오면, 그 때 의식은 마치 복이 다한 왕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듯이 다른 성으로 옮아가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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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 선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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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것이 복덕의 성(城)인지 복덕의 성이 아닌지를 분명하게 알아 제가 그것을 버리게 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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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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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큰배를 타고 큰 바다를 건너려고 할 때 바람과 파도가 뱃전을 때리고 솟구치고 마구 흔들리며 게다가 자라와 암고래·수고래가 피해를 주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그 배로 인하여 드디어 저 언덕에 도착해 이미 두려움이 없어지자 배를 세 번 돌고 공경하면서 제사를 지내며 말하기를 '고맙습니다. 나는 이 배로 큰 바다를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큰 선인이여, 복이 있는 중생도 목숨을 마친 뒤에는 생각하기를 지금 내 몸이 천상으로 잘 오게 된 것은 사람 몸이었을 때에 헛되이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몸이 배를 타고 악한 세계의 바다를 무사히 건넌 것이다. 장하구나, 전생의 몸은 참으로 공경할 만하다'라고 하느니라. 또 악한 세계에 떨어진 사람은 마치 바다를 건널 때에 썩은 배를 타고 큰 바다에 나아가 가라앉기도 하고 혹은 떠오르기도 하며, 몹시 흔들리다 그만 뒤집혀 겨우 목숨을 부지해 언덕 위에 닿았지만, 다시 사자·범·이리 등이 우글댔으므로 그는 꾸짖으면서 '에끼, 이 썩은 배야, 큰 바다에서 뒤집혀서 나를 두렵게 만들고 그런 고생을 시키다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악한 세계에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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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을 헐뜯고 욕하며 '나는 한갓 몸만을 기르다가 이런 나쁜 과보를 만났구나. 나는 오래도록 세간에서 더러운 풀을 짊어진 것은 마치 누에가 고치를 만들어서 제 몸을 감고 들어간 것과도 같다.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괴로운 지경에 빠뜨렸단 말이냐'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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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의식은 두 번째의 몸으로 옮아가 어머니 태(胎) 속에 있으면서 겨우 7일이 지나 생각하기를 '내가 저기에서 없어져 이 곳으로 온 것은 착한 업(業)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어머니로 하여금 세 가지 조짐이 있게 하되 이른바 어머니의 얼굴에 기쁨이 넘쳐 예뻐지게 하고 모든 기미나 검은 사마귀가 없어지며, 오른 다리는 땅을 밟을 때 보통 때보다 갑절 더 무겁고 또 그 손으로는 자주자주 오른쪽 겨드랑을 만지게 되며 흰옷을 입으면 더욱더 아름다워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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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업[惡業]을 지은 의식도 7일쯤이면 생각하기를 '나는 아무 곳에 있으면서 일찍이 아무 죄를 지었다'라고 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그 어머니로 하여금 모든 나쁜 조짐이 나타나게 한다. 이른바 몸이 더러워지고 악취가 나며 파리해지고 누렇게 되어 항상 슬픔과 근심을 품고 자주자주 구역질을 하게 하고 온갖 재앙이 집안에 가득 차고 재난이 다가오며, 모든 질병이 많게 되어 장차 해산할 때에는 혹 어머니의 목숨을 상하기도 하고 혹은 제가 죽기도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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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 선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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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 의식이 처음 태 안에 들어갈 때에는 어떠한 생각과 지혜를 얻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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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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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식이 처음 태 안으로 들어가면 염부주(閻浮洲)에 있는 동산과 숲과 궁전과 못 등이 아주 잘 장식된 것을 보고 친족들이 모여서 정겹게 즐기는 것을 보며 또 하늘의 지혜와 광명으로 생각하는 대로 한량없는 백천 번 동안을 저 여러 곳에서 태어났음을 기억하면서 '저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로서 일찍이 5백 생(生) 동안 나를 낳아서 길렀구나'라고 하며, 이런 생각을 한 뒤에는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내면서 부르짖되 '아마, 이 세간에서 그리도 많이 나고 죽고 하였구나. 모든 존재[有]에서 한없는 괴로움을 겪었으니,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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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영원히 쉬고 싶다'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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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광박 선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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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그 의식은 이미 그토록 싫증을 내거늘 어찌 나고 죽음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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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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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느니라. 큰 선인이여, 그 의식에는 벗어나게 되는 모양이 없나니, 해탈할 수 있는 이치가 없느니라. 그 의식의 경계는 나고 죽는 가운데서 비록 그렇게 싫증은 낸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있는 이면 마땅히 받아 나지[受生] 않아야 되느니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 혹 어떤 이는 복을 닦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면서 모두가 열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느니라.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의식의 생각·사유(思惟)란 의식의 강성한 마음[增上心]이요 지혜의 강성한 마음은 아니니라. 그 까닭은 의식은 분별(分別)할 수 있고 지혜는 환히 알 수[了知]만 있기 때문이니, 이 의식과 지혜가 화합하여야 비로소 그대의 말과 같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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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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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둑과 번뇌를 쌓는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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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막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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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지혜가 없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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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어리석음이 함께 함을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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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함과 무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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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일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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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지혜를 