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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포의 박속밀국낙지탕 이 당연한 진리. 음식은 맛으로 먹는다. 그런데 고정관념으로도 먹는다. 김치를 먹으면서 맛을 느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유가 늘 상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김치의 맛은 먹기도 전부터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고정관념으로 먹는 김치. 자장면도 먹기도 전에, 음.... 자장면은 이런 맛이야 하는 관념. 그래서 고정관념의 맛에 가까우면 맛있다 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이거 맛이 왜 이래? 사람들이 낮선 음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것도 실상은 고정관념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모험과 도전을 싫어하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은 고정관념의 노예가 된다. 이런 사람은 음식도 안전빵으로 나간다. 평소 식습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대는 익숙하지 않은 맛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미식가이거나 반대로 아무거나 잘 먹는 막입을 가졌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낙지가 접시를 탈출하고 있다) 낙지는 호불호가 확실한 음식 중에 하나이다. 외국인의 눈에 산낙지 먹는 모습이 경악할 정도라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서 못 먹는다. 낙지의 꼬물거림과 빨판이 혀나 입 벽을 당길 때 느껴지는 쾌감. 씹으면 씹을수록 흘러나오는 육즙. 더군다나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스테미나 음식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산낙지 애식가가 아닌 산낙지를 먹지 않는 당신들이다. 그런데 산낙지라고 해서 다 같은 산낙지가 아니다. 약간 붉은빛 도는 돌낙지를 산낙지로 먹고 있다면 돌대가리이거나 낙지 맛을 모르는 이다. 낙지 맛을 안다고? 그렇다면 당신도 역시 산낙지를 맛으로 먹는 게 아니고 고정관념으로 먹고 있는 셈이다. 낙지는 역시 산낙지로 먹어야 제맛이야! 산낙지가 최고야 하는 고정관념. 그래서 돌낙지도 맛나다고 먹고 있는 거 아닌가. 인정해야 한다. 산낙지의 최면술에 걸려서 먹고 있는 거지 절대 맛으로 먹고 있는 건 아니다. 낙지는 뻘낙지가 정답이다. 그 중에 으뜸은 세발낙지. 가느다란 발의 굵기가 일정하게 30센치 이상인 세발낙지는 언제나 그리운 맛이다. 한때 흑산도 홍어가 귀물이 되어 전설의 맛이 되기도 했지만 이젠 세발낙지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만큼 귀하다는 얘기다. 귀하다는데 세발낙지만 고집하는 것도 현명치 못한 생각이다. 세발낙지급 낙지. 세발낙지 뺨치는 낙지가 있다. 낙지에 있어 맛객의 로망이 된 그 낙지. 우리가 배신을 할 지 언정 그 낙지는 배신하지 않는 맛을 지니고 있다. 낙지가 있는 왕산포 안면도에서 함초 채취에 실해한 그분과 나는 일단 왕산포(충남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로 향했다. 여기까지 와서 함초는 못보고 가더라도 이 맛은 꼭 봐야 한다. 안보고 간다면 맛객의 미식인생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기에. (서해안의 조그만 포구 왕산포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우정횟집의 외관) 왕산포는 서해안의 조그만 포구다. 볼거리도 없는 이곳에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낙지 때문이다. 이곳에는 박속밀국낙지탕을 하는 업소가 두 곳 있다. <왕산포횟집>과 <우정횟집>. 맛객이 작년 처음에 갔을 땐 왕산포횟집을 두 번째 갔을 땐 우정횟집을 이용했다. 두 집의 음식 맛은 차이가 별로 없다. 낙지도 왕산포 앞 갯벌에서 잡은 거라 거의 같은 맛이다. 다만 친절도에서 우정횟집이 더 낫다. 해서 이번에도 우정횟집을 선택. (낙지 10마리, 마리당 3천원한다) (먼저 산낙지회로 맛을 본다) (한 마리를 통째로도 꼭꼭 씹어서 꿀꺽~) (박속탕에도 살짝 데쳐서 먹는다) (낙지는 너무 빨리 건져내면 어중간한 맛이고 너무 많이 익히면 질겨지고 맛도 떨어진다. 단 낙지 몸통은 오래 완전히 익혀야 맛있다) (회색 낙지가 흰색이 되어 다시 살짝 붉은 기가 감돌 때 건져 먹으면 딱 알맞다) (한꺼번에 다 넣고 익히기보다 먹을 때마다 한 마리씩 데쳐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맛있는 상태로 익혀진 낙지 한마리) (겉은 야들거리고 속은 쫄깃하다) (티 하나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매끈한 낙지의 표면에서 싱싱함이 느껴진다) 낙지는 갓 나기 시작하는 5~6월 무렵에는 마리당 2천원 안짝이지만 지금은 더 자랐기 때문에 마리당 3천원. 만약 그대가 낙지를 풍족하게 먹고 싶다면 3천원하는 낙지와 함께 6~8천원하는 뻘낙지 1~2마리를 주문하면 된다. 낙지가 나왔다. 박속이 들어간 육수냄비도 나왔다. 지금부턴 냉동 박 대신 햇박을 사용한다. 낙지는 크기는 작은 편에 속하지만 싱싱해 그런지 힘은 장사급이다. 이런 낙지여야 산낙지는 맛있다. 꼬물거림이 강렬할수록 입맛 당기게 하는 산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본다. 기름소금도 필요 없다. 낙지 자체에 든 맛으로도 충분하다. 바다의 향취까지 느껴지는 산낙지를 먹고 있으면 우리가 관념적으로 지니고 있는 산낙지의 맛을 능가한다. 이 맛! 더하기 빼기도 없이 가장 솔직담백한 표현 해볼까? “맛있다!” 그렇게 산낙지 한두 마리를 먹고 나면 박속탕이 끓기 시작한다. 여기에 낙지를 살짝 데쳐 먹는다. 질긴 쫄깃함이 아닌 여린 쫄깃함에 또 다시 “맛있다!”
그렇게 낙지를 다 먹어 갈 때쯤 되면 낙지와 박속에서 우러난 국물은 예술이 된다. 이 감칠맛과 시원함에 매료되지 않는다면 어디 가서 무슨 탕을 먹더라도 맛있는 탕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엔 국수로 속을 든든히 한다) 시원한 국물을 덜어 후루룩 마시다 보면 부족해진다. 이때 칼국수를 주문하면 육수를 더 부어준다. 팔팔 끓여 칼국수까지 먹고 나면 박속밀국낙지탕과 함께 한 시간이 행복감으로 전해져 온다. 좋다. 좋긴 한데 그분이 술에 취했으니 어쩐댜? 일단 당진 왜목마을까지 가서 숙소부터 정하기로 결정을 봤다. 음주운전이 불안하긴 하지만 왕산포는 낙지를 먹고 나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동네다. 자 출발! 그렇게 운명의 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옥호 : 우정횟집 출처 : 맛객(블로그= 맛있는 인생) |