여읨이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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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識)으로 환히 알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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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과 지혜는 서로 여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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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한다고 나는 항상 설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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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바퀴로는 수레가 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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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바퀴로도 역시 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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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밖의 것으로도 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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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사람과 소가 있어야 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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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바큇살과 비녀장을 갖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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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 테가 서로 돕고 구비되어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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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채와 멍에와 고삐가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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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수레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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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수레도 역시 그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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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소[界]가 화합하여 생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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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관을 모두 갖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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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으로 말미암아 끌어당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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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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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줄과 맥이 항상 박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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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과 머리칼이 해골을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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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대장·폐장·심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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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간장·위장 등이 모두 화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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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로 몸이 건립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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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왕[識王]이 그 가운데 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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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다루거나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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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몸의 성품을 분명히 아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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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의식이 함께 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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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이 의식은 미세해서 빛깔로 볼 수도 없고 모든 감관도 없으면서 역시 서로가 여의지도 않나니, 만일 모든 장부들이 겁을 내거나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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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을 내거나 거친 생각[尋思]을 낸다면 그것은 모두가 의식이 강성하기[增上] 때문이요 지혜의 작용(作用)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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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광박 선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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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온갖 중생이 지옥의 갈래에서 나오는 이와 사람의 세계에서 나오는 이를 관찰합니까? 어떠한 업의 차별로 하늘·사람·축생·아귀 및 지옥에 태어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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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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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중생의 본래 성품이 여기에서 죽어 저기 가서 태어남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로서 오통 선인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늘·사람·악마·범천 및 색구경천(色究竟天) 등과 그 밖의 성문들이 깨달아 알 바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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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나의 법에서 세 가지 더러움[三垢]을 여의게 되어 처음의 과위[初果]를 얻을 때 나타나는 경계는 오히려 제석과 나라연천(那羅延天)조차도 알지 못하는데 그대와 같은 모든 선인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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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여래께서 이런 말씀을 하자 광박 선인은 곧 생각하기를 '이러한 윤회 속에서 성인의 지혜 경계는 일찍이 만나지 못하였다'라고 하고,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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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늙고 쇠하여 기억을 잃어서 과위를 얻을 수도 없고 깨달음에 머무르지도 못하나니, 부처님과 교법과 더러움을 여읜[離垢] 비구승에게 귀의하나이다. 저는 오늘부터 모든 제자와 권속들과 함께 불·법·승에 귀의하오니,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이익 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며 항상 세간에 머물러 거룩한 지혜의 해[日]로써 번뇌의 가리움을 없애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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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연설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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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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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어라, 바로 지금이 적절한 때이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견고하게 성취하여 향과 꽃다발을 보시하면 이 사람은 반드시 지만천(持鬘天)에 태어나게 되며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몸에서 묘한 향기가 풍기고 곱고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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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함을 느끼게 되며, 다시 스스로 갖가지 빛깔의 꽃이 그 위에 뿌려짐을 보게 되고, 혹은 누각이나 궁전이 온갖 방울이 달리고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되었으며 그 안에는 백천의 천녀(天女)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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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마친 뒤에 지만천의 부모가 화합(和合)하는 것이 마치 섬부주(贍部洲) 사람들과 같음을 보고 곧 애욕의 바람에 날려 그 태(胎) 안으로 들어가느니라. 그 때에 그 천상의 어머니는 아이를 밴 지 7일 만에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서 그 아들을 낳게 된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가슴 앞에 하늘의 만다라꽃[悅意花]이 저절로 꽃다발이 되어 일곱 가지 색깔을 갖추게 되나니, 이른바 백색·흑색·황색·적색·하늘의 감색(紺色)과 붉은 연꽃 색깔 및 불에 녹인 구리의 광명이 번쩍거리는 것과 같은 색깔이며, 향기가 바람에 따라 1유순(由旬)까지 두루하게 되므로 그 하늘의 이름을 지만천이라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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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궁중에는 나무가 있고 그 즙(汁)은 향기롭고 맛이 있어서 마치 감로(甘露)와 같으며 동산에 있는 과일에는 여덟 가지 으뜸가는 맛이 있고 크기는 마치 빈라(頻螺)의 열매와 같으며 그 하늘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가 단 열매요, 그밖에 주먹밥[搏食]이 아니며 무릇 배고픈 생각이 있기만 하면 과일이 저절로 나무에 나타나고 발 딛는 곳에는 모두 가시나무가 없으며 고운 꽃과 부드러운 풀이 온 땅에 깨끗하게 깔려 있느니라. 또 어떤 궁전은 마치 흰 꽃의 무더기 같기도 하고, 혹은 황금으로 집이 되었는데 올빼미의 입술 빛이기도 하며, 그 곳에 있는 천녀들은 빛나게 외양을 꾸미고 난간을 멀리 내다보며 서로 재미있게 즐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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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의 수명은 하늘의 2백 년이며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두 가지 조짐이 있게 되나니, 살던 곳에 있는 나무의 잎이 마르면서 가지가 아래로 처지고 그 꽃의 향기는 저절로 없어져 버리며, 붙어 있던 꽃다발은 갑자기 시들어버리고 맑고 시원했던 바람은 변하여 지독히 더워지므로 가장 훌륭했던 하늘의 성(城)을 버리고 떠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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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모든 천녀들은 이 쇠하는 모양을 보고 서로 에워싸고 슬피 울면서 한탄하며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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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찌하여 저 무상(無常)함은 조금도 자비가 없을까? 지금 우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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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하던 이가 그만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잠깐 동안에 우리들을 버리고 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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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천자(天子)는 점점 열병(熱病)의 핍박을 받아 온몸에 불이 나타나면서 불길이 더해지지만 뜨거워하거나 괴로워함이 없고 오히려 마음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그 곳에서 죽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인간의 생(生)을 받아 태 안에 있게 되면 그 어머니로 하여금 향과 꽃다발과 모든 과일을 좋아하게 하고, 또 꿈속에서 항상 성읍(城邑)에 늘어선 가게들이 장엄하게 꾸며져서 꽃과 영락이 두루 달려 있는 것을 보며, 또 태어난 뒤에는 용모가 빛나고 흰옷과 꽃다발을 언제나 좋아하게 되며, 친속들과 놀기 좋아하고 욕락(欲樂)에 탐착하며, 여인을 그리워하여 왔다갔다하면서 경솔한 짓을 하고 이름있는 훌륭한 옷과 모든 동산 숲을 탐내어 좋아하지 않음이 없으며, 부귀한 이를 보면 갑절 더 기쁨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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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나아가는 사람이 그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를 보면 옷과 밥을 보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라 약을 주며, 혹은 샘과 우물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못을 파서 보시하기도 하면 그 사람은 죽을 때 몸이 여위지도 않고 얼굴빛은 변하지도 않으며, 몸에는 땀이 나지 않고 단지가 깨지듯 소리를 지르지도 않으며, 또한 대변·소변을 저리지도 않고 6진(塵)이 충족하면서 모든 감관에도 손상이 없으며 자기 자신이 천상의 대중들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목숨을 마치고 나면 빛깔은 마치 붉은 연꽃과 같고 입에는 묘한 향기가 나며 다시 맑은 바람이 있으면서 묘한 꽃향기를 그 시체 위에다 불어주느니라. 이 때 그의 의식은 사천왕천의 세계에서 부모 될 이가 즐겁게 놀면서 정욕(情欲)에 빠진 것을 보게 되느니라. 그 때에 그 천상의 아버지는 그의 오른손으로 천상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져 주면 곧 어머니의 넓적다리에서 수태(受胎)하게 되며, 칠 일이 지나 드디어 태어나면 하늘의 장식을 두루 다 갖추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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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사천왕천들이 살고 있는 땅은 세로와 가로가 8만 8천 유순으로서 황금과 백은에 자황(雌黃)과 웅황(雄黃)이 사이사이 섞여서 장엄되어 있고, 백천의 천녀들이 그 안에 가득 차 있으며, 백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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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열매는 마치 사람의 형상과 같아 그 동산 안에서 항상 하늘의 마니주(摩尼珠) 광명을 밝게 받고, 나무숲의 가지와 줄기에는 겁파의(劫波衣)와 아름다운 비단이 늘어져 있으며, 그 나무는 윤택하고 매끄럽게 생겨서 보는 이마다 기뻐하고, 그 감실(龕室)에는 언제나 악기가 달려 있어 퉁소와 피리들이 저절로 소리를 내느니라. 그 하늘의 동자는 밥과 나물 따위의 형체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힘이 생기는데 멥쌀의 빛깔은 마치 붉은 연꽃빛이요 그 맛은 감로(甘露)보다 좋다. 그 먹는 식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금으로 된 그릇이고 다른 하나는 은으로 된 그릇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빛깔과 향기와 맛있는 맛이 모두 그 안에서 나타난다. 또 화주(花酒)라는 하늘의 음료수가 있는데 향기롭고 시원함이 특별하며, 설령 어떤 이는 맡기만 하여도 저절로 취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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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상 사람들에게는 각각 초추(初秋)라는 침전(寢殿)이 있는데 꽃과 가지가 드리워져 있고 금은의 여러 가지 보배가 섞인 수 백천 그루의 사란계나무[娑蘭鷄樹]가 그 위를 덮고 있으며 또 갖가지 방석과 침구가 있느니라. 그리고 6만 명의 천녀들은 얼굴이 예쁘고 곱고 빛나는 옷을 입었으며, 그 소리는 고요하면서도 밝아서 하늘의 음악과 어울려 울려 퍼지고 모든 즐거움을 위해 신(神)이 조화시킨 노래와 춤의 기교는 말하고 웃고 가고 오고 할 때에 보는 이마다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느니라. 그리고 그 궁전 앞에서 있는 찰주(刹柱)에는 금과 은을 사이사이 섞고 비단으로 장엄한 모든 보배 깃발을 달아 놓았는데 바람을 따라 펄럭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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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이 있으니, 첫째는 지국(持國)이요, 둘째는 증장(增長)이며, 셋째는 광목(廣目)이요, 넷째는 다문(多聞)이라 하느니라. 이 사천왕은 그 하늘의 세계에서 읊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잔치를 열면서 즐겁게 놀며 안락을 모두 갖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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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대중 안의 모든 하늘의 동자(童子)들은 힘과 재주가 뛰어나고 하늘의 예쁜 몸을 갖추었으며, 팔을 드리우고 오갈 때에는 마치 취한 코끼리와 같고 몸의 향기가 진하여 1유순까지 두루 미치며, 그들의 수명은 하늘의 5백 년이요 중간에 일찍 죽는 이가 없으며, 동산의 나무숲은 흐드러져서 빛나고 깨끗하다. 가담바(迦潭婆)꽃으로 장엄되어 모두 향기롭고 더러운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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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 / 3476] 쪽 |
가 나지 않으며 사면의 계단 길은 여러 가지 보배로 만들어졌고 수많은 천녀들이 항상 노래하고 춤을 추며 모든 보배 그릇 속에서는 묘한 음성이 나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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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그들 천상 사람들의 수명이 다하려고 할 때에 세 가지 조짐이 있게 되느니라. 첫째는 몸의 광명이 숨어 없어지고, 둘째는 꽃에 향기가 없어지며, 셋째는 천녀들이 아뢰는 모든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라. 언제나 기뻐하며 놀던 동산 숲이나 궁전에서는 새 소리가 화답하며 청아하게 울었으므로 그는 그런 곳을 좋아하였으나, 그때부터는 모두 좋아하지 않게 되느니라. 꽃다발이 시들어 떨어지므로 그 천녀들은 슬피 울게 되고 옷에는 때가 끼며 옛날에 즐기면서 장난하던 기구들을 쳐다보면서 더욱더 절망하게 되고 몸에는 땀이 흐르며 눈은 변하여 바짝 마르는 것이 마치 물에 사는 고기를 여름의 뙤약볕에 둔 것과도 같이 뜨거운 괴로움에 시달리면서 땅에서 구르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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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모든 천녀들은 그 하늘 남자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모두 와서 에워싸고는 소리를 같이하여 슬피 울며 부르짖기를, '괴롭고도 괴롭도다. 우리가 사랑하던 이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으며 좋아하고 기뻐하던 일들은 도리어 근심과 괴로움이 되었구나. 이제 어찌하여 우리들과 놀고 잔치하는 곳을 버리는 것일까'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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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때에 천녀들은 게송으로 한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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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로 미묘하게 장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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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이께서 노닐며 잔치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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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으뜸가는 복덕의 성(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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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에 누각이 갖추어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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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들이 항상 가득 차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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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숲은 편안하고 꽃도 무성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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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 기쁨과 사랑을 버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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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리도다, 이 무상(無常)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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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모든 천녀들은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서로가 목메어 울며 저마다 오른 손으로 여러 가지 꽃을 가져다 그 위에 뿌리면서 다시 말하기를 '어진 이여, 그대는 복을 갖추었기 때문에 인간에 태어나실 것이니, 그 복된 땅에서 믿는 마음으로 모든 착한 종자를 심으셔야 합니다'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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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그 하늘은 모든 천녀들이 모두가 자기를 버리는 것을 보고 거듭 더 몹시 괴로워하면서 몸과 마음이 활활 타는 것은 마치 소(蘇)의 방울을 뜨거운 철판 위에 떨어뜨리면 이내 녹아 없어지면서 조그마한 재가 남는 것이며, 다시 업의 바람[業風]에 불리어 흩어지는 것은 마치 인허진(隣虛塵)이 천억 조각으로 나누어지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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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그 식(識)은 하늘에서 내려와 장차 태어날 곳의 부모가 화합하여 마음에 기쁨을 품는 것을 보고 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그리하여 태 안에 있게 되면 그 어머니에게 곧 조짐이 나타나게 되나니, 음식을 더욱 많이 먹게 되고 피 묻은 고기는 먹지 않으며, 비단옷을 좋아하고 사람 모인 곳을 좋아하게 되며 모든 친족들에게 갑절 더 다정하게 대하고 비록 그 아이를 배었다 하더라도 고통을 느끼는 일이 없으며, 입에서는 침을 흘리지 않고 몸은 무거워지지도 않느니라. 또한 아이를 낳은 뒤에는 몸매가 단정하고 엄숙하며 그 눈은 감색(紺色)이어서 마치 하늘의 푸른 보배와 같으므로 보는 이마다 좋아하고, 천상 세계의 사천왕에 관한 일을 들으면 저절로 기뻐하고 항상 향기로운 옷을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성품에 자주자주 먹기를 좋아하고, 항상 노래하고 춤추며 동산에서 노니는 것을 좋아하며, 여색(女色)을 그리워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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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청정하게 믿는 마음으로 살생과 도둑질을 멀리 여의고 모든 음식과 훌륭한 살림과 의복과 재보를 가지고 보시하며 정성껏 부처님의 탑에 꽃을 뿌리고 예배하면, 그는 수명이 다할 때 몸에 질병이 없고 때가 끼거나 악취가 나지 않으며, 생각하고 익히던 업을 잊거나 상실함이 없고 얼굴은 금빛과 같아지며 코는 비뚤어지지 않고 마음은 놀라거나 괴로워하지 않으며, 목구멍은 막히지 않고 또한 헐떡거리지도 않으며, 바람의 칼[風刀]에 잘리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으며, 잠이나 음식에 편안하여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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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큰 선인이여. 이런 사람에게는 독이 해치지 못하고 음식이 잘 소화되며 뼈가 부러져 상처가 나거나 일찍 죽는 일을 모두 멀리 여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천상의 의식으로 되기 때문에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있는 백천의 누각에 금으로 된 마갈어(摩竭魚)로 문과 기둥을 장식하고 땅에는 훌륭한 전단향(旃檀香) 물로 뿌리며 그 땅은 부드럽고 흰 것이 마치 흰 눈과 서리보다 더하고 깨끗하기는 목걸이의 구슬과 같으며, 황단향(黃檀香)의 나무에 하늘의 보배 등불이 사이사이 섞이어 줄지어 있고, 하늘의 모든 남녀들이 그 동산 숲에서 재미있게 노닐며 음욕을 즐기며 미치듯 취한 것을 보게 되느니라. 그는 이런 일들을 보고 나서 드디어 기쁨을 내면서 마치 꿰 놓은 구슬을 다른 사람에게 가져다 주듯 하늘 어머니의 손으로 들어가며 태(胎)를 삼느니라. 그 때에 그 어머니의 손바닥에서는 이내 꽃이 생기므로 그것을 가져다 하늘의 아버지에게 보이면서 함께 기뻐하게 되며, 다시 두 손으로 그 꽃을 비비면 곧 아들이 태어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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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하늘 어머니는 하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저는 오늘 한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훌륭한 종자가 더욱 자라게 되었습니다'라고 하고, 곧 친족들을 모아 놓고 기뻐하며 축하하느니라. 그리고 그는 낳은 지 7일이 되면 하늘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전생 일을 기억하게 되나니 '아무 곳에서 죽어서 지금 여기에 태어났고 아무개가 나의 아버지였고 아무개가 나의 어머니였으며 일찍이 그러한 선행을 닦았었구나'라고 하느니라. 이런 생각을 할 때 그의 기쁨이 용솟음쳐 곧 모든 욕심에 대해 어리석은 사랑이 생기게 되며, 그 하늘 세계 안의 궁전과 동산 숲에서 탐내고 기뻐하며 애착하는 것을 저절로 알고 보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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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동자가 팔을 내리면 매끄럽고 긴 것이 마치 코끼리의 코와 같고 그 가슴은 두둑하게 찬 것이 마치 사자의 가슴과 같으며, 허리와 배는 둥글고 가늘어서 쳐지거나 쭈그러짐이 없고 등골은 편편하여 높고 낮은 뼈가 없으며, 두 넓적다리의 둥근 모양은 마치 파초의 줄기와 같고 살결은 깨끗하여 검은 사마귀나 기미가 없으며, 구레나룻 털과 여러 더러운 냄새도 없고 으뜸가는 향기가 몸에서 흘러나오며, 꽃다발과 영락과 하늘 옷은 가볍고도 촘촘한데 다른 데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에 입혀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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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궁전 안에 있던 모든 천녀들로서 하늘의 남자 짝이 없는 이들은 이 동자를 보고 모두 다가와 둘러싸며 함께 말하기를 '잘 오셨습니다. 어진 이여, 이 궁전은 모두가 당신의 소유입니다. 우리 여인들은 그 동안에 의지할 데가 없었으니, 지금부터 시중을 들게 하소서'라고 하며, 그 중의 어떤 이는 말하되 '이들은 한창의 나이라 유방은 마치 금으로 된 병[金甁]과 같고 얼굴은 마치 붉은 연꽃과 같습니다'라고 하기도 하느니라. 이 동산 안에는 이와 같은 하늘 나무인 구비라(拘毘羅) 숲이 뒤덮이고 무성하여 아주 좋으며 6만의 천녀들이 앞뒤로 가득히 둘러싸 있습니다. '장하십니다. 어진 이여, 우리들과 함께 영원히 즐길 수 있는 것은 마치 구름 속의 번개가 항상 있지 않으면서도 있는 것 같이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어떤 궁전에서는 퉁소와 북과 비파의 모든 하늘의 악기에서 저절로 소리가 나며 깔개와 사자자리[師子座]는 구슬과 영락으로 훌륭하게 장엄되고 비단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그 모든 비단들은 명주로 된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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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동자는 이런 진귀한 장식을 보고 나서 마치 관정왕(灌頂王)이 자리에 올라가듯 앉으며, 자리에 올라가자 그 진귀한 데서 다 함께 소리가 나오는데 '이 착한 업을 지은 사람은 염부주(閻浮洲)에서 천상의 복을 닦았기 때문에 여기에 태어나신 것이니, 모든 사람들은 여기로 와서 받들어 섬기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겁게 하여 이 복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뻐하면서 싫증이 없게 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이런 소리가 나오자마자 동산 숲과 궁전에 있는 6만 명의 채녀들은 하늘의 꽃을 가지고 있고 옷은 번쩍거리며, 몸에서 풍기는 향기는 마치 포도주와 꿀술[蜜酒]과 꽃술[花酒]과 같아 이 향기를 맡으면 사람들을 혼취(昏醉)하게 되는데 그들은 다 함께 소리를 같이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하늘의 복을 쌓으셨으니 저희들이 받들게 하소서'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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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동자는 여러 천녀들과 함께 환희림(歡喜林)·잡화림(雜花林)·황담석림(黃毯石林)·극광엄림(極光嚴林)과 일궁 동산[日宮苑]·천성 동산[泉聲苑]·음악 동산[音樂苑]·총화 동산[叢花苑] 등에서 노닐게 된다. 이러한 으뜸가는 숲과 동산에서 노닐므로 즐겁고 맑고 시원하여 모든 나쁜 바람이 없고 꽃과 향기가 가득하여 푸른 마니보(摩尼寶)로 등불을 삼고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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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새들의 왕이 미묘한 소리를 내며, 그 새들의 털과 깃은 마치 여러 가지가 섞인 보배와 같고 부리는 하늘의 폐유리(吠琉璃)로 되었으며, 떼지어 날아다니면서 그 숲과 나무에 가득 차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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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그 세계에는 못이 있어서 달에 따라 물이 늘기도 하고 줄어지기도 하는데 여덟 가지 공덕을 두루 갖추어서 뜻을 즐겁게 하고 때[垢]가 없으며, 맑고 시원하고 백가지 잎사귀가 달린 향기로운 꽃이 그 속에 피어 있으며, 덕에는 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러 가지 꽃들이 가득 피어있다. 그 못 속에서는 많은 처녀들이 즐기고 있고 모든 보배 그릇이 뜻대로 나타나며, 하늘의 감로(甘露)라 하는 빛깔과 향기가 묘한 음식은 마치 구마(拘摩)꽃과 같아서 희기는 마치 흰 눈보다 더한데 단 맛과 향기를 모두 갖추었고 또한 소화도 잘 되며 모든 쓰거나 떱덜한 나쁜 맛은 아예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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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모든 천상사람으로서 과보가 순수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같은 그릇으로 식사하더라도 혹 붉은 빛깔을 느끼기도 하고 혹 푸른 빛깔을 느끼기도 하며 누르고 검은 등의 여러 가지 빛깔을 느끼기도 하나니, 하늘의 용모에는 구별이 없으나 오직 음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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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그 모든 중생은 전에 비록 보시를 하기는 하였으나 그 뒤에 다시 후회하고 한을 품은 것이니, 이런 과보로 말미암아 그러한 과보를 얻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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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합혼이라 하는 동산이 있느니라. 나무의 가지·줄기·꽃·잎사귀는 여러 가지로 장식되어 있고 백천의 우거진 숲은 청정하고 부드러워 마치 수정(水精)과 같으며, 꽃과 열매는 항상 무성 하느니라. 그 숲과 나무 사이에는 모든 고요한 몸으로 욕심을 여읜 모니(牟尼)들이 여기에 모여 사는데 하늘의 남녀로서 들어간 이는 모두가 탐애나 욕락을 위해서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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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나의 수제자 교범발제(驕梵鉢提) 성문(聲聞)은 바로 바라문의 청정한 집안의 아들이니, 선정과 자비의 마음에 머물러 그 등지(等持)로써 인자한 눈을 열고 삼마지(三摩地)에 들어가 7일이 지날 때마다 한 번씩 숨을 들이쉬고 내쉬느니라. 그가 정(定)에 들었을 때는 뜻대로 되는 바람[隨意風]이 생각에 따라 이르게 되는데, 가령 겁화(劫火)가 대지(大地)를 태워 불길이 된다 하여도 선정에 들어있는 그의 몸은 겨자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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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도 손상시키지 못한다. 그의 팔다리는 마치 미루산(彌樓山)과 같아 항상 진정시키어 억누르고 있느니라. 난타(難陀) 용왕과 발난타(跋難陀) 용왕은 큰 세력이 있어서 맹렬한 기운을 내면 미루산왕도 흔들려 움직이고, 숨을 북을 치듯 들이쉬고 내쉬면 사대(四大)의 교범발제가 선정에 들었을 때에는 그 두 용왕이 그 위력을 다하여도 요동시킬 수 없느니라. 나의 제자가 합혼림(合棔林)에 있으면 모든 천녀들이 비록 애욕에 빠져 있더라도 이 존자(尊者)를 보기만 하면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고 만다(曼陀)꽃과 모든 연꽃을 그의 위에 뿌리며 합장하고 공경하며 삼십삼천(三十三天)의 모든 동자들도 모두 와서 에워싸고 하늘의 감로(甘露)를 가지고 공양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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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존자가 항상 모든 하늘들을 위해 이 합혼림에서 수다라(修多羅)·미증유(未曾有)·무문자설(無問自說)·본사(本事)·본생(本生)·인연(因緣)·방광(方廣)·풍송(諷誦)·논의(論議)·중송(重頌)·수기(授記)·비유(譬喩) 등의 경전을 설할 때 모든 천상 사람들은 이 법요(法要)를 듣고 은근히 공경하며 존중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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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삼십삼천에는 취회당(聚會堂)이 있으며, 그 당에는 8만 4천의 기둥이 있는데 모두가 금·은·발사라 보배[跋闍羅寶]·마노(馬瑙)·아름다운 옥(玉)·전단나무의 고갱이 등으로 만들어졌고, 달아놓은 방울에서는 묘한 소리가 나며 모든 하늘이 천을 벌여 놓았고 모든 번기와 당기를 세웠으며, 통소·피리·비파·공후·거문고·마상북·징·소라 및 북에서는 묘한 소리가 진동했느니라. 하늘의 남녀들은 서로서로 사랑하고 공경하여 온화한 얼굴로 즐거워하면서 항상 이 곳에 와서 모였느니라. 그 당(堂) 안은 마니보(摩尼寶)로 장엄되어 있고 푸르면서 윤기 나는 유리(琉璃)는 깨끗하고 미끄럽기가 마치 거울과 같으며 바르는 향·가루향과 여러 가지 꽃들이 두루하고 또한 회오리바람은 없으며, 모든 뜨거운 열과 독사와 모기·등에 등도 모두 다 멀리 떠났느니라. 그 곳에 사는 이는 혼혼히 잠이 들거나 게으른 생각이 없고 살살 부는 바람은 맑고 온화하며 숲의 누관[林觀]에 두루 들어간다. 그 모든 누각과 수레에는 휘장과 그물이 드리워 있고 묘한 보배 영락이 달려 있으며, 모든 꽃과 향이 뿌려져 있다. 백천의 천녀들은 비록 애욕에 물들었다 하더라도 질투하거나 다투는 일이 없고 얼굴이 단정하기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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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보름달과도 같으며 꽃다발과 보배 구슬로 몸과 머리를 장식하였고 묘한 노래를 청정하게 부르며 오가는 것을 그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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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그 하늘들이 모이는 당[會堂]은 주위가 네모지고 반듯하며 긴 행랑은 넓디넓고 높은 나무들은 빽빽하여 마치 구름으로 가린 것과 같다. 그 당의 사면에는 다시 동산이 있는데 모두가 백 유순으로서 사이사이에 갖가지 황금 연꽃과 그 밖의 여러 꽃이 피어 있고 묘한 노래 소리가 나와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며 구가나다(拘迦那陀)나무와 파리야다(彼梨耶多)나무와 구비다라(拘毘多羅)나무로 우거진 숲을 이루고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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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선법회당(善法會堂)의 진귀한 노리개감들은 모두 금·은의 모든 보배 등으로 되었고, 유리(琉璃)를 쌓아서 대(臺) 위의 정자(亭子)를 만들었으며, 진귀한 보물이 창고에 가득 차 있고, 궁전은 백천 가지로 장식되어 있으며 동산은 멀고 가까이에 인접하여 있어 항상 안락하다는 말만이 들리며, 모든 질병이나 그 밖의 우환이 없나니, 그 천상 사람들은 모든 동산 숲에서 재미있게 즐긴 뒤에 다시 이 당으로 모여와서 즐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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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삼십삼천에는 다시 별전(別殿)이 있으니 이름은 선견(善見)이니라. 희기는 마치 흰 해와 같고 깨끗하기는 마치 밝은 거울 같으며 사면의 둘레에는 모두 꽃으로 된 면류관의 앞드림을 달아서 장엄하였다. 천 명의 천녀들이 예쁘게 꾸민 여러 가지 꽃과 번쩍거리는 진주방울과 금빛과 푸른빛의 그물과 끈으로 관을 장식하고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타고 왔다갔다할 때 황금 먼지가 날려 곳곳마다 누런 빛깔이 되느니라. 그리고 그 선견전에는 6만 개의 기둥이 있고 두공은 겹겹으로 포개져 서로서로 빛을 내며, 진기한 보배가 사이사이 섞이고 단청(丹靑)을 하였으며, 전단향·침수향·소합향(蘇合香)의 강렬한 향으로 그 땅을 발랐느니라. 석제환인(釋提桓因)은 금강저(金剛杵)를 가지고 백천 명의 천녀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이 보전(寶殿)에 올라가 재미있게 즐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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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삼십삼천에는 인다라(因陀羅)라 하는 천왕이 있느니라. 힘이 세고 용감하고 씩씩하여 구천 마리의 코끼리를 대적할 수 있으며, 팔을 드리우면 매끈하고 좋아서 마치 하늘 코끼리의 코와 같고, 몸은 마치 깨끗한 금과 같아 힘줄과 살은 단단하면서 촘촘하고 뼈와 맥은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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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지 않으며, 가슴은 마치 사자와 같아 배가 불룩하지도 않고 쳐지지도 않으며, 그 허리는 늘씬하고 금실로 영락을 꿰어 머리를 장식하였으며, 구슬로 된 귀걸이는 번쩍거리고 하늘옷은 길면서도 너울거렸는데, 그는 하늘의 성명(聲明)을 오래 전에 이미 통달하였고 서론(書論)을 지었으며 감로(甘露)를 음식으로 삼고 오고 갈 때에는 항상 이발라 코끼리[伊跋羅象]를 타고 다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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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그 하늘 임금[天帝]의 육신(色身)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수한 꽃으로 되었으며, 목소리는 맑고 아름답고, 몸에서 나는 향기는 특수하여 만일 미친 코끼리가 그 향기를 맡으면 모두 저절로 잘 조복하느니라. 모습이 단정하고 엄숙한 것은 마치 부처님의 몸과 같아 그 곱고 빛남이 모든 금 무더기에 비치면 그 정광(精光)을 빼앗아 모두 캄캄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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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 선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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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서 지금 하늘의 제석[天帝]을 찬미하심이 매우 희유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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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광박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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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늘의 제석도 이는 무상(無常)한 몸이요 하천하고 비열한 몸이니, 마치 무른 풀로 만든 그릇과 같고, 임시로 꺾어 심은 꽃과 같으며, 그림 그리는 이가 그린 채색화(彩色畫)와 같고, 조각가가 나무로 새겨 만든 형상과 같으며, 또 꽃을 서로 맺어 한데 이은 것 같아서 오래지 않아 흩어지고 없어지게 되거늘 어찌 족히 칭찬 거리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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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제자 가운데 신통이 있는 아나율(阿那律)이 있나니, 그는 부모에게서 낳은 몸이지마는 마디마디나 팔다리 일부분의 힘은 오히려 제석보다 뛰어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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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아나율이 자리 안에 있다가 여래께서 이렇게 설하시는 것을 듣고 곧 생각하기를 '지금 세존께서 나를 깨우치시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 곧 삼매(三昧)에 들었는데, 그 몸의 광명이 번쩍번쩍한 것이 마치 하늘의 새 금덩이 같았고, 머리에 쓴 관(冠)의 구슬 빛은 훤히 빛났으며, 그 얼굴은 윤택하여 제호(醍醐)보다 뛰어났고, 그 눈은 감청색(紺靑色)으로서 마치 폐유리(吠琉璃) 같았으며, 마니(摩尼)와 마노(馬瑙)와 일광주(日光珠)로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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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하였고, 몸의 빛과 향기는 두루두루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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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광박 선인은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바라보며 희유한 마음을 내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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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도다. 거룩하도다. 내가 사람 몸이 된 것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았구나. 이제 세존께서 나타낸 이 모임을 만났으니 옛날에 보지 못했던 바를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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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광박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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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제석의 몸과 이 아나율의 몸 중에 누가 더 낫고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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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박 선인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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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제석의 몸을 아나율에 비교한다면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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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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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이러한 몸은 희유할 거리가 되지 못하느니라. 복덕을 얻는 이는 그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성취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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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모임에 있던 대중들은 기뻐하며 다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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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다시 저희들을 위하여 하늘 세계[天趣]를 말씀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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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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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삼천의 저 하늘 제석의 첫째 대부인(大夫人)은 이름을 사지(舍支)라 하는데, 환희원(歡喜園)에 머무르며 하늘의 채녀 백천 명에게 에워싸여 있다. 용모가 아주 예뻐서 마치 꽃이 핀 것과 같고, 뺨은 마치 붉은 연꽃과 같으며, 얼굴은 마치 금빛과 같고, 산뜻하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동산에서 즐겁게 노닌다. 또한 하늘의 묘한 보배 꽃으로 머리를 장식했고, 구슬과 영락과 패옥은 움직일 때 묘한 소리를 내며, 이마는 넓고 편편한데 금으로 된 면류관 끈을 드리웠으며, 그 눈은 가늘고 길어 마치 꽃이 장차 피려는 것 같다. 하늘 제석에게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일찍이 성을 내거나 다투거나 찡그리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으며, 또한 아이를 배는 우환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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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그 부인은 애욕에 탐착하는 때[垢]가 무거워 그 밖의 천녀들보다 갑절이나 더하고, 뜻이 교만함은 마치 미루산(彌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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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과 만타산(漫陀山)이 깊고 깊어서 우러러보기 어려운 것 같다. 살찌지도 않고 파리하지도 않으며, 키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체질이 향기롭고 깨끗하여 모든 더러움이 없고 바람이 묘한 꽃을 보내어 일산을 만들어 주느니라. 그러나 이 부인은 항상 여래의 종성[如來種姓]을 발휘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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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선인이여, 삼십삼천에는 여러 가지 우환이 없고 항상 누각과 궁전에서 즐길 뿐이며, 그 곳의 수명은 하늘의 천 살[歲]이요, 수명을 마치려 할 때는 다섯 가지 나쁜 조짐[惡相]이 있게 되느니라. 첫째는 맑고 시원한 못은 깨끗하기가 마치 파지(頗胝)와 같아 닿기만 하여도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살살 부는 바람에 가벼이 흔들려 여러 가지 꽃이 비치는데 이러한 못 속에서 목욕을 하려 하면 그만 변하여 기름으로 되어버리니라. 이 때 하늘사람[天人]이 이와 같은 모양을 보고 마음에 두려움을 내면서 물에서 뛰어나와 숲 속으로 도망치느니라. 그 때에 여러 천녀(天女)들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빨리 뒤따라가 한 나무 아래 서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목이 메인 소리로 함께 말하기를, '어진 이여,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우리를 버리고 이와 같이 외로이 있습니까'라고 하느니라. 그 때에 그 하늘 남자는 소리가 점차 애처로워지며 말하기를 '나는 옛날에는 이런 더러운 때가 몸에 낀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런 말을 마치자 그의 두 겨드랑이 아래서 갑자기 땀이 흘렀으며, 그 모든 천녀들은 이렇게 쇠하는 모양[衰相]을 보고 모두 멀리 떠나버렸다. 이 때 그 하늘은 여인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숨을 헐떡거리면서 속으로 더욱 애타하자 머리 위의 꽃다발이 단번에 시들어 떨어졌고, 입고 있던 하늘 옷에도 홀연히 때가 끼었으며, 하늘의 평상과 깔개와 진기한 물건들을 모두 좋아하지 않게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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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든 천녀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자 죽을 것이 틀림없음을 알고 더러운 냄새를 맡는 것을 싫어하여 다만 멀리서 서로 보면서 소리내어 울며 몹시 괴로워 하다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괴롭도다. 이 가늘고 부드러운 몸은 옛날 우리들과 함께 놀러 다니고 잔치 자리에서 즐거워하였으니, 천지(天地) 가운데서는 마치 원앙새와 같았고 선법당(善法堂)에서는 마치 거위 왕과 같았으며 환희원(歡喜園) 안에서는 마치 가란조(迦蘭鳥)와 같았고 만타하(漫陀河)에서 놀 때는 향상(香象)과 같았으며, 파야원(波耶園)과 구라원(拘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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園)에 있을 때는 마치 벌 왕과 같았고 잡수림(雜樹林)에 머무를 때는 마치 하늘의 꽃 관[天化冠]과 같았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의 침해를 받아 우리들을 버리고 장차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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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그 하늘사람은 이러한 슬픈 탄식을 듣고 더욱 성내고 괴로워하며 크게 두려워하다가 이내 열병(熱病)에 걸리게 되어 온몸이 바짝 마르고 눈에 두려움을 띠는 것이 마치 장사꾼이 그의 동료들을 잃은 것과 같고 바다를 건너는 배가 파괴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어떤 사람이 여의주(如意珠)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허둥거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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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높은 산봉우리의 썩은 나무에 세찬 바람이 불어 요동하는 것과 같고, 또 용의 새끼가 금시조(金翅鳥)에게 물려 가는 것과도 같이 버둥거리며 벌벌 떨다가 합장하고 그 여러 천녀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이리 오시오. 손으로 나를 어루만져 주어서 조금이라도 편안히 쉬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지만 그 여인들은 단지 멀리서 슬피 울 뿐 나오려는 이가 없으며, 저마다 나뭇가지를 가지고 그의 가슴 위를 향해 멀리서 던지며 말하기를 '그대는 하늘의 복이 다하였으니, 속히 저 염부제에서 태어나야 합니다'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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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그 하늘은 이런 말을 듣자 그들에게 버림 받은 것을 알고 소리내어 원망하며, '어찌 그리도 심할꼬. 나는 이곳의 갖가지 살림 도구와 동산과 궁전에서 그대 천녀들과 함께 권속이 되어 얽매어 있었다. 이제 목숨이 다하여 죽음의 길로 가려하자, 그렇게 멀리 서서 다만 나에게 염부제에 가서 태어나야 한다고 합니까'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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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하늘은 이런 말을 한뒤, 다시 평상시에 놀았던 곳을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슬피 탄식하다가 큰 소리를 내어 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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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법당(善法堂)이여 아, 환희원(歡喜園)이여 아, 잡수원(雜樹園)이여 아, 황담석원(黃毯石園)이여 아, 파로사원(波露沙園)이여 아 광승원(光勝園) 등이여 아, 만타(縵陀)의 큰 강물과 모든 궁전과 당(堂)과 실(室)과 누각이여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그대들을 버리고 여기에서 떠나가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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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근심과 탄식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모든 여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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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오가면서 손으로 눈물을 닦고 느껴 울며 탄식하여 얼굴에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 마음 아파하며 원망하기를 '아, 사랑하는 이들이여. 아, 친한 이들이여. 어째서 죽어가는 나를 보고도 말도 하지 않으려 하오. 나는 이제 나고 죽는 먼 길에 임하여 있는데 이 이별을 막지 아니하오. 나와 그대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 복업이 다한 까닭에 살던 곳을 보아도 캄캄하여 나혼자 내동댕이쳐진 것 같구려. 아, 하늘의 음악은 왜 울리지 않을까? 어째서 나는 지금 적막하여 들리는 것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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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늘 중에서 가장 즐겁고 모든 하늘과 건달바 등이 모시고 호위하던 곳과 묘한 빛깔이 견고해져서 금강(金剛)을 가진 이를 아, 나는 이제 다시금 볼 수 있을까? 천안(千眼)을 지닌 분은 대중 가운데 계시는 것일까? 아, 파리야꽃[波利耶花]과 구비라꽃[拘毘羅花]은 나의 머리 위에 있다가 무엇 때문에 시들어빠지느냐'라고 하느니라. 그 때에 모든 하늘들은 이 하늘사람이 이렇게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모두 다 근심하고 한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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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묘한 귀걸이를 한 석제환인(釋提桓因)은 백천의 모든 하늘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아울러 사지(舍支) 부인과 그 밖의 채녀들과 건달바 등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울리면서 놀러 나가지만, 그 하늘이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에 핍박을 받아 장차 죽음의 길로 나아가려는 것을 보고 모두가 불쌍히 여기면서 소리를 같이하여 한탄하기를 '아, 괴이하도다. 저 무상(無常)함을 조금도 가엾이 여기는 기색이 없이 포악하고도 잔인하구나'라고 한다. 석제환인은 범음성(梵音聲)으로 그 하늘들에게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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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천자들아, 우리들도 모두가 장차 이 길로 돌아가야 하리니, 연착(戀箚)을 내어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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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모든 하늘들은 다 같이 말하기를 '어진 이여, 모든 선(善)을 갖추려면 일체 중생의 복업을 닦는 땅인 인간세상에 가서 태어나야 합니다'라고 하느니라. 이 때 그 하늘은 이 말을 듣고 곧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틀림없이 떨어지는구나'라 하고 합장하고 그 여러 하늘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 여러분은 천상 안에 머무르면서 나와 함께 기뻐하였었는데 나는 이제 아래로 추락할 때가 다가왔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길게 탄식하며 쳐다볼 때 다시 두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첫째는 눈이 마치 빨간 연꽃과 같아지고, 둘째는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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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했던 꾸미개들이 갑자기 다 없어져 버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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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모든 하늘들은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저마다 하늘꽃을 가지고 와 그의 위에 뿌리며, 하늘의 음악을 울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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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죽음에 임한 이는 다른 하늘들이 음악을 울리면서 번기와 꽃을 그에게 보내주고 가기를 권하는 것을 보고, 곧 염부제에 태어날 것을 좋아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가 그만 목숨이 끊어지느니라[여기서부터 뒤로는 비야사문경(毘耶娑問經)의 끝부분을 덧붙인 것이다]. 목숨이 다하여 죽고 나면 가아나풍(迦阿那風)이 그가 죽을 하늘에 불어오고 그 바람은 좋은 향기를 그에게 불어주면서 흩어지게 한다. 이와 같이 흩어지면 곧 삼십삼천을 멀리 떠나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처소도 없고 다른 데에 태어날 수도 없는데 생각이 있는 듯도 하고 앎이 있는 듯도 하면서 그 곳을 물러난 뒤에 인간으로 와서 태 속에 들게 되느니라. 그 어머니에게는 웃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마음에는 음욕을 즐기며, 항상 기뻐하고 꽃과 열매있는 나무 숲을 좋아하며, 갖가지 빛깔이 섞인 옷을 입기 좋아하고 먹고 마시기를 언제나 즐기며, 비록 태 속에 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겨드랑이는 괴롭지 않고, 삿된 음행을 좋아하지 않아 좋은 향과 꽃다발로 장엄하는 것을 좋아하며, 누우면 좋은 꿈을 꾸게 되므로 생각이 뒤바뀌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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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삼십삼천에서 물러나 여기에 태어날 때 어머니 태 속에 머무르는 동안 이와 같은 조짐이 있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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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그 어머니는 그 때 모든 장부(藏腑)를 지나 허물을 멀리 여읜 뒤에 곧 낳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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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그 때 동자가 태어난 뒤에는 몸은 치우친 데 없이 바르고, 손바닥의 무늬는 잘 생기고 기뻐할 만큼 부드러우며, 허리는 가늘고 이는 촘촘하며, 신체는 유연하고 그 마음은 훌륭한 공덕을 좋아하며, 성품됨이 색욕을 잊기 때문에 마음에 섬세한 옷을 사랑하고 숲과 노는 곳을 좋아하며, 몸에서는 독특한 향기를 풍기고 크게 재물이 풍부하여 돈과 보배를 구족하게 되며, 큰 성(姓)의 종족으로서 항상 보시와 계율을 행하게 되느니라. 욕심이 많은 이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지만 마음으로는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몸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손발이 가지런히 생기고 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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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마다 모두 다 사랑하고 공경하게 된다. 성품됨은 논의(論義)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은 부드러워 성내는 일이 적으며, 다른 부인에게 가는 것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아내는 좋아하지 않고, 모든 친구나 형제나 권속에 대해서는 사랑하거나 생각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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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인이여, 알아야 하느니라. 삼십삼천에서 물러나 인간에 태어나는 본래 성품[本性]이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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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말씀하여 마치시니, 비야사 선인(毘耶舍仙)[곧 신경(新經)의 광박(廣博)선인이다. 당(唐)·범(梵)의 두 음(音)과 방언(方言)이 다를 뿐이다]과 온갖 선인들이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거룩하시옵니다'라고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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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에 이 경을 펼쳐 읽다가 여기가 빠져있음을 보았고 삼장(三藏) 니원(泥洹)이 물었으나 그 의혹을 풀지 못하다가 옛 장경(藏經)을 검열하던 중에 그 안에서 비야사경(毘耶娑經)을 얻게 되었다. 살펴보니, 이것은 범본(梵本)과 앞뒤의 번역만 다를 뿐 두 경문(經文)을 대조한즉 내용이 똑 같았으므로 옛 경문을 여기의 궐문(闕文) 뒤에 덧붙여 기록하니, 뒷날 찾아보는 사람은 의혹이 없